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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좌담]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소설부문)

  • 작성일 2014-09-10
  • 조회수 2,137

 

 

 

[특집좌담]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 2013년도 주목할 만한 문학도서(소설부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1년 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소설들 중에서 100여명의 동료작가들에게 추천을 받아 11권의 소설(장편소설 포함)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 중에서 해당 기간을 대표할만한 우수한 소설 몇 권을 복수 추천받는 형식으로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좌담에는 소영현(문학평론가), 윤이형(소설가), 이순원(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이 참여했습니다.

 

     ● 일시 : 2014년 7월 18일(금) 오전 11시
     ● 장소 :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필룩스
     ● 좌담참석 : 소영현(문학평론가), 윤이형(소설가), 이순원(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 사회 : 오창은(문학평론가)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이야기들”

 

novel_ocy    ▶ 오창은(이하 오) : 오늘 좌담은 2013년도 한국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을 점검하고, ‘주목할 만한 문학도서’에서 문학적으로 주목할 부분들, 선정위원 선생님들께서 포착한 문학적 쟁점들, 선정된 작품들에 대한 논평 등 네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문학 제도에 대한 얘기, 한국 소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얘기 등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최근 한국 소설의 경향이나 흐름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들을 먼저 듣겠습니다.

 

novel_jhs    ▶ 정홍수(이하 정) : 얼마 전 술자리에서 반농담조로 소설의 시대가 오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읽으면서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번에 주목할 만한 문학도서로 선정된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그동안 문학에 기대했던 사회적인 힘, 사회적 가치, 도덕적인 가치 같은 것들이 사실은 그간의 문학 담론 속에서는 뭔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얘기됐었는데요, 아마 문학이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감소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가 나온 거 같습니다. 그런 양적인 영향력 말고 질적인 영향력으로 친다면 오히려 지금 문학의 사회적 가치나 의의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는 거 같고, 작가들 스스로도 그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거 같아요. 대표적으로 김사과의 『천국에서』의 경우에 상당히 날것의 냄새가 많이 나지만, 한 세대의 목소리를 이렇게 온전히 담아내기가 쉽지 않죠. 이 작품에서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라든지, 마지막에 어쨌든 이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작은 전망이라도 내놓으려는 태도가 문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복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novel_syh    ▶ 소영현(이하 소)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특히 오늘 논의되는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손보미, 정소현, 박솔뫼 등 2010년 이후에 두각을 드러낸 젊은 세대들은 문학적인 완성도도 높고, 세계에 대한 인식도 세련된 방식을 마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세계 문학과 한국 문학을 구분하면서 논의를 했다면 이제는 그런 논의 자체가 불필요한 지점에 우리가 도달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사회와 문화 영역에서 문학의 입지는 좁아졌지만, 그 자체로는 굉장히 단단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주목할 만한 문학도서 선정 목록을 보더라도, 그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던 작가들이 지지부진한 단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거 같고, 기성 작가들도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한국 문학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많이 등장했고 주목을 받았죠. 그 작품들이 드러냈던 건 어떤 세대적 관점이라기보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들인 거 같아요. 그 때문에 사회적인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날것으로만 만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도 있었죠. 이번 선정도서 목록을 보면서 그러한 경향이 세대별로도 확장되고, 깊이와 폭을 갖추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별 작품들이 자기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찰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고, 한국 문학도 이전과 다른 단계로 도약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novel_yeh    ▶ 윤이형(이하 윤)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예전보다 굉장히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과 형식, 양쪽 모두에서요. 이를테면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의 경우는, 소설로 풀기에는 어려운 영역이 아닌가 싶은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 속에서 끝까지 밀어붙이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배수아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경우도 현실과는 전혀 다른 문법이 사용되는 꿈의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고요. 전반적으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고, 전통적인 소설의 한계 안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던 소재나 잘 쓰이지 않던 화법들을 선택해서 작가들이 독자들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나 도전하는 모습, 한계를 넘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novel_lsw    ▶ 이순원(이하 이) : 제가 등단한 1980년대에도 문학의 위기를 얘기하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돌아보면 문학은 위기가 없었던 시기가 없는 거 같아요. 소설로 한정해서 보면, 우리 사회가 장편보다 단편을 쓰게 하는 분위기에 깊이 빠져든 거 같아요.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제 아이들도 집에 들어오면, 휴식의 시작이 컴퓨터를 켜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도 컴퓨터부터 켜죠. 비단 컴퓨터만이 아니라 요즘은 스마트폰을 다 쓰죠. 그러다 보니 소설이 소수의 마니아만 읽는 장르가 되어버렸어요. 제가 처음 작가 생활을 시작했을 땐 장편이 기본적으로 만 부는 나갔거든요. 소설집도 초판 삼천 부 팔리고, 기본적으로 재판은 들어갔고요. 거의 너나없이 다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우선 시장이 형성이 안 되니까요. 작가가 장편을 쓰려면 최소한 일 년의 시간이 드는데, 산술적으로 봐도 그 인세로 한 작가가 먹고사는 게 거의 불가능하죠. 그러다 보니까 청탁이 오면 주로 단편을 쓰고, 문학상들도 주로 단편에 주어지죠.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작가들에게 단편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거대 담론이 나오거나 형성될 여건도 좀 희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전 이 목록에도 장편이 많이 선정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절반가량 선정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때그때 주목되는 장편소설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보기가 좋습니다.

 

    ▶ 오 : 저는 세 가지 정도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첫째는, 특정한 세대나 주도적인 문학적 경향이 문학 담론을 형성해 왔는데, 지금은 여러 세대가 동시에 자기 역량을 발휘하여 문학적 개성이 다원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부터 꽤 연배가 있으신 분들까지 창작의 토양이 풍부해진 듯한 느낌이 확연합니다. 그만큼 한국 소설의 저력이 커졌고, 문학적 흐름도 넓게 펼쳐지면서 가능성이 넓어졌다고 봅니다. 아쉬운 부분은 더불어 독자들의 관심과 몰입, 그리고 독자 세대의 확산도 이뤄져야 하는데, 그 부분은 계속 회의적으로 남아 있다는 거죠. 현재 출판 시장의 위기와 결부되어 있는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어쨌든 우리 소설 문학 같은 경우, 세대적으로 고루 분포되고 또 거기에 따른 역량 있는 작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는, 몇 년 사이 장편의 성과들이 서서히 두드러지고 있다는 겁니다. 문학 환경, 독서 환경 자체가 계속 호흡이 짧아지잖아요. 더 이상 대하소설이 불가능한 시대인 것처럼 말이죠. 장편의 이야기성은 강화되는 반면, 독서 환경이나 문화적인 환경은 어떤가 하는 문제 제기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독자들의 호흡은 짧아지는데, 장편의 성과는 돋보이고 있다는 양면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세 번째는 제 느낌인데, 소설이 좀 독해졌어요. 다들 독해지는 느낌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강렬함 자체가 갖는 충격적인 서사 흐름이나 독특한 개성에 따른 성취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 부분이 사회와 융화되었을 때 놓치는 부분은 ‘문학의 자극성 고조’지요. 더 강렬해야 한다는 강박이 과장적 제스처로 연결되고 있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복합적인 환경에서 텍스트를 읽게 됐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각자 본인이 주목한 작품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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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언급도 필요하다”

 

    ▶ 윤 : 제가 이 목록에서 가장 강렬하게 읽었던 작품은 이재웅의 소설집 『불온한 응시』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복잡다단하고 모호한 현실을 정교하면서도 복합적인 시선으로 잘 그려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인물들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현실과 거의 차이가 없게 그려내면서도 소설의 특징과 장점들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노근리 사건을 다룬 이현수의 『나흘』도 무척 강렬하게 읽었습니다. 노근리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무게, 그 사건에 대해 두려움과 부담을 느끼지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작중 화자, 그리고 이런 소재를 선택한 작가의 마음이 모두 더해져 ‘이야기’를 둘러싸고 벌이는 하나의 집요하고 치열한 싸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에는 없지만 구병모의 『파과』라는 장편을 지난해에 무척 인상 깊게 읽어서 따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하드보일드 멜로라는 형식과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묵직한 주제가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 마지막 세 작품을 선정할 때 정말 내려놓기 아깝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이현수의 『나흘』이었어요. 앞부분 이야기만 가지고 칠백 매 정도를 만들면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는 노근리 이야기인데, 무대까지 가는 주단이 더 좋았던 느낌이라서 아까웠어요. 한창훈의 『그 남자의 연애사』는 이야기가 거칠죠. 이문구 선생 이후에 농촌 소설이 거의 사라졌듯이, 삼면이 바다에 싸인 나라에서 어촌이 무대인 작품은 한창훈이 손을 놓으면 없어질 거 같아요. 아쉬운 점입니다. 삶의 질박한 느낌이 살아 있고, 또 하나는 한창훈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이제는 만담같이 저절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는 이기호의 『김 박사가 누구인가?』와 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이기호의 입담도, 이기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구나 싶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 소 : 이런 선정 작업을 할 때마다 문학 작품의 완성도나 문학장에서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볼 것인지, 독자까지 고려해서 좀 더 보편적으로 읽힐 만한 작품이냐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지 고민하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배수아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같은 작품을 좋아하고, 한국 문학의 장에서 이런 작품이 계속 쓰인다는 건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업에 대해서 계속 평가하고 언급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권여선의 『비자나무 숲』과 편혜영의 『밤이 지나간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저는 『비자나무 숲』과 『밤이 지나간다』가 같이 묶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은 세대에 따른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서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내는데,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포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것들을 다루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이 생기는 거죠. 소재와 상관없이, 독자가 이십 대든 삼십 대든 사십 대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읽힐 수 있는 소설, 열린 소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현수의 『나흘』을 앞서 두 분이 언급해 주시니 정말 좋은데요, 저도 주목할 만한 문학도서 목록에 올리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이야말로 요즘 소설들에 비하면 안 읽히는 소설입니다. 한순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젖어드는, 계속 참고 읽어야 어느 순간 푹 빠져 들어가는 소설이라서, 전형적인 독서 방식으로 읽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죠. 장편이라고 해도 대개 소설이 점차 짧아지고 서사도 단조로워지는 경향에 비하면, 이런 작품이 여전히 쓰인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간 한국 문학에서 역사적인 재난을 다룰 때, 그 사건만 한정적으로 다뤄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더 큰 서사 속에서 녹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죠.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에 접근하는 법을 개발한 작가들이라는 점에서도 좋았습니다.

 

    ▶ 정 : 편혜영의 『밤이 지나간다』와 윤대녕의 『도자기 박물관』은, 이 작가들이 비슷한 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들이 없지 않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편혜영 씨 같은 경우는 놀랄 정도로 섬세해지고 있는 거 같고요. 윤대녕 씨 같은 경우는 유려한 문체라든지, 문학이 결코 버릴 수 없는 낭만주의적 정서 같은 것들이 익어 들어가면서 무언가 정경이 만들어지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목록 바깥에서, 정태언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작품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러시아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데뷔한 시기가 사십 대 중반쯤 되는 늦깎이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이분이 러시아 문학을 공부해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이라든가 하는 지점에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유학 생활 자체도 없는 길에 돌진하는 과정이었어요. 이렇게 개인적인 상황들도 겹치면서, 갈 길이 없어진 상황 같은 것들이 독특한 풍경으로 그려집니다. 실존적인 깊이도 있고, 독특하고 깊이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거의 언급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따로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 오 : 저는 방현석의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와 이현수의 『나흘』이 대비가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가 역사적 사건 내지는 인물을 중심으로 놓고 문학 작품이 이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한 형태라면, 『나흘』은 문학적인 감각을 갖고서 역사적인 사건을 끌어안으려고 했다는 측면에서 둘 다 주목할 만한 성취라고 봅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개인적으로 울컥울컥하면서 읽었어요. 현대사의 민낯을 보는 거잖아요. 다만 역사적인 사건들이 문학을 훨씬 압도하는 부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앞으로는 한국 문학에서 훨씬 더 인물에 중심을 두는 서사가 나올 수 있겠다, 조금만 더 자유로워지면 그런 성취작이 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가 들어 좋았습니다. 『나흘』은 진경의 내면을 통해 ‘노근리 사건’에 진입하는 양상을 띠고 있지요. 역사적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생경함 같은 것들이 드러나기는 해요. 문학과 역사가 충돌했을 때, 작가가 느끼는 곤혹함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문학적 접근이 우선이라는 느낌이 들어 『나흘』은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와 좋은 대비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이재웅의 『불온한 응시』는 운동권 찌질이들의 이야기인데(웃음), 기묘한 형상화의 방법들, 가지를 잘라버린 거 같은 이야기들, 냉혹한 시선이 섬뜩한 느낌을 불러일으켜요. 이렇게 형상화할 수 있구나, 흥미나 재미를 떠나 이렇게 집요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부분들이 놀라웠습니다. 『밤이 지나간다』는 작가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특정한 상황 설정 속에서 곤란을 겪는 인간들의 이야기지요. 편혜영 작가의 스타일이 예전에 비해 더 유려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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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석은 머리로, 권여선은 분노와 정염으로”

 

    ▶ 이 :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해설도 없고 작가의 말도 없어요. 불친절하죠. 작품을 읽고 나면 해설이 없는 건 이해하겠더라고요. 누구한테 해설을 부탁하겠어요. 해설을 쓸 방법이 없어요.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작가와 통화를 했어요. 작가가 이게 실제 없는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말하지 않고, 감추고 덮는 부분이라는 거죠. 현실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문제인데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작가적 방식의 관점에서 아주 유연하게, 그리고 최선으로 잘 드러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문제를 우리 담론 안에 가지고 들어온 것도 좋고, 이것을 장편의 형태로 쓴 것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또 이 작품이 굉장히 서정적이잖아요. 문장에 대한 일가를 보여주죠.

 

    ▶ 정 : 저는 고종석 씨가 문자 그대로, 지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고종석 작가의 지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보는데요. 그 지성의 내용이라는 건 인문학적인 지식이라든지, 최고 수준의 한국어 문장이라고 생각하고요. 작품 자체로는, 처음에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고민했습니다. 고종석 소설의 제일 큰 테마 중 하나가 누이 콤플렉스 같은 것인데요. 누이란 게 다른 게 아니고 연약한 것, 작은 것, 소수에 대한 연대 같은 것이죠. 그걸 지지하고, 자기가 글을 쓰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위해 한다고 선명하게 얘기하는 건데요. 그렇지만 작가에게는 이것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는 거 같아요. 자기는 그렇게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죠. 가령 소설 속에 누이가 있고 누이를 좋아하는 동생이 있는데, 사실 주인공도 누이와 거의 비슷한 심성이잖아요. 두 사람을 붙이면 더 나아져야 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두 사람이 거의 자폭하는 걸로 나오잖아요. 이거야말로 고종석 씨가 절필을 염두에 두고서, 다시는 소설을 안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세계관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 읽고 나니까 좀 착잡했습니다. 물론 굉장히 수준 높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 : 『해피 패밀리』를 처음 읽었을 때는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고, 마지막에 반전의 묘미도 있죠. 던지는 주제도 묵직해서 책을 읽고 나서 며칠 동안 이 작품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근데, 그러고 나서는 오히려 까맣게 잊었어요. 소설의 서사가 인물로 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살아남은 자가 겪는 것들, 심적인 고통 같은 것들을 인물의 내면을 통해 보여줬더라면 더 오랫동안 잔상이 남았을 거 같아요. 한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다 똑같아요. 전부 작가의 분신들이죠.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자 한계가 아닐까 싶어요. 소수자에 대한 선생님의 항상적 관심을 왜 이런 방식으로 표출했을까, 선생님의 장기가 잘 드러나는 에세이 방식을 취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관련해서, 한국 소설에서 정홍수 선생님이 언급하신 작은 것, 소수(자)에 대한 포착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억압하는 폭력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작은 것을 드러냈던 때가 있었고, 이후로 자기 발화를 통해 작은 것들의 목소리가 포착되었던 때가 있었죠. 대표적으로 윤성희 작가의 소설이 그렇죠. 권여선 작가의 『비자나무 숲』은, 전체 상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하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빛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처럼 ‘반짝’ 하는 순간 같은 것을 포착하죠. 권여선 작가의 소설은 억압하는 자의 목소리도, 억압당하는 자의 목소리도 아닌 방식으로 그것을 짚어냅니다. 편혜영 작가의 경우도 다르지 않은데요. 작가 스스로가 강조하고 있듯이, 하찮은 비밀도 없는 시시한 존재들, 고통이나 통증의 유일성으로 자존감을 지키는 평범한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권여선 작가나 편혜영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작은 것이나 소수 혹은 배제된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다루는 방식은 예전과 사뭇 다른 것이죠. 비교하자면 『해피 패밀리』에서 그려지는 작은 것과 『비자나무 숲』, 『밤이 지나간다』의 소수는 꽤 다르고, 후자의 것들이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 정 : 권여선 작가의 경우에는, 작은 것을 억누르는 어떤 것이 있고 자기 스스로도 그걸 억누르잖아요. 그런 것들을 권여선처럼 끈적끈적하게 드러내는 작가는 없는 거 같아요. 소설을 인간탐구라고 한다면, 지금 현재는 권여선처럼 깊이 현미경을 들이밀고, 그걸 그처럼 기가 막힌 언어로 끄집어내는 작가는 없는 거죠. 고종석은 머리로 썼다면, 권여선은 들끓는 분노와 정염으로 쓴 거 같아요. 그러니까 같은 적의라고 하더라도, 고종석의 적의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권여선의 것은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인다는 거죠. 전혀 별개의 자리에 놓여 있는 거죠.

 

    ▶ 오 : 내러티브 전략의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 같은 경우는 정보를 조금씩 노출시키면서, 일상적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 숨기고 있는 비밀들을 조합하게 하죠. 개인의 이야기를 다각화해 전체 서사로 막 몰아가는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여선의 『비자나무 숲』 같은 경우는 얘기를 안 합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독자들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고, 상상하고 있어요. 결론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정보마저도 얘기를 안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자들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오히려 얘기를 안 함으로 인해서 재미있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고종석과 권여선의 서사 전략이 대비되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인 거 같아요.

 

    ▶ 소 : 소설이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했을 때, 저는 이재웅의 『불온한 응시』가 보여주는 작업이야말로 그 말에 합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소수자나 타자를 그릴 때 전형적 방식에서 벗어나 있는데, 특히 「인간의 감각」의 경우, 일상적으로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지만 문학에서는 제대로 재현된 적이 없었던 존재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이재웅의 소설을 포함해서 앞서 언급한 작가들에게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관심이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 윤 : 『해피 패밀리』는 가족이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느껴지는 도망칠 수 없는 답답함과 콕콕 찌르는 듯한 재미를 동시에 느끼며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단순히 가족 얘기만이 아니라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종석 작가의 전작들과 별개로 이 작품만 놓고 본다면, 작품에서 마지막에 누이와의 애틋한 감정, 그것이 작품 전체에서 갖는 함의랄까, 그런 걸 읽어내는 데는 실패했어요. 그래서 이게 그냥 그런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뭔가 은유 또는 상징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연결이 한 번에 잘 되지는 않더라고요. 앞 이야기들이 굉장히 재밌었는데 뒷이야기가 너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앞 이야기들의 인상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마지막 이야기만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 조금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 정 : 권여선 작가의 경우에는 적의, 모욕, 경멸을 그려내도 그게 완벽히 부서지진 않을 거 같다는 느낌이 있는데요. 권여선 작가는 아주 지독하게 운동한 전형적인 386 세대죠. 이 세대가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어떤 시선이 있는 거죠. 그게 『레가토』에도 남아 있는 거 같아요. 기억상실이라고 할망정 죽일 수가 없는 거죠. 소설로서 더 세련되려면 죽여야 맞죠. 살아 있게 하면 신파가 되니까요. 그런데 권여선 작가는 신파가 되더라도 살려 두는 거예요. 물론 막연히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관점이 이 세대의 바닥에 깔려 있다는 거죠. 이 세대의 깊은 목소리를 권여선이 계속 감지해 내고 있는 거 같아요. 이 작가가 정치적인 발언을 안 하더라도, 오히려 그걸 역설적으로 공격할 때, 더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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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컴 투 ‘김사과 월드’

 

    ▶ 윤 : 저는 이 목록에서 가장 완벽한 소설이라면 권여선과 편혜영의 작품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권여선 작가의 작품 세계는 ‘낭만’인 거 같아요. 영원한 낭만. 아무리 폭력적이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작가가 계속 유지해 주고 있는 이상하게 따뜻하고 걸쭉한 시선이랄까, 그런 것이 저 같은 그다음 세대들에게는 아마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세계일 거라고 생각하고요. 오히려 그다음 세대들에게는 김사과의 세계가 ‘리얼 월드’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생생하고, 가장 리얼하게 와 닿았던 건 김사과의 세계였습니다. 김사과 작가의 경우는 이제는 ‘김사과 월드’라고 할 만큼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요. 예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코믹하면서도, 세계를 보는 시점이랄까 위치 같은 것을 조금 바꾼 면도 재밌었고요. 너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소 : 저도 자신의 세대 감각에 충실하고 그것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김사과의 소설을 한국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김사과의 『천국에서』가 좋았고 그의 소설 이력 가운데에서도 좋았습니다. 사실, 이전작인 『테러의 시』를 읽으면서 약간의 우려를 했습니다. 이 작가가 소설로서 뭔가를 하려는 거에 대해서 깊이 회의하고 소설 세계 바깥으로 나아가거나 앞으로 이런 걸 더 이상 안 하려고 하나, 걱정했죠. 그런데 『천국에서』를 통해 정반합처럼 또 한 단계 넘어섰어요. 예전 같으면 전?후반부 따로따로 소설로 썼을 거 같아요. 후반부는 『테러의 시』 같은 경우로, 전반부는 『미나』와 같은 경우로. 그런데 『천국에서』는 이 둘을 하나로 엮었어요. 여기에서 독특한 반전의 미 같은 게 계단을 이루고 있어, 훨씬 더 좋은 소설을 들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 정 : 어떤 사회학적 조사보다도 이 세대의 목소리를 최고로 잘 전달하는 작가가 김사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인 나름대로 상당한 생각들, 천착들을 하고 있는 거죠.

 

    ▶ 오 : 김사과의 『천국에서』는 몇 가지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뉴욕과 홍대와 인천, 그다음에 써머와 케이와 지원이 병렬적으로 중첩되지요. 이런 것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문제가 어떻게 성찰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는 거죠. 또 SNS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등도 실재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계속되는 어긋남 같은 것으로 서사의 고리가 만들어져요. 한 비평가는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부분들에 대해서 따져 가며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런 결락들이 오히려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신 세대 공감 같은 경우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 소설을 읽혀 보면 오히려 공감하지 않아요. 강렬한 언어로 썼기 때문에 너무 독하고 센 거죠. 오히려 이 작품에는 시대에 대한 증언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현실을 잘 보여줄 수 있나 할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공간을 넘나드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예를 들면, 대화중에도 자신의 휴대전화로 페이스북만 응시하고 있는 부분이라든가,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세부 자체로는 익숙하지만 배치되면서 보여주는 실재적인 감각들이 ‘실재의 비실재성’을 놀랍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감동의 순간들, 매혹의 순간들을 잘 그려냈어요. 이런 부분들이 내 인생을 지배하는 듯한 감각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들이겠지요. 저는 『천국에서』는 상당히 의도적으로라도 중요한 방점을 찍어 줘야 할 작품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날것이고 조합이 안 맞는 것과는 상관없이, 의미 있는 성취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판단합니다.

 

    ▶ 소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 주목할 것은, 케이에서 경희로 바뀌면서 생기는 단절의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앞부분이 케이로서의 삶의 기록이라면 그녀가 경희라고 호명되는 순간에 그 삶이 경희의 것으로 재편되는데, 이 단절을 통해 인물이 뉴욕에서 떠돌다가 현실로 발을 내딛게 되는 거잖아요. 절묘하다고 생각됩니다. 케이에서 경희로, 김사과의 『천국에서』의 성격을 단면적으로 말해 주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됩니다.

 

    ▶ 정 : 케이로 가는 길이 없잖아요. 이건 소설로 못 쓰는 거죠. 어쨌든 김사과 작가가 소설로 돌아온 거 같아요. 세련되고 안정적인 소설은 아니지만, 더 좋은 소설을 쓰리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 이 : 김사과의 소설을 보면서, 주인공 또래도 그렇고 작가도 엄살을 과장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엄살의 과장이 권력화되어 있다는 거죠. 부분 부분 빛나는 데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친절하지 않아서 조금 덜 읽혀요. 제가 등단했을 때, 처음으로 신세대라는 말이 막 나오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오면서 다른 영역들보다 문학은 조금 등단이 늦었어요. 그래서 삼십 대 작가들이 문단의 신세대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신세대는 어느 한 개인의 정체성이 아니잖아요. 앞으로 이 작가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 세대에 대해서 날것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편보다 장편이 맞는 작가 같아요. 그런 부분들도 앞으로를 주목하게 하는 요소가 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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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유머가 이제는 우리를 웃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 정 :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기호 작가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있죠. 내러티브에 주안점을 두면서, 쉽게 말하면 웃음의 코드, 유머의 코드 같은 걸 독특하게 길러내는 특장이 있는데요. 이 소설집에서는 상당히 진지해지고, 한 번의 성찰이 더 들어가서 이야기라는 게 기본적으로 결락의 지점, 여백의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야기 안 되는 부분과 싸우는 과정, 어떻게 보면 이걸 소설로 쓴 메타 소설이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들이 편편이 감동적인 지점이 너무 많더라고요. 전체적으로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 이 : 초기보다 굉장히 좋아지고 있죠.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라진 건 아닌데, 삶의 어떤 책갈피를 펼쳐 볼 때 그 안에 넣어 놓았던 면도날 같은 걸 발견하는 느낌이었어요. 잊어버리고 있다가 펼쳤을 때, 아 그랬지, 하고 다시 느끼게 하는 것 말이죠. 이야기성이 강한 것도 이 작가의 강점이죠. 다만 이런 좋은 이야기를 모아서 멋진 장편을 하나 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윤대녕 작가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 있죠. 하지만 늘 동어 반복적이고 이야기가 확장이 안 되었어요. 그의 대표작이 단편에 머물러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작가로서는 슬픈 일이죠. 단편은 누구나 잘 써요. 다 잘 쓰니까 작가가 되었겠죠. 그 가운데, 그의 작품 안에 장편을 놓을 수 있는 작가와 놓지 못하고 가는 작가들의 차이 같은 게 있더라고요. 선배 작가로서 이야기하면, 큰 거 하나 하자고 말하는데요. (웃음) 이기호 작가의 경우에는, 앞으로 더 큰 이기호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 윤 : 유머로서 우리를 위안해 줬던 작가들이 있잖아요. 이기호 작가 같은 경우에도 그 유머가 정말 소중했는데 그걸 조금 내려놓은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전만큼 유머가 큰 위로를 주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 같아요. 쓰는 사람도 아마 그걸 견지하고 어떻게든 쓰게 되었을 텐데, 다른 방식을 택할 때까지의 과정 같은 걸 생각하며 책을 읽게 되었고요. 또 다른 작가들, 이를테면 김중혁 작가 같은 경우도 점점 유머 대신 다른 소설적 장치들을 선택하는 듯한 모습에서, 물론 작가 자신에게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변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유머가 이제는 우리를 웃게 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해요.

 

    ▶ 정 : 대표적인 작가가 성석제죠. 기본적으로 유머라는 걸 계속 똑같이 생산할 수는 없으니까 그게 한 이유인 거 같고요. 그다음에 실재적인 이유로는 점점 세상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쌓이는 거 같아요. 이렇게 못 하겠다, 더는 그렇게 못 쓰겠다, 하는 게 본인 스스로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유머를 완전히 버릴 수 있냐, 못 버려요. 일종의 버릇이죠. 성석제의 『투명인간』에도 조금씩 남아 있고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웃음)

 

    ▶ 소 : 성석제 작가와는 유머의 성격이 좀 다른 거 같아요. 성석제 작가의 작품은 이야기 자체가 유머러스한데, 이기호나 김중혁 작가의 경우는 그냥 유머러스하기보다는 메타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유머를 구사하죠. 소설이 뭐냐, 글쓰기라는 게 뭐냐, 이런 식의 질문들을 던지는데 그걸 진지한 방식이 아니라 비트는 방식으로 보여줬죠. 다르게 생각해 보고, 재밌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던 거 같은데요. 언제부턴가 그냥 재미만 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더 많아서 사실 중간에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유머를 위한 유머로서, 질문 없는 테크닉만 남은 느낌이었죠.
    이 소설집 안에 수록된 「행정동」도 다른 작가들이 썼으면 훨씬 무겁고 진지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됐을 텐데, 무게 중심을 잡으면서도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탄원의 문장」에서도 진지한 방식으로 글쓰기가 뭐냐, 문학이 뭐냐, 내가 왜 쓰고 있느냐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요. 질문에 대한 사유를 무겁게 풀어 가는 방식으로 쓰는 작가군이 있다면, 이기호 작가의 특징은 그걸 이야기 자체로 만들어서 읽는 즐거움을 주는 데 있죠.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는 그게 되살아났고, 게다가 조금 더 세련되고, 심지어 현실에 대한 인식까지도 배면에 깔고 들어가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오 :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작가의 서사적 장점을 현실과 접맥시키면서 새로운 작가적 면모를 드러낸 작품 같습니다. 가볍게 터치하며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바로 가벼움에서 묘한 불균형적 균형 같은 것을 이루고 있어요. 이 부분이 이기호 소설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예전에는 끊임없이 형식 실험을 했던 작가가, 형식 실험 과정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재미를 주었던 방식을 변형해, 이제는 현실을 끌어안으면서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예전의 경쾌함들, 예를 들면 ‘난 상관없다’와 같은 태도들이 주는 또 다른 강력한 맛이 약해지는 듯한 느낌도 주목해야 할 변화인 것 같아요. 이야기성 자체는 소설의 중요한 근간이잖아요. 이기호는 현실을 의식하면서 유머라든지, 재미라든지, 형식적 파격 같은 것들을 취하죠. 실제로는 이 소설집에서 형식적인 파격이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봐요. 예전에는 형식적인 파격이 정말 세련되거나 기발하다는 느낌을 주었다면, 이번에는 더욱 진중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를 주면서 하나를 얻는 형국이죠. 그런 면에서는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이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요. 어쨌든 이기호는 우리 시대 이야기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니까요.
    그럼 마지막으로 마무리 발언 부탁드립니다.

 

    ▶ 정 : 잘 쓰자는 거죠. (일동 웃음)

 

    ▶ 오 : 정해진 시간에서 십 분 정도 초과했지만, 논의가 비교적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동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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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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