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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들여다보다

  • 작성일 2011-02-01
  • 조회수 2,963

 

새로운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들여다보다

 

- 2011년 신춘문예 당선 소설 경향 분석

 

 

손정수(문학평론가)

 

 

 

 

 

1. 신춘문예의 지속성

 

연구자들의 논의를 참고로 하면 우리 문학사에서 신춘문예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14년 『매일신보』의 ‘신춘문예모집’부터이니 이제 곧 100년의 역사를 맞는 셈이다.1) 신문을 매개로 신인 작가가 배출되는 신춘문예라는 문학 제도는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인데2), 이른바 신춘문예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에 비하면 문단적 기능과 영향력이 크게 위축된 것이 사실이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개설이 증가되어 왔으며 지방자치제 이후 창간된 지방지들도 경쟁적으로 신춘문예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최근 들어 오히려 양적으로는 확장되는 경향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집단적인 로망은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유효해서, 신춘문예라는 신화를 지탱해 주고 있는 듯하다. 예년에 비해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질적 수준을 가늠해 보고 그 특성을 분석하는 일과 더불어, 신춘문예 제도 자체의 의미와 효용에 대해서도 짚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 글에서는 우선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경향을 분석해보고, 그에 이어 현재의 신춘문예 제도 자체와 관련된 문제들도 한정된 범위에서나마 생각해 볼 예정이다.

한편 대체로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하면 등단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전국 규모의 종합일간지에 국한하여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에서는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들까지 분석 대상에 포함시켜 다루고자 한다. 같은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중앙지와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 사이에는 위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이 신문의 부수나 영향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당선작의 질적 수준에 의거한 것인지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문학작품의 수준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 미디어 등의 발달로 인해 지역에 따른 생활 방식이나 문화의 차이는 소멸되어 가는 추세이고, 그와 관련하여 소설에서도 중앙 문단과 지역 문단의 차이는 점점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하는 한편, 그 위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라도 두 영역을 구분하여 비교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중앙지와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함께 다루되, 각각 나누어서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또한 신춘문예 소설을 분석할 때 대체로 단편에 국한되는 경향도 있다. 다른 소설 장르 공모는 동아일보 중편을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본문에서는 단편 당선작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중편 당선작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마지막 장에서 현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에서 함께 다루기로 하겠다.

 

 

2. 도전적 감각, 안정된 서사, 알레고리적 주제

    -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경우

 

 

올해 전국 규모의 종합일간지 신춘문예의 특징으로는 우선 당선자들의 연령이 크게 낮아진 현상을 들 수 있다. 2011년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은 28.7세로 2010년의 38.0세, 2009년 32.7세, 2008년 37.3세, 2007년 35.6세, 2006년 39.1세, 2005년 35.1세, 2004년 32.7세, 2003년 34.0세, 2002년 32.7세, 2001년 31.6세 등에 비교해 볼 때 크게 낮아졌다. 3)

당선작품의 측면에서는 기존의 신춘문예 당선 소설의 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편의상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당선작들의 경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1. 도전적인 감각의 등장

 

최근 들어 심사위원들의 세대교체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세대적 성향이 당선자의 연령이나 당선작의 특성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세대에 심사를 맡길 때에는 모종의 기대가 전제되어 있었을 터인데, 그 기대를 의식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소설적인 완성도나 안정감만이 아니라 서사의 개성이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등장했다. 가령 “소재가 신춘문예 도전작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도발적”이며 “신춘문예 소설의 새로운 패턴을 제시할 수 있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서울신문)거나 “아직은 완성도가 높다기보다 장차 발전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높이 샀다”(조선일보)는 등의 언급을 심사평에서 볼 수 있다. 크게 보아 차현지의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서울신문), 설은영의 「집시, 달을 굽다」(조선일보) 등의 작품이 도전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인물이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이라는 사실 역시 그와 같은 감각과 관련이 있다.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 이유」는 표면상 원조교제를 다룬 소설로 보인다. 원조교제라면 사회적으로도, 소설적으로도 이제 그다지 신선한 소재가 아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에서 화자인 여고생 ‘나’(미치)와 유부남인 아저씨의 관계는 금전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저씨와의 일탈적 관계는 불안정한 가정과 적응이 안 되는 학교로 둘러싸인 이 소녀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근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행위는 ‘미친’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욕망의 경제에 의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그 위악적 세계를 반성하게 만드는 사건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제시된다. ‘나’가 악몽 같은 밤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온 날 아침, 식물처럼 놓여 있던 할머니가 ‘희정아’라고 부르며 진심 어린 걱정과 격려의 말을 건네는 순간, ‘나’는 아저씨의 번호를 지우고 ‘미치’의 세계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 속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된다. 우리 삶에 그런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소설 속에 담겨 있다고 하겠다.

「집시, 달을 굽다」는 홀어머니마저 잃고 외삼촌 내외로부터도 버림 받은 여대생 은호의 의식에 서술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삶의 벼랑에 몰린 그 의식은 기본적으로 불안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젊음 덕분에 발랄함을 잃지 않고 있다. 선배의 조그만 전셋방에 빌붙어 살며 겨우 버티고 있는 은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호시탐탐 자신에게 덤벼들어 할퀴는 선배의 푸들, 음흉한 선배의 애인이나 변태적인 마트의 지점장처럼 위협적인 것들, 혹은 부유하지만 연약한 남자친구 경원, 그러고 자신의 편이기는 하지만 매사에 엉뚱한 선배 배 작가처럼 전적으로 기대기는 어려운 인물들뿐이다. 그러하기에 은호의 세상을 비추고 있는 달빛은 싸늘하게 날선 은색이다. 그렇지만 그런 은호를 감싸안아 준 인물이 있으니, 그 자신의 목에 굵은 흉터를 간직하고 있는 약국 주인이 바로 그다. 은호는 냉동실에 넣었던 개를 꺼내어 살려 놓고 마치 냉동실 같은 동아리방에 알몸으로 누워 속죄의 의식을 치른다. 그러고 난 후 동아리방 구석에 있는 버너에 불을 켜 석쇠에 자퇴서와 유서를 태워 언 몸을 녹인다. 그 순간 얼었던 달빛이 노랗게 구워져 익고 있다. 이 긍정적 세계 인식에 이르는 서사의 행로는 매끄럽지 않지만, 그 수행자의 의식이 젊다는 사실에서 그와 같은 빠른 호흡의 리듬이 요구되는 필연성을 찾아볼 수 있다.

 

 

2.2. 안정된 서사의 양상들

 

한편 세대적 감각이 모든 경우에 단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어서 전반적으로는 전통적인 단편 문법에 충실한 작품들이 더 큰 비중을 이루고 있다. “다소 패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엄살없이 주제를 잘 살려낸 이 작가의 역량과 정연한 이야기 전개의 솜씨를 믿기로 했다”(한국일보), “모든 예술의 본원적 토대라 할 섬세한 감수성과 은유에 대한 잠재력 역량을 선택”(문화일보), “무엇보다 시종 호흡을 잃지 않고 안정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 저력이 돋보였다. 말 그리고 소통 부재의 현실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자못 의미심장한 주제를 이만큼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경향신문) 등의 평가는 여전히 소설적 기본기와 형식적 완성도가 신춘문예에서는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라유경의 「낚시」(한국일보), 서현경의 「나비」(문화일보), 백수린의 「거짓말 연습」(경향신문) 등의 소설들을 이 범주에 묶어 살펴볼 수 있다.

「낚시」는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의 일상을 1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배달되어 온 상자들이 ‘나’의 방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나’는 택배기사와 마주치는 것도 피하고 싶어 소화전 공간을 이용하는데, 그런 그의 행동은 너무 비쩍 말라서 ‘생선 가시’라고 놀림 받으며 자랐던 뿌리 깊은 신체적 콤플렉스의 소산이다. ‘나’의 생계를 유지해 주는 것은 타이핑 아르바이트. 작업을 해서 메일로 보내면 되기 때문에 ‘나’ 같은 은둔형 외톨이에게 적합한 일 자리이다. 낚시 잡지 작업을 하다가 알게 된 실내낚시터에 드나드는 ‘나’. 그 곳에서 한쪽 눈이 상한 물고기를 잡아와 집에서 키우기도 하고, 주인이 키우는 애완용 거북이를 보고 수족관에서 청색 거북이를 사오기도 한다. 눈먼 물고기나 몸을 껍데기 속에 감추고 있는 거북이에게서 ‘나’는 콤플렉스를 안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택배 사고로 받지 못한 물건을 찾아 헤매는 ‘나’가 거북이와 함께 낚시 바늘에 걸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히는 마지막 장면 또한 그 동일시가 낳은 것일 터이다.

「나비」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꿈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아동용 극단의 배우로 일하고 있는 정우라는 여성의 의식에 서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색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림에 대한 그의 욕망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악조건이다. 그가 겪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이통(耳痛)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그가 제작한 팸플릿 도안을 본 미술관의 이관장이 그에게 전시회에 내보낼 작품 제작을 주문한다. 그래서 그가 만들게 된 작품이 바로 나비의 날개를 붙여 만든 기린의 그림이다. 그런 그에게는 나비의 날개만이 전부이고 몸통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나비의 날개에는 색소가 없기에 그 빛깔은 구조적인 배열을 통해 만들어진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시회에서 그 통렬한 진실을 겪은 그의 시야에 몸통만 남은 나비들의 본능적인 꿈틀거림이 들어온다.

「거짓말 연습」 역시 서사의 요소들을 충실하게 갖춘 안정된 이야기인데, 「낚시」와 「나비」에 비해 주제의 제시나 결말 처리가 좀 더 분명한 편이다. 이 소설에서 남편과 별거 상태에 있는 ‘나’는 어학연수 명목으로 프랑스에서 체류하고 있다. 하지만 소통에 대한 믿음, 자신감을 잃어버린 데다, 다른 언어와 문화로 인한 장벽까지 포개어져 불안과 고립은 더욱 심화된다. 일시적인 체류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스쳐 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고, 어차피 불완전한 외국어로 마음속의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 소설은 절망 상태에 빠진 주인공이 어느 순간 소통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관계를 향해 마음을 열기까지의 과정을, 화려하지는 않지만 제법 단단한 문장에 담아 그려내고 있다. 소통의 내용에 앞서,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아니 소통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인간적인 진실이라는 깨달음이 그 과정에 가로놓여 있다.

 

 

2.3. 알레고리적 주제 의식의 두 가지 표현

 

도전적인 감각이나 서사의 기술적 안정감보다 주제의 제시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세 번째 경향으로 천재강의 「켄타우로스의 시대」(세계일보)와 손보미의 「담요」(동아일보) 등을 묶어볼 수 있다.

「켄타우로스의 시대」의 배경은 새로 조성된 소규모 댐 근처의 유원지다. 트럭에 고무보트를 싣고 다니며 실종된 시체를 찾아 몸값과 바꾸는 아버지를 둔 소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악어’라는 아버지의 별명에서도 드러나듯, 이런 모티프는 김기덕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런 어두운 밀매를 둘러싸고 권력의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그 시대는 ‘켄타우로스의 시대’이다. 하지만 켄타우로스는 지혜의 여신 팔라스에게 머리카락을 잡히게 되니, 이성에서 벗어난 본능이 지배하는 그 영역은 곧 합리성의 힘에 의해 소멸될 운명을 내포하고 있다. 태풍이 유원지를 휩쓸고 지나간 후, 바람에 뽑힌 미루나무 대신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세워지고 야영장은 캠핑장으로 바뀐다. 강물에 떠내려가 찌그러진 채 큰길에 걸려 있는 아버지의 트럭은 이제 그 ‘켄타우로스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화적 상상력을 이끌어온 점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이런 알레고리적 방식의 주제는 구체적 시공간을 초월하는 관념성의 특징을 갖는다.

「담요」의 화자 ‘나’는 소설가다. ‘나’는 친구 한으로부터 들은 장의 사연을 소설로 써서 일약 돈과 명성을 얻었다. 그런 ‘나’를 한은 도덕적으로 비난하며 절교를 선언한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주제는 현실과 허구의 관계 위에서 작동하는 바로 이 글쓰기의 윤리 문제에 맞춰져 있다. 얼마 후 한이 사망하고, 또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장을 만나 그의 사연을 듣게 된다. 장은 공연장에서의 총기 난동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그날 아들의 몸을 덮고 있던 담요를 늘 갖고 다녔다. 그는 순찰 중 어느 겨울 새벽의 놀이터에서 어린 부부를 만난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장과 이 어린 부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장이 어린 부부에게 건넨 ‘담요’는 바로 그 특별한 방식의 소통을 상징하는 사물이다. 그 소통의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장과 어린 부부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차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당선자의 연령이 크게 감소하고 새로운 감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인 듯하다. 다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세대 심사위원들의 의욕과 기대가 앞서 나가고 경향이 있고, 그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나오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요구될 것 같다. 그 때에는 감각과 기술과 주제가 조화를 이룬 개성 있는 작품들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말의 관점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세계에 대한 긍정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증가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런데 그 결말이 서사 진행의 필연에 의한 결말이 아니라 상징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한국 소설의 관습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보다 분명하게 서사에 담아내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 같다.

 

 

3. 일상성, 혼종성, 지역성, 원형성

    -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경우

 

중앙지 신춘문예의 경우 젊고 새로운 세대적 감각의 등장이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면,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는 아직 그런 면이 두드러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15개 지방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자 16명 가운데 확인 가능한 15명의 평균 연령은 42.7세로 중앙지 당선자 평균 연령과는 큰 차이가 있다.4) 문장이나 소설 문법의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시차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방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이 시차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인가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 각자의 현재 지점은 그 자체로 그들의 고유한 발전 경로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그런 관점에서 중앙지의 당선작들에서는 볼 수 없는 지방지 당선작들의 특징들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3.1. 일상성의 두 양상

 

지방지 당선작의 경우 일상 속의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전통적인 소설 기법으로 서사화한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상에 대한 서술이 가져올 수 있는 서사적 긴장의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직업이나 성격을 독특하게 처리하는 수법 역시 이 계열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이야기들을 남성의 일상과 여성의 일상, 두 부류로 나눠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남성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로 박하익의 「꽃무릇 이야기」(동양일보), 김경락의 「피쉬테라피」(전남일보), 정영서의 「문」(영남일보) 등 세 편의 소설을 묶어 보았다.

「꽃무릇 이야기」는 명예퇴직 후 실직 상태에 있는 남성 인물을 화자로 삼았다. ‘나’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처형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미모의 처형이었지만 여고시절 성폭행을 당한 기억 때문에 평생 성에 대해서는 백치로 지냈다. 퇴직 이후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남편과 성적이 부진한 딸이지만 아내는 처형 앞에서 단란한 가족을 연기함으로써 심리적인 위안을 얻었고 ‘나’ 역시 그 가식적인 연극에 가담했다. 그런 죄책감을 안고 처형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나’는 의외에도 처형의 여성적인 욕망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처형의 감추어진 욕망을 계기로 새로운 남성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피쉬테라피」에서 ‘나’는 지방의 한 리조트에서 테라피 용도의 물고기 가라루파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암투병 중인 누나와 지방 리조트에서 사육사로 일하는 자신에게 미래를 맡기기 두려워하는 애인 수현이 그의 삭막한 일상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가라루파는 자꾸만 죽어 나가는 상황 속에서 사료와 비품을 빼돌려야 하는 직장에서의 생활 역시 환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가라루파를 꼬챙이에 꿰어 구워 먹는 주인공의 행동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응시켜 볼 때 이해될 수 있다. 치료가 필요한 부분은 각질 따위가 아니라 바로 그 절망을 겪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문」에서 친구가 운영하는 게임회사에 근무하다가 친구의 배신으로 돈을 떼이고 실직한 ‘나’는 포토저널리스트가 되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하쿠나마타타 게임에 빠져 있다. 스와힐리어로 ‘걱정하지 마’라는 뜻을 가진 하쿠나마타타 게임이 그 말뜻처럼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 대신 보험판매원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 아내는 매 끼니마다 ‘나’에게 꼬박꼬박 다섯 알씩 비타민을 챙겨주는데 ‘나’는 우연히 그것이 권장섭취량의 15배에 해당되는 양이고 과다 복용의 경우 전신마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가 ‘나’의 이름으로 들어 놓은 여러 종류의 보험을 떠올리는 순간, 초원을 향한 ‘나’의 욕망은 더욱 절실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게임에서 만난 은색등이가 알려 준 하쿠나마타타 게임의 세계로 통하는 환상의 문을 붙들고 있다. 이 환상을 드러내는 방식이 도식적이지 않은 세련된 것이어서 인상적이다.

위의 세 편의 소설이 남성 주인공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라면(그 가운데 「꽃무릇 이야기」와 「문」의 작가는 여성이다), 김동숙의 「매미 울음소리」(경상일보), 이근자의 「바닷가에 고양이 의자가 있었다」(경남신문), 오정순의 「즐거운 나의 집」(전북도민일보), 안준우의 「악어의 눈물을 위하여」(매일신문) 등은 여성의 일상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묶어 살펴볼 수 있다.

「매미 울음소리」는 아파트 단지의 주부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모티프로 취했다. 매미 소리가 한창 기세를 올리는 어느 여름날, ‘나’는 단지의 주부들 사이에 자신의 남편이 앞집 새댁을 추행한 혐의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새댁을 대하는 남편의 눈꼴신 행동에 질투가 일기도 했지만, 마음씨가 후덕하고 늦도록 아이가 없는 새댁을 동생처럼 대했던 터였다. 남편은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한다. CCTV를 확인해 봐도 누구의 말이 맞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는 새댁이 들고 있었다던 초록색 우산이 모니터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빌미로 새댁을 불임으로 인한 우울증 환자로 몰아간다. 결국 앞집은 이사를 가는데 그들이 떠나는 날 ‘나’는 열려진 베란다 창고 문 사이로 짙은 초록색 우산이 비죽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매미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거려야 할 것이다. 일상의 윤리감각에 내재된 맹점을 포착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바닷가에 고양이 의자가 있었다」에는 기면증에 걸렸던 한 주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 날 여자는 또렷한 정신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의 불안정한 생활로 인해 생긴 가족과의 거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떠오른 방법이 딸 모정의 뒤를 몰래 밟아 그동안 지워진 영역을 되찾겠다는 것. 그 결과 모정을 좇아간 남편의 가구점에서 직원이었던 미스최와 그들 사이에서 난 아들 모원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순간적으로 여자는 가족을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어 미스최에게 분노의 감정을 품지만, 막상 여자와 마주한 미스최는 여자가 원한다면 다시는 자신을 보지 않아도 되는 먼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 분열된 관계를 복원하여 각자의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과제가 여자와 가족 모두에게 부과되어 있다.

「매미 울음소리」와 「바닷가에 고양이 의자가 있었다」가 주부의 이야기라면, 「즐거운 나의 집」과 「악어의 눈물을 위하여」는 미혼의 직장 여성 이야기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즐거운 나의 집」의 화자인 ‘나’는 서른다섯 살의 커리어 우먼으로 남성용 속옷 회사의 광고부 팀장이다. 여관집 딸이었던 엄마가 오 년차 고시생이던 아버지를 만나 ‘나’를 낳았고 아버지가 떠나자 싱글맘으로 ‘나’를 키웠다. 그런데 ‘나’ 역시 임신 상태에서 동거하던 직장 후배 K로부터 결별을 통고 받는다. 아버지나 남자 형제 없이 자란 ‘나’의 콤플렉스가 결국 어머니의 운명을 반복하도록 만들었던 것일 터이다. 그날 엄마로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남자가 하숙집을 나갔다는 하소연을 전화로 듣는다. 이 소설은 모녀가 자신들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 보이고 있다. 엄마는 자존심을 굽히고 새로운 짝을 맞았고 ‘나’는 K의 짐을 박스에 담아 보내고 새 직장을 찾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비제의 ‘즐거운 나의 집’이 그 새로운 출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악어의 눈물을 위하여」는 한밤에 동물원에 침입해 악어 우리를 넘었다가 악어의 공격을 받아 심장 쇼크로 사망한 여성 J의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유서는 없지만 동물원 CCTV에는 악어 우리를 넘는 J의 모습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자살 사건으로 처리될 듯하던 이 사건은 김 형사가 J가 남긴 노트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그 전말이 밝혀진다. 그 전말을 하나씩 파헤쳐 나가는 김 형사의 수사 과정이 이 소설의 구성을 이룬다. 인지행동연구소라는 곳에 연구원으로 일하던 J는 실연으로 인해 처녀 보살을 찾았고 J는 보살 흉내를 내는 사기전과범이 내린 부적 처방에 적힌 악어 눈물 네 방울을 위해 동물원 우리를 넘었던 것이다.

이들 소설로만 놓고 보면, 남성 인물들의 일상이 주로 실직 등의 경제적인 문제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여성 인물들의 일상의 경우 관계, 특히 부부 관계나 연애 관계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시대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특징이라 하겠다.

 

 

3.2. 혼종성에 대한 인식의 편린들

 

일상적 의식의 외연이 확장되어 나가는 어느 지점에서 혼종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소설들도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강필선의 「인어공주」(전북일보)가 젠더의 혼종성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면, 정영효의 「달의 꽃」(광주일보)은 혼종된 네이션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의 편린을 담고 있다.

「인어공주」는 수족관에서 인어 캐릭터 역할을 하는 젊은 여성이 서술자로 등장한다. 함께 태어난 쌍둥이 오빠가 죽으면서 ‘나’는 아버지의 억압으로 인해 남성의 삶을 강요받았고, 그 결과 혼란스러운 성정체성을 갖고 자랐다. 남성적인 머리 스타일과 외모, 옷차림 등으로 인해 종종 오해를 받곤 한다. 수족관에서 같이 일하는 중년의 미혼남 김 씨의 구혼에 ‘나’가 대답을 머뭇거리는 이유도 그와 연관된다. 가발을 쓰고 ‘가짜 인어’ 역할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는 그러한 혼란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투영하고 있다. 그가 진짜 인어가 되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부산에서 교회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에 간 ‘나’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전도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만난다.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는 아버지.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수족관의 사장.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성정체성이 이해되는 것은 인어가 실재한다는 믿음만큼이나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가 요원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스로 만든 꼬리를 입고 바다에 몸을 담그는 주인공의 행동에는 그런 아득한 절망이 투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의 꽃」의 화자인 ‘나’는 원예치료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토피어리 강습도 다닌다. 몽골 승마체험 캠프장에서 만난 가이드 사라체첵을 잊지 못해 ‘나’는 다시 몽골을 찾아 그녀에게 구혼한다. 사라체첵은 몽골어로 ‘달의 꽃’이라는 뜻. 몇 달 뒤 인천공항에서 재회한 사라체첵은 이제 ‘나’의 아내인 중국 국적의 조선족 이명화가 되었다. 명화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특이하게도 물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었고, 마침내 어느 비오는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그 전날 뉴스에서는 북한의 수재 사건을 보도하면서 스티로폼 한 장을 붙들고 불어난 흙탕물 위에서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깡마른 소년의 모습을 배경화면으로 내보냈다. 명화의 고향 마을을 찾은 ‘나’는 그의 사연을 전해 듣는다. 탈북자로 강을 건넌 그는 그날 사망한 이명화라는 여성의 이름을 얻어 중국에 정착했지만, 불어난 물살 때문에 두고 온 아우 생각에 비만 오면 앓아누웠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명화, 사라체첵)는 달이 숨어 버린 밤이면 먹먹한 가슴으로 하늘을 보았던 것이다.

지방지의 당선작들에 나타난 혼종성에 대한 민감성은 주변부의 의식에서 항상 자유롭지 못한 지방성의 특징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 듯하다.

 

 

3.3. 지역성에 대한 애착

 

혼종성에 대한 인식의 편린들이 지방성의 간접적인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좀 더 직접적으로 지방성을 드러내는 소설들을 다음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중앙지 당선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의 고유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배길남의 「사라지는 것들」(부산일보), 이중근의 「무드내 건너 저 쪽」(국제신문), 오미향의 「은자의 나라」(한라일보) 등을 지방성에 기반한 이야기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부산을 배경으로 매우 선명한 주제 의식,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현실의 변화에 대한 저항의 심리를 펼쳐 보이고 있다. 미술관의 계약직으로 부산에서 활동했다는 임호라는 화가의 유작 기록과 글들을 정리하고 타이핑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시선을 통해 점점 더 중심을 향해 획일화되어 가는 세태가 비판적으로 포착된다. 미술관에서의 ‘나’의 작업을 매개로, 중앙 화단의 노대가들이 집시의 상인처럼 부산이라는 시장에 전을 벌이는 상황에 대한 임호의 비판이 삽입되는 것도 그 맥락이다. 유서 깊은 지방 서점은 차례로 문을 닫고 대규모 마트 때문에 동네 상점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그 곳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들은 낡은 앨범 속에 꽂혀 있던 기억들을 모두 빼앗긴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때 ‘나’와 함께 살았던, 동보서적에서 일하다가 며칠 전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은 그녀와의 술자리에서 모두가 떠나려고만 하는 도시에 남은 이들의 넋두리가 슬프게 흘러나온다. 지방적인 것이 사라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태도는 선명하지만 소설 속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주제와 직결되어 있어 이야기가 이념에 맞춰진 느낌이 없지 않다. 이 딜레마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이후 과제일 듯하다.

「무드내 건너 저쪽」의 배경은 제주도다. 의사인 ‘나’가 환자 문 할머니를 관찰하는 구조로 이루어진 이야기인데, 그 전반부는 치매로 인해 이런저런 소동을 부리는 할머니의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그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제주도 출신인 ‘나’는 할머니로부터 채시(저승차사), 헛갱이(재채기), 게틀레기(트림)라는 말을 처음 배웠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극단적으로 악화된다. 그 증상들을 더듬어 가던 ‘나’는 할머니가 4?3 사건으로 남편을 잃던 무자년 섣달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의 치매는 어쩌면 죽음을 앞두고 감당키 어려웠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찾아오는 바람에 일상의 기억이 밀려나면서 발생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잊혀진 역사의 상처를 다시금 떠올리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의식에서 밀려나 있던 우리 자신의 역사를 새삼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드내 건너 저쪽」이 역사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면 역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은자의 나라」는 혈육에 관한 이야기다. 부산 출신의 은자가 아홉 살 난 아들 동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식당이 소설의 주 무대. 그 곳에 세 들어 살고 있는 20대 후반의 백수 ‘나’가 은자를 관찰하고 서술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수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은자. 외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으면서 자신의 내력을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 은자를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의혹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은자와 살림을 합치고 싶어 하지만 거부당한 정 씨의 뒤틀린 욕망이 그 의혹과 호기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나’는 유창한 일본어로 전화 통화를 하는 은자를 목격하고, 다찌(일본 남자를 상대로 매춘하는 한국 여자) 출신인 그의 사연을 듣게 된다. 혈육인 동수에 대한 애정이 다른 모든 욕망을 무화시켰다고 할 만큼 아들에 대한 그의 본능은 강렬하다. 허울뿐인 동수의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건 것도 아들 때문이다. 하지만 찾아오겠다고 약속한 일본 남자는 연락을 끊어 버리고 은자는 앓아눕는다. 소설의 마지막은 식당 식구들의 걱정과 동수에 대한 모성애로 은자가 다시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지역이 어느덧 지역의 역사, 현실, 언어, 문화에 둔감해진 데 비해, 올해의 당선작들만 두고 보면 부산과 제주는 여전히 강한 지역성에 대한 의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유사한 주제를 내포하면서도 「사라지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모던한 스타일의 이야기 방식이라면, 「무드내 건너 저쪽」과 「은자의 나라」는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후자가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라지는 것들」은 그것을 보편화하여 중심과 주변의 대립적 관계로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성에 대한 소설적 탐구의 새로운 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3.4. 원형성의 몇 가지 양상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의 또 한 가지 경향은 일상성과 지역성이 미치지 않은 원형적이고 추상적인 무시간성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중심을 향한 욕망을 철회한 의식은 그 반대 방향의 원초적인 지대로 향하는 습성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김경나의 「비단길」(경인일보)과 최백순의 「냄새」(강원일보)가 이 경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비단길」은 국도변의 버려진 자동차공업사 자리에서 수박을 팔며 점을 치는 노인과 유랑하는 여성 ‘나’(소정)의 한시적인 동거를 그리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고향을 찾아온 소정이 수박점 치는 노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노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되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달리 무기력한 노인은 자신에게 매달리고 있다. 그러니까 노인과의 동거는 소정이 죽어서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의식 속에서 벌이는 대결이다. 하지만 이 대결은 싱거울 수밖에 없는데, 노인은 아버지의 이미지, 그러니까 가짜 아버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과의 관계를 일종의 의례처럼 치른 후, 다시금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사막과도 같이 고독하고 황폐한 길이지만, 그처럼 결핍되고 아픈 사람들이 걸어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단길’이다.

「냄새」 역시 계절과 낮과 밤은 있으되 역사적 시간은 희미한 무시간성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한여름의 시골 마을에서 지경을 비롯한 동네 청년들이 모여 쥐약을 먹고 죽은 개를 삶고 있다. 모두들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서 있지만 지경만이 알 수 없는 오기로 개를 삶아 먹는 일에 집착하고 있다. 청년들의 활동 무대가 학교 운동장이라면 장년층의 무대는 이발소. 타지에서 흘러온 이발사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여 인심을 얻었다. 지난겨울 지경은 머리를 깎으러 갔다가 술추렴 중인 장년들과 갈등을 빚고 이발사를 구타하여 상종 못할 놈으로 낙인 찍힌 바 있다. 지경만이 연신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친구들은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이발사를 데리고 와 먹을 수 있는지 감정을 의뢰한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지경의 오기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을 견디기 위한 최후의 수단일 것인바, 그러하기에 그의 충동을 향한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양관수의 「문을 뒤돌아 보다」(무등일보)의 인도라는 이국적 공간 또한 근본적으로는 원초적·원형적 성격을 가진 곳이다. 어린 시절 유치원의 좁은 수세식 화장실이 답답하여 줄곧 참았다가 집 뒤편 풀밭에서 배변을 보던 ‘나’. 소설 속에서는 그와 같은 행위에 어떤 환경적 요인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다만 생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공상은 뱀, 원죄 등의 신화적 상상력으로 치닫는다. 성년에 이르러서도 배변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나’는 정상적인 직장 생활은 하지 못하고 잡지사에 사진과 글을 엮어 주고 원고료를 받아 빠듯하게 살아간다. 잡지 기사를 위해 인도를 찾은 ‘나’. 화장터와 흙 냄새, 강물과 모래밭이 있는 그 곳은 낯선 이국의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바로 그 원초적인 공간을 닮았다. 현지의 어린 청년에게 속아 납치당했어도 오히려 그와 지내면서 ‘나’는 몸속의 응어리가 풀려 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세계 역시 금전과 욕망으로 얽힌 세속의 공간임이 드러나고 ‘나’는 그 곳으로부터 다시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오계자의 「음양괴석도」(동양일보)는 역사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데 최근 스타일의 팩션보다는 전통적인 역사소설의 문법을 취하고 있다. 흥선군 이하응과 기생 운영의 사랑을 소재로 운영의 속치마에 그린 흥선대원군의 난 그림 〈음양괴석도〉가 탄생한 사연을 그렸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역사소설 스타일의 대화와 서술의 문장에서 그 점이 확인된다. 이 역시 역사를 재현하는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원초적 시공간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한편으로 시차를 두고 중심의 소설적 경향을 흡수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심의 이야기들이 지나치거나 둔감한 부분들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그 나름의 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이 성숙되어 나가는 어느 지점에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가 해체되고 지역의 고유한 개성들이 다원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이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

 

 

4. 2011년 신춘문예 소설의 특징과 생각해 볼 문제들

 

최근 들어 신춘문예 당선작들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우리 소설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졌고 생산의 시스템도 훨씬 전문화된 상황에 기인한 탓도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 초기부터 재능을 발견하고 육성하는 시간이 더 요구되고 있고, 등단 이전 혹은 그 이후에도 체계적인 발전을 지원하는 상업적·제도적인 차원의 뒷받침도 튼튼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2011년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로부터 발원하는 도전적인 감각을 도입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시차적 관점으로부터 연유한 다양한 이야기의 생산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정형화된 기존의 신춘문예 스타일을 갱신해 나가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용적 차원에서의 한정된 변화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춘문예 제도의 획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룬 범위에 한정해도, 중앙지 일곱 곳, 지방지 열다섯 곳 등 모두 스물두 곳의 신문사에서 소설 분야의 신춘문예를 시행하고 있는데, 응모 분야와 형식에서 독자적인 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춘문예의 효시라고 이야기되는 1914년 『매일신보』 신년문예모집의 장르는 시, 문, 시조, 언문줄글, 언문풍월, 우슘거리, 창가, 언문편지, 단편소설, 화(畵) 등 10종목이었다. 1925년 동아일보의 첫 신춘문예 모집 장르 역시 단편소설, 신시, 가정소설, 동화, 동요 등이었고, 1928년 조선일보의 첫 신춘문예 모집 장르는 시가, 수필, 콘트, 회화, 동화, 동요, 일기, 자유화, 단편소설, 전설 등이었다.5) 그런 사실을 고려하면, 장르에 대한 보다 개방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 당선작인 정재민의 「미스테리 존재방식」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핸드폰 프로그램을 검증하는 일을 하고 있는 장현우의 시점. 그의 시점으로 소개팅으로 처음 만나 다섯 번째 만난 이후 갑자기 자살한 혜연과의 관계가 서술되어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혜연의 시점. 두 번째 이야기가 제시되면서 첫 번째 이야기의 성격이 갱신되는, 마치 서양 드라마의 문법을 보는 듯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적으로 중편 양식은 단편의 분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주제의식을 펼치는 양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장르적 문법이 시도되는 실험적 양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징후를 보여준다. 장편으로의 확장을 염두에 둔다면 단편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효율이 높은 생산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장르의 다양화뿐 아니라, 참여 주체의 확대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신춘문예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민들, 해외체류자들, 주부, 직장인들을 들러리로 소외시키지 않을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6) 그렇지 않으면 출판사와 연계된 잡지 중심으로 운영되는 문단의 상황에서 신춘문예는 문예창작학과나 창작합평모임 구성원들을 위한 마이너리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문장웹진 2월호》

 

 

 

 




1) 신춘문예 제도의 성립 과정에 대해서는 임원식, 「신춘문예 문단사적 연구」(조선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와 이재복, 「신춘문예의 문학제도사적 연구」(『한국언어문화』 제29집, 2006) 참조. 『매일신보』를 포함하여 1925년에 시작된 『동아일보』나 1928년 시작된 『조선일보』 신춘문예 역시 초기에는 안정적인 제도화에 이르지는 못했다. 신춘문예 제도가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은 1930년대 이후다. 신춘문예 제도의 공고화 과정에 대해서는 앞의 두 글과 박헌호, 「동인지에서 신춘문예로-등단제도의 권력적 변화」(『대동문화연구』 제53집, 2006) 참조.

 

2) 임원식의 논문 제2장 제2절 참조. 이 논의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동인지 게재, 단행본 출간, 잡지 투고 게재, 문학상 수상 등의 방식에 의해 작가로서의 인정 절차가 이루어진다.

3) 참고로 2001∼2011년 전국 규모 종합일간지의 연도별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들의 연령은 다음과 같다.

연도

경향

동아

문화

서울

세계

조선

한국

2001

부희령(37)

어떤 개인 날

노재희(28)

그날 저녁,

그는 어디로

갔을까

박현경(40)

섬 안의 섬

백가흠(27)

광어

최치언(31)

석탄공장이

있는 시에

관한 농담

이주옥(24)

남문석(34)

잃고, 묽고

희박한

2002

김계환(30)

카페,

바그다드

당선작

없음

김지현(27)

사각거울

정다일(41)

강물의

대화

신현대(26)

공어와 빙어

권정현(32)

가백현(40)

돼지

2003

백진(46)

무스타파

김나정(29)

비틀즈의

다섯 번째

멤버

당선

취소

임정연(36)

야간비행

염향(39)

숨은 띠

장혜련(30)

구멍

이정은(24)

독어

2004

허혜란(34)

내 아버지는

서울에

계십니다

허혜란(34)

주정미(45)

곤드와나

김효동(26)

호박

김미월(27)

정원에

길을 묻다

정영(34)

자양강장제

이우현(29)

2005

황정은(29)

마더

류은경(34)

가위

정찬일(42)

유령

우승미(31)

빛이

스며든

자리

기노(34)

오프라인

반수연(40)

메모리얼

가든

송욱영(36)

청혼하려다

죽음을

강요당한

사내

2006

유민(39)

베드

박상(33)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이민우(45)

가을의

자전거

김이설(31)

열세 살

이준희(25)

여자의 계단

박찬순(60)

가리봉

양꼬치

김애현(41)

카리스마

스탭

2007

유대영(40)

1520의

17

이은조(36)

우리들의

한글나라

서진연(38)

붉은

나무젓가락

황시운(31)

그들만의

식탁

김희진(31)

류진(39)

유응오(34)

요요

2008

당선작

없음

조현(39)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

정소현(33)

양장제본소

전기

홍희정(30)

우유 의식

전윤희(40)

우유

양진채(42)

나스카라인

진연주(40)

2009

현진현(35)

글렌 굴드

이야기

이동욱(31)

여우의 빛

황지운(27)

안녕, 피터

진경민(37)

호모

리터니즈

박화영(32)

공터

채현선(37)

아칸소스테가

김금희(30)

너의

도큐먼트

2010

연규상(43)

개가

돌아오는

저녁

김미선(47)

미로

김은아(43)

당신의

자장가

이은선(27)

붉은

코끼리

이유(41)

낯선 아내

박지영(36)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

이지원(29)

얼음의

요정

2011

백수린(28)

거짓말

연습

손보미(31)

담요

서현경(29)

나비

차현지(24)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

천재강(21)

켄타우로스의

시대

설은영(34)

집시,

달을 굽다

라유경(24)

낚시



4) 이 글에서 분석할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자의 명단 및 연령, 당선작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

경남

경상

경인

광주

국제

동양

동양

최백순(44)

냄새

이근자(49)

바닷가에

고양이

의자가

있었다

김동숙(42)

매미

울음소리

김경나(40)

비단길

정영효(43)

달의 꽃

이중근(51)

무드내

건너

저쪽

박하익(30)

꽃무릇

이야기

오계자(64)

음양

괴석도

매일

무등

부산

영남

전남

전북

전북도민

한라

안준우(39)

악어의

눈물을

위하여

양관수(55)

문을

뒤돌아

보다

배길남(36)

사라지는

것들

정영서(46)

김경락(31)

피쉬

테라피

강필선(26)

인어공주

오정순(?)

즐거운

나의 집

오미향(45)

은자의

나라



5) 이재복, 앞의 글, pp. 376∼383 참조.

6) 그 점에서 신춘문예는 아니지만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주제나 소재로 한정하고 분량도 그에 맞게 조정된 『한겨레21』의 손바닥 문학상은 그 한 가지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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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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