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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의 『어둠 속의 작업』

  • 작성일 2011-08-22
  • 조회수 1,557

 

[작가가 읽은 책]

 

유르스나르의 『어둠 속의 작업』

 

윤영수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의 『어둠 속의 작업』은 내가 좋아하는, 대할 때마다 매번 감탄하는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비평가보다도 더 가혹하게 자신의 작품을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보다 더 가까이에서 결함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 작품이 원했던 것, 이루어야 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유르스나르가 『어둠 속의 작업』 작가 노트에 써놓은 말이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으로 널리 알려진 그녀는 『어둠 속의 작업』을 20대에 착상하여 60대에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이름을 인용해 「제농」이라는 단편으로 발표했다가 다음에는 중편 「뒤레의 그림에서」로, 그리고 『어둠……』이라는 대하소설이 태어나기까지 총 40년이 걸렸다. 덕분에 독자 입장으로서는 그녀의 젊은 시절에 지녔던 찬란한 도전정신과 나이 듦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인생의 깊이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소설의 배경인 16세기 유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라스무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갈릴레오 등의 천재들에 의해 천문학, 의학, 화학 더 나아가 신학, 철학 등 제 방면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비록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들만큼 훌륭한 수많은 천재들이 새 이론을 실험하고 그 때문에 탄압을 받고 죽어 간 격동의 시대이기도 하다. 『어둠 속의 작업』은 그중 한 명이었을 종교인이자 의사, 연금술사, 아마추어 천문학자, 식물학자였던 제농이라는 한 지식인의 일대기다.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는 중세 신학뿐 아니라 16세기 의학, 해부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수학, 지리학, 식물학 등을 섭렵했다. 당시 유럽의 역사적 사건으로 빼놓을 수 없는 크고 작은 전쟁들과 페스트의 확산도 소설 속에 면밀히 배치했다. 가족과 사회관계를 버리고 순수한 지적 탐험을 위해 유럽과 중동지방을 방황하는 제농의 관심은 오로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다. 격변하는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한없이 잔혹해지고 비열해지는 인간들, 질병 앞에 마른 풀잎처럼 스러져 가는 나약한 인간들, 죽음의 공포와 당당히 싸우는 용감한 인간의 모습이 작품 속에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제농은 과학이라는 한 줄기 구원을 본다. 육신이라는 인간기계가 가진 불가사의한 신비, 정신이 깃들 수 있는 집으로서 완벽한 기능을 가진 인체를 해부하면서 그는 우주의 희망과 질서를 찾아낸다. 결국 배교背敎에다 무신론적 색채를 띠었다 하여 화형선고를 받은 제농은 교회 측이 내놓은 타협안을 거부하고 끝내 한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죽음을 선택한다. 이로써 작가가 의도했던 주제, ‘인간의 의미’가 완성된다.

“너에게 어울리는 그 어떤 얼굴도, 너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재능도 나는 네게 주지 않았다. 오, 아담이여, 그것은 네 얼굴, 네가 있을 자리, 그리고 네 재능들을 너 스스로 원해서, 바로 너 자신에 의해 획득하고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자연은 내가 정해 놓은 율법 안에 다른 종족들은 가두어 놓고 있다. 허나, 어떠한 테두리로도 한정 지을 수 없는 너, 너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너의 운명 안에서 네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했다. 나는 너를 이 세상 한가운데 세워 놓았다. 이 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좀 더 잘 성찰할 수 있도록. 또 나는 너를 천상의 생활에 어울리게도, 아니면 속물로도, 죽게 될 운명으로도, 불멸의 존재로도 그 어떤 틀에도 끼워 놓지 않았다. 그것은 네가 자유롭게 네게 적합한 형태를 너 스스로 완성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곤혹스럽다. 16세기 유럽이 새로 대두된 과학문명으로 종래의 신을 몰아낸 시기였다면 우리의 21세기는 첨단과학이라는 신 앞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해하는 꼴이다. 천억 볼트의 빛으로 온갖 사물과 생태를 샅샅이 훑어 온 과학은 급기야 자신의 주인인 인간에게 돋보기를 들이대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기껏해야 천 원 남짓하다고 코웃음을 치는가 하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역시 몇 개의 염색체와 서열의 차이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뿐인가. 과학은 인간 염색체의 배열을 읽어내어 각자의 미래가 어떠할지, 이를테면 누구는 어떤 병에 걸리게 되어 있고 말년에는 어떤 고생을 하다가 언제 죽어 갈 것인지 가차 없이 선고한다. 뇌와 장기에서 나오는 호르몬을 넣거나 뺌으로써 우리의 웃음, 울음, 그토록 불가사의하던 사랑과 고통의 떨림조차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떵떵댄다. 이대로 가다가는 배고픔을 인지하는 신경을 마비시켜 굶어죽으면서도 배불러 죽는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스스로 너무나 착하고 보람찬 삶을 살았다고 확신하며 영원을 꿈꿀 수도 있으리라. 과학의 서슬 퍼런 도마 위에 발가벗겨 누인 인간의 몸뚱어리, 21세기의 인간은 과연 행복한가, 불행한가.

분명한 사실은 살아 있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 자신보다 더욱 애틋한 우리의 후손들이 나고 자란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설령 곤혹스러움이나 부질없음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인간이야말로 가장 귀한 존재임을,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무언가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 있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삶의 행복과 비의를 엿볼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온갖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앞선 세대들이 인생에 대한 부질없음, 무의미함을 절감하고도 젊고 어린 우리에게 슬그머니 눙쳐버렸듯이. 혹 누군가가 그렇게 규정짓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한 사람의 실패에 국한됨을 강변하며.

과학만큼 인문이 발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 인간의 최고 지성으로 묻고 또 물어야 할 단 하나의 과제가 ‘인간, 그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발가벗겨진 우리의 몸을 가려 줄 소박한 옷 한 자락, 그것이 인문학의 꽃인 문학의 역할이라 정의한다면 과욕일까.

후세에 태어날 걸출한 작가에게 인간 경시의 이 21세기, 과학이라는 신 앞에 졸아들 대로 졸아든 인간은 훌륭한 주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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