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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누이

  • 작성일 2011-08-26
  • 조회수 914

 

매화 누이

 

조인숙

 

 

 

등장인물

전문가 - 문화재보존 전문가

장욱 - 오라버니

혜경 - 누이

철승 - 장욱의 친구

시동 - 그림 속 삽살개

계향 - 기생

원숭이 1, 2

 

무대

무대의 공간은 크게 1, 4장은 전문가의 공간이다.

2, 3, 5장은 오누이의 공간이며, 6, 7장은 전문가의 공간과 오누이의 공간이 공존한다.

 

 

 

1장

 

문화재보존 전문가의 작업실이다.

바닥엔 화문석이 깔려 있고, 커다란 좌식 책상이 있다.

책상 주위엔 전문가가 작업하는 다른 회화문화재들이 있다.

(5장의 장욱의 작업대가 연상되면 좋겠다.)

 

전문가, 오누이의 그림이 그려진 병풍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고 시동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때 조수, 음료를 가지고 들어온다.

 

조수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조수, 나간다.

 

전문가  (놀라며) 죄송합니다.

시동  아닙니다. 방해가 될 것 같아 늘 그랬던 것처럼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문가  ‘늘 그랬던 것처럼’이라니요?

시동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전 일이니 못 알아보시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예전만 못해서요.

시동 워낙 오래 전에 뵈어서 그렇겠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먼저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왔을 때 선생님께선 저 병풍에 눈을 감고 손을 올려놓고 계셨지요?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문가  아─! 그때 들어오셔서 말을 못 걸고 기다리셨나 봐요. 뭐─ 다 보셨다니 말씀드립니다만, 언제부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엔 의뢰받은 유물들에 담긴…… 뭐랄까…… 그냥 눈을 감고 손을 가까이하면 ‘아─ 이 그림은 어디가 아프구나’ 느껴지기도 하고.

시동 ─하고.

전문가  때로는 따뜻한 감촉일 때도 있고

시동 ─있고.

전문가 한없이 소름이 돋기도 하고. 작업을 시작하기 전 저만의 의식이랄까 뭐─ 그런 거죠.

시동 이 병풍에서도 뭔가 느끼셨는지요?

전문가 그게 좀 이상합니다. 그냥…… 참 서럽더라구요. 어떤 사연이 담겨 있길래 이리 슬플꼬─ 하는데, 꿈에서 깬 것처럼 손님이 오셨다는 소리가 들린 겁니다.

시동 그럼…… 선생님께선 인연의 시작과 끝은 어디부터 시작되어 어디서 끝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문가 예? 글쎄요…….

시동 지금 저 병풍의 주인은 어느 기업의 회장님이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참주인은 따로 있지요.

전문가 주인이 따로 있다니요?

시동 오래된 물건엔 사연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소중히 다루던 물건일 땐 그 마음이 더 커지지요.

전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시동 이런 마음은 아무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옛 것을 소중히 하시는 그 마음이 모든 것을 불러들일 때가 올 겁니다. 그리하면 ‘참주인’은 자신의 ‘참물건’을 알아보고, 모든 것들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되겠지요. 원래 주인의 뜻대로요.

전문가 그 말씀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인가요?

시동 잘못되었지요. 아주 오래 전 길을 잃었지요.

전문가 길을 잃다…….

시동 선생님께서 수리하고 계신 병풍엔 두 남녀가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삽살개도 한 마리 뒤따르고 있지요. 그리고 다른 병풍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절하며) 그 나머지 병풍을 찾아 주십시오.

전문가 (같이 절하며) 저는 그저 문화재를 수리하는 사람일 뿐인데요.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그게 참 위험한 발언입니다. 문화재로 인한 다툼은 물론 흔합니다. 진품인지 아닌지부터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작품이 넘어가느냐 하는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동 그저 믿는 마음이 지금은 중요합니다. 애써 의심하려 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시면 결국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겁니다.

전문가 좀 더, 제가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시동 모든 걸 알고 계시지만, 아직 기억을 못하시는 것일 겝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잊고 사셨던 게지요. 그도 아니라면, 마음 깊숙한 곳에 넣어 두고 문을 걸어 두신 게지요.

전문가 도대체가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시동 잘 아는 사이라서 그럽니다. 믿고 차분히 떠올려 보십시오.

 

시동, 문가의 책상 위에 강아지풀을 놓는다.

 

시동 분명, 병풍은 제 짝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놈들’이 올 겁니다. 분명 옵니다. 그러면 짝인지 알 수 있도록, 그림을 나란히 펼쳐 보십시오. 꼭 나란히 펼치셔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전붑니다. 보잘것없는 저의 힘은 여기까지입니다.

전문가 그러니까 병풍이 짝을 찾아오고, 아니, 그놈들이 병풍의 짝을 찾아오고, 그러면 그림을 꼭 맞춰 봐라-.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죠? 아니지. 그놈들? 그놈들이 누굽니까?

시동 그것은…….

 

시동이 귓속말을 하려는 듯 손짓하면, 전문가 상체를 숙인다.

 

전문가 그것은……?

 

시동, 전문가의 귀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전문가 쓰러지고, 시동 나간다.

 

조수, 들어온다.

 

조수 선생님? 손님은 가셨나……. 한데서 주무시면 감기 드시는데.

 

이불을 덮어 준다

그리고 책상 위의 강아지풀 한 다발을 책상 위의 병에 꽂아 두고 나간다.

 

암전.

 

 

2장

 

기생 계향의 품에서 장난치는 장욱이 보인다.

 

장욱 내 꼴이 우스우냐?

계향 예.

장욱 뭐가 그리 우스우냐?

계향 제 옷고름 잡고 노시는 모습이 우습지요.

장욱 내 말 곧이들으렴. 나 너 없이는 못 산다.

 

이때, 철승 들어온다.

 

철승 이보게. 장욱.

장욱 자네 왔는가.

철승 이런 꼴이나 보라고 나를 부른 겐가?

장욱 그러지 말고 이리 오게. 세상 근심 다 잊고 놀아 보세.

철승 자네에게 근심이라는 것이 있는가? 나는 도통 모르겠네.

장욱 나라고 근심이 없겠는가. 자네도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어리석구려. 죽을 줄은 알면서 왜 한바탕 놀 생각은 못하는가?

계향 이리 오시어요.

장욱 자네 그렇게 돌부처마냥 서 있을 겐가?

철승 지금 자네 꼴을 보고 있자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나을 듯하네.

장욱 내 긴히 전할 말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얼굴 풀고 좀 앉았다 가세.

 

철승, 마지못해 앉는다.

 

계향 작년에 담근 매화주입니다.

장욱 올해도 매화가 가득 피겠지?

계향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니 올해도 피겠지요.

장욱 그래. 니 말이 맞다. 내 맘을 알고 나를 살피는 건 너뿐이구나.

철승 그 말은 틀렸다고 보네. 자네를 살피고 자네를 기다리는 건 계향이뿐이 아니지.

장욱 얼굴 좀 풀게나. 내 꼴이 그리 한심한가?

철승 긴히 할 말이란 뭔가.

장욱 너는 나가 있거라.

계향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 옵니까?

장욱 내 이따 다시 부르마.

 

짧은 사이

 

계향 예.

 

계향, 나간다.

 

장욱 나는 다음 초여드렛날 한양으로 가네.

철승 알고 있네.

장욱 자네가 남기로 하여 나는 내심 놀랐네. 왜 그랬는가?

철승 나는 여길 떠나고 싶지 않네.

장욱 내가 맞춰 볼까? 내 누이 때문이지?

철승 뭐든 다 아는 듯 그리 말하지 말게.

장욱 나는 자네와 달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네.

철승 자넨 솔직하지 못하네.

장욱 우린 손바닥의 양면과 같지. 같으면서도 다르니까. 내 누이 혜경이와 평생해로 하고 싶은가? 그럼 그리 하게.

철승 자네의 허락은 필요 없네. 그리고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기도 하고.

장욱 그래 그 말이 옳아. 내 허락은 필요 없지. 하지만 마음 한켠에선 내가 걸리지 않는가?

철승 매일 술에 찌든 듯 기방에 들어앉아 노는 듯 보여도 자네는 똑똑한 사람이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짧은 사이

 

장욱 (정중한 태도로) 부탁하네. 내 누이를 부탁하네.

철승 하나는 정확히 말해 둘 수 있네. 내 마음은 변하지 않네. 하지만 혼례는 자네가 한양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네. 그것이 내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이네.

장욱 약속…….

철승 그럼 나는 이만 가네.

 

일어나 나가려는 철승에게,

 

장욱 그거 아는가? 나는 자네 마음이 변했으면 좋겠네.

철승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짧은 사이) 잘 다녀오게.

 

철승, 나가려다

 

철승 그거 아는가? 나 또한 자네 마음이 변했으면 좋겠네.

 

철승, 나간다.

장욱은 술을 마신 뒤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

 

장욱 (소리치듯) 그거 아는가. (혼잣말처럼) 그거 아는가. 이 내 마음 변했으면 좋겠는 건 바로 날세, 이 답답한 사람아. 어쩌지 못하는 이 마음 다른 이에게 줄 수만 있다면, 자네에게 다 줘버릴 수 있다면 내 다 줌세. 남김없이 다 줌세.

계향아. 어디 있느냐. 또 한판 놀아 보자꾸나.

 

암전.

 

 

3장

 

매화나무 옆, 누이 혜경이 앉아 있다. 한구석엔 시동이 말없이 누이를 따르고 있다.

 

혜경 오라오라 봄바람아 내울가 처녀 울렁이게 하는 봄바람아 오라오라 치마 가득 봄을 담아 소매에도 봄을 담아 내 방 깊숙이 가져와 호두상자 안에 담아 놓고 겨울 오면 한 움큼씩 꺼내 보려 하노니 오라오라 봄바람아 오라오라

장욱 집 안에만 있어 답답했지?

혜경 오라버니 오십니까?

장욱 아직 날이 찬데 왜 나와 있느냐?

혜경 오라버니께서 언제 오시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약주 드셨습니까?

장욱 미안하구나. 이젠 내가 어머니의 빈자리도 채워야 하는데, 네게 너무 소홀히 했어.

혜경 오라버니께 짐이 되는 거 압니다. 그게 더 죄스럽습니다.

장욱 말하는 걸 보니, 철이 다 들었구나. 시집 가도 되겠어─.

혜경 누가 저 같은 병신을 데려가겠습니까.

장욱 그런 소리 마라.

혜경 하지만 사실인걸요.

장욱 그럼, 내가 평생 데리고 살지─.

혜경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어쩌실 겝니까?

장욱 그게 무에 상관이라더냐?

혜경 얼굴엔 검은꽃이 피고, 손엔 주름만 가득할 것입니다. 그때 보기 싫다 내치실까 두렵습니다.

장욱 너는 이 오래비가 늙어 할아버지가 되면 보기 싫다 하곤 안 볼 셈이구나?

혜경 그런 말씀이 어딨습니까?

장욱 그런 게 아니면?

혜경 보았습니다.

장욱 무엇을?

혜경 대추나무집 할미가 자식도 못 알아보고, 아무데서 일을 보는 걸…….

장욱 그 할미가 노망이 든 게로구나……. 심성이 참 곱던 분인데 안됐구나.

혜경 동네 사람들이 늙으면 그리 된다 하였습니다.

장욱 꼭 그리 되는 것은 아니야.

혜경 그 할미 아들이 매질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장욱 몹쓸 것을 보았구나.

혜경 제 친어미도 정신이 나갔다 하여 그리 하는데

장욱 너와 내가 비록 태어난 뱃속은 다르나, 한 아버지의 핏줄이다. 내 너를 결코 남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거늘. 그게 혼자만의 생각이었더냐?

 

누이, 말이 없다.

 

장욱 그런 게야? 내 너를 버린 적이 없는데, 니가 너를 버리고 있구나.

혜경 부끄럽습니다.

장욱 부끄러워할 일이다.

 

사이

 

장욱 어릴 적 일들이 기억나는구나.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지 않았더냐.

혜경 그랬지요.

장욱 계집애가 내가 입는 바지저고리를 입겠다고 아침마다 울지 않았더냐.

혜경 신발 한 짝만 신은 채 오라버니를 쫓아간 적도 있지요. 어린 나이에도 제일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았을 겝니다. 그러니 오라버닐 그렇게 쫓아다닌 게지요. 늘 옆에 있고 싶었던 게지요.

장욱 그날 감기에 걸린 널 어떻게든 집에 두었어야 했는데. 늘 생각한다. 잊지 못한다. 그때 너를 잘 보살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혜경 그날 일은 모두 제 잘못이었으니, 다신 그런 말씀 하지 마셔요. 한 겨울에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따라간 것도 저이고, 얼음이 갈라지니 움직이지 말고 어른들을 모셔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는데도 움직인 것도 저이고, 물에 빠져도 침착하게 기다리라고 하셨는데도 발버둥 치다 다리까지 못 쓰게 된 것은 모두 제 잘못인 겁니다. 후회 같은 건 두 번 다시 하지 마십시오.

장욱 이제 니가 나를 보살피는구나.

 

장욱, 강아지풀로 삽동이(시동)의 코를 간질이면, 삽동이(시동)는 작은 재채기를 한다.

 

장욱 나도 그런 니가 아주 싫지만은 않았어.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니가. 그 뒤엔 늘 삽동이도 있었지. (사이) 업히려무나.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꾸나.

혜경 혹, 무겁진 않으신지요?

장욱 무겁긴─. 언제든 바깥이 그립거든 오래비 등에 오르려무나.

혜경 봄이 되면 땅도 부드럽지요─? 이렇게 오라버니 등에 업혀 있는 것이 좋아서 그런지, 제 발로 딛던 땅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사이)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제가 또 오라버니 마음을 무겁게 했지요?

장욱 그 조그만 것에 그리 걱정이 끊이질 않으니 어쩔꼬─. (사이) 그럼, 집으로 가는 길에 한 발 한 발 어떤 느낌인지 얘기해 주마. 어디, 걷지 말고 달려가 볼까?

혜경 넘어지십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장욱 (왼발을 디딘다) 어디 그럼. 흠─. 왼발이 디딘 곳엔 잔디가 새로 자랐구나. 어머니가 햇볕에 바싹 말려 만드신 면 이불 같구나─. 느껴지느냐?

혜경 또 얘기해 주셔요.

장욱 (오른발을 디디며) 어이쿠. 오른발 엄지 밑엔 작은 돌이 하나 있어. 이빨 사이에 깨 하나가 박힌 것 같구나. 얼른 왼발을 디뎌야겠다.

혜경 얼른 다른 발을 내미셔요.

장욱 (왼발을 디디며) 잔디며 흙이 참 부드럽구나. 귀지를 빼주실 때 베던 어머니 다리같이 푹신하구나. (사이) 어떠냐?

혜경 오라버니께서 그리 얘기해 주시니, 마치 제 두 다리로 땅을 디딘 것만 같습니다.

장욱 네게 얘기해 주고 보니, 봄의 땅은 어머님과 같구나─.

혜경 오라오라 봄바람아 내울가 처녀 울렁이게 하는 봄바람아 오라오라 치마 가득 봄을 담아 소매에도 봄을 담아 내 방 깊숙이 가져와 호두상자 안에 담아 놓고 겨울 오면 한 움큼씩 꺼내 보려 하노니 오라오라 봄바람아 오라오라

장욱 기분이 나아졌느냐─.

 

누이, 노래의 마지막은 흥얼거리다가, 오라버니의 등에 업혀 잠든다.

 

장욱 오라오라 봄바람아 오라오라

 

암전.

 

 

4장

 

전문가의 작업실.

1장에선 없던 원숭이 그림이 있다.

원숭이와 전문가 서로 신체의 일부분이라도 스치면 서로 거울처럼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다시 신체의 일부가 닿으면 풀린다. 꼭 이와 같은 방법이 아니라도 움직임을 사용한 ‘놀이’의 형태를 띠면 된다.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전문가의 온 신경이 귀로 집중되면 원숭이가 그림에서 튀어나온다.

 

원숭이 지금이닷!

전문가 너는!

원숭이 나 저거 흘렸어. 나 저거 가져가야 돼. 병풍!

전문가 병풍? 병풍!

원숭이 그럼 나 저거 가져가.

전문가 당신이 ‘그놈들’의 ‘그놈’!?

 

전문가, 원숭이를 잡으려다 손이 원숭이의 몸을 스치면

 

원숭이 당신이 ‘그놈들’의 ‘그놈’!?

전문가 뭐하자는 겁니까?

원숭이 뭐하자는 겁니까?

전문가 말장난이나 하고!

원숭이 말장난이나 하고!

전문가 이 사람이!

원숭이 이 사람이!

전문가 이─ 이─ 이─ 이놈!

원숭이 이─ 이─ 이─ 이놈!

 

전문가, 원숭이를 잡으려다 손이 원숭이의 몸을 스치면, 원숭이는 전문가의 안경을 훔친다.

 

전문가 어! 내 안경!

원숭이 안경? 안─경.

 

원숭이, 눈이 어지러워 잘 걷지 못한다. 전문가 그런 원숭이를 붙잡는다. 둘 이 서로 다투다가 원숭이가 전문가의 등에 업혀 전문가의 눈을 가린다. 전문 가, 원숭이를 떨쳐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둘 다 같이 휘청거린다. 전문가 의 등에서 뛰어내린 원숭이는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림에 조명 포커스 맞춰지면, 전에는 없던 안경을 쓴 원숭이가 보인다.

 

전문가 그놈─. 놓쳤다.

 

암전.

 

 

5장

 

혜경의 이부자리와 장욱의 작업대가 보인다.

포도 넝쿨이 그려진 이부자리가 깔려 있다.

머리맡엔 두 첩 병풍이 놓여 있다.

 

장욱 다 왔구나─.

 

누이를 자리에 뉘어 준다.

 

혜경 어! 못 보던 것입니다.

 

시동, 마당 한편에 편안한 자세로 웅크리곤 오누이를 바라본다.

 

장욱 어떠냐─. 마음에 드느냐?

혜경 오라버니가 그리신 겝니까? 그림 속 남자와 여자는 누구입니까?

장욱 너와 나인 게지.

혜경 삽동이도 있는데요.

 

시동, 오누이를 본다.

 

장욱 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니 안 그릴 수가 있더냐.

혜경 아버님께서 처음 삽동이를 집으로 데려오셨을 때, 상자 속, 작고 새까만 흙덩이가 ‘무언가─’ 하고 들여다보았지요.

장욱 (시동과 강아지풀로 가벼운 장난질을 하며) 그랬지─.

혜경 가만─ 보니 눈을 굴리면서 바들바들 떠는 삽동이가 있더이다.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런데 저렇게 의젓하게 자랐으니.

장욱 꼭 사람 대하듯 하는구나.

혜경 그럼요. 하나뿐인 제 친구인걸요.

장욱 믿음직한 친구를 두었구나.

혜경 그런데 그림 속 저희는 어디를 그리 가는지요?

장욱 (잠시 대답을 궁리하더니) 꽃구경 가는 길이다.

혜경 그림엔 꽃이 없는걸요?

장욱 꽃피는 봄이 오면, 이 병풍에도 꽃이 가득해질 게야.

혜경 오라버니두-. 그런 법이 어딨습니까?

장욱 기다려 보거라. 병풍 가득 매화를 그려 줄 테니. (사이) 매서운 추위가 아직 남아 있는 이른 봄에 혼자 피어 있는 매화를 보면, 매화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더구나. 겨울에 오며가며 보면 꼭 죽은 나무처럼 마르지만 해가 바뀌면 제일 먼저 꽃을 피우니 신통치 않느냐.

혜경 신통하긴 하나, 이른 봄, 짧은 해 지는 저녁에 혼자 피어 있는 모습은 너무 쓸쓸하더이다. 동네 아이들은 제 어미가 저녁 먹이러 다 데리고 갔는데, 혼자만 갈 곳 몰라 서성이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건 저뿐인지요.

장욱 매화를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느냐?

혜경 예전엔 싫었습니다. 너무 싫었습니다. 꼭 제 모습 같아 너무 싫었습니다. 헌데 지금은 좋아합니다. 많이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오라버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말씀하신 뒤론 제게도 제일 좋아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참 못났지요. 미련하지요.

장욱 그래. 참 못났구나. 미련하구나.

혜경 못난 동생을 두셨습니다.

장욱 내 그 못난 동생 얻은 이야기 해줄까? (사이) 아버지 손을 잡고, 널 데리러 가던 날이 기억나는구나. 어딜 가는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성을 내고 드러누우셨는지도 모르고, 따라나섰지. 한참을 걸었지만, 아버진 업어 주시지 앉았다. 늘 업어 주셨는데 말이다. 그 날의 아버진 여느 때완 달랐어. 어렸지만 그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걷고, 배를 타고 도착한 섬진강변은 너무 예뻤다. 온통 매화였어. 꽃 속에 내가 들어간 것 같더구나. 하지만 아버지껜 꽃도 보이지 않는지 먼 곳만 보며 걸으셨지. 그런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게야. 그래서 가만 봤더니, 어머니도 잃고 혼자 마루에 앉아 있는 니가 보였다. 매화 속에 니가 앉아 있었어. 그때부터 난 매화가 참 좋구나.

혜경 제 기억 속에서도, 오라버닌 매화 속에서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때 제게 오시면서, ‘꽃이 참 예쁘다. 예쁘다.’ 그러셨죠?

장욱 내가 그랬어? 아닐 게야. 그땐 니가 어려서 잘못 기억하는 게야. 널 보며 참 예쁘다, 예쁘다 한 게지.

혜경 또 놀리시는 겝니까?

장욱 놀리긴─

혜경 오라버니가 병풍 가득 꽃을 그려 주시면 사시사철 싱싱할 겝니다. 저는 압니다. (이불을 만지며) 포도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이불에 그려 주신 포도를 볼 때면 항상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

장욱 칭찬이 자자한 걸 보니, 오늘 기분이 좋은 게구나. 겨울도 지나갔으니 앞으론 자주 밖에 나가도록 하자. 그러니, 너도 더욱 기운내거라.

혜경 예─.

 

장욱 방을 나가려는데,

 

혜경 오라버니.

장욱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응?

 

누이, 말이 없다.

 

장욱 말해 보거라.

 

누이, 말이 없다.

 

장욱 말해 보래두-.

혜경 …… 자신이 없습니다.

장욱 무엇이?

혜경 오라버니와 꽃구경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제 육신은 마음이 원하는 걸 몰라주고 지쳐 가니, 오라버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런지 자신이 없습니다.

장욱 (기분을 바꿔 주려고) 그럼, 그림 속으로 꽃구경 가자꾸나.

혜경 오라버니두─.

장욱 네가 방금 그러지 않았느냐. 오래비가 그려 준 포도만 봐도 입에 침이 고인다구. 꽃이라고 다르겠느냐.

혜경 약속하셨습니다.

장욱 내 꼭 너와 꽃구경 가기로 한 약속 지키마.

 

오라버니와 누이, 약지 걸고 약속한다.

 

장욱 열 달을 품었다 내놓으니 그 정성 어디에 비길쏘냐 너도 나도 그리 세상에 나왔다- 어느 누가 귀하고 천한가 모두가 매한가지인걸 해가 뜨고 날이 저물듯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가을이면 추수하듯 나무 위 새들 지저귀듯 그 모든 것들 되돌아오거늘 이 한평생 밑져도 살아 보는 것이 어떠리

 

누이, 잠든다.

 

암전.

 

 

6장

 

전문가의 작업실과 오누이의 시대가 공존한다. 다시, 오누이의 시대는 장욱과 혜경의 공간이 분리되어 공존한다. 각각의 시대 속 인물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끊임없이 대화가 오가고, 교차되어야 한다.

 

전문가, 작업에 열중해 있다.

 

[현재]

시동 선생님.

전문가 오셨어요? 아! 그놈들이 왔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놈’이 왔었죠.

시동 만나셨습니까?

전문가 그런데 좀 이상하더군요.

시동 어떤 게 이상하던지요?

전문가 말을 하더군요.

시동 그게 이상하셨습니까?

전문가 이상하죠. 아주 이상하죠. 그런데 가만 생각하다 보니,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 나이쯤 되면 세상일에 둔감해지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마냥 천진해지는 건지 이해 안 되는 일이란 점점 없어집니다. 그러더니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시동 그러셨습니까.

전문가 아! 이상하다면 또 이상한 건, 두고 가신 강아지풀이 날이 지나도 시들지를 않아요. 가짜인가 싶어서 줄기 하나를 똑 부러뜨려 냄새를 맡아 보니 풀냄새가 나더군요.

 

전문가와 시동, 풀냄새를 맡듯 킁킁거린다.

 

전문가 아! 오늘은 그 참주인이란 분에 대해서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비밀이라면 굳이 들추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과거]

혜경 저는 괜찮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으신다 하셨으니 착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장욱 꽃신이라도 사다 주랴?

혜경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말처럼, 꽃신 사가지고 오신다 하곤 아주 안 오시려고 그러십니까?

장욱 그러면, 돌아오는 길 동네동네, 산등성 굽이굽이 잊지 않고, 그림으로 그려 오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머릿속에 가득 채워 오마─. 두고두고 그려 줄 게야─. 그 그림만 보고도 앉아서 천리안이 될 게야─.

혜경 제 걱정은 마시고, 가셔서 할 일에 신경 쓰셔요. 제겐 삽동이가 있으니.

장욱 그래. 삽동이가 워낙 영특해야 말이지. 그거 아느냐?

혜경 뭘요?

장욱 개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사람 같은 개가 있고. 사람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 저이는 전생에 사람은 아니었겠구나─’ 싶은 사람이 있더구나.

혜경 오라버니가 보는 세상은, 제가 보는 세상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장욱 그래?

혜경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려내시니, 오라버니 그림 속 모든 것들이 생명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병풍 속의 두 남녀도 생명을 얻었겠지요?

장욱 누구에게든 보는 것은 특별하지. 보는 것과 머릿속의 그림을 내 손이 큰 오차 없이 그려내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것이겠지. 각자의 눈으로 보는 것은 각각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혜경 그래도 전 오라버니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더 좋습니다.

장욱 그래? 그 말 참 듣기 좋구나.

혜경 봄이 오면 꽃으로 가득 찰 병풍이 어찌나 기대되는지─

 

[전문가와 시동의 대화가 한참 이어진 듯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점점 무너진다]

전문가 봄이 오면 병풍 가득 꽃으로 가득하게 해준다던 약속은 돌아와서 지키마.

장욱 내 그림이 나라님의 마음에 꼭 들었다고 하시니, 아니 갈 수 있겠니─

전문가 어느 분의 부름인데- 큰 걸음으로 달려가야 옳겠지─

장욱 내겐 큰 은인이자 스승이신, 조향 선생의 추천사로 나라님의 눈에까지 들었으니, 이는 가문의 큰 영광이 아니겠니─

 

오누이, 마주 웃는다.

 

시동 그렇게 급하게 서울로 가시었죠. 갑작스런 부름이었습니다.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전문가 너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장욱 너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혜경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동 그렇게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지요. (사이) 누이 걱정에 가능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내려오시는데─

장욱 역병에 걸렸습니다.

전문가 처음엔 병에 걸린 사람들을 한 곳에 가두더니, 결국엔 온 성문이 굳게 닫혔지요.

장욱 누구도 그 문을 들어오고 나가지 못했지요.

혜경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라버닌 오시지를 않고

시동 그 당시 오라버니를 대신하여 물심양면 누이를 돌봐 주시던 철승 도련님은 오라버니를 찾아오시겠다며 길을 떠나셨지만 역시나 소식이 끊겼습니다. 누이는 몸이 불편하니 일을 할 수도 없고, 옆 마을 늙은이의 첩으로라도 들어가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 동네 사람들 입으로 오간 뒤로, 누이는 어떤 사람도 집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참 어리석었습니다. 누이가 원하시니, 그게 다인 줄 알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은 건 접니다. 문 앞에 음식을 놓고 가거나 하던 사람들도 결국엔 아예 발길을 끊더이다.

장욱 그랬겠지.

시동 매일매일 그저 오라버니가 그려 주신 병풍만 보고 있었습니다.

전문가 그랬어?

시동 안타까웠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장욱 이러단 오도 가도 못한 채 거기서 죽겠구나 싶어

시동 사람들이 말렸는데도, 오라버닌 밤중에 몰래 길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밤. 깊은 산길을 힘겹게 지나는 장욱의 모습이 보인다. 전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먼 과거를 회상하듯. 장욱과 같은 모양으로 길을 걸어도 좋겠다.

 

누이, 병풍 앞에 앉아 그림 속 남녀를 보며 그대로 숨이 멎는다.

누이의 어깨 위로 오랜 세월이 쌓여 간다.

 

시동 아픈 와중에도 오라버닌 그림을 그리셨다고 합니다. 병이 커져, 길에 쓰러졌는데

전문가 누군가의 등에 업혀 어딘가로 옮겨졌지요. 깨어 보니 날 업어간 건 원숭이들이었어. 역병을 퍼뜨린 것도 그놈들이었지. 내가 무에 잘난 게 있다고 데려가누. 그림이 탐났다면 그저 내 손이나 잘라가 버리지. 사람을 무에 끌고 가─.

장욱 동물이 사람 흉내를 내기 시작하는데, 그래 봤자 모든 것이 흉내이지 제대로인 것이 있겠더냐.

전문가 그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니, 세상의 이치가 뭔지도 모르는 녀석들이 일을 벌인 게야. 헌데 이것들이 어찌나 고집이 심한지. 제대로는 못해도, 꼭 흉내는 내야 성이 풀리니.

장욱 나라님께 올린 것처럼, 원숭 대왕에게도 그림을 그려내라지 않니. 그래서 난 약속을 해버렸다. 어떻게 해서라도 봄이 오면 병풍 가득 꽃으로 채워 주겠다던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

전문가 (1장의 전문가가 연상되게 손을 내민다) 그래서 원숭골 대왕에게 매화 그림을 그려 주었다.

장욱 물감이라고 내게 주는데

전문가 신비한 약수였어. 그리기만 하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간 것처럼 색이 변해 가는데─

장욱 매화로 가득한 그림을 그려서 그 대왕에게 주었다. 그리고 풀어 달라고 했지. 한 번, 꼭 한 번만 누이의 얼굴을 보고 오겠다고 했지.

전문가 나중에 내가 그림을 찾으러 오겠다고. 다시 돌아왔을 땐 대신 내가 남고 그림은 언제가 되든 다시 가져가겠다고.

장욱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맡겨 두는 거라고─. 대신 내가 남겠다고.

전문가 그래서 동생만 만나고 다시 오겠다고 하곤 길을 떠났지.

장욱 하지만 내 숨은 거기서 끝났어. 하늘이 내 육신을 거둬가셨어.

전문가 천지의 이치를 내가 어찌 거스를꼬.

장욱 허나 조금만, 그저 조금만 시간을 주셨으면…….

시동 이제야 알겠습니다. 여즉 그것을 몰라 헤매고 헤맸습니다. 어찌하여 병풍이 원숭이들에게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장욱 거기 있는 동안, 그 매화는 꽃봉오리를 다문 채 절대 피지 않았을 게야.

시동 참주인이 아니니 매화가 꽃을 피울 리가 없지요.

장욱 그렇게 해서 나는 약속을 지키고, 또 다른 약속을 남겼다.

전문가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것이 최선이었다.

 

시동, 절하며

 

시동 이제야 그 병풍이 지금껏 그곳에, 그놈들 손에 있었던 이유를 알겠습니다. 오신다 하곤 왜 안 오시나 하면서 원망도, 미움도 많았습니다. 그리움도 컸습니다. 이런 모자란 마음들은 모두 용서하십시오.

 

암전.

 

 

7장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4장의 휘파람 소리와 달리 합창곡 같은 느낌이 든다.

 

전문가 왔구나!

원숭이 1 왜? 기다렸어?

 

원숭이들, 머리에 매화 병풍을 이고, 춤을 추며 전문가를 위협한다.

 

원숭이들 내 놓아라─!

전문가 뭐를 내놓으라는 거냐!

원숭이 1 뭐긴 뭐야! 너가 갖고 있는 그거!

원숭이 2 우─ (심호흡을 하며 몸을 크게 부풀린다) 우리 원숭골 대왕님의 머릿병풍을 내놓아라!

원숭이 1 옳거니! 저거다!

원숭이 2 넌 약속을 어겼다!

전문가 줄 수 없다.

원숭이들 뭐라고?

전문가 이놈들! 이건 이미 임자가 있다!

원숭이 1 이건 우리 대왕님의 것이다!

원숭이 2 우리 대왕님의 것이다!

전문가 이게 너희 원숭이 대왕 것인지 어찌 아느냐?

 

원숭이들이 대꾸를 못하자

 

전문가 어찌 아느냐 물었다.

원숭이 1 내가 안다!

전문가 어찌 척 보고 알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이걸 그린 사람을 알고 있다.

원숭이 1 그걸 그린 사람은 바로 너니까.

전문가 나라고?

원숭이 2 그래 너!

원숭이 1 모른 척 마라. 어서 병풍이나 내놓아라.

전문가 너희와 약조한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원숭이 2 그럼 너는 누군데?

전문가 나는 나지.

원숭이 1 너는 너지.

전문가 그래 나는 나다.

원숭이 2 그 너가 바로 니가 말하는 ‘나’다.

원숭이 1 넌 약속을 어겼어. 너가 대신 남기로 해놓곤. 우리가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으니, 그 약속은 그때 끝난 거야.

원숭이 2 병풍은 우리 것이 된 지 오래라구!

전문가 그렇다면 증명해 보여라. 정말 너희 것인지.

원숭이 1 (병풍을 가리키며) 저것 보아라! 오른쪽 테두리가 크게 갈라져 있지 않느냐─. 우리가 떨어뜨렸을 때, 생긴 것이다.

전문가 너희들 말이 사실이라면!

원숭이들 사실이라면?!

전문가 내가 갖고 있는 병풍과 한번 나란히 맞대 보자.

원숭이 1 수작부리지 마라.

전문가 이 병풍이 너희들이 떨어뜨린 그것이 아니라면 대왕님께 더 혼날 텐데─.

 

원숭이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더니 자신들만의 용기를 북돋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원숭이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일만 년을 살고도 삼천 구백 년

세상천지가 요동치던 그때

원숭골 대왕님께선

하늘에서 나무를 타고 내려오셨어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원숭골 대왕님께 대항해 온 인간들

너희 종족은 우릴

불타는 용암 물에 밀어 넣고

승리를 부르짖었지

우리의 엉덩이가 빨갛게 된 그날

우리의 심장도 빨갛게 된 거야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리곤 돌연 전문가의 병풍을 가져가려고 한다. 전문가와 원숭이들 서로 상대의 것은 뺏고, 자신의 것은 뺏기지 않으려 하다가 두 병풍이 붙어버린다.

 

원숭이 1 옳거니!

원숭이 2 찾았다!

 

이때, 첫 번째 오누이와 삽살개가 있던 병풍에서 시동이 나와 원숭이들을 제압한다.

 

시동 이놈들!

원숭이 1 우릴 속였구나─.

원숭이 2 속았다!

 

원숭이들, 전문가와 시동 주위를 빙빙 돌다 결국 포기하고 물러간다.

 

시동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큰 분의 뜻에 따라, 저는 그저 이곳으로 잠시 올 수 있었을 뿐입니다. 자, 이걸 받으십시오. 나머지 병풍을 찾았으니, 이젠 이것이 지켜 드릴 겁니다.

 

시동, 강아지 모양 토우를 전문가의 작업대 위에 놓는다.

 

전문가 이것이 원숭이들을 쫓은 건가요?

시동 이것만 있으면, 저놈들이 다시 올 일은 없을 겝니다.

전문가 정말 다신 안 올까요?

시동 옛부터 견원지간이라 하지 않습니까. 원숭이들은 자기들이 병풍을 잃어버렸으니, 자기들 대왕에게도 아무 말 못할 겝니다. 지금쯤 원숭골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서 제 집 주위나 빙빙 돌겠지요.

전문가 그놈들 무서운 것도 무서운 거지만 냄새가.

시동 그것이 바로 역병의 흔적이자, 근원이지요.

전문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과연 제가 잘해 낸 건지 모르겠네요.

시동 아주 잘하셨습니다.

 

사이

 

전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하지만……. 사람은 아니시죠?

시동 이제 다 아시지 않습니까? 연이라는 건 쉽게 맺어지지 않으니 쉽게 사라지지도 않을 겁니다. 병풍 두 개가 모여 하나가 됐으니 이제 됐습니다. 앞으론 선생님께서 잘 지켜 주십시오. 옛 것에 귀 기울이는 그 마음, 잊지 마십시오. 그 마음이 저를 불러낼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 (1장의 눈을 감고 그림에 손을 올려놓는 행동을 취하며) 나만의 의식이었는데, 들켜버렸으니─.

시동 마지막으로 제 청 하나만 들어 주시겠습니까?

전문가 청이요?

시동 (강아지풀을 내밀며) 한 번만 간질여 주십시오. 이렇게요. (재채기를 한다.)

전문가 제가요?

시동 예─. 망설이지 마시고, 이렇게─

전문가 이렇게─

시동 (재채기가 나오려는데) 예─ 그렇게─! (크게 재채기를 해버린다.)

 

시동과 전문가, 웃는다.

 

전문가 (강아지풀을 흔들며) 이것이라면야 언제든지라도 다시 오십시오─.

 

전문가와 시동 마주보며 웃으면,

전문가의 작업실과 병풍 속 오누이의 세계가 동시에 실현된다.

 

장욱 얘야, 이제 길이 보이는구나.

혜경 봄의 땅은 어머니와 같다고 하셨지요?

장욱 그랬지.

혜경 정말 그러합니다. 겨우내 단단히 얼어 있던 땅이 이렇게 부드럽다니요. 그 거친 것에서 이렇게 파란 것을 내놓다니요. 이는 정녕 어머니와 닮았습니다.

장욱 그렇고말고.

혜경 제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다면, 삼신할미께 매일 기도할 겁니다.

장욱 무엇을 매일 빌 게야?

혜경 이쁜 오누이를 한 뱃속에서 낳게 해달라구요. 진짜 오누이가 되게 해달라구요.

 

사이

 

장욱 난 지금도 참 좋구나.

 

매화꽃잎, 흩날리기 시작한다.

 

혜경 너무 좋습니다!

장욱 그리 좋으냐?

혜경 예.

장욱 얼마나 좋으냐?

혜경 꿈에라도 이보단 덜 아름다울 겝니다. 이런 곳에서라면 평생 살고 싶습니다.

장욱 그럼, 평생 살자꾸나.

 

3장에서 보이지 않던 매화가 병풍 속에 가득하다.

무대 위, 오누이는 매화 만개한 길을 걸어 소풍을 간다. 그 뒤를 시동이 따라간다.

병풍그림 속엔, 남녀의 뒤에 삽살개 한 마리가 뒤따르고 있다.

 

전문가 거기 계신 걸 못 알아봤습니다.

 

시동, 오누이를 따라가다 고개를 돌려 전문가에게 웃음을 보이곤 오누이를 뒤따른다.

 

암전

 

《문장웹진 9월호》

 


 

창작 노트
 
 
 
찰나와 억겁에 대해 생각한다.
생(生)이 이번 한 번뿐이라면, 좀 억울하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조급하게 때론 느긋하게 만든다.
 
진심과 본심에 대해 생각한다.
내 안의 모든 말들을 꺼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마음은 또 다른 말들을 만들어낸다.
지금 전하지 못하는 마음, 지금은 할 수 없는 말들로 아파온다.
 
그렇게 아파하면서 쓴 글이다. 그러고 나니 심하게 앓고 난 뒤처럼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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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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