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공개 인터뷰 나는 왜 제4회]삶의 짙은 그늘 속에서 리얼리스트를 꿈꾸는가_(이재웅소설가 편)

  • 작성일 2014-07-01
  • 조회수 1,084

 

연속기획 공개인터뷰_ 나는 왜?(제4회)

 

 


삶의 짙은 그늘 속에서 리얼리스트를 꿈꾸는가?

― 소설가 이재웅 편

 

정리 : 안희연(시인)

 

 

 

 

    요 몇 달 어두운 소식이 참 많이 들렸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불쑥 물속이 생각나 내내 울먹이는 시간이었지요. 남달리 힘겨운 여름의 입구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재웅 소설가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재웅 작가의 첫 장편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라는 제목을 “그런데, 우리는 눈물을 그쳤나요?”라고 바꾸어 읽으며,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프게 자각하면서요. 그래서일까요. 6월의 한가운데서 이재웅 소설가를 만나게 된 것이 그냥 우연이라고만 생각되지가 않았습니다. 이재웅 소설가는 그동안 누구보다 소외된 이들의 편에서, 누구보다 날카롭고 바른 목소리로 세계와 인간을 탐색해 온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리얼리스트이니까요. 우리는 그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왜 삶의 짙은 그늘 속에서 리얼리스트가 되기를 꿈꾸시나요? 그리고 우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그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interview-4_01

 

    *

 

 

    아웃사이더 소년

 

    ▶ 오창은(이하 오) : 《문장 웹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얼마 전 두 번째 창작집 『불온한 응시』로 권정생창작기금을 수상하신 이재웅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이재웅 소설가는 2001년 《실천문학》으로 데뷔를 하셨는데요, 등단 당시의 마음가짐이나 심경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이재웅(이하 이) : 너무 좋았습니다. (웃음)

    ▶ 오 : 너무 짧은데요?

    ▶ 이 : (웃음) 네. 저는 2001년에 운 좋게 등단을 했어요. 사실 그때 응모한 작품은 신인상은 받지 못하고, 신인상 최종심에서 떨어진 작품인데요. 당시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맡고 계셨던 다섯 분 선생님들께서 동의를 하면 추천등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들께서 제 작품이 좀 아깝다고 하셔서 추천등단을 시켜 주신 거죠. 아마 신인상을 받았으면 청탁도 좀 오고 그럴 텐데 작품만 내고 상금도 못 받은 형편이었고 그래서 별로 주목을 못 받았어요. 등단하고 청탁이 전혀 오지 않아서 4~5년 동안 한 편 발표한 게 전부였고요. 당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청탁이 들어오면 직장을 그만두려고도 마음먹었었어요. 그런데 청탁은 없고. (웃음)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게 됐고 때마침 쓰고 싶은 장편을 구상해 둔 것도 있고 해서 장편 탈고를 하게 됐죠. 아무쪼록 등단했을 때 기분은 좋았는데 그 후론 많이 씁쓸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인생이 좀 꼬인 것 같아요. (웃음)

    ▶ 오 : 대개는 작가들이 단편집을 먼저 출간하는 게 관례인데, 그런 연유로 이재웅 작가님께서는 장편을 먼저 출간하게 된 거군요. 이재웅 소설가의 첫 장편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재웅 작가님의 책은 작가들이나 문창과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데요. 첫 장편 쓰실 때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작업할 때의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 이 : 작업기간은 8개월 조금 더 걸린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쓸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돈벌이를 중간 중간 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멈췄다 다시 시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좀 늘어지는 감도 없지 않았고요. 소년을 화자로 내세운 소설이다 보니 작가인 제 서술이 중간 중간 끼어드는 것을 제어해야 하는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애초 구상 단계보다는 이 소년이 조금 더 감정적인 인물이 된 것 같아요.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아마도 소년이 센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듯합니다.

    ▶ 오 :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는 시대에 대한 부정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이 세련된 포즈로 작가적 개성을 탐색하는 데 몰두했다면 이 작품은 시대와 대결하려고 하는 포즈가 엿보입니다.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성 · 돈 · 가난 · 소외 문제 등 자본주의의 부정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쓸 때 어떤 문제의식이 작가를 사로잡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이 : 여담이지만 제 소설에 대한 이렇게 깊은 질문지는 처음 받아 봐요. (웃음) 오창은 평론가께서 작품을 아주 치밀하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소설가에게 애정을 가져 주신 걸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자본에 대한 저항은 예전부터 있어 왔던 주제의식이고 저 역시 그것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 작품은 거의 1997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인데 아시다시피 1997년에는 IMF가 있었죠. 곧이어 2000년대에 진입을 했는데 저는 이때의 대한민국 사회라는 것이 굉장히 준비 없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해고자도 굉장히 많았고, 2000년대 들어 다양성, 다변화 문화를 외치면서 민중문학과 동떨어진 중산층 계층의 신종 질서가 팽배하기 시작했죠. 몸, 물질, 쾌락이 왜 부정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담론도 그중 하나였고요. 아무쪼록 담론은 그렇게 흘러가고 사회는 재구성되는데 저는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인간적으로 추악한 모습들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런 감각들이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를 쓸 때 투영이 되어 있었고요.
    당시의 한국 문학도 그런 사회적 흐름과 마찬가지로 내향성의 문학, 환상주의 등이 팽배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저는 그러한 문단의 질서에서 조금 비껴서 있었어요. 그 이유는 제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복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청 시절 문예운동 집단에서 배운 것들, 그러니까 인간의 사회적 삶이라는 게 단순히 주체로 살아간다거나 객체와 주체가 혼융된 주체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된 주체라는 점 등을 사유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별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책이 안 팔려 가지고. (웃음)

    ▶ 오 : 질서 내에 있지 않은,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유로움이 오히려 개성적인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웃사이더적 정체성이 탄생시킨 작품이랄까요. 특별히 이 작품에는 ‘늙은 소년 화자’ 이준태의 형상이 이채롭습니다. 이 ‘늙은 소년’의 낯선 목소리는 자살 폭탄 테러범처럼 위협적이어서 독자를 불편하게 하거든요. 낯설게 하기와 리얼리즘이 결합된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화자를 설정하셨는지, 이 소설을 통해 구현하려 한 부정정신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 이 : 이준태를 형상화할 때 가장 유념에 두었던 것은 준태가 자신의 삶이나 감정을 막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물리적이고 물질적으로 바라봐 주길 원했다는 것이에요. 행동 문학적 성격이 강한 것일 텐데요. 평소에도 저는 소설을 쓸 때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쓸 만한 소설인가 쓰지 말아야 할 소설인가를 재단하는데 그때 대입하는 키워드가 말씀하신 부정정신의 실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 쓸 때는 그런 것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어요. 좋게 말하면 혁명적 슬픔이고 나쁘게 말하면 신파적 슬픔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실체, 준태의 부정의식은 비단 이 소설뿐 아니라 제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것일 텐데 그것이 작법상으로 그나마 제대로 구현되기 시작한 건 『불온한 응시』에 이르러서라고 생각합니다.

interview-4_02

 

 

    가장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받아야 할 소설가

 

    ▶ 오 : 첫 단편집 『럭키의 죽음』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책이 2007년에 나왔죠. 장편을 먼저 발간하고 나중에 단편집을 냈을 때, 개성적 글쓰기가 지배하는 당시 상황과 갈등관계를 형성했을 듯합니다. 작가적 개성이 풍미하는 흐름 속에서 어찌 보면 정공법을 택한 것인데, 자신의 작품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시고 싶은가요.

    ▶ 이 : 제가 『럭키의 죽음』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었어요. ‘내 펜은 너무 낡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문학적 대중들한테는 문단의 주류적 흐름이 영향을 크게 미칠 테고, 저 역시도 주류 문학의 흐름을 의식하고는 있었죠. 내가 너무 낡은 소설을 쓰나 소외감도 깊고 생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 오 : 실제로 작품에서도 자기 내부의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낡았다면 낡은 것일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문학사의 전통을 잇는 현대적인 변주가 아닐까. 제가 보기에 이 『럭키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받아야 할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 : (웃음)

    ▶ 오 : 『럭키의 죽음』의 전반적인 주조는 고립, 외로움, 세대 간의 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작품집에 실려 있는 단절의 감각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가요? 시대를 바라보는 태도였나요? 아니면 콘셉트(Concept)였나요?

    ▶ 이 : 어떤 작가도 콘셉트(Concept)를 가지고 움직이진 않을 거예요. 제 자의식의 투영도 있을 것이고 시대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나의 삶과 타자의 삶을 구분하고 살지 않아요. 주체라는 것도 객체의 혼용으로서의 주체일 것이고, 이성과 감정도 분명히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요. 소설은 일종의 ‘감정의 이성’을 가지고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압력이라고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오든 신분적으로 오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시기에는 나를 그리든 내 바깥을 그리든 단절감, 고립감, 외로움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던 것 같아요. 다만 『럭키의 죽음』은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를 따랐다면, 『불온한 응시』부터는 제 이념의 지향성이 본격화된 것 같습니다.

    ▶ 오 : 『럭키의 죽음』(2007)을 낸 지 6년 만에 『불온한 응시』(2013)를 간행하셨습니다. 『불온한 응시』에 이르면서 아래로부터의 시선, 삶의 언저리에서 본 시선의 ‘불온함’이 강화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중심이라는 것은 중심을 뒤흔들겠다는 결연성이 노출될 수밖에 없겠지요. 특별히 이 소설집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형상화한 작품이 눈길을 끄는데 그 작품들을 쓰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 이 :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다룬 단편, 「월드피플」이나 「안내자」는 사실 ‘외국인 노동자의 곤궁함을 다루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작품은 아니고요. 도리어 자본이 인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자본이 인민의 생명력을 분해할 때 반대로 인민은 어떤 생명력을 지니는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에요. 서사적 곤란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제가 리얼리즘 소설을 구현할 때 지니는 한계, 즉 ‘경험’에 대한 부분일 텐데요.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써야 할 때 난처하고 어려운 점이 있죠. 그렇지만 그런 점은 경험적 실증 이상의 통찰력으로 메워 가는 것 같습니다.

    ▶ 오 : 『불온한 응시』에서는 「1,210원」과 「전태일 동상」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들은 운동 이후의 스산한 풍경, 혹은 변화한 현실 속에 무력화되어 가는 주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회의하는 태도와 성찰이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요. 풍자와 페이소스가 압권입니다.

    ▶ 이 : 말씀하신 것처럼 제 소설에는 후일담적인 요소가 있지요. 제가 93학번인데요. 제 세대는 80년대 학번 선배들처럼 시대의 정면에 서지 못했고 선배들의 깃발을 따라다닌 세대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배들이 생각하는 후일담과 저희 세대가 생각하는 후일담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어요. 제가 후일담적 요소를 그리면서도 기존의 후일담과 변별력을 지닌다면 그 지점 때문일 겁니다. 아무래도 사회주의적인 신념이 무너졌을 때 선배들이 가졌던 열패감, 비애와 제 비애는 다를 테니까요.
그 후일담의 실체를 좀 더 구체화하자면 체념의식, 무너지는 것에 대한 적개심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체념했다고 해서 포기한 것은 아니거든요. 제가 후일담 문학에 뿌리를 두는 건 맞지만 그걸 무너짐으로만 그리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 오 : 「절규」, 「인간의 감각」, 「불온한 응시」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절규」는 삶의 풍경, 「인간의 감각」은 동물화 되는 인간의 모습, 혹은 감성이 훼손된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고, 「불온한 응시」는 불만으로 요동치는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내면을 형상화하면서 의도했던 효과는 무엇인가요?

    ▶ 이 : 오창은 선생님께서 오늘 엄청나게 칭찬을 해주시네요. 저 힘내라고 작정을 하셨나 봐요. (웃음)

    ▶ 오 : 너무 티 났나요?

    ▶ 이 : 네, 티 났어요. (웃음) 오늘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문제네요. 제 작품은 평론가만 좋아하는 것 같고. 갑자기 문제의식이 확 생기네요. (웃음) 아무쪼록 말씀하신 작품들이 질적인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아마도 그 작품들이 ‘냉혹함’의 감각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적개심’은 냉혹함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어떤 인물이나 상황을 설정할 때 ‘냉혹함’이라는 구심점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거든요. 개별 작품마다 창작의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매 작품 ‘냉혹함’에 스펙트럼을 부여하려고 애를 씁니다.

 

interview-4_03

 

 

    내면의 어둠을 응시하는 리얼리스트

 

    ▶ 오 : 말씀을 듣다 보니 그저 바깥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과한’ 바깥을 그리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이 : 제가 기존의 리얼리즘 작가와 다른 것이 뭐냐, 하고 묻는다면 자의식이 강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선천적인 기질일 수도 있겠지만 선배 세대보다 저희 세대는 구조로부터 왜소화되고 원자화되는 현상을 불가피하게 겪었던 것 같아요. 자본의 면역력에 있어서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때의 개인은 자의식이 강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죠. 그게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연유로 저 역시도 개인적 자의식이 강하게 투영되는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증된 주체라는 문제도 있구요.

    ▶ 오 : 애초에 우리의 질문은 “왜 삶의 짙은 그늘 속에서 리얼리스트를 꿈꾸는가?”였는데,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왜 내면의 어둠을 응시하는 리얼리스트가 되고자 하는가?”, 어떠세요?

    ▶ 이 : 제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 같은데요. (일동 웃음)

    ▶ 오 : 내면에서, 내파하면서 바깥의 현실을 구현한다는 것이 이재웅 소설가의 리얼리즘과 기존의 리얼리즘이 변별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덧 한 권의 장편소설과 두 권의 창작집을 가진 작가가 되셨습니다. 소설 세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일 텐데요. 앞으로의 작업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 : 제 이념적 지향성이 너무 경직된 형태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들지만, 기본적으로는 그것이 견고한 형태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쓰겠다고 해서 작품이 반드시 그렇게 따라와 주진 않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 것이다, 라고 확실히 이야기하기가 애매하기는 한데요. 어쨌든 앞으로도 『불온한 응시』의 세계관에서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들을 쓰게 될 것 같고요. 특히 요즘에는 ‘의지’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의지는 감각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지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지 않을까. 아무쪼록 앞으로는 ‘의지’를 지닌 작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interview-4_04

 

    ▶ 오 : 그럼 이쯤에서 독자 분들의 질문을 받아 볼까요?

 

    ▶ 독자 : 작가님 문장이 굉장히 시원시원하다고 느꼈는데요. 자신을 다루는 것에 대한 결벽증, 습관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가 예전에 작가님께서 안톤 체호프를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 이 : 제가 문학적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이 몇 사람 있어요. 안톤 체호프도 그중 한 사람이고요.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문청 시절에는 참 좋아했죠. 안톤 체호프 작품은 초기 · 중기 · 후기작이 다 다른데요. 후기 작품을 보면 굉장히 우울하고 그렇지만 초 · 중기 작품은 재치가 있어요. 제가 좋아했던 건 중기까지의 재치 있고 건강한 민중성, 인간 감각에 대해서 날카로운 번쩍임을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재주가 탁월한 작품들이에요. 내가 작품을 쓰면 이런 지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결국 못 가졌지만요. (웃음)
    소설가들이 많이 그렇겠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나와 소설가로서의 나는 차이가 있어요. 소설만 쓰려고 하면 쓸데없이 진지해지거든요. 작품을 쓸 때 쭉 써놓고 퇴고를 하는 편인데요. 퇴고를 많이 하면 할수록 문장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대든다’고 표현하는데, 확실히 많이 대든 작품은 문장이 좋아요. 물론 초고가 워낙 엉망이어서 고칠수록 좋아지는 거겠지만요. 저는 문체는 정념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요. 작품이 통일된 문체를 갖는다는 것은 정념적 일관성을 갖는다는 뜻인 것 같고 그게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건 참 힘든 문제예요. 며칠 뒤에 고쳐도 정념의 상태를 똑같이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고요.

    ▶ 독자 : 한 작가가 사회적 · 문화적 담론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이 : 그렇게 되면 좋겠죠. 역사에 남을 테니까.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라는 건 결국 문학사에 다 남겨지니까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담론을 의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평론가들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고. 담론 틀과 창작 틀은 변증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어요. 담론을 형성하고 이념화하는 사람들의 작업도 중요하고, 창작자들이 그런 담론 틀을 인식적으로 정서적으로 걸러서 자기 작품에 반영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렇지만 창작가가 담론에 지나치게 얽매이기 시작하면 종속되고 말아요. 담론을 함부로 욕망해서도 안 되고 편승해서도 안 되고 변증법적인 관계를 가지고 가는 게 옳다고 봐요.

 

    ▶ 독자 : 출간하신 세 권의 책이 화면에 떠 있는데 어느 책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 이 : 좋은 질문이네요. (일동 웃음) 저는 두 번째(『럭키의 죽음』)가 제일 맘에 듭니다.

 

    ▶ 독자 : 저는 첫 책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서 궁금해서 여쭤 봤습니다. (웃음) 개인적으로 저는 작가님 소설 중에 『불온한 응시』를 제일 좋아하는데, 작가님이 특별히 애착을 지닌 작품이라든가 가장 힘들게 썼다든가 하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이 : 『불온한 응시』의 1인칭으로 쓴 작품들에 특히 애착이 많이 갑니다. 자의식의 투영 정도, 정서적 유착이 특히 강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불온한 응시』에서 제일 애를 먹인 작품은 「안내자」였어요. 원래는 컴퓨터로 작품을 쓰는데 어찌나 서술이 안 되는지 노트를 꺼내서 손으로 썼어요. 결국 육필로 써서 마무리를 지었는데 다시 보니 마음에 안 들어서 며칠 있다가 키보드로 다시 썼죠. 그런데 꼭 쓰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끝장을 보자라는 마음으로 썼죠.

 

    ▶ 독자 : 처음에 작가님 작품을 보기 전에 사진을 먼저 보았는데 온화한 인상이었어요. 그래서 글도 온화할 줄 알았는데 『럭키의 죽음』에서 개가 죽는 장면을 보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어요. 필체도 굉장히 강하고. 직접 뵈니 실제 성격이 그리 세보이지는 않은데 굳이 왜 강한 소설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 이 : 유미주의 문학이나 속물적 휴머니즘 등에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런 반발심 때문에 소설이 사나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30대 후반 들어서는 순해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저를 좀 아는 분들은 저더러 세다고 하는데. 서른 후반 되면서부터는 체력이 꺾여서 성질대로 건방지게 할 수가 없어요. (웃음)

 

    ▶ 독자 : 밝고 행복한 이야기를 써야 독자들이 잘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작가님 책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도 밝은 이미지인 줄 알고 펼쳤고요. (웃음) 정작 작가님이 쓰는 것은 어두운 이야기인 것 같은데, 작품을 쓸 때 딜레마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 이 : 어떻게 써야 한다, 그런 것은 없고. 제가 제 냉혹함을 끝까지 밀고 간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합니다. 이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끝내거나 소설 속 인물이 이만큼 했으니 끝내라 하면 끝을 내는 경우도 있고요.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끝이 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더 쓰고 그러죠.

 

interview-4_06
interview-4_07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질문을 하는 이도 대답을 하는 이도, 그 문답을 경청하는 이도 참으로 진지하고 열성적이라고 말이죠. ‘적개심’이라든가 ‘냉혹함’, ‘의지’와 같은 저 무거운 단어들도 이재웅 소설가의 입을 빌려 나오니 이상하리만치 놀라운 힘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저 단어들을 문자 그대로만 대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서 절절하게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런데, 우리는 눈물을 그쳤나요?”라고 물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아픈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밤 그의 펜이 점점 더 뾰족해질 거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문장웹진 7월호》

 

추천 콘텐츠

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