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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공개인터뷰(제2회): 나는 왜 가장 작은 낱말로 신비함을 노래하나?

  • 작성일 2014-05-01
  • 조회수 2,177

 

연속기획 공개인터뷰_나는 왜(제2회)

 

 


나는 왜 가장 작은 낱말로 신비함을 노래하나?

― 시인 오은 편

 

정리 : 안희연(시인)

 

 

 

 

    《웹진 문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연중기획 인터뷰 프로젝트 ‘나는 왜’, 그 두 번째 초대 손님은 낱말의 무게를 재는 신비한 저울을 가진 시인, 말놀이 애드리브의 귀재, 오은 시인입니다. 지난 4월 9일 수요일 아르코 미술관 내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오은 시인의 열혈 독자 10분이 초대되었고, 평소 오은 시인과 절친한 우정을 자랑하는 이영주 시인께서 사회를 맡아 주셨습니다. “나는 왜 이런 세계를 만났는가!” “나는 왜 이런 시를 쓰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매달 한 명의 시인(작가)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보는 시간. 4월의 주인공 오은 시인에게 건넨 질문은 “나는 왜 가장 작은 낱말로 신비함을 노래하나?”였습니다.
    남달리 유쾌한 에너지를 지닌 시인, 재기 넘치는 입담의 소유자라는 명성은 익히 들어 왔지만, 아니나 다를까, 시종 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날의 현장! 질문 하나를 건네면 10분이 넘도록 폭풍답변을 들려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오은 시인의 시는 왜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우르르 쏟아지는 사탕들처럼, 색색의 단어들이 황홀하게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랄까요. 그날의 생생했던 대화를 아래에 옮겨 봅니다.

 

interview_oy-01

 

    *

 

 

    말이 되는 이야기

 

    ▶ 영주 : 오늘 이 자리에는 독자 분들을 딱 열 분만 모셨는데요, 조촐한 인원이니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미있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오은 시인과 보다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근황을 여쭤 볼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 은 : 제가 2009년에 큰 사고를 당해서 1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그 후로 공익근무도 마쳤고, 지금은 회사에 입사하여 1년 5개월가량 직장인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퇴근하고 왔네요.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글 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매주 일요일은 무조건 글 쓰는 날로 정해 놓고 약속을 잡지 않아요. 글이라는 게 쓰고 싶을 때 써야 하는데 일하듯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려니까 효율적이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상에 앉아 있으면 뭐라도 쓰게 되긴 하더라고요. 제가 노는 걸 좋아해서 노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다 보니까 한 주가 매우 바쁘게 지나가요. 아무쪼록 글 쓰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 영주 : 오은 시인 프로필을 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셨잖아요. 그러고 나서 회사에 들어간 거라 일반 사람들보다는 좀 늦은 편이죠. 한때 동안으로 미모를 떨쳤으나 요즘 보니 많이 늙으신 것 같아요. (웃음) 아무려나 오은 시인은 참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것에도 재주가 워낙 많은데 하필 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은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 은 : 구두 가지 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선 데뷔를 하게 된 과정이 조금 독특한데요. 저는 문학적으로 유서가 깊은 집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집에 시집이라고는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밖에는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시인은 윤동주, 김소월, 백석 시인밖에 몰랐고요. 교과서에 실린 시를 보면서 “왜 시인들은 나이가 많거나 돌아가신 분들밖에 없지? 요즘 시인들은 시를 안 쓰나?” 그랬어요. 그러다 제가 재수를 했는데, 워낙에 제가 조용하면 집중이 안 되는 타입이에요. 책상도 막 어지럽혀져 있고 주변도 시끄러워야 공부가 잘 되는데 재수할 때 독서실에 갔더니 책상마다 칸막이가 쳐 있고 너무 조용한 거예요. 도망치려고 했는데 엄마가 1층에서 기다리시는 바람에 수작도 못 부리고. 그래서 노트에 뭘 끼적이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뭘 쓴 건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그 당시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친형이 그걸 투고를 한 거죠.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밤새 술을 먹고 있는데 10시 반인가 11시인가 전화가 와서는 “오은 씨 맞느냐, 이러이러한 시를 오은 씨가 쓰신 게 맞느냐?” 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도리어 “어떻게 아세요?” 하고 되물었어요. 보통 투고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잖아요. 저는 그런 것도 없었고, 그 당시 김소진 소설가를 좋아해서 「김소진의 생에 부쳐」라는 시를 쓴 게 있었는데 이걸 대체 얘가 썼나 안 썼나를 검사하기 위해 질문을 하더라고요. “김소진이 누군지 아느냐?” 그래서 “내가 읽은 게 있다. 쥐잡기?” 그랬더니 “맞다. 또?” 이런 식으로 몇 개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니까 “축하합니다. 등단하셨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등단이 뭐예요?”라고 묻고. (웃음) 아무튼 문단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해 8월인가, 데뷔한 잡지에서 얼굴 좀 보여 달라고 전화가 와서 갔더니 아는 시인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그때부터 시집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정말 좌절을 했어요. 내가 쓰는 시는 이 사람들이 쓰는 것과 다른 것 같고 뭐랄까, 불안하고 어지러웠던 것 같아요. 정체성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한동안을 보냈고요.
    워낙에 데뷔도 일렀고, 청탁도 자주 오지 않았고, 저도 시인이란 자의식이 없었어요. 그러다 2004년도에 6개월 정도 캐나다에 체류하게 됐는데 그 당시 영화를 볼 기회가 많아서 매일 영화를 보고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곤 했거든요. 그때 김언이라는 시인이 그 글들을 보고 안부게시판에 이렇게 글을 올린 거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김언입니다. 영화평론 하시나 봐요.” (웃음) 당시 김언 시인이 부산 문예지인 《시와 사상》 편집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등단했다는 것을 알고는 청탁을 해왔어요. 다섯 편 특집이었는데 그때 청탁받은 시를 쓰면서 처음으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렸어요. 아, 나 이거 계속해야겠구나, 쓰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은. 정말 낯선 경험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저를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계속 시를 썼을까 싶어요.

 

    ▶ 영주 : 그랬으면 영화평론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 은 : 블로그 영화평론가? 아니면 파워블로거. 지금쯤이면 별 달았을 거예요. (웃음) 어쨌든 그때 시를 쓰면서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해요. 김언 시인이 첫 단추를 끼워 준 거라 할 수 있겠죠. 지금도 원고가 많고 시 쓰기가 버거울 때 그때를 많이 회상해요. 그러면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고요.

 

    ▶ 영주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참 독특한 케이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은 문학이 나를 이끌어서, 습작시절을 거치다 등단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오은 시인의 경우에는 데뷔를 하고 나서 습작 시기를 거쳤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은 : 그런 셈이죠. 제가 엄마한테 “엄마 나 등단했대.” 하니까 “뭐? 등산?” 그러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수상해

 

    ▶ 영주 : 어느 잡지에 발표한 산문을 보니까 스스로의 정체성을 ‘괴짜’라는 캐릭터로 설명한 적이 있더라고요. 자신의 모습 중 가장 입체적인 부분을 표현한 글이라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은 시인이 구축하고 있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 세계가 이 ‘괴짜’라는 기질에서 촉발된 게 아닌가 싶은데요.

 

    ▶ 은 : 데뷔를 하기 위해 습작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기 캐릭터를 상당부분 죽이고 기존의 시인들, 유행하는 시풍이나 형식을 따라하게 되기도 하는데 저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잖아요. 우연히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면만 있다면 내가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어요. 생각나는 대로 무의식적인 영상을 따라서 써내려가다 보니까 내 것이 나온 거죠. 워낙에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말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 영주 : 괴짜로서의 정체성이 언어의 독특한 입체감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까요.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의 시들은 그 자체로 읽는 재미가 있고, 읽으면서도 언어(의미)가 공중으로 산화되는 느낌이 든다면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는 똑같이 언어유희에서 시작되지만 의미가 가득해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 특별히 염두에 둔 변화의 흐름이 있나요?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은 : 제가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서 데뷔하고 7년쯤 있다 첫 시집이 나왔어요. 그때는, 그게 과잉일 수도 있지만 내가 손으로 말하든 입으로 말하든 그 리듬을 고스란히 살려 두고 싶었어요. 최대한 말을 절제하면서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것에 방점을 두는 시인이 있다면, 저는 반대로 말놀이를 하는 것이 즐거웠고 단어들이 서로 만나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재미있었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국어사전이에요. 국어사전을 보다 보면 그동안 정말 많이 봐왔던 단어인데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는 단어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그런 단어를 유심히 보다 보면 그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을 해요. 그러다 틈이 생기면 다른 단어가 들어와 그 자리를 메우기도 하고요. 첫 시집이 그런 식으로 단어를 ‘수집’한 것의 덩어리라면, 두 번째 시집은 한 단어가 ‘증식’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증식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말하면서도 뭔 소린지 모르겠네요. (웃음)

 

    ▶ 영주 : 오은 시인의 시 쓰기는 언어에 천착하는, 언어가 전면화 되는 방식의 시 쓰기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미랄까요, 말놀이 애드리브를 즐기고 속담이나 동음이의어, 의성어나 의태어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요리를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을 땐 재미가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썩 좋지 않고, 블랙유머 같은, 우리 현실을 꼬집는 측면이 있어요.

 

    ▶ 은 : 첫 시집에서 많이 집중했던 부분이에요. 어차피 시라는 것은 만들어지는 것, 즉 작위라는 생각을 해요.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시일 수 있다고 보고요. 가령 「말놀이 애드리브」라는 시는 거의 6개월을 썼어요. 초고를 쓴 뒤에 계속 추가하고, 추가하고. 버전이 0.1부터 시작해서 6.8까지 있거든요. 한두 줄 표현을 바꾸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저는 시는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시적 스토리를 미리 잡아 놓고 언어에 살을 붙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죠. 그리고 현실풍자 그런 이야기도 하셨는데, 전면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고 풍자하는 방식의 시는 많으니까 저는 뭔가 우회적으로 풍자하는 방식을 택했던 거예요. 제 첫 시집을 볼 때 대부분 언어의 조합이나 연결 등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의미는 말놀이 뒤에 숨어 있으니까, 읽으면 읽을수록 시가 다르게 와 닿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죠.

 

    ▶ 영주 : 두 번째 시집을 보면 첫 시집에서 보여주는 유려함과 매끄러움이 확장되면서 비극적 세계 인식이나 그것들이 품고 있는 부조리를 훨씬 더 많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첫 시집이 매끄럽게 흘러간다면 두 번째 시집은 어딘가 모르게 툭툭, 걸리는 지점이 많다고 느껴지는데, 일부러 매끄럽지 않게 시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나요?

 

    ▶ 은 : 저는 시를 쓰면 묵독이라도 낭독을 꼭 해봐요. 그러면서 걸리는 부분을 체크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고쳤어요. 산문시가 많았기 때문에 시가 매끄럽게 읽히지 않으면 미덕이 없는 것 같아서 부사 하나 단어 하나 세심하게 고민하며 만졌어요. 그런데 이게 첫 시집의 교훈이랄 수도 있는데, 시집 내고 나서 했던 인터뷰나 신문기사를 보면 열이면 열 말놀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행복한 비명일 수도 있지만, 너 시 재밌더라, 너 같은 시인도 있어야 해, 하고 거기서 끝인 거예요. 첫 시집이 ‘내가 언어를 이만큼 잘 부려’ 하고 썼다면 두 번째 시집은 시골길을 걷다가 자갈이 있으면 툭 차보듯이 언어를 운용했던 것 같아요. 일부러 자갈을 놓아야지 하고 작위적으로 놓는 것은 아니었고, 예전에는 퇴고 과정에서 매끄럽게 손봤을 단어들도 그 단어를 놓을 당시의 맥락을 믿고, 돌부리처럼 느껴지더라도 첫 마음을 믿고 그냥 두기도 하고요.

 

    ▶ 영주 : 그런 언어의 돌부리들이 세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끔 환기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오은 시인의 시에는 촘촘한 인과의 축이 있습니다. 시 안에서 시적 드라마를 계속 구축해 나가는 방식으로 시가 쓰이는데, 이 진행이 예상 가능한 인과의 축이 아니라 어느 순간 다른 장면으로 비약해 가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해요. 그래서인지 시가 매끄러우면서도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을 주고요. 이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인가요? 아니면 그냥 쓰다 보니…… (웃음) 언어가 언어를 추종하는 무의식적 힘을 믿는 편인가요?

 

    ▶ 은 : 하나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타내고자 한 것, 의도는 녹여내야 하니까 어느 정도 생각은 하되 언어의 무의식적인 효과를 믿는 편이에요. 초고는 빨리 나오는 편이고 퇴고를 오래 합니다. 시에 따라 더 도드라지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둘 중 하나만 있는 경우는 없는 것 같네요.

 

    ▶ 영주 : 그럼 이쯤에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오은 시인의 육성으로 시 낭독을 들어 볼까요?

 

    ▶ 은 : 첫 시집에 수록된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김언 시인이 청탁을 해서 썼던 다섯 편의 시 중 한 편인데요, 이 시는 거의 고친 게 없이 한 번에 썼어요. 두 번째 시집에도 두 편 정도 들어가 있는 연작이고요. 1920년대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썼는데, 언어의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이 자연스럽게 쓴 시입니다.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1
    -ver. macrohard

 

    어떤 날엔 멀쩡하던 빌딩들이 픽픽 쓰러졌다 괜한 오해 사기 싫어서 바람은 아예 불지 않았다 아이들은 쓰러진 빌딩 근처서 자갈을 하나씩 까먹었다 실업자들이 늘어났지만 그건 그들이 게을러서는 아니었다 백인들은 영화관에 가지 않았고 그건 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흑백영화가 백흑영화가 될 수는 없었고 피부색은 비누로 해결하기엔 그 자체로 이미 치명적이었다 주머니를 털어 남극을 정복했지만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정부에선 마녀들이 저주를 품었다고 했지만 그녀들이 용광로에 뛰어든 건 한참 전의 일이었다 어떤 날엔 FBI가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자갈을 먹어댔고 그들의 울퉁불퉁한 배에선 항시 음악이 흘러나왔다 부모들은 이제 맘 놓고 돈 걱정만 할 수 있었다 어떤 날엔 눈알을 사는 사람이 몰래 들어와 마을을 들쑤시고 다녔다 면도날로 눈알을 도려내는 장면을 영화로 찍는다고도 했다 확실히 밥은 법보다 구미가 당기는 제도였다 내일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줄지어 눈을 내놓았다 빨간 눈 파란 눈을 도려내도 영화는 여전히 흑백이었다 정부는 달리와 부뉴엘을 우주로 추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들은 이미 현실 사람들이 아니었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떼 지어 몰려다녔고 아이들은 배를 두드리며 킹콩처럼 으르렁거렸다 어떤 날엔 정말 미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노벨상을 받았지만 토마스 만은 은신처를 찾아 헤맸고 눈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집시가 되어 도시를 떠돌았다 아이들 뱃속에 있는 자갈은 내장과 밀착한 음을 냈고 사람들은 그걸 재즈라고 불렀다 안네 프랑크가 태어났지만 아무도 젖을 물려 주지 않았다 옆집이 무너져도 사람들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용감하지 않은 자는 스스로 도태되었다 어떤 날엔 바람이 불 징조가 보였지만 쓰러질 빌딩은 더 이상 없었다 FBI는 총으로 돈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돈으로 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배탈로 앓아누웠다 영화관은 문을 닫았고 곳곳에 용광로가 들어서 밤새 불을 뿜었다 광주에선 젊은 피가 끓었지만 그것마저도 여전히 흑백이었다 탕 탕 탕 총구에서 눈알이 날아가는 꿈은 그 시절 유일한 대중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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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 :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연작에는 다양한 문화 코드들이 녹아들어 있고 그것이 상호 삼투하고 충돌하면서 비판적인 의식을 생성해 내는 것 같습니다. 시대에 대한 감각들이 재현되는 것 같아서 저도 특히 좋아하는 시리즈이기도 하고요.

 

 

    이국적 감정

 

    ▶ 영주 :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란드」라는 시를 보면 시의 화자가 ‘-란드’로 끝나는 여러 나라에 가서 각각 특정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이슬란드에 가면 나는 외로움을 다스리는 훈련을 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평소 오은 시인을 보면 굉장히 유쾌하고, 개그 욕심도 있고,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성미지만 또 어느 순간에 보면 참 외로워 보일 때가 있거든요. 유난히 그 외로움을 숨기는 스타일 같은데요.

 

    ▶ 은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칭찬이 “너 진짜 웃기다”는 말이에요. 고등학교 때 별명이 ‘미친놈’이었는데 그 별명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한테 자주 불러 달라고 했어요. (웃음) 대체로 조증이 있는 사람은 다 울증을 가지고 있잖아요. 대학 때 제가 신림동 고시촌에 살았는데요. 학교에서도 늘 분위기메이커를 담당했고 술자리에서도 기분 좋게 놀았는데 막상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랬어요. 찰리 채플린 영화 보면, 분명 희극인데 참 슬퍼 보일 때가 있잖아요.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많이 느끼곤 해요. 그런데 그런 외로움이 싫지 않고 때론 필요하다고 느껴요. 단순히 감정적인 외로움이 아니라 존재의 외로움인 거죠. 부모가 있어도, 애인이 있어도 다 외로운 거 아닌가요? 오늘도 집에 가서 울지 몰라요. (웃음)

 

    ▶ 영주 : 외로움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결국엔 시를 쓸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아는 독자 중에 한 분은 시는 다 청승 아니냐고, 평소에 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오은 시인의 시집을 보고는 너무 재밌어서 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오은 시인에게는 기존의 서정적인 시풍을 지루해하는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색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은 시인의 시에는 서정성이 없는 걸까요? 혹은 색다른 방식의 서정인 건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은 : 기본적으로 저는 서정시가 아닌 시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정과 비서정을 나눠서 뭐가 더 좋고 낫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 같고. 서정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시와 뒤로 숨는 시가 있을 뿐이지 시인들이 무슨 목석도 아니고, 감정 없이 시 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말놀이가 현란하니까 서정이 뒤로 숨은 것일 뿐 모든 시는 다 개별적인 서정성을 지니고 있어요. 반대로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네요. 서정시라는 게 그렇게 위대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인가요? 아무쪼록 저는 그냥 시를 쓰는 거지 구태여 서정시를 쓰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 영주 : 오은 시인은 걸어 다니는 검색엔진으로도 유명합니다. 미술 산문집 『너랑나랑노랑』을 펴내기도 하셨고요. 다양한 장르에 조예가 깊고 또 문화코드가 다 자기화 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런 타 장르와 시 쓰기가 결합되는 지점이 있는지, 시 쓰기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 은 : 제가 융합기술 대학원을 졸업했는데요. 그곳에서 하나 배운 게 있어요. 저는 사회학과 학생이었고, 제 동기가 전부 20명이었는데 경영대, 음대, 미대, 경제학과 등등 겹치는 전공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친구들과 가령 핸드폰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전부 다 다른 이야기를 해요. 저는 사회학과니까 핸드폰이 가지고 있는 문명의 이기(利器), 단절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경영학과 친구는 마케팅 차원에서 어떻게 사람들 관심을 끌까를 이야기하고, 미대 친구는 디자인이 어떻다, 공대생은 벨소리가 몇 비트다 그런 얘기를 한단 말이죠. 그게 저한텐 정말 충격이었어요. 어떤 하나의 기계 혹은 현상을 볼 때도 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거잖아요. 타 장르가 제게 끼치는 영향도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음악 하거나 미술 하는 분들과도 친분이 많은데, 문학 하는 사람을 만나면 친구나 가족 같은 편함이 있지만 자극을 받는 건 도리어 타 장르 사람들과의 소통인 것 같아요. 접근방식, 시각 자체가 다르다 보니 영감을 얻는 부분이 많아요. 이건 여담이지만 제가 일본 하라주쿠에 갔을 때 처음으로 내가 너무 정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 하녀복 입고 있고 막 고스족들 돌아다니고. (웃음) 중요한 건 시선을 확장시키고, 달리 보는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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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관객

 

    ▶ 영주 : 그럼 이쯤에서 독자 분들의 질문을 받아 볼까요?

 

    ▶ 독자 : 시에 ‘너’라는 표현이 유난히 많은데,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요?

 

    ▶ 은 : 저도 몰랐던 사실을 짚어 주시네요. (웃음) 아마도 시 안의 ‘너’는 사실 ‘나’일 거예요. 특정한 누군가를 상정하고 쓴 것이 아니고, 남녀노소 누구나 될 수 있는, 그 사람이 있다는 것만 있지 구체성은 없는 누군가. 그러고 보니 모든 시의 ‘너’가 동일인일 수는 없겠지만 또 동일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사람’이랄까요.

 

    ▶ 독자 : 창작을 할 때 소재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시는지요?

 

    ▶ 은 : 고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저에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요, 제겐 어떻게 다르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 영주 : 그거 랭보가 한 얘기 아녜요? (웃음)

 

    ▶ 은 : 오, 저 몰랐어요. (일동 웃음) 어쨌든 제가 말놀이 하는 것도 어떻게 다르게 쓸 수 있을까, 내 개성은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일 거예요. 가령 흔하디흔한 소재인 ‘사랑’에 대해 쓰더라도 접근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전혀 다른 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결국은 시선과 접근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독자(오창은 문학평론가) : 오은 시인의 시를 보면 언어에 대한 트레이닝이 상당히 잘 되어 있고, 단어의 조합, 띄어쓰기, 문장의 낯선 배치 등등 ‘언어의 자유로움’이 최고의 장점이자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 안에 쉼보르스카 시가 인용되기도 했는데, 외국시/번역시도 좋아하시나요?

 

    ▶ 은 : 가장 좋아하는 외국 시인이 쉼보르스카예요. 올해 초에 열흘쯤 뉴욕에 다녀왔는데 그때 쉼보르스카의 영역 산문집도 사가지고 왔어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끝과 시작』이라는 시 선집을 특히 좋아하고요. 그 책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게, 분명 뒤로 갈수록 나이 들어 쓴 시일 텐데 언어는 더 생생해지고 있단 말이죠. 젊었을 땐 실험적이고 문제적인 시를 쓰던 시인들도 나이가 들면 문학을 시작할 때의 문제의식이나 자세를 견지하기 힘든데 쉼보르스카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더라고요. 아, 나도 이런 시인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심지어 데뷔작 제목도 「단어를 찾아서」이니, 이건 뭐 안 좋아할 수가 없죠. (웃음)

 

    ▶ 독자(김미월 소설가) : 국어사전을 보고 시를 쓰신다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특별히 국어사전의 단어들만 그러한가요? 아니면 외국어도 해당되나요?

 

    ▶ 은 : 외래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전혀 모르는 단어, 가령 아이슬란드어처럼 잘 모르는 언어를 들을 때 받아 적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뉴욕에서 아랍어로 된 시집을 사온 적도 있고, 대만에 갔을 때도 한자가 예뻐 보여서 한자로 된 시집을 사온 적이 있고요. 어떤 단어가 꼭 뜻을 가져야 완성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도 사전적인 의미에서 겨우 한두 개 정도만 알고 사용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단어는 모국어이면서 이국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영주 : 슬슬 대화를 마무리할 시점이 된 것 같네요.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다고 했는데, 생활인과 시인으로서의 삶이 충돌을 빚을 때는 없나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세요.

 

    ▶ 은 : 생활인이 되고 나니까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고 시 쓰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갈등보다는 길항이 아닐까 싶어요. 시 써서 먹고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밥벌이는 밥벌이대로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쨌든 시인은 잡(job)이나 커리어(career)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 영주 :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시 낭송 부탁드립니다.

 

    면접

 

이름이 뭔가요?
전공은 뭐였지요?
고향에서 죽 자라났나요?

 

여기에 쓰여 있는 게 전부 사실입니까?

 

질문만 있고 답이 없는 곳에 다녀왔다

 

서 있어도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작았다

 

가장 많이 떠들었는데도
듣는 사람들보다 귀가 아팠다

 

눈사람처럼 하나의 표정만 짓고 있었다
낙엽처럼 하나의 방향만 갖고 있었다

 

삼십여 년 뒤,
답이 안 나오는 공간에서
정확히 똑같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녹지 않았다
순순히 떨어지지 않았다

 

 

 

    *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에 수록된 시 「면접」을 함께 읽는 것으로 그날의 행사는 끝이 났습니다. 오은 시인은 낭독이 끝난 뒤 이 시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요. 모 대기업 상무님께서 신문에 게재된 이 「면접」이라는 시에 감동을 받고 시집을 사서 읽어 보셨는데, 그 시만 좋고 다른 시는 하나도 안 좋다고 하셨더라고요.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오은 시인이 덧붙인 말은 이러했습니다. “저 시가 입사 전에 느낀 감정을 녹여낸 시였다면 요즘은 이상하게 「저녁이 없는 삶」 같은 시가 쓰이네요. (웃음)” 끝까지 재치 넘치는 대답이라니! 지루할 새 없이 어느덧 2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습니다.
    10인의 열혈 독자 여러분과 함께 근처 호프집으로 이동하면서 오은 시인의 시 제목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보았습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 수상해, 이국적 감정, 최후의 관객…….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묘하게 말이 되고 수상하고 이국적인 데다 늘 최후인 시편들. 오은 시인은 정말이지 단어의 무게를 재는 신비한 저울을 가진 시인이구나. 영원한 모국어이자 이국어일 단어들을 앞으로도 정성껏 어루만지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쓰일 시 제목들이 「저녁이 없는 삶」, 「야근」 이라면 좀 어떤가요. 그의 세 번째 시집이 이토록 기다려지는데!

 

interview_oy-la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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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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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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