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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일 1회.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

  • 작성일 2019-08-05
  • 조회수 3,869

[기획대담]

 

 

비평가의 일

1회.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

 

 

 

 

    노태훈 : 안녕하세요. 현재 《문장 웹진》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노태훈이라고 합니다. 저희 《문장 웹진》에서 어떤 재미있는 기획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최근에 비평에 관한 담론들, 즉 비평가,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비평이란 게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들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아서 그것과 관련된 기획을 좌담 형태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습니다. 이 〈지금, 여기, 문학〉이라는 기획 좌담 코너는 지금 우리가 한국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주제를 선정하여 그와 관련된 여러 패널을 모시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최근에 장은정 평론가께서 문예지의 변화, 비평의 역할 등에 관해 주목할 만한 글을 연속적으로 쓰셔서 이 좌담의 사회자로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안을 받으신 장은정 선생님께서 역으로 저희에게 아이디어를 많이 주셔서 앞으로 3~4회 정도 비평 관련 좌담을 연속적으로 개최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구경을 온 것이고요. (웃음) 이제 장은정 선생님께 진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1. 2019년 6월 14일,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만남

 

장은정 :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평론을 쓰고 있고, 문학 웹진 《비유》의 기획자이기도 한 장은정이라고 합니다. 우선 세 분의 소개부터 들은 후에, 제가 세 분을 모셔 함께 대화하고자 한 맥락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안소현 선생님부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소현 : 저는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쓰고 있고 현재는 소위 '대안공간'이라고 불리는 아트 스페이스 풀의 디렉터를 맡고 있고 동시에 《포럼A》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체성을 물어보셨는데 제가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라 그냥 미술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을 잡다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향성이 굳이 있다면 사회와 연계된 미술과 미술 제도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홍태림 : 안녕하세요. 홍태림이라고 합니다. 《크리틱-칼》이 미술비평 웹진으로 알려져서 이 자리에 제가 참여하게 된 건데요. 사실 《크리틱-칼》은 미술만을 다루는 곳이 아닌지라 문학에 관련된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사회학 혹은 정치에 관련된 글이 올라오기도 하는 등 다양한 글이 올라옵니다. 이런 《크리틱-칼》은 2013년부터 운영해 왔고요. 현재 미술비평가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 소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합니다. 저의 지향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와 예술이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신식 : 안녕하세요, 김신식입니다. 비평 매체의 맥락에서 제 활동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 '굿모닝 대디 굿나잇 마미'라는 영화 리뷰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이젠 아련한 용어가 됐지만 '웹 2.0'이 흥하고, 우메다 모치오의 『웹 진화론』 같은 책들이 주목받았으며, 티스토리나 이글루스 등에서 명문들이 쏟아지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씨네21》 홈페이지엔 '씨네블로그'라고 기자나 일반인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곽경태 감독의 〈태풍〉을 보고 나서 실망스러웠던 점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는데, 씨네블로그를 발견했죠.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글을 하나둘 올렸어요. 편집부에서 종종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지면에 실어 줬어요. 2008년부터 사회비평지 《당대비평》의 후신인 '당비의 생각' 편집간사로 재직하면서 잡지 편집과 비평지 기획에 대한 애착이 생겼어요. '당비의 생각'에서 활동했던 이들과의 인연으로 이후 《말과활》의 기획·편집을 잠시 도맡았고요. 저는 아카데미와 등단에서 연유한 비평(지) 기획자이기보단 스포츠에 빗대자면 길거리 농구선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고 아래 제 나름의 '비평적 신체', '잡지적 신체'를 만들어 나갔고, 현재 《문학과사회》·사진 잡지 《보스토크VOSTOK》 편집 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 《포럼A》, 《크리틱-칼》, 《보스토크》, 《문학과사회》

 

장은정 : 상세한 소개 감사드립니다. 이 좌담은 '비평가의 일'이라는 큰 기획 하에 첫 번째 좌담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소주제로 기획되었습니다. 비평지를 만드시는 분들을 가장 먼저 초대한 이유는 '현재 우리의 비평적 공론장을 이루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후에 '비평'이라는 장르를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각자 만들고 계신 잡지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소현 : 일단 지금 제가 참여하고 있는 《포럼A》는 재창간 된, 다시 말해 복간 된 잡지예요. 원래 '포럼A'는 1998년에 창간 돼서 2005년까지 지속했던 미술비평 포럼이자 잡지인데, 당시에 목표는 격월간지였으나 정말 간헐적으로 나왔던, 제 맘대로 나왔던 잡지였고, 스트리트 저널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자유분방한 형식을 취했던 것 같아요. 그게 이제 2005년에 폐간이 됐는데 2017년에 다시 복간을 했고 현재는 지금 비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원 포함해서 한 1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어요. 저희도 반년간지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아직은 비정기간행물의 형식으로 내고 있고요. 참여하는 사람들은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절반씩 정도 되고 주로 미술비평에 대한 폭넓은 주제를 다루기는 하는데 사회와 긴밀하게 작동하는 미술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홍태림 : 《크리틱-칼》을 만들게 된 계기를 말하려면 풀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제가 2010~2011년에 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일을 했어요. 제가 대학원에 막 입학했을 때이기도 한데요. 제가 풀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나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겠다는 가치관이랄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풀에서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움을 얻으면서 나름대로 저만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풀에서 나와서 대학원에만 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답답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대학 안의 현장은 대학 밖의 현장보다 영역이 훨씬 작고 경직되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실 배움이라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얻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학원이라는 뻔하고 좁은 영역 안에서만 사람을 만나니까 제가 원하는 만큼 배움을 얻어 갈 수 없더라고요. 그러니 대학원 밖에 나가서 미지의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데. 사실 제가 외향적이 아니라 일부러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러니 미지의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를 만들려면 뭔가 구실이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웹진을 만들면 그것이 구실이 되어 여러 사람들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크리틱-칼》을 만들게 된 거죠. 《크리틱-칼》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웹진이 제가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운영이 중단될 수는 있지만 절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한번 매체가 만들어지면 오래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죠. 그리고 이를 위해서 최소한의 에너지로 부담 없이 오래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하기도 했죠. 그런 운영구조를 고민하다 보니 투고 자격이나 주제 제한도 없으며 독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모델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이런 운영구조가 장점만큼 단점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주제 제한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 매체의 정체성이나 지향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구조를 채택했던 이유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장기전을 위해서 최소한의 에너지로 돌아가는 운영구조가 필요해서이기도 하고, 두 번째는 글을 쓰시는 분들도 실패해도 괜찮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크리틱-칼》은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으며 그 실패가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생각들을 통해서 보완되어 나갈 수도 있는 거죠. 필자에 대한 생각만큼 매체와 독자의 관계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크리틱-칼》이라는 매체와 필자, 독자는 뗄 수 없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러한 연결이 결국 매체를 움직이는 엔진이기도 할 텐데 저는 이 3자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돌아가는 작은 엔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틱-칼》의 후원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저희 후원계좌에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소액의 후원금을 보내주세요. 이 후원금은 투고해 주신 필자에게 1년에 한 번 원하시는 책을 선물로 드리는 것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서버 유지비용으로 사용합니다. 물론 대중적인 매체가 아니다 보니 후원금의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2014년부터 후원금이 평균 1만~4만 원씩 불규칙하게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어쨌든 이런 후원 구조를 통해서 필자의 글이 올라오면 독자들은 그 글을 읽을 수 있고 그러한 독자 중 어떤 분은 후원금을 보내주시기도 하니 이런 것이 바로 아까 제가 말한 작은 엔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이런 작은 엔진이 어느 정도 규모까지 만들어질 수 있고 언제까지 갈 수 있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실험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김신식 : 안소현, 홍태림 선생님께서 비평지 더 나아가 잡지의 생존, 소멸,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해 주셨는데요. 전 두 잡지를 기획하면서 상이한 타임라인을 한 몸 안에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의견은 함께 잡지를 만들어 가는 이들과 합의된 의견이 아닌, 제 개인의 것으로 감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령 《문학과사회》는 잡지를 출간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속성과 결부돼 있어요. 여기서 결부됨이란 《문학과사회》가 가진 한계이자 이 한계를 극복해 볼 여건으로 작동하죠. 그런 가운데 《문학과사회》는 《보스토크》에 비해 잡지의 생명줄이 견고하면서도 길다, 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해요. 문학과지성사가 구성해 온 고유의 타임라인 속에서 《문학과사회》의 영속성을 으레 염두에 두는 습관이 저도 모르게 들었나 봐요. 안 좋은 습관이죠. 시기상 2016년 혁신호 체제를 기점으로 《문학과사회》 현황을 소개하자면, 혁신 초기에 비해 동력이 떨어졌어요. 제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호부터 이 잡지가 일정 부분 방황하고 있음을 예민한 독자들은 눈치 챘을 듯해요. 어느 조직이든 오래되면 알력이 있고, 그러한 알력이 의도치 않게 어정쩡한 결과물로 나타날 때가 많죠. 여기서 어정쩡함이란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표방하면서도 모든 걸 할 수도 없는 잡지 속 기이한 사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단 《문학과사회》는 그 알력을 두고 지쳐 나가떨어지기보단, 알력 때문에 줄어든 동력을 회복해 보고자 다시 발버둥 치는 중인 문예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재로선.
그리고《보스토크》. 2016년 독립 사진 잡지로 출발했어요. 현재 많은 분의 성원 속에서 이 잡지가 마케팅 담당이 없음에도 일정한 매출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죠. 한데 잡지 출간 외에도 여러 일을 벌이다 보니 《보스토크》가 전혀 망할 리 없는 생명력을 갖췄다고 여기는 분들도 계세요. 한데 《보스토크》는 여전히 다른 독립 잡지들이 겪는, 아니 잡지를 운영하는 조직이 겪는 속사정들을 품고 있어요. '텀블벅으로 또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하나. 재차 하면 욕먹을 텐데······' '나라에서 하는 지원 사업에서 기금을 잘 얻어올 수 있을까' 등등. 참고로 《보스토크》 SNS 계정의 인사말이 "홀연히 사라질지도 모름"인데요. 《보스토크》는 이 인사말에 충실하려는 사진 잡지입니다. 잡지나 비평지에 대한 비관론은 아니에요. 끝을 알기 때문에 오는 잡지 기획·편집 과정의 효력이라고 할까요. 잡지나 비평지가 망한 체험들을 자주 겪어 본 데서 오는 절실함과 무던함 사이를 오가는 감정들이 《보스토크》 동인들 안에 있어요. 말씀 드린 지점이 《보스토크》 기획회의나 관련 사업의 자체 모니터링에서 새어 나올 때가 있고, 잡지를 이끄는 묘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3. 비평적 메아리를 만드는 일

 

    《포럼A》 제1호의 행위는 아주 단순하다. 메아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포럼A》는 비평과 비평 아닌 것을 구분하려 하지 않았으며, 비평적 행위들의 범주도 나누지 않았다. 글에 대한 글, 말에 대한 글, 글에 대한 말을 기록한 글, 아직 완결되지 않고 이어질 글도 있다. 여기서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을) 비평'을 찾으려 했다. 비평의 수(數)는 0일 때도 있고, 2 이상일 때도 있지만, 다만 1은 아니다.

- 안소현, 「(재)비평」, 《포럼A》 제1호, 2018. p.0

 

장은정 : 지금 이 좌담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엔 '왜 뜬금없이 미술과 사진 비평지를 만드시는 분들을 문학잡지에 초대한 걸까?' 의아하신 독자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맥락을 설명하자면, 우선 위에서 인용한 《포럼A》의 문제의식에 적극적으로 독자로서 반응하는 과정에서 저는 「현장-스코어-비평」(《문학과사회》, 2019년 봄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비평이 서로의 메아리가 되어 준다고 할 때, 그 메아리가 장르적 구분에 갇히지 않고 '비평-일반'의 영역을 구축하는 형태로 재구성되는 행위가 되길 바라는 의도로 써내려갔는데, 이 글을 통해 《문장 웹진》에서 비평에 대한 좌담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좌담 자체가 일종의 '비평적 메아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최근 비슷한 경우를 보게 되었어요. 젊은 평론가들이 주최가 되어 기획하고 있는 창비의 《요즘비평포럼》을 계기로, 인아영 평론가와 미술에 대한 글을 쓰는 '옐로우펜클럽'이 〈문학의 시차, 미술의 시차〉1)라는 행사를 진행한 바 있는데요. 여기서도 중점이 된 것은 문학계와 미술계에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멤버들이 모여 차이를 사유하면서 공동의 비평적 영역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새로운 비평적 움직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포럼A》나 《보스토크》를 읽는 동안 즐거웠던 것은 제가 비전문가-관객으로서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평론가 당사자로서도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내용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크리틱-칼》 역시 '예술과 정치'라는 큰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문학과 정치'와 같은 문학비평의 담론들과 접속할 수 있는 부분이 많구요. 각자의 장르로 특수화되어 이야기되었던 것들을 교차시켜 볼 때 가능한 이야기를 직접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계는 최근 2~3년간 새로운 문학잡지가 생겨나거나 기존에 있던 오래된 문학잡지들이 폐간되거나, 기존의 구성을 달리하는 혁신호들이 생겨나고, 독립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문학잡지의 지형도가 숨 가쁘게 변화하는 중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비평은 최소화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미술계나 사진계에서는 비평의 '주요 지면'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있었는지, 비평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 맥락을 짚어 주시면 문학계의 변화와 비교하면서 한국 사회의 예술 비평이 놓인 현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YPC Reboot Show 토크, 〈문학의 시차, 미술의 시차〉, http://yellowpenclub.com/collaborate/ypc-talk-0526/

 

안소현 : 《포럼A》를 언급하신 글을 예전에 읽었어요. 읽게 된 루트가 재밌는데 어떤 분이 잡지를 읽다가 그 잡지를 캡처해서 홍진훤 작가에게 보내고 홍진훤 작가가 그걸 저에게 보내주셨어요. 미술 외의 분야에서도 읽힌다는 생각을 하니 좀 더 신중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긴장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재창간을 하면서 미술에는 왜 문학잡지 같은 게 없을까? 그런 얘기를 하면서 막연한 부러움 같은 게 있었어요. 이제는 어떤 적폐의 이미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에는 일간지 신춘문예의 평론 부문에 미술평론 분야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한 군데 정도 남아 등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미술평론가가 '등단을 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는 2015년 만들어진 '하나평론상' 정도예요. 그런 게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과연 평론이라는 게 자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무실해진 느낌이에요.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월간지에 쓰는 글은 마치 광고에 자리를 뺏긴 것처럼 지면의 제약이 심해졌고 그 제약 하에서 쓰는 글들이 피상적이 되면서 결국은 미술계에서 긴 글, 비평이라고 불릴 만한 글들이 대부분 청탁에 의한 글들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그러다 보니 작가가 자기의 작업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그리고 레지던시나 수상을 계기로 필요에 의해 생산하는 경우로 글쓰기가 한정되는 게 굉장히 답답했어요. 그래서 그때 지면의 제약 없는 글쓰기의 장에 대한 갈증으로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모임을 시작을 했는데, 그때 저희도 《악스트》나 《릿터》를 참고했어요. 도전할 적폐가 선명한 것도 부럽고 아까 말씀하셨던 다른 영역과의 교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많이 했어요. 오혜진 문학평론가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의 강연에 참여를 요청하셨을 때 제가 해당 분야를 잘 모르면서도 기꺼이 임했던 이유가 그런 계기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미술 쪽에서는 청탁의 형식과 지면의 제약, 이런 부분들이 글을 제한하는 어떤 큰 요인이고요.

 

장은정 : 이때의 청탁이라고 하는 것은 매체가 아니라 작가 개인이 비평가에게 청탁하는 거죠?

 

안소현 : 네. 그런 경우가 많고, 요즘은 미술관에서도 전시하는 작가에 대한 글을 필수적으로 요청을 하는데 대부분은 원하는 글의 상이 있어서 파격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어요. 여담이지만 저희가 왜 우리는 문학잡지처럼 안 될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저들은 글로 생산된 것을 글로 비평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얘기가 된다. 근데 우리는 이미지를 놓고 글로 거기에 가까워지려 한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럼 우리도 이미지만 모아서 잡지를 한 권 내볼까? 이런 시도들을 했다가 실패했어요.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어쨌든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밀도 높게 하고 싶다는 게 잡지의 중요한 과제였어요.

 

장은정 : 지금 안소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을 〈문학의 시차, 미술의 시차〉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아영 평론가와 총총님(두 분을 호명하는 방식 자체에서 이미 제도의 작동 방식의 차이가 드러나네요)께서 패널로 참여하셨을 때, 인아영 선생님께서 등단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 평론가'로 호명되면서 타자화 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지금의 문학잡지 체제는 만들어진 지 거의 50년 가까이 되었고 현재 문학 비평담론은 십 년 단위의 세대담론이 완전히 내면화된 상태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인 평론가에게는 기존의 문학사적 전통에 대한 이해가 당연히 전제되고 오로지 이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하게 되고 저 역시 그런 과정을 통과해 왔다는 점에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총총님은 오히려 문학평론가가 감당해야 할 그러한 전통의 무게가 부럽다는 반응이었어요. 오히려 '선배 없음'의 상태, 싸워야 할 대상이 명료히 설정되지 않는 것이 싸움의 전선을 모두 개별적으로 만들고 담론을 형성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미술계에서 비평 활동을 하려 할 때 혼란을 느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는 문학계와 미술계가 굉장히 극명히 대립되는 비평 조건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어요.

 

홍태림 : 상대적으로 문학이나 영화는 그래도 손에 잡히는 향유자가 있잖아요. 그런데 미술은 대체로 미술계 당사자들 안에서만 맴도는 것이다 보니 미술비평도 당사자들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당사자들에게도 미술비평이 무슨 의미인지 의구심이 생길 때도 종종 있고요. 그렇다 보니 요즘에는 작가들에게 비평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기도 하죠. 이제 미술계에서 비평은 비평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그 비평을 누가 썼고, 그 비평을 쓴 사람이 어떤 의사결정 기구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그 덕을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정도밖에 안 남은 거 아니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지만, 그래도 그런 태도들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에 비해 영화는 비평매체 자체가 많지 않지만, 대중성이 바탕이 된 비평의 순환은 꽤 있다고 느낍니다. 일단 영화를 보면 가족, 친구들과 "그 영화 어땠어?"라고 얘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비평들을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찾아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태생적으로 미술은 영화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순환을 기대하기가 어렵죠. 그러니까 미술계 비평의 독자는 거의 당사자들뿐인 거고요. 그런데 근래에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제 그 당사자들조차도 외면하고 있는 게 미술비평이 아닌가, 왜 그렇게 됐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더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미술비평의 태생적인 문제야 어쩔 수 없지만, 인력으로 가능한 부분을 개선하지 못해서 비평이 계속 쇠락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결국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인데요. 저는 미술계에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한 분들이 계속 동기부여가 되어서 비평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활동공간이나 물적 토대가 부족한 것이 문제죠. 가령 《크리틱-칼》처럼 투고 자격이나 주제에 제한이 없는 공간이나 긴 호흡과 그에 맞는 기획에 따라서 글이 발표되는 곳도 더 많아질 필요가 있고. 한편으로 현실적으로 민간영역과 공공영역에서 비평이 오고가는 과정들에 대한 보상이 많이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원고료가 그러한 것이겠죠. 그리고 아까 비평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말 나온 김에 좀 더 이야기하자면, 기존 미술 잡지들이 일종의 전통적 매체잖아요, 계간도 있고 월간도 격월간도 있지만, 보통 미술 잡지는 월간이 많죠. 물론 미술 잡지들이 월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을 해요. 임금 문제일 수도 있고, 잡지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와의 문제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요즘에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비평이 꽤 많습니다. 이러한 인터넷 비평이 현장의 현상들을 유연하면서도 빠르고 예리하게 포착해 낼 여지가 많고 예산의 부담이 적다는 점과 독자와의 접촉 면적이 비교적 넓다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예리함이야 인터넷 비평만의 강점은 아니니 살짝 미뤄 두더라도 유연하면서도 빠르다는 점은 인터넷 비평이 가진 강점 중 강점일 텐데 그런 측면에서만 보자면 월간지는 인터넷 비평의 유연성과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월간지보다는 격월간이나 계간지 형식이 좀 더 유의미한 비평의 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여러 구조적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겠지만요.

 

장은정 : 홍태림 선생님께서 '미술 관객'이라는 중요한 요소의 포문을 열어 주신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고민 중 하나는 '독자들의 비평적 목소리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 무엇일까'입니다. 사실 현재 여러 문학잡지들은 '창작자'들의 플랫폼으로서만 이해되고 있고, 일부의 잡지들이 독자들이 직접 비평적 목소리를 발화하는 코너를 부분적으로 마련하고 있으나 종이 지면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것 같아요. 단지 SNS에서 파편적으로 검색되는 것이 아니라 층층이 쌓이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자신의 비평적 안목을 드러낼 수 있는 웹 지면은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 중이었는데, 홍태림 선생님의 문제의식과 닿는 지점이 있는 듯합니다. 김신식 선생님께서는 《문학과사회》와 《보스토크》를 함께 만들고 계시니 보는 관점이 또 다를 것 같습니다.

 

김신식 :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무슨 비평이든 제 글을 부탁하는 상대로 어느 수준에 달해야 하는 평문을 '납품'하는 처지였고 지금도 그래요. 아마 학술적으로 문학잡지와 비평의 역사를 연구해 오신 분들이 문학잡지와 비평에 대해 견지하는 렌즈와 상이한 점이 있을 거예요. 사진 잡지와 비평의 관계 그리고 그 근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문학비평지와 문학비평의 긴 역사와 연관 지어 현재 문학비평의 특성을 말할 재주는 없어요. 단 제가 《문학과사회》를 만드는 일원이 되면서부터 부대꼈던 일들로 인한 파장이 얼마나 제 비평 활동에 영향을 미쳤나 정도로만 밝힐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 《문학과사회》를 만드는 일원이 되기 전 저도 '검증'이란 단계를 거쳤겠죠? 이때 검증이란 잡지의 구성원으로 함께할 자격 심사인데, 제 경우 기존의 문학비평을 잘 써서 들어갔다기보다는 문학 외부의 맥락으로 문학(비평)의 외연을 넓힐 캐릭터로 판단됐던 것 같아요. 영화비평부터 정치·사회 비평까지 두루 해왔던 점은 문학비평을 이렇게도 해볼 수 있겠다, 라는 위치 설정의 토대였어요. 반면 제가 각종 비평을 두루 해왔다는 점은 이젠 '김신식 당신이 문학(비평)의 전형성도 숙지해야 할 시기'라는 규범으로 다가왔어요. 이게 좀 스트레스였는데요. 예전에 해왔던 각종 비평을 살려서 문학에 수렴되지 않는 어느 영역에 있기보단 영화비평, 정치·사회 비평도 했으니 이번엔 '문학비평이다'는 식으로 문학비평의 전형성을 제 스스로 의식하는 가운데 글을 발표해 왔던 것 같아요. 무슨 평문이든 납품해 왔다는 특성이 이상하게도 문학비평을 수행하는 지금, '네가 해보고 싶은 모든 걸 해볼 수 있어'와 '네가 해보고 싶었던 걸 모두 해볼 수 없어'라는 중첩으로 다가왔습니다. 써온 평문을 복기해 보면 문학이 중심이 된 문예지라는 정체성을 흐트러뜨리지 말아야겠다는 자기 검열이 스민 글들을 발표해 왔어요. 이는 문학비평이 제게 (아직 도전해 보지 못한 영역으로서의) 재미이자 (문학비평·평론의 규격에 어느 정도 맞춰야 한다는) 족쇄로 다가오는 대목이었죠. 대신 제가 문학비평에 느낀 기묘한 구속감拘束感은 활동하는 문학평론가·비평가들이 동료 평론가·비평가들의 글말을 평하는 감식안과 그 잣대는 무엇일까라는 관심사로 이어지고 있어요. 여담 아닌 여담이지만 저는 문학평론가·비평가들이 동료의 평문을 두고 못 쓴다고 할 때 내비치는 격분이나 비아냥거림에 관심이 많아요. 가령 이전에 겪어 본 영화비평계나 정치·사회 비평계와는 상이한 문학평론가·비평가들의 격분이나 비아냥거림을 메모해 보는 중이에요. 그 격분에 스민 평문에 대한 감식안이 사람마다 다르면서도, 세대를 막론하고 문학비평이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데 치우친 격분을 문학비평이 이렇게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란 그것보다 더 자주 접했음을 곱씹는 중이에요. 국내 문학비평의 내력과 연결해서요.
외연상 문학비평엔 '문학비평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규범은 없다고 하면서도, 그런 식의 의견이 유통하도록 놓아둠으로써 문학비평의 본질을 축조·강화하려는 성이 문예지 안에 존재한다면 사진비평은 예전에 음악비평 활동을 할 때 정리해 본 소감이지만 무주공산無主空山 같아요. 이 표현을 내미는 데 사진계나 미술계를 향한 비의는 없어요. 안소현, 홍태림 선생님이 견본이 될 비평이든 싸워야 할 적폐든 비평과 비평가가 관계 맺는 '상대'란 무엇인지 중요하게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미술 연구/사진예술 연구에서 파생된 사진연구자·비평가들의 기록과 그 계보에서 비롯된 사진비평의 모델이 있지만, 제가 함께 고민하고픈 지점은 (대중) 저널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사진비평만의 독립성이에요. 그러할 때 사진비평의 상대는 무엇인가 골몰해 보게 돼요. 독립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진비평은 특정한 관계자와 전문가가 유지하는 구역이 아니라, 사진에 대한 비평적 관점과 스타일이 개별적으로 산란散亂될 여지를 상상하는 자유 지대로요. 일전에 《포럼A》 제1호 '(재)비평'에서 이의록 선생님이 《보스토크》에 부재하는 비평에 대해 쓰신 글을 읽었어요. 제가 사진비평을 두고 품은 고민을 비롯해 《보스토크》가 사진비평과 관련해 충분한 공론장의 기능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어요. 다만 《보스토크》는 비평의 부재가 대안임을 천명하는 사진 잡지는 아니에요. 이렇겐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비평해 온 사람들이 기대해 온 기존의 비평상에 복속되지 않는 차원에서 사진을 평하고 논할 자리는 꾸준히 모색 중이라고요. 아니, 방황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오해를 방지하자면 이의록 선생님이 기존의 비평적 잣대로 《보스토크》의 정체성을 막연하게 재단하진 않았음을 문맥상 감안했음도 밝힙니다.

 

장은정 : 《보스토크》가 기존의 개념으로는 비평지라고 할 수는 없는 잡지인데도 꼭 같이 다루고 싶었던 이유를 자연스럽게 밝힐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포럼A》가 홍진훤 작가의 작업을 '비평적 행위'라고 명명했듯이, 저 역시 한 지면에서 문학잡지들의 각 코너들이 일종의 비평적 행위로서 '설계-비평'이라고 호명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보스토크》 역시 제게는 비평지로 간주되었고, 이 좌담을 통해 우리가 '비평적인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다르게 사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다음화에서 이어집니다.

 

 

 

 

 

 

 

 

 

 

 

 

 

 

장은정

사회 / 장은정

문학평론가. 최근 페미니즘 비평과 매체 비평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다.
새로운 비평적 공론장을 구성할 줄 아는 상상력과 체력을 갖고 싶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누구든 함께 대화하고 싶다.

 

김신식

참여자 / 김신식

2008년부터 비평지 만드는 일을 해왔다. 한국 사회의 시각문화와 감정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진행한다.

 

참여자 / 안소현

시를 만들고 글을 쓴다. 비평의 가능성을 넓히되 '여파' 없는 글은 피하려 한다. 정치적이 되는 형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이며 비정기간행물 《포럼A》 편집장이다.

 

홍태림

참여자 / 홍태림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와 예술이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미술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비평 웹진 《크리틱-칼》을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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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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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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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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