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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AYAF 선정작가 좌담회] 젊은 작가, 그들이 사는 세상

  • 작성일 2015-04-14
  • 조회수 2,531

 

 

[2014년 AYAF (문학 분야) 선정작가 좌담회]

 

젊은 작가, 그들이 사는 세상

 

 

 

 

     ● 일시 : 2015년 1월 24일 토 오후 7시
     ● 장소 : 강원도 원주시 토지문화관 세미나실
     ● 참석자 :
         - 사회_신철규, 도움_박찬세
         - 참여작가_권민자, 김연필, 김준현, 박성준, 최백규(이상 시), 임재영(소설), 박신수진(희곡)
         - 대담 정리 및 사_권민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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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철규 : 지금부터 차세대신진작가지원(AYAF) 선정 작가들과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행사는 글틴 10주년 행사와 겹쳐서 풍성한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도 계시니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d-kuan-mj    ▶ 권민자 : 2012년 《문학사상》 신인상(시)으로 등단한 권민자라고 합니다.
 

 

 

 

 

d-lim-jy    ▶ 임재영 : 저는 임재영이라고 합니다. 몇 년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틀라스의 유언장』으로 등단했고 나이는 서른한 살입니다. 서울 대청역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놀러 오고 싶으신 분들은 놀러 오시길 바랍니다. 저희 집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웃음)

 

 

    ▶ 박신수진 : 저는 박신수진이고요. 이름이 네 글자인 건 십 년 전부터 엄마 성을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원래는 소설을 먼저 썼는데 희곡으로 공연을 올리면서 극작가가 되었습니다. 그게 작년이니까 저는 진짜 신인입니다. 지금은 소설과 희곡 둘 다 쓰고 있습니다.

 

d-bak-sj    ▶ 박성준 : 저는 시 쓰는 박성준이고 평론도 씁니다.

 

 

    ▶ 신철규 : 박성준 시인은 요새 두 가지 장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요.

 

    ▶ 박성준 : 네. 그래서 ‘하나만 할 걸.’ 하고 굉장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웃음)

 

    ▶ 최백규 : 안녕하세요. 저는 2014년 《문학사상》 신인상(시)으로 등단한 최백규라고 합니다.

 

    ▶ 김연필 : 저는 2012년 《시와 세계》 신인상(시)으로 등단한 김연필이라고 합니다.

 

d-kim-jh    ▶ 김준현 : 저는 2013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시)로 등단한 김준현이라고 합니다. 대구에 있다가 올해 처음 연희창작촌에 들어가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신철규 : 그럼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공식적인 등단 과정을 거쳤든 혹은 다른 경로로 등단했든 지금 다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문학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학교 선배나 스승의 권유가 있었는지, 아님 영화와 같은 다른 예술을 접하고 문학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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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세 : 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써온 박성준 시인의 얘기부터 들어 볼까요.

 

    ▶ 박성준 : 네, 저는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창과를 졸업했습니다. 일찍부터 창작 수업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써왔고 학부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국문학을 전공했으니 계속 문학 곁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저는 글틴 출신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연장원을 했으니까 글틴하고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년 됐어요. 말하자면 글틴의 태동기를 같이했던 사람입니다. (웃음) 글틴 행사에도 4년째 참석하고 있고요.

 

    ▶ 박찬세 : 그럼 처음 시를 접하게 된 시기는 언제였나요. 예고 가기 전부터 글을 썼나요.

 

    ▶ 박성준 : 저는 처음에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야간 자율학습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자율이 아니라 강제학습이 되는 게 굉장히 불편했던 거죠. 어느 날인가 자율학습을 하기 싫어서 시집을 읽다가 감독 교사한테 들켰어요. 그때 선생님이 시집을 찢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차라리 반항을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저는 맞는 게 싫어서 교실 앞에 나와서 그 시집을 찢었습니다. 그때부터 학교를 안 나가기 시작했어요. 어떤 부끄러움과 분노 때문이었는데요. 그래서 학교를 자퇴하고, 열여덟에 다시 안양예술고 문창과에 재입학을 했습니다. 한때의 반항심도 있었지만 제자신이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비뚤어진 생각, 잘못된 구조 같은 것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예민한 감성들이 문학과 맞닿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 신철규 : 어릴 때부터 글쓰기 경험이 있는 작가도 있겠지만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오신 분은 없나요.

 

    ▶ 김연필 : 학생 때 저는 지지리도 공부 안 하는 학생이었고 맨날 학교에서 잠만 잤어요. 어느 날 교내 시 창작 대회가 열렸어요. 선정되면 문화상품권 다섯 장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온라인게임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받고 싶어서 수업 중에 배운 시의 표현법 같은 걸 대충 짜깁기해서 낸 시로 문화상품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후로도 글은 안 쓰고 있었어요. 대신 수업 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 소설을 읽었어요. 학교 도서관에서『장길산』같은 소설을 빌려 보았거든요. 아까 박성준 시인은 책 보다 걸려서 찢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는데 저는 오히려 수업 시간에 뭔 책 보는 거야, 해서 선생님께 책을 보여드리면, 나름 유명한 소설가의 대하소설이니까 선생님들이 뭐라 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수업 시간에 보지 마, 정도로 끝난 거예요. 그러다가 재미를 느꼈어요. 원래는 대학 갈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고3 여름쯤부터 바짝 공부해서 국문과에 갔고 입학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 신철규 : 소설이 아니라 시로 등단하셨는데 시로 넘어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 김연필 : 소설을 못 쓰겠더라고요. 너무 길어요. (웃음) 제 집중력은 10분 이상을 넘길 수가 없고요. 대학 입시 공부 할 때도 거의 10분 공부하고 5분을 쉬었어요. 그러고 대학 간 게 신기하긴 한데…… 어쨌든 그래서 시를 쓰게 되었어요.

 

    ▶ 신철규 : 확실히 체질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체질에 따라 자기 장르가 결정되지요. 글을 선택하게 된 여러 가지 계기가 있겠지만, 천재가 아닌 이상 습작 과정이 오래 걸렸을 거예요. 선배나 지인에게 이렇게 쓰면 안 된다, 라는 충고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또 자신의 재능에 대한 절망 같은 것도 느꼈을 겁니다. 선배나 지인을 통해 작품이 발전하는 데 필요한 모범이 되는 작가나 작품을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우연히 접한 작가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문학에 눈을 뜨는 계기를 적잖게 보았습니다. 습작의 기본은 모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습작하면서 곁에 두고 읽었던 작가, 작품, 아니면 꼭 책이 아니더라도 영화나 미술 같은 다른 예술 장르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음악 들으면서 시 쓰는 분들도 있잖습니까. 김연필 시인은 어떤가요.

 

    ▶ 김연필 : 저는 음악 들으면서 시 못 쓰고 오히려 아무 소리가 없어야 시가 잘 써집니다. 제가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책이라면, 롤랑 바르트의 『 텍스트의 즐거움 』이에요. 저는 시를 쓴다고 쓴 게 아니라 그 책을 생각하면서, 텍스트를 만든다, 라는 마음으로 썼고요. 그리고 애초에 저는 글을 길게 못 쓰니까 길지 않은 글로 지금까지 써왔고요. 지금도 제가 특별히 시를 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 신철규 : 최백규 시인은 블로그 활동도 많이 하시고 음악도 좋아하시던데, 음악을 들으면서 쓴다든지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요.

 

    ▶ 최백규 : 저는 시를 쓰기 전에 음악을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성대 결절이 왔어요. 전부터 가사를 썼기 때문에 글을 좋아했지만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대회가 있어서 글을 냈는데 당연히 될 줄 알았죠. 그런데 예선에서 탈락한 거예요. 저는 그때 자의식이 강했으니까, 어떻게 내 글을 떨어뜨릴 수 있어? 하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진짜 잘 써서 나중에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입대하고 군대 생활 중에 계속 써왔어요. 그래도 시가 뭔지는 정확히 몰랐어요. 그렇게 혼자서 자아도취해서 쓰다가, 전역하고 작년부터 대구에 계신 시인 선생님께 무작정 연락하고 찾아가서 시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때부터 제대로 쓰기 시작했어요.

 

    ▶ 박찬세 : 임재영 소설가는 좋아하는 책이나 작품이 있나요.

    ▶ 임재영 : 글을 쓰기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 작가는 없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책과 작가는 많지만. 다들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나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들이요. 나름대로 영향을 받은 작가는 장 지오노고요.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렸을 때인데, 그땐 판타지 소설 같은 것에 빠져 있을 때였어요. 아무리 읽어도 결국 정확하게 내 취향의 소설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에는 완벽하게 내 취향의 소설은 나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신철규 :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다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시집을 보면 너무 좋아서 화가 나기도 하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뺏겼다는 기분도 들고요. 한편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감정과 상황을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보고 나라면 다르게 썼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두 가지가 아마 창작의 기본적인 계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임재영 소설가도 그런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글 쓰는 거 너무 힘들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는, 뭐, 참, 힘듭니다. (웃음)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혼자 끙끙댈 때가 많아요. 정말 글이 안 될 때, 집필 과정에서 난관에 부닥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서정주 시인 같은 경우는 마당을 데굴데굴 굴렀다고 하죠.

 

    ▶ 박찬세 : 집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것 같아요. 외부적인 충격이나 내적인 고뇌, 표현하려는 것(내용)과 미학(형식)의 어긋남 등 다양할 것 같습니다. 권민자 시인은 시가 쉽게 잘 써지나요?

 

    ▶ 권민자 : 저도 시 쓰는 게 어렵습니다. 잘 안 써질 땐 그냥 자요. (웃음) 시뿐만 아니라 공부가 안 될 때도 그렇고 난관에 부딪쳐 생각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머리가 혼탁해지거든요. 그럴 땐 붙들고 있어 봐야 소용없잖아요. 오히려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그래서 저에게 정리할 기회를 준다 생각하고 자는데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해결되지 않았던 부분이 해결되는 편이에요.

 

    ▶ 신철규 : 저도 시가 안 써질 때 끙끙거리다가 다 포기하고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좋은 구문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방심을 해야만 시가 들어올 자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럼 권민자 시인은 대개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시를 쓰는 편인가요. 주로 언제 시를 쓰시죠.

 

    ▶ 권민자 : 맑다는 상태가 뭔지 모르겠어요. 잠을 자고 일어난 상태가 맑다고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맑은 상태에서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시를 쓰는 편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보통 시인들이 그런 것처럼(?) 저녁이나 새벽에 주로 쓰는데, 잘 것 다 자고, 아무것도 할 것 없고, 그러니까 책이나 드라마 같은 것 다 보고, 인터넷 서핑도 다 하고 난 상태에서 진짜 아무것도 할 것 없을 때, 그때 시를 쓰거든요. 진공 상태라고 할까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는 있는 상태를 일부러 만들어요. 물론 그런 상태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논다(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 서핑 하는 게 그렇게 표현되기도 하니까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는 굉장히 노력하죠. 왜냐면 그렇게 하려면 기본 전제 조건이 밖에 나가지 않고 최소 이삼 일은 집에 있어야 되니까요.

 

    ▶ 박찬세 : 박신수진 작가는 난관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해요.

 

    ▶ 박신수진 : 저는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저는 항상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는데 한 번도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1년도예요. 그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대학 졸업 무렵이었어요.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려고 3개월 동안 글만 썼어요. 그게 처음으로 쓴 소설이고 A4 용지 300장 정도 나오더라고요. 그 후에 책으로 내고 싶어서 바로 출판사에 연락했거든요. 저는 문학을 전공한 적도 없고 출판 과정을 잘 모르니까요. 저는 열아홉 살 때 일기를 묶어서 책으로 낸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책을 내는 과정이 그렇게 어려운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해서, 쓰고 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 신철규 :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예지 신인상이나 신춘문예를 통해 명망 있는 작가들의 심사를 통해 공인 과정을 거치지요. 이와 달리 외국에서는 작가 지망생들이 작품을 써서 잡지나 출판사에 보내면 편집자가 작가와 작품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서 잡지에 싣거나 출간을 하지요. 박신수진 작가의 경우는 오히려 외국의 시스템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네요.

 

    ▶ 박신수진 : 네. 너무 많은 것을 담은 글이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출판사에 냈는데 다 반려되어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정말 순진한 생각을 했어요. 내가 등단을 하면 이 책을 내줄까. 그때부터 등단을 위해 단편소설을 쓰고, 희곡도 쓰고 시작했어요. 목적은 단 하나였어요. 아직까지도 책이 되지 못한 그 장편소설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은 희곡으로 오게 된 거예요. 저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희곡과 소설을 동시에 썼는데 목적이 확실했죠. 어떻게 하면 등단을 해서 그 장편소설을 책으로 낼 수 있지, 하는 거죠. 지금도 여전히 글 쓰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삶의 도피처라고 할 수 있지요. 정말 힘들 때 살려고 쓰는 게 글이에요. 이제 등단도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그런 과정을 거친 작가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하고요. 저는 아직 작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웃음)

 

    ▶ 신철규 : 저희들도 그런 자의식을 가지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 박찬세 : 박성준 시인은 두 번의 등단 과정을 거치셨는데, 작가라는 자의식이 남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 박성준 : 저 또한 등단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저는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최종심에 올랐습니다. 최종심에 오르는 기간이 길어지니까 왜 나는 안 되는 건가, 이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평론으로 등단할 때도 꽤 오랫동안 최종심에 올랐으니까, 그렇게 자꾸 떨어지면서 자의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꾸 떨어지면서 눈치를 많이 봤던 편인데, 등단을 하고 나서는 눈치를 안 보려고 노력을 했어요. 인정받거나 눈치 보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요.
    이제 등단 6년차인데, 사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첫 시집을 낼 때까지만 해도 시를 쓰면서 제 안에 서사라든가 어떤 물음 같은 것들이 늘 있었는데, 첫 시집 이후로는 그런 것도 사실 누그러들었죠. 문학을 통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경계하는 편인데, 또래 친구들이 취업을 하고 평범하게 각자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걸 보면서, 앞으로도 내가 계속 묵묵히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론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습지만 시를 오래오래 쓰기 위해서 평론을 택한 겁니다. (웃음) 하지만 평론 쓰는 일은 굉장히 몸을 소진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군다나 아카데믹하지 않은 평론을 쓰는 것에 대한 채무 의식도 있는 편이라 어떤 글이든 쓴다는 것이 늘 두렵습니다. 그리고 시집 이후로 시 청탁은 줄고 평론 청탁이 많았던 터라, 아무래도 동기 부여를 위해 AYAF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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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철규 : 물론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가 있지만 AYAF가 많은 동기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김준현 시인의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제가 얼굴을 처음 보거든요. 그런데 제가 김준현 시인이 등단한 사실을 처음 안 몇 사람 중에 한 명일 거예요. 김준현 시인의 대학원 지도 교수가 제 선배예요. 선배가 대구 쪽에 있는 학교에 부임했는데, 제자 중에서 처음 등단한 친구가 김준현 시인이에요. 그 선배가 너무 기뻐서 저한테 전화한 거예요. 그때 기억나십니까, 김준현 시인.

 

    ▶ 김준현 : 네. 교수님이 술을 드시고 연락하신 것 기억합니다. (웃음)

 

    ▶ 신철규 : 주위에서 많이 기뻐했던 것 같아요. 시를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시를 쓰면서 공식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원 공부의 영향인가요.

 

    ▶ 김준현 :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스물네 살까지 소설을 읽고 써왔어요. 사실 그때까지 시를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교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갑자기 시를 읽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서사에 미쳐 있었는데 서사에서 시로 넘어오니 참 이상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처음 시로 넘어왔으면 자연스러웠을 텐데, 오랫동안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다가 시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거의 수혈 받듯이 (웃음) 좋은 시들을 먼저 읽게 되었고, 이를 통해 좋은 시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힘이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어요. 저는 운 좋게도 스스로 해야 할 노력들을, 그러니까 처음 시로 입문한 자들이 치러야 할 고통의 시간을 교수님께서 상당 부분 감당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 신철규 : 열정적인 스승의 도움 때문에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앞 이야기와 연결해서 더 이야기해 보면, 처음에는 서사 쪽을 많이 썼는데, 시 쓰면서 어떤 작가에게 미쳐 본 경험이 있나요.

 

    ▶ 김준현 : 제가 처음 접한 시집이 신용목 시인의 첫 시집이거든요. 저는 처음부터 교재(?)를 읽듯이 좋은 시집들을 읽은 것 같아요. (웃음) 필사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문장 구조나 틀 등을 비슷하게 써보는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 신철규 : 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시 같은 경우는 너무 자기와 가까운 윗선배의 시를 읽고 배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 또래들은 더 옛날 작가들, 가령 신경림이나 황동규 등의 시들을 찾아서 읽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등단한 작가들은 자신과 시기적으로 가까운 동시대의 작품만 읽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권민자 시인은 좌담에 참석하기 전 몇 편의 시를 찾아서 읽어 보았는데, 2000년대 초반에 등단해서 중후반에 각광을 받은 김행숙, 이근화, 신해욱, 하재연 등의 시인과는 좀 다른, 오히려 더 윗세대 시인들의 목소리를 엿봤거든요. 최승자나 이연주, 김언희 등이 대표적일 수 있겠군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권민자 : 신철규 선생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저는 서른 살에 등단했는데 이른 나이에 등단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늦은 나이는 아닌, 그러니까 평균적인 나이에 등단했는데 그 과정이 좀 혹독했거든요. 여기 계신 박성준 시인과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저는 유병록 시인과 박성준 시인 사이 세대인데 제가 백일장에 나갔을 당시에는 춘추전국시대처럼 딱히 어떤 분이 유명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문학특기자를 준비했다가 실패했죠. 입시에 재도전했는데도 실패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왜 안 되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은 주로 서양 고전이었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도스토예프스키에 감명 받아서였거든요. 그에 비해 현대 소설이나 시, 특히 한국 문학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에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을 찾아서 읽거나 주변에 시 쓰는 애들이 읽는 한국 시집을 두서없이 찾아서 읽었죠. 그렇게 20대 초반을 보냈는데 그때 대학을 두 번 옮겼어요. 처음 들어간 대학의 경우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어요. 전공은 정해지지 않았고 인문학부를 다녔지요. 그다음 들어간 대학에서는 문예창작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난 뒤 반년 동안은 경기문화재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지역 신문에서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했고 그 뒤에 일 년 동안은 불교 전문 출판사에서 편집기자 생활을 했는데, 그즈음 만난 사람에게서 제 일생의 전환이라고 할 만큼 좋은 조언을 들었어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을 정도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시집만큼은 다 읽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전까지 편협했던 독서 습관을 버리고 각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의 1권부터 읽기 시작했죠. 조금 과장해서 연대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시집이란 시집은 거의 다 읽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추천해 주는 좋은 시집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시집을 추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회사에 다니면서 그렇게 공부했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 자신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문예창작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스물여섯 살이었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해서 소설을 먼저 썼는데 단순히 소설을 먼저 썼기 때문의 문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시를 잘 쓴다거나 못 쓴다 같은 문제가 아니라 특이한 성격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특이한 성격을 어떤 식으로 글로 풀어 나가야 할지 몰랐던 것이 문제였던 거죠. 사설이 너무 길어졌는데 제가 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주로 외국 시인이에요. 랭보, 아폴리네르, 마야코프스키 같은 프랑스나 러시아 작가들을 비롯해 옥타비오 파스, 가르시아 로르카 등 남미 쪽 시인들에게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 시인 중에서는 신철규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최승자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신철규 : 저도 최승자 시인을 좋아합니다. 저는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그 시만 보면 너무 좋아서 아직도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

 

    ▶ 권민자 : 네. 저도 그런 미칠 것 같은 시풍을 좋아해요. 그래서 김수영이나 이성복, 최승자 시인 같은 분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2012년에 등단했는데도 불구하고 제 시가 옛날 느낌이 나는가 봐요. AYAF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덧붙이고 싶은데, 지금 말하는 부분이 등단하면서부터 생긴 고민과 연결되기도 하거든요. 활동하면서 많이 들었던 평이 최근의 작품들과 느낌이나 태도 면에서 다른 것 같다는 것과 특이하게 쓴다(비약이 심하다)는 것이었어요.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하지만 잘못되지 않은 것은 밀고 나가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고치고 어떤 부분은 고치지 않아도 될까 고민하던 중 AYAF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되짚어 보면 AYAF에 지원하게 된 것은 저 스스로 제가 쓴 시에 대해서 확신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권민자라는 사람은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쓸 것이다. 뭐, 그런 셈이죠. 2014년에 1차, 3차 두 번 응모해서 두 번 선정되었는데, 선정되면서 좋았던 것은 제 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에요. 또, 감사드리고 싶은 점은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심사위원들의 따끔한 심사평 덕분인데요. (웃음) 제 심사평 같은 경우 제가 느끼기에 다른 분들보다 좀 엄격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시와 연결되는 것이었어요. 저 역시 느끼고 있던 단점과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 주셔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 신철규 : 저도 AYAF에 지원했으나 떨어졌죠. (웃음)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서툰 실력이 들통 난 것이겠지요. (웃음)
시 쓰는 데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인정받는 계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신이 작가, 혹은 시인, 극작가, 소설가란 호칭을 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습작기를 거쳐 등단 후 자기 글을 지면으로 보면 자신의 민낯을 보는 것처럼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요. 그런 것이 또 자기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자기가 작가라고 느꼈을 때, 혹은 진정한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언제일까요.

 

    ▶ 김준현 : 저는 아까 얘기해 주신 것처럼, 작품이 책으로 나왔는데 정말 못 보겠더라고요. (웃음) 항상 혼자 노트북으로 보던 거잖아요. 언제나 이 세계는 바깥의 세계와는 무관하게 내가 질서를 부여하고 정의하는 나만의 시공간, 나만의 세계였는데 책으로 나오면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 제가 끼어 있는 거잖아요. 참 민망하더라고요. 시라는 것도 하나의 자격이 되고 또 기라성 같은 선배 문인들의 시와 같은 공간에서 시로 존재하려면 더 열심히, 좋은 시를 써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 신철규 :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책을 많이 내시고 시 발표 많이 하신 훌륭한 분들이랑 같은 지면에 있지만, 같은 지면에 있거나 같은 서점에 있을 때는 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 아닐까요. 언제든지 새로 시작하는, 그런 것이 젊은 작가의 특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박찬세 : 최백규 시인은 첫 청탁 받아 봤나요.

 

    ▶ 최백규 : 네, 받았습니다.

 

    ▶ 박찬세 : 2015년 봄호인가요.

 

    ▶ 최백규 : 네.

 

    ▶ 신철규 : 아, 아직 안 나왔군요.

 

    ▶ 최백규 : 네. 저 등단한 지 아직 3개월밖에 안 되었습니다. (웃음)

 

    ▶ 박찬세 : 이번에 AYAF 선정으로《문장웹진》에 시가 올라왔잖아요. 기분이 어땠어요.

 

    ▶ 최백규 : 원래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랑, 대구에 계신 시인 선생님 한두 분, 도서관 수업의 아주머니 분들. 이분들이 제 독자였는데 등단하고 나서는 문창과 준비하는 학생들한테 시 읽었어요, 이런 쪽지가 오더라고요. 이제 내 시를 누가 읽어 주는구나, 이것만으로도 지금 감사하고 있어요.

 

    ▶ 신철규 : 임재영 소설가는 특이하게《문장웹진》에서 지원을 해줘서 처음 책을 내게 되었는데 그 책이 나왔을 때 어땠나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그랬나요.

 

    ▶ 임재영 : 네, 뭐 보여주지는 않고 다 사라고 했습니다. 감히 내가 책을 냈는데 안 살 수가 있느냐. 다 사라고 했고요. (웃음) 저 같은 경우는 중학교 때 출판을 했습니다.

 

    ▶ 박찬세 : 등단년도로만 따지면 제일 높으신데요. (웃음)

 

    ▶ 임재영 : 조금 애매한 게요, 제가 판타지 소설로 시작해서요, 그게 인기를 좀 얻어서 출판사 쪽에서 출판하자 해서 책을 내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총 6권 출판했어요. 그래서「아틀라스의 유언장」을 낸 것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어요. 다만 이런 느낌은 있었습니다. 작은 격려 같은 거죠. 어려서부터 소설을 계속 써왔잖아요. 계속 던지는 질문이 있어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인생을 허비할 만큼 정말 가치가 있는가, 이 소설을 써도 되는가, 시간낭비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이 계속되죠. 왜냐면 돈도 못 버니까. 이런 질문들은 굉장히 구체적인 것이죠. 부모님들이 똑같이 하실 수도 있고요. 그 상황에서 등단을 한다든가, 상을 받고, 책을 내는 것 들은 아주 작은 위로 같아요. 우선은 조금만 더 해봐, 이런 느낌이죠. 그러면 아, 알았다 조금만 더 해보자 하죠. 책을 냈으니까, 엄마 나 책 냈어, 조금만 더 해도 되지, 이런 느낌이기도 하고요.

 

    ▶ 박찬세 : 저희들은 장르소설을 잘 모르니까, 어려서부터 소설을 써서 책을 6권이나 냈다니까 신기하네요.

 

    ▶ 신철규 : 박신수진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공연을 올리셨잖아요. 남산희곡페스티벌에서요. 희곡 쓸 때나 그 희곡을 공연으로 올리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점은 없었나요.

 

    ▶ 박신수진 : 네. 오늘 시인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시 청탁, 소설 청탁, 평론 청탁 이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동화나 희곡은 문학이라고 생각 안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 일동 : 아니에요. 전혀요. (웃음)

 

    ▶ 박신수진 : 그게 아니고, 희곡 청탁 이런 건 없으니까요. 희곡은 연극을 위해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공연화 되지 않은 희곡은 문학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공연화 되면 연극이 되거든요. 희곡이랑 연극은 좀 달라요. 연출이 들어가서 작품이 좀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배우들이 말로 전달해 주고 스토리가 똑같더라도, 희곡이랑은 전혀 다른 분야의 예술 분과가 되는 게 연극이에요. 그런데 저는 사실 문학으로서의 희곡, 읽는 희곡을 쓰고 싶고 쓰고 있긴 해요. 그러니까 제 글이 시나 소설처럼 희곡 형식의 글이라고 생각되었으면 좋겠는데, 문예지에서 희곡을 청탁받는다, 이런 건 잘 생각하고 있지 않죠.

 

    ▶ 신철규 : 어렸을 때 읽은 것이긴 하지만, 최인훈이나 오태석 선생님의 희곡은 문학적이란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 박찬세 : 희곡 작품집도 내지 않나요.

 

    ▶ 박신수진 : 극작가 중에서도 공연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중견을 넘어서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을 때에야 희곡집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희곡집을 소설처럼 사본다든가, 시집도 요즘 잘 안 보지만, 희곡집을 읽는다는 얘기를 듣기는 힘들죠. 물론 셰익스피어 희곡집 같은 경우 완전히 문학 텍스트가 되어버렸지만. 지금 시작하는 극작가들은 읽는 희곡을 쓴다는 생각을 잘 못하니까요. 제가 AYAF에 지원을 할 때, 제일 반가웠던 것이《문장웹진》에 희곡 전체가 올라간다는 사실이었어요. 상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그것 때문에 지원했어요.

 

    ▶ 박찬세 : 창작집발 간 지원사업이라든지 대산창작기금에도 희곡 분야가 있잖아요.

 

    ▶ 박신수진 : 물론 신춘문예 공모에도 희곡이 있긴 하죠.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거예요. 저는 문학 텍스트로서 희곡이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 신철규 : 자신의 희곡이 공연되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 박신수진 : 내가 쓴 책을 내가 못 읽는 거, 그 민낯의 느낌은 공연도 똑같은 것 같아요. 극본이 무대에 오르고 공연이 시작될 때 보기 힘들어요. (웃음)

 

    ▶ 신철규 : 자기가 머릿속에 그렸던 거랑 다른 부분도 많죠.

 

    ▶ 박신수진 : 네. 그건 연출의 몫으로 남겨 둬야 하는 거라서. 사실 마음에 안 들어도, 내가 썼는데도 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죠.

 

    ▶ 신철규 : 여기서 박찬세 시인의 등단기를 잠깐 들었으면 좋겠네요. 워낙 유명하잖아요. 어머니가 정화수 떠놓으시고. (웃음)

 

    ▶ 박찬세 : 저도 오랫동안 등단 주변을 배회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 최종심에 올랐지만 떨어지기를 반복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이번 신춘문예에 떨어지면 노량진에 가라고 하셨죠.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하라고. (웃음) 결과가 안 좋아서 짐 다 싸놓고 노량진 가기 이틀 전 날 어머니한테 갔어요. 말을 한 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고 한참 있으니까 엄마가 차 한 잔 내주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많이 아쉽지. 나도 아쉬운데, 한 일 년만 더 해보라고요. 방 하나 내줄 테니까. 그래서 집에 세놓던 것을 빼고, 제 방 하나를 마련해 주셨어요. 거기서 일 년 동안 계속 쓴 거죠. 어머니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소리를 엿들으면서. (웃음)

 

    ▶ 신철규 : 거의 과거시험과 다를 바 없네요. (일동 웃음) 흔히 얘기하듯, 될 사람은 되는 거겠지요. 약간의 운명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넘어가서 다른 얘기를 해보죠. 글을 쓰게 된 계기나 습작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고민하게 된 것들이 있지요. 결국 자기가 좋은 작품을 쓰고 있나, 잘 쓰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클 것입니다. 작품을 쓰고 나서 이건 정말 잘 썼다 할 때가 있는지, 아니면 그런 작품이 있는지요. 김수영은 산문에서 참여문학이든 순수문학이든 작품다운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김수영은 작품에서 어떤 죽음이 보여야 한다, 이 작품에서 내가 죽었는가 안 죽었는가를 보고 좋은 작품인가를 판단했어요. 실제의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시를 쓰면서 이상한 혼돈 같은 것이 올 때가 있어요. 자기도 모르는 목소리,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 뜻 모를 내면의 목소리, 일종의 혼돈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 경험들이 있는지요. 시쳇말로 말해서 나 너무 잘 썼어,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나요. 최백규 시인부터 말씀해 주세요.

 

    ▶ 최백규 : 아직 발표작도 몇 편 안 되지만 그래도 혼자 만족하는 건, 대부분 만든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나왔다는 느낌. 생각 없이 막 썼을 때 그래요. 등단작도, 그날 선생님한테 혼나고 나서 시 안 써야겠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할 때 쓴 거예요. 공모전에서도 많이 떨어질 때고요. 그 와중에 추운 날 집으로 걸어가면서 휴대폰에 쓴 건데 등단하게 됐어요. 그런 것들이 이거 잘 써야지, 하고 쓴 것보다 잘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김연필 : 저 같은 경우는 읽었을 때 거슬리는 게 없는 글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대부분 좋다, 라는 생각이 들고요. 솔직히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남한테 보여주면 대부분 좋은지 모르겠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해요. 이번에 AYAF에 낸 것도 사실 일부러 남들이 읽을 것을 의식하고 고른 경향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이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작품들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이 있는데, 그런 건 쓸 때도 자기도 모르게 쭉 나올 때가 있고요. 그것들이 뭔가 잘 엮여 있을 때가 있어요.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시 읽어 보니까 거슬리는 것도 없으면서 서로 잘 엮여 있는 것. 그런 것을 느낄 때는 괜찮구나, 마음에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신철규 :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걸 쓰려고 했는데 안 써지다가 갑자기 풀리는 이상한 실마리를 발견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는 극한의 희열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요.

 

    ▶ 박찬세 : 시와 상관없는, 혹은 문외한인 사람들한테 보여줘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검증을 받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김준현 시인은 어떠세요.

 

    ▶ 김준현 : 저도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시는 기본적으로 이성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작업이지만, 그 이성적 작업이 우연한 지점, 내가 의식하지 못한 발견의 지점에 가닿아야만 한 편의 시가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 박찬세 : 그랬을 때는 내가 좀 잘 썼다, 라는 생각이 드나요.

 

    ▶ 김준현 : 글이 생명체처럼 보일 때가 있고, 때로는 억지로 붙여 놓은 것처럼 만들어진 작품들도 간간이 있어요. 전자의 경우는 제대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후자의 경우는 언어와 현실에 너무 쉽게 타협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불러일으켜요.

 

    ▶ 박찬세 : 저는 2, 3개월 시를 붙잡고 있으면, 난 최선을 다했어,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전까진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뒤론 남들이 뭐라고 해도 좋아요. 이 시에다가 난 쓸 거 다 썼어. 술도 마실 만큼 먹었고 이거 쓸 동안 들어간 돈도 많아.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한 번에 쭉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시는 신뢰를 안 해요. 들어간 노력이 적기 때문에. 최대한 시 안에 들어가서 상상하고, 충분히 놀고 나왔을 때 그때 조금 자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밖에서는 그걸 신뢰를 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고요.

 

    ▶ 신철규 : 다 비슷한 생각일 겁니다. 저도 가끔 문학에 대한 강연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 이야기하는 것이, ‘끝까지 간다’는 것이지요. 내가 얼마나 끝까지 가봤는지에 대한 실험들이 작품 속에 있으면, 그럴 때 자신이 내세울 만한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시인께서는 자기 작품에 점수를 매길 수 있으면 그때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것은 실제로 점수를 매기고 안 매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쓴 작품을 보는 눈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의 여부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문학을 하는 것도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그들만큼 내가 쓰고 있나 계속 검증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제 스승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문학이라는 것은 틀리더라도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틀리더라도 다른 말을 한번 해보는 것이라고요.
    선배들, 혹은 동시대 작가들의 압력이 심할 것 같아요. 가장 압력이 클 것 같은 박성준 시인에게 여쭤 보지요. 아까 이야기했던 안양예고 친구들도 있고, 세대론에 묶이기도 했던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던 부분들이 있습니까.

 

    ▶ 박성준 : 우리 문단에서 신세대론은 계속 있어 왔어요. 좀 거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런 식의 담론 장사는 마지막 보루여야 할 텐데, 너무 서둘러서 명명하고 소진시키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서둘러 비평가들이 자기 지분을 확보하듯이 묶어 놓는 태도도 참기 힘들고요. 시인도 소비되고 그런 소비 구조 안에서 명명된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눠지는 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제 시가 어떤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거든요. 제가 동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나이도 비슷하고 등단과 시집 출간 시기가 비슷한 또래 시인들이 모이다 보니 새로운 세대로 묶어서 보려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끼리 외로우니까 우리끼리 좀 놀아 보자는 식으로 소박하게 만든 동인이고요. 요즘은 자주 보지는 못하는데 ‘는’ 동인끼리 만나도 카페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나 연예인 이야기 하고 그렇습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남자들이 처한 문제를 같이 견디고 위로하는 시인들일 뿐이지요. 그리고 더 이상 세대론에 대한 호명이 안 나오는 것은 너무 느슨한 개념들로 ‘젊은 시’라는 소비 구조를 기이하게 강화시킨 것들 때문에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세대론의 수혜자인 동시에 피해자를 양산하는 건 좋지 않은 현상이죠. 혹시 제가 평론을 할 때 그러는 건 아닌지 무섭기도 하고요. (웃음)

 

    ▶ 신철규 : 2000년대 중후반의 실험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에 대한 진단이 많았는데 이제 그런 목소리가 보편화된 것 같아요. 아까 말한 것처럼, 요새 젊은 시인들이 바로 윗세대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런 실험들이 보편화되고 개성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거기서 어떻게 탈출해 나가야 하는지는 지금 젊은 시인들의 공통적인 고민인 것 같습니다.
    밖에서 보면 박성준 시인 같은 경우는 이 지원 프로그램에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AYAF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좀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저 같은 경우는 강의를 통해서 돈을 버는 입장이라 방학은 춘궁기입니다. 작가들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형태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대필을 해본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의, 출판사, 잡지사 직원이라든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잖습니까. 여러분은 다들 어떻게 먹고사는지 궁금합니다. 김연필 시인이 좀 독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 김연필 : 저는 취미로 시작한 게 생업이 되었고요. 솔직히 시 쓰는 걸로는 거의 아무런 돈도 못 벌어 왔던 입장이라 실제로는 장사로 먹고사는 장사꾼이에요.
취미로 새우를 키워서 개량시키고 했어요. 계속 개량을 해서 새우를 더 좋게 키워 나가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개량을 잘해서 제 새우들이 이쪽 시장에서 인정을 받게 된 거예요. 새우를 팔아서 그 돈으로 가게를 얻고, 그 가게에서 계속 장사를 하고 있고 꾸준히 먹고살고 있어요.

 

    ▶ 박찬세 : 품종개량을 하면, 그게 100만 원 정도도 한다는 거죠.

 

    ▶ 김연필 : 그 이상도 하죠. 제 새우는 제 이름이 붙은 혈통이에요.

 

    ▶ 박찬세 :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됩니까.

 

    ▶ 김연필 : 새우를 일부러 많이 팔려 하지 않아서, 월매출 300 정도 나오고 있고요. 사무실 임대료나 이런저런 공과금 제외하면 순이익은 200 정도 나오는 것 같아요.

 

    ▶ 박찬세 : 너무 부럽네요. 이따 이야기 좀 해요. 술 마시면서. (웃음)

 

    ▶ 신철규 : 정말 독특한 경험인데요. 작가 중에서 수족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한국 문학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일 겁니다. 아까 말하신 것처럼 취미로 시작하셨다고 하지만, 새우와 대화하면서 시도 쓰고 하십니까. (웃음)

 

    ▶ 김연필 : 사실 새우의 혈통을 만든다는 게 애정을 주지 않아야 하는 거기도 해요. 떨어지는 녀석은 제거해야 되거든요. 좋은 녀석들만 남겨야 되기 때문에, 사실 애정을 너무 가지면 오히려 못하게 되기도 해요. 새우에 관해서 시는 몇 번 써봤지만 애정을 갖고 새우와 대화하고 그런 건 없어요. (웃음)

 

    ▶ 신철규 : 보통 글과 관계된 직종에 많이 종사하는데, 장사는 시간을 많이 뺏기진 않나요.

 

    ▶ 김연필 : 저 같은 경우, 한 달에 많이 받아야 손님을 열 명 정도 받아요. 나머지 시간은 백수로 놀아요. 그러다가 써요. 저는 굉장히 많이 쓰는 편인데, 문제는 발표할 지면이 없다는 거죠.

 

    ▶ 박찬세 : 아직 서른이고 데뷔도 3년차니까, AYAF 계속 되면 되겠네요. (웃음) 지면이 없다는 게 AYAF에 지원할 때는 유리한 점도 있어요. 청탁이 많으면 작품이 없어서 못 내기도 해요.

 

    ▶ 김연필 : 사실 이번에 선정된 데도 그런 메리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다른 곳에서 청탁받은 작품을 쓰면서 틈틈이 써서 신진작가공모에 시를 냈지만, 저는 제가 계속 쌓아 두었던 것들 중에서 골라서 냈거든요. 그래서 기량에 비해서 더 잘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 신철규 : 최백규 시인은 문예창작영재교육원이라는 곳에서 학생들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처음 들어 봅니다. 아주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하나요.

 

    ▶ 최백규 : 대상은 중고등학생입니다. 대구교육청에서 대구에 있는 전체 학교에 공문을 보내서 지원 학생을 면접 등으로 뽑아서 주말마다 가르치는 겁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교과서의 시들만 보고 요새 젊은 시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고요. 지방 서점 같은 경우 시집 코너가 아주 작게 구색만 갖추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작년에 전역하고 나서야 젊은 시인의 존재와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등단 준비를 시작했거든요. 제가 가르치는 친구들은 그런 것들을 더 빨리 알았으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가르친다기보다는 시를 같이 읽고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토요일 하루 네 시간 수업합니다.

 

    ▶ 신철규 : 다른 분들도 비슷한 고민이나 생계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 임재영 : 전 학원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 박신수진 : 전 올해부터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고요. 그동안은 안 벌고 안 쓰기를 몸소 체험하면서 아껴 가면서 틈틈이 알바처럼 들어오는 돈들을 열심히 아꼈습니다. 지금 엄마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친구들한테 술값을 내라고 하면서요. 친구들이 제 사회안전망을 확보해 주고 있습니다. (웃음)

 

    ▶ 신철규 :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신진작가 지원제도(AYAF)가 처음 생길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싣고 인정받고,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서입니다. 작품 원고료 자체가 현실화되지 못했던 부분이 큽니다. 시 같은 경우는 적게 주는 데가 3만 원에서 많이 주는 데가 15만 원, 소설 같은 경우는 100만 원에서 150만 원까지 줍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진작가지원을 받게 된 소감, 이 제도가 자신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생각보다 큰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라든지, 아니면 지원 자격이나 선정 방식에 대한 불만이 있는지요. 제 주위에도 늦게 등단한 분들의 경우 나이 제한 때문에 좀 아쉽다, 라는 의견을 가진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직 첫 창작집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원고료로 따지면 많은 액수지만 공 들인 것에 비해 적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수문예지 수록 작품 한 편에 100만 원씩 주기도 했으니까요. 그것은 공모전의 성격이 아니라 사후 심사제도였고요. 현 정권에서는 문학 지원이 좀 약해졌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불만이나 개선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성준 : 저는 생활을 위해서라도 이런 지원 공모가 있으면 거의 다 하는 편입니다. AYAF는 신작 4편을 투고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4편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편수지요. 그렇다고 해서 1편만 투고해서 심사를 받을 수도 없지만, 원고 마감 시기와 맞물리면 투고를 하고 싶어도 투고할 수 없는 신인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3단계를 거쳐서 나중에 1,000만 원까지 지원해 주는 시스템인데, 이런 방식이 너무 등위를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치 금은동처럼 순위를 매기는 것이지요. 저는 2단계 콘서트 지원까지는 재작년부터 세 번을 받았는데 한 번은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 재작년에는 3단계 지원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콘서트 지원을 포기했을 때 차선자인 후배 시인이 저 대신 콘서트를 한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사실 점수가 공개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또 평론 같은 경우는 마감에 쫓기다 보니 지원하기도 힘듭니다. 지원금도 적고 지원하는 사람도 드무니까 이 부분은 좀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희곡이나 동화 같은 경우도 홍보가 부족한 것 같아요. 또 나이 제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제도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 수혜가 작가에게 돌아가는 방식으로 바꿔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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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철규 : 저는 행정적인 일을 해본 적이 없지만, 여러 가지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엄청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지원금 쪽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금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임재영 소설가는 AYAF에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습니까.

 

    ▶ 임재영 : 사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여기저기 지원할 때라. 저는 당락에 신경 안 써요. 지원하는 순간 어디 지원했는지 다 잊어버립니다. 당선이 되면 연락이 오고 아니면 안 오니까. 내가 떨어진 곳에 누가 되었는지 찾아보지도 않고요. 어차피 결과가 바뀌지 않으니까, 심적 피로감을 줄이기 위한 행위입니다.

 

    ▶ 신철규 : 김준현 시인은 어떻습니까.

 

    ▶ 김준현 : 아까 문제점을 이야기하셨는데, 이어서 하자면,《문장웹진》이 검색이 잘 안 됩니다. 웹진의 장점을 못 살리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이 안 되니까요.

 

    ▶ 박찬세 : 작품집이 없는 사람들은 검색에 노출되면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검색이 되면 읽는 분들도 많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말씀 하실 분 없나요.

 

    ▶ 김연필 : 저 같은 경우는 이게 있는지 잘 몰랐어요. 홍보가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 생겼을 때 제 모지 쪽에서 연락이 왔고요. 그거 외에는 아는 사실이 없었어요. 9월에《문장 웹진》청탁 받으면서, 시 실린 것을 보다가 다시 봤거든요. 두 번 내도 된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어요.

 

    ▶ 신철규 : 사실 젊은 작가들이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돈 이야기입니다. 서로 어디 지원했느냐 물어보고요. 서로 간의 교류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정리해야 할 시간이군요. AYAF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창작 방향에 대한 고민, 2015년에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들어 보겠습니다. 창작집 발간 계획도 좋고요. 권민자 시인부터 돌아가면서 말씀해 주세요.

 

    ▶ 권민자 : 이제 박사 3학기 올라가는데 일단 학업을 마쳐야 시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틈틈이 쓰고는 있는데 벅찬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제가 등단했을 때가 석사 3학기, 논문 학기였어요.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등단을 했지만 학업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석사 논문을 바로 쓰고 박사 과정에 진학했어요. 그러다 보니 문단도 잘 모르겠고 시 쓰는 것도 너무 벅찬데 무엇보다 문제는 대체로 습작기 때 썼던 것을 고쳐서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시집을 낸다면 발표한 시들을 대폭 수정하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시집을 낸다는 가정 아래 발표한 시들을 고치는 중인데 고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네요. (웃음) 이제 일 년만 다니면 박사 수료인데, 지금부터 서서히 본격적으로 시를 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제대로 등단한 기분이랄까, 시인의 기분(?)을 맛보는 중이에요. (웃음)

 

    ▶ 박찬세 : 창작에 몰두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으시군요. 그런 기회라면 창작 집필실을 신청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권민자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집에서밖에 글을 못 써요. 창작 집필실 같은 경우는 좀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네요.

 

    ▶ 신철규 : 저도 제 방에 있는 데스크톱 외에는 글을 잘 못 쓰는 편입니다.

 

    ▶ 박찬세 : 배가 불러서 그래요. (일동 웃음)

 

    ▶ 신철규 : 다른 분은 또 없나요.

 

    ▶ 임재영 :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목표는 딱 하나, 제 마음에 드는 소설을 쓰는 것 외에는 없고요.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좀 치열하고 싶어요. 치열하거나, 치열하지 못하다면 치열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없으면 차라리 편하련만.

 

    ▶ 신철규 : 앞으로 장르 문학을 계속하실 계획입니까, 아니면 본격 소설로 넘어오실 계획입니까.

 

    ▶ 임재영 : 저는 둘을 구분 안 하고, 다른 분들이 제 소설을 장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싫지도 좋지도 않아요.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정도의 생각입니다. 치열하게 쓴다는 것이 밤을 새서 엄청나게 쓴다는 것을 말하진 않거든요. 스스로 원하는 것은, 완벽히 고정된 시간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매일 규칙적으로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침에 쓰거든요.

 

    ▶ 박찬세 : 보통 소설가들은 아침에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 임재영 :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졸리면 아무것도 못 하는 타입이라서요.

 

    ▶ 신철규 : 헤밍웨이 같은 경우도 오전에만 쓰고 오후에는 산책이나 독서를 하는 등 다른 일을 했다고 하지요.

 

    ▶ 임재영 : 네, 규칙적인 게 치열한 것입니다.

 

    ▶ 신철규 : 박신수진 작가님은 아까 말한 것처럼, 올해 공부도 하신다고 했는데 창작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주시길 바랍니다.

 

    ▶ 박신수진 : 네. 대학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올해는 학술적인 글도 좀 쓰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임재영 소설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글에 장르의 구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글은 글일 뿐, 읽히면 그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AYAF 네 차례 지원에 여러 번 투고가 된다고 하니까 올해는 제가 쓴 희곡들을 모두 내보고 싶어요. (웃음) 저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연되는 희곡보다, 희곡이 지면으로 독자와 바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투고해 보겠습니다.

 

    ▶ 박찬세 : 박성준 시인은 첫 시집도 냈고, 이제 두 번째 시집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 박성준 : 두 번째 시집은 원고를 넣어 놓은 상태고요. 제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반드시 입대해야 합니다. 그전에 영장이 나올 수도 있고요. 이제 대학원 박사과정도 수료했기 때문에 올해 목표는 군대를 가기 전에 두 번째 시집을 내는 것입니다. 또 지원받은 게 있어서 군대에 가게 되면 지원 받은 돈을 다시 뱉어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이렇게 조급하게 시집을 내고 싶지 않은데 모든 상황이 고압적이기는 하네요. (웃음) 그리고 병역은 현역이 아니라 공익근무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놀지 말고 박사 논문을 썼으면 좋겠고요. 그 전후로 결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한테는 30대 무직의 시인이라는 게 참 천덕꾸러기 같겠지만, 저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음) 사랑이라는 감정이 참 여러 가지 있는 것 같은데,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것도 있지만 안정감을 주거나 서로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는 것도 사랑인 것 같아요. 제가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작업 자체가 모험으로 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일상생활에서라도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요. 어쨌든 궁극적인 목표는 부끄럽지 않은 두 번째 시집을 내는 것입니다.

 

    ▶ 신철규 : 김준현 시인은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 김준현 : 저도 권민자 시인처럼 집에서밖에 글을 못 썼어요. 그런데 연희창작촌에 들어가면서 그 징크스 하나를 깼어요. 또 낮에는 글을 못 쓰거든요. 전 온갖 징크스에 둘러싸인 사람인데 지금부터 조금씩 깨고 싶습니다.

 

    ▶ 신철규 : 대구에도 이성복이나 장옥관, 송재학 등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계시지요. 서울에 올라온 느낌이나 연희창작촌에 입주한 소감이 어떠세요. 시 좀 쓰셨나요.

 

    ▶ 김준현 : 아직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지만 시가 의외로 잘 써져서 몇 편 썼습니다. (웃음)

 

    ▶ 박찬세 : 그럼 올해 지면에서 많이 볼 수 있겠네요.

 

    ▶ 김준현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창작과 발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 신철규 : AYAF에 또 신청할 수 있으니까 기대해 보겠습니다. 김연필 시인은 어떤 계획이 있나요.

 

    ▶ 김연필 : 저는 올해 시집을 내고 싶고요.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다른 목표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AYAF에 지원하는 것이고요. (웃음)《문장 웹진》보면서 자주 공모 공지가 올라왔나 확인합니다.

 

    ▶ 신철규 : 회원 가입한 작가들에게는 공모를 알리는 메일이 잘 왔으면 좋겠네요.

 

    ▶ 김연필 : 네, 저도 생활을 하다 보면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신철규 : 마지막으로 최백규 시인도 이야기해 주세요.

 

    ▶ 최백규 : 네. 저는 이제 시작이니까 더 좋은 시를 쓰는 게 목표입니다.

 

    ▶ 신철규 : 네. 다들 창작에 관한 고민들,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창작에 임할 때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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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민자

    「세면대는 어떤 것이든 씻을 수 있다고 말했니」 외 3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0183

    「서른이 되어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밥 먹고 웃고 수다 떠는 것」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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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필

    「서정」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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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현

    「독감」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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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스타」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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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준

    「선물」 외 3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8526

    「소문」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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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약속」 외 3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1107

 

   ⊙ 최백규

    「소년들의 공화국」 외 3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1141

 

   ⊙ 임재영

    「24시간」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0457

 

   ⊙ 박신수진

    「세면대는 어떤 것이든 씻을 수 있다고 말했니」 외 3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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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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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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