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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 작성일 2012-01-27
  • 조회수 607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산문부문]

 

 

카메라

 

성민규

 

 

 

 

  나는 휴대폰 카메라를 한 시간째 붙들고 있다. 사십오 도를 어림잡아 카메라를 들고, 어디서 들었던지 문득 떠올라 턱도 살짝 당기고, 입꼬리가 처지지 않도록 무던히 애를 쓰며 찍은 수십 장의 사진 가운데서 앨범에 저장된 것은 단 두 장이었다. 힘들어 보이고, 경직되고, 아파 보이는, 아니 그렇다고 느껴지는 다른 사진들과 달리, 그 두 장에서는 애쓴 만큼의 웃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내게 관심 없는 잘 빠진 그녀처럼 도도했다. 내가 ‘담담하게’ 그를 대했을 때 그는 감정 없는 눈으로 무심히 나를 바라보더니, 다만 찰칵, 짧게 반응하며 자신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카메라가 다시 한 번 찰칵, 소리를 내기 전까지 그가 나에게 건넨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지만, 나는 모두가 각자의 읽을거리를 들여다보는 도서관에서 펼치지 않을 수 없는 책을 펼쳐들 듯 당연하게, 촬영 화면으로 되돌아가는 휴대폰 버튼을 한 번 누르고는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카메라는 침묵으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네가 담담한지는 모르겠고, 너는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그의 침묵은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그럴수록 그의 눈앞에서 얼어붙는 속마음의 빙산 조각들을 감추고, 더 활력 있게 보이려고 온 신경을 얼굴로 집중시켰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한 두 장의 사진은 한 시간 동안 카메라가 내게 건넨 단 두 번의 호의였다.

 

  나는 심장 없는 카메라의 마음을 눈치 챘고, 머리 없는 카메라의 생각을 읽어냈다. 말하자면, 뜻 없는 뜻을 읽어냈다. 카메라는 아직은 네 표현에 만족할 수 없다, 고 소리 없이 말했다. 색깔 없는 그의 눈에 똑바로 맞서려던 처음 마음과 달리, 나는 차츰 나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티브이 예능 소리에 부러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기도 했고, 문득 그는 호의도 없지만 적의도 없다는 생각에 베풀 듯 웃기도 했으며, 애쓰는 내 모습이 애처로워 다시 ‘담담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질 않는다,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무거워 보인다, 하고 답하고는 다시 침묵했다.

 

  카메라와의 대화에서 제 풀에 지친 나는 약간은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덧씌워짐 없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난 후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살피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내심 내 가장 편안한 표정에서 의외의 수확이 있기를 바랐다. 바로 그 이유로 나는 내 마지막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휴대폰 카메라를 침대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사진 속 그 사내가 지친 눈망울과 흘러내리는 입꼬리로 나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는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카메라에게 자리를 빼앗겼던 고요가 다시 방 안 가득 파고들어왔다. 집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된 지 오래였다. 아빠는 일터와 술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에 들렀고, 고향 마을 언덕배기에 누워 빛 박힌 우주를 바라보기 좋아하던 엄마는 일찍이 별이 되었다. 엄마를 닮아 하늘을 좇던 형은 서울 한 대학의 천문학과에 입학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창밖의 하늘은 천천히 잠들어 가고 있었다. 형은 엄마가 떠난 후부터 하늘 길을 헤매고 다녔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내가 야간자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형은 수능 공부를 하다 말고 곯아떨어진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기 일쑤였다. 형은 내가 지친 기색으로 방으로 들어와도 고개를 들고 하늘만 보고 있었고, 내가 벗다 만 교복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삼각 김밥으로 허기를 달랠 즘엔 고개를 내리고 문제집에만 잠겨들었다. 그러면 나도 간간이 졸린 한숨만 입밖으로 뱉어내며, 디디고 선 방바닥 아래로 온갖 현재 아닌 것들만 내려다보았다. 우리에게 우리의 방이란, 하늘과 지하를 품은 거대한 침묵의 대화 공간이었다.

 

  대학교는 우리의 방보다 수만 배쯤은 넓은 공간이었지만, 하늘과 지하 대신 눈앞을 품고 있었다. 오랜 기간 내 방 안에서의 대화 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그래서, 눈앞을 바라보는 일이 낯설고 무서웠다. 내가 눈앞을 바라보려 무던히도 애를 쓰며 이따금씩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내 방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자주 마주치곤 했는데, 그건 카메라였다.

 

  올려다볼 위도, 내려다볼 아래도 아닌 정면을 품은 대학교 안에서, 나는 나처럼 정면 아닌 곳에 익숙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도 내가 그들에게 그랬듯 나에게서 무언가를 눈치 챈 듯했고,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들 중에는 고개 숙인 대화 방식을 대학교 사람들에게도 고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주치면 인사하지만 마주치지는 않으려는 누군가를 대할 때만 되면 풋사과처럼 덜 익은 불안감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그들 사이로 ‘아주 환한’ 미소와 더불어 카메라가 습관처럼 불쑥 등장하곤 했다.

 

  나는 대학교가 내 방 같았으면 싶었지만 내 방을 잊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땅 아래로 깊게 남은 나의 잔재가 들킬까 겁이 났던 나는, 앞을 보고 지상을 걷는 사람들이 좋으면서도 두려웠다. 좁혀지지 않는 몇 발짝의 거리를 두고 그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 사이로 카메라가 나타나서는, 웃으라 했다. 나는 카메라가 점점 더 신경 쓰였다. 카메라는 간격의 사이로만 치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내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카메라가 끼어들 만큼 넓은 틈새는 없었지만, 그들 가운데는(그들도 나처럼 지상을 걷는 이들이 두려우면서도 좋았던 모양인지) 틈새 없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스스로 카메라를 눈앞으로 가져다 놓고 굳이 맞은편에 누군가 설 자리를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카메라는 ‘사이로 치고 들어오기도’ 했지만, ‘사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친구들과 나 사이에도 카메라가 들어설 만한 틈이 생겨 가는 것을 느꼈다.

 

  발바닥 아래 지하로 뻗은 내 뿌리를 감추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환한 웃음이었다. 침묵에 대한 해석을 마쳤을 때의 가장 강력한 무기도 환한 웃음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침묵을 해석했다. 대개는 마무리가 긍정적이지는 않은 해석이었다. 사람들이 침묵할 때마다 내 방을 들킨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눈앞을 품은 방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내 방을 알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반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나도 그들인 척했다. 이후 그들의 침묵에는 이면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을 땐, 의중 없는 침묵을 ‘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침묵에 그림자가 없다고 선뜻 믿지 못했고, 그래서 그것이 내 발 아래로 스며 들어온다고 느껴질 때마다 숨멎음을 숨긴 웃음으로 답했다.

 

  별이라고는 하나도 남김없이 달빛 뒤편으로 피신한 깨끗한 밤하늘에서, 나는 세 개의 별을 찾다가 잠들었다. 하나의 별은 내가 잠든 사이 나를 다녀갔고, 하나의 별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고, 하나의 별은 오전 일찍 내 방에 나타났다. 형이었다. 형은 서울로 떠날 때와 똑같은 모양의 커다란 짐가방을 책상 앞에서 틱 놓아버리고, 내가 누워 있던 침대에 몸을 늘어뜨렸다. 서울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있냐고 묻기도 전에 형은, 놀랐제, 동생아, 하더니 씩 웃었다. 밤하늘의 어둠을 담고 떠났던 형의 눈엔 별빛의 환함이 담겨 있었다. 형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데 지쳤다고 했다. 지친 자신이 지쳤다고 느껴질 때부터, 서울에 올 때 무언가를 놓고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니 임마, 사진 하나 찍자.”

 

  형이 별안간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 많은 사진들 중에 니 사진이 없드라.”

 

  형이 휴대폰 속 사진들을 내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사진 속 형과 형 주변의 사람들이 찍힌 그 사진들에는, 눈은 그대로 두고 웃었다거나, 한쪽 입꼬리만 웃었다거나, 눈동자의 검은자위가 아주 조금만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웃는 무서운 눈으로 웃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카메라를 향해 애쓰듯 웃어 보인 사람들이 군데군데서 보였다. 형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수업은 우짜고?”

  “휴학했다. 이제 집에 있을 끼다.”

  “학비랑 기숙사비 낸 거는 우야고? 학기 중에 이래 와 갖고 뭐할라고?”

  “아따, 참 내, 니 사진이 없드라 카이까네.”

 

  형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양손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쥐고는, 내 얼굴 앞에 가져다댔다. 나는 어제 한 시간 동안 사진 촬영을 연습한 내가 그 전까지의 나보다는 좀 낫다는 듯, 은근한 자신감으로 렌즈 앞에다 대고 환하게 웃었다.

 

  아마 수천 분의 일 초쯤 되는 듯한 찰나에 형은 나의 느낌을 느낀 것 같았고, 나도 형의 느낌을 느꼈다. 나는 웃음을 거두었고, 형은 카메라를 배꼽 아래로 탁 내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나는 내 속에서 어제까지의 카메라를 지웠고, 형은 ‘앨범에 든 사진들 다 지워야겠다’고 했다. 형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를 기다렸다. 어제 저녁 실패한 수십 장의 내 사진들을 떠올리고, 성공한 두 장의 내 사진들을 떠올리고, 조금 전 형의 휴대폰 앨범 속에서 본 사진들을 떠올리자, 어쩐 일인지 혐오감 섞인 신경질이 났다. 찰칵. 형은 잔뜩 인상을 쓴 사진 속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내 사진을 보고 나도 웃었다. 형이 환한 얼굴로 저장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기똥차게 찍힜다.”

 

《문장웹진 2월호》

  

 

 

 

   수상소감 / 성민규

 


불안과 공허 속에서 시도때도 없이 가슴이 주저앉던 날들이었습니다. 기대를 걸었던, 용기 냈던 수많은 것들로부터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갖가지로 외면 받던 한 해였습니다. 돌아보면 좋은 발판이 될 한 해일 거라, 꺾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새해부터는 그만 발판이기를 바랐습니다. 거창한 도약을 바란 것은 아닙니다. 소소한 행복, 그만큼만 바랐습니다. 비록 선택한 고립이지만, 누군가의 일상이 저의 판타지였습니다.

정진을 기대한다. 막막한 밤하늘을 걸으며 누군가 내게 별처럼 그렇게, 한 마디만 속삭여준다면 해는 늦게 떠도 좋다, 하늘에는 낮도 찾아온다는 기대만으로도 좋다, 밤하늘에 홀로 있는 것만 아니라면 잠들지 않겠다, 제 심정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심사평을 읽어보았습니다. 정진을 기대한다. 두 시인께서 제게 그렇게 속삭여주셨습니다. 새해는 아마 그만 발판일 것 같습니다. 일상을 지내다가 문득 제 가슴 확인했을 때, 심장이 제멋대로 주저앉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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