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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 나는 왜_성동혁 시인편] 최저음부의 풍경을 그리는 소년 사도

  • 작성일 2015-01-01
  • 조회수 8,639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9회)

 

 


최저음부의 풍경을 그리는 소년 사도

- 시인 성동혁 편

 

 

정리 : 안희연(시인)

 

 

 

    내가 아는 동혁은 살갑고 밝은 사람이다. 늘 뒤에서 살뜰하게 사람을 챙기고,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기 위해 자주 농담을 던지는 사람. 혼자 밥 먹기 싫다며 자주 외로움을 호소하지만 실은 모든 이들의 “옆집”(「나 너희 옆집 살아」)에 기거하며 늘 주변을 돌보는 사람. 만날 땐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귀가 후에는 어김없이 잘 들어갔느냐는 문자를 잊지 않는 사람.
    나는 그의 다정함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그런 그가 애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다섯 번의 큰 수술을 받고 여섯 번째 목숨을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꽤 쌀쌀했던 12월의 두 번째 수요일, 동혁은 ‘카페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노래한 최저음부의 풍경들. 그 첫 이야기는 그가 병실을 나서며 바람을 맞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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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을 나서며

 

    ▶ 이영주(이하 이) : 문장 웹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행사군요. 아마도 오늘은 [나는 왜] 사상 동료 시인들이 가장 많이 온 인터뷰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선 오늘의 주인공인 성동혁 시인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성동혁 시인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6』(민음사, 2014)이 있습니다. [나는 왜]에서 꼭 한 번 모시고 싶은 분이었는데 마침 시집이 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초대했어요.

 

    ▶ 성동혁(이하 성) : 네, 감사합니다. 조금 어색하기도 하네요.

 

    ▶ 이 : 그 어색함을 좀 누그러뜨리고자 [나는 왜] 공식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성동혁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시를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성 : 왜 시를 쓰게 됐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저는 사실 특정 시인을 동경했다거나 어떤 작품을 보고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었어요. 독서도 조금 늦게, 고등학교 때 시작을 했고요.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2, 3학년 때 교내 독후감 대회 같은 델 나가면서부터였어요. 사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가 컸어요. 활동적인, 신체적인 운동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대신 정신의 운동을 했던 거죠. 글을 쓰는 일은 제게 레저와 같은 것이었어요. 제 몸이랑 잘 맞았거든요.

 

    ▶ 이 : 신체적인 운동이 안 되어서 정신적인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문학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대답이라 아주 신선하네요. 오늘 뭔가 인터뷰가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아무쪼록 우리가 시집을 읽다 보면 그 시인의 현재 상태, 관심사, 세계관 등등 많은 부분을 유추하게 되는데, 성동혁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아픈 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제가 주변 분께 성동혁 시인의 시집을 추천해 드렸더니 그분 말씀이 “이 시인 혹시 아파요? 신체적으로 많이 아픈 사람 같아요. 시가 참 투명하네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집에서 통증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시인의 실제 체험과도 연관이 있겠지요.

 

    ▶ 성 : 제가 문학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정화인데요. 이를테면 전문적으로 시를 쓰지 않는 분들도 SNS를 통해 글을 올리면서 감정의 뭉텅이를 내버리고 해소하듯이, 저의 경우에도 문장을 씀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가령 무언가 잊어야 하는 일들(고통)이 있다면 그것을 시로 쓰고, 시가 완결됨과 동시에 상황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시를 ‘썼다’기보다는 시를 ‘털었다’는 생각을 해요. 머릿속에 첫 시집에 대한 형상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털어낸’ 시집이었어요.

 

    ▶ 이 : 고통을 털어낸다는 말 속에 절실함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동혁 시인의 고통은 멜랑콜리(melancholy)한 낭만성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어요. 언어를 맑고 투명하게 운용하시는데 이런 시들은 어떤 순간에 탄생하는 것일까요?

 

    ▶ 성 : 흔히 사람들은 제가 병실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시를 쓴다고 오해를 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아플 땐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아파야 해요. 병원에서 메모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육체의 고통, 몸이 갈라지는 고통에 당면했을 때 정신을 다잡고 문장을 쓰기는 어려워요. 다만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거지 글을 써야겠단 생각 자체를 못 하거든요.
    제가 시를 쓸 때는 그런 육체적인 고통이 한 호흡 지나가고 난 뒤예요. 이를테면 수술 후에 산책하면서 바람을 맞을 때. 병원 실내에는 햇빛은 들지만 바람이 없거든요. 수술을 하면 피가 돌아야 해서 산책을 하는데 그럴 때 엄마와 같이 거닐며 자연풍을 맞을 때 제 안에서 좋은 감각들이 생겨나요. 이렇게 밖으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내가 걷고 있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져요. 시는 주로 퇴원을 하고 나서 쓰죠. 사실 퇴원을 할 땐 기분이 아주 안 좋거든요. 아이들을 병원에 두고 와야 하기 때문에 죄스러움이 들고 힘들어요.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 바람을 맞는 과정에서 지나간 고통들을 다시 게워내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 병실 안에서 시를 썼다면 그냥 침전된 상태의, 좋지 않은 감정들이 많이 나왔겠죠.

 

    ▶ 이 : 고통이 지나가고 바람을 맞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한 템포 뒤의 감각. 그것이 성동혁 시인의 시에서 긴장과 낭만성을 유발하는 원인이었군요. 다음 질문도 그러한 ‘낭만성’과 연결되는 이야기인데요. 성동혁 시인의 시에는 ‘꽃’이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리시안셔스」, 「꽃」, 「화환」 등 여러 시에서 ‘꽃’이 등장하는데, ‘꽃’의 이미지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너머의 세계, 즉 이데아라든가 천국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시인에게 ‘꽃’이란 어떤 통로일까요?

 

    ▶ 성 : 제가 얼마 전에 산문을 쓰면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꽃이라는 건 참 신기한 방식으로 존재해요. 꽃은 죽음 앞에서 삶을 축하하는 방식, 스스로는 죽는 방식이거든요. 왜냐하면 절단해서 주기 때문에요. 가령 화분의 방식은 삶이랑 같이 호흡을 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꽃은 죽음의 끝에서 그 뒤를 보게 하는 방식이에요. 한시적인 것이기에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요.
    무엇보다 제가 꽃을 정말 좋아해서, 남자치고는 꽃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꽃시장에 가기도 하고, 플라워 레슨을 받아서 만든 꽃을 이모와 엄마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가정적인 남자 같은데 (웃음) 아무튼 꽃을 선물할 때의 기쁨이 있고 받을 때의 짠함이 있어요.
    제가 「리시안셔스」라는 시를 썼는데 그 꽃은 부케로도 쓰이는 꽃이거든요. 제가 꿈꾸는 모습 중의 하나가 제 아내에게 그 꽃(부케)을 선물하는 거예요. 저는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없지만 외롭게 죽는 것에는 공포가 있어요. 제가 죽을 때 아내가 옆에 있고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요. 내가 희박해질 때 내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담이지만 「리시안셔스」를 쓰고 그 꽃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아우디」라는 시를 써야겠어요. (일동 웃음) 웃자고 한 이야기고요, 아무쪼록 ‘리시안셔스’라는 꽃을 보면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좋고, 그래서 제게도 참 기분이 좋은 시입니다.

 

    ▶ 이 : 그 시를 직접 낭독해 주시면 어떨까요?

 

      리시안셔스

 

 

눈을 기다리고 있다
서랍을 열고
정말
눈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도 미래가 주어진 것이라면
그건 온전히 눈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왜 내가 잠든 후에 잠드는가
눈은 왜 내가 잠들어야 내리는 걸까
서랍을 안고 자면
여름에 접어 두었던 옷을 펴면
증오를 버리거나
부엌에 들어가 마른 싱크대에 물을 틀면
눈은 내게도 온전히 쌓일 수 있는 기체인가
성에가 낀 유리창으로 향하는, 나의 침대 맡엔
내가 아주 희박해지면
내가 아주 희미해지면
누가 앉아 있을까
마지막 애인에겐 미안한 일이 많았다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내가 나중에 아주 희박해진다면
내가 나중에 아주 희미해진다면
화병에 단 한 번 꽃을 꽂아 둘 수 있다면

 

    ▶ 이 : 꽃과 눈의 이미지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였습니다.

 

    ▶ 성 : 감사합니다. 이 시는 나중에 결혼할 사람에게 필사해서 주고 싶은 시랍니다.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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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붉은, 그리고 기도

 

    ▶ 이 : 집을 읽다 보면 ‘꽃’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색’에 대한 천착입니다. 특히 ‘붉음’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니신 것 같습니다. 「홍조」나 「붉은 광장」, 「붉은 염전」 등의 작품들이 그러한데, 시에 색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이유가 있나요?

 

    ▶ 성 : 제 시에 ‘붉음’이 지배적인 이유는 사실, 살면서 피를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에요. 병원에 입원하면 아침에 채혈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혈관이 막히거나 굳어서 죽을 수 있는 병을 가졌거든요. 제 피는 보통의 묽은 피와는 다르게 진득진득하고 뻣뻣해요.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 뇌가 막히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피가 굳지 않는 약을 먹어야 하죠. 때로는 사혈(瀉血, 치료의 목적으로 환자의 혈액을 얼마간 몸 밖으로 뽑아냄-옮긴이 주)을 하기도 해요. 몸속의 피 중 십분의 일 정도를 일부러 뽑아서 순환을 돕고 몸을 묽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참 그러한 것이, 여러분들도 자기 몸속에 있는 생피를 십분의 일이나 뽑아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사기로 뽑으면 몇 십 개고, 그게 통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정말 안 좋아요. 저 같은 경우 피를 빠르게 뽑을 수 없기 때문에 피를 받아내는 동안 의사가 옆에서 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그러곤 피를 버리죠. 가끔 저희 엄마가 버리기 아깝다고 하실 때가 있는데, 제가 그럼 싸가지고 가시라고 농담도 하고 그래요. (웃음)
    조영술을 할 때 허벅지 쪽을 뚫어 와이어를 넣는데 지혈이 잘 안 되면 출혈이 많이 되는데, 그러면 흰 환자복이 빨개지기 시작해요. 제 시에서, 흰색과 그에 대비되는 붉은색이 자주 쓰이는 이유는 바로 그런 감각, 제가 체험을 통해 실질적으로 강하게 느끼는 감각이 상징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이 : 우리에게는 비일상적인 이야기네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특별한 체험. 가슴 아프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망각할 때가 많은데, 성동혁 시인은 늘 죽음의 위협과 싸워야 하고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겠군요. 그러한 실존적 조건이 자주 죽음 너머를 생각하게 하고,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라는 시인의 말을 쓰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울러 성동혁 시인의 시집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성동혁 시인에게 문학과 종교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 성 :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예전에 한 산문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수술실에 들어갈 때의 기억으로 이어져요. 왜냐하면 수술실에 들어가면 철저히 혼자거든요. 엄마도 수술 대기실까지밖엔 못 들어오시니까요. 수술실에 홀로 누워 ‘아, 수술실에는 엄마가 들어올 수 없구나, 나는 진짜 혼자구나.’ 생각할 때, 살을 맞대고 있을 사람이 없으니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게 신(神)이었어요. 수술실 안에서 엄마 생각을 하면 심리적으로 안 좋고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신 절대자에게 생명을 맡기며 기도를 하곤 했어요. “하느님, 저를 데려가실 거면 데려가세요. 대신 살려 두실 거면 건강하게 살려 두세요.” 그런 기도를요. 마지막 순간에 의지할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기도를 통해 어떤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의외로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했고요.
    저는 제 시가 하나의 기도문, 하나의 편지였으면 해요. 시를 쓸 때 누군가를 생각하며 쓸 때가 많고요. 전에는 시를 쓰기 전에 꼭 성경 한 장을 필사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말씀을 몸에 체화하고 나서 시를 쓰기 시작하는 거죠. 성경 구절을 문신하기도 했고요.

 

    ▶ 이 : 그럼 이쯤에서 이 자리에 계신 독자 분들께 시 낭송을 청해 볼까요?

 

    ▶ 여성 독자 : 「긍휼」이라는 시를 읽어 볼게요. 저는 종교인인데, 그래서 성동혁 시인의 시가 특별하게 읽혔고 시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긍휼

 

 

그러니까 대체로 시금치를 데치는 저녁
그해 겨울 아비들은 모두 슬펐지요
자녀들은 침통을 쏟으며 집을 나갔고
노을엔 잃어버린 바늘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높은 침엽수처럼
넓은 침엽수처럼
천사들에게도 수목원이 있다면 그곳에서 길 잃은 낙뢰들을 키우자 맘먹었을 것입니다
우체통에 기댄 소년이 붉게 터지건 말건 멀리서
신의 머리카락을 주우며
찬송가를 부르는 노인들
바람은 종종 아무 이유 없이도 겸허하게 붑니다
이유는 바람에게 없고 제게만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시금치를 데치는 저녁
손잡이가 없는 잔을 쉽게 놓치던 저녁
사람이 없어 소리 지르지도 않았던 저녁
깨진 잔을 주우며 붉게 꽂히던 저녁
우산을 잊어 다시 집으로 들어가던 저녁

 

    ▶ 남성 독자 : 저는 경기도 포천에서 왔어요. 실은 성동혁 시인의 친구예요. 저는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쌍둥이」를 읽어 보겠습니다.

 

      쌍둥이

 

 

정물화는 형이 몰래 움직여 실패했다

 

우린 나란히 앉아 닮은 곳을 찾아야 했는데

 

의자에 앉아
의자 위에 있는 우리를
보는
의자들 의사들

 

세모로 자라는 지문을 사포질하고

 

형과 함께 배 속에 있었다 생각하니 비좁았다
엄마는 괴물 같은 새끼가 두 개나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구멍을 나갈 때 순서를 정하는 것 또한 그러했다

 

우린 충분히 달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만 주목받는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중환자실에 누워 병신같이 나를 올려본다

 

나란히
함께

 

그것은 월식에 대한 편견이다

 

모르핀을 맞지 않아도

 

불을 켜면 자꾸 형이 보인다

 

    ▶ 성 : 제 주변에는 글 쓰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음악이나 미술 하는 친구들인데, 그래서인지 책이 나와도 ‘그냥 책이 나왔나 보다’ 할 뿐 독자가 되어 주는 친구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 친구는 후배이자 제 시의 독자가 되어 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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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 삶

 

    ▶ 이 :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볼까요? 시집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을 텐데요. 다섯 번째 수술 이후의 삶. 그것이 ‘6’이라는 숫자로 코드화되면서 어떤 증폭을 만들어내지요. 여섯 번째의 새 삶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갱생’의 의미를 넘어서는, 시인만의 새로운 지표 같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시인에게 그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 성 : 그 전에 시집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이 시집은 제가 감각적으로 굉장히 공들인 시집이에요. 표지에 ‘미러(거울)’를 만들려고 편집자에게 자필로 세 장이나 편지를 썼어요. 저는 이 시들을 기도문이라 생각하며 썼기 때문에, 그리고 기도문의 호흡이 워낙 천천히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시집 표지를 보고 의미를 바로 알기보다는 어떤 감각만 전해지도록 하고 싶었어요. 독자들이 시집 안으로 천천히 입장할 수 있게요.
    숫자 ‘6’에 대해서라면, 제가 「6」이라는 제목의 시를 두 편을 썼는데요. 작은 수술은 여러 번 했지만 큰 수술은 다섯 번 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 수술은 무려 19시간이 걸린 대수술이었어요. 죽네 사네 했고, 수혈을 77통을 받았고요. 제 몸 안에 제 피가 없었던 거죠. 제가 수상소감에 “저는 당신들로 흐릅니다”라는 말을 썼는데 그게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아빠 회사 사람들이 수술 전날 오셔서 채혈을 해주시기도 했죠. 그 수술을 앞두고 정말 두려움이 컸어요. 나에게 여섯 번째 삶이 주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여섯 번째 삶을 살게 됐고 그래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앞으로 제가 또다시, 그러니까 여섯 번째 수술을 해야 한다면 출혈이 크기 때문에 많이 힘들 거라고 해요. 그래서 다시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 이 : 삶과 시가 너무 가까워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네요. 사실 성동혁 시인의 평소 모습을 보면 정말 잘 웃고 잘 즐거워하고, 밝고 좋은 에너지를 가졌는데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들은 참 무거운 것 같습니다.
    한편 시집 전체에 어린이에 대한 지긋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실제로 어린이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어린 화자, 어린이의 응시법 같은 것들이 시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 성 : 제가 유난히 마음 쓰이는 존재가 어린이이고, 요즘 들어서는 노인에게도 마음이 쓰여요. 몸이 아프면서 노인의 몸과 흡사한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제가 통풍이 좀 심한 편인데 그건 제 나이또래가 일반적으로 겪는 증상은 아니잖아요? (웃음) 얼마 전에도 청바지를 입다가 넘어졌어요. 하체가 튼튼하질 못해서……. (웃음)
    아무쪼록 저는 아직도 어린이 병동에서 치료를 받아요. 몸 안이 다 기형이기 때문에, 인수인계가 안 되고 저를 수술했던 의사만 계속 수술을 할 수 있어서 어린이 병동엘 가야 하는데, 그럴 때 아이들을 많이 보게 돼요. 실제로 함께 병실에 누워 있던 아이들 중엔 죽은 아이들도 있고요. 그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하지 못한, 내지 못한 목소리를 내가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아요.
    병실에 있을 땐 아이들이 다 제 친구예요.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 아팠던 생각도 많이 나고요. 그중에는 아파도 아프다고 안 하고 독하게 참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성숙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 고통의 근원지 같아요. 감성적으로 인격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 이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꾸 울컥하네요. 즐겁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어린이라는 존재가 문학적 상징으로 봐도, 어떤 세계를 통과하기 전의 미성숙한 자아잖아요. 그 안에 원형적인 것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존재.

 

    ▶ 성 : 우울한 얘기라고 생각지 마세요. 아픈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게는 그것이 그냥 생활이에요. 단지 몸 안이 조금 다른 것일 뿐 저는 제가 아프고 병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우리가 대체로 못생긴,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가졌듯이. (웃음) 그러니 우울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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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있는 쪽으로

 

    ▶ 이 : 분위기를 조금 바꿔 보고자, 이번에는 성동혁 시인의 일상에 관한 질문을 던져 볼게요. 제가 아는 성동혁 시인은 랩도 잘하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에너지 많은 청년인데요. 시 외에도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 성 : 문학에 인생 전체를 맡기는 분들이 들으시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제가 체력적인 여건이 됐다면 시를 안 썼을 것 같아요.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웃음) 이를테면 장사나 운동, 여행 등등 발로 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글의 폭을 넓히려고 애쓸 뿐이죠.
    저는 옷을 정말 좋아해요. 친구들과 ‘뭇다’라는 브랜드를 런칭(launching)하기도 했고요. 원고료도 거의 옷을 사는 데 써요. 좋은 옷은 빨래를 해보면 알아요. 비싼 옷이 예쁘죠. 저는 새 옷을 입으면 정말 시가 잘 써져요. 각이 잘 산다고나 할까? 재킷을 입을 때의 마음, 스냅 백을 쓸 때의 마음이 다 달라요. (웃음) 만약 좋은 시를 보시고 싶으면 제게 옷을……. (일동 웃음)
    음악도 정말 좋아해요. 음악 쪽 일을 하고 싶었는데 체력적인 문제로 꿈을 접었지만, 대학에 와서는 컴퓨터로 프로듀싱 하는 것을 배우기도 했어요. 주로 힙합 음악을 프로듀싱 했고, 공연도 많이 했죠. 음악이 직업이 되진 않았지만 요즘도 가끔 녹음을 해요. 문단을 씹는 랩도 한 적이 있답니다. (웃음)

 

    ▶ 이 : 비매품처럼 만들어서 시집에 끼워 팔아도 될 것 같아요. (웃음)

 

    ▶ 성 : 여력이 생기면 정말 할 생각이 있어요. (웃음)

 

    ▶ 이 : 제가 성동혁 시인이 랩 하는 것을 들어 봤는데 일정 수준을 넘어섰더라고요. 다리 꼬고 앉아서 하는 랩이었는데, 랩이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독자 분들도 궁금한 것들이 생겼을 텐데, 이제부터는 독자 분들의 질문을 받아 보도록 할까요?

 

    ▶ 독자 :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미술적인 것인데, 미술에도 관심이 많은가요?

 

    ▶ 성 : 네, 정말 관심이 많아요.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미술관 앞에 있을 때의 정적을 너무 좋아해요.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도 하루에 한 군데의 미술관에 가는 게 일정의 전부였어요. 하루 종일 미술관에만 있고, 미술관 앞 벤치에 혼자 앉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림은 잘 못 그려요.

 

    ▶ 독자 : 아까 사인 해주실 때 보니까 글씨체가 멋지더라고요.

 

    ▶ 성 : 네. 제가 ㅁ과 ㅎ 쓰는 걸 좋아해요. ㅎ은 꼭 모자 쓴 것 같잖아요.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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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창은 평론가 : 성동혁 시인은 세계의 양면을 표현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러니까 형상의 이면, 즉 ‘안 보이는 부분’이 시인에게 하나의 이미지로 올 때, 그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 성 : 그런 행들은 보통 퇴원하고 나서, 앞서 말씀드린 미술관 앞에서의 시간처럼, 침묵 안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문장들이에요. 실은 침묵에 대한 감각인데, 어느 정도의 침묵이 답보되지 않으면 그런 행들을 못 쓰죠. 마감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워밍업의 시간이 필요해요. 마감을 앞두고 약속이 잡히거나 하면 호흡이 깨져서 시를 잘 못 쓰게 돼요.
    그런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면서 너머를 사유하게 되는데, 저는 그것을 ‘뉘앙스’라는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물이 있지만 그것이 보이는 것의 전부라거나 실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를테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말을 할 때, 그것은 실질적인 대상 혹은 말이 아니라 ‘뉘앙스’ 같은 것이잖아요. 사물의 뉘앙스, 사람의 뉘앙스, 신에 대한 뉘앙스. 그러나 그런 ‘뉘앙스’를 통해 진짜 그것에 다다르는 과정. 그러니 조용히 더 사랑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 김이듬 시인 : 제가 성동혁 시인을 너무 좋아해서 빗길을 열 시간이나 달려왔어요. (웃음) 제가 얼마 전에 성동혁 시인의 시를 가지고 서평을 하나 썼는데요. 저는 무신론자, 유물론자에 가까운 사람인데 성동혁 시인의 시집을 읽고, 마침 그 글을 토요일 저녁에 마무리하는 바람에, 다음날 교회를 다 갔어요. 물론 계속 나가진 않았지만요. (웃음) 그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읽은 시가 「나 너희 옆집 살아」인데, 그 시는 마치 랩을 듣는 것 같은 음악성도 있고 독특한 스타일로 쓰였더라고요. 그 시에 등장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질투가 나던데, 그 아이가 누구인지 궁금했어요.

 

    ▶ 성 :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오셨습니다. (일동 웃음) 「나 너희 옆집 살아」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예요. 왜냐하면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는, 실제로 제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편지를 쓰듯 쓴 시거든요.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그러니까 저는 남의 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잖아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살려 놓은 삶이기 때문에, 옆 사람들에게 흘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우리가 외로울 때 다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니다, 나는 네 옆집에, 전화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마음을 담아 쓴 시였어요. 친구들이 제가 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여길 수 있게요.

 

    ▶ 이 : 그러지 말고 그 시를 낭독해 주시면 어떨까요?

 

      나 너희 옆집 살아

 

 

난 너의 옆집에 살아 | 소년이 되어서도 이사를 가지 않는 난 너의 옆집 살아 | 너의 집에 신문이 쌓이면 복도를 천천히 걷고 | 베란다에 서서 빈 새장을 바라보며 | 새장을 허물고 사라진 십자매를 기다리는 난 | 너의 옆집 살아 | 우린 종종 같은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 같은 소독을 하고 같은 고지서를 받고 같은 택배를 찾으며 || 안개가 가로등을 끄며 사라지는 아침 | 식탁에 앉아 처음으로 전등을 켜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 | 이사를 오며 잃어버린 스웨터를 찾는 너의 | 냉장고 문을 열어 두고 물을 마시는 너의 옆집 살아 | 내가 옆집에 사는지 모르는 너의 | 불가사리처럼 움직이는 별이 필요한 너의 옆집 살아 | 옆집엔 노래하는 영웅이 있고 자전거를 복도에 세워 두는 소년이 있고 국경일엔 태극기를 올리는 착한 어린이가 있어 || 십자매가 날개를 접고 돌아와 다시 알을 품을 수 있도록 | 알에 묻은 깃털을 떼어내지 않는 | 비가 오는 날에도 창문을 열어 두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 | 복도의 끝에서 더 긴 복도를 만들며 | 가끔 난간 위에서 흔들리는 코알라처럼 | 난 너의 옆집 살아 | 바다의 지붕을 나무에 새기며 | 커튼을 걷으면 밀려오는 나쁜 나뭇잎을 먹어 치우며 | 같은 난간에 매달려 예민한 기류에도 함께 흔들리는 난 | 난 너희 옆집 살아

 

015

 

    ▶ 독자 : 시에 가족이 종종 나오더라고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등등. 그런데 저는 유독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고, 할아버지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 성 :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얼굴을 직접 뵌 적은 없어요. 할아버지를 못 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에 할아버지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아빠와 저를 매개하는 분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례로 「숲」이라는 시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쓴 러브레터 같은 것이거든요. 그 시는 저희 아빠가 엄마에게 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쓴 것이에요.
    고모가 돌아갔을 때 쓴 시도 있었고, 할머니 이야기를 시로 쓰기도 했는데, 저희 할머니께서는 말년에 치매에 걸려서 저를 못 알아보셨어요. 할머니가 오래 사시기는 했지만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내진 못했어요. 아마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할머니를 봤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를 생각하면 죄송한 게 있죠.

 

    ▶ 이 :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는데 어느덧 행사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 성 : 저를 ‘소년 사도’라고 불러 주셨지만, 사실 저는 농담도 잘하고 욕도 잘하는 사람이에요. 시집을 낸 것도 호흡을 좀 다지고, 나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의 일환일 뿐, 시집이 나왔다고 해서 삶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고요. 되레 시집을 엮다 보니 가족들 이야기나 제 아픈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이렇게까지 시를 썼어야 했나 싶어 힘든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도 시집이 나오고 나서 친구들, 선생님에게 편지를 주듯 시집을 선물할 수 있어서 그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할 때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 학교 때 공부 안 하고 잠만 자던 제가 시인이 됐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만약 등단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인격적으로 너무 괴롭히지 말고, 자기 호흡으로 시를 쓰셨으면 좋겠어요. 등단 전부터 시집 한 권을 생각하면서 좋은 시를 쓰고 있으면 언젠가는 분명 자기 시간이 올 거예요. 시집에 넣을 시라고 생각하고 쓰면 자기 검열도 훨씬 아름답게 하게 될 테고요.
    그리고 저는 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누구 하나라도 누워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저도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아픈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옆집에 사는 것처럼요. (미소)

 

pp6
pp7
pp8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유독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었고, 그런 만큼 뾰족하고 아팠기 때문이다. 그의 명랑함 속에 감춰진 여리고 환한 속살을 몰래 훔쳐보는 듯했던 저녁.
    “시 쓰는 동혁이는 집에 있어요.” 그것은 그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내게 던진 농담의 일부였다. 아마도 나는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왜 그의 시가 그토록 투명할 수 있는지.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슬픔이어서, 그토록 영롱하게 빛이 났다는 것을.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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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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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고슴도치13

    가고싶었지만 일이있어 못갔는데, 이렇게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읽을수 있어서 무척 기뻐요.성동혁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떠나고 달이 커졌?다고 한 시랑 정물화가 기억에 남았었는데, 나 너희옆집살아;는 더 맘에 드네요.

    • 2015-01-05 07:20:14
    고슴도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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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성 시인님.

    • 2015-01-05 16:08:1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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