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 시인
- 작성일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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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미국의 현대 시인
― [제1회] 블랭크 어펙트, 벤 파마, 미국의 릭키 컬쳐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미국의 현대 시인을 소개하며 > |
◆ 시인 소개 _ 벤파마
1982년에 출생한 벤 파마는, 미국 시인이자 편집자 및 큐레이터이다. 저서로는 아티스트북『쇼핑 마녀(Mall Witch)』가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소책자와 소논문을 집필했다. 2015년, 출판사 미운오리새끼(Ugly Duckling Press)에서 그의 첫 장편『공상(Fantasy)』이 출간될 예정이다. 벤 파마는 출판사 ‘원더(Wonder)’의 공동 설립자이다.
◆ 벤파마의 시
from Like
There are some feelings I’d like to demonstrate
「좋다」 중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I’m sad a lot 나는 자주 슬퍼
Have you met my housekeeper? 우리 집 가정부 만나봤어?
I want a Blonde more than I want my next book to be pink 다음 책 표지색이 분홍색으로 되는 것보다 더 금발여자를 원해.
I think I’m in love with the world of billboards and magazines 광고랑 잡지 세계에 빠진 것 같아
I think the invention of the alcoholic energy drink Sparks was the Event that launched the 21st century 알코올 에너지 드링크 스파크가 발명된 게 21세기를 시작한 사건인 것 같아 드루즈에 붙은 저 우편물을 보니 난교파티가 시작됐어, 시발.
Soak a sugar cube in bitters 비터에 각설탕을 담가
Who will keep my secrets when I die? 죽으면 내 비밀을 누가 간직해줄까?
I want a swan to spit an expensive Malbec 백조가 비싼 말벡을 부정한 내 입으로
시 출저 「cool memories, 2014 spork press」 |
◆ 블랭크 어펙트, 벤 파마, 미국의 릭키 컬쳐
20세기 하반기에, 주관성은 세계화와 세계 무역에 있어서 정체불명의 경제를 향한 길을 만들었다.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를 쓴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이 과정을 “정서의 쇠퇴”라고 했다. 결국, 주제는 과거, 현재, 미래 간에 일시적인 지속성을 구축하려는 능력을 빼앗는다. 인간의 경험에서 기승전결의 상실은 제임슨이 “파일 조각”이라고 일컫는 것으로 지리멸렬하게 된다. 시학에서, 문학 비평가 스티펀 버트(Stephen Burt)가 ‘함축’ 시학을 만들어낸 것의 발흥이 문제가 되었다. 시속 화자의 자아 분열을 특징으로 한 함축시는 사회의 승화된 자아를 반영했다. 21세기에 주관성이 현실을 상쇄한 반면, 결국 인간이 그 자체를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는 그릇처럼, 혹은 벤 파마가 쓴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계”인 현실을 빼앗음으로써 급속도로 가상의 세계가 주관적인 인간 경험을 표현해내는 유일한 환경이 되었다.
형체를 가진 것에서 가상의 것으로 전환된 점을 예로 들자면, 식당에서 음식을 찍어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프로그램에 게시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인간 주관성,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경험의 목적(맛난 음식을 먹는 것, 식당 분위기를 즐기는 것,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닌 가상 세계에 입증할 문서이다. 마찬가지로, 벤 파마의 시 「좋아요」에서, 그는 “이메일로 차였을 때/ 자동응답을 켜는 동안 / 내가 새로운 상황을 알기까지 / 2주가 걸렸어”라고 썼다. 이는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가상의 현실”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가상 세계를 본떠 만든 현실 대신에, 현실을 본떠 만든 가상 세계이다.
하지만, 국가 안보국을 거쳐 미국 정부와 소셜 미디어 기업이 전 세계인들의 가상세계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있다고 에드워드 스노우덴(Edward Snowden)이 폭로한 이후, 인간 정체성의 위기가 닥쳤다. 스노우덴의 폭로는 절망적인 암시를 뜻하는데, 이전에 형체를 가진 주관성처럼 가상의 인간 주관성은, 결국 장소를 제공하고 가상의 인간 상호작용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게 해주는 세계적인 기업(트위터, 페이스북, 지메일 등)이 소유하고 작동시킨다.
형체가 있는 것에서 가상의 것으로 인간 주관성의 이동이 실패한 것처럼, 21세기 정치적인 조치는 인간의 주관성을 탄압하기 위해 집단주의 상황으로 뒤틀었다. 에드워드 스노우덴의 NSA 누설 사건, 첼시 매닝(Chelsea Manning)이 위키리크스 웹사이트에 누설한 사건, 월가점령운동 등이 모든 것은 정부가 기업을 소유하고 있고 사람들의 관심사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선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에는, 기업은 미국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합법적인 상태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월가점령운동 같은 어떤 움직임도 집단 행동의 모의실험이고, 유명인사 숭배, 스포츠, 대중매체 오락물과 일일시트콤 같은 정치적 반란은 집단의 의미, 사회적 통제의 한 형태, 인간 의지의 끊임없는 삭제를 위한 필수적인 모의실험이 되었다.
벤 파마의 시는 이 배경인 미국에 맞서서 주체성과 진실성을 표현함으로써 투쟁을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유명인사 숭배와 브랜드 집착의 증거가 나타나 있는 반면, 실질적인 사람들의 상호연결에 대한 열망과 갈망 또한 나타나 있다. 채팅 어플리케이션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문화 속에 예술의 가치를 반추하는 언어로 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이야기의 조각, 수사적인 서술, 명상을 통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911테러, NSA스파이게이트, 조지 워싱턴 부시 대통령, 해체된 제국의 문화를 견뎌온 세대의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감정을 대신하거나 함축 시학처럼 분열된 정체성을 반영하려 했다기 보단, 분리와 재전유는 의미 있는 담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특징들이 일종의 바로크 시대의 시를 만들어낸다는 논쟁을 빚어오고 있지만, 거기에는 과장되거나 화려함은 없다. 그것은 그 순간의 언어로 쓰여졌다. 부풀려진 것은 없다. 역사 혹은 저널리즘이라고 불려질 순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존재 할 것이다.
글 _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벤파마와의 인터뷰
제이크(Q) : 벤파마(A)
Q : 안녕하세요, 벤. 저는 당신이 어째서 뉴욕으로 이사했는지, 또 그게 당신과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읽었습니다. 아마도 시인으로서 뉴욕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말은, 사람들은 뉴욕이라 하면 미국에서 창조와 에너지의 소용돌이였던 20세기 뉴욕상을 떠올리거든요. 물론 지금도 뉴욕이 그렇긴 하지만, 미국의 문화 전망이 상당 부분 분산되었잖아요. 그리고 맨해튼은 너무 비싸고,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백인이 살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을 뉴욕에 사는 젊은 시인 그룹의 출현으로 연결 짓고 있고, 또 외부에서 본 뉴욕을 여전히 우리는 로르까가『뉴욕에서의 시인(1940)(Poeta en Nueva York)』에 쓴 상상대로 여기고 있어요. 또 뉴욕은 당신이 쓴 많은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어요. 당신이 생각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뉴욕에 살면서 글을 쓰는 시인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A : 주택지구 상류화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여전히 영향력 있지만 힘든 도시죠. 문화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부드러워진 당신의 감각은 정확하며, 심지어 수많은 도심문화를 창조했던 가령 패티 스미스(Patti Smith)와 데이비드 번(David Byrne) 같은 사람들, 그리고 뉴욕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에게 그 자체를 차단하고 있죠. 뉴욕은 여전히 동부연안의 출판 중심지이고, 나는 뉴욕에 있고 싶어요. 하지만 살기가 힘들어서 떠나고 싶어져요. 뉴욕 시에 관한 이런 류의 향수는 뉴욕 입장에서는 나쁘다고 말하고 싶군요. 패티 스미스와 데이비드 번을 만든 뉴욕은 오랜 시간을 거쳐 많은 것이 변했고, 그들 또한 스스로 변했어요.
Q : 그래요. 뉴욕에 관한 향수라…… 일종의 겹쳐놓은 향수겠죠, 우리는 존재하는 곳에서 뭔가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뭔가를 갈망하는 것 같은 사색적인 향수라고 생각해요. 역겨울 수도 있어요. 인터넷이 갈망에 대한 플랫폼이었을 때, 역겨웠던 것처럼요. 그리고 고양이 사진도 역겨워요. 하지만 인터넷은 우리가 대화하는 장소예요. 지금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선 거의 그런 셈이죠. 『쿨 메모리즈』 도입부인 「좋다」라는 시는 마치 채팅창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한 사람이 혹은 여러 사람이, 진짜로든 상상으로든 간에 마치 채팅창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썼어요. 그리고 단호함과 당신이 읽어낸 진지한 태도가 있고, 당신 작품 속에 수사적인 시구들을 찌부러뜨려놓는 방식이 있어요. 그 방식으로 하여금 놀람, 반어뿐 아니라 나약함과 무상을 만들어내죠. 심지어 어마어마한 시구를 맞닥뜨렸을 때, 가령 “관심 받지 못할 거예요.” 같은 말이 우리들 위에 떠 있어요.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언어는 당신이 쓴 글 한 줄과 같아요. “문학, 모든 물리적인 세상, 다시 말해, 우리가 늘 살고 있는 실제 세상.” 그런 면에서 보면, 일종의 자아의 탈영토화가 있어요.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자랐습니다. 이 탈영토화가 그런지 음악(Grunge music)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림프 비스킷(Limp Bizkit)과 그 밖의 남성 밴드들은 그런지 음악을 하고 있죠. 인터넷 1세대예요. 커트 로더(Kurt Loder)가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죽었다는 보도를 한 내용, 라디오 헤드(Radio Head), 월 스트리트 점령 시위, 상상도 못 했던 테러 등……. 모두 다 보이죠. 단 호이(Dan Hoy), 존 리안(Jon Leon) 같은 당신의 작품에는 일종의 부산스러운 심리적 상태가 반영된 것 같은데, 제 생각엔 우리가 자라온 분리된 시간을 대표하는 것 같아요. 에드워드 스노우덴 시대, 웅웅대는 싸움과 셀피(스마트폰이나 웹 카메라 등으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행위) 그리고 첼시 매닝으로 이어지는 그 모든 것들이 제게 있어서는 안락함과 동시에 두려움이에요…… 오늘 날짜 뉴욕 타임지에, 앱을 개발 중인 셀피에 관한 리뷰 옆 지면에 발라클라바 모자를 쓴, 총을 든 남성 사진이 실렸습니다. 나란히 놓여 있는 이 사진들은 실제로 내게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주얼 문화의 소비자로서 제게 그 점은 옳지 않은 부분일 뿐 아니라 괜찮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시리얼을 먹었죠. 전통을 파괴하는 것에 관해 얘기할 때, 그것이 뜻하는 바를 얘기할 수 있나요? 책정된 대중문화, 인터넷 문화가 오늘날의 예술에 필요할까요?
A :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고 하고 싶군요. 혹시 림프 비스킷이 새 밴드 멤버를 영입할 때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면서 기타 연주자들을 비디오로 촬영했던 일을 기억하세요?(기타 센터와 초대형 상점 같은 곳에서 이 “오디션”을 열었죠.) 그들이 찍은 영상 전부가 재산이 되어서 세상에 나왔어요. 이걸 확인한 사실은 없지만 그건 마치 에드워드 스노우덴 시대 이후에 새로운 방식의 주관성을 향한 좋은 아날로그 같아요. 그리고 맞아요, 당신이 (뉴욕 타임지에) 쓴 블랭크 어펙트가 있고, 그것은 권력과 특권을 다룰 뭔가를 가지고 있어요. 에이미 디아스(Amy De’Ath)가 클라우디우스 앱(Claudius App) 신간에 백인 남성 특권과 블랭크 어펙트에 관해 언급했어요. 현대의 문제로, 나는 부숴버리고 싶은 것들, 부숴버리고 싶은 몇 가지 것들이 있는데, 그건 여전히 내가 함께 살고 있고, 심지어 욕망도 있는데, 이런 애매모호함은 내가 『쿨 메모리즈』를 작업할 때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것들 중 일부예요.
Q : 저는 정말이지 그 콘테스트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제 기억엔, 그 무렵 2000년도 초반에 앳모스피어(Atmosphere)와 세이지 프란시스(Sage Francis) 같은, 기타 센터에서 기타 수업도 받지 않은 슬픈 백인 남성들로 꽉 찬 언더그라운드 힙합 시기로 주제를 옮겼던 것 같군요. 그냥 이모 앤 이모(emo and emo: 복잡한 기타 연주와 감성적인 선율이 특징인 음악 장르) 래퍼들, 델 타 펑키 호모사피엔(Del the Funky Homosapien)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던 당시 내가 취했던 유일한 반응은 술에 절어 있기만 했어요. 무력하고 따분한 백인 주정뱅이요.
출판의 한 형태로 트위터, 블로그 등에 대해 말씀하셨죠? 정말 그래요. 우리는 다루죠. 사용해요. 살고 있어요. 하지만 21세기에 출판사는 적절성을 어떻게 주장할까요? 그 사람들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상당히 흥미로워요. 자연적인 선택과정을 통해 시장력이 소비자 선택을 없애고 지시할 수 있을까요? 편집 기능과 큐레이터 기능이 사라질까요? 예술 부문에서, 출판사들은 큐레이터가 새로운 예술인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시 부문에서 점점 더 많은 출판사를 시인들 스스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텍스트 분석, 시를 위한 언어 수집, 미학적인 부분을 살려내기 위한 편집 부분에 있어서 모두 한 방향이라는 게 보이세요? 제 말은 원더(Wonder)를 집필한 것과 편집한 것 사이에 하나의 연관성이 보이냐는 거예요.
A : 제 글은 그것의 책정과 다양한 문화적 맥락과 상황에 너그럽지만 여전히 제 성격에도 관대합니다. 거기에서 유리한 면이 있죠. 그리고 잘 진행되면, 모든 것들이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갈 수 있어요. 원더는 장편물을 출판하는 방식으로 상당히 전통적인 출판 사례를 담고 있을 뿐더러 장편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소요 시간을 끌어들이기만 하면 온라인에서 내용을 출판할 수 있는 꽤 빠른 “공개 자원” 사례 또한 담고 있죠. 그러기 전에 우리는 케빈 킬리안스 트위키 빌리지(Kevin Killian’s Tweaky Village)와 케이트 더빈스 이 엔터테인먼트(Kate Durbin’s E Entertainment)를 출판했어요. 이 책들은 소형 출판사인 원더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죠. 이 책들은 대형 출판사에게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책에게 같은 대우를 주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원더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출판사보다 더 재빠르다고 생각해요.
폭로와 토렌트의 시대이고,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행동합니다.
소개 및 글 _ 제이크 레빈(Jake Levine, 시인) 제이크 리빈은 2010~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포함해 여러 장학금 및 수상을 한 바 있다. 두 권의 소책자(삭제의 문턱(The Threshold of Erasure, Spork 2010)와 빌뉴스 악령(Vilna Dybbuk, Country Music 2014))를 저술했다. 자신의 시, 번역물, 에세이 등은 보스턴 리뷰지, 루에르니카, HTML자이언트, 아트라스 리뷰지, 페이퍼 다츠 외 다수의 잡지에 실렸다. 그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토마스 스롬바스의 작품, 갓/씽(God/Thing, Vario Burnos 2011)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현재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정희연과 공동으로 한영 번역 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비교문학전공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연세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또 아리조나 투산에서 나온 조그만 출판사인 스포크 프레스(Spork Press)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
번역 _ 정희연
세종대학교 번역학 박사과정 수료,
정리 _ 김경주(시인)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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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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