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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

  • 작성일 2012-01-27
  • 조회수 1,444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보들레르

 

장성호

 

 

 

 

이 감상문은 『보들레르의 수첩』(문학과지성사)을 바탕으로 썼으며,

『악의 꽃』(밝은세상)과 『파리의 우울』(민음사)을 참고로 하였다.

 

 

 

  방탕,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를 논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엄청난 낭비벽과 창녀 잔 뒤발과의 오랜 애정행각 등 실제로 그의 인생은 방탕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했다. 또한 여기서 나는 그런 사실들을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샤를 보들레르라는 인간에 대한 인상이 너무 방탕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보들레르가 현대에 와서 재조명됨과 동시에 그를 조금 더 주목받게 하려는, 일부 출판사의 상업적인 선전 때문이라고 본다. 보들레르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극적인 요소를 얻기 위해 광(狂)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시킨 것이다.

  그의 산문과 시들로 유추하여 보건대, 보들레르의 글을 만든 것은 문학적인 갈망과 절실함이었다. 방탕이나 광기는 그것들의 일부 혹은 부산물일 뿐.

 

 

 

  (등단이 하나의 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든 등단이라는 것이 그들이 모르고 있는 이전의 수많은 데뷔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중략) 성공이란 이전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쳤던 작가의 갖가지 역량이 산술적 비율에 의해 드러난 결과다. 즉 수많은 작은 성공들이 서서히 결집된 것이기에, 이 안에서 우연성 같은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중략) 만약 그대가 불운을 맛보고 있다면 당신에게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 ─ 등단시기의 행운과 불운에 관하여 中」

 

  보들레르를 생각할 때, 술에 취한 한 남자가 광기의 힘을 빌려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했던 독자라면 이런 글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자신의 글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냉정했었다. 시기상으로 이 글은 보들레르가 막 등단을 했을 때 발표되었고, 당시는 그의 낭비벽이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 면에서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는 보들레르가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경계하기 위해 썼던 글로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산문에서는 그의 문학관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즉,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적어도 명예라도 챙겨야 한다. (중략) 사람들이 한밑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숭고한 감정에 의해서일 뿐이다.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급료에 관하여 中」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들레르는 아버지께 받은 유산의 반을 몇 년 안에 탕진할 만큼 낭비벽이 심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 탓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 보들레르는 대체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이는 그가 대박을 노리며 제작 중이던 연극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당시 인기배우였던 이폴리트 티스랑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허락하신다면 당신께 제가 벗어나게 되면 홀가분할 어떤 일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일이란 게 어찌 보면 거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중략) 집필 중인 원고들, 그러니까 하찮고 저주받은 원고들이 내 손에서 질질 늘어지고 있기에, 며칠 더 작업을 하려면 책상을 뜰 수가 없습니다. (중략) 그런데 저는 더 이상 돈이 한 푼도 없답니다. 요즘처럼 죽 치고 있을 때면 20 내지 25프랑만 있으면 일주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당신의 주머니 사정이 너무 곤란하지 않다면, 분명 2월 초에는 이 돈을 즉시 되돌려드릴 것입니다.

 

「보들레르의 백일몽(白日夢)이었던 연극편지, 이폴리트 티스랑에게 中」

 

  이미 그의 주머니 사정은 작업 동료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만큼 나빠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즉,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적어도 명예라도 챙겨야 한다. (중략) 사람들이 한밑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숭고한 감정에 의해서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문장에서는 보들레르가 마치 글로써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이것은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문학인으로서 궁핍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의 결연함과 비장함이 드러나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필자의 생각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듯 그는 급전을 구하는 편지에서 역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번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할 때 저의 주된 관심사는 ‘이 연극 주인공이 어떤 계층과 어떤 직종에 속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저는 단번에 둔감하고, 저속하고, 거친 직업인 톱으로 통나무를 켜는 벌목공을 골랐습니다. (중략) 만약 우리가 무대 위에 일터를 재현한다거나 또는 제가 몹시 원하는 바대로 3막에서 서정적 음담패설이나 풍자 가요, 겨루기 광경을 전개한다면 특히나 멋진 연극적 효과를 주리라고 기대되는 노래입니다. (후략)

 

「보들레르의 백일몽(白日夢)이었던 연극편지, 이폴리트 티스랑에게 中」

 

  그는 또한 뛰어난 유머로 문학청년들에게 당부한다.

 

  그러므로 결코 빚쟁이를 두지 말라. 필요하다면 빚쟁이들이 있는 척만 하라.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빚쟁이에 대하여 中」

 

  저 세 문장만 보았을 때는 당시 보들레르가 처해 있던 상황이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들레르가 20살이 되었을 무렵, 가족들은 그의 방탕한 생활이 걱정되어 그를 인도행 배에 태워 보내기도 하였으며, 그의 법정 후견인 노릇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의견은 좋은 것이었을지 모르나, 보들레르는 이 시기, 엄청난 심리적 불안을 겪는다. 그의 이런 감정은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흔히 뱃사람들은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게으른 동행자인 양 뒤쫓는 바닷새를,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자는 서툴고 수줍어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가련하게 질질 끌고 가네.

 

  날개 달린 이 유랑자, 얼마나 서툴고 어색한가!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우습고 추한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 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뚝절뚝 하늘을 날던 불구자 흉내를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알바트로스, 악의 꽃」

 

  자, 이제 ‘빚쟁이에 대하여’에서 발췌한 문장과 위의 시를 비교해 보라. 산문에서 발췌한 문장들은 ‘알바트로스’와는 다르게 현실에 대해 달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은 절대 아니리라. 자신의 내부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삶을 향한 끈질긴 의지가 없었다면 더욱더.

  다음으로 발췌할 산문은 보들레르의 의지와 정신력,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모랄의 편지에서 시란 고고한 정신의 소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기에…… (중략) 게다가 건강한 사내라면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낼 수는 있겠지만, 놀랍게도 시 없이는 한순간도 견딜 수 없지 않을까? 가장 절박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예술이 언제나 가장 명예로운 것이리라.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시에 관하여 中」

 

  보들레르는 반세기 뒤, 자신의 이런 의지와 문학, 그리고 삶이 인정받을 것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시 「상승」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아침이면 종달새처럼 생각도/하늘을 향해 자유로이 날아올라/그는 인간세계를 떠돌며 말없는 사물과/꽃의 언어를 쉽게도 알아낸다!’

 

 

 

  이쯤에서, 보들레르에게 있어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한 여인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여자는 바로 1842년 첫 만남 이후 14년간 보들레르의 삶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끼친 잔 뒤발이다. 그들은 장장 14년 동안 별거와 재결합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보들레르는 잔 뒤발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산문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警句)들」과 수많은 시편을 창작한다.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와 마찬가지로 위의 산문 역시 보들레르 자신에게 위안을 주려고 쓴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그러하다.

 

  게다가 대체로 우리가 갖는 호감이란 위험하지 않다. 자연은 음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 몸에 나쁜 것에 이끌리는 것을 우리에게 거의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警句)들 中」

 

  실제로 보들레르는 잔 뒤발 등, 창녀들과의 무분별한 성관계로 말미암아 매독이라는 평생 동안의 지병을 갖게 된다. 그의 삶을 가난과 방탕 그리고 우울 속에 머물게 한 사람이 바로 잔 뒤발이었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잔 뒤발을 자칭 ‘검은 비너스’라 부르며 사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산문은 말 그대로 그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

 

  내 가슴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그지없이 다정한 님, 그지없이 예쁜 님에게,

  불멸의 우상 내 천사에게

 

  그대는 소금기 배어든 공기처럼

  내 목숨 속에 퍼지고,

  채워지지 않는 내 넋에

  영원의 맛을 쏟는다.

 

「찬가 中, 악의 꽃」

 

  하지만 보들레르가 창녀와 교제하는 것을 그의 계부였던 오픽 장군과 가족들이 놔둘 리 없었고, 보들레르와 가족들 사이의 갈등은 심화된다. 그런 상황을 의식하여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당신이 숭배하는 여인이 아프다고 가정해 보자. 그녀의 미모가 천연두의 무서운 껍질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치 추운 겨울날 두꺼운 얼음장 밑의 녹음(綠陰)과 같다. 불안과 병세의 호전과 악화에 의해 한층 마음이 여려진 당신은 사랑하는 회복기 환자의 몸 위에 생긴 결코 지워지지 않을, 얽은 자국을 처량하게 바라본다. (중략) 이때부터 천연두 자국은 당신 행복의 일부를 이루게 되는데, 이제부터 곰보 자국들은 감미로운 동정심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관능의 대상이 된 것이다.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警句)들 中」

 

  앞서 제시한 시와 산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보들레르의 초기작들은 이렇듯 사랑에 대해 찬미의 태도를 취한다. 작가의 연보를 통해 추측했을 때, 이 시기의 작품들은 모두 잔 뒤발과의 애틋한 연애를 모티브로 한다. 하지만 교제 기간 14년 중간 중간에 겪은 잔 뒤발과 잠시 동안의 이별 기간과, 그 후 보들레르 말년에 이루어진 결별은 그의 시적 이미지를 우울의 정점에 이르게 한다.

 

  병과 죽음은 모조리 재로 만든다

  우리를 위해 타오른 불길을

  그처럼 뜨겁고 다정하던 그 커다란 두 눈을,

  내 가슴 적신 그 입술을,

 

  향기 나는 풀처럼 강렬한 그 입맞춤을,

  햇빛보다 더 생생한 그 열정을,

  무엇이 남아 있는가? 두려워라, 내 영혼이여!

  남은 건 세 가지 색깔의 빛바랜 데생 한 점뿐,

 

  나처럼 고독 속에 스러지고,

  몹쓸 늙은이 같은 시간이

  그 거친 날개로 날마다 문지르는 그 데생

 

  삶과 예술의 우울한 말살자여,

  너는 내 기억 속에서 절대로 죽이지 못하리.

  내 기쁨, 내 영광이었던 그 여인을!

 

「초상화, 악의 꽃」

 

  이 시는 잔 뒤발의 부재를 나타낸 시 중 하나라고 추측해 본다. 실제로 그녀와의 이별 이후 보들레르는 문학적으로도 또 자신의 삶 자체로도 매우 피폐한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창작한 작품들은 모두 위와 같은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로 ??악의 꽃?? 출판 당시 보들레르는 ‘이 시집은 고통에 대한 사전’이라 말한 적 있다. 이 점만 보았을 때도, 보들레르의 문학에 끼친 잔 뒤발의 영향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의 시에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예쁜 고양이야, 사랑에 빠진 내 가슴 위로 오라.

  발톱은 감추고,

  금속과 마노 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나를 푹 잠기게 하라.

 

  내 손가락이 네 머리와 유연한 등을

  한가로이 어루만지고

  내 손이 전기 일으키는 네 몸을

  만져 보며 즐거움에 취할 때,

  나는 마음으로 내 아내를 본다. 그녀 눈매는

  네 눈처럼 사랑스러운 짐승,

  그윽하고 차가워, 투창처럼 꿰뚫는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묘한 기운, 위험한 향기

  그녀 갈색 몸 주위를 감돈다.

 

「고양이, 악의 꽃」

 

  필자는 보들레르가 잔 뒤발을 묘사한 시 중, 그들이 처해 있었던 현실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으로 p. 56에 있는 고양이를 뽑고 싶다(『악의 꽃』에는 위에서 발췌한 「고양이」 외에도 같은 제목을 사용한 한 편의 시가 더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단순히 고양이를 만지고 있는 것 같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고양이는 보들레르의 연인 잔 뒤발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보들레르가 창녀와 어울리는 것을 그의 가족들은 탐탁찮게 보았다. ‘발톱은 감추고’, ‘그윽하고 차가운 투창’, ‘위험한 향기’ 같은 시어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들레르 역시 가족들의 말을 그냥 흘려듣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보들레르는 훗날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이미 짐작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고양이를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은 채 유희를 즐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시인은 왜 고양이를 자신의 연인에 비유했는가? 나는 이 해답을 고양이의 속성에서 찾아보았다. 고양이는 자주 잠을 잔다. 꾸벅꾸벅 조는 듯하면서, 가끔씩 매혹적인 시선을 선사하는 이 동물은 보들레르와 함께 살면서도 다른 남자와 매춘을 일삼던, 그러면서도 시인을 유혹하던 잔 뒤발의 행동과 몹시 닮았다. 고양이가 자고 있는 모습은 또 어떤가? 그 자세는 나체로 침대에 누워 남성들을 유혹하는 관능적인 창녀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보들레르의 문학적인 각성을 가능하게 한 것이 잔 뒤발이었다면, 보들레르의 문학을 발현시킨 것은 장난감이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는 산문 「장난감의 모랄」에서 유년 시절, 장난감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보들레르가 당시 유력한 집안 중 하나였던 핑크쿠크 여사 댁에 초대받았을 때 생긴 일화다. 핑크쿠크 여사는 자신의 집에 오는 아이들을 장난감이 가득한 방으로 데려가 선물을 하나씩 주곤 했는데, 보들레르는 주저 없이 그중에서 가장 비싸고 좋아 보이는 장난감을 집어 든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보들레르의 주제 넘는 행동을 탓하며 다른 장난감을 고르게 했는데, 그는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아이들에게 욕망과 생각과 행동은 말하자면 단지 하나의 기능을 이루는 셈인데, 아이들은 이 점에 있어서 심사숙고하느라고 거의 모든 시간을 잡아먹는 나이 든 사람들과 구별된다.

 

「장난감의 모랄 中」

 

  위의 발췌문은 보들레르가 그의 모든 생애에 걸쳐서 행한 방탕함과 낭비벽에 당위성을 제공한다. 또한 그의 시집이 발표될 당시, 프랑스 전체에 그토록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이유 역시 설명해 준다. 보들레르는 다름 아닌 어린아이였다. 그는 ‘심사숙고하느라고 거의 모든 시간을 잡아먹는 나이 든 사람들’을 거부한다. 그것은 기성으로부터의 탈피다. 동시에 존재의 독자적인 확립이다. 그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결코 장난감을 주려 하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중략) 그들 자신이 시간을 시적(詩的)으로 보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나에게 꽤나 고통을 주었던 전혀 시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언제나 원한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장난감의 모랄 中」

 

  그는 ‘장난감이란 어린아이의 예술에 대한 최초의 입문인 셈이며, 아니 차라리 아이에게 있어 예술의 첫 번째 실현’이라고 말한다. 장난감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그의 산문시에서도 빛을 발한다.

 

  하지만 부잣집 아이는 자신의 장난감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다음과 같은 것을 응시한다. 철책 반대편 길 위 엉겅퀴와 쐐기풀이 무성한 가운데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때와 먼지로 가득한 얼굴 위에 누런 콧물이 길을 내듯 흐르고 있는 더럽고 빈약한 꼬마다. 이 상징적인 철책 경계선 너머로 가난한 아이는 부잣집 아이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보여주고, 부잣집 아이는 탐욕스러운 눈길로 귀한 미지의 물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더기의 꼬마가 창살 달린 상자 속에 담아 괴롭히며 휘두르며 흔들어대고 있는 그 장난감이란 바로 살아 있는 쥐였다. 부모들이 절약한답시고 일상생활에서 장난감을 골라 준 것이었다.

 

「가난한 자의 장난감 中, 파리의 우울」

 

  ‘살아 있는 쥐’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도 충격적이지만, 이 시가 통찰하고 있는 세계는 더욱 놀랍다. 이 시 하나로 우리는 두 아이의 미래를 넘어서, 두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이질적인 이 두 가지 풍경, 그것이 ‘철책 경계선’ 하나로 구분되는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가? 보들레르가 말한 ‘예술의 첫 번째 실현’ 그건 生의 발현 자체였다.

 

  대부분의 꼬마들은 영혼을 들여다보려는 듯 장난감의 내부를 보길 특히 원하는데, (중략) 장난감의 수명을 다소간 연장하는 일은 바로 이런 욕망에 얼마나 늦게 사로잡히느냐에 달려 있다. 내게 이런 어린이다운 편집증(인간이 겪는 첫 번째 형이상학적 경향이 아닐까?)을 비난할 용기는 없다.

 

「장난감의 모랄 中」

 

  시인이 장난감을 부수는 아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일종의 자기 고백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생각과 욕망과 행동은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시인 역시 시를 쓰기 위해 자신과 세상을 부수는 사람 아닌가? 또한 보들레르는 자신이 바로 그러한 시인의 정형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글머리에서 나는 지금의 보들레르를 만든 것이 방탕과 광기가 아닌 문학에 대한 갈망과 절실함이라고 말했었다. 이제 여러분도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충분히 수긍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통음난무는 더 이상 영감과 자매지간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간통에 의한 친족 관계를 이미 깨트린 셈이다.’ ‘영감은 그날그날 행하는 노동과 자매다. 영감은 허기와 수면처럼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가 뱉은 말을 오롯이 실천했다. 영감을 위해, 詩를 위해 자신의 한 생애를 깨트리기를, 복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를 방탕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린 것은 어쩌면 보들레르의 문학에 대한 희생정신이 너무나 숭고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숭배와 모독은 한끝 차이이므로.

  그랬기에 나는 지금 보들레르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다. 그리고 그를 한없이 존경한다.

 

《문장웹진 2월호》

 

 

 

 

 


   수상소감 / 장성호

 


솔직히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상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니와, 이렇게 소감까지 쓸 만큼 큰 상을 받은 건, 제 19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멋진 말도 써봤고 애써 진지한 척도 해봤지만 결국엔 다 지워버렸습니다. 역시 저에게는 보잘 것 없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나 봅니다.

활자 앞에서 언제나 알몸으로 서 있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하다는 말 대신, 더 저다운 글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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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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