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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대담 6회

  • 작성일 2019-05-01
  • 조회수 4,358

[익명대담]

 

 

익명 대담 6회

― 문단 권력과 부역자 4명

 

 

ㅇ 대담 기획 및 구성 : 김남숙(소설가,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지난 회차에 이어 이번 주제도 문단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에는 두 명의 시인과 두 명의 소설가가 모였다. 이번 익명 대담은 다른 회차에 비해 분량이 길다. 김남숙과 양안다는 분량을 걷어내려 했으나 전문을 싣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담이 말단으로 향하면서 이런 질문이 남았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에 도달할 때쯤 김남숙과 양안다는 막막했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 집에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고 갑자기 마음이 삐뚤어져서 머리를 빡빡 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권력이라는 추상적이고도 개인적인 형태를 어떤 식으로 이겨내야 할까, 싶었다. 스스로, 혼자서 마음껏 거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대담에 참여해주신 두 명의 시인과 소설가 분은 용감해보였다. 좋은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가열찬 대담 속 진행을 맡아준 권민경 시인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사회자 민경 : 안녕하세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 대담을 시작할 건데요, 불편했던 부분을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문단 권력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나 두 분의 시인과 두 분의 소설가가 모였는데요, 문단 권력이 생겨가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 때문인지 가장 궁금해요. 어떤 점이 있을까요?

 

손톱깎이 : 권력에 대한 얘기를 시작할 때, 아마 작가에게는 청탁시스템의 작동이 제일 큰 권력인 것 같고, 두 번째는 평론가들이 가진 권력일 것 같아요. 그게 청탁 시스템이랑도 맞물려져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출판사의 권력' 같은 것도 있지만, 제가 더 얘기하고 싶은 건 평론가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거든요. 이번에 어떤 글을 보고서 많이 화났기 때문에…….

 

햇반 : 어떤 글이었나요?

 

손톱깎이 : '우리가 ○○○를 호명했는데 그 호명이 잘못되었다'라고 자기들이 스스로 반성하는 뉘앙스의 글을 썼어요.

 

햇반 :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인공눈물 : 저도 이 글을 봤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얘를 띄워줬는데······

 

햇반 : 잘못되었대요?

 

인공눈물 : 네. "얘를 띄운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

 

햇반 : 인간성을 모르고 띄웠대요?

 

인공눈물 : 인간성이 아니라 해당 작가의 작품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 과정에서 작가의 이름이 사라지고 그 작가가 쓴 작품은 그저 이리저리 다뤄지는 물건이 된 거죠. '우리가 이 시인 조명해줬는데 이건 우리의 실수다, 재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반성해야 된다' 이런 발언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면에서 오가죠. 시가 잘못 되었으면 시인이 반성하면 되는 일이고, 소설이 잘못 되었으면 소설가가 반성하면 되는 일인데, 지가 뭔데 띄워 주고말고 반성하느니 마느니 하냐는 거죠. 물론 자신들에게 비평이라는 권력이 있고 그것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좋지만, 작가와 작품을 일종의 물건 취급하는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 아닙니까?

 

손톱깎이 : 맞습니다.

 

햇반 : 그렇다면 평론가 선에서는 우리가 문단 권력이라고 선언한 셈이잖아요.

 

인공눈물 : 그러니까요. 스스로 그 권력을 인지하는 동시에 전시하고 있는 거죠. 너희 작가들과 너희들의 명운은 나의 평가에 달려 있다는 식의.

 

손톱깎이 : 그게 너무 웃겨요. 그 자의식에서 문단 권력이 나오는 것이고, 결국에는 권력이라는 게 '내가 권력이 있다'라는 전제하에 그것을 휘두르면서 시작이 되는 거잖아요?

 

햇반 : 하지만 그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문단 권력이 어디 있냐며 코웃음을 치겠지요.

 

인공눈물 : 그리고 평론가들이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거의 독점하고 있잖아요. 소설가나 시인도 한 명씩 콩고물처럼 있긴 하지만······ (일동 웃음) 진짜 콩고물이잖아요. 그 문예지의 주축이자 의사결정의 주축은 소위 그 문예지를 대표하는 평론가들이 갖고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요. 그 사람들이 누구에게 원고 청탁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거대 비평 담론까지도 독점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 소속된 출판사나 문예지 사정에 맞는 상까지 주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권력이 거기 다 집중되어 있고요. 그리고 같은 사람들이 문예창작과나 국문과에서 교수까지 하면서 누굴 가르치는 경우도 많으니까. 불가침의 절대 권력인 게 너무 당연한 것이고······.

 

손톱깎이 :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심사에 되게 많은 참여를 하잖아요. 최근에 심사위원들이 자기 학생들을 뽑아준다는 말이 많이 나왔어요. 사실 심사 과정을 보면 여러 명에서 하나의 의견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을 밀어주는 일이 불가능까지는 아니지만 힘든 일이라는 걸 아는데, 강의를 나가며 심사도 참여하는 모양새가 오해 받기에 좋다는 거죠. 때문에 예전에 인공눈물 소설가와 얘기했던 게 '수업하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심사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라는 이야기였거든요.

 

인공눈물 : 문창과 교수님 중에서도 '나는 심사 불가다'라고 선언하신 교수님들이 계셔요. 저는 사실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아 : 그거와 엮어서 저는 좀 불만인 게, 심사 보는 사람들이 한정적이어서 뽑히는 사람들이 너무 다양하지가 않아요. 심사위원의 취향에 너무 좌지우지되고, 그 취향으로 주류를 몰아가면서 그 주류가 아닌 작품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계속 밀려나고 배척당하는 현상도 있고요.

 

손톱깎이 : 네 맞아요. 평론에서 어떤 메인스트림이 구축되고 나면 그거에 맞는 작가들을 계속 찾아가잖아요. 그러다 보면 독자는 볼 수 있는 작품이 한정되고, 같은 스타일의 작품만 몇 년 동안 보게 되죠. 그 다음에는 또 이런 스타일의 작품만 몇 년 동안 보다가······ 이게 계속 반복되니까 사실 독자의 입장으로서도 재미가 없어지는 편이에요.

 

아아 : 이게 한 템포 느려요. 실제로 현장에서 쓰는 사람보다 한 템포 느리기 때문에 현장 반응이 빠르게 적용되지도 않고 썩 즐거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채점하는 선생님 느낌.

 

손톱깎이 : 직접 발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얘네가 요즘 대세래. 한 번 읽어봐', '얘네 그런 거 쓰던데 한 번 청탁해볼까?' 이런 식으로 되는 경우들? 그런 것 때문에 너무 지난하고 재미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거 같아요.

 

아아 : 그러면서 작가를 소모하면서 자기만 올라가는 어떤······.

 

손톱깎이: 맞아요. 소모품이 되는 거지.

 

인공눈물 : 손톱깎이 소설가가 언급하신 그 문제도 같은 의미로 발생하는 거죠. 자기들도 권력의 주체라는 걸 알고 있고······ 실제로는 감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웃음) 그렇지 않아요? 그냥 공부만 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작품 보는 감 진짜 없고······. 어차피 이거 익명 아니에요? (웃음)

 

햇반 : (웃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몇몇은 잘 본다고 생각하고······.

 

손톱깎이 : 아, 전부 다 못 보면 안 되지. (일동 웃음) 몇 명은 잘 해야죠.

 

사회자 민경 : 우리 대담에는 안 나오겠지만 뛰어난 평론가도 있지 않나요?

 

인공눈물 :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죠. 잘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냥 남들이 좋다니까, 별로라니까 따라가서 옆에서 열심히 장작 피우고, 함께 패고 그런 사람들 너무 많아서······. 그런 거 보면 약간 한심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다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있지만 당신들 엄청 한심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동 웃음)

 

사회자 민경 : 제가 사회자니까 어쨌든 정리를 해보자면 (웃음) 지금까지 문단 권력에 대해 주로 나온 이야기는 평론가들과 학교에서 오는 권력인 것 같아요. 맞나요?

 

인공눈물 : 그게 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소위 말하는 A대 출신의 어떤 평론가들 같은 경우는 등단만 해도 뭐, 서로서로 다 알잖아요. 평론가 어떤 라인도 있고, 등단만 하면 지면이 쏟아지고요. 하다못해 아무런 검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사람들은 수업도 막 들어오고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요. 주요 문창과 교수들, ○○○ 평론가도 A대 나왔고, ○○○ 평론가도 A대 나왔고, 다 A대 나왔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이게 명백히 권력이고 파벌이라는 걸 알지만 모두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 받아들이고 있어요. 물론 긴 시간이 지나면 어떤 타이틀이나 정치 등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호명된 사람들은 다 자정이 되긴 하지만. 어찌됐든 간에 학교에서 만들어진 소규모 세미나, 출판사나 문예지가 조직한 비평 모임을 중심으로 아카데믹하게 연결된 사람들이 비슷한 담론을 쏟아내고는 있지요. 소규모의 비평가 모임이나 세미나에서 나왔던 아젠다들이 한 계절만 지나면 문단 전체의 담론이 되어버리는 거죠.

 

인공눈물 : 사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더 이상 학력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우리가 고등학교를 나왔든 박사를 졸업했든 우리 평가에는 진짜 1도 영향을 안 주는데. 실제로 소설가 중에서 평단과 대중, 동료 작가들에게 최고라고 평가받는 분도 대학을 나오지 않은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런데 '평론가들도 과연 그럴까?' 그런 생각도 들기는 하네요.

 

사회자 민경 : 직접적으로 학벌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햇반 : 사실상 평론가들이 컨택을 할 때 학벌에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만약 A대 출신 작가가 있다면······.

 

손톱깎이 : 하지만 없다. (웃음)

 

아아 : 있어. 있어요.

 

인공눈물 : 누구요?

 

손톱깎이 : ○○○ 시인.

 

인공눈물 : ○○○ 시인은 B대잖아요.

 

손톱깎이 : 아, 그래요? A대인 줄.

 

아아 : 학부가 A대 일걸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동문이라는 개념이 너무 세니까······ 그런 게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는 거죠.

 

인공눈물 : C대 출신 작가는 많지.

 

햇반 : 많지. 많은데 서로 패 갈라서······.

 

인공눈물 : 그런데 작가들이 학교 출신 때문에 잘 나갔나요? 소설가들 중에서는 명문대 나왔다고 더 쳐주고 그런 건 전혀 없는 거 같은데.

 

손톱깎이 : 어쨌든 작가들 중에는 학력으로 그들을 묶어주거나 호명했던 건 없는 것 같아요. 어쩌면 다행인 게 A대 출신 작가가 별로 없어서이지 않을까. (웃음)

 

인공눈물 : 그럴 수 있어요. A대 출신 중에서 잘 쓴 작가가 있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진짜 A대 출신 작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뭐, ○○○대 나온 작가들 엄청 많은데, ○○○대 나왔다고 잘 나가는 거 절대 아니잖아요. 망한 작가도 많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면······.

 

사회자 민경 : 이야기 들어보니까 정말 반대로, 작가는 누가 어디를 나왔는가에 대한 것은 정말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거의 다 모르지 않나? 고졸이든, 초졸이든. 초졸이면.. 오히려.. 멋지다는 생각도 들고.

 

손톱깎이 : 그리고 애초에 우리가 작가의 학력을 잘 몰라요.

 

아아 : 그런데 좀 챙겨주는 건 있어요. 옆에서 지켜보면.

 

햇반 : 어떻게요? 어떤 거?

 

아아 : 청탁이나 이런 것도 아무래도 챙겨주죠.

 

인공눈물 : 같은 학교 나오면 챙겨줘요?

 

아아 : 챙겨주죠. 그런 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대학원을 다니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올라가서 그쪽 라인을 타니까 그런 거죠.

 

인공눈물 : 아, 그러면 거기서 더 몰아주고 그런 거예요?

 

아아 : 완전 몰아주진 않지만, 알게 모르게 조금 더 챙겨줘요.

 

사회자 민경 : 그 부분 좀 더 얘기해줄 수 있나요? 구체적인 예로요.

 

아아 : 소설은 모르겠어요. 소설은 지면이 워낙 적으니까요. 그런데 시는 좀 친하면 편집위원 하는 분들이 더 신경써 주는 거죠.

 

햇반 : 그거는 학벌하고 상관없이 친한 사람이면 다 해주지 않아요?

 

아아 : 그런데 보통 같은 학벌이면 친하잖아요. 특이한 경우 빼고는.

 

인공눈물 : 그런가요? 소설은 아닌 거 같은데. 장르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소설은 지면이 적어서 한 계절에 많이 실려 봤자 세 명씩 실리니까요. 누구 한 명 대놓고 몰아주기가 약간 애매한······.

 

손톱깎이 : 맞아요. 너무 못 쓰면 아무리 친해도 청탁하기 뭐 하잖아요.

 

아아 : 그런 얘기는 해요. 챙겨주면서 그래도 '작품이 좋으니까······' 같은 얘기요. 형식적이지만요.

 

손톱깎이 : 어쨌든 작품이라는 게 기반이 되긴 하는 거네요.

 

인공눈물 : 밑도 끝도 없이 학벌은 아닌 거잖아요. 그렇죠?

 

아아 : 근데 사실 시인들이 너무 많은데, 학벌도 없고 연도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작품을 읽어보기가 힘들어요. 어떻게 보자면 사실 인맥도 권력인 거죠.

 

햇반 : 사람들이 무책임한 거 같아요. 그래도 편집위원들은 발표되는 신인이나 발표되는 작품은 다 읽어봐야 하지 않나요?

 

아아 : 저는 그 사람들이 다 읽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햇반 : 당연히 안 읽죠. 그런데 우리 말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책임감을 갖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분 있는 사람을 청탁할 게 아니라.

 

아아 : 인맥이라서 청탁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 있고, 연이 없더라도 작품이 좋으면 청탁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어떤 때에는 아는 사이라서 챙김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요.

 

사회자 민경 : 혹시 인맥이라서 청탁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실 때도 있으셨나요?

 

햇반 : 네, 있었어요. 아는 사람이면 청탁이 와요. '아, 그 사람이 청탁했구나' 이럴 때도 있고요.

 

인공눈물 : 저도 뜬금없이 청탁 받는 경우가 분명 있지만, '이 소설가가 누구랑 학벌로 묶여서 발표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어요.

 

햇반 : 소설은 지방지가 별로 없어서 그래요. 시는 지방지가 워낙 많잖아요.

 

인공눈물 : 맞아요. 시는 지방지가 워낙 많으니까 인천 출신이면 인천 쪽 지방지에서 청탁이 오고, 광주 출신 작가는 광주 지방지 이런 식으로······.

 

햇반 : 저도 뜬금없이 와서 '누가 청탁했나' 하고 보면 ''아, 이 선생님이 계시구나' 하는 때가 있어요.

 

아아 : 시 같은 경우에는 소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요. 메인스트림을 타면 사람들이 많이 보기 때문에 지방지도 가고, 그 와중에 챙김도 받는 거죠. 그래서 지면이 엄청 몰림 현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햇반 : 근데 소설도 마찬가지죠, 뭐. 지면이 워낙 적은데 그 지면을 유명한 사람들로······.

 

인공눈물 : 우린 애초에 시작점부터 너무 바늘구멍이라서······ 이미 두 번째 청탁 못 받는 사람이 90%가 되는 거 같아요.

 

햇반 : 시보다 더 심해요.

 

인공눈물: : 우리 1년차 때 거의 목숨 걸고 써야 하잖아요. (웃음) 그때 그 공포가 진짜.

 

손톱깎이 : 우울증 걸렸잖아. (웃음)

 

인공눈물 : 맞아. 저도 죽을 뻔했어요, 정말로. (웃음)

 

손톱깎이 :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다시 청탁 시스템이랑 관련이 되네요. 힘들게 발표를 하고나면, 남들은 청탁 많아서 좋겠다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나 자신을 갈아가면서, 토하면서 다 소모하고 발표하거든요. 그러고 나면 또 들리는 소리가 '얘는 비슷한 것만 쓴다'.

 

사회자 민경 : 헉.

 

인공눈물 : 맞아요. 매너리즘이라고.

 

손톱깎이 : 대체 어쩌라고. 발표 때문에 한 계절 동안 미친 듯이 쓰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세계를 탐구할 시간이 있겠어요.

 

인공눈물 : 애초에 칭찬해줬던 사람이 매너리즘이라고 욕하고, 또 그 뒤에는 자기들이 잘못 호명해줬다고 얘기하고. 다시 반성하자고 얘기해. (일동 웃음) 그런 말을 하는 비평가들이 제일 매너리즘이 심한 것 같은데...... 매일 똑같은 담론 서로서로 받아 적잖아요. (일동 웃음) 너무 지면 아깝고 나무야 미안해, 반성해야 하는 건 그쪽이 아닐지. 정말 황당해서 그래요. 뭐 대단히 날카로운 비평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순전히 자기들이 전개해놓은 담론에 소설가들이랑 시인들 어색하게 짜맞춰놓고서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첨언하고 싸우고 있잖아요. 귀한 지면에. 아무리 생각해도 얼토당토 않는 분석이나 감상을 들어도 그들이 권력자니까······ 하다못해 SNS에서 한 마디 하는 게 우리한테 좋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몸을 사리게 되는 거잖아요. 이런 게 권력이 아닌가 싶어요. 박근혜 정부 때 알아서 기었던 것처럼 우리가 알아서 기고 있는 거잖아요. 행여나 내게 피해가 올까봐. 우리가 익명이 아니었으면 이런 얘기 할 수도 없잖아요. (일동 웃음) 사실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이런 얘기 못할 이유도 없지만요.

 

아아 : 맞아요.

 

햇반 : 그렇죠. 우리 다 그렇지.

 

인공눈물 : 진짜로. 인간적으로도 개꼰대고, 아저씨 냄새나고, 너무 싫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권력자니까 닥치고 있어야 하고. 청탁 같은 경우, 말도 안 되는 일 많잖아요. 이를테면 ○○○ 소설가 같은 경우는 한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았는데, '잘 못 쓰면 안 실어줄 거니까 똑바로 하세요' 이런 얘기를 대놓고 듣는다던가······.

 

아아 : 어?

 

사회자 민경 : 대놓고 그런 말을 어떻게 하지? 얘기 좀 자세하게 해주세요.

 

인공눈물 : 실제로 다른 소설가가 그 지면에 청탁 받아서 원고를 냈는데 그런 아예 안 실어줬대요. 마음에 안 든다고. 거기뿐만 아니라 다른 문예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고.

 

손톱깎이 : 진짜요?

 

인공눈물 : 네. 그런 이유 때문에 소설을 싣지 못한 신인이 여럿 있었어요.

 

아아 : 진짜 심하다.

 

인공눈물 : 엄청 열심히 원고를 써서 보냈어. 책을 열었는데 내 작품이 없어. 신인이니까 벌어지는 일들이죠.

 

사회자 민경 :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아직까지 쉬쉬되고 있는지 그것도 이해가 안 되네요. 합심해서 알려야 하는데.

 

햇반 : 그런 거는 좀 퍼뜨려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인공눈물 : 그래서 한동안 젊은 작가들이 합심해서 그런 곳들 소문내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지금 망해버려서.......

 

햇반 : 진짜요?

 

인공눈물 : 어. ○○○.

 

(손톱깎이, 웃음)

 

햇반 : 아, 잘 망했다.

 

인공눈물 : 네. 잘 망했어요.

 

손톱깎이 : 어쨌든 신춘문예 출신들이 실을 수 있는 문예지인데요······. 원래는 여덟 명의 작품을 다 실어줬었는데, 딱 세 명의 작품을 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청탁받았던 사람 얘기예요. 청탁할 때 '이번에 세 작품으로 줄이면서 정말 어렵게 청탁을 한 거고, 너한테는 정말 좋은 기회다, 이렇게 힘들게 청탁 간 거니까 작품이 안 좋으면 못 실을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작품을 달라' 이런 식으로 메일이 온 거예요. 그때부터 작가는 너무 긴장 되고 미치는 거예요. '나는 이제 막 등단했는데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요즘에 작가들이랑 얘기하다보면 점점 멘탈이 갈리다가 더 이상은 못 쓰겠다고 생각하는 시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이제 끝이고 나는 사실 운으로 됐었나 봐' 이런 생각 진짜 많이 하게 되고요.

 

햇반 : 전 지금도 운으로 됐다고 생각하는데요? (웃음)

 

인공눈물 : 저도 지금까지 하는데.

 

(일동 침묵)

 

아아 : 나만 대답을 안 했네. (일동 웃음) 저도 운이겠죠. 청탁이 막 올 때 되게 유명한 잡지사에서 등단한 친구와 얘기했었는데, 유명한 잡지에서 등단했다는 타이틀 때문에 청탁이 오는 것 같다고요. 내 작품 세계보다 타이틀 때문에요. 이것도 새로운 권력에 관한 문제가 되는 거죠. 등단 지면이나 인지도 때문에 내 작품보다는 타이틀에 더 집중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꾸 표하게 되고, 거기에 자존감도 엄청 떨어지고요.

 

사회자 민경 : 얘기를 조합해 보면 등단 시스템이 결국 작가를 소모시키고, 자존감을 낮추는 게 맞나요?

 

인공눈물 : 맞아요. 우리가 작가로써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권력에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인 거잖아요. 물론 등단해도 한 작품도 발표 못하고 끝나는 사람 되게 많잖아요. 이게 일대일로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명백히 출판사의 출판 권력과 더불어서 같이 가고 있는 게 너무 많아요. 심지어는 그 출판사의 편집위원들이 그냥 일개 문예지의 편집위원이 아니라 교수도 하고, 뭐도 하고, 뭐도 하고, 이러니까 하다못해 강의 자리를 준다거나 암암리에 영향을 주는 게 너무 당연하고요. 그 사람들의 의사결정과 권력이 소위 말하는 순문학판을 둘러싸고 있는, 돈을 부를 수 있는 시장 전반에 의사결정을 다 하고 있으니까요.

 

손톱깎이 : 돈도 없지만.

 

인공눈물 : 네. 돈도 없지만요. 작은 돈이라서 그나마 다른 업계에 비해서는 그런 비리가 덜한 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게 소수의 인원한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고요. 그리고 몇몇 거대 문예지 같은 경우는 실제적으로 출판 권력까지도 그들이 장악하고 있잖아요. 편집위원이라고 불리는 비평가 집단이 어떤 작가의 책을 출간할지까지 결정하니까요. 정말이지 엄청난 권력이고······.

 

햇반 : 그렇죠. '나도 ○○○에 피해 받았다' 이런······.(웃음)

 

인공눈물 : ○○○, ○○○도 다 똑같죠. 그리고 뭐, ○○○? (일동 웃음) ○○○ 이런 데에도 잡지를 끼고 있고, 커다란 출판사를 끼고 있고, 이러면서 기본적으로 엄청난 권력일 수밖에 없고······.

 

아아 : '그쪽'에서 주장하는 건 아까 얘기했듯이 자기들은 돈도 없고 대단한 영향력도 없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 모든 권력은 상대적인 거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 자기는 권력이 없다고 얘기하면 우리는 코웃음 치게 되잖아요.

 

인공눈물 : 진짜. 황당하죠. 엄청난 권력인데.

 

아아 : 소설 쪽이랑 다르게 시 쪽을 얘기해보자면, 되게 좋은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좀 의아할 때가 있어요. 이를 테면 이런 방식이에요. 어떤 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냈는데 그게 잘 나갔어요. 그러면 반드시 거기 ○○○로 가고 그런 식으로요. 이게 좀 생각해 보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출판사는 문제가 뭐냐면 최근에는 스스로 터뜨린 대박이 없어요. 옛날에는 엄청나게 유명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고루하냐는 거죠. 그것도 이제 권력만이 남아버린 건 아닐까······.

 

햇반 : 진보적인 곳이었는데 이제는 약간 되게 보수······.

 

아아 : 이제 아방가르드 하지 않아요. 근데 이것들이 그 권력이랑 엮여 있고, 그다음에 문학 생태계를 오히려 해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쪽으로 쏠려 있어요. 메인스트림이 아닌 세계관을 가진 작가들은 엄청나게 소외당하는 거죠. 이게 엄청난 권력이고요. 이게 권력이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기 이전에 문학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사실을 누군가 짚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하잖아요.

 

인공눈물 : 맞아요. 그거 너무······.

 

햇반 : 자기 얘기를 어떻게 하겠어요.

 

인공눈물 : 자기 얘기라 못 하는 거예요. 맞아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뭐, 소설도 비슷해요. 소설은 근데 위치가 조금 다른 거죠.

 

사회자 민경 : 예를 들면 출판사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거죠.

 

인공눈물 : 네. 우선순위가 다르고······.

 

손톱깎이 : 소설 같은 경우에는 어느 출판사에서 대박 친 다음에 다른 출판사로······.

 

인공눈물 : 네. ○○○가 주워가고······. ○○○랑 ○○○가 시인들 막 내잖아요. 막 내고 나면 그 중에서 좀 되겠다 싶은 시인들을 ○○○에서 다 주워가고······. 아무래도 그래도 ○○○ 같은 경우는 돈 될······ 아무나 하다 보니까 다양성이 있을 수 있어요. 또 다른 ○○○같은 경우는 자기들이 지지할 만한, 아방가르드한 작가들이 지명 됐을 때는······ 그런데 이건 너무 특징적이다. 그렇죠?

 

손톱깎이 : 네. 누구 얘기하는지 알겠어요.

 

인공눈물 : 넘깁시다.

 

손톱깎이 : 어차피 모두가 다 알았으니까.

 

햇반 : 자기네들이 만든 권력이죠, 뭐.

 

인공눈물 : 소설은 특히 지면이 적으니까 진짜 한 명 집중되면 너무 미친 듯이 빼 먹고······주목 받는 작가도 다른 주목받지 못한 작가도 모두 불행해지는 시스템······지겹다. 다들 아시죠? (웃음)

 

아아 : 오히려 이런 경우에 돈이 개입되는 게 더 순수한 거 같아요.

 

인공눈물 : 저도 똑같이 생각해요.

 

햇반 : 맞아요.

 

아아 : 출판사에서 자기들끼리 돈으로 경쟁하는 게 맞지 않나요. 왜 우리들끼리 경쟁하게 만들면서 자기네들은 안 싸우는······.

 

사회자 민경 : 말하자면 고고한 척 하는 게 싫다?

 

인공눈물 : ○○○랑 ○○○가 고고한 척 할 때마다 너무 역겨워요. 그렇지 않나요.

 

햇반 : 네. 진짜요.

 

손톱깎이 : 지금 우리는 우리가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이 평론가였다가 이제 출판사가 되었어요.

 

아아 : 그게 같이 엮여 있죠.

 

인공눈물 : 한 명 작품 발표한다고 권력을 주는 게 아니라, 평론가가 출판 권력을 행사하니까 권력자인 거죠.

 

사회자 민경 : 아까 등단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긴 했거든요. 등단도 권력이라고 얘기했는데 등단도 권력인지에 대해서 얘기 좀 부탁드려요.

 

인공눈물 : 등단, 너무 권력이지.

 

손톱깎이 : 근데 그 권력을 작가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작가 개인이 성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가는 권력의 소모품처럼 쓰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작가가 획득한 권력은 아니며, 그 권력 사회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햇반 : (웃음) 그런 티켓을 준 거예요?

 

손톱깎이 : 네. 티켓을 준 느낌이에요.

 

인공눈물 : 티켓이라는 표현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 넷 모두가 이 권력의 수혜를 받고 여기 앉아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혜택을 받고 있는 작가들조차도 이미 구조의 일부로 소비되고 있을 따름이에요. 이 등단 시스템이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시스템을 뒤집어엎는다고 없어지는 단순한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다양성을 통해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될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는 더 다양한 창구를 만드는 거죠.

 

손톱깎이 : 저는 시스템에 있는 거는 좋아요. 등단 시스템이라는 게 있으면 어떤 종류의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뽑을 수 있잖아요. 심사위원의 취향도 존중하니까. 취존. 그러나 시스템이 이것만 있는 것은 문제인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되게 오래 생각한 게 편집자들이 더 많이 권력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작가와 직접적으로 글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이 좀 더 작가들을 주시하고, 더 발언권을 많이 얻게 되는 식으로요. 투고된 원고가 들어왔을 때 편집자들이 일일이 좀 살펴보고요. 원고를 보내면 거의 안 읽는 경우가 많더라고 하더라고요. 바쁘니까. 물론 편집자들 너무 바쁘죠. 그런데 편집자라는 직업이 정말 원고가 들어왔을 때 이걸 출간할까 말까 하는 결정권을 행할 수 있는······?

 

햇반 : 좋은 얘기이지만 한국 출판 시스템상 너무 힘든 게, 어떤 회사에서는 정말 작가랑 머리 맞대고 같이 고민하고 일하잖아요. 반면 어떤 회사에서는 편집자가 일이 너무 많으니까 자기 일 처내기에 바쁘기 때문에······.

 

손톱깎이 : 그렇죠. 그러니까 저는 편집자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의 위치와 지위를 획득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에 있는 한 편집자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런 게 되게 좋더라고요.

 

인공눈물 : 그 회사 말고도 ○○○에서도 편집자들이 다 출판에 관여하잖아요. 민음사에서 나오는 <릿터>라는 잡지는 청탁도 다 편집자들이 주고 기획회의도 편집자들끼리 하고요.

 

손톱깎이 : 그거 너무 좋다.

 

인공눈물 : 그래서 <82년생 김지영>도 사실은 민음사가 미리 조남주 작가에게 컨텍을 해서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니라 투고된 원고 중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이 출판사에서 신인들 책도 엄청 적극적으로 내고 있고요. 그런 면을 봐서는 되게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형태의 구조를 가진 잡지가 나오고, 시도해서 성공을 하고, 이런 것들이 보여주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해당 출판사의 편집자분들 중 등단한 시인이나 평론가가 포함되어 있어, 기존의 문예지 체제와 완벽히 다른 어떤 새로운 정체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편집자가 상업적인 감각으로 접근해서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자 민경 : 여기서 하나 문제되는 것은 ○○○ 씨 같은 경우는 순수한 편집자잖아요. 근데 보통 요새는 작가들이 편집을 굉장히 많이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또 다른 권력이 되지 않나······ 이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손톱깎이 : 일단 그렇게 되면 편집자 겸 작가들이 되게 힘들 거 같아요. 자기 글도 쓰면서 남의 글을 보는 게 되게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아니, 근데 봐요. 시장 전체적으로 편집자가 발굴하는 역할이 중요해지면 그 역할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부각이 될 거고, 편집자 개개인들도 그 역할을 가져가려고 노력을 많이 할 거예요. 그런 과정에서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편집자들이 더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 가자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권력을 분산하자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가 문제로 생각하고 있던 ○○○나 ○○○의 문제가 딱 그거에요. 그쪽 사람들은 다 비평가이자 편집위원들이 출판에도 엄청 관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올해는 얘랑 얘랑 얘 책 내'하는 거잖아요. 그것에 대항해 다양한 주체들이 출판에 끼어들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82년생 김지영> 성공 이후 상당 부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실제로 소설 같은 경우는 권력의 재편, 출판 루트의 다양성을 위한 여러 시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비유'라는 웹진을 통해 <하긴>이라는 작품 하나만 발표한 이미상이라는 소설가가 그 작품으로 올해 젊은 작가상을 받는 등의 일들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거창한 '신인상'이나 '신춘문예'라는 절차를 밟지 않은 신인들의 등장. 저는 이 모든 것이 함께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다들 냄새를 맡은 거죠. 더 이상은 등단제도나 신인상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돈 되는 작가들, 잘하는 작가들을 발굴할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더 갔으면 좋겠어요.

 

아아 : 최근 어떤 웹진의 작품을 봤는데, 등단과 같은 형식적인 약력이 안 써져 있어서 신선하고 좋았어요. 어떤 작품이 되게 좋아서 그 사람의 다른 작품을 보려고 약력을 보면 아무것도 안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사람은 이 시스템과 관련 없는 사람이구나'하면서 신선했던 경험도 있고요. 이런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인공눈물 : 그리고 웹진 ○○○가······ 죄송해요. 자꾸 말 끊어서. 할 말이 많은가 봐. (웃음)

 

아아 : 소설가잖아요. (웃음)

 

인공눈물 : 소설가여서 할 말이 많아요. (웃음) 웹진이라서 일반 독자들한테 접근도 좋아요. 확실히 느껴지는 게 이번에 ○○○ 소설가가 ○○○ 신인상 당선됐는데, 그 작품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해서 ○○○의 서버가 다운됐어요. 소설가들 사이에서 되게 화제였거든요. 신인이 한 작품 발표했는데.

 

햇반 : 아, 그 사람 알아요. 두 번째 작품도 재밌었어요.

 

인공눈물 : 저도 되게 좋아하는 소설가예요. 이 경우도 인터넷 웹진을 통해서만 독자들한테 그렇게 유통이 될 수 있었잖아요. 저는 이제 어쨌든 문학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보다는 종이책으로써의 문예지와 권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았고요. 종이책이 웹 시스템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상업의 논리와 맞물려 좀 더 다양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에서 보긴 했거든요. 물론 이건 상업 논리라기보다 ○○○라는 웹진이 사실은 나랏돈으로 하는 일이라서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가 늘어나다 보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아아 : 권력이라는 게 기존 시스템을 공고하게 하는 요인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이것만 부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문제가 나오지만,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그거에요. 등단시키는 사람들이 너무 고정되어 있다는 거요.

 

사회자 민경 : 심사위원들을 말하는 건가요?

 

아아 : 네, 저는 냉정하게 생각해서 심사위원들이 자기를 길들일 수 있는 신인만 뽑는 거 같아요. 자기 영향권에 있는 신인만 뽑는 거죠. 그래서 어떤 때에는 작품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게? 왜? 정말 이게 좋다고?' 그런 의문이 들어요. 밤에 잠이 안 와요. (일동 웃음) 어차피 우리도 등단 시스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가혹하지만, 신인들한테 원하는 건 새롭고 나를 자극시킬 만한, 같이 성장해나갈 수 있는 다양성을 원하거든요. 그래서 엄청 기대하고 보는데 요즘에 보면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시인 같은 경우, 좋은 작가들이 나오는 게 점점 줄어드는 거죠. 신춘문예 보면 한숨 나오고.

 

햇반 : 신춘문예야 뭐…… 포기해. (웃음)

 

인공눈물 :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웃음)

 

아아 : 저는 선배 작가들이 이런 부분에서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심사를 몇 번 했으면 다시 가지 말아야 해요.

 

인공눈물 : 맞아요.

 

아아 : 왜냐면 자기가 뭐…… 전지전능한 건 아니잖아요? 모든 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거기에 대해 창피함을 모르는 거예요.

 

손톱깎이 : 심사위원들 나이 제한도 있었으면……. (웃음)

 

햇반 : 나이 제한이 아니라 등단 연차로.

 

아아 : 옛날에 사람들이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좀 위험한 얘기인데, 등단은 있는데 왜 낙단은 없냐고.

 

손톱깎이 : 낙단.

 

햇반 : 평론가들이 낙단 시키자고 하면 '쟤 평가한다……'

 

아아 : 그러면 평론가들을 낙단 시켜야지.

 

햇반 : (웃음) 좋다. 그거 좋다.

 

아아 : 평론가들을 낙단 시키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한쪽만 평가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아요?

 

인공눈물 : 약간 명예졸업처럼 평론가들도 명예졸업 시키고…….

 

아아 : 옛날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하면 내보내줬잖아요.

 

인공눈물 : 우리가 내보내드리고 싶은 평론가 분들 많으시거든요. (웃음)

 

아아 : 글을 워낙 잘 쓰는 평론가들은 청탁이 몰려서…… 평론가들도 사실 소모되는 경향이 있어요.

 

인공눈물 : 그럼요.

 

아아 : 이건 개인의 판단이기도 할 테지만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될 거 같아요.

 

손톱깎이 : 평론가들도 너무 청탁이 밀려서 글이 미뤄지는 경우가 있겠죠?

 

인공눈물 : 많아요.

 

햇반 : 많죠. 기계처럼 쓰는 거예요.

 

아아 : 엄청 많아요.

 

인공눈물 : 신인 평론가 같은 경우에는 한 번 청탁이 몰리면 무슨 한 계절에 두세 개씩 쓰더라고요. 분량도 많고. 그러면 그 사람이 그냥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작품을 검토하고 써야 하니까 그걸 다 읽을 시간도 부족하고, 퀄리티 있는 글을 쓸 수가 없어요. 그들도 우리와 같아서 한철 쓰이고 버려지는 입장이라…… (웃음)

 

아아 : 주로 젊은 평론가들이…….

 

인공눈물 : 맞아요. 그거를 자기가 거절할 수 입장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고…….

 

아아 : 거기서 갈려나가면서 정치 잘하는 사람들만 살아남아서 끝까지 올라가는 거 같아요.

 

손톱깎이 :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자유와 투고 작품을 더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일이 급선무인 거 같아요.

 

아아 : 그러려면 지금 메이저 출판사 외에 새로운 더 다양한 출판사들이 나오고…….

 

손톱깎이 : 근데 워낙 돈이 안 되니까…….

 

아아 : 그러니까요.

 

손톱깎이 : 자선 사업이야.

 

아아 : 문학이라는 게 파이가 너무 작아져서 아웅다웅하며 생기는 문제들이 큰데…….

 

인공눈물 : 이 모든 문제는 돈이 많이 들어오면 다 해결돼요. 진짜. 일본 시장을 보더라도 온갖 장르들이 잘 되고 출판시장이 참 다양하잖아요. 그게 다 사람이 많고 돈이 되니까 이렇게 되는 건데…… 어쩌겠어요. (웃음)

 

아아 :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욕심이 너무 많아요.

 

인공눈물 : 독점하고 싶어서 그런 거죠, 뭐.

 

아아 :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결국엔 방식이 다른 사람을 밟고 가는 방식…… 사실 문학은 소외 받은 자들을 위한 장르인데, 지금 문학은 경쟁을 붙이고 이기는 자만 살아남게 하는 방식이잖아요?

 

햇반 : 근데 그건 문학만 그런 게 아니라……

 

아아 : 어디나 그렇지만.

 

햇반 : 인간 사는 데는 다 그런 거 같아요.

 

손톱깎이 : 근데 짓밟는 건 어떤 걸 짓밟는다는 거예요? 저는 누가 누굴 짓밟는다는 느낌보단 누가 누굴 사용? 이용? 한다는 느낌인 거 같아요.

 

사회자 민경 :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저도 이 부분에서는 많이 공감하게 되네요.

 

햇반 : 권력이 있다는 게…… 저는 손톱깎이가 한 말 중에 제일 공감되는 게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한테 애초에 없다는 느낌?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분명히 있어요. 근데 우리가 사용되지 않으려면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억압적이잖아요. 등단하고 나서 그 분위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우리한테 자유가 없는 거요.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가.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만 어떻게 해결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인공눈물 : 근데 그거는…… ○○○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로는 청탁을 안 받으면 된다고.

 

손톱깎이 : 아, 그건 너무…… 그는 권력자다. (일동 웃음) 권력자만이 거절할 수 있어요.

 

인공눈물 : 맞는 거 같아요. 사실은 다음이 기약된 사람만 안 받을 수 있는 거고.

 

사회자 민경 : 그렇기에 정말 신인들의 경우에는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겠네요.

 

손톱깎이 : 신인들은 기약이 없어요. 저는 정말 다음이 없을까봐 무서웠고, 그래서 더 압박 속에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그때 실어주는 건 그 문예지 밖에 없었으니까.

 

인공눈물 : 요즘은 ○○○도 실어주고, 되게 많이 실어줘요.

 

손톱깎이 : 그래요?

 

햇반 : 그때는 ○○○ 밖에 없었어요.

 

손톱깎이 :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들어요. 여기 들어와서 보면 결국 권력이라는 게 미묘하게 존재하고 우리는 거기에 뭔가 부속품 같은 느낌이에요. 근데 미등단자들이 보면 등단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인공눈물 : 권력을 갖고 있는 게 맞지. (웃음)

 

손톱깎이 : 편집자가 열심히 읽어보거나 다양한 장르가 나온다면 등단자가 가지고 있는 권력도 자연스럽게 소모될 것 같아요. 결국엔 부수기보다는 권력의 분산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아 : 새로운 권력이 나타나서 이 질서 체계를 좀 흩뜨려줘야 좋을 거 같은데요.

 

사회자 민경 : 새로운 권력이란 무엇일까요?

 

아아 : 괜찮은 출판사들이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너무 문이 좁아요. 이를테면 저는 이번에 나온 ○○○에서의 시도가 좋았어요. 앞으로 나올 시인들을 위한 티저 시집이요.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 시 쪽에서는 여기가 너무 몰려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좋은 시인들이지만, 사실 여기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은 보자마자 욕부터 하는 거죠. 너무 좋은 시집이고, 기획도 좋고, 아름다웠지만, 모든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만 나타나진 않아요. 그곳에 지금 출판할 게 얼마나 많이 몰려 있고, 또 첫 작품집을 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간절해요. 그리고 메이저 쪽에서 등단한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기 쉽고, 아닌 사람들은 힘들고요. 거기다 문제가 되는 게 어떤 때는 정말…… 시인선들 보면 정말 별로인 시집도 있고…… 어떤 시집은 현미경으로 봐도 좋은 구절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햇반 : 나는 ○○○도 시인선 보면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아 : 그쪽도 그렇고. 그런데 막 좋다고 막 써놔요.

 

햇반 :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아아 : 팔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옛날에 ○○○ 선생님 같은 경우, 시평을 보면 '첫 시집은 좋았는데 이렇게 안 좋아졌다'라고 쓰여 있어요.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손톱깎이 : 근데 그걸 시집 해설에서 했다고요?

 

아아 : 네.

 

손톱깎이 : 그건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에요?

 

아아 : 그게 왜 예의 없어요?

 

인공눈물 : 옛날에 그런 것도 있더라고요. ○○○ 소설집에도 해설에 욕 해놓고. (웃음)

 

햇반 : 저도 그걸 갖고 있는데, 바로 앞에 소설을 싣고 나서 그 다음에 ○○○ 작가론이 실려 있어요. 욕을 해놓은 거예요.

 

사회자 민경 : 그런 경우도 있었다니. (웃음)

 

아아 : 근거 없는 욕은 안 되지만, 근거 있는 비판은 찬성해요. 약간 치고받고 해야 하지 않아요?

 

손톱깎이 : 만약에 그 사람 눈에는 작품이 안 좋아도, 작가 본인 책인데. (웃음)

 

인공눈물 : 그런 게 약간 좀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게, 누구한테는 지뢰가 누구한테는 금싸라기일 수도 있잖아요.

 

햇반 : 저는 평론에 그렇게 써줄 정도면 본인한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글로 쓰는 것보다 직접 피드백을.

 

손톱깎이 : 얼마나 아까워요, 지면도. 우리 작품 소개하기도 버겁구만.

 

인공눈물 : 저는 그런 느낌도 있어요. 해설을 싣는 문화가 꼭 있어야 할까? 그런데 그것도 이제 시장의 욕구와 맞물려 있다고 하긴 하는데……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한대요. 전문가가 친절하게 해석해주는 걸 보고 싶어 한대요.

 

아아 : 아까부터 얘기하는 게, 출판사들 작품선들 해설을 보면 다 너무 좋은 작품이에요. 근데 이것들을 후배들이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읽고,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걸 그 당시에는 온전한 평가를 못해요. 저도 어렸을 때 그랬으니까. 다 좋은 작품이래요. 근데 나중에 시간 지나고 보면 어떤 작품은 되게 구려요. 이런 것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렇다고 심하게 욕을 할 건 아니지만요. 우리가 작품 활동을 하지만, 어떤 사람의 작품에 대해 논할 자리도 있잖아요. 거기서 우리가 이 부분 안 좋았다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이것도 권력의……

 

인공눈물 : 지금도 그래요? 소설은 매 계절마다 구리다고 얘기하는데.

 

손톱깎이 : 구리다고 난리여서 우리가 이러고 있잖아요. (웃음)

 

햇반 : 작품집에는 그 얘기를 쓰면 안 되죠. 문예지에서 활발하게 할 얘기니까요.

 

인공눈물 : 그럼 논의를 안 해요, 시는?

 

햇반 : 하죠.

 

아아 : 하는데…… 좀 적고.

 

햇반 : 맞아요. 소설처럼 '이 사람 구려졌다' 그렇게까진 안 해요.

 

사회자 민경 : 시에서는 왜요?

 

아아 : 위계가 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시인에 대해 써달라고 왔는데 거기서 깔 순 없는 거죠.

 

인공눈물 : 그런 게 있어요?

 

사회자 민경 : 오히려 소설 쪽보다는 시가 좀 더... 위계가 있는..

 

아아 : 이런 거예요. 어떤 문예지에서 좋은 시로 뽑혔다, 여기에 평을 써달라' 이런 걸 청탁 받으면 '내가 보기엔 별로인데 이걸 왜 좋은 시라고 해야 하지?' 하는 거죠. 저한테 시를 고를 자유가 없는 거예요. 거기서 뽑아 놓고…… 전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인공눈물 : 그럼 뽑은 사람이 써야지. 왜 남을 시켜요?

 

햇반 : 저도 그런 생각하는데…… 제가 만약에 평론으로 등단해도 구린 걸 갖고 좋다고 써야 할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못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웃음) 누가 시켜주지도 않는데.

 

손톱깎이 : (웃음) 평론가들 미안해요. 암 쏘리.

 

햇반 : 정말 고생하십니다.

 

인공눈물 : 고생하십니다. 앞선 말들은 잊어주세요. (웃음)

 

아아 : 그러니까 위계의 문제도 있어요.

 

인공눈물 : 그래서 막 원로들은 구린 거 써도 지면 주고, 좋다고 해주고, 상찬해주는데 제가 봐도 거지 같은 거 진짜 많거든요. 그러니까 늙으면 그만 해야 돼요. (웃음) 미안하지만 사라져주세요. 저도 그때가 되면 사라지겠습니다.

 

햇반 : 아니, 근데 작가들은 이미 비평을 받을 준비가 절대 안 되어 있어요. 얼마 전에도 ○○○ 작가가 SNS에 대노했거든요.

 

인공눈물 : 자주 해요, 그 사람. 심지어 기자가 기사 썼다고 한 마디 한 마디 다 욕하고…….

 

손톱깎이 : 그 사람은 글을 쓸수록 멘탈이 안 좋아진다고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자기는 정말 글을 쓸 때랑 안 쓸 때랑 극명한 차이가 있는데, 쓸수록 안 좋다는 거예요. 진짜 갈리는 것 같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글 뿐은 아니잖아요. (웃음)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햇반 : 너무 슬픈 게 옛날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인공눈물 : 요즘은......

 

햇반 : 지금은 까임을 좀 당해도 되거든요. 못 견디겠나 봐요.

 

인공눈물 : 모든 작가들과 평론가의 문제는 자기가 아직도 20대인 줄 안다는 게 문제에요. 자기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지면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자기들도 늙었다는 걸 인정을 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감이 아직도 현역의 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평론가들도 자기가 좋다고 뽑는 작품이 자기가 정말 좋아해서 뽑는 거잖아요. 작가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자기들이 구려진 걸 모르니까 옆에서 누가 알아서 걸러줘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얼마 이상이면 심사를 안 시킨다든지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심사 방식이 진짜 안 좋은 게 10년 이상만 무조건 심사위원을 한다든지 그런 게 있고…….

 

햇반 : 짬에서…… 콩고물이라는 말이 맞아요.

 

인공눈물 : 그거 진짜 맞아요. 이를테면 30대 작가가 콩고물처럼 심사위원에 들어갔어요. 그러면 자기 취향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대요. 왜냐면 문단의 주류가 된 사람이 심사위원 대부분이고, 손 들어서 투표해달라고 한대요. 그분은 30대 한 명이고, 나머지 분들은 386을 지나온 그 세대 감성이 또 있잖아요.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감성을 권력으로, 쪽수로 밀어붙이면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래서 좀 심사위원 만큼은 낙단이 필요한 게 아닌가…….

 

손톱깎이 : 그들이 뽑았다는 것에 굉장히 좌절감이……. (웃음)

 

인공눈물 : 저희 작품도 구리죠. (웃음). 그리고 솔직히 무슨 생각이냐면 소설 같은 경우, 어떤 장편소설 심사에 매번 들어오는 어떤 심사위원 분이 있는데, 그분이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뽑힌 작품은 절대 읽지 않아요. 너무 구려서.

 

햇반 : K?

 

인공눈물 : 네. K 씨인데, 그분이 뽑은 작품은 한 번도 좋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느낀 거는 '이 사람은 소설가지 절대 좋은 독자일 수 없겠다.' 소설을 잘 쓴다고 좋은 심사를 한다는 전제가 말이 안 되는 거고, 비평을 잘 쓴다고 그러는 것도 논리적 연관성이 떨어지고……. 근데 문제는 '그럼 과연 누가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웃음) 저는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K 씨도 그래요.

 

손톱깎이 : 나는 B씨. 그분이 엄청 자기 의견 관철해서 뽑는다던데……. 돈도 많이 주는 일인데 계속 자기 스타일만 주장해서 이상한 거 뽑아놓고 아무도 읽지도 않고…….

 

인공눈물 : 그래서 장편 공모가 다 문 닫았잖아요. 근데 제가 진짜 어이없는 게, 이를테면 지금 출판 되어서 잘 된 작품이 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이 다른 당선작 없는 공모전에 응모됐던 작품이에요. 해당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도저히 뽑을 게 없었다고 말하며, '요즘 한국 장편 기근이라는데 맞다'라고 까지 적어 놨어요. 그런데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 했더니 완전 대박이고, 작품 엄청 잘 썼고 그런 경우가 분명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자신의 태만함을 응모작의 수준으로 몰고 가면서……. 실은 똑같은 사람들이 매번 비슷한 거 뽑는 거면서. 엄청 재미없는 작품에 5천만 원, 1억 주면서 거창한 미사여구 붙여서 내놓은 후에, 막상 1쇄도 안 나가니까 '한국문학은 망했다' 이런 소리 하는 게 어이가 없는 거죠.

 

사회자 민경 : 그럼 이건 결국 누가 심사를 봐야 돼요?

 

인공눈물 : 그럼 우리가 아까 얘기한대로 편집자가 껴 있다든지.

 

손톱깎이 : 편집자와 작가와…….

 

인공눈물 : 더 젊은 작가와…… 진짜 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를테면 책 한 권밖에 안 낸 작가라든지, 아니면 해당 장편상의 전년도 기수상자라든지 해서 여러 쿼터를 주는 거죠.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도록요. 이를테면 30년차 작가 한 명 꼈으면 20년차 한 명, 편집자, 독자 대표 이런 식으로.

 

햇반 : 그런데 30년차는 넣지 말자. (웃음)

 

인공눈물 : 30년차? 30년차는 문단으로 치면 거의 시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니까. (일동 웃음) 사람이 생물학적으론 살아있지만……

 

햇반 : (웃음)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의견을 밀어버린다 말이야. 그게 보기 싫어요.

 

손톱깎이 : 그런데 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괜찮겠죠. 30년차에 대응하는 사람 세 명을 넣는 식으로.

 

아아 : 다른 사람 많이 뽑아도 30년차 한 명만 있으면 안 돼요. (웃음)

 

햇반 : 맞아요.

 

인공눈물 : 옛날에 들었어요. 어떤 작은 대회인데, 작은 대회라 심사위원이 세 명이었어요. 두 명의 젊은 작가가 의견을 모아 당선작을 뽑았는데, 나머지 한 분이 문단의 킹왕짱 작가였던 거예요. ○○○ 소설가요.

 

햇반 : 아, 그분. (웃음)

 

인공눈물 : 근데 그분이 '이거 뽑을 거면 내 이름 빼'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고 가방 들고 갔대. 그런데 결국 그거 뽑았대요. (일동 웃음) 이름은 뺐는지 모르겠네요.

 

아아 : 그런 식으로 사소한 반항과 사건들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사회자 민경 : 공감합니다. 사소한 반항과 사건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사소한 일들을 부풀리고 키우는 게 또 권력자들의 몫이니까.. 그런 사건 좀 만들어주세요. 대신 (웃음)

 

햇반 : 우리가 너무 착한가?

 

손톱깎이 : 우리가 너무 설설 기었어요.

 

햇반 : 설설 기었어요?

 

손톱깎이 : 우리가 괜히 설설 기었어.

 

햇반 : 설설 안 기게 생겼냐고.

 

아아 : 설설 기어야만 돼요.

 

인공눈물 : 안 기면 안 돼요. 책 못 내.

 

아아 : 그런 수도 있지. 이렇게 설설 안 기고 다른 루트로 등단하려는 사람도 있죠.

 

햇반 : 꽤 많아졌죠.

 

아아 : 많아졌는데, 열에 아홉은 좀 안 좋고…….

 

인공눈물 : 우리가 왜 등단했냐고. 이게 제일 편하니까.

 

손톱깎이 : 맞아요. (웃음)

 

아아 :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다른 루트로 올라온 작품을 보려고 해도 정말 백 중에 하나만 좋은……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인공눈물 : 아, 그리고 어느 평론가가 얘기했는데, 투고하는 거 좋고, 다 좋은데 그럴수록 부정한 일이 훨씬 많이 일어난대요. 생각해봐요. 이런 신인상이 평준화된 작품을 뽑는다고 해도 심사위원이 기본적으로 세네 명씩 들어가니까 누구 한 명이 대놓고 밀어주려고 해도 어려워지잖아요. 그런데 지면 같은 경우는 편집위원 하나가 대놓고 밀어주기가 훨씬 더 쉽대요. 그래서 그게 비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더라고요. 일리 있는 말인 것 같아요.

 

햇반 : 일단 첫 번째로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심사를 하며 안 되며, 그리고 등단한 지 30년 넘은 분들은 들어가면 안 되며…… 이건 약간 차별인 거 같긴 하지만.

 

인공눈물 : 30년 넘었는데 감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아, 손톱깎이 : 있을 수 있어요.

 

햇반 : 있긴 있어요.

 

인공눈물 : 저는 못 봤어요. (웃음)

 

햇반 : 그러니까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읽을 줄 모르는 게…….

 

인공눈물 :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진짜 읽는 취향은 너무 구려지지.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 아직도 까뮈 얘기하고, 까뮈 죽은 지가 언제인데. (일동 웃음)

 

햇반 : 그럼 소설가 중에서는 젊은 사람 소설 재밌게 읽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인공눈물 :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다는 원로 소설가 되게 많아요. 되게 많은데,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심사위원 들어가서 젊은 작품, 재기발랄한 거, 절대 안 뽑아요. 절대로.

 

햇반 : ○○○ 선생님은 자기가 들어가서 무조건 어린 사람 말 듣는다던데.

 

인공눈물 : 누구?

 

햇반 : 시인. ○○○. 무조건 제일 어린 사람들이 뽑는 거 우리가 따라가야 한다고.

 

인공눈물 : 소설가 ○○○ 선생님도 그 얘기하시긴 하시던데. 근데 ○○○ 선생님 들어간 심사위원은 그렇지 않아하는 거 같던데. ○○○ 선생님이 제일 어린 거 아냐? (일동 웃음)

 

손톱깎이 : "다들 내 말 들어."

 

인공눈물 : "내가 제일 어리니까. 나 58이야." (웃음)

 

햇반 : 재밌긴 하겠다.

 

인공눈물 : 그 분들 취향을 욕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자기 취향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열 군데씩 돌아다니면서 심사하니까 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가 ○○○ 씨가 심사 쿼터제 하자고 얘기했어요. ○○○ 소설가가 고집하는 게, 자긴 심사 너무 하기 싫은데 이 업계에 자기 취향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서, 1년에 한 번은 무조건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고…….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당 1년에 한 번 정도 심사 들어가는 거는 상관없죠. 그런데 무슨 신인상이나 장편상 신춘문예 보면 안 겹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에요. 다들 수건돌리기 하는 것처럼. 문제야. 그런데 또 출판사나 문학 기자 분들은 그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심사위원을 할 사람이 없대. 다들 안 하려고 한대. 부담스럽다고.

 

햇반 : 욕 먹고.

 

손톱깎이 : 심사위원도 힘든 일이구나.

 

인공눈물 : 힘들죠. 힘든 일인데. 그래서 염치없는 사람이 계속 하는 거예요. (일동 웃음)

 

아아 : 정확해요.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본인이 안 들어가려고 해요. 피하고, 거절하고.

 

인공눈물 : 심지어 ○○○ 선생님 심사위원 한 번 들어갔다가 표절 시비를 겪으신 그 뒤 절대 안 들어가신 다잖아요. 작가 입장에서 되게 리스크가 크고 힘든 일인 걸 알지만, 아까 ○○○ 소설가가 말한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누구든 한 번은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취향을 반영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손톱깎이 : 한 작품만 뽑는 것에 대해선 어때요? 너무 그렇지 않아요?

 

인공눈물 : 아, 여러 작품을 뽑자고?

 

손톱깎이 : 여러 작품까진 아니어도, 만약에 심사위원들끼리 취향적으로 달라요. 근데 최종에 올라온 작품들이 완성도가 아니라 아예 세계가 달라요. 그래도 그중에 하나만 뽑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아 : 돈 문제지.

 

인공눈물 : 그런데 두 명 뽑는 경우도 있잖아요.

 

햇반 : 있긴 있죠. 그런데 반띵하잖아요.

 

손톱깎이 : 있긴 있는데, 그게 너무 몰려서 더 다양성을 해치는 느낌도 들어요. 차라리 백일장 같은 경우는 대상이랑 가작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이 작품도 좋았는데 저 작품도 좋았다' 이런 식으로 해서 더 다양한 방법으로 하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했고.

 

햇반 : 친구가 한 얘기가 어차피 문단에서 등단해봤자 살아남기가 힘드니까, 차라리 많이 뽑아주라고. 많이 뽑은 다음에 살아남게 만들라고.

 

사회자 민경 : 진짜 그것도 확률적으로는 좋은 방법이네요.

 

인공눈물 : 그런데 어떤 느낌이냐면 이렇게 신인상, 신춘문예 한 명씩만 뽑아도 일 년에 한 명밖에 안 살아남는데…… 두세 명 더 뽑는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아아 : 더 웃긴 거 있어요. 어떤 잡지 보니까 매달 신인을 뽑아요. 열 명씩 뽑아요. 어떤 사람 경력을 보면 시로 등단, 소설로 등단, 수필로 등단, 평론 등단. 근데 매달 등단해요. 많이 뽑는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웃기잖아요.

 

손톱깎이 : 많이 뽑는 건 아니더라도 너무 치열하게 경쟁했다면…… 뽑아놓은 다음에 그 작품을 소개할 자리가 생기는 거잖아요.

 

인공눈물 : 그냥 그럴 거면 그냥 상이 없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아 : 등단제도도 일반 투고제로 바뀌고 그러면…… 옛날에 그 추천제식으로…….

 

햇반 : 그런데 추천제 이상하지 않아요?

 

아아 : 추천제 이상하죠. 등단제도도 이상하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완벽한 대안은 없는 것 같아요.

 

사회자 민경 : 우리가 지금 한 시간 정도 이야기했어요.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 같고, 분산해야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는데, 분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예를 들어 권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젊은 작가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아 : 저도 그걸 좀 생각해봤는데, 이를테면 되도록 나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을 안 내는 방식으로, 희생을 하더라도……

 

햇반 :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아 : 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일례로 몇 년 전에 문단 미투 사건에 관련해서 여러 말이 있었잖아요. 어떤 사람은 이미 그 출판사에서 출판을 했어요. '문단 권력 나쁘다'고 말하면서. 자기는 엄청 정의로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멀리서 보니까 자기는 밥 다 해먹고 솥을 발로 차는 걸로 보이는 거죠. 본인은 아니라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고, 지금껏 반성하지 않았으니 그 구조를 따라가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자성은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사건이 일어나니까 '난 정의롭다' 이러는 거죠. 어떤 구조를 바꾸려고 할 때 희생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희생 없이) 어떻게 바꿔요. (다른 대담자들을 향해) 제가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일동 웃음)

 

인공눈물 :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햇반 : (웃음) 비난당했어요. 저도.

 

손톱깎이 : 저도. (웃음) 대체할 만한 지면은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아아 : 그런데 생각해봐요. ○○○와 ○○○에서 내면 거기가 1등 되고 또 그러는 거잖아요.

 

아아 : 그래서 좀 섞어줘야 한다는 거죠.

 

햇반 : 저는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에서도 안 좋은 일을 봤기 때문에…….

 

인공눈물 : 그러니까요. 더 심하지 않나?

 

아아 :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열어두고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 채널을 열어두고 그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너무 특정 출판사에 몰려 있기 때문에 권력이 생기기도 하고…….

 

손톱깎이 : 그전에 소설은 출판사가 없어요.

 

인공눈물 : 우리가 눈치를 보고, 우리가 잘 먹고 잘 살려고 권력에 기는 건 맞아요. 당연히 맞지. 맞는데, 그게 제2의 출판사를 찾아서 가는 게 도움이 될까 싶을 때가 있어요.

 

아아 : 이를테면 지금 우리가 하지 않는 방식 중 하나는, 물론 힘들겠지만 우리끼리 출판사를 차리는 것도…….

 

손톱깎이 : 결국엔 자본…… 돈 있으면 저도 하고 싶어요.

 

아아 : 물론 출판사가 돈이 좀 들지만…… 초반에 같이…….

 

사회자 민경 : 출판사 하고 싶어요?

 

아아 : 안 하고 싶어요. (일동 웃음) 이를테면 누가 총대를 메면…….

 

인공눈물 : 솔직히 말하면 지금 출판사 다 그렇게 시작했잖아요.

 

햇반 : 맞아요. ○○○도 처음에 그랬죠.

 

인공눈물 : 권력을 잡은 것도 그렇고, 지금 방식이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지 않는 방식이라는 거죠. 오히려 너무 공고하게 하니까. 누군가 총대는 매야 하고.

 

손톱깎이 : 아니 근데, 그렇게 해서 ○○○가 새로 들어간 거고 거긴 또 다른……

 

햇반 : 권력이 됐죠.

 

아아 : 더 많이 생겨야죠. ○○○가 생겨나서 생태계가 정의로워진 건 아니죠. 그런 지면이 더 많이 늘어나서 분산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인공눈물 : 그런 걸 점점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있는 곳도 문 닫고 있는데……. (일동 웃음) 그게 걱정이야. 돈이 그렇게 많아도 문 닫는데 두 달 하고 문 닫겠어요.

 

햇반 : 시가 좀 더 여유 있어요. 왜냐면 ○○○ 출판사도 생겼고 여기저기 생겼으니까.

 

아아 : 소설 쪽은 그런 부분이 힘들어도, 시 쪽은 노력을 더 했으면 좋겠어요.

 

손톱깎이 : 저는 지금 꽤 오래 청탁이 없거든요. 지면이 항상 풀 상태인 걸 아니까 1년, 2년, 이렇게 청탁이 없어도 이게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해요. 너무 몰려 받는 경우가 이상했던 거고. 이제 등단하고 나서 5년 정도 지나면 이 상태가 그냥 디폴트 상태인 건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경제적인 거나 그런 것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게, 그런데도 제가 설설 긴다는 것도 짜증나기도 하고.

 

햇반 : 그렇죠. 받는 것도 없는데.

 

손톱깎이 : 네. 받는 것도 없는데 이제 짜증날 일 밖에 없는 거예요. (웃음)

 

사회자 민경 : 예를 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인공눈물 :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 작가들이 각성해야 하나? (웃음)

 

아아 : 작가들이 다 각성하라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가 총체적으로 있으니까 다른 부분도 생각해보자는 거죠.

 

햇반 : 그러니까 저희가 뭘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요.

 

인공눈물 : 전 모르겠어요.

 

아아 : 사실 평론가들도 잘못했지만, 그들에게 이입하면 그분들도 힘든 부분이 분명 있을 테고…….

 

인공눈물 : 우리 모두가 다 기여하고 있는 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우리 잘 되려고 가만히 있는 것도 맞는 말이고, 나 잘 되려고 청탁 다 수락한 것도 맞는 말이고, 이 상에 응모한 것도 나고, 결국 계약한 것도 나잖아요. (일동 웃음) 그러니까 할 말이 없는 건 맞아요.

 

햇반 : 저는 평론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 제가 이걸 깨는 게 아니라 제가 들어가서 이 사람들 내가 글 써줘야지, 이랬으니까.

 

아아 : 우리는 어떻게 하든 후배를 위한 길을 좀 열어주는 방법을 찾아야……

 

인공눈물 : 저도 계약서 쓸 때 이상한 조항에 문제제기 하고 수정요청 했더니 바로 계약 철회 하던데요? 건방지다고.

 

사회자 민경 : 진짜 미쳤네..

 

인공눈물 : 출판사들 신인이랑 계약서 쓸 때는 작가한테 엄청 불리하게 쓰더만. 작가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뭔가 청렴하고……

 

햇반 : 똑똑할 것 같고.

 

인공눈물 : 아니에요. 절대 아냐. 작가들이 돈에 무관하고, 속되지 않은 사람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까 출판사들이 완전 작가를 호구로 보는 거예요.

 

손톱깎이 : 아, 출판사들이 보는 작가들?

 

인공눈물 : 출판사뿐만 아니라, 행사 주체나 뭐 다들 비슷한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계약서 보니까 진짜 각 출판사 마다 똑같이 하는 말이 '30년차 ○○○ 소설가부터 누구까지 다 똑같이 쓴다'고 얘기해요. 보니까 진짜 거지 같이 만들어놨어요. 작가들한테 여기저기 다 뽑아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고, E-book시장 작은 건 알지만 제대로 매출조차 알 수 없게 해놨고, 책 반품되는 것도 작가들이 신경 써야 하고…….

 

사회자 민경 : 그런 데가 있었어요?

 

인공눈물 : 그런 출판사가 있어요. 그것도 굉장히 큰 출판사에서. 이런 일이 되게 빈번하거든요. 작가 개개인들도 계약서를 쓸 때 그냥 쓰지 말고 확인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여기는 큰 데니까, 어쩌니까……' 그러지 말고 자기가 한 명의 자신에 대한 비즈니스맨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약할 때도 신경 많이 쓰고요. 그리고 그것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저는 이게 우리 업계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길이자, 또 저 다음에 계약할 후배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거든요. 선배인 우리들이 지랄하고 나대야지만 이 업계의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고요.

 

손톱깎이 : 저 그거 너무 싫어요. '○○○ 소설가부터 누구까지 다 똑같다'라고 하는데, 방송 작가들은 급에 따라 다 다르게 받잖아요. 저는 이 길에서 살려면 결국 작가가 돈을 벌어야지 후배가 들어오고, 더 다양한 것들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좀 더 잘나가는 사람들이 인세 더 받고, 다 똑같이 10% 받는 게 아니라요. 그런 식으로 좀 더 돈 밝혀도 된다고 생각해요.

 

인공눈물 :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 안 주려고 그러겠죠?

 

아아 : 사실 저는 아직 계약은 안 했지만, 시로 돈 벌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걸 아예 신경을 안 쓰는데.

 

인공눈물 : 그래도. 그래도 어쩌다 잘 된 사람이 나오잖아요. (웃음)

 

햇반 : 그리고 은근 돈 돼요. 될 때가 있어요.

 

인공눈물 : 그리고 시인이 꼭 시로만 돈 버나? 에세이도 쓰고, 뭐도 하고, 다 하잖아요.

 

아아 : 그럴 때는 신경 써야지. 맞는 말인데, 그래서 사실 포기하는 부분도 시 쪽에는 있을 건데…….

 

인공눈물 : 진짜 말이 안 되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시집 30권으로 인세를 대신할게' 이런 거요. (웃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진짜 많거든요. 좀 크다 하는 데도 그런 거 진짜 많단 말이에요. 그런 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목소리 내고, 자기가 아무리 신인이어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아 : 맞아요. 계약을 한다는 게 동등한 입장이잖아요.

 

인공눈물: : 맞아요. 우리는 계약서에 이름만 갑이야. 완전 슈퍼 을인데.

 

손톱깎이 : 슈퍼 을, 너무 슬퍼. (웃음)

 

사회자 민경 : 이번 대담 너무 슬프다.

 

사회자 민경 : 이번 대담 너무 슬프다.

 

햇반 : 결국 돈이 있어야 된다는 뜻인가?

 

인공눈물 : 그 ○○○가 계약서가 제일 좋아요. 그렇게까지 보장을 해주는 회사가 없어요.

 

햇반 : 여러 가지로 좋았어요.

 

아아 :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게 그런 거예요. 가난한 데선 힘들지. (일동 웃음)

 

햇반 : 자본하고 문학을 구분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해결을 찾아야죠.

 

아아: : 좋은 선배님들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자기가 물러나요.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겠다고, 자기가 돈을 덜 받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 돈이 후배들한테 가지 않아요. 그게 저는 너무 싫어요.

 

인공눈물 : 맞아요. 그게 정말 안 좋은 일인 거 같고요. 선배들이 더 지랄해서 더 많이 쟁취하고 후배들한테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나 사실 이렇게 돈 많이 번다, 너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나처럼 돈 많이 벌려고 해야 돼'라고 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아 : ○○○ 선생님이 소설 판권 팔 때 돈을 엄청나게 세게 불렀대요. 액수는 기억 안 나요. 결국에 통과됐는데 사람들이 약간 수군댔대요.

 

손톱깎이 : 돈만 밝힌다고?

 

아아 : 네. 돈만 밝힌다고. 그런데 자기는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이 정도까지 올려놔야 후배들이 더 많이 받을 수 있겠다고. 그런 현명한 분들이 더 있어야 하는데…….

 

인공눈물 : 진짜. 그러면…… ○○○ 소설가? (웃음)

 

손톱깎이 : 근데 얼마 전에 그런 얘기 올라왔어요. SNS에 캡처된 거 같은데.

 

인공눈물 : ○○○요?

 

손톱깎이 : 네. 우리가 한 얘기들이었어요. 인세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고, 더 잘 나가거나 하는 작가는 돈 많이 줘야 한다, 이런 얘기를 썼던 거 같아요. 이게 ○○○인지 누군지 모르겠는데 누가 썼어요.

 

인공눈물 :그냥 문학이 더 이상 무슨 순수한 성역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왔고, 문학은 시작부터 애초에 상업이었거든요. 이건 읽히고 팔려고 했던 거잖아요. 중세에 시작할 때부터.

 

손톱깎이 : 옛날로 따지면 넷플릭스 같은 거야.

 

인공눈물 : 진짜로. 중세엔 이게 넷플릭스에요. 너 그거 봤니, 하면서 아침에 얘기하는 그런 건데, 우리 본질로도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돈과 결부되지 않았다는 얘기 그만하고…….

 

손톱깎이 : 우리 돈 좋아해. (웃음) "돈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사회자 민경 : 어쨌든 제일 못 버는 직업이네요.

 

인공눈물 :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작가인데 뭘 그렇게 돈 얘기를 대놓고 하냐고 깬다고 저한테 그랬다니까요.

 

손톱깎이 : 지가 돈 없어봤어? 얼마나 없어봤는데?

 

햇반 : 돈 없는데. 어렸을 때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제가. (웃음)

 

인공눈물 : 근데 진짜 저 대출받고 카드 채권추심 전화 받고, 그러면서 진짜 돈 없으면 예술이고 뭣이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렸고…….

 

손톱깎이 : 하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길이었기 때문에…….

 

햇반 : 재료비가 안 들죠. (웃음)

 

아아 : 저는 그 생각을 해요. 글 쓰는 데 드는 돈. 아침에 카페에 가. (일동 웃음) 요즘 오천 원 넘어요. 그리고 밥 한 끼 먹어. 그리고 그 하루만 쓰나? 한 3일에서 일주일 쓰지. 그러면 어지간한 문예지 한 편 원고료 넘어요.

 

손톱깎이 : 그리고 또 책 사서 읽어야지, 넷플릭스 봐야지. 그러고 보니 돈 되게 많이 든다. (웃음)

 

아아 : 그리고 생활 안 하나? 휴지도 사야하고…… 최소한 인간답게 살 정도의 돈은 줘야 하는데 (웃음) 그리고 원고료에서 원천징수를 하는데 올해부터 원고료에서 원천징수 비율이 올랐어요. 저는 그것도 정말 어이없어요.

 

인공눈물 : 진짜 떼먹을 걸 떼라.

 

햇반 : 벼룩의 간을 떼먹지.

 

인공눈물 : ○○○ 뭐하고 있냐. (일동 웃음)

 

아아 : 돈이야말로 권력과 가장 큰 밀접한 연관이 있고 우리가 목매게 되는…… 아주 가난하게 먹을 걸 조여 놓고, 그러니까 우리가 다 기게 되는 거지.

 

인공눈물 : 진짜 열 받네. 생각해보니까.

 

햇반 : 세금 진짜 열 받았어.

 

인공눈물 : 생각해볼수록 열 받네.

 

사회자 민경 : 갑자기 세금 얘기까지 (웃음) 세금 얘기마저 하고 마무리 하는 걸로 해요.

 

손톱깎이 : 진짜 프리랜서도 급을 나누어 가지고 세금을 떼야지. 다 같은 프리랜서라고 다 같이 버는 것도 아닌데 왜 똑같이 떼고 지랄이야.

 

인공눈물 : 급을 나눠서 떼긴 해요.

 

손톱깎이 : 어?

 

인공눈물 : 세금은 급을 나눠서 떼요. 몇 천 만 원 이상이면 올라가요. 훨씬 더 올라가.

 

손톱깎이 : 그게 아니라 이렇게 50벌고 이러면 이 정도는 조금 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인공눈물 : 우리 엄청 조금 떼잖아요. 3.3%밖에 안 떼요.

 

손톱깎이 : 3.3%에서 이제 오른 거 아니에요?

 

아아 : 아, 올랐어요. 3.3%에서 올랐어요.

 

인공눈물 : 지금 몇인데요?

 

아아 : 그게 지금 6.6%인가 그래요. 올해부터.

 

손톱깎이 : 올랐어요. 올해부터 올랐어.

 

사회자 민경 :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 대담 참여자 소개

 

◆ 대담 기획, 구성 / 김남숙 (소설가)

2015년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 대담 기획, 원고 전사 및 정리 / 양안다 (시인)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 사회 / 권민경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 참여 /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왔습니다. 글을 쓸 때나 쓰지 않을 때나 밤이나 낮이나 마셔서 그렇습니다. 자기 전에도 마시곤 합니다. 편하게 그냥 아아 라고 불러주세요.

 

◆ 참여 / 햇반

이제 밥해 먹기도 귀찮아 햇반 사 먹는다. 빵이 없으면 햇반을 먹으면 되지!
마리 앙투아네트는 악녀가 아니라, 정치적 희생자였다란 평가를 종종 본다. 착한 권력자도 나쁜 무력자도 있는 거지. 뭐.
난 햇반이나 먹고 글 쓰고 고통이나 받고 그러겠지.

 

◆ 참여 / 손톱깎이

소설가가 제 손톱 못 깎는다.

 

◆ 참여 / 인공눈물

중견과 신인 사이 어디쯤, 눈물을 머금고 사는 가난한 소설가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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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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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abc999

    젊은 비평가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ㅎ

    • 2019-05-10 23:42:28
    abc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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