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시인8]에리카 조 브라운(Erika Jo Brown)
- 작성일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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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미국의 현대 시인 ⑧
― 에리카 조 브라운(Erika Jo Brown)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미국의 현대 시인을 소개하며 > |
◆ [시인 소개] 에리카 조 브라운(Erika Jo Brown)
에리카 조 브라운(Erika Jo Brown)은 뉴욕 출신이다. 소책자 『어머, 종달새잖아!』는 퍼더드벤처스 프레스에서 2011년에 출판되었고, 시집 『난 너의 월귤나무야』는 브루클린아츠 프레스에서 2014년에 출판되었다. 코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연구회에서 공부할 당시, 시 부문 카포티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브라운은 현재 휴스턴 대학교에서 문학 및 문예창작 박사 과정에 있다. 휴스턴 대학교에서 예술학부 저널인 『걸프 코스트(Gulf Coast)』 연재물 편집과 큐레이터 일을 돕고 있다.
◆ 《들어가는 글》
에타 제임스의 곡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는 것뿐(All I Can Do Was Cry)>에서 2분 즈음에 ‘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그녀는 감정을 깊이 몰입하여 울부짖듯 외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 곡을 한번 듣고 나면, 이 쌀은 절대로 그냥 쌀이 될 수 없다. 이로써 우리는 예술이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행해지고 다루는 살아 있는 전통임을 기억한다. “난 매일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해요, 덜 사랑하는 게 아니라 / 이 사실이 나에겐 중요하죠.(11)” 에리카 조 브라운이 자신의 첫 시집 『난 너의 월귤나무야』에 쓴 구절이다. “키스해 주는군요. 게다가 / 우리는 범람원에서 계속 살고 있지요. 아마도 / 비저마늄이겠지만 가돌리늄일 수도 있죠, 가끔 / 날은 흐리지만 이따금씩 빛이 나요.(11)” 브라운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에타 제임스 노래 가사의 ‘쌀’처럼 익숙한 사물을 낯선 형태로 비틀어서 낭만적인 궤도로 보내버린다. “당신을 위한 선물로써 현재(55)”를 구성하려고 기획하는 동안 불교 설교를 제공하는 것이 시민회관 웅덩이 바닥에 있는 빛인지 아니면 중서부 지역에 존재하는 관계 혼란을 처리하는 것이 시민회관 웅덩이 바닥에 있는 빛인지 간에 이러한 것들은 여기, 지구 아래 살고 있는 복잡한 것들의 축전이다. “지나치게 친절한 결벽증 / 노인에게서 스카치 캔디를 받는 것에(58)”라는 시구처럼 브라운의 작업에 중심이 되는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기쁨이다. 기본적인 연습부터 끊임없는 말장난, 단어놀이, 유머에 이르기까지 브라운은 인생에서 “당신은 기쁨을 선택할 수 없어 / 밖으로 걸어 나가 기쁨이 당신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15).”라는 시구처럼 시를 통해 상기시키고 있다.
■ 시인과의 인터뷰
- 제이크 리빈(이하 JL) : 당신이 시인이 되게끔 인도한 길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당신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칭하는 것이 좀 이상한가요?)
- 에리카 조 브라운(이하 EJB) : 시가 날 찾아낸 것 같아요! 전 녀석을 피해 다녔거든요. 대학교 1학년 때 정치학, 종교학, 천연자원 수업을 들었어요.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거든요. 늘 폭넓게 책을 읽었어요. 이를테면 비소설, 소설, 시, 그래픽 노블, 희곡을 번갈아가면서 읽어요. 지금도 여전히 이런 식으로 읽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처음 시 워크숍을 가졌을 때는 완전히 자연스러우면서 대담한 것이라고 느꼈죠.
- JL: 당신이 전문적인 포이티즘의 이면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계기를 준 시 또는 시인이 있나요?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은 뉴욕 출신인데, 뉴욕에서는 그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데 시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반대도 그렇고요. 시인들은 늘 뉴욕을 영감의 근원지라고 생각하잖아요. 반대로 제가 자라 온 투산은 사막 지역인데, 그곳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라면 리처드 셸튼이나 프리다 칼로의 두 눈썹 사이로 자라난 털이거든요. 문화유산이라는 감각 때문에 친해지기가 더 쉬웠나요?
- EJB : 하, 재미있는 질문이군요. 질문은 두 개인데, 주장은 한 가지군요. 전 뉴욕을 사랑하죠.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도시예요. 이야기 구성 및 펑키 소닉스 같은 뉴욕의 유산이 내가 읽고 쓰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대학 졸업 후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92번가 와이(시 센터) 같은 장소에서 하는 행사 표를 살 돈이 없었어요(데이트하면서 딱 한 번 가봤지만). 라 마마(La Mama)에서 처음 대규모 낭송을 했는데, 그곳은 약간 지저분했지만, 이스트 빌리지에서는 좀 유명한 예술 공간이었어요.
믿기 힘들 만큼 관대하고 각양각색의 여성들로 구성된 한 단체가 첫 낭송의 큐레이터 역할을 해줬어요. 지금 그 일을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경험 덕분에 지금도 시 세계에 관해서 비교적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제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사회생활에서 서로를 돕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과 다른 소외된 목소리에겐 말이죠. 전 아이오와에 가서 몇 가지를 봤어요. 하지만 동시에 도시 네 군데에서 인기 있는 연재물 준비를 돕거나 운영했는데, 그 모임 활동에 푹 빠져 있어요. 아마도(바라건대), 그러한 정신 속에 프랭크 오하라와 뉴욕스쿨이 조금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도시를 넘어 평원에도, 흙먼지 날리는 남쪽에도, 늪지대까지도…….
- JL: 그러니까, 당신은 대학 생활과 시 모임 활동, 이 두 가지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데, 그런 일이 늘 일어나진 않잖아요. 또 당신은 시 전공으로 박사학위 과정에 있지요. 많은 사람이 시라는 학문에 관해 부담스럽게 여기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EJB : 두 가지 의견이 있어요.
첫째, 예술학위가 확산되는 것이 저에게는 좋은 일이에요. 사람들은 돈을 소비하기도 하지만 그걸 원하기도 해요. 물론 개인적으로 대출까지 받아 가면서 예술학위를 받으라고 권하진 않지만요. 요지는 더 많은 시가 쓰이고 그것이 퍼진다고 해서 다른 시가 해를 입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를테면 투산 집단도 있고 아이오와 시티 집단, 링컨 집단, 탤러해시 집단, 앤아버 집단, 시러큐스 집단 등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조 브레이나드, 테드 베리간, 론 파제트는 모두 털사(미국 오클라호마 주 동북부에 있는 도시) 사람인데 예전에는 인기를 얻으려면 정말로 뉴욕으로 건너와야 했어요. 반면, 대학원생 집단은 잘 정돈된 작은 도시에 살면서 연재물 읽기에 참여하고, 지역 서점이나 술집을 운영할 수 있어요.
둘째, 위에서 언급했듯이 보헤미안 국가에 이면이 있지요. 교수 채용, 출판물, 집단이라는 세계가 그래요. 실질적인 돈은 아주 극소수 선택받은 몇몇에게 흘러 들어가죠. 제도 자체가 온통 학연이나 지연에 엮여 있고, ‘그루밍 족(연고주의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진 말장난 구)’은 늘 그렇듯 백인 남성들을 가리키죠. 그러한 패권은 그러한 기관에서 당신의 입지에 따라, 또 개인숭배의 강력함에 따라 더 영향력 있는 사람 혹은 더 작은 규모의 집단에게는 고려해야 할 것이죠. 난 노동자 감시자인데 정치에 화가 나기도 해요. 이를테면, 몇 학교에서는 한 사람이 상을 싹 쓸어버리거든요. 하지만 다른 몇 학교에서는 위원회와 외부 비영리단체에서 수상자를 결정하죠. 현재 공부하고 있는 박사 과정에서는 후자에 맞추려고 무단히 애를 쓰는데, 그 점이 좋아요.
이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계에서는 여전히 창작은 괴짜 자리를 맡고 있는 것 같거든요. 교수진들은 인디 출판사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장소 및 새로운 매체 형식에서 일궈낸 성과물을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제겐 거대한 울타리가 있는 거지요.
- JL: 제 말은 그러니까, 전 정말 정장 입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직업정신과는 좀 떨어지는 면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우선 많은 사람을 시에 뛰어들게끔 만드는 반항심이란 놈이 약간 누그러지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평 또한 호도되죠. 당신은 깊이 있고, 부정적인 서평은 거의 읽지 않지요. 일종의 영화 <캠퍼스 대소동(PCU)> 같아요. 이 영화 봤어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그 대신 클로디아 랭킨이 쓴 『시민(Citizen)』을 좋아하지 않는다면(난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걸 꺼릴 수도 있죠. 왜냐면 음, 이때쯤 미국 내에서(그리고 시에서) 인종 갈등이 고조에 달하고 있을 테고, 사람들이 당신한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거든요. 게다가 당신은 시인 아무개가 지루한 시를 쓴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지요. 왜냐면, 그러니까, 시인 아무개는 결국 위원회 위원이나 관계자 같은 직책을 맡아서 당신에게 보복하려 들 테니까요.
- EJB :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학사학위를 받았을 때, 아빠가 절 데리고 ‘인터뷰용 옷’을 사러 옷 가게를 갔어요. 전 원래 노스트롬 백화점에 늘어놓은 재고정리 진열대만 보면 신경쇠약이 오거든요. 여름에 줄무늬 바지를 입는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알아요? 아님, 예의 차리려고 두꺼운 허벅지를 펜슬 스커트에 쑤셔 넣어야 하는 건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으로 저는 전문가와 통조림 밖으로 튀어나온 콩 사이에 식역(識閾)의 자리에 놓여 있는 거예요. 전 색깔은 다르지만 똑같은 바지 몇 벌과 목과 어깨 부분이 많이 파이지 않은 상의 몇 벌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이런 차림이 좋아요.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옷차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죠.
옷차림은 일종의 방식인데, 당신은 아마도 더 넒은 의미로 행동 방식을 묻고 있는 것 같군요. 맞아요. 우리가 기교와 독자 반응 관점으로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했던 『시민』이라는 작품에 저도 열광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전 그 책에 관해 부정적인 비평을 쓰지 않았죠. 그 이유는 첫째로, 그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서 그 책을 읽기 싫게끔 만들긴 싫었어요(내가 그렇게 할 수도 없지요). 전 『시민』이 담고 있는 정신에는 동의하고, 영향력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둘째로, 내 주관과 미적 선호도가 정치 무대로 들어가는 걸 원치 않아요.
정말이에요, 전 지배적인 패권을 인식하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배우고 있어요. 때론 당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그저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래서 내가 믿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매번 지지하고 있는 페미니즘이나 환경 보호주의, 노사관계 등이 안고 있는 ‘쟁점들’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결과에 두려움이 덜한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동받지 않은 책을 분석하는 데 시간투자를 하진 않아요. 특히 학계에서 양성평등에 관한 글을 쓰기 바쁠 때나 지역 행사를 준비할 때는요.
나도 지루한 시인에 대한 생각은 당신과 비슷해요. 시인은 쏙 빠져 있는 그냥 평범한 종이쪼가리가 돈이나 상을 받으면 화가 나지만, 차라리 기관의 결과라고,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추가로, 이 왜곡되고 마구 흔들어 놓은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낭송을 생각하기에 앞서 좀 더 매끄럽고 비판적인 산문체로 작업할 필요가 있어요. 제 의견에 대해 전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세요?
- JL: 잘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난 한국에 살고 있어요. 미국 학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잖아요. 그렇지만, 음, 전부 약간의 천박함은 있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좋은 쪽으로의 천박함이에요. 예를 들어 협회 및 발상 면에서 작가 및 글쓰기 프로그램 협회(AWP: Association of Writers & Writing Programs)는 정말로 천박해요.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모임이고 시 출간 기념을 통해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모임이죠. 그렇지만 대단히 천박하고 입신출세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죠. 하지만 난 그런 모임을 좋아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디다스 운동복이 만들어진 노동력 착취현장 같네요. 아주 부드럽고, 좋은 말로 표현하면, 연한계약이민노동자 아이들의 땀과 피로 만들어진 현장 말이에요.
당신이 이번에 발간한 새 책은 정말로 축하할 만해요. 사랑, 인생 그리고 언어에 관한 작품이죠. 기념행사는 시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데도 현대시는 기념행사를 많이 하지 않지요. 이 행사가 오래 전부터 의도한 건가요? 어떻게 축하파티를 하게 된 거죠?
- EJB : 크릴리(Robert Creeley)가 말했듯이, “어둠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당신은 무엇으로 진정 당신의 슬픔을 공유하고 있나요? 시 안에서 그리고 슬픈 자의 내면에서 슬퍼하기란, 그리고 진짜로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일이란 굉장히 쉬운 일이죠. 진짜 무지하게 쉬워요. 이 말을 깊이로 오해해선 안 돼요. 전 슬픔에 관해 시야가 좁지 않은 작가들, 그리고 슬픔에 있어서 자아도취증에 빠져 있지 않은, 아니면 슬픔에 관해 약간 반어적인 표현을 한다거나 자각할 줄 아는 작가들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또 그들의 슬픔이 유쾌하게 집중을 흩트리는 말장난으로 겹겹이 장식되어 있는 걸 좋아해요.
전 운이 좋았고, 특권을 받았어요. 실제로 이렇다 할 만한 개인적인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적은 없었거든요(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행운을 빌어야죠). 신문을 읽고, 국제 정치에 관심이 있고, 그렇지만 임시로 텍사스에 살면서 정책 입안자들의 파괴적인 망상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예민한 사람처럼, 저도 자주 화가 나요. 시 속에 정치적인 문제를 과감히 다루려고 애써 보지만, 독자가 만족할 만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내세우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정치적인 요구는 시(詩)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맞아요, 재미를 위해서, 또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죠.
- JL: 키르케고르가 격정의 맨 끝이야말로 신뢰할 만한 유일한 것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군요. 아니면, 어두운 시대에, 우리는 어두운 시대에 관해 노래할 것이다, 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어쩌면, 시를 통해 정치적인 문제들을 우화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거나 정말로 다루는 한, 당신이 말한 정치적인 요구를 어느 정도 상기시켜 준다고 생각하나요? 또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연결의 범위를 시를 통해 확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최근에 내가 엘리사 카버트 씨한테 아주 사소한 질문을 하나 했는데,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다양한데, 시인이 되는 것보다는 다른 일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직접 줄 수 있다고요. 어째서 그렇게 많은 시인이 시라는 둘레 밖에서 정치적으로 적극성을 띠는 일에 빠져버리느냐는 거죠. 하지만 시인이 되는 것이 정치적인 행위와 무관하다고는 백 퍼센트 확신하지는 않아요. 말하자면, 시에서 정치란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반동적이고 우울한 시를 종종 낳게 될 거예요.
곁다리로, 가끔은 내가 시를 읽고 있을 때면 가비지(Garbage)의 노래 <비가 올 때만 행복해요>가 생각나요.
마지막 대답에서 당신은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정치에 관한 글을 쓸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어요. 시 쓰는 것을 공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나요? 선물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요리해 주는 걸, 밥을 먹여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어요. 당신이 책을 읽어 줄 때도 그런 식으로 정말 관대하죠. 당신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즐겁게 해주거든요. 그 얘기 좀 더 해줄래요?
- EJB :당신이 “말하자면, 시에서 정치란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반동적이고 우울한 시를 종종 낳게 될 거다.”라고 말한 부분은, 아…… 전 잘 모르겠어요. 전 지금 21세기 미국의 여성 작가 시와 ‘급진주의’ 정치학과 서정시라는 주제로 이번 학기에 독립연구를 하고 있어요(따옴표는 의도적으로 표시한 거예요.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던 혹은 지지하고 있는 정치는 보통 그들이 서로에게 심하게 하지 않는 방식이었거나/방식이에요). 브룩스, 리치, 올즈, 로드, 해커, 리버토브, 루케이서, 케년, 디 프리마, 슈파르, 디아스, 글루크의 글을 읽으면서 말이죠. 당신의 감정에 대안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희망을 갖고 말이죠. 없다고 해도 계속 찾아볼게요.
아, 그래요. 전 공연, 관객, 말투, 평범한 캠프, 발표자에 관심이 있어요. 시를 듣는 청중은 너그러운 행동을 마음에 새겨요. 어색한 공간과 플라스틱 의자 사이의 간격 때문에 청중들은 시를 읽는 동안 더 심취하기도 하고 덜 빠져들기도 해요. 그것은 독자들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최소 요건이에요.
최근에 지역 도서관에서 낭독을 했는데, 늘 참석했던 출연진들은 대부분 슬램 시인들이거나 비트족 혈통의 낭독 방법을 이어받은 연장자들이에요. 한 여성분이 제 앞으로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대학생 같은데, 어쨌든 똑같은 색깔로 읽네요.”
그래서 전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무대보단 이전 페이지에 유념했는데, 그걸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맷 클래인과 자나카 스터키가 더 안정된 가수(假睡) 상태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아요. 그것만큼이나 아베 스미스와 멧 하트가 수동적으로 읽는 황홀경으로, 또 좀 더 극심한 조증상태로 빠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좋아요.
전 정말로 시가 공유하는 것, 더 정확히는 작가, 독자, 그리고 글, 이 세 가지 사이의 삼각법이라고 생각해요(사람주의(personism)를 생각해 보세요, 피에르의 외출(Lucky Pierre)을 생각해 보세요). 전 언어에 푹 빠져 있어요!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거든요. 언어는 사회적인 감정 속에서 결혼이나 암살과 같은 결과에 해당하는 것들을 수행해요.
베리멘의 「드림 송 14(Dream Song 14)」를 인용해 봅니다. “난 결론을 내려요 개인의 역량은 / 이제 없다고, 난 미치도록 지루하니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루할 필요가 없어요. 인생은 카바레이고, 친구거든요.
글 _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에리카 조 브라운의 시
#1. Captain Snugz Rides Again
Break a brandy snifter. Break any
#1. 스누즈 선장이 다시 올라탄다
브랜디 잔을 깨버려요. 깨버려요
#2. Alone In The Shower I Practice Peeing Long Distance
A modicum of tenderness is necessary
#2. 홀로 소나기 속에서 멀리까지 오줌 누는 연습을 한다
쥐꼬리만 한 애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3. French New Wave Cinema
Because I don’t care for Godard,
#3.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난 고다르를 사랑하지 않아서 |
소개 및 글 _ 제이크 레빈(Jake Levine, 시인) 제이크 레빈은 2010~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비롯해 여러 장학금 및 수상을 한 바 있다. 두 권의 소책자(『삭제의 문턱(The Threshold of Erasure, Spork 2010)』과 『빌뉴스 악령(Vilna Dybbuk, Country Music 2014)』)를 저술했다. 그의 시, 번역물, 에세이 등은 보스턴 리뷰지, 루에르니카, HTML자이언트, 아틀라스 리뷰지, 페이퍼 다츠 외 여러 잡지에 실렸다. 그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토마스 스롬바스의 작품, 『갓/씽(God/Thing, Vario Burnos 2011)』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현재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정희연과 공동으로 한영 번역 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전공 박사과정 중이며, 연세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또한 애리조나 투산 소재의 작은 출판사 스포크 프레스(Spork Press)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
《문장웹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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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05-01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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