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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록] 이성의 등뼈

  • 작성일 2012-08-01
  • 조회수 1,473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제4회_소설가 김연수 편

 

 

이성의 등뼈

―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김용규(철학자)

 

 

 

 

 

 

   여러분은 조금 전 헝가리 출신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서 쾨슬러(A. Koestler, 1905~1983)의 장편소설 《한낮의 어둠》을 제가 축약해서 각색한 낭독공연을 보았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루바쇼프는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인 1938년에 총살된 니콜라이 부하린(N. I. Bukharin, 1888~1938)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부하린은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스탈린과 합세하여 트로츠키를 실각시킨 좌익 공산주의 지도자로서 1927년에는 코민테른 의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지요. 원작 소설은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되어 총살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약 360쪽에 걸쳐 그리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덩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체포되기 전 루바쇼프 자신이 당과 국가라는 이름 아래 죽음으로 몰아갔던 사람들에 대한 회상이고, 다른 하나는 체포된 후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세 번의 심문과정과 재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오늘 밤 이 작품을 매개로 우리가 가진 이성의 매우 특별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Ideologie)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사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밤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살덩이가 아니라 뼈대를’ 드러내 보고자 한다는 것이지요. 이데올로기를 ‘내용에서가 아니라 형식에서’ 들여다보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조금은 생소하실 텐데요, 여러분이 조금 전에 본 《한낮의 어둠》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는 루바쇼프의 주장이 옳은지 아니면 그의 대학 친구이자 혁명 동지로서 그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심문관 이바노프의 주장이 옳은지 따져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숭고한 목적이 그 수행과정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변질되어 원래의 목적과는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밝혀 보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을 인용해 다시 설명해 볼까요? 먼저 루바쇼프의 주장을 보지요. 그는 “우리는 선한 믿음에 너무나 철저한 나머지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정당하게 분배하는 사업에서 의도적으로 불과 1년 안에 약 5백만 명의 농부와 그 가족들을 굶어죽게 만들었지. 기업의 착취로부터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는 데 너무도 철저해서 1천만 명을 극한지역이나 동쪽 산림지대에서 강제노동을 하도록 내몰았고! 그건 고대 갤리선 노예들과 흡사한 조건이었지. 우리는 너무도 철저해서 견해의 차이를 없애려고 단 하나의 논리, 즉 죽음의 논리밖에 알지 못했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혁명의 목적에 대립되네.”라고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루바쇼프의 이 같은 주장이 옳은지, 아니면 심문관 이바노프가 이에 반박하면서 “그래, 우리는 소작농들 중에서 기생충 같은 일부를 청산했고, 그들이 굶어죽게 내버려뒀어. 그건 한번 치러야 할 외과수술이었지. 그러나 혁명 전의 좋은 시절에도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가뭄이 든 해에 죽었네. 그런데 인류는 왜 자기 자신을 실험할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라고 외치는 주장이 더 타당한지 가려 보자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는 그들 모두가 열렬히 염원했고 희생적으로 봉사했던 혁명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반혁명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려는 거지요. 다시 말해 인민을 위한 혁명이 “학살 행위를 없애기 위해 학살자가 되고, 양을 도살하지 않기 위해 그 양을 희생시키고, 인민을 매로 채찍질함으로써 그들이 채찍질당하지 않도록 가르치”며,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류를 감히 증오하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사랑”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데올로기를 내용에서가 아니라 형식에서 들여다보려고 한다는 저의 말이 뜻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적어도 한번은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짚어 보고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만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것이 아니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이성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꿔 보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정말이냐고요? 우선 하나만 예를 들어 볼까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자주 드는 예들 가운데 하나가 중세에 일어났던 십자군 전쟁 이야기입니다.

   십자군 원정의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와 성지 순례자들을 위하여 순례길을 점령하고 있는 이슬람 교도들을 물리치고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군이라는 이름도 본디 ‘예루살렘 성지를 향해 나아간 무장 순례자들’을 뜻했습니다. 때문에 이 원정에 참여한 병사들은 자신들을 ‘순례자들(peregrini)’ 또는 ‘십자가로 서명한 사람들(curcisignati, signatores)’이라고 불렀고, 자신들의 원정이 신성한 과업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신의 뜻이시다(Deus Le Volt)”라는 말이 십자군 전쟁 200여 년 동안 모든 십자군 입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던 구호였지요.

   1096년 가을 추수가 끝나자 농민과 민중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1차 십자군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집결했습니다. 그리고 1099년 6월 7일 십자군들은 드디어 최후의 목적지인 예루살렘 성에 도달했지요.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우리는 신의 자녀입니다. 신의 뜻을 이루고저 왔사오니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트리게 도와주소서.”라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신이 그 기도를 들어주어서였을까요? 7월 15일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때부터 역사에 남을 만한 살육이 자행되었지요. 성내에는 피가 고여 병사들의 발목까지 차올랐고, 성전에는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으며, 광장에는 약탈한 금은보화가 커다란 동산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고, 강간하고, 약탈하고, 방화했지요. 그 다음 약탈한 그 재물을 들고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가 헌물하고, 기쁨과 감격에 차서 통곡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자신들의 행위가 악마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원정에 동참하여 십자군을 이끌었던 대수도원장 기베르(Guibert)가 남긴 〈십자군 연대기〉에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글이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큰 거리나 광장 등에는 사람의 머리나 팔, 다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십자군 병사나 기사들은 시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성전이나 회랑은 물론이요, 말 탄 기사가 잡은 고삐까지 피로 물들었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모독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졌던 이 장소가 그들의 피로 씻겨야 한다는 신의 심판은 정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찬양할 만하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내용이지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그리스도를 위해 평생을 산 대수도원장 입에서 어떻게 이 같은 반-그리스도적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해를 위해 우리는 조금 전에 본 《한낮의 어둠》에서 심문관 이바노프가 한 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그래, 우리는 소작농들 중에서 기생충 같은 일부를 청산했고, 그들이 굶어죽게 내버려뒀어. 그건 한번 치러야 할 외과수술이었지. 그러나 혁명 전의 좋은 시절에도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가뭄이 든 해에 죽었네. 그런데 인류는 왜 자기 자신을 실험할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라고 외쳤지요. 대수도원장 기베르와 심문관 이바노프의 말 사이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믿음이지요. 《한낮의 어둠》에서 루바쇼프는 이 맹목적인 믿음을 ‘선한 믿음’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습니다.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밤 여러분과 제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인데요, 그 까닭이 뭘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우리 이성의 등뼈라고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가진 ‘순환적 폐쇄성’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성이라는 빛 안에 들어 있는 어둠, 곧 한낮의 어둠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지금부터 알아볼 텐데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평생을 이 문제 하나만 천착해 작품을 쓴 어느 러시아 작가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가 누구냐고요? 러시아 출신의 실존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N. Berdyaev)가 “그를 낳은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찬사를 표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ii, 1821~1881)입니다.

 

 

1

 

 

  1849년 12월 22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세묘노프스키 광장에서는 사형이 집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겨우 28세 된 한 청년 도스토예프스키가 끼어 있었지요. 그는 절대왕정의 입장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사악한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1849년 11월 13일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사형수들에게 하얀 수의를 나누어주고 십자가에 입을 맞추도록 했지요. 그 후 사형집행관들이 칼을 빼어들자 이윽고 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형수 가운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여섯 번째였고, 세 명씩 호명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두 번째 차례에 속했지요. 총성과 함께 먼저 불려 나간 세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지고, 그가 불려 나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제 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채 1분도 남지 않았지요. 그때 갑자기 요란한 종소리가 하늘 가득히 날아오르는 비둘기 떼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사형 집행 중지를 알리는 신호였지요. 집행관들은 황제폐하가 그들을 살려 주라는 특명을 내렸다는 것을 사형수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에 있는 옴스크 수용소로 보내져 그곳에서 4년 동안 혹독한 강제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성서를 제외하고는 책을 읽는 것까지 제한받았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간질병이 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청년은 수용소에서 겪어야 하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비참함뿐 아니라 천형(天刑)과 같은 질병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청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추위와 굶주림 같은 고통도, 독서마저 할 수 없는 비참함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한동안 의식을 잃는 간질병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신념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청년시절 한때 문학비평가이자 무신론적 사회주의자인 비사리온 벨린스키(V. G. Belinsky, 1811~1848)에게 매료되어 그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사회성, 사회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다!”라면서 만일 혁명을 위해 수십만 명의 목을 잘라야 한다면 그 역할을 기꺼이 맡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장담하는 과격한 ‘이데올로기 신봉자(ideologue)’였습니다. 하지만 4년간 수용소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음속에서는 벨린스키의 주장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투쟁이 시작되었지요. 벨린스키의 신앙인 무신론적 사회주의 이론과 민중의 신앙인 복음 가운데 어느 것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미신이냐 하는 싸움이었지요. 하나는 투쟁과 혁명의 이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용서의 이론이었습니다.

 

  오랜 고통 끝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결국 벨린스키의 무신론적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낮의 어둠》에서 심문관 이바노프가 루바쇼프에게 “우리 같은 사람에게 가장 큰 유혹은 폭력을 단념하고 참회하며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네. 스파르타쿠스에서 당통과 도스토예프스키에 이르기까지 가장 위대한 혁명가들도 이 유혹 앞에서 무너졌어. 그것이 바로 대의명분을 저버리는 고전적 형태의 배반이지. 신의 유혹은 늘 사탄의 유혹보다 인류에게 더 위험했네.”라고 말하는 근거지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벨린스키를 떠나게 된 데는 수용소 생활 동안 한 크고 작은 경험이 큰 몫을 했습니다. 수용소에서 그는 정치범으로 수용된 지식인들뿐 아니라 무지한 민중과도 함께 생활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지식인과 민중 가운데 누가 더 진실하고 누가 더 거짓된지 보았습니다. 수용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벨린스키의 이성적 논증에 반하는 심정적 증거를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수용소 안에는 다양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지성인과 그들이 ‘무식쟁이 촌뜨기들’이라고 멸시하는 민중이 함께 있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많은 점에서 복음을 믿는 무식쟁이가 합리적 지식인보다 몇 배는 더 지혜롭고 선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간파했던 겁니다.

   출옥 후 그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나는 마침내 도둑들 사이에서 인간들을 구별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내 말을 믿을 수 있겠는지요? 그곳에서도 생각이 깊고 강하며 아름다운 민중이 있었습니다. 거칠고 딱딱한 껍질 안에서 금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요.”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왜 이성과 과학을 숭배하는 합리적인 지식인보다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바보 같은 민중이 더 지혜로운지, 왜 사회개혁을 외치며 고개를 쳐들고 일어서는 혁명가보다 쓰러진 자들을 돕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백성이 더 선한지, 다시 말해 왜 지식인이 민중보다 더 끔찍한 죄를 짓게 되고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되는지 그는 다른 누구에게보다 자기 자신에게 설명하기 위해 골몰했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론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벨린스키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그는 탁월한 소설가였기에 벨린스키의 사상이 가진 악마성을 작품을 통해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와 죽을 때까지 도스토예프스키는 대표적 장편소설을 5편 썼습니다.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모두 하나같이 불멸의 명작들이지요. 그런데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작품들은 모두 단 한 가지 주제만 반복해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이성적 인간이 어떻게 해서 악마가 되는가?’, 또 ‘그 같은 악마적 인간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조금 전에 열거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는 언제나 이성적이지만 동시에 악마적인 인간이 반드시 등장합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백치》의 이폴리트, 《악령》의 스타브로긴, 키릴로프, 쉬갈로프, 《미성년》의 아르카지, 베르실로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 등이 그들이지요.

   이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이성을 숭배한다는 점이지요.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성이 스스로 구축한 왜곡된 사상과 논리로 무장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때문에 아무리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을지라도 그들에게는 한 점의 죄의식도 없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잘 아시는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 자매를 살해하고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낮의 어둠》에서도 주인공 루바쇼프와 심문관 이바노프가 이에 대해 격론을 벌였는데요, 이 이야기를 잠시 되짚어 볼까요?

   “멋진 검은 눈동자에 짙은 아맛빛 머리털을 가진 미남으로 약간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졌으며, “훌륭한 품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지적으로 성숙한 청년” 법학도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왜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던가요? 물론 표면상으로는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가난에서 구하고, 못 다한 학업을 끝마치고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 범행을 했지요. 하지만 이면에는 보다 심각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여 나쁜 방법으로 모은 그녀의 재산을 자신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끔 학비로 사용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 덕분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이 아닌가!”라고 생각한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대 스파르타의 법과 시민 생활 규범을 정했던 리쿠르고스, 구약성서에 나오는 솔로몬, 그리고 마호메트와 나폴레옹 등을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만일 케플러와 뉴턴의 발견이, 그 발견을 방해할지도 모르고 혹은 그 발견의 길에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는 몇몇의 혹은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뉴턴은 자기 발견을 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런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제거해야 할 …… 권리가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일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조금 전 우리는 같은 말을 대수도원장 기베르와 심문관 이바노프를 통해 이미 들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1866)을 출간한 지 51년 후인 1917년에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진실은 총구에서 나온다.”라고 외치며 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레닌(V. I. Lenin, 1870~1924)은 1920년에 행한 한 연설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도덕이란, 낡은 착취 사회를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중심으로 모든 노동자를 결속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것, 새로운 공산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내용을 불문하고 모든 지혜와 책략과 술책에 호소하고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사실을 은폐 또는 왜곡시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역시 어디서 들어 본 말 같지요? 그렇습니다. 이 말은 대수도원장 기베르, 심문관 이바노프,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주장과 똑같지요. 이들이 하나같이 ‘숭고한 목적에 의한 악랄한 수단의 정당화’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목적이 숭고하면 숭고할수록 수단이 더 악랄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곧 보겠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면 수단이 목적처럼 변질되어 목적을 왜곡시킴으로써 목적과 수단 사이에는 순환적 폐쇄성이 형성되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형식적 특성인데, 우리는 지금부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 합니다.

 

 

2

 

   모든 개념정의가 그렇지만 사회과학 전 영역에서 가장 난해한 개념으로 꼽히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표가 아니지요. 서두에 이미 밝혔듯이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형식적 특성인데, 그 첫 번째가 목적과 수단 사이에 존재하는 ‘순환적 폐쇄성’입니다. 이념을 뜻하는 ‘이데아(idea)’와 ‘논리(logos)’ 또는 ‘학문’을 뜻하는 로고스의 합성어인 이데올로기(ideology)를 문자가 지시하는 대로 ‘이념의 논리’라고 해석한다면, 이때 말하는 논리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데서 오는 폐쇄적 순환구조’지요.

   이 말은 비단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정치적 이념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이념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데서 오는 폐쇄적 순환구조’를 가질 때는 언제든지 이데올로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율법주의 이데올로기, 과학주의 이데올로기, 소비주의 이데올로기 등과 같이 각종 정치?경제?사회?종교?문화이념 뒤에 이데올로기가 붙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얼핏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 C. 384~322)가 그의 《정치학》에서 든 ‘돈벌이’ 예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돈벌이란 원래 가정에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지요. 때문에 돈벌이의 정당성은 본래의 목적인 ‘가정의 행복’에 의해 제한받아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적 방법의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돈벌이 그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면, 마치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를 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에게는 한도 끝도 없이 재산을 모으려 하거나 적어도 재산을 잃지 않는 것이 인생을 통해 해야 할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수단에 의해 목적이 왜곡된 것이지요. 그러고 나면 결국에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거나 가족에게 소홀해져 원래의 목적인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2 참조.

   여러분도 이미 느끼셨겠지만 이런 일은 결코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 건강을 해칠 정도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화초를 위해 뿌리가 썩을 정도로 물을 주는 사람의 경우처럼,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도 자주 일어나지요. 이것은 우리의 이성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지 잘 말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한낮의 어둠》에서 “학살 행위를 없애기 위해 학살자가 되고, 양을 도살하지 않기 위해 그 양을 희생시키고, 인민을 매로 채찍질함으로써 그들이 채찍질당하지 않도록 가르치”며,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류를 감히 증오하는 혁명을 감행했던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와 그리 다른 사람이 아님을 증거”하지요. 살펴보면, 이러한 모든 일 안에는 ‘목적에 의한 수단의 정당화’와 ‘수단에 의한 목적의 왜곡’이라는 순환적 폐쇄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단이란 본디 목적에 의해 제한될 때만 정당합니다. 호르크하이머의 용어를 빌려 좀 더 형식적으로 표현하자면, 수단의 정당성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적 방법의 적합성” 막스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 비판》, 박용구 역, 문예출판사, 2006, p. 17. 호르크하이머는 이 책에서 ‘주관적(도구적) 이성’과 ‘객관적 이성’을 구분하고 주관적 이성은 목표 자체가 이성적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오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적 방법의 적합성에만 관련하고, 객관적 이성은 인간과 그의 목적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의 위계질서 또는 포괄적 체계를 발전시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했다. 본문에서 사용하는 ‘절차적 적합성’과 ‘체계적 적합성’이라는 용어는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그런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면 마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둥이처럼 그 정당성을 등에 업고 수단이 목적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수단이 마치 목적처럼 되지요. 그 이유는 막내둥이가 아무 철이 없듯이 수단은 ‘체계적 적합성’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다음에는 수단에 의해 목적이 왜곡됩니다. 마치 막내둥이 말에 놀아나는 부모처럼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목적과 수단 사이에 마치 막내둥이에게 눈이 먼 부모와 버릇없는 막내둥이 사이가 그렇듯이 그 누구도 뚫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는 ‘순환적 폐쇄성’이 완성됩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상대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때문이지요.

   논리학에서는 전제와 결론이 서로를 논거하는 논증을 ‘순환논법의 오류’라고 규정합니다. 예컨대 ‘신은 전능하다 왜냐하면 전능한 자를 신이라고 하니까’라든지 ‘당에서 금지하는 사상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당은 위험한 사상을 금지하니까’와 같은 명제들이 그 예지요. ‘거지논법’ 또는 ‘매춘부 논법’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논법에는 전제와 결론이 서로의 타당성을 보장하는 순환적 폐쇄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빠져나올 출구가 없습니다.

   논리적 순환논법과 기하학적 ‘뫼비우스 띠’를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거니와 유익하기도 합니다. 이 둘은 앞(전제)과 뒤(결론)가 서로 한번 비틀려 연결되었다는 점, 그 결과 앞과 뒤의 구분이 없는 순환적 폐쇄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빠져나올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목적과 수단이 역시 한번 비틀려 연결됨으로써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순환적 폐쇄성을 이루어 빠져나올 출구가 없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지요. 이 말은 우리의 이성의 등뼈가 뫼비우스 띠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이성의 뫼비우스 띠! 바로 이것이 오늘 밤 우리가 밝혀 보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의 정체인 셈입니다.

 

   일찍이 키르케고르(S. A. Kierkegaard, 1813~1855)는 그의 《불안의 개념》에서 ‘인간으로서는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어떤 강압적인 힘’을 ‘악마적’이라 정의하고, 그것의 본질을 폐쇄성(das Verschlossene)으로 규정했지요. 순환논법과 이데올로기는 인간으로서는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폐쇄성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악마적입니다. 물론 이때 언급된 ‘악마적’이라는 말에는 일차적으로 윤리적인 가치판단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요. 인간 정신의 폐쇄성은 인간 행위의 폐쇄성을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결국 논리적 폐쇄성이 윤리적 폐쇄성을 낳기 마련이고, 논리적 악마성에서 윤리적 악마성이 태어나지요. 여러분이 감상하신 《한낮의 어둠》에서 루비쇼프는 러시아 공산당 혁명에서 ‘논리적 폐쇄성’이 어떻게 ‘윤리적 폐쇄성’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는 먼저 “미래에 무엇이 진리로 판단될 것인지 현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당시 우리가 당면한 문제였어! 그래서 우리는 비전을 논리적 추론으로 대체시켰지. 그랬더니 우리 모두가 같은 출발 지점에서 시작했지만, 결과는 서로 달랐어. 증거가 증거를 잘못 입증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결국 우리는 믿음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거야. 자신의 추론만 정당하다는 공리적 믿음으로 말이야.”라고 밝히는데, 여기까지가 왜 그들이 ‘논리적 폐쇄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어서 루바쇼프는 “이것이 중요한 점이야!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탄 배의 균형을 잡아 주는 윤리라는 바닥짐을 배 밖으로 던져버렸어. 그리고 단 하나의 닻,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만 갖게 되었지. 그것이 바로 ‘선한 믿음’이야.”라고 그들이 부득이 선택한 ‘논리적 폐쇄성’이 곧바로 ‘윤리적 폐쇄성’으로 이어졌음을 증언합니다.

   같은 말을 키르케고르는 다음같이 표현했습니다. “악마적인 것은 그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폐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자기 자신을 폐쇄한다. 그리고 여기에 실존에 관한 심오한 것, 바로 부자유가 자기 자신을 죄수로 만든다는 사실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순환논법과 이데올로기는 논리적으로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폐쇄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부당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악할 수밖에 없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악마적 주인공들과 《한낮의 어둠》에서 혁명을 이루려는 주인공들이 가진 사고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라면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다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모두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지요.

 

 

3

 

   이데올로기가 가진 두 번째 특성은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수단이란 어떤 경우에도 목적에 의해 제한되어야 하는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게 되면 그 제한이 풀리고 ‘수단이 마치 목적인 것처럼’ 변합니다. 여기에서 이른바 허위의식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 ‘허위의식’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허위의식은 ‘……을 마치 ……처럼’이라는 형식, 곧 수단을 마치 목적처럼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허위의식 안에는 ‘목적에 의한 수단의 정당화, 수단에 의한 목적의 왜곡’이라는 악마적 폐쇄성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허위의식은 우상숭배와 연결됩니다. 우상숭배란 신이 아닌 어떤 것을 ‘마치 신처럼’ 숭배함으로써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수단을 마치 목적인 것처럼 인식하는 허위의식을 사회과학에서는 이데올로기(ideology)라고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이지요.

   카를 마르크스(K. Marx, 1818~1883)가 일찍이 허위의식에 대해 뛰어난 통찰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본론》에서 허위의식과 우상숭배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상품, 돈, 그리고 자본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요. 그중 돈에 관한 그의 고찰을 예로 들어 볼까요. 돈이란 원래 상품교환이라는 목적을 위한 매개수단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노동자가 돈을 위해 자신의 상품인 노동을 팔 때 그에게 돈은 더 이상 단순한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됩니다. 돈에 대한 허위의식이 생긴 거지요. 그럼으로써 그에게는 돈이 ‘진정한 신’ 또는 ‘보이는 신’이 되고 ‘그것의 숭배 자체’가 그의 목적이 됩니다. 우상숭배가 시작된 겁니다. 이 말을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때 매개자인 돈이 진정한 신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매개자는 그것이 나에게 매개하는 것에 대한 진짜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숭배 자체가 목적이 된다. 그리고 이 매개자로부터 분리된 대상은 그 가치를 상실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사슴이 신선한 물을 갈망하듯이 부르주아의 영혼은 유일한 부인 화폐를 갈망한다.”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김수행 역, 1권 상, 비봉출판사, 1989, p. 171. 면서, 인간(부르주아)의 돈에 대한 우상숭배를 신랄하게 비난했지요. 또한 그는 이러한 허위의식은 자유의 거절이고 상실이라면서, 돈을 신약성서의〈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bestia)’에 비유하여 우상숭배적 상황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성서에서 인용한 말은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곧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요한계시록 13 : 17)와 “그들은 모두 한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더라”(요한계시록 17 : 13)입니다. 즉, 마르크스는 돈을 인간이 부여한 막강한 능력과 권세를 갖고 인간의 자유를 오히려 빼앗는 짐승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이런 말들을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위해 스스로 만든 어떤 것을 ‘마치 신처럼’ 숭배함으로써 그 ‘짐승’에게 결국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지요. 마르크스는 이런 종류의 우상숭배를 물신주의(物神主義)라고 부르고, 이처럼 수단을 목적으로 또는 외관을 사물 자체로 잘못 판단하는 허위의식을 이데올로기(ideology)로 규정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체계화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모든 집단 이데올로기에 적용하지 않고 오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공격하는 수단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한 까닭에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을 학문적 방법론으로 구축하지 못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실상만 인식하다는 사상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 Mannheim)은 이데올로기 비판은 모든 사상의 진면목을 밝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경계하면서 인간성 회복을 외쳤지요. 이 같은 마르크스의 경고는 오늘날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소비하는 우리들에게도 커다란 경종이 됩니다. 소비란 본디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데, 후기 산업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소비를 마치 삶의 목적인 양 우상화함으로써 소비를 위해 죽어라 일하는 노예가 되어 진정한 삶을 상실해 가기 때문이지요.

 

 

4

 

   자, 그럼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데올로기가 만든 악마적 폐쇄성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성의 뫼비우스 띠인 악마적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느냐’ 하는 거지요. 문제가 있는 곳에 답도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 해답은 어떻게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한 가지 괄목할 만한 해답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수장이었던 막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 1895~1973)가 내놓았습니다.

   호르크하이머는 그의 저서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폐쇄적인 사고체계를 ‘도구적 이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성이 ‘도구화’하면 맹목적이 되어 오류를 막는 비판적 기능을 상실한다고 했지요. “이성이 자기 스스로를 도구화한다면, 이성은 일종의 물질성과 맹목성을 갖게 되고, 정신적으로 경험하기보다는 단지 수용할 뿐인 마술적 실재, 즉 물신(Fetisch)이 된다.” 막스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 비판》, 박용구 역, 문예출판사, 2006, p. 43. 라며 호르크하이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가령 어떤 운전사가 오직 교통법규에 따라 운행하기 위하여 무단으로 도로를 횡단하던 어린이를 치었다고 하지요. 호르크하이머는 이때 그 운전자를 이끈 것이 맹목적이 되어 오류를 막는 비판적 기능을 상실한 ‘도구적 이성’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법정에 섰을 때 재판관이 그에게 ‘이성적으로 운전했는지 여부’를 묻는다면, ‘예’라고 답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그가 단지 교통법규대로 운전했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법률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같은 책, p. 24 참조.

   호르크하이머에 의하면, 이성은 이처럼 도구화되어 목적은 문제 삼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 채 단지 합당한 수단만 계산하는 능력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이성은 마땅히 목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계산하며 또한 파악하는 능력, 곧 호르크하이머가 말하는 ‘객관적 이성’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정의 행복을 위한 돈벌이가 가정의 행복을 해치고,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 건강을 저해하며, 꽃을 위해 준 물이 뿌리를 썩게 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한낮의 어둠》에서처럼 “학살 행위를 없애기 위해 학살자가 되고, 양을 도살하지 않기 위해 그 양을 희생시키고, 인민을 매로 채찍질함으로써 그들이 채찍질당하지 않도록 가르치”며,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류를 감히 증오하는 악마적 폐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객관적 이성은 “인간과 인간의 목적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의 위계질서 또는 포괄적 체계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같은 책, p. 18.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수단보다는 목적을 더 강조하기 마련인데, 호르크하이머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이성의 이념이 구상될 때, 그 이념은 단순히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규율하는 일보다 많은 것을 실현해야만 했다. 이성의 이념은 목적을 이해하고 ‘목적을 규정하기 위한’ 도구로 관찰되었다.”같은 책, p. 24. 한마디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교통법칙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치는 것과 같은 일은 이성의 이념에서 아예 벗어난다는 말이지요.

   호르크하이머는 이렇듯 “주관화되면서 또한 형식화”같은 책, p. 21. 된 도구적 이성에서 아우슈비츠가 상징하는 현대사회의 광기와 야만성이 비롯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성이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판을 통해 도구적 이성에 의해 왜곡된 ‘계몽을 계몽하는 것’만이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각종 이데올로기의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이 오늘 밤 감상하신 《한낮의 어둠》의 작가 아서 쾨슬러는 어떤 방법을 구상했는지 알아볼까요? 그는 소설의 말미에 루바쇼프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우리에게 전했습니다.

   “그건 체제상의 과오였다. 한낮의 어둠이었다. 그 어둠은 지금까지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원칙,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 원칙에 있을 것이다. 그 원칙이 혁명의 위대한 동지들을 죽였고, 그들 모두를 미쳐 날뛰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관습을 배 밖으로 던져버렸다. 우리의 유일한 지침 원리는 필연적 논리의 원리다. 우리는 윤리라는 바닥짐 없이 항해하고 있다. 아마도 악의 중심은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인류에게 윤리라는 바닥짐 없이 항해하는 것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성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나침반은 불완전하기에 목표가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뒤틀린 경로로 이끌 것이다.

   아마도 이젠 거대한 어둠의 시간이 찾아들지도 모른다. 아마도 먼 훗날에야 비로소 새로운 깃발과 함께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마도 새로운 당의 당원들은 수도사의 옷을 걸칠 것이고, 오직 순결한 수단만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전도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한 인간이란 1백만 명을 1백만으로 나눈 결과라고 말하는 교리가 틀렸다고 가르칠 것이며, 1백만 명의 개인이 합쳐서 새로운 실체를 형성하고 1백만 배로 확대된 자기 자신의 의식과 개인성을 펼쳐 나갈 것이다.”

   요약해 보면 호르크하이머는 수단뿐 아니라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객관적 이성을 통해 이성 안에 내재하는 맹목성이 자아내는 광기와 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쾨슬러는 우리가 우리의 이성 안에 존재하는 논리라는 항해술뿐 아니라 윤리라는 바닥짐도 함께 지는 항해를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각각은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의 이성 안에 들어 있는 ‘뫼비우스 띠’인 악마적 순환고리를 잘라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지요. 어떠세요? 그럴듯한가요? 과연 그런지 아닌지, 아니면 또 다른 제3의 해결책이 있는지, 이제부터 《밤은 노래한다》의 작가인 김연수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합니다.

 

 

  김연수 선생님은 1993년 《작가세계》 여름 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셨지요. 그 이후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문학평론가와 문학 전문 기자, 서점 MD 등의 설문조사로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한국 문학 목록에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과 장편 《밤은 노래한다》를 함께 올려놓은 ‘발군의 작가’이기도 하지요.

   오늘 함께 말씀 나눠 볼 《밤은 노래한다》는 일제강점기에 동만주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조선의 해방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숭고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혁명에 투신했던 동지들이 서로 일제의 간첩으로 몰아 무차별 처형을 감행함으로써 급기야는 불과 3, 4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1930년대 초, 북간도 땅을 배경으로,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룡이라는 혁명과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네 명의 젊은이들과 그들 모두의 연인인 이정희라는 신여성, 그리고 만철(滿鐵)의 조선인 측량기사로 역시 이정희를 사랑했던 주인공 김해연이 겪어야 했던 잔혹한 운명을 따라가며 그리지요.

   민생단 사건은 최소 500여 명에 달하는 혁명가들이 적이 아니라 동지들의 손에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또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가진 어둠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이 다룬 ‘모스크바 재판’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민생단 사건을 다룬 김연수 선생님의 소설 제목에 들어 있는 ‘밤’과 모스크바 재판을 다룬 쾨슬러의 소설 제목에 들어 있는 ‘어둠’의 성격도 다를 수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기도 한데요, 정말 그런지 이제 모시고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 아듀, 김용규 선생님(영상) 〉---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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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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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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