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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_나는 왜 대담]자, 이제 하나씩 진실을 이야기할 시간

  • 작성일 2014-11-15
  • 조회수 1,903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7회)

 

 

자, 이제 하나씩 진실을 이야기할 시간

- 시인 손미 편

 

 

정리 : 안희연(시인)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불쑥 이런 인사를 건네는 시집이 있습니다. “우리, 언젠가 만난 적 있지? 이 무덤 속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눈을 끔뻑거리면서,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이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리고 ‘이 무덤’이란 대체 어떤 곳일까 하고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내 집”을 향해 가는 개성적인 시세계로 2013년 제32회 〈 김수영 문학상 〉을 수상한 손미 시인.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로 가득한 그녀와의 “양파 공동체” 데이트! 주저하지 말고 손에 들린 초대장을 펼치세요. 자, 이제 하나씩 진실을 이야기할 시간!

 

001

 

    속으로 혼자 소리치곤 했던 날들

 

lyj-ss    ▶ 이영주(이하 이) : 지난 4월부터 진행된 문장 웹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 어느덧 7번째 시간을 맞이합니다. 시 읽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는데요. 10월, 이 가을과 잘 어울리는 오늘의 초대 손님은 손미 시인입니다. 2012년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시고 곧이어 시집 『양파 공동체』를 펴내셨습니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실 듯한데, 근황을 좀 들려주세요.

 

sm-ss    ▶ 손미(이하 손) : 사는 곳은 대전인데 종종 서울에 올라와요.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수업이 있을 때도 오고, 오늘처럼 행사가 있을 때도 오고, 술 마시러 오기도 하고요. 시집이 2쇄를 찍었는데 그건 아마 제가 1쇄를 다 샀기 때문인 것 같고요. (웃음) 얼마 전에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몸으로 쓰는 시’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 행사 끝나고 나서 재즈댄스를 배워보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 : 아마도 이 질문은 [나는 왜] 행사의 첫 번째 공식질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혹 손미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 손 : 별로 잘하는 게 없었다는 게 되레 문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의 저는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잘 놀지도 못하는 학생이었거든요. 학교에 있는 게 너무 싫어서 담을 넘어 땡땡이를 많이 쳤는데 그러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제가 여중을 다녔거든요. 여학생 또래집단이 지닌 특유의 문화가 있는데 그게 저랑은 잘 맞지 않았어요. 무리지어 매점을 간다든가, 연예인에 열광한다든가 하는. 저희 반에 간질이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발작을 했어요. 그걸 보고 친구들이 그 학생을 왕따 시키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교 내에서 이물감을 많이 느끼곤 했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로 라디오를 들었어요. 노래가사를 멋대로 바꿔보곤 했죠. 작사 아닌 작사랄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처음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건 소설을 쓰고 싶어서였는데 하필 시인인 교수님이 많으셔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 이 : 맞아요. 10대 여자아이들이 지닌 특유의 잔인함이 좀 있죠. 학창시절의 소외감과 이물감이 자연스레 문학으로 이어졌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어쩐지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손 : 겉으로는 잘 어울리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또래 아이들과 섞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뒤에서 속으로만 혼자 소리치곤 했던 것들이. 시 아닌 시를 쓰던 그 시절이.

 

    ▶ 이 : 손미 시인이 쓴 한 산문을 보니 ‘골목’에 대해 남다른 정서를 지닌 듯 보였습니다. 골목에서 뛰어놀던, 가난하지만 즐거웠던 아이들 중 하나가 손미 시인이었을 것 같은데요. ‘골목의 정서’랄까요. 유년 시절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골목에서 뛰어놀았던 시간들이 어떻게 시로 이어졌을지도 궁금합니다.

 

    ▶ 손 : 어린 시절엔 골목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땐 엄마, 아빠,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저까지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거든요. 초등학교 1, 2학년 즈음이었을 텐데 당시 아버지는 일을 안 하셨고, 어머니가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꾸리셨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시절이었죠.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늘 아버지가 단칸방이 꽉 차게 누워계셨어요. 아버지께서 풍채가 좀 있으시거든요. 방을 좋아했지만 그곳은 아빠의 공간이니까 방에 머물 수 없었고, 그래서 밖으로 나와 골목을 기웃거리며 놀곤 했어요. 뒷산에 올라 언제 엄마가 올까 기다리기도 했고요. 아마도 그런 기억들이 ‘긴’ 이미지나 시어들로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골목은 시간도 모양도 기니까요. 가령 오이라든가 미끄럼틀이라든가, 「칠레로 가는 기차」도 그런 것 같고요.

 

    ▶ 이 : 저희는 농담으로, 손미 시인이 얼굴이 길어서 시어도 긴 게 아니냐고 놀리곤 했는데. (웃음) 아무쪼록 방이 있지만 그건 내 방이 아니고, 그래서 나는 정착할 수 없고 골목을 떠돌 수밖에 없는 그런 정서, 삶의 터전의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이 시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 주체의 움직임으로 표출되기도 하고요.

 

    ▶ 손 : 그 단칸방을 벗어난 이후에도 늘 여동생과 방을 같이 써야했어요.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지금은 혼자 방을 쓰지만 부모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고요. 집이 대전에 있으니 서울에 와도 떠돌게 되고……. 계속되는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작년에 시집을 묶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그런 방황의 시간들이 시집 안에 정체성으로 녹아있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시집은 내 지나온 시간들의 무덤이 아닐까 생각했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제 등단작 제목이 「달콤한 문」인데요. 그 시 역시 집밖에서 쓴 시에요. 그때가 27살 무렵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등단 앞두고 너무 힘이 들어서 시를 그만 써야겠다, 죽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허난설헌을 생가를 찾아갔어요. 허난설헌이 27살에 죽었으니까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실컷 방황을 하고 돌아와 「초희楚姬에게」(허난설헌의 본명)라는 시를 썼고, 그 시를 「달콤한 문」으로 고쳐서 응모를 했는데 당선이 되었어요.
    시집에 수록된 「달력의 거리」나 「달은 떨어질 자격이 있다」라는 시도 그런 방황의 정서를 품고 있어요. 「달력의 거리」는 제가 직장생활을 할 무렵, 책상에 놓인,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달력을 보면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우리는 영영 이 사각형 안을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생각하며 쓰게 된 작품이었고요. 「달은 떨어질 자격이 있다」는 한밤중에 육교 위를 걷다가, 술을 한 잔 더 먹고 싶은데 갈 곳은 없고, 달과 나 둘만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쓰게 된 작품입니다. 결국 외톨이로 떠돌았던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시집으로 엮인 것 같아요.

 

    ▶ 이 : 시 한편, 한편에 다 사연이 있기 마련이죠. 거대한 드라마든 한 순간의 느낌이든 그것이 시가 될 때는 마음이 실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002

 

 

    줄을 당겨 다른 곳으로 가려는 시도

 

    ▶ 이 : 이제부터는 시집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눠볼까요? 손미 시인의 시에는 ‘소극적인 주체’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주체는 정착을 못하고 계속해서 방황을 합니다. “줄을 당겨 다른 곳으로 가려는 시도/ 아무도 없어?” (「고층 아파트 유리를 닦는 사람」)라는 문장처럼, 현실에 머물지 못하고 어딘가로 자꾸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어요. 왜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걸까요?

 

    ▶ 손 : 이 시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가에서 뭔가가 뚝 떨어지는 거예요. 유리창을 청소하는 분이셨는데, 줄에 매달린 채 위에서 뚝 떨어져서 심드렁하게 유리창을 닦고 계시더라고요.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뒀다가 시로 쓰게 됐죠.
    말씀하신대로 제 시에는 어딘가로 자꾸 가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종교적인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교회를 다니는데, 고등학교 때 성경공부를 하다가 깊은 충격을 받았어요. 종교에서는 지구를 ‘도피성’이라고 하거든요. 죄를 지어서 지구로 도피, 즉 피난을 왔다고 설명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물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고, 그들이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나의 주(主)는 저쪽에 있고, 여기 있는 건 나의 부(副)라는 생각. 이쪽에 있는, 여기 있는 형상들은 모두 허상이라는 생각.

 

    ▶ 이 : 그렇군요. 손미 시인의 시를 보면 물질적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 같아요. 일례로 「찰흙놀이」라는 시에는 물질(찰흙)을 주무르는 행위가 재미있게 나타나는데요. 손으로 전해져서 오감으로 번지는 이러한 감각이 시 안에서 어떻게 변형·발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 손 : 「찰흙놀이」라는 시 역시 앞서 말씀드린 생각들을 품고 있어요. 가령 오늘도 섬뜩한 체험을 했거든요.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에 서 있는데 무궁화호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불현듯 저 기차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도 모르는 내가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건 거죠. 섬뜩하더라고요.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수한 목소리들이 있구나 싶어서.
    나도 허락하지 않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요.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이 흙이 누군가의 사체가 녹아 있는 흙이 아닐까, 그래서 나를 두근거리게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게 하고, 말을 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이 시를 쓰게 됐죠.

 

    ▶ 이 : 흙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사체가 들어 있는 원형적 물질이라는 발상, 무섭기는 하지만 굉장히 시적이고 재미있네요. 이 자리에서 그 시를 직접 낭송해주시면 어떨까요?

 

      찰흙 놀이

 

 

    흙을 만집니다 겨드랑이가 떨어집니다 엉덩이 옆에 겨드랑이가 있어도 됩니까 모든 것은 불확실합니다 좆도 모르는 것들에게 나는 악을 씁니다 귀가 없어집니다

 

    심장을 파먹고 남은 건 떼어 창문을 틀어막았습니다 창문에 귀가 생깁니다 심장이 갈라지며 말라갑니다

 

    흙을 두드립니다 맥박 같습니다 발이 하얘지면서 나는 다시 흙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눈과 귀가 떨어지고 입이 떨어지고 너는 내 말을 안 듣고 아무도 안 듣고

 

    살에 대해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체가 녹아 있던 흙이었을까 이 가죽 속에서 짐승들이 울고 있습니다 피가 흐르는 흙을 누군가 부르고 있습니다

 

003

 

 

    사물은 비난을 하지 않으니까

 

    ▶ 이 : 손미 시인의 시는 세밀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사물 내부를 파고들면서도 동시에 사물의 외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가령 「양파 공동체」의 경우, 양파를 까고 까면서 나타나는 안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양파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손길에도 시선을 둡니다. 사물 내부로 파고들면서도 외부를 그리워하는 이 방식은 짐짓 소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시인의 기질적인 특성인가요?

 

    ▶ 손 : 네, 제가 워낙 안으로 파고드는 성격이에요. 일본에 ‘가부키(歌舞伎)’라는 극이 있잖아요. 얼굴 표정, 눈썹이나 인골의 움직임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배우들이 얼굴에 흰 칠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비롯한 시인들이 다 그런 흰 칠을 하고, 사물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물의 세계 혹은 보이지 않는 시적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있는 것 같아요. 사물들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저는 그것들에 안부를 전하면서, 말을 걸면서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물은 비난하지 않으니까. 불평등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없으니까.

 

    ▶ 이 : 사물에게 말을 거는 것은 사물이 말이 없고, 비난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어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 폭력적인 세계에서 시적 주체는 계속 불확실한 상태로 변화하거나 사라지는 중으로 보입니다. 세계와 나를 동일시하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여타의 시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 손 : 사라지려는, 투명해지려는 이유는 제가 잘 흔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저 역시 세계의 일부잖아요. 저는 그저 조용히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이고 싶어요. 평소에도 남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한다거나 대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아마도 그 이유는 유년 시절부터 한 번도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부모님 나름의 육아 방식이었겠지만 말을 해도 제 의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아예 포기를 해버린 게 아닐까. 내가 포기했고, 무기력해졌기 때문에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고 있어요. 저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 같거든요. 사랑한다면 이가 부러지든 코가 깨지든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을 테니까. 결국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저의 무기력함이 불편한 현실이나 폭력적인 세계에서 빗겨나고 싶은 태도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 이 : 지구는 도피처니까?

 

    ▶ 손 : (웃음) 네. 도피처니까.

 

    ▶ 이 :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해요. 요즘 시대에는 세계를 뒤엎겠다는 에너지를 쉽게 찾아볼 수 없죠. 영웅 없는 시대잖아요. 게다가 시인들은 워낙에 결이 여린 종족들이기도 하고요.

 

    ▶ 손 : 네. 그리고 제가 집이 충청도잖아요. (웃음) 그래서 소극적인지도…….

006

 

 

    양파 공동체

 

    ▶ 이 : 아무려나 시인들은 경계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손미 시인은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으신다고 하던데 그런 작업들이 시 쓰기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요?

 

    ▶ 손 : 그림을 그리기는 하지만 테크닉이 훌륭한,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여러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려고 하는 편이긴 해요.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작업도 ‘분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어느 날 갑자기 새똥을 맞는 것처럼 이미지가 확 날아올 때가 있는데 그것을 언어로 옮기기는 어려울 때, 어떤 건 색칠을 해서, 어떤 건 사진을 찍어 저장을 해두는 거죠.
    저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 이를테면 연극을 보고서 그걸 제 식대로 재구성해서 시로 쓰는 경향이 있어요. 사진은 발견이라고 생각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고층 아파트 유리를 닦는 사람」의 경우처럼 찍어둔 사진을 가지고 시를 쓰기도 하고요.

 

    ▶ 이 : 손미 시인의 시 중에 「컵의 회화」라는 시도 있잖아요. 그런 재구성의 욕망들이 좋은 시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한편 시인이 시에서 ‘명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공하면 하나의 고유한 단어가 되곤 하지요. 손미 시인의 경우에는 ‘양파 공동체’라는, 사물과 사회학이 혼합된 단어를 만들어내셨는데요. ‘양파’라는 겹겹의 껍질이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요? 그리고 시인이 지향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 손 : 정직하게 말하면 『양파 공동체』라는 제목은 출판사에서 지어주신 거예요. 원래는 「양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시인데, 출판사에서 ‘공동체’를 붙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죠. 원래 시집 제목을 『물개위성』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주변에서 만류하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생각하는 ‘양파 공동체’는 물리적인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비슷한 상태의, 비슷한 빛깔의 것들이 모여 있는 상태. 가령 과자 통에 비슷한 맛의 과자를 넣어두는 것처럼, 저와 비슷한 상태의 사물들을 통속에 모아두었다가 그것을 시로 쓰는 거죠. 가령 줄, 미끄럼틀, 칠레라는 나라 등등. 제가 얼굴이 길어서 그런지 (웃음) 길고, 산뜻하게 끝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제 나름대로 모아두고 공동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이 : 외로운 사람은 얼굴이 길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웃음) 저도 얼굴이 길거든요. (일동 웃음) 아무쪼록 색다른 공동체인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독자 분들의 질문을 받아볼까요? 직접 고른 시를 낭송해주시고, 이어서 질문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독자가 직접 고른 시 낭독 ①: 「상자가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

 

      상자가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

 

 

    에밀리는 기차에서 이방의 골목을 팔고, 다른 살을 팔고, 아름다운 피 모양을 판다. 나는 창 밑에 숨어 있다가 플랫폼에 서 있는 존 레논을 쐈다. 내가 그랬다. 세상은 속았다. 세상을 속이는 법을 에밀리에게 샀다.

 

    기차엔 많은 골목들, 모두 한 방향의 수수께끼로, 아무데도 도착하지 않는 기차에서 절름발이 에밀리가 골목을 밀며 온다.

 

    상자가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

 

    승객들의 가방은 텅 비어 있고 나는 객차에 앉은 선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나를 속였던, 나를 버렸던 선생을 쐈다. 내가 그랬다. 세상은 속았다. 세상을 속이는 법을 에밀리에게 샀다.

 

006-2

 

 

    ▶ 독자 : 첫 시집이 나오기까지 4년이 걸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 손 : 제가 2009년에 등단을 했는데, 주변의 다른 동료들은 활발하게 청탁도 받고 평론가들에게 언급도 되고 그랬는데 저는 6개월 정도 청탁이 없었어요. 나름 대전에서는 현수막도 붙었었는데. (웃음) 쓸 게 많았는데, 주목받고 그러질 못했어요. 그러다 조금씩 발표를 하게 되고 시집도 나오게 됐죠. 거의 1년 정도 청탁이 없을 때도 있었어요. 그땐 문예지도 거의 안 봤고요. 누구한테 조언을 구할 성격도 아니어서, 혼자 버티면서, 마음을 다잡으면서, 흔들리는 나를 붙들고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005

 

 

    (독자가 직접 고른 시 낭독 ②: 「컵의 회화」)

 

      컵의 회화

 

 

한 번씩 스푼을 저으면
내 피가 돌고

 

그런 날, 안 보이는 테두리가 된다
토요일마다 투명한 동물로

 

씻어 엎으면
달의 이빨이 발등에 쏟아지고

 

난간을 따라 걷자
깊은 곳에서
녹색 방울이 튀어 오른다
살을 파고
모양을 그리면서

 

백지 위 젖은 발자국은
문고리가 된다

 

다른 몸으로 나갈 수 있겠다

 

005-1
005-2

 

 

    ▶ 독자 : 다른 장르의 예술가 중 멘토(Mentor)가 있으신가요? 시인과 생일이 같은 예술가가 있다면 누가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 손 : 멘토라기보다는 제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굉장히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어요. 베케트의 작품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작품은 정말 좋아해요. 평소에도 희곡을 많이 읽고,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니는 편이고요.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대사, 제스처를 볼 때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럴 때 시를 적는 편입니다.

 

    ▶ 독자 : 실은 손미 시인이 저와 생일이 같으시거든요. 1월 27일 생이시죠? 모차르트가 1월 27일 생입니다.

 

    ▶ 이 : 지금 모차르트와 동급이라는 말은 아니시죠? (웃음) 다른 독자분의 질문도 받아보겠습니다.

 

    ▶ 독자 : 시집에 수록된 「물개위성2」라는 시는 QR코드로 되어 있습니다. 바코드를 인식하면 문을 두드리고,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어떻게 QR코드를 시집에 수록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손 : 첫 번째 「물개위성」이라는 시는 제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한테 차이고 물개처럼 우는 걸 보면서 쓰게 된 시에요. 우리가 헤어진 애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물개위성’이라는 공간에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거죠.
    「물개위성2」에 두 가지 소리(노크소리, 벨소리)를 삽입한 이유는 시를 다른 형태로도 전해보고 싶어서였어요. 문예지에 발표할 수는 없겠지만 시집에는 수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출판사 쪽에 이야기를 했죠. 시가 꼭 텍스트로만 이야기해야 하나, 다양하게 시를 전달하고픈 생각이 있었어요. 아이디어를 얻게 된 건 회사생활을 하면서였어요. 제가 사보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때 QR코드 작업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내 시집에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 독자 : 블로그나 여타 문예지에서 직접 쓴 산문을 봤는데 산문이 시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소설도 쓰셨다는 얘길 들었는데 시 말고 다른 장르에서 성과를 내보고픈 욕심은 없으신지요?

 

    ▶ 손 : 있습니다. (웃음) 저는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시를 그만 쓰겠다는 건 아니고, 시로 할 수 있는 얘기와 산문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곡에도 관심이 있고요.

 

    ▶ 독자 : 시가 안 써질 땐 어떻게 하시나요? 시를 쓰기 위한 특별한 준비과정이 있으신지요? 시를 쓰는 물리적인 시간은 얼마나 걸리시는지도 궁금합니다.

 

    ▶ 손 : 시는 대부분 안 써져요. 마감이 다가오면 메모장을 들춰보는데, 안 써질 땐 그냥 안 써요. 시를 안 쓰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게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안 써질 땐 만화책 보고, 연극 보고, 그냥 놀아요.
    어떤 시는 빨리 쓰이기도 하고, 어떤 시는 오래 걸리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노란 벽지」라는 독일 극단의 작품을 보았는데, 대전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뭔가에 홀린 듯 시를 두 편이나 썼어요. 그런가하면 한 달째 쓰고 있는 시도 있죠. 시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첫 시집 내고 나서부터는, 왜 이렇게 긴장이 풀어질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시집이 소통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타협을 하는 건지, 아니면 나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건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아무쪼록 말을 내지르지 않고 머뭇거리는 게 첫 시집이었다면, 앞으로는 좀 더 내지르면서 깊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 : 얼마나 많은 다수와 소통하느냐, 깊이 있는 소수와 소통을 하느냐의 차이이니까, 자유롭게 시를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손 : 시집을 내고 나서 독자가 생겼어요. 두 명 있거든요. (웃음) 만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주셨어요. 이상하고 신비로운 기분을 느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행사가 처음이라 조금 버벅대기는 했지만, 시를 썼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도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시를 쓸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두 번째 시집은 천천히 갈 생각인데, 그때까지 진심으로 쓰는 태도와 자세 잃지 않을 테니 여러분들께서도 진심을 다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이 : 마지막으로 손미 시인의 낭송을 들으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후박나무 토끼

 

 

매일 커지는 무덤과
같은 방향으로 뻗은
후박나무를 끌고

 

이상한 나라로 가지 않는
후박나무 토끼야
숲에서 비석을 산책시키는
후박나무 토끼야
날 입장시키지 않는
후박나무에 사는
후박나무 토끼야

 

우리, 언젠가 만난 적 있지?
이 무덤 속에서?

 

발신자 번호를 지운 전화가
가끔, 아주 가끔, 오는 것은
후박나무 뿌리가 전하는
잠깐의 기척

 

나무를 알몸으로 통과하는
빗물의 통증

 

깃털을 잃은 후박나무 토끼야
우린 오래전에 만난 적 있지?

 

후박나무가 미처
후박나무이기 전에
후박나무 토끼가
후박나무 토끼이기 전에
나의 머리가
너의 머리이기 전에

 

언젠가 본 적이 있지?

 

검게 뜯긴 후박나무
나를 입장시키지 않는
후박나무에는

 

시끄러운 피가 흐르고

 

004
004-1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비슷한 빛깔로 물들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행성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이루듯, 외모도 나이도 직업도 각기 다른 우리들이 “양파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하던 시간!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이 “지나온 시간들의 무덤”이었다면, 앞으로의 시들은 또 어떤 미지를 향해 나아가게 될지…….
    멀리서 “아무데도 도착하지 않는 기차”(「상자가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가 오고 있습니다. 손미라는 이름을 믿고, 주저 말고 그 기차에 탑승하시기를!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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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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