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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좌담]기적을 엿보다(시부문)

  • 작성일 2014-09-10
  • 조회수 2,146

 

 

 

[특집좌담] 기적을 엿보다

- 2013년도 주목할 만한 문학도서(시부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1년 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시집들 중에서 100여명의 동료작가들에게 추천을 받아 14권의 시집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 중에서 해당 기간을 대표할만한 우수한 시집 몇 권을 복수 추천받는 형식으로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좌담에는 나희덕(시인), 유성호(평론가), 이영주(시인), 조재룡(평론가)과 사회자로 고봉준(평론가)이 참여했습니다.

 

     ● 일시 : 2014년 7월 18일(금) 오후 4시
     ● 장소 :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필룩스
     ● 좌담참석 : 나희덕(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 이영주(시인), 조재룡(문학평론가)
     ● 사회 : 고봉준(문학평론가)

 

 

 

poem_gbj    ▶ 고봉준(이하 고) : 바쁘신 중에 발걸음을 해주신 네 분 선생님께 주최 측을 대신해서 먼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아무래도 일정한 권수의 시집을 가려 뽑는 자리라 약간은 마음이 불편하시라라 생각합니다. 선택을 받는 시집과 그렇지 못한 시집이 있을 테고, 그 선택의 과정이 일정정도 지상중계 형식으로 공개되는 자리이니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제까지의 논의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저와 네 분 선생님께 14권의 대상작 리스트가 주어졌고, 네 분 선생님께서 해당 시집들을 꼼꼼히 읽고 복수의 책을 추천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 추천 과정을 통해 선별된 7권의 시집을 놓고 논의를 한 다음 최종 4권을 ‘주목할 만한 선정도서’로 선정할 예정입니다. 먼저 7권을 읽으신 전체적인 느낌이나 소감, 혹은 시집들에서 느끼신 시단의 분위기 등에 대한 간략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poem_ysh    ▶ 유성호(이하 유) : 전반적으로 추천인들의 지지를 얻었던 작품집들이 연배 분포로 보면 노?장?청이랄까, 균형 있게 잘 뽑힌 측면이 있습니다. 아주 젊은 황인찬 시집부터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중진인 이성복 시집까지를 아우르는 세대론적 측면이 그렇게 하나 있고요.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보아도 매우 다양하게 뽑힌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황인찬과 박준의 첫 시집을 빼고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집이 자신의 시적 세계에서 어떤 극점을 이룬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인들의 개인사에서는 어떤 변곡점을 넘어가는, 혹은 모색기에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형준은 조금 예외인데요, 말하자면 주제적 응집성이 강한 시집이어서 이러한 일반론에 해당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과 시대를 짓누르는 ‘죽음’이라는 화두, 묵시록을 그리다”

 

poem_nhd    ▶ 나희덕(이하 나) : 젊은 시인들의 주목할 만한 시집이 많았습니다만, 추천 목록에서는 두세 권을 제외하면 중ㆍ장년 시인들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연륜만큼 밀도가 있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새로운 탐구의 지점들을 보여주는 시집들이 많았던 것이죠. 전체적으로 보면 ‘죽음’에 관한 시들이 적지 않았는데요. 이 시들에서 ‘죽음’은 개별적 경험일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짓누르는 화두이자 중요한 시적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 쓰기 방법에서는 전통적인 서정 주체의 목소리보다 ‘비인칭적인 주체’랄까요, ‘나’를 벗어나 아주 모호한 지점에서 발화되는 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파격적인 해체를 수행하지 않고도 화자나 주체의 변용이 서정시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poem_jjr    ▶ 조재룡(이하 조) : 제가 약간 놀랐던 것은 박형준 시인의 시집입니다. 이 시집은 거의 어머니에게 바쳐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좋다 나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예전에도 이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쓰는 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좀 전에 유성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시인의 첫 시집 가운데 특히 황인찬 시집은 새로운 느낌이 있었고요, 박준 시인도 마찬가지 상황이지만 약간 다른 방향으로 새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박준 같은 젊은 시인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198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약간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또 나머지 시인들은 첫 번째 시집이 아니고 두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시집까지도 고루 퍼져 있었는데요. 그 여정에서 ‘절정에 도달한 시집은 아니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정확이 무얼 의미하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이영광 시인의 『나무는 간다』를 보면 잠언적인 어투로 계속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원의 이번 시집은 ‘이원의 시에도 독백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여전히 대상과 싸우고 있고, 여전히 이미지스트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지만 어쨌든 화자를 개입시켜서 내러티브를 만드는 시들이 이번 시집에서 발견되어 약간 특이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김기택 시인의 시를 ‘도시의 시’라고 이해해 왔습니다. 전 시집인 『껌』이 특정 소재에서 출발해서 확장시키는 방식이었다고 한다면, 『갈라진다 갈라진다』는 행위 자체를 가지고 시적 모티프를 잡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복 시인은 「청도 시편」 이후, 사물에 대한 몇 편의 단상은 시인이 살고 있는 현장과 그 주변, 그야말로 일상에서 시의 모든 것을 착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보다 깊은 하나의 길을 내고, 이성복만의 독창적인 시상을 이끌어나간다는 생각입니다. 6부의 연작시 「오다, 서럽더라」와 「래여애반다라」를 읽어보면 삶의 희로애락을 서럽지만 탁월한 말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poem_lyj    ▶ 이영주(이하 이) : 앞서 말씀하신 선생님들 의견과 비슷하게 느꼈고요. 황인찬 시인, 박준 시인 그리고 선배 시인들 사이에 김성규 시가 있는데요. 그 시집의 간단한 인상을 말하고 싶습니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는 김성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데요, 수상한 시절에 대한 예감의 징후가 뛰어난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젊지도 않고, 노회하지도 않은, 경계에 선 시인이 느끼는 이 세계란 구체적인 불행의 목록들이 점점 쌓여서 무겁게 침잠하는 세계인 것은 아닐까요. 어둡고 무거운 묵시록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인 본인의 내면적 상황도 있겠지만 부조리한 시대의 억압과 부패가 만들어낸 측면도 큰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상상 이상의 고통을 퍼뜨리며 오염되어가고 있는데 그 현장에서 처절하게 분투하고 있는 자의 고투가 느껴집니다. ‘과연 시인이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저도 그런 전투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물론 박준 시인도 아름다운 언어를 잘 구사하고 있고 황인찬 시인도 자기만의 새로운 질서를 잘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김성규 시인은 ‘혼자 감내하겠다’는 태도가 보여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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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더 치열하게 지워 내느냐”

 

    ▶ 고 : 첫 시집인 황인찬, 박준 시인을 제외하면, 각 시인들의 시 세계에서 정점에 있는 작품집은 아닌 듯하다는 발언이 흥미롭네요. 또한 인칭적인 시에서 비(非)인칭적인 시로 넘어가는 시가 많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 두 가지 의견에 대해 말씀하실 분, 계신가요?

 

    ▶ 조 : 이견은 아니지만 사실 ‘절정을 찍었다’는 것을 판단하기는 어떤 경우에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매번 시인들이 하나의 시집을 낼 때 겪은 고통이 있을 것이고요. 그 시집이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유성호 선생님 말씀도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알겠습니다. 또 김기택 시인이 이전까지 보여줬던 면모를 본다면 「갈라진다 갈라진다」가 이 시인의 절정은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인정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일면 어려움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유 : 그야 물론입니다. 시인 개개인의 통시적인 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이번 선정 시집들의 공시적 느낌을 말한 것입니다.

 

    ▶ 나 : ‘정점을 찍는다’든지, ‘절창이다’는 표현을 요즘에는 쓰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절창이라는 것은 대체로 강력하고 단일한 서정적 주체를 전제할 때 가능한데, 서정적 절창을 거부하는 시인들에게는 오히려 자기가 이뤄놓은 미학적 지점들을 부단히 지우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니까요. ‘얼마나 더 치열하게 지우느냐’에 집중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로 이 시다’라는 느낌이 안 오는 것이지, 그것이 시인의 긴장?이완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이 든 시인들이 오히려 더 젊고 새로운 시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 고 :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추천한 시집의 어떤 면을 보고 추천하셨는지, 그 추천의 기준을 여쭙고 싶습니다.

 

    ▶ 조 : 황인찬 시집을 추천한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수명이라는 걸출한 시인의 유산을 황인찬, 송승언이 잘 물려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좋은 의미로 반쪽짜리 유산인 것 같습니다. 황인찬 시인의 시는 정말 섬세하게 읽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그런 시라고 생각합니다. 구절과 구절 사이, 연과 연 사이의 간극을 지극히 넓게 사용하는 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행과 행 사이의 익숙한 미끄러짐보다는 침묵으로 벌어진 틈 사이에서 의미의 완급을 조절해 나갈 줄 안다는 것, 첫 시집에서 이런 것을 보여주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물과 대상을 따로 놀게 하는 능력, 그 폭을 차분하게 다독거리는 문장들이 매우 좋았습니다. 이것은 「개종2」같은 시를 보면 매우 잘 느낄 수 있는데요. 대상의 ‘거기 있음’ 즉, Dasein이라는 것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아주 조금씩 감정을 입히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관의 영역으로 포섭하고자 하는 시도는 분명히 이수명, 이원, 신해욱 시인에게서 착안한 무엇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구성이지만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미래파 담론’에 대한 어떤 반격일 수도 있고요. 세대론은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2010년의 새로운 모색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고 : 그렇다면 조재룡 선생님께서는 이전 세대나 선배들의 스타일과는 다른 변화를 보여주는 것을 기준으로 추천하신 건가요?

 

    ▶ 조 :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요. 예를 들어 이수명 시인이 한 시대 특별한 시의 문법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공신력을 얻거나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 전으로 돌아가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즉, 황인찬 시인이 이수명 시인으로부터 배운 무엇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입혔다는 생각입니다.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 것이죠. 특히 황인찬 시인은 이수명 시인의 두 번째 시집『붉은 담장의 커브』로부터 어떤 가능성을 확장시켜낸다고 생각되며 비평가의 눈에도 그런 것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대상을 무자비하게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분배와 조절, 배치를 통해서 대상의 있음을 보존해내는 동시에 형용사 하나만큼의 자기 것의 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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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숙주의에서 해방된 세대의 가능성”

 

    ▶ 나 : 황인찬, 박준 시인의 시집이 첫 시집으로서 완성도와 개성을 갖추었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를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두 시집의 성취는 시의 전통을 수용하고 현대적으로 변용해 내는 솜씨와 감각에 힘입어서입니다. 방금 조재룡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로 앞 세대인 이수명, 신해욱 시인의 시를 학습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황인찬의 경우는 김종삼, 김춘수를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많고, 박준의 경우는 백석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바로 이 점이 두 시인을 동세대의 다른 젊은 시인들과 변별되게 하면서 좀 더 보편성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서도 이 두 시집은 매우 대조적인 느낌을 줍니다. 황인찬의 시가 감각적이고 지적인 절제로 투명한 이미지를 구사하고 침묵 속에 음악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다면, 박준의 시는 약간 낡고 익숙한 듯한 언어와 감상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서사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냄으로써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하지요. 이처럼 젊은 시인들의 경우는 ‘미래파’ 이후에 전통과의 접점을 찾으면서 소통력을 높이고 있다면, 중견 시인들은 자신이 일구어 온 시적 세계를 미학적으로 갱신하는 데 공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합니다.

 

    ▶ 조 : 어디선가 박준 시인이 “나는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엄숙주의에서 해방된 세대의 가능성은 시에서도 무한하다고 본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건 정확히 그 전 세대를 의식해서 나온 말이라 생각합니다. 비평가인 제가 볼 때 이 시인은 2010년도에 당도한 시집치고 지나치게 낡은 정서가 있다고 느끼는데요. 이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고요, 오래되고 한동안 묵혀 낸 언어를 쓸 줄 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의사경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박준 시인의 시집이 시의 본령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박준은 「오래된 유원지」라는 시에서 “남진이 나훈아보다 좋다는 이야기”라고 썼는데, 이것은 이 말이 환기하는 시대의 정서를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일 것이며, 또 ‘애역’이나 ‘축농’ 같은 한자도 잘 쓰고, 그런 의미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고요. 초코파이 봉지에 적힌 ‘정’, ‘반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세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떤 문화의 영역에서 자기의 시적 정서를 길어 올리는 데 멋지게 성공하지만, 한편 우리가 갖는 의문이 있다는 거죠. ‘이 세대에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한가’, ‘의사경험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에 박준 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의 시는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2010년도에 선보인 새로운 목소리이자 시대의 요청이라 생각합니다. 커다란 담론이 한 번 지나간 다음에 생긴 공백을 찾아 들어간 2010년도에 시인들이 살아남으려는 자기 몸짓으로 보여지는 거죠. 매우 독창적 문법이라 생각합니다. 반동적 움직임이나 2000년대 시단에 대한 반감의 표출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연애시 형태를 띠고 있고, 누이에 대한 애도이고, 애가이며, 한 권의 시집으로써 어떤 기억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서 이 시집 자체가 서정적 진혼가로서의 자격을 가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혼가에 합당한, 애도에 어울리는 언어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고요. 아픔은 병을 치러내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고통인데, 그것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응축하고 섬세하게 감싸 안은 감정으로 차분히 빚어내는 데 성공한 시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 고 : 유성호 선생님은 시집 추천하실 때 주목했던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 유 : 황인찬과 박준 시집에 대해서 잠깐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 두 시인의 시집이 미래파를 기준으로 놓고 그 이후, 즉 ‘포스트 미래파’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과라는 평가신데요. 황인찬 시의 경우 소소하지만 절실한 감각의 흐름을 행간을 벌리는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방식이 읽는 사람들에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전통적 독법에 의한 엉뚱한 불만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방식은 단순 반복을 피하면서 새로운 감각들을 변형 배치할 수 있는 일종의 지치지 않는 시법이고 오히려 장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세하고도 심미적인 감각의 역동성이 많이 느껴집니다. 반대로 박준의 시는 쉽게 지치거나 소진될 가능성이 있고 한시적 경향일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2차 체험도 절실할 수 있습니다. 박준의 시는 리얼리즘 충동이 있는 시 중에서도 독특한 것 같아요. 일종의 고고학적 상상력을 통해 백석의 계보를 충실히 이으면서도 삶의 근원적 의식이랄까 가치랄까 하는 것에 대한 암시적 기능도 한껏 하고 있어요. 이 점에서 가능성이 충분히 보입니다. 저는 김기택 시집과 박형준 시집을 추천했는데요. 김기택 시집은 이번에 매우 독특한 방법론적 실험을 한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김기택 시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고 또 그것들이 대체로 일정한 비평적 합의를 이루고 있는 만큼 여기서는 그것을 새삼 반복하지 말고 크게 두 가지로만 이번 시집의 독자성과 집중성을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그것은 ‘반복’의 형식과 ‘갈라짐’의 내용에 있습니다. 물론 더 많은 의미 자질과 형식 미학이 시집 속으로 개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시집은 이러한 독자성과 집중성으로 우리 삶의 완강한 기율과 거기서 비롯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성을 취합니다. 그렇게 기법적으로 점층적 반복, 언어의 물질성을 반복하면서 그 점층성을 통해 잊히고 소외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희망의 담론으로 바꾸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이전 시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죠. 굉장히 온건해졌다고나 할까요? 따뜻한 심성을 복원해 냈다는 것이 이채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형준의 『불탄 집』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진정성이나, 대개의 시편의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습니다. 전 시집을 낸 후 2년밖에 지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저의 기우였습니다.

 

    ▶ 나 : 박형준 시인처럼 한 권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한 권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시집 전체를 바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불탄 집』에 깃든 극진한 애도의 마음에서 일반적으로 산 자들에게 읽혀지고 제도 속에 유통되는 시집의 효용을 넘어선 진정성 같은 게 느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문학적 수월성이나 새로움을 따지기보다는 다른 차원에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성복 시인은 ‘시의 수도승’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시집을 낼 때마다 수행에 가까운 탐구의 결실을 보여줍니다. 『래여애반다라』는 『아, 입이 없는 것들』에 나타난 ‘생사성식(生死性食)’의 문제를 좀 더 확장해서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 이 여섯 글자로 풀어내고 그것을 시집 전체의 구성 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읽다보면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여정이 만화경처럼 펼쳐지지요. 개별 시편들의 완성도도 이전 시집에 비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김기택 시인의 『갈라진다 갈라진다』를 읽으면서는 특유의 시선으로 사물을 투시하면서 그 본질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여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유성호 선생님께서 ‘희망의 담론’으로 가지 않았냐고 말씀하셨는데요. 예전에는 건조하고 단단한 문체 속에 시적 대상이 응축되었다가 터지는 방식이었다면, 최근 시는 한결 능수능란하고 유머러스하게 흐르는 것 같아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영광 시인의 『나무는 간다』에서는 김수영이 말한 ‘온몸으로 시 쓰기’처럼 시와 삶을 동시에 밀고 나가는 데서 얻어진 육성의 힘이 느껴지는데요. 그 이전에 낸 시집 『아픈 천국』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이번 시집에서는 약간 지치고 기운이 빠진 것 같기도 합니다.

 

    ▶ 유 : 삶이 힘든 것과 시가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것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나무는 간다』의 성취와 함께 이번 시집이 이영광의 시적 생애에서 하나의 결절을 구현할 것으로 보는데요. 말하자면 그의 이번 시법은 어떠한 명명을 받더라도 이것이 거의 마지막이고 이제는 다른 모색을 통해 이영광 다음의 시학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만의 성취에 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 조 : 김기택 시인에 대해서 유성호 선생님의 말씀에 잠깐 부언하면, 사실 다 옳으신 말씀이신데요. 『껌』과의 비교에서 제가 느낀 것은 어쨌든 ‘감정 도살의 도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세 가지가 달라졌다고 보이는데요. 먼저 ‘본다는 행위의 복수성’, 다음으로 ‘기대치를 배반하는 행위의 가능성’이고요. 방금 나희덕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대상에서 출발해서 터트리는 게 아니라 갈라진다는 것 자체가 어떤 동적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같은 시간대에 행해질 수 있는 동시다발성’, 이 세 가지 정도가 두 분 말씀에 얹을 수 있겠습니다. 결국 구성력이 참 돋보인다는 말이죠. 『껌』에서 보여줬던 방식과 연장선상인 것 같지만 같은 방식은 아니라는 거죠. 이전 시집이 특정 소재에서 출발해 확장시키는 방식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오히려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위 자체를 시적 대상으로 삼아 방금 말한 세 가지 문법을 보여주면서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보입니다.
    또 이영광 시인만큼 온 몸을 부딪치면서 시를 쓰는 시인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전작들이 자연의 풍경을 붙잡고 어떤 ‘유비’의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은 완전히 세속으로 내려오지요. 또 하나 이영광 시인에게 주목했던 점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를 쓸 때 굉장히 망설이고 고민하는데 고립된 개인 안에도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는 부분입니다. 「천안」 같은 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쓴 것인데요. 이것이 사태 고발에 그쳐선 안 된다는 자의식이 생기고, 때문에 이를 개인의 사건으로 내재화시키게 되고, 거기서 오는 잠언적인 말이 굉장히 뛰어나지요. 즉, 어떤 사건에 달라붙어서 소묘하면서 시를 거기에 종속시키는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히 있는 거죠. 그 다음이 술에 대한 시가 많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자의식에 대한 표출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가 무엇인가를 캐묻는 과정, 물론 시론격의 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대신에 자신을 향한 말이나 시 쓰기에 대한 어려움이나 각오, 그 과정에서 겪는 온갖 아이러니 같은 것들을 환치해내는 공간이 ‘술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술에 대한 비유를 불러오는 거겠죠.

 

    ▶ 유 : 충분히 개별화될 수 있는 발화조차도 공통체적 검열이 작동하면서 생기는 빡빡함이 크죠. 이영광 개인의 2, 3년 사이의 변화이기도 하고요.

 

    ▶ 조 : 사실 그 변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의 이영광 시를 보면 자연에서부터 성찰 거리를 길러오고, 그것을 매우 뛰어난 방식으로 시적 공간 안에 위치시켜는 작품들이 여럿인데, 이번 시집에서는 현실로 들어왔다고 할 정도로 공간이 좀 변했습니다, 예컨대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들, 천안함과 같은 소재로 시를 쓴단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사건을 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모험이자 위험이며, 내가 감히 애도한다고 말했다가 비극을 소모하고 마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데 이영광 시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 사건을 개별화시켜서 개인적이면서 몸의 사태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다시 벼려 내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존경할 만하다 생각합니다.

 

    ▶ 이 : 저는 변화가 엿보이는 시집에 집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원, 김성규, 이병률 시인을 추천했는데요. 다른 분들이 갖고 있는 문학적 완성도와 비교하는 차원이 아니고, 자기 발화 자체가 변화의 지점에 와 있는 시집을 추천했습니다. 이병률 시인은 어느 순간부터 대중적인 이미지가 되면서 오히려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 있는데요. 이번에 『눈사람 여관』을 읽으면서 시인이 어떤 정황을 보여주면서 연민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잘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연민의 시선이 화자를 통과해 슬픔을 노래하는 시적 감수성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김성규 시인은 앞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렸고요.

 

    ▶ 고 : 정확하게 맥락을 짚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2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1년 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시집들 중에서 1차 추천을 받아서 14권을 만들었고 그 중에서 해당 기간을 대표하는 우수한 시집 몇 권을 고르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개별 시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 사람의 시 세계에서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 기간에 나온 시집들 가운데 대표성을 띨 작품을 골라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시집 선정의 기준에 대해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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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몸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화”

 

    ▶ 나 : 이원 시인의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요. 이때 고독은 감정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미학적이고 실존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이 언어로 계속 불러내려는 것들이 대체로 이 세상에는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아니면 사물들의 고독 같은 것?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피와 살과 뼈를 입히는 것, 그렇게 살아있는 몸을 부여함으로써 그 존재들과 소통하려는 것이죠. 그래서 특별한 시어가 없는데도 어느 순간 아주 낯선 우주적 공간이 형성되곤 하는데요. 예전의 시에 보이던 사이버공간보다 스케일이 커지면서도 인간적인 온기 같은 게 느껴져요. 실존의 한계와 싸우며 집중도 있는 세계를 열어나가는 모습을 응원하고 싶은 시집이었어요.

 

    ▶ 조 :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제가 “‘사이버 세계/모래사막’이라는 시적 인터페이스에서 ‘고독’의 인터페이스로 넘어온다”고 메모를 해왔거든요. 이원 시인의 『불가능한 역사』는 고독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순간순간의 깊이를 이끌어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심도 여전하고요. 제가 주목한 부분은 ‘내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인데요. 이원 시에서 ‘내’가 노출이 많이 된 건 처음 봤어요. 내면의 고독과 사물의 고독을 하나의 관점에서 견지하려는 몸짓이 이번 시집의 두드러진 특징인 것 같고, 이원에게는 늘 세계의 너머 그 이면을 사유하는 방식이 있는데요, 이전에 비해서 나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세계와 자신에 고독을 느끼고 있다는 거겠죠. 그러나 그것이 일인칭을 가지고 입사하는 주관적인 감정의 세계는 아니고요, 나와 세계, 나와 사물이 때론 대결하고 때론 화해하고 때론 질시하고 온갖 드잡이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쯤 타다 남은 자화상」이나 「그리고 바다 끝에서부터 물이 들어온다」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스트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뽐내는 작품도 여전히 좋지만, 이미지를 비끄러매는 나의 목소리가 시 전반을 이끌어 나가며 각 편마다 내러티브를 입히는 방식이 목격된다는 거죠. 소재를 여전히 잘 활용하는 시인이지만 세태비판이나 풍경의 묘사 이런 것은 절대 없고 오히려 세계에 스며들어 있는 잠재력, 가능성 그리고 순간의 흔적을 포착하고, 그것이 내 몸을 통과해 시에 실존의 깊이를 파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자 매력인 것 같습니다.

 

    ▶ 이 : 선생님 말씀하신 것의 연장에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요. 제가 이원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좋았던 점은 사물이나 세계를 대할 때 그 전에는 ‘왜 이렇게 불화할까’에 집중했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같이 갖고 가겠다, 그 끝에 무엇이 있든지 함께 가겠다, 하는 과정이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잘 드러났다는 점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힘든 것인데, 그것을 치열하게 밀고 가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고, 언어의 변화라는 차원이라기보다 시인의 몸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유 : 일인칭으로의 회귀나 잠입이 아니고 그것을 회복시키면서 질문의 대상을 자기감정으로 되돌리는 시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연한 변화를 느껴서 최근에 이원 시인에게 제도적 주목의 결과인 상도 몇 개 부여된 것 같습니다. 그 진화가 모두 반가운 것 같아요. 또한 개별 시편도 상당히 개별적 완성도도 높다고 생각하고요, 편편이 개별적인 순간들과 느낌들을 잘 풀어낸 집중성이 뚜렷한 시집이라 생각합니다. 김기택과는 또 다른 의미의 친화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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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시집을 위해 죽었다 깨어나는 시인”

 

    ▶ 고 : 지금까지 일곱 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행했는데요, 혹시 다 못한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 조 : 이성복 시인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청도 시편」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사물에 대한 몇 편의 단상은 어쨌든 시인이 살고 있는 현장과 주변에서 쓰려고 했다는 흔적들. 진부한 말이지만 이성복 시인이 여기까지 와서 일상에서 시의 모든 것을 착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거기에 깊은 하나의 길을 내고 이성복만의 시상을 끌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연작시 「오다, 서럽더라」도 굉장히 좋게 봤고요. 「래여애반다라」 역시 삶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때쯤 되어야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서럽지만 탁월한 말로 감정의 절제를 통해 자신만의 톤을 조절해 내며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부터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투가 이미 달관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구성도 작위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와 변을 부리는 데 있어서 사가 훨씬 깊어지고 변은 훨씬 더 무겁지 않으면서 무거운 언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합니다.

 

    ▶ 유 : 이성복 시인에 대한 비평적 견해도 두 가지로 갈리는 것 같아요. 매우 극단적인데요. 하나는 불충실한 독서를 바탕으로 한 도사급 언어에 대한 칭송이 있고요. 역으로 굉장한 작위성을 읽는 사람도 있지요. 경험보다는 탐구하고 조합해 내는 방법이 『남해 금산』으로부터 너무 많이 왔다 하는 비우호적인 비평적 견해도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이성복이라는 전제를 두고 읽으면 그러한 신뢰가 새로운 독법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까 조재룡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성복 자체는 이미 그 전에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공력을 다해 새로운 가독성을 다시 요청하는 거죠. 예를 들어 ‘래여애반다라’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가가 할 수 있는 합법적 작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 : 저는 멋졌는데요. (웃음)

 

    ▶ 조 : 사실 이성복 시인의 입장에선 얼마나 힘들까요.

 

    ▶ 유 : 그렇죠. 예전과 달리 지금은 10권씩, 20권씩 시집이 나오니까 그 담론적 고민의 층위가 상당하겠죠.

 

    ▶ 조 : 10권이 나오면 10번 죽었다 깨어났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시인은 기인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그 자체가 기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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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지형도에 의한 평가는 지양해야”

 

    ▶ 나 : 앞서 ‘죽음’에 관한 시가 많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우리가 논의한 시집 중에서도 박형준 시집과 박준 시집은 가족과 사별하고 고인에 대한 사랑과 경의를 표하는 시집이라고 볼 수 있죠. 이영광 시인의 경우는 지난 시집까지 육친들의 죽음에서 비롯된 비명과 악몽의 세계였다면, 이번 시집은 사회적 차원의 죽음이 좀 더 객관적으로 다루어지면서 김기택 시집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김기택의 시집에는 자연사보다는 자살이나 살인 등 사회적인 폭력과 연관된 죽음이 자주 등장하잖아요? 언술 방식에서 이영광은 진술이 강하고 김기택은 묘사가 강한 편이지만, 도시적 일상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통해 현대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시집이 공유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복 시집과 이원의 시집의 경우는 죽음과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하는데요. 죽음을 소재로서가 아니라 삶 속에 들어 있는 실존적 조건으로서 받아들임으로써 그 경계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어떤 시가 좋은 시냐 하는 질문에 말씀드리자면, 시집 자체의 좋고 나쁨도 있겠지만, 비평적 지형도에 따라 어떤 시집은 좋은 시집인데도 박하게 평가되기도 하고, 비판적으로 볼 것이 있는데도 후하게 평가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미래파가 한창일 때는 좋은 서정시들을 낡았다고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또 미래파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시점에서는 황인찬이나 박준 같이 고전적 품격을 지닌 소통 가능한 시인들을 높이 평가하지요. 비평의 담론에 따라 시집의 성취가 상대적으로 비교되거나 불균질하게 평가되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죠.

 

    ▶ 조 :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시니까 생각이 나는데요. 사실은 ‘미래파’라고 분류된 시인들도 자신이 ‘미래파’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요. 네크워크가 형성되었다가 누군가 담론을 만들어서 그게 회자된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하나 하나를 보면 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죠. 또 그 중에서 굉장히 서정적인 시인도 있고, 김행숙처럼 독특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황병승 같이 말을 터트릴 때 주저하지 않는 시인도 있는데요. 어찌 보면 비평이 게을렀다는 생각도 합니다. 황인찬이나 박준 시에 대해서 쏟아지는 평도 보면 저는 이들도 미래파에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거든요. 특히 황인찬의 경우에는 이수명, 신해욱 시인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고, 박준 같은 경우는 또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데요. 어쨌든 비평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앞서 말씀하신 대로 세대론에 귀속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목소리를, 시적 발화를 그 사람 개인의 목소리로 파악해야 하는데 자꾸 집단으로 묶어서 평가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굉장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유 : 지금은 그런 게 없잖아요?

 

    ▶ 조 : 끝났죠. 그래서 2010년대론 만들려고 하다가 깨졌죠.

 

    ▶ 고 : 그래서 요새 잡지들이 그래서 특집을 못해요. (웃음)

 

    ▶ 유 : 담론이라는 것이 원래 의도한 바와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것도 있고요. 사실은 그것이 비평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저널리즘의 속성이기도 하지요. 한때 소진된 텍스트들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새로운 텍스트를 가지고 와서 또 문제 삼아야만 하는, 그 자체가 담론적인 파생성을 가져야만 설정이 가능하니까요. 이런 형태는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황인찬과 박준 역시 그룹핑이 아니라 개별적인 조명을 받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고 : 아시다시피 이 자리에 모이기 전에 14권을 7권으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복수 추천 방식으로 7권 가운데 4권을 뽑아야 합니다. 네 권 중에서 한 권씩에 대해서 강한 지지 발언을 해주시면서 대담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재룡 선생님은 이미 황인찬 시인의 시집에 관해 강력한 지지 발언을 하셨으니 나희덕, 이영주, 유성호 세 분의 의견을 듣고 좌담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 나 : 이성복 시인의 『래여애반다라』는 그 제목을 신라 향가 ‘공덕가’에서 따온 것처럼, 사는 일이 공덕을 쌓고 또 쌓는 끝없는 구도행임을 말해줍니다. 자칫 초월적인 깨달음으로 기울 수도 있는 사유를 일상의 풍경과 사물들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이 시집은 힘을 뺀 것 같으면서도 시적 긴장이 삼엄하게 느껴집니다. 시집의 전체 구성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잘 짜여 있는데요, 연작시들이 많긴 하지만, 기본적인 구도는 「생에 대한 각서」「죽음에 대한 각서」「시에 대한 각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 꼭짓점을 오가며 시인은 적확한 직유를 통해 삶의 비의와 기미를 예민하게 읽어냅니다.

 

    ▶ 이 : 그동안 문명의 ‘몸’에 집중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었던 이원 시집이 더욱 깊어졌는데요. 고독한 자아가 세계의 내밀성에 접근하는 방식으로서, 사물들을 통과해가는 언어의 감각들이 돋보이는 시집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해 고투하는 언어들은 순결하면서도 치열한 태도로 정진해갑니다. 그러다 보면 극단의 절망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극복하려는 몸짓이 처절한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시에서 보이는 ‘고독’은 죽음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형이상학적 죽음이면서 실질적 조건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고, 이 행보는 일상의 풍경을 아주 낯설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의 실존이 변형된 형태의 여러 감각들은 순간순간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전 시집에서 징후적으로 보였던 1인칭의 도드라짐 역시 흥미로운데요. 화자의 목소리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세계 너머의 이면, 나와 세계의 예민한 대면 방식이 도드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개별적 순간에 집중하는데, 이것이 앞으로 어떤 세계를 보여주게 될지 기대가 되는 시집입니다.

 

    ▶ 유 : 이영광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시적 관심사나 미학적 지향이 지난 시집을 충실하게 이으면서도 좀 더 근원적으로 자신의 시적 진원지를 공동체적 사유와 경험으로 초점화한 사례입니다. ??나무는 간다??는 한국 서정시의 정치적 전위에 서면서도, 함돈균의 해설에서 지적되었듯이, ‘몸의 시학’을 바탕으로 한 직접성과 도저함이 그 밀도와 농도에서 단연 돌올하고 걸출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돌올함과 걸출함이 다음 음역을 상당 부분 제약함으로써 이영광 개인에게는 더욱 고통스런 주체의 가능성을 사유해야 하는 짐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집을 내놓고 얼마나 그 완성도만큼이나 스스로 아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주체의 가능성을 이토록 확장하고 심화한 최근 사례를 우리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념이나 현실이나 담론이 모두 윤리적 추궁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21세기의 첨예한 실험 중 한 정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한 권을 뽑으라면 이 시집을 천거합니다.

 

    ▶ 고 : 기록에 모두 담지는 못하지만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듯합니다. 네 분의 적극적인 추천을 반영해서 이성복, 황인찬, 이원, 이영광 시인의 시집을 2013년 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주목할 만한 추천도서(시)’로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녁 드시면서 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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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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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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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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