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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 나는 왜] 고통스러운 이 땅으로 잘못 날아온 시인

  • 작성일 2015-05-04
  • 조회수 1,984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11회)

 

 

고통스러운 이 땅으로 잘못 날아온 시인

- 시인 김성규 편

 

 

정리 : 안희연(시인)

 

 

 

    4월이 되고 걸음을 멈추는 일이 잦아졌다. 꽃이 피면 꽃이 핀다고, 날이 좋으면 날이 좋다고, 봄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툭하면 슬퍼지는 계절. 그런 봄이 되면 불쑥불쑥 김성규 시인이 생각난다. “봄날은 무심히 가네. 나이가 드니 이런 말들이 이해가 돼.” “시간 지나면 허무한 일이지. 이성복 시인의 「아들에게」가 생각나네.” 기억 못 하시겠지만, 김성규 시인이 그간 내게 툭툭 던지곤 했던 말들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가 이 땅으로 잘못 날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망명자가 틀림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어쩌다 그가 이곳으로 잘못 날아왔는지. 그와 함께 떠나는 “폭풍 속으로의 긴 여행”에는 소수의 독자들이 초대되었다. 나도 끄트머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여러 분들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렵다는 말로 그날의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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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이 둘로 쪼개지듯이

 

    ▶ 이영주(이하 이) : 《문장웹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 시간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소규모로 꾸려진 만큼 소중하고 내밀한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오늘의 초대 손님인 김성규 시인을 잠시 소개할게요. 충북 옥천 출신이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셨네요.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고, 시집으로는 『너는 잘못 날아왔다』와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습니다. 김성규 시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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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규(이하 김) : 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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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 [나는 왜]의 공식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김성규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늘 듣는 질문이죠?

 

    ▶ 김 : 이런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하면 주최 측은 관객이 많이 와야 좋겠지만, 사실 저는 적게 오는 게 좋아요.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크거든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를 썼어요. 그때 김소월, 윤동주 시집을 사서 읽곤 했는데, 그때 제가 왜 시집을 사서 읽고 시를 썼던가 생각해 보면 외롭고 슬퍼서였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집이 무척 가난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쌀밥을 먹었으니까요. 제가 6남매인데요. 집이 워낙 가난하다 보니 누나들은 7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산업체(공장)에 다녔어요. 집 안 분위기도 늘 우울했는데, 아버지께서 거의 매일 술만 드셨어요. 나중에는 집을 못 찾아 오신다거나 병원 신세를 지는 등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고요. 아버지가 폭력적이지는 않았으나 늘 취해 계셨고, 그래서 어머니와도 자주 싸우셨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누나들이 공장으로 가고 나면 집이 늘 우울했죠.
    제가 좀 전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쌀밥을 먹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도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어요. 어머니께서 마을에 누가 장례를 치르면 쌀을 주는 계를 하고 있어서, 집에 쌀이 생긴 거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금강휴게소로 출근을 하고 누나들도 돈을 벌면서 집이 경제적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았어요. 그게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에요. 아마 그 무렵 제 세계가 둘로 쪼개졌던 것 같아요. 물방울이 충격을 받으면 둘로 쪼개지듯이. 가난과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생각했고 공부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글은 계속 쓰고 싶더라고요. 그때 쓴 유치한 시도 몇 편 있는데 지금은 잊어버려서 하나도 없어요. 뱀 굴 안으로 들어가서 어린 제가 불타는 흙 위에 흩어진 동전을 주워오고 그런 시였던 것 같은데. (웃음)
    제겐 글쓰기가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어요. 세상과 싸운다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일이었고, 패배한 자의 자기위안이었고요. 인간관계도 무척 어려웠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 친구들과 같이 가지 않고 혼자 다른 길로 가고 그랬어요. 우울증도 심했고요. 사춘기를 지나서도 그런 상황이 계속됐고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처럼 생각하며 자주 울었던 것 같아요.

 

    ▶ 이 : 사실 저와 김성규 시인은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이인데, 이런 얘기는 한 번도 나눌 기회가 없었어요. 유년의 체험이 소설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네요. 제가 아는 김성규 시인은 개그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서, 어릴 때부터 우울에 지배당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아마도 우울해서 개그에 더 집중하는 스타일인 것 같네요. (웃음) 그럼 다음 질문을 건네 볼게요. 김성규 시인의 시집 제목(『너는 잘못 날아왔다』와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을 보면 비극적인 징후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제목을 지을 때 어떤 기준이나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김 : 시인들이 시집 제목을 정할 때 잘 팔릴 것 같은 제목을 많이 짓는데, 저 역시도 인상적인 제목을 많이 고민했어요. 특히 두 번째 시집 제목은 여러 가지 제목이 있었는데 제가 강하게 주장했죠. 김소월이나 윤동주나 기형도 같은 시인들 보면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잖아요. 어릴 때는 저도 그런 위대한 시인들처럼 비극적으로 생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른 이전에 죽어야 문학사에 길이 남고 세계적인 작가가 될 것 같잖아요. (일동 웃음) 살다 보니 서른이 되었고 첫 시집이 나왔는데 별로 반응도 없고, 그러다 보니 서른 중반이 되었고 그래서 조금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번째 책을 낸 거예요. (웃음) 두 번째 시집이 나와서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제목도 표지도 종말론적이고 왠지 종교 집단에서 만든 책 같은 느낌이잖아요. 아버님 왈, “집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놓고 가는 책 같다.” 그러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전도하려고 종교인들이 집에 자주 와서 책자를 놓고 가거든요. 사실 책 나오고 사이비종교 집단에서 좀 사주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 전혀 없더라고요. (웃음) 출판사에서는 좀 더 서정적인 제목으로 가길 원했는데, 그래도 이건 제 일생일대의 책이니까 제목을 양보하기 싫었어요. 우겨서 이렇게 됐어요. 제가 아는 시인은 시집 제목 따라 인생이 흘러간다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 책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제목이 비극적이면 그만큼 침윤되는 것 같고요. 두 번째 시집 내고 나서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게 좋기도 해요. 너무 유명해지면 어떻게 해요. 연애도 마음대로 못 하고 사람들하고 술 먹고 싸움도 못 할 텐데. (웃음)

 

    ▶ 이 : 두 시집 제목이 연결해서 읽히기도 해요. 두 번째 시집의 “망가진 자” 중에 “잘못 날아온 너”가 있을 것 같고요. 여기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기 위한 가벼운 질문 하나 할게요. 첫 시집이 공영방송 드라마《시크릿 가든》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때 기분은 어떠셨는지? 그것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시집도 좀 나갔죠?

 

    ▶ 김 : 네. (웃음) 당시 누나와 같이 살았었는데 텔레비전이 하나라 다툼이 심했어요. 박지성이 맨체스터에서 열심히 뛸 때라 저는 축구 중계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누나가 절대 양보를 안 하는 거예요. 《시크릿 가든》 보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중국이 왜 망했는지 설파했어요. 드라마는 현실을 도피하게 하는 마약이다, 중국 인민들이 다 그 아편에 홀려서 현실을 망각하는 거 아니냐, 누나 같은 사람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그러면 누나는 듣지도 않고 시끄럽다고 하죠. (일동 웃음) 할 수 없이 방에 들어가 컴퓨터로 축구를 보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문자가 1초에 하나씩 오더라고요. 제 책이 드라마에 나왔다는 거예요. 내심 책이 좀 팔리려나 했지만 내색은 못 하잖아요. 자고로 시인이란 학처럼 고고해야 하니까. (일동 웃음) 아닌 게 아니라 다음날부터 책이 많이 팔린다는 거예요. 신문에도 기사가 나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시크릿 가든》 선물세트’ 상품이 생기기도 했고요. 당시 하루에 200권, 300권씩 나갔어요. 궁금해서 서점에 몰래 가본 적도 있어요. 시집에 사진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날 알아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괜히 인문학 코너 저 뒤로 돌아서 몰래 가봤는데 (웃음)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이 되어 있더라고요. 당시에 5위인가 그랬어요. 주변에서 사람들이 잘 팔리는지 물어 오는데, 기분은 너무 좋은데 내색은 못 하고 “모르겠어요. 좀 팔리겠죠.” 괜히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그랬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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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두나무와 잉어

 

    ▶ 이 : 시집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김성규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면 ‘호두나무’가 인간의 원형에 해당되는 중요한 사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산문에서도 이 호두나무가 시인의 고향에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나무 이미지가 시인의 삶을 둘러싼 채 시적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호두나무’에 대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 김 : 고향 마을에 호두나무가 있었는데요. 그 나무를 보면서 나무도 사람과 똑같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희 아버지가 80이 넘으셨는데 그 호두나무가 아버지 어릴 때부터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어릴 땐 지금보다 훨씬 컸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작아졌어요. 죽어가고 있는 거죠.
    호두나무가 원래 생명력이 강한 나무예요. 호두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그 일대에는 다른 나무가 못 자라요. 껍질에 독이 있어서, 바닥에 떨어지면 그 독이 퍼지는 거예요. 6?25때 미군들은 껍질을 먹고 죽기도 했대요. 배는 고픈데 먹을 줄을 몰라 껍질을 먹은 거예요. 그런 무서움,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게 호두나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무가 가진 일반적인 상징이 있잖아요. 우주목이라고도 하죠. 지하에는 뿌리가 있고 지상에는 몸통이 있고 천상에는 가지가 있고요. 무당이 굿 할 때 나뭇가지를 흔들잖아요. 나무를 흔듦으로써 천상의 목소리가 무당의 몸에 체화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거죠. 그런 상징성과 제가 직접 보았던 나무의 무서움이 뒤섞여 시로 발현된 것 같아요.

 

    ▶ 이 : 그럼 이쯤에서 독자 분의 시 낭송을 들어 볼까요?

 

 

존재하지 않는 마을

 

이듬해부터 가지가 찢어지도록 호두가 열린다
나일론 줄에 목을 감고 있던 그녀의 뱃속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죽어간 것을 사내들은 알고 있다

 

노인들은 손바닥에 검은 물이 들 때까지
마당에 앉아 호두껍질을 벗긴다
어두워지면 검은 손이 나타난단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손바닥을 바라본다

 

빈 하늘을 쓸어내리는 바람소리
호두알처럼 영근 아이들은
밤마다 계집애들 이야기를 한다
다 익은 처녀들을 찾아다니는 수염 검은 아이들
폭설로 하늘이 하얗게 반짝이는 날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호두나무가 쓰러진다
참새 발자국만 한 눈송이
지상에 웅크린 지붕을 밟고 가는 날
아무도 나무 위의 세상을 묻지 않는다

 

    ▶ 이 : 시인의 이야기 끝에 시를 들으니 시가 확 들어오고 시의 외연도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한편 ‘호두나무’와 함께 또 하나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사물이 ‘잉어’입니다. 두 권의 시집에 ‘잉어’(물고기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김 : 제가 백수였을 무렵 천변을 따라 걷다가 한강까지 간 적이 있어요. 한강에 낚시하는 사람이 있기에 뭘 잡았느냐고 물으니 잉어를 잡았다는 거예요. 잉어를 직접 보니 유선형이 아니라 굉장히 뚱뚱하고 사람 장딴지 같더라고요. 콧구멍도 있고, 수염이랑 입도 있어서 꼭 사람같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옛날에 시골에서는 임산부에게 잉어나 가물치를 고아서 먹였어요. 제 큰누나도 몸이 약하고 말라서 아이 낳고 나서 어머니가 잉어를 고아서 먹인 적이 있거든요. 특히 가물치는 육식성이라 식욕도 강하고 생명력이 굉장히 강해요. 대부분 물고기가 물 밖에 나오면 금방 죽잖아요. 그런데 가물치는 몸을 움직여서(기어가서) 강물로 찾아들어가 살아요. 잉어도 호수가 마르면 흙속으로 파고들어 가뭄을 견딘다고 해요. 엄청난 생명력인 거죠. 그러니까 임산부에게 잉어나 가물치를 고아 먹인다는 것은 단순히 물고기를 먹이는 게 아니라 그 생명을 먹이는 거예요.
    그리고 물고기에게는 본래 ‘진리’라는 상징이 있어요. 절에 가면 종(풍경)에 물고기가 매달려 있잖아요.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늘 눈을 뜨고 있으니까, 종치면 잠에서 깨어나라 깨어 있어라 하는 거예요. 제 시의 물고기 이미지에는 이러한 인상과 상징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 이 : 무서운 이야기네요. 특정 사물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나 상징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일 텐데, 김성규 시인은 그것에 정말 능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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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의 편에 서서

 

    ▶ 이 : 한편 김성규 시인의 시는 항상 불행의 편에 서 있습니다. 두 시집 모두 근대 이후 세계의 부조리함과 구조적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청년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훼손되어 가는 식이지요. 이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김 : 근대나 근대화, 도시라는 건 다 신기루예요. 다 성취해야 하는 것들이고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돈을 벌면 화려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되는데, 망상이죠. 문학도 일종의 신기루지만요.
    이십대 초반에 제가 도시로 올라올 때도 그랬어요. 도시에서 시인이 되어 살면 처음에는 고생하더라도 나중에는 중산층 정도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시크릿 가든》에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아, 나 이제 살았구나.’ 했는데. (웃음) 저는 아직도 반지하에 살고 있죠.
    10대의 착각 중 하나도 그것이었어요. 그때 읽은 책들이 신경림, 박노해, 정희성, 김지하, 김남주 이런 시인들이었고 문학이 사회적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었던 시기였으니까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혁명 시인, 멋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순진했던가, 그것 또한 환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죠. 도시에서 화려한 생활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꾸듯이 문학의 언어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꿈꾸는 게 문학의 이상이 아닐까 해요.

 

    ▶ 이 : 도시적 삶의 매혹과 환멸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근대 이후 모든 인간의 공통된 갈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자 분의 낭송을 한 편 듣고, 계속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할게요.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아무도 장님인 저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죠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방 한 칸, 누가 뭐래도 이 방은 우리의 왕국입니다요 방바닥에는 분유통을 굴리고 노는 어린 동생들, 아무도 우리의 기쁨을 눈치 챌 수 없게, 얼른 문을 닫으라고 어머니는 소리 질렀습죠 방 안 가득 꿈틀거리는 비린내를 배 터지도록 들이마시면

 

    주홍빛 꽃송이가 쏟아지는 하늘, 난쟁이들과 춤을 추는 동생들, 사과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처녀들, 안대를 벗겨 내 눈동자에 새겨진 왕국을 하늘에 펼쳐 주세요

 

    안대를 풀자 배를 가른 어머니와 장님인 다섯 동생들, 웃으며 아무거나 해달라고 나에게 보챘습죠 눈 감아도 훤히 보이는 어둠 속에는 우리를 밟아 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요 차라리 장님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요 커튼을 열고 눈을 떴습죠

 

    유리창으로 가늘고 가는 빛이 쏟아져 들어와 눈을 찔렀습죠 온몸에 숨어 있던 열기가 두 눈으로 쏟아져 나왔습죠 눈동자에 새겨진 왕국이 하늘로 솟아올랐습죠

 

    흙으로 묻어 놓은 입구를 따라 병든 쥐들이 인도하는 길을 걸으면 어머니는 간과 신장을 팔아 통증의 왕국을 선물하셨네 기억은 언제나 뒤엉켜 꿈을 꾼 흔적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우리를 기다리는 고통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이곳은 우리의 왕국이라네

 

    깡통 속에서 서로를 밀치는 동전소리, 장님은 복도를 걸어가며 노래하네

 

    저 짐승 같은 사내에게도 우리처럼 작은 죄가 있었다면 그렇게 허황된 왕국을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졸린 눈을 부비며 나는 정거장에 내린 사내를 보네 놀란 여자들은 향수 냄새를 풍기며 복도 쪽으로 비켜서도 빛이 쏟아지는 지하도 끝으로 사내는 지팡이를 두드리며 사라지고 있었네

 

    ▶ 김 : 명작입니다. (일동 웃음)

 

    ▶ 이 : 김성규 시인의 시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물 이미지입니다. 유년 시절에 강가에 사셨다고 했는데, 아마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 이미지가 시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물은 안온하고 따뜻한 모성적 이미지가 강한 반면, 김성규 시인의 경우에는 무섭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인간 사회를 뒤덮고 있는 듯합니다. 홍수가 난다든지, 반대로 물이 빠져서 탈수된 형태로 그려지거든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김 : 마을이 강 앞에 있었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수위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물 구경, 불 구경, 싸움 구경이라잖아요. 홍수가 나면 별별 것들이 다 떠내려 와요. 돼지도 떠내려 오고, 나무도 떠내려 오고, 소가 떠내려 올 때도 있어요. 수박, 축구공, 승용차, 어쩔 땐 집도 떠내려 오는데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어느 날은 배에 탄 사람이 떠내려 오는 것을 봤어요. 물살이 빨라 막 떠내려가는데 그 사람이 물가에 있는 풀을 잡더라고요. 사실 엄청난 위기의 장면이지만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굉장히 스펙터클했어요. 사람이 강물에 떠내려간다는 건 육체나 정신의 죽음이고, 자연이라는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죽음이나 폭력도 강이나 나무처럼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홍수는 혁명의 이미지와도 닮아 있어요. 모든 것이 휩쓸려간 뒤에 그 폐허의 땅에서 싹이 트듯이 혁명에도 희생과 부활의 이미지가 있죠. 특히 제가 가진 물이나 강의 이미지는 신화적, 체험적 요소가 많아서 묘사 중심으로 썼던 것 같아요.

 

    ▶ 이 :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무서움이 있죠. 저는 도시에서 자랐고, 자연을 잘 몰라서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반면 체험한 자들은 체험의 실감으로 오는 공포가 있는 듯합니다. 무척 와 닿는 이야기였어요. 더불어 가난과 고통에 대한 구체적인 실감도 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데뷔작도 그렇고, 자본에서 소외된 자들의 심정을 잘 표현하시잖아요.

 

    ▶ 김 : 도시에서는 홍수가 나도 그다지 변화가 없고 밋밋한 것 같아요. 시골처럼 나무나 돼지가 떠내려 오는 것도 아니고, 빌딩이 파괴될 일은 없잖아요. 장마 때 한강에 가서 물 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어릴 적처럼 역동적인 일은 없었어요.
    제가 막 상경했을 무렵, 서울역 앞에 있는 대우빌딩을 보면서 공룡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언젠가 저 빌딩의 한 칸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꿈꿨었죠. 한번은 지하철을 타려는데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다음 차를 타야겠다, 하고 기다렸는데 다음 차에도 사람이 똑같이 많더라고요. 그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몰라요. (웃음) 남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빌딩이며 아파트가 저리 많은데, 저 중에 내 건 하나도 없구나 싶어서 슬프고. 어느 부유한 문학 애호가가 생일 선물로 작업실(통유리로 된!) 하나 주고, 시 창작에 매진하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생각해요. (웃음)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 이 : 가난과 고통이요. (일동 웃음) 한 사람이 많이 갖고 있어서 내 건 없는 거예요. 이게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요즘 들어 뼈아프게 느낍니다. 한편 김성규 시인의 시에는 ‘아이들’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말하는 경우도 있고 시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고요. 시인에게 ‘아이들’이라는 대상은 어떤 존재일까요?

 

    ▶ 김 : 아이들이라는 말에는 ‘어리다’와 ‘어리석다’가 같이 들어 있잖아요. 순수하면서도 어리석은 존재. 시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보들레르가 말했듯 시인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유배된 천사’인데, 현실에서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다른 한편으론 반대급부가 있어요. ‘눈 먼 장님’처럼,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걸 보는 자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보면 주인공이 둘인데, 소냐는 그리스어로 ‘지혜’라는 뜻이고 라스콜리니코프도 ‘단절, 분리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소냐는 작중에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유로지비’로 불리는데 ‘유로지비’란 일종의 ‘눈 먼 예언자’와 같은 존재예요. 바보처럼 보이지만 신 앞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죠. 가령 치매 노인이 엉뚱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예언을 던지는 것처럼, 저 역시도 시에서 아이들(어리고 어리석은 자)의 입을 빌려 예언적이고 잠언적인 말을 던지곤 했어요.

 

    ▶ 이 :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과는 다른 맥락의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현실을 회피하고 도피하려는 ‘미성년’ 화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아이들의 입장에서 행해지는 발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성규 시인의 아이들은 ‘단단한 아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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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 마법사

 

    ▶ 이 : 자, 지금부터는 독자 여러분의 질문을 받아 보는 시간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해 주세요.

 

    ▶ 독자 질문 :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미식가」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 마법사」를 보면 공통적으로 ‘마법’ 모티브가 나오는데, 마법이란 보통의 인간은 사용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신기루, 환상 같은 것과도 연결이 될 듯한데, 이 시들에 등장하는 마법과 마법사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 김 : 기본적으로 마법사는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자이잖아요. 「미식가」에는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분신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아이가 불붙은 몸의 온도가 몇 도인지 물어보죠. 이 시는 사실 1986년도에 군(軍) 전방입소 거부로 분신했던 이재호, 김세진 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착상하게 됐어요. 그 일이 있고 20년 뒤에, 당시 같이 운동했던 동료들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는데요. 개중에는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변호사가 된 사람도 있고, 헌책방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했죠. 그중 변호사가 된 사람에게 그때 일이 생각나는지 물으니 신림동을 오가는 하루 두 번, 그때마다 매번 떠오른다고 답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장소를 다시 가본 적은 없다고요.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어요. 또 다른 한 명은 공대 출신이었는데, 당시 분신을 할 때 몸의 온도가 몇 도일까 생각했대요.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죄책감도 없이 피부에 불붙이면 몇 도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길 눈물을 흘리며 하더라고요. 죽은 사람의 아버지도 찾아갔는데 아버지에게 자식이 생각나느냐고 하니까 말은 못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는 거예요. 자식의 행동을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역사에 공헌한 것 같으냐, 당시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냐 물으니, 자기 자식은 죽고 그 친구들은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미우면서도 그걸 밉다고 말하면 자기 자식이 한 일이 무용한 일이 되니까 늘 마음의 갈등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가지고 있고, 그 고통을 초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럴 수 없는 거잖아요. 시인도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그런 비극성과 내면의 고통을 환상으로 전환시키면서 쓴 시였어요.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 마법사

 

    눈보라가 괴물의 울음소리를 내며 몰려오고 있었다 내가 죽자 바람이 멈추고 눈송이는 창문에 달라붙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진 속에서 걸어 나와 내 몸을 껴안고 우셨다 나는 천장으로 날아올라 누워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파랗게 식어 가는 내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이제 아침을 거르지 않아도,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지나치게 마법을 부려 힘이 빠지지 않아도,
    돈 없어서 집에만 처박혀 있지 않아도……

 

    나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머니는 공기 중을 떠다니는 내 얼굴과 누워 있는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셨다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작은 눈송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남의 마법을 흉내 내다 괴로워하지 않아도,
    나만의 마법을 찾으려 울지 않아도,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며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때 찬바람이 방 안으로 몰아치고 문이 열렸다 어머니는 서둘러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눈물을 닦았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온 주인집 노파와 경찰에게 혀를 내밀었다 시체 1구 발견, 시체 1구 발견, 방 안에 널려 있던 종이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경찰은 무전을 쳤고 눈보라가 점점 울음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다 월세도 내지 않고 죽어버리다니, 노파는 궁시렁거렸다 천장까지 밀려들어온 찬바람이 내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눈보라 속으로,
    팔을 벌리자 하늘 끝 눈보라 속으로,
    내 몸이 나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김 :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 마법사」도 마법사가 글 쓰다가 방에서 죽는 얘기인데요. 결국 굶주려 죽는 이야기인데, 시인이 가난해서 (참)이슬만 먹고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단 말이죠. 실제로 그런 일도 있고요. (웃음) 이 시는 나 이제 시 안 써도 된다, 나만의 문장을 쓰려고 노력 안 해도 되니 좋다, 그런 시인데요. 제 안에 두 가지 욕망이 있는 거예요. 가난해도 고고하게 살아서 정말 시인다웠다고 기억되고 싶은 욕망과 다른 한편 이제 더 이상 반지하 동굴에서는 살기 싫다는 욕망이요. 땅 위로 올라와서 강연료도 많이 받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은 세속적 욕망, 이 두 욕망이 늘 공존하고 싸우는 것 같아요.

 

    ▶ 이 : 저도 그래요, 저도. (일동 웃음) 그런데 우리가 세속적으로 출세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생각이라도 하면서 잠시 고통을 잊는 거죠.

 

    ▶ 독자 질문 :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시의 근원을 자신의 삶 바깥에서 얻는 경우가 있고 삶에서 얻는 경우가 있잖아요. 김성규 시인은 주로 어떻게 시의 소재를 얻으시는지, 시를 쓸 때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김 : 저의 경우, 시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초월해 탈출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아요. 땅 속에 있으면 땅 위로 올라가려 한다거나 굴을 파고 들어가 지구의 끝까지 가본다거나, 사물이나 상황을 극단화시키는 방법으로요. 이를테면 눈이 와도 그냥 눈이 온다고 하지 않고 백 년 동안 눈이 온다고 하거나, 바람이 불더라도 작은 바람이 아니라 폭풍우가 밀려와 다 휩쓸려 간다든지 하는 식이죠. 그런 극단적인 상황과 개인적인 경험을 섞는 거예요.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을 많이 쓰게 돼요. 책을 읽으면서 착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완전한 허구만으로 시를 만들어내지는 않아요.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잖아요. 물론 시라는 것도 창작이니까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시는 1인칭의 장르잖아요.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있어요.

 

    ▶ 이 : 자세한 내용은 영업 비밀이니까요. 이쯤 하시는 걸로. (일동 웃음)

 

    ▶ 오창은 문학평론가 : 제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하고 김성규 시인 시집을 읽는데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 시인 아직 살아 있어요? 자살 안 했어요?” 멀쩡히 살아 있다고,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해서 실제로 김성규 시인을 만나게 해준 적이 있어요. (웃음) 그만큼 김 시인의 시가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성규의 시는 죽음이 앞서 있고 점차 생명을 향해 가는, ‘언어로 풀어내는 살풀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과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김 : 제가 만일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됐다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더라도 마음 한편으론 너무 우울했을 것 같아요. 돈이 많아도 갑자기 자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열심히 시를 썼던 이유도 고통스럽고 우울했기 때문이에요. 현실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으니까요. 예전엔 정말 밥을 굶어 시집을 샀어요. 아마 그래서 제가 키가 안 큰 것 같아요. (웃음) 행복했다면 안 썼을 거예요. 서정주의 시 중에 「바다」라는 시가 있어요. “귀기우려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으로 시작되어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같은 구절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시인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에요. 애비 에미를 잊으라는 말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사랑 주는 사람을 배신하겠다는 거잖아요. 얼마나 이기적인 거예요. 진짜 나쁜 놈이죠. 제가 6남매인데 제가 다섯째예요. 고등학생 때였는데, 막내인 남동생을 데리고 강가에 나가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랬어요.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앞으로 나는 시인이 되어 시를 써야 하니 부모님은 네가 건사해라.” (일동 웃음) 보세요, 얼마나 이기적이에요. 시는 신기루이고 사이비종교 같은 것인데 말이죠. 그래도 시라는 사이비종교에 빠졌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만나서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고,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생존하고 있으니까, 감사한 존재일 수밖에 없죠. 앞으로도 시를 위해서 헌신하며 살아갈 겁니다. (웃음)

 

    ▶ 이 : 원래 가족은 남들 안 볼 때 갖다버리고 싶은 존재라잖아요. 위대한 시인인 랭보도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는 걸 보면서 ‘저기 지옥의 입구가 있구나.’라고 말했다고 하잖아요. (일동 웃음)

 

    ▶ 김 : 나이 들수록 부모님 보는 게 아주 슬픈 일이 돼요. 《시크릿 가든》에 10회 연속 시집이 나오지 않는 이상, 현빈이 라면 먹을 때 받치고, 여자 친구한테 읽어 주고, 매회 그런 장면이 계속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죠. (일동 웃음)

 

    ▶ 독자 질문(나주에서 오성인 시인이 보낸 원격 질문) : 「독산동 반지하 동굴 유적지」는 불후의 명작입니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시를 쓰는 일은 이처럼 쓸쓸한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일인 바, 앞으로 어떤 유적지를 찾아다니실 계획이며 무엇을 발굴하시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 김 : 제가 「독산동 반지하 동굴 유적지」를 쓰고 나서 음독자살한 가족이 있었어요. 뉴스로 보는데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들이 제 시를 읽었을 리 없겠지만 왠지 내 잘못인 것만 같고 나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괴로웠어요. 일부 사람들은 시집이 유명해지면 독산동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도 했고요.
    앞으로 저는 적당히 타협하는 문학이 아닌, 우리 시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고 싶어요. 우리 시에 보면 세계에 대한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을 봉합하면서 따뜻하게 화해하는 시가 많거든요. 저는 그러지 않고 극단으로 밀고 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첫 시집에서는 우울함, 종교적 특징, 환상성을 흐릿하게나마 보여주었고, 두 번째 시집은 그걸 좀 심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도 비극과 비참을 극단으로 몰고 가면서 환상을 가미한 시가 쓰고 싶어요. 세계의 비극도 물론이지만 주인공 화자가 비극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한편으로는 잠언적인 서정시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 같은 시는 묘사 위주의 시가 아니에요. 저는 브레히트의 시처럼, 서정을 진술로 끌어가면서 아포리즘도 가미된, 선이 굵은 서정시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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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근처 호프집으로 이동했고, 꿀맛 같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떤 이야기 끝에, 김성규 시인이 세 번째 시집에는 ‘오백년 뒤에’라는 제목을 붙여야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오백년 뒤에.”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지 않겠느냐고. 웃자고 한 말에 모두들 웃기는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시무룩해지고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 오백 년이나 남았으면 그때까지 망가진 자들은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구나, 그리고 우리의 시인은 반지하방에서 (참)이슬만 먹으며 비극과 비참을 찰흙 반죽처럼 주무르고 있겠구나, 싶어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것 같아 피식 웃고 말았지만, 아니다, 진심으로 나는 바란다. 김성규 시인이 이 오래된 농담에 맞서 끝까지 망가진 자들의 편에 서 계시기를. 화해 없이 용서 없이, 오래도록 그러해 주시기를.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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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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