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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 : Ⅰ 문예지 원고청탁 및 작품발표 과정

  • 작성일 2020-06-01
  • 조회수 4,893

[기획특집/좌담]


본 연속 좌담은 고착화된 문단권력과 창작자의 불평등 문제, 관행화된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한 반발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따라, 현황 진단 및 개선 과제 도출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ㅇ 회차별 주제
   – (1차) 문예지 원고청탁 및 작품 발표 과정
   – (2차) 문학상과 유사 공모제도 참여 과정
   – (3차) 작품집 발간과 계약 등 출판 과정
   – (4차) 신진의 시선으로



 

 

2020년 예술위 현장소통소위원회·문장웹진 공동기획 연속좌담 :
Ⅰ 문예지 원고청탁 및 작품발표 과정

 

 

 

- 저작권과 원고료 문제 – 창작자의 입장에서
- 매체(플랫폼)의 권력
- 원고청탁의 과정, 작가의 자기 결정권
- 문단 내에서의 미투(Me Too) 문제
- 문예지의 상징권력과 지원사업
- 새로운 플랫폼의 형성

 

사회 : 정여울(작가)
좌담 : 권창섭(시인), 김덕희(소설가), 이성미(시인), 정용준(소설가)

 

 

 

 

□ 좌담 내용

 

 

〈개회〉

정여울 : 올해 초 이상문학상 사태 이후로 촉발된 창작자의 저작권을 비롯한 전반적인 예술인의 권리 문제를 논의해 보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좌담을 통해 더 많은 공론장에서 창작자의 권리와 문단 안에서의 '미투me too'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제대로 공론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공론화에 발맞추어 제도적인 개선이 확실히 이루어져야, 끊임없이 토론은 하지만 실제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음으로써 창작자들이 지쳐버리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금희 작가, 최은영 작가, 이기호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그리고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 이후 창작자의 권리 문제에 대한 공론화는 문단과 언론을 통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들이나 문예지의 대표들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출판계가 어렵다, 문예지가 어렵다'면서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문예지 대표들은 원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창작자들의 사기를 심각하게 떨어트리고 '글을 써서는 도저히 먹고살 수 없다'는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상문학상 사태로 불거진 저작권 문제와 원고청탁 및 발표 과정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면, 저는 올해로 등단한 지 17년째인데, 저뿐만 아니라 주변 문인들도 잡지사나 문예지로부터 원고료를 못 받은 적도 있고, 또 원고료가 아예 오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원고료가 오른 곳은 언론사들이에요. 언론사에 기고하는 칼럼의 고료는 올랐거든요. 그런데 문예지를 비롯한 문단 내의 원고료는 거의 오른 것 같지 않더라고요.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창작자로서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거였어요. 며칠 전에도 겪었던 일인데요. 서울시에서 만드는 잡지였어요. 그런데 원고 수정을 계속 요구하더라고요. 작가의 글은 '홍보물'이 아니라 엄연히 자유로운 창작물인데, 잡지가 홍보물이라는 이유로 원고의 성격도 모두 홍보성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정 요구였어요. 그러니까 처음 썼던 제 원고의 본래 의미와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엄연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창작자의 글을 노골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검열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 식의 요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창작자로서의 권리가 단지 원고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작가의 글을 있는 그대로 실어 줄 수 있는 것 자체가 보장이 안 되는 곳이 아직도 많고, 심각한 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이 있을 때 그런 검열이 더 심하다는 거예요. 2014년 가수 신해철 씨가 돌아가셨을 때, 닥터테이너, 그러니까 엔터테이너이면서 의사인 사람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그걸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만드는 《위클리공감》이라는 잡지에 썼어요. 이 잡지에 제가 1년 넘게 기고했는데, 신해철 씨를 진료한 의사를 비롯한 몇몇 의사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전문성과 윤리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수술대에서 메스를 잡게 되었을 때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한 글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쓴 글에 누군가가 빨간 줄을 쳐놓고 특히 중요한 표현들을 완전히 수정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누가 작가가 쓴 글에 이렇게 반 이상을 빨간 줄을 쳐서 수정 요구를 하느냐고 제가 항의하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이 그랬다는 거예요. 문화체육관광부에 소속된 주무관이 작가의 글에 빨간 줄을 쳐서 그렇게 고치라고 했다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힌 일이었어요. 그때 제가 너무 당황스럽고 모멸감이 심하게 느껴져서, 그렇다면 제 글을 아예 싣지 않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말이라도 할 수 있는데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 집권 시절이었고, 창작자들에게는 더욱 글쓰기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한 시대였죠. 혹시 어딘가의 블랙리스트에 제가 올라가 있을까 봐 저도 모르게 제 글을 검열하는 측면도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저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신해철 씨의 억울한 죽음에 간접적으로라도 항의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서 쓴 글이었어요. 그렇게 제 글에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이 빨간 줄을 그어서 무조건 고치라고 하는 상황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글 쓰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 그런 순간들이 몇 번 있었어요. 창작자들이 온 힘을 다해 쓴 글들이 이런 식으로 훼손당하는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문학상 사태나 백희나 작가의 저작권 문제처럼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진 문제들뿐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작가가 저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말조차 꺼내기 힘든 그런 일들이 많아요. 이런 부당한 일들을 좀 더 폭넓게 조사를 해서(작가들이 겪은 부당한 일들을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통해 더 폭넓게 자료조사를 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낱낱이 밝혔으면 좋겠습니다.또 하나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예요. 저는 등단 초기에 문단의 술자리에 몇 번 나가고 그다음에 아예 안 나갔거든요. 여성이면서 신인이고,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가혹하고, 불평등하고, 모욕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졌어요. 그런 일들을 목격하거나 직접 당하고 나서는 아예 술자리에 가지 않았지요. 그러면서 '나는 배제되겠구나, 나는 문단 주류에서는 영원히 소외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지요. 실제로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던 한 문예지에서 사장으로부터 직접 해고 명령을 듣기도 했어요. 해고 사유는 문단 내 회식자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어요. 저는 편집위원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 아닌가, 글쓰기와 기획에만 열심히 참여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사장이 원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문단 내 사교활동, 특히 회식자리에 참여해서 작가들의 출간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라고 주장했어요. 저는 편집위원들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작가가 어떤 출판사를 선택할 것인지는 완전히 작가의 판단에 따라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예지 편집위원이라는 이유로 작가들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것도 부당하고, 그것도 술자리를 통해서 친밀감을 쌓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에 차라리 해고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때는 정말 가난했기 때문에 여기서 잘리면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막막했어요. 문예지 편집위원이라고 하면 바깥에서 볼 땐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젊은 평론가들에게는 일종의 계약직처럼 불안한 자리이거든요. 사장의 요구에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미운털이 단단히 박히게 되고 결국 '편집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편집위원의 생각보다는 경영자의 마인드가 훨씬 중요했던 거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점점 위축되었고, '문학평론가'로 살기보다는 '작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작가로서 어느 정도 그런 문예지들의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부터 간신히 해방되었다고 해서 다른 작가들도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여성 신인들을 향한 남성 문인들과 출판사 대표들의 횡포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고, 그것이 2016년에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사태로 폭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창작자의 권리' 문제, 문예지와 출판사들의 부당한 권력 행사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제가 먼저 말씀드린 이유는 마음을 열고 우리의 문제를 더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사태 해결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일단은 저작권과 원고료 문제에 관해 창작 일선에서 느낀 점들을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정용준 소설가님 먼저 말씀해 보실까요?

 

 

저작권과 원고료 문제 – 창작자의 입장에서

 

 

정용준 : 네, 반갑습니다. 저도 등단한 지 한 10년차 정도 됐는데요. 제가 등단할 때부터 받은 고료를 한번 생각해 봤는데, 오르지 않았더라고요.

 

정여울 : 등단 10년째인데 원고료가 전혀 안 올랐나요?

 

정용준 : 네, 소설 고료가 참 묘합니다. 단편 한 편에 어떤 곳은 80만 원을 주고 어떤 곳은 120만 원을 줘요. 120만 원을 주는 곳은 120매를 청탁하고 80만 원을 주는 곳은 80매를 청탁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50만 원, 30만 원 주는 곳도 있고 150만 원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론 고료가 다른 것 같지만 평균적으론 매당 만 원인 거죠. 그게 기준이 된 상태가 등단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제가 등단하기 전부터 아마 그랬을 겁니다. 몇몇 출판사는 몇 년 전부터 고료를 올리긴 했지만 그게 기준이 되어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진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고료가 오르는 문제보다는 그것을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더 문제처럼 보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과 그것에 대해 말하고 표현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단순히 작가들의 개성과 기질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런 걸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어떤 공기가 있어요. 뭐랄까, 인간적이고 따뜻하지만 애매하고 답답한 분위기랄까요. 문예지를 만드는 출판사는 대부분 어렵거나 힘들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사실이든 엄살이든 문예지 같은 고전적인 문학 콘텐츠가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건 분명하니까 그 책임을 공공연하게 작가들에게 돌리는 느낌이 들거든요. 작가들의 글을 싣는 지면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이너스라고 느끼게 만들고, 실제로 그렇다는 말들이 너무 많으니까 괜히 미안하고 민망한 기분이 드는 거죠. 문학의 발전과 현상유지를 위해 출판사가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처럼 느끼는 거죠. 실제로 그런 통계를 들어 설명해 주는 곳도 있고요. 그래서 이런 어필을 하기가 어려운 기분을 느낍니다. 어쩌면 신인 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감정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갓 등단했을 땐 그저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잖아요. 그때는 백만 부 팔리는 인기 작가가 되겠어, 이런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꿈을 꾼다기보다는 계속 글을 쓰는 문제와 쓴 글을 발표할 지면 걱정밖에 안 하니까 실어 주겠다면 고맙고 돈까지 주니 더 고마운 이상한 마음이 들거든요. 청탁 오면 정말요? 고맙습니다. 계약하자면 정말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돌이켜보면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어요. 무조건적인 믿음과 감사는 잘못된 인식이었던 거죠. 예전에 계약서를 우편으로 받은 적이 있었어요. 서로 좋은 마음에 훈훈한 덕담도 메일로 주고받았는데 막상 계약서를 보니까 2차 저작권이 1대 9로 되어 있더군요. 제가 1이고 출판사가 9였죠. 계약서 문구도 너무 어렵고 전문적인 단어들투성이라 대충 읽었는데 숫자는 명확하게 보이니까 살짝 본 건데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정여울 : 1대 9요?

 

정용준 : 의아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웃으면서 실수라고만 하더군요. 하지만 사인하고 보냈다면 그 계약은 이행되었겠죠.

 

정여울 : 어느 출판사에서 그랬어요?

 

정용준 : 거기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짚어내고 말하는 일이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꺼낸 말입니다. 몇 년 전 작가들 사이에서 모 문예지 거부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어요. 문예지의 그릇된 행동과 태도를 규탄하며 청탁을 거부하는 거였죠. 그때 막 등단한 신인작가들 중 일부는 근심 섞인 표정으로 이러다가 문예지가 폐간될 것을 우려하더군요. 등단하고 한 번도 청탁이 없었는데 그 문예지에서 청탁이 왔던 거죠.

 

정여울 : 작가들에게 그런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다니, 정말 충격이고 실망이네요.

 

정용준 : 그렇죠. 그런 일로 문예지가 없어지지도 않고 작가들이 그런 마음을 갖기 때문에 문예지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편으론 신인작가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겠더군요. 신인 소설가에게는 발표 지면이 귀하니까요. 1년에 한 편 실을까 말까 하는 작가도 많고 등단하고 발표 한 번 못 하고 잊히는 작가도 허다하잖아요. 그래서 당시 그 작가에게는 아무 말도 못 했던 기억이 나요. 이처럼 신인작가들에게는 출판사의 부당한 처우가 있다고 바로 거부하고 행동하기가 되게 조심스러워요.

 

정여울 : 네, 그러니까 처음에 등단했을 때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있었는데, 지금은 창작자로서의 권리 자체가 늘 바람 앞에 촛불처럼 불안해져 버린 거네요.

 

정용준 :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연한 분위기나 제도적 장치 혹은 열려 있는 정보가 필요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누리집 같은 데에 검색하면 쭉 나오게 하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검색창에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현대문학》을 검색하면 원고료가 바로 나오는 거죠. 이런 게 투명하게 공개되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구누구에게 우물쭈물 물어볼 필요 없이요. 뿐만 아니라 계약 문제나 어떤 글 작업을 하거나 일을 할 때도 먼저 말해 주고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문화가 생기면 좋겠어요.

 

정여울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 저작권과 원고료 문제만 해도 어쩌면 세 시간이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먼저 한 분씩 말씀하시고 그다음 주제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김덕희 소설가님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덕희 : 아, 네. 정용준 소설가님이 앞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저도 무척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더 신인 쪽에 가까울 거예요. 저는 정용준 작가님이 10년차보다 훨씬 더 오래되신 줄 알았어요. 아무튼, 말씀 들으면서 저도 신인 때를 돌아보게 됐어요. 등단하자마자 저한테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은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집을 만든다는 곳이었어요. 최근에도 비슷한 기획에서 어떤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걸 들었습니다만, 그때 저는 고료는 차치하고 제가 소개된다는 게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죠. 그래서 재고의 여지없이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관례인 거고, 거기서 삐딱하게 나갔다가 나중에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됐고요. 그리고 이미 등단하신 선배님들도 등단을 준비하는 후배들한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죠.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이니깐 그분들의 잘못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관행들이 쌓여 있으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이 좀 이상하긴 해도 이건 넘어가자고 생각했죠. 이런 건 그냥 넘어가야 제대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고, 잘 넘어가면 잘 풀리려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그다음에 연락이 온 곳은 모 문예지의 신춘문예 당선자 특집이었어요. 잘 아시다시피 그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같이 엮여서 나오는 특집이 있어요. 신춘문예 당선자의 후속작 특집을 실은 문예지가 그때는 거기 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당선자를 다 모아서 소개해 주는 게 아니고 저때는 네 명이었나, 그렇게만 기회를 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영광이긴 했습니다마는 다 같이 나온 신인들인데 왜 벌써 평가가 시작되는가? 그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제가 등단 준비할 때 어떤 말을 많이 들었느냐면, 등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등단한 다음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중요한 활동이 어디냐면 방금 말한 신춘문예 특집 같은 지면이고요. 거기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속된 말로 '문단 미아'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좋은 재고를 많이 갖춰 놓고 등단하라는 애정 어린 충고였던 거죠. 물론 그런 특집으로 신인들한테 지면을 준다는 게 참 어려운 결정이고 고마운 기회입니다. 근데 그게 그 문예지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문단 안에서 어떤 평가의 장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크게 들어요. 거기에 수록되지 못한 다른 신인들은 뭐가 되며, 또 거기서 아쉬운 평가를 받은 작품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두려움. 체력이 충분히 길러지지 않았는데 무대 위에 그냥 떠밀려 올라가는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신인 때에 학습된 것들이 어떤 부당한 처우 앞에 주저하게 만들고 위축되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여울 : 대표적으로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됐던 건 어떤 것이지요?

 

김덕희 : 이건 제가 겪은 건데요. 그 매체가 어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거기서 제게 책정된 원고료가 얼마인데 일부는 발전기금으로 납입하는 걸로 하고 나머지만 받으라고 했어요. 아마 무슨 단체에서 내는 앤솔로지였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원고료는 50만 원입니다만 20만 원은 발전기금으로 납입하는 걸로 하시고 30만 원만 드리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그 앤솔로지에 참여했던 선배 작가들 명단을 봤는데 알 만한 분들이 다 계셨어요. 다 계시니까 제가 안 할 수 있어요?

 

정여울 : 그렇죠. '앞에 이런 선배 작가들이 다 쓰셨습니다.'라는 말 때문에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거예요. 후원을 강요받은 거네요. 원고료를 대체하는 식으로요.

 

김덕희 : 네, 그리고 솔직히 그땐 좀 놀랐습니다. '아, 이런 분도 이걸 수락했단 말인가? 안 그러실 분 같은데? 그렇다면 나도 해야지 뭐.' 이렇게 되더라고요.

 

정여울 : 그분들도 그 앞 선배들의 이름을 보고 한 거죠.

 

김덕희 : 아무래도 그렇죠. 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제가 후원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고요. 그냥 속편하려고 '이건 원고료가 30만 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기부금 영수증이 나오는 것은 아닐 테고요. 그런 걸 달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얘기죠. 그런 관행들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등단한 지 벌써 7년이나 됐네요. 그러다 보니 너무 옛날 이야기라서요.

 

정여울 : 원고료를 '묵은 쌀'로 대신하는 말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성미 시인님,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성미 : 시의 경우는 시 전문 문예지가 많다 보니,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문예지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원고료 지급 사례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등단 20년차인데요. 제가 아는 제일 적은 원고료가 시 두 편에 6만 원, 그러니까 시 한 편당 3만 원이었거든요. 20년 동안 그 문예지의 원고료가 3만 원을 유지하고 있어요. 최근에 시 두 편에 5만 원을 받은 신인이 있다는 거예요. 제가 알던 최저선에서 더 내려간 거죠. 그런데 저희가 원고를 보낼 때 3만 원의 원고료를 주는 곳에는 3만 원 퀄리티의 작품을 보내고, 10만 원의 원고료를 주는 곳에는 10만 원 퀄리티의 시를 보내는 건 아니거든요. 어느 곳에든 잘 정돈되고 완성도를 갖춘 작품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원고료가 적은 문예지가 너무 많습니다. 《현대문학》은 시 한 편에 7만 원을 주고 시인 한 명에게 시 한 편만 청탁하는 방식을 고수하는데, 지면의 사람 수를 줄이더라도 원고료를 올려 주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뉴스페이퍼》와 함께 원고료 실태조사를 하고 공정 가격을 제시했는데, 시 한 편당 7만 원 정도 아닌가요? 그걸 보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정된 문예지는 시 한 편당 10만 원, 15만 원으로 책정하고 있잖아요. 그것보다 적게 주는 문예지의 수가 훨씬 많은데, 모든 문예지의 원고료를 대상으로 평균값을 내면 적정 수준보다 낮은 원고료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정 가격으로 제시하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공정 가격이 시 한 편당 10만 원이라면 10만 원을 못 주는 문예지는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저희가 바라는 거고, 공정 가격을 제시하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원고료를 문예지의 정기구독료로 대체하라고 해서 문예지 운영을 유지한다든지, 기발표 작품을 재수록하면 원고료는 지급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잘못된 관행이 있어요. 우리가 주로 신작을 청탁받고 발표하는데, 신작에만 원고료를 지급하고 그것을 다시 게재했을 때는 재수록이라는 이유로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는 관행이 시의 경우에 굉장히 심합니다.

 

정여울 : 재수록도 원고료를 줘야 하잖아요.

 

이성미 : 당연하죠. 게재료니까요. 신작이라서 원고료를 주는 게 아니거든요. 원고료는 작품을 써서 게재한 것에 대한 보수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작품을 다른 곳에 게재하면 문예지든 신문이든 다른 출판물이든 게재료를 지급해야 합니다. 물론 신작에는 원고료를 좀 더 주고 재수록을 할 때는 덜 지급할 수는 있죠. 재수록하면 돈을 안 줘도 된다는 관행이 있다 보니, 그걸 노리는 시장이 생겨나는 거예요. 문예지를 재수록 작품으로만 채워서 출판하거나, 재수록 작품을 모아서 아무 허락도 받지 않고 단행본으로 발간해서 판매해요. 제일 악명 높았던 게 1년에 1000편의 시를 온라인에 게재했던 웹진 《시인광장》이죠.

 

정여울 : 《시인광장》이요?

 

이성미 : 네, 웹진 《시인광장》이 '올해의 좋은 시 1000편'이라는 이름으로 1년에 1000편의 시를 웹진에 무단으로 게재해 왔죠.

 

정여울 : 네, 무단 게재네요.

 

이성미 :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축하합니다. 올해의 좋은 시 1000편에 선정되셨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서 1000편 중에서 올해의 100편을 선정해서 책으로 낼 테니까 추천하라는 일까지 시키는 메일을 보냅니다. 그렇게 재수록 시 100편을 모아서 단행본을 내고 서점에서 판매를 해왔어요. 이런 행태가 몇 년 전에 공론화되면서 웹진 《시인광장》이 잠시 폐쇄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도 축하한다고 하면서 원고 파일을 보내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요. 게재료를 주지 않고 책이나 잡지를 만드는 건데 선정됐으니까 좋아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죠.

 

정여울 : 실제로는 작가의 저작권을 탈취하면서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작가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거군요.

 

이성미 : 네. 문예지가 어렵다고 하지만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20년 동안 문예지 종수가 얼마만큼 유지되고 있는지 통계조사를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별로 줄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문예지를 운영하며 얻는 이득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적자든 아니든.

 

정여울 : 문예지는 예술위에서 지원금을 받는 곳도 많잖아요.

 

이성미 : 지원금을 받거나, 문예지를 통해서 얻는 상징적인 스펙이 있거나, 문단에 영향력이 생기거나, 다른 기회로 이어지죠. 그런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들의 원고료를 아주 저렴하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결국은 작가들을 착취해서 문예지를 유지하고 있는 거거든요. 작가들은 '이런 지면이라도 있으니까 고마워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원고료나 대우를 참고 버티고 있는 거예요. 지금 문학계 안에서 통용되는 잘못된 관념과 관행에 대해서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홍보가 되니까 작가한테 좋은 일 아니냐면서 아무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인터뷰, 그리고 신문의 '오늘 아침의 시'라는 코너에 한 편씩 실리는 시. 그거 게재료 못 받거든요. 아무 통보도 없고요. 언론사가 맘대로 신문에 실어요. 홍보가 되지 않느냐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가 계속 일어나고 있고요.

 

정용준 : 대부분의 신문이 정말로 그렇습니까? 신문에 시가 실리는데 게재료를 전혀 못 받아요? 정말요?

 

이성미 : 네, 한 푼도 안 받아요. 실리는 줄도 몰라요. 그 코너에 들어가는 일러스트 비용은 지급하죠. 시를 소개하고 밑에 몇 줄 쓰는 필자에게는 원고료를 줍니다. 하지만 시 전문을 게재하더라도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고 허락을 구하는 연락도 없어요. 신문 연재가 끝나면 출판사가 그걸 책으로 내는데요, 출판 콘텐츠로 좋잖아요. 저작권 인식이 있는 출판사는 수록료를 지불합니다. 제가 이런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요. 신문에 연재한 걸 책으로 낼 거니까 허락을 해달라고 해서 수록료가 없냐고 물었더니, '아, 필요하시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말을 한 사람은 주고 안 한 사람은 안 준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언론 문학부 기자들께서 저작권 침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시는 건 고맙지만, 본인들이 소속된 언론사 지면에서 일어나는 저작권 침해도 반성하시고 개선하셔야 합니다.작가를 알릴 기회가 아니냐, 이런 생각들이 지면을 제공하는 출판사, 언론사, 잡지사에 넓게 퍼져 있어요. 시간을 들여서 인터뷰를 해도 '너를 위해 인터뷰해 주는데?' 그러면서 비용을 주지 않죠. 홍보를 해준다는 건데, 반대로 생각하면 작가가 그 매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콘텐츠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매체는 작가들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상호적인 개념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지면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논리도 좀 깨져야 합니다. 그게 항상 문예지의 주장이에요. 굉장히 손해를 보면서 작가를 위해 지면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죠. 저는 문예지 시스템이 파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요. 문예지 역사 100년이 과연 자랑할 일일까요? 말하자면 《백조》, 《창조》 시대의 것을 100년 동안 똑같이 하고 있는 거잖아요. 문예지 지면에 청탁을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는 방식이 지금 이 시대에 맞는 시스템일까요? 여러 작가들한테 지면이 골고루 제공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주목받는 작가들에게 지면이 집중적으로 제공되고 있어요. 문예지는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왜 작가들이 문예지를 운영하는 부담을 져야 하는지 질문하고 싶어요. 작가는 작품을 잘 쓰는 게 역할이고, 문예지와 출판사는 책을 잘 만들어서 많은 독자를 만나도록 판매와 운영을 잘하는 게 자기 역할이에요. 문예지가 지면을 제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우면 잡지를 운영하지 말아야 해요. 자신들이 특별히 희생하는 것처럼 작가에게 희생을 같이 감내해라, 너희에게 좋은 일이다,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논리들이 작가들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 하는 방식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돈 이야기 못 하게 하는 것, 돈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을 이상하게 취급하는 것. 그리고 '어차피 너는 쓸 거잖아.' '어차피 읽을 거잖아.'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라고 하는 것. 이런 생각들이 정당한 보수를 주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고 있어요. 문학뿐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다 그런 논리가 적용되고 있죠. 이런 주장이 저는 이해가 안 되는 게,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좋아서 직장을 다니면 월급을 안 받아도 된다는 말인가요? 지금 문학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불공정인지, 무엇이 작가의 권리인지 작가들과 이 업계가 개념과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여울 : 참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내용들이었는데요. 그러면 이제 권창섭 시인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권창섭 : 네, 세 분 말씀 들으면서 저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는데, 특히 신인상에 당선돼서 등단했을 때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고요. 그때 제 눈앞을 가렸던 게 바로 '감사함'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감사함이 내 눈앞을 가리고 나니까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던 거죠. 당선된 직후 여기저기서 계속 듣게 되는 말이, '문단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발표 지면 하나 받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감사함'을 학습 받았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하여간 지면 한 번 한 번 받을 때마다 감사함이 모든 나의 권리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작품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 되어버리니까요. 이 감사함으로 뒤덮여 있는 눈을 제대로 뜨려면, 나의 권리에 대한 지식이라든가 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사실 많은 작가들이 글밖에 모르는 바보들이라 계약이나 저작권에 관련된 법적 문제에 취약한 편이잖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이미 출판 경험이 있는 작가들은 계약서를 만져 본 경험이 있기에 어느 정도 인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인들은 계약이나 저작권 관련 사항에 더 무지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제 당장 첫 시집 출판을 계약한다고 했을 때 계약서의 무엇부터 꼼꼼히 봐야 할지 모를 것 같아요. 최근에 권여선 작가님이 《악스트》 18호 인터뷰에서 상당히 재밌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작가들이 등단하면 시상식이 아니라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재밌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인터뷰를 보고 꼭 등단제도를 통과한 자라는 범위가 아니더라도, 꼭 오리엔테이션의 형식은 아니더라도, 어떤 범위, 어떤 형식이든 학습의 기회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내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어떤 것이 어느 공간에서, 얼마만큼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 판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요. 저도 이 판에 들어온 지 6년차 정도인데요. 한 번도 이런 지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문학판 내에서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개인적인 차원의 경험을 공유 받거나 전달하는 데에 불과했죠. 그렇게 보면 소위 '문단'이라는 이 장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 의문이 들어요. 오히려 계속 내 눈앞을 감사함, 감사함, 감사함이라는 이 말로만 미혹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게 참 이 판 안에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 중 하나입니다.

 

 

 

매체(플랫폼)의 권력

 

정여울 : 일단은 정말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할 것 같네요. 예전에는 정말 문단이라는 게 어떤 정서적 공동체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친한 문인들도 많았고 또 서로 도와야겠다는, 출판사는 안 도와주더라도 문인들끼리는 서로 돕는 그런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 힘드니까 잘 안 만나고 술자리도 적어지면서 작가들이 고통을 혼자 겪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배가 후배를 도와주기도 어렵고, 동료들끼리 서로 걱정해 주는 일도 어려워졌어요. 후배들이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 전혀 몰라서 도와주지 못하기도 해요. 문단이라는 게 사실 예전처럼 공고한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아요. 물론 존재하는 건 맞죠. 그런데 문예지를 지닌 출판사들, 문예지의 어떤 유력인사들을 중심으로 문단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인 거죠. 원래 문단의 뜻은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었잖아요. 일종의 공동체적인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그 공동체적인 어떤 협력이나 공감은 사라지고 그 안에 뼈만 남은 권력만 힘을 쓰고 있다면 문단은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거에요.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독자들로부터 계속 외면당하는 거죠. 출판사 대표들이나 문단의 유력인사들이 진정으로 자성하지 않는다면, 작가들의 창작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좋은 작가들은 점점 더 문학을 떠나고, 독자들도 문학을 멀리하게 되면서 문학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거예요.지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장 문제인 건 '매체의 권력, 플랫폼의 권력'인 것 같아요. 출판사와 언론사, 여러 가지 홍보를 할 수 있는 모든 기업체나 정부까지 합쳐서요. 뭔가 지면을 준다는 것, 지면을 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표현이잖아요. 그냥 매체인데 퍼블리싱이나 홍보를 하는 쪽에서는 항상 자기네들이 대단한 걸 주는 것처럼 얘기한다는 거죠. 플랫폼을 제공하는 쪽에서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뭘 그렇게 원고료를 많이 달라고 하느냐는 식이죠. 많이 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적은 원고료라도 제때 지급해 달라는 것인데, 그것마저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죠. 프리랜서 작가들의 생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언제 원고료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것도 있죠. 고료가 들어오더라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수입이 항상 일정하지가 않은 거죠. 그래서 다음 스텝을 기획할 수가 없어요. 나의 1년 후는 물론이고 다음 달조차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게 만드는 것이 플랫폼의 권력인 것 같아요. 모든 문화예술계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음악도 그렇고 미술, 무용 다 그런 것 같은데, 뭔가 자기들이 홍보를 해준다든가 퍼블리싱을 해준다는 이유만으로 창작자들을 옥죄는 거예요. 연예기획사들도 마찬가지죠. 사실은 콘텐츠와 작가가 없으면 플랫폼이 안 돌아가는 거잖아요. 콘텐츠가 없는 상태에서는 플랫폼도 없는 것인데, 콘텐츠의 창작자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예요. 그리고 여기에 심리적인 권력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이성미 시인님이 '가스라이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약자에 대한 교묘한 심리적 착취를 말씀하시는 거죠. 이게 되게 무서운 거죠.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지면을 주잖아. 그리고 너는 신인이잖아. 네가 뭘 알겠니. 우리 말을 들어. 선배들도 다 그랬어.'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사회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문화예술계 이쪽은 여전히 봉건적인 시스템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권여선 작가님 말씀처럼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할 것 같고요. 저에게 '창작자로서 지켜야 할 권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사실 기본 원칙은 간단해요.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야 해요. 어떤 미디어의 권력에도, 정치권력에도, 출판사들의 압박에도 굴복해서는 안 되고, 오직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향해, 내가 만들고 싶은 바로 그 세계를 향해 달려가면 돼요.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점은 그걸 생존자들만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정말 생존자가 아닌 사람들, 더 이상 이런 상황에서는 글을 못 쓰겠다는 생각 때문에 업계를 떠나버린 사람들은 그걸 알 기회도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제 경험상 창작자로서 뭔가를 요구를 했을 때 긴장하지 않는 곳은 없었어요. 저는 이제 원고료를 올려 주면 안 되느냐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이 얘기를 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어요. 10년 동안은 그냥 받은 거예요. 올려 주면 안 되느냐고 얘기를 했을 때 안 된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회의해 보겠습니다.' 하고 며칠 만에 연락이 와요. 조금이라도 올려 줘요. 많이 올려 주는 데도 있고요. 그런데 문예지들은 워낙 공고하니까 그런 말 자체를 못 꺼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말을 못 하게 하고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문화가 정말 창작자들을 옥죄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가스라이팅이라는 게 정말 큰 문제인 것 같고요. 신인작가들한테도 그렇지만 여성 작가들한테는 특히 더 심한 것 같아요. 여성 작가들에게는 훨씬 더 압박이 많고, 술자리 가기도 무섭고요. 그리고 요즘 저는 글을 쓸 때 되게 무서웠어요. 성희롱 같은 성범죄에 연루된 남성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인용을 잘못했다가 '이 사람도 혹시 그런 혐의가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요. 지금 모든 게 다 드러난 건 아니거든요. 미투로 고발되거나 공론화된 분들도 있지만 누가 그랬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이런 보이지 않는 권력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이 창작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 창작자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 계속 비판을 하고, '그곳이 과연 어디인지' 확실히 이야기를 해야 문제가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선배 작가들이 후배 작가들에게, 혹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창작자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은 아르코를 비롯한 뭔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곳이어야 하구요. 절대 이것만은 지켜라, 그리고 이것은 너의 권리다, 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말해 주고요. 선배들에게 정말 한 마디씩만 오리엔테이션을 들어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성미 : 신인작가 오리엔테이션은 작가회의나 시인협회, 소설가협회, 이런 곳에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소설가협회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들 작품집을 내면서 원고료도 안 준다고 하죠. 이런 협회들이 예술가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요. 작가회의는 정치적인 활동을 같이하거나, 지원사업 정보를 알려주거나,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인맥을 통해 서로 일거리를 챙겨 주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문학 장르뿐 아니라 사단법인인 예술가 단체나 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협회 같은 곳에서 매년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받은 신인작가들을 모아 놓고 권리를 알려줘야 하는데, 전혀 안 하고 있죠. 작가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없는 겁니다. 노조나 조합, 이런 형태로 권익을 찾아 주는 조직이 생겨야 하는데, 지금 작가 노조가 없고 작가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점처럼 흩어져 있고, 그래서 어디서도 선배로부터도 그런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현대문학》은 원고료가 입금되기 전에 전화가 옵니다. '내일 원고료가 입금될 건데요. 정기구독 안 하셨던데 원고료로 대체할까요?' 이런 전화를 한단 말이에요.

 

정여울 : 정말요? 《현대문학》이요?

 

이성미 : 네, 그런 전화를 받으면 예상을 못 했던 일이라 당황하게 되죠. 불쾌하고 '다들 이렇게 한단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고 '7만 원, 들어와도 그만, 안 들어와도 그만인데.' 이런 생각도 들고요. 신인일 때는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몰려와서 승낙을 했어요. 만약 선배들이나 누군가가 알려줬다면 쉽게 거절했을 텐데, 신인 입장에서는 혼자 판단하기 어렵죠. 다른 문예지들은 원고청탁서에 '원고료를 정기구독으로 대체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적혀서 와요. 지금은 제가 절대로 안 해줍니다. 《현대문학》은 그 후로도 시를 발표할 때마다 항상 그런 전화를 했는데, 나중에는 제가 이런 전화 하지 마시라,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한테도 요구하지 마시라, 얘기도 했고요. 작년에 또 그런 전화를 받고 화가 나서 SNS에 《현대문학》은 그런 전화 그만 하라고 올렸어요. 최근에 누가 비슷한 얘기를 올렸는데 편집장님이 '이제 하지 않습니다.'라고 답글을 달더라고요.

 

정여울 : 《현대문학》은 정말 약속을 지켰나요?

 

이성미 : 모르죠. 그런데 《현대문학》이 올해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대상에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곳이 문학사상사잖아요. 문예지 《문학사상》도 정기구독으로 대체하고 원고료를 제때 안 주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런데 《문학사상》도 올해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에 선정됐어요. 월간지라서 4천만 원 받더라고요.

 

정여울 : 4천만 원이요?

 

이성미 : 네, 월간 문예지는 지원금이 4천만 원이에요. 《현대문학》도 월간지예요. 제가 원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정기구독료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하는 문예지는 발간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안 된다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여러 번 얘기했어요. 원고료를 정기구독으로 대체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작가들은 내가 돈을 주고 내 지면을 사야 하나 자괴감을 느낍니다. 정당하게 원고료를 받은 후에 이 잡지를 구독할 선택권이 우리한테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작동하는 논리는, 문예지가 어렵기 때문에 너희 작가들이 정기구독을 해서라도 문예지가 버티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잖아요.

 

정여울 : 문예지들은 어려움을 과장하는 경향이 심해요. 과연 문예지들은 그렇게 경영이 실제로 어려운 걸까요. 예술위에서 4천만 원씩이나 지원을 받으면서요? 그리고 정말로 어렵다면, 문예지의 존폐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 낫지요. 문예지의 명성은 지속하면서 왜 작가들에게 모든 고통을 떠맡기며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건가요. 정말로 어렵다면, 그건 잡지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업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도 있어요. 《문학사상》처럼요.

 

이성미 : 맞아요. 전반적으로 출판계가 어렵다고 하니까 정부에서는 출판사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 저는 출판계가 현대화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업 윤리도 안 갖춰져 있고, 전근대적인 운영이나 가족 경영으로 경영권과 편집권이 제대로 정비가 안 되어 있어요. 인세나 원고료를 절차를 갖춰 투명하게 집행하지 않고요. 계약서를 잘 안 쓰는 관행으로 알 수 있듯이 현대적인 사업체로서의 기본이나 상도덕 같은 것들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정여울 : 그 출판사 지원사업에 저도 참여한 적이 있어요. 수많은 책을 심사해서 거기서 좋은 책을 선정해서 해당 출판사들을 지원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작가들한테는 그 지원 효과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출판사들의 책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작가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이 가도록 제도를 빨리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아까 소설가협회 문제 말씀하셨는데, 소설가협회도 정말 오래된 단체잖아요. 소설가협회가 등단한 신인들의 작품을 원고료나 게재료를 전혀 주지 않고 신춘문예 당선 작품들을 '올해의 신춘문예'라고 엮어서 책을 판 거잖아요.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개선이 안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무슨 '협회'라고 하면 일단 의심되기 시작해요. 모여서 또 어떤 권력을 만들까, 협회라는 미명 하에 또 어떤 부당한 일들이 자행될까 의심스러워요. 작가들이 대부분 프리랜서라는 것,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작가들이 대부분 프리랜서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디서도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이제는 사람들의 인정에 호소하고 선배들의 따뜻한 마음에 호소하는 이런 문화도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정말 각개격파하다 보니까 혼자 당하고 혼자 괴로워하는 이 구조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문예지 원고청탁의 구체적인 문제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성미 : 원고청탁서가 일종의 약식 계약서라고 할 수 있는데, 시와 소설은 원고료가 적더라도 금액을 기재하는 건 지켜지는 편인 것 같아요. 지역 문예지나 이름을 못 들어 본 문예지는 금액이 안 적혀서 오는데, 그런 때엔 제가 전화를 해서 물어봅니다. 신인 때는 못 물어봤죠. 그냥 주겠거니 하고. (웃음) 지금 원고청탁서에서 가장 많이 빠져 있는 건 지급 예정일이에요. 문예지는 발간 이후 한 달 이내에 들어오는 편이에요. 그 외 다양한 매체로 가면 원고료가 제때 지급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산문이나 비평은 원고료를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요. 같은 매체인데도 시는 편당 원고료가 청탁서에 적혀 있는데, 산문 청탁을 받았을 때는 원고료가 안 적혀 있었어요. 제가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안 가르쳐주는 거예요.

 

정여울 : 전화해도 안 가르쳐줘요?

 

이성미 : 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원고료가 너무 적어서 알려드리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거예요. (일동 웃음) 그 심보가 뭐냐면, 원고료를 모르고 글을 써서 원고를 보낸 후에 통장에 찍힌 금액이 너무 적어서 실망하는 건 네 소관이라는 거잖아요. 그거야말로 예의가 아니죠. 원고료가 적으면 얘기를 하고 그래도 쓰겠는지 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예의잖아요. 제가 원고료를 알려주지 않으면 원고를 보낼 수 없다고 했더니, 편집 담당자가 편집회의와 주간에게 얘기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런 답이 돌아온 거죠. 그런데 편집자가 하는 얘기가 예전에도 다른 필자가, 유명한 시인이고 교수인데요, 원고료를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건의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작가들이 얘기를 해도 개선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주간, 데스크, 대표, 경영자가 듣지를 않는 거죠. 저는 원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정기구독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하는 문예지에서 편집위원들이 왜 아무 문제의식 없이 원고청탁 전화를 하고 거기서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었거든요. 편집위원들이 청탁할 필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문예지의 얼굴과도 같잖아요.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여기는 편집위원도 있었지만, 편집위원이 문제를 제기해도 경영진이 듣지 않더라고요.

 

정여울 : 방금 그 잡지는 어디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성미 : 월간지 《현대시학》이요. 우연인지 모르지만, 《현대시학》에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난 후에는 《현대시학》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은 적이 없어요. 또 다른 지방 문예지에는 원고료를 기재해서 청탁서를 다시 보내달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아무 답이 없었어요.

 

정여울 : 작가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버린 거군요.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을 때 청탁이 끊길 위험이 진짜 있는 거네요.

 

이성미 : 저는 장은정 평론가가 《자음과모음》에 발표한 글을 읽고 놀랐는데요. '창비'나 '문학동네'같이 문학출판업계의 1, 2위를 다투는 출판사에서 주니어 평론가 집단을 운영하면서 대학원에서 교수가 조교나 대학원생 부리듯이 한 달에 10만 원, 20만 원 주고 그 많은 원고를 읽게 했다는 데에 너무 놀랐어요.

 

정여울 : 그 수많은 원고를 검토하는 일에 한 달 10만 원을 준다고요?

 

이성미 : 문학동네가 '젊은작가상' 예심을 할 때, 젊은 평론가들로 구성된 주니어 그룹을 두고 예심 후보 작품을 읽게 해요. 그 많은 작품을 읽고 심사하는 비용을 따로 지급하지 않고, 예심평 쓴 원고료 20만 원만 준다는 거예요. 창비에서도 주니어 평론가 그룹을 운영하면서 마치 훈련을 시키듯이, 발표되는 작품들을 읽고 리뷰를 쓰게 하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보수로 월 10만 원을 주었다는 겁니다. 대학원생을 교수가 부당하게 무료로 부리는 것과 똑같죠. 신인 평론가들은 이걸 하다 보면 편집위원이 되거나, 교직에 임용되거나 이런저런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겠죠. 그렇게 된 경우도 있고요. 또 문학동네 출판사에 투고된 작품들을 검토하는 일을 맡기면서 월 20만 원을 줬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젊은 평론가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출판사가 거느리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이게 일자리가 되어야 하는 업무잖아요. 합당한 보수를 지불하면서 원고 검토를 하는 역할을 맡겨야 하는데, 너무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어요.

 

정여울 : 네, 그러니까 사실 책을 만든다는 것, 잡지를 만든다는 것이 원고료만 드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노동이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편집자들도 물론이고요. 편집자들도 굉장히 많은 노동에 비해서 적은 임금을 받고 있고요. 문학동네도 리뷰위원이라고 해서 그렇게 젊은 평론가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도 그 출신인데, (웃음) 그게 끝났을 때 되게 허탈하더라고요. 그걸 열심히 하면 그래도 내가 좋은 평론을 쓰게 되거나 뭔가 여러 가지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끝나는 거더라고요.

 

이성미 : 소모되는 거죠.

 

정여울 : 네, 소모되는 거였고, 예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원고청탁의 문제도 있는데, 문학상 예심이 사실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어떤 문학상에는 500편, 1000편 이렇게 작품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거를 다 읽고 거기서 좀 더 읽을 만한 작품을 뽑는, 그러니까 작품을 본심에 올리는 그 과정이 되게 중요해요. 본심에 올린 작품에서 한 20편 중에서 한두 편 뽑는 것보다 사실 500편, 1000편 중에서 본심에 올라갈 작품을 뽑는 일이 훨씬 더 어렵거든요. 자기의 일상을 많이 희생해서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것에 대한 보수는 굉장히 적죠. 사실 이상문학상도 그래요. 이상문학상도 제대로 된 예심이 없는 거예요. 저도 이상문학상 예심으로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메일을 매년 받는데, 어느 순간부터 추천을 안 했어요. 심사료가 전혀 지급되지 않는 무급 노동이고, 어떤 보람도 느끼기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무작위로 여러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서 그 사람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거잖아요. 심사료를 전혀 안 주면서 '네가 어차피 문예지의 작품을 읽었을 거 아니냐. 거기서 좋은 작품을 추천해라.' 이거거든요. 문학사상사의 이상문학상은 예심 자체부터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문제제기는 별로 없더라고요. 예심 자체가 지금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아무런 보수 없이 선의로 추천한 사람들에 의한 그 소수의 작품만 갖고 본심이 진행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예심과 본심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문예지가 천 개든 만 개든 다 읽어야 하는 거잖아요. 다 읽고 나서 본심에 올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안 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제대로 된 예심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본심도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이것도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 같고요. 또 원고청탁 과정에서 이게 좀 어려운 문제인데, 인기 있는 작가들이나 책이 잘 팔리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청탁이 이뤄지잖아요. 이게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신인작가들이나, 정말 재능이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그 문턱에서 많이 좌절하는 것 같거든요. 이 문제도 우리가 토론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권창섭 : 아까 잠깐 얘기 나왔던 것과 관련된 얘기부터 할게요. 시인 같은 경우에는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료로 갈음해 달라는 권유를 정말 많이 받는데요. 계산해 보면, 시 두 편 원고료가 10만 원이라 했을 때, 그 돈으로 월간지를 열두 달 동안 받아 볼 수 있는 게 사실 이득이라 볼 수도 있어요. 책값이 못해도 만 원은 하는 걸요. 그런데 그게 유쾌하지 않고 불쾌한 까닭은 그 책을 정기구독하고 싶은 욕망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겠죠. 정기구독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는 책을 만들어 놓고 정기구독을 권유하는 건 솔직히 양심이 없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아까 산문 원고료 관련해서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시인이라 주로 시만 발표하다 보니까 산문 청탁 및 발표 경험이 드문데요. 시는 편당으로 원고료가 책정되는데, 산문 같은 경우는 원고지 기준 '00매에 00만 원' 이런 식으로 책정되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00매를 넘긴다고 고료를 더 주는 건 아니죠?

 

정여울 : 아니죠, 네.

 

권창섭 : 그런데 글을 쓰기도 전에 완성 시에 몇 매짜리 글이 될지 가늠이 되나요?

 

정여울 : 보통은 정해진 분량에 맞춰서 써줘야 하는데, 쓰다 보면 분량이 더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출판사마다 다르긴 한데, 다 실어 주고 원고료는 더 안 주는 경우가 있고, 원고 자체를 줄여 달라고 50매를 꼭 맞춰 달라고 하는 데가 있어요.

 

권창섭 : 네, 저는 그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산문의 경우는 대개 큰 틀의 주제가 정해진 상태, 원고 분량이 정해진 상태에서 원고청탁이 오잖아요. 그런데 해당 주제에 대해 자신이 얼마만큼 분량의 글을 쓰게 될지는 가늠을 할 수가 없고……. 그런 상태에서 원고 분량은 유동적일 수 있다면 원고료 역시 유동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 의아함이 있었습니다. 방금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원고청탁의 과정, 작가의 자기 결정권

 

정여울 : 네, 그럼 김덕희 소설가님.

 

김덕희 : 가끔 소위 구두청탁이라는 걸 하잖아요. 이를테면 '너도 발표 한번 해야지?' 아니면 '요새 작품 좀 쓰니?' 이렇게 물어보는 식인데요,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에는 빨리 청탁서를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동 웃음) 그렇게 말해 놓고는,

 

정여울 : 마냥 기다리게 만드는 거군요.

 

 

김덕희 : 네, 희망 고문이죠. 청탁서가 언제 오나 하고 기다렸는데 결국엔 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저로서는 아마도 말씀을 주신 그분이 다음 편집회의에서 다른 편집위원들의 동의를 받은 뒤에 청탁하려 했던 건데 여의치 않았구나, 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오지 않는 청탁서를 기다리는 중에는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희망을 버리고 잊고 마는데, 그러면 또 반전이 생기는 거예요. 말하자면 '저번에 한다 했지? 청탁서 보내게 메일 주소 알려줘.'라는 식으로 연락이 오는 거죠. 제가 그래도 성실하게 쓰자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그쯤 되면 이미 그 매체와 그분에게 약간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기한 내에 써야죠. 이건 또 다른 경우인데요, 아주 마감이 임박해서 청탁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써놓은 거 있지?'라는 식이었죠. (웃음) 소설 한 편 쓰는 데 한 3주면 되는 줄 아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써놓은 걸 고쳐서 줘보라는 뜻이겠지요. 제가 아주 밭게 받은 기한은 3주는 아니고 약 한 달이었던 것 같네요. 다행히 써놓은 게 있었어요. 운 좋게 맞아떨어졌던 건 아닙니다. 신인 때는 어디 펑크가 나면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써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문예지들도 신인들 중에 그런 기특한(?) 자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아무튼 그런 점들이 좀 아쉬웠어요. 창작자는 아무래도 청탁을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언질을 주셨으면 빨리 청탁서도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설렘을 편집위원들께서는 부디 헤아리셔서 말이죠. 제가 청탁에 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을 때가 있는데요, 어제 슬쩍 말씀 주셨는데 오늘 청탁서가 와 있는 경우예요.

 

정여울 : 원래는 그게 정상이죠.

 

김덕희 : 네, 그게 아주 기쁘죠. 이게 대우받는 느낌이 있어요. 한 일주일까지는 제가 잘 기다리는 것 같은데, 일주일이 넘으면 그냥 또 공치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여울 : 만나서 얘기하는 거였어요? 전화가 아니고요?

 

김덕희 : 오며가며 얘기할 때가 많지 않아요? 누구한테 청탁할까 고민을 하시다가 우연히 저를 봤나 봐요. 그러면 '너도 있었구나, 한번 하지.' 이렇게 생각을 하셨는지도.

 

정여울 : 네, 그런 구두청탁은 아예 관심을 끊어야 해요. 제 경험상 제대로 청탁하는 데는 메일부터 보내요. 원고를 써주실 수 있는지, 이 정도 기한과 이 주제로 쓰실 의향이 있는지, 먼저 메일로 청탁서를 만들어서 보내는 게 정상이에요.

 

김덕희 : 청탁서를 먼저 받아 본 경험은 없고요. 원고를 쓸 수 있는 상황인지 체크하는 전화를 주로 먼저 받았어요. 그래서 만약 제가 '죄송하지만 이번 호는 어렵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러면 다음호에 하는 걸로 해주세요.' 그러고 보통은 전화를 끊죠. 저는 그러면 다음호 마감일이 적힌 청탁서를 상상하거든요.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건데요, 제게 물어봐 주셨던 그분은 통화를 그냥 안 끝내고 '다음호 편집 일정에 메모해 두겠다.'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만큼만 해주셔도 의구심이 안 생깁니다. 실은 허언을 하실 분이 아닌 걸 제가 잘 알고 있어서 의구심이랄 게 생길 리 없었지만요. 그런데 일면식 없는 편집자나 편집위원이었다면 '다음에'란 그냥 전화를 끊으면 서로 머쓱할 것 같아 던져 보는 인사치레라고 여겼을 것 같아요.

 

정여울 : 거기는 어떤 문예지인가요?

 

김덕희 : 제게도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실명은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그것보다 최근에 제가 좀 고민스러운 게 또 하나 있는데요. 문예지가 종이책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고 아카이빙(archiving)하거나 웹진에 내용을 다시 공개하는 그런 문예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래서 청탁서에 옛날에는 없던 문구가 발견되죠. '복사 전송권에 대해서도 같이 허락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라는 문구 말이에요.

 

정여울 : 그것도 청탁서랑 같이 보내줘야 하는데요.

 

김덕희 : 청탁서 안에 그런 내용을 적어서 보내죠. 제가 받았던 걸 하나 읽어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길지 않으니까 한번 들어 보시죠. "원고는 OOOO 전송 서비스에 활용합니다. 인터넷 온라인 또는 PC 통신상의 게시, 컴퓨터 파일 형태를 통한 전송 혹은 배포, 전자서적의 발간 등과 관련하여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 기타 저작권법 제2조 제9호의 2에서 규정한 전송을 포함합니다. 해당 원고가 개별적으로 전송되어 수익이 발생한 경우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급합니다." 자, 이 뒤에 문장 '저작권료를 지급합니다.' 이걸 빼면요. 앞에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전송은 자기들 마음대로 쓰겠다는 이야기가 돼버립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석하는 건 과하겠지만 문안 그대로만 보면 그렇지 않을까요.

 

정여울 : 네, 그것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김덕희 : 그렇죠. 이게 매체가 달라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많은 문예지들이 아카이빙을 하거나 웹진을 운영할 때는 꼭 이걸 넣거든요. 나중에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럴 때는 원고료를 2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로 책정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요새 해왔습니다.

 

정여울 : 네, 전자책이나 웹진에 원고를 재수록하고 전송하는 그런 여러 가지 서비스에 대한 문제네요. 독자들한테는 서비스겠지만 창작자들한테는 저작권을 제한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런 전자책 계약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요. 전자책의 인세율이 다르거든요. 종이책은 만들면 창고 비용 같은 여러 가지 관리 비용이 발생하잖아요. 그런데 전자책은 한 번 만들어 두면 평생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수익률이 훨씬 커요. 그런데 전자책에 대한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출판사들이 많아요. 이 사실을 작가들이, 특히 신인작가들이 잘 몰라요. 또 전자책은 캡처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시인들의 시를 그냥 한 번 캡처해 버리면 그건 그대로 복제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전자책은 보안이나 여러 가지 원고료, 저작권 등에 대한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주먹구구식인 것 같거든요.

 

김덕희 : 사용자가 전자매체를 복사하거나 내려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출판사가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아마 굉장히 고난이도일 거예요. 은행에서처럼 보안프로그램 같은 것을 갖추어야 캡처가 안 되고 내려 받기가 안 되게 할 수 있죠.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전자매체를 얼마든지 캡처하고 긁어서 복사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만큼 웹진에 대한 보안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저자들은 콘텐츠를 허락하는 거니까 거기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요. 그리고 저는 웹진에 게재되는 것과 종이책에 게재되는 것에 큰 차이를 느낍니다. 발표했던 작품들을 나중에 내 소설집에 실었을 때, 독자들이 굳이 발표 당시의 원본을 보겠다고 한다면 그걸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종이 문예지에 발표된 것뿐이라면 그분은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도서관에 가셔야 할 거예요. 그런데 아무 때나 접근할 수 있는 웹진에도 실려 있다면 얘기가 다르죠. 개고에 가깝게 퇴고해서 소설집을 낸다고 해도 웹진에는 초고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건 작가들한테 상당히 부담스럽거든요. 영원히 남아 있단 말이에요. 이미 청탁서에서 게재될 수 있음에 대해 동의한 것이기 때문에 지워 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작가들에게는 부담이 크죠. 이런 것도 출판사들이 좀 재고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여울 :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잖아요.

 

이성미 : 온라인 게재도 기한을 정해서 약정을 해야 되고, 약정 기간 후에는 필자가 원하면 내릴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겠어요. 저작권을 양도했을 때 창작자에게 제일 큰 문제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된다는 거예요. 작품을 폐기하거나 웹진에서 내릴 수 있는 권리가 작가에게 없는, 그런 게 부당한 거죠. 창작자들이 저작권 양도에 반발하는 게 저작권료가 합당한 액수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정여울 : 네, 원고료나 저작권료도 문제지만, 그 내용에 대한 작가의 자기 결정권이 박탈당하는 일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러 종류의 이상한 검열들이 남아 있다는 것, 이런 것들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잠깐 한 5분만 쉬고 다시 시작할까요?

 

 

〈휴회〉

 

 


문단 내에서의 미투(Me Too) 문제


 

정여울 : 2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것 중 하나가 미투(Me Too) 문제인데, 얘기하다 보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왜냐하면 미투 문제는 단지 젠더만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권력이 있는 곳에 폭력이 있고, 폭력이 있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성폭력이 존재해요. 이 미투와 관련해서 문단 내의 미투 문제, 그리고 여성 작가들의 인권 문제, 이런 것들을 좀 얘기해 볼까 해요. 저는 사실 남성 작가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싶었는데 평소에는 들을 기회가 없었어요. 윤이형 작가로 인해서 이상문학상 사태가 불거졌을 때 윤이형 작가의 의견에 공감해 주시고 지지해 주신 분들 중 여성 작가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꼭 여자 남자로 나누자는 건 아니지만 남성 작가들의 공감도가 왜 더 낮은 것인지, 너무 안타깝기도 했어요. 출판계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지금까지 여성 배우들에게는 남성 배우보다 훨씬 낮은 개런티가 지급되어 왔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젠더를 중심으로 권력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성미 시인님이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성미 :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가 2016년에 나오고 미투가 2018년에 시작되었잖아요. 문화예술계에서는 2018년이 2차 미투인 거죠. 2016년 10월에 SNS에서 '#OO_내_성폭력'으로 고발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오타쿠 내 성폭력을 시작으로 문단 내 성폭력, 미술계, 사진계, 영화계 등으로 이어졌어요. 영화 외에는 개인 창작을 하는 장르 중심이었고, 예술가라는 지위를 이용해 지망생들에게 한 성폭력이 주로 고발되었어요. 그게 제대로 해결이 안 되었죠. 할리우드 미투가 나온 후 2018년 2월에 연극연출가 이윤택 사건이 드러나면서 공연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권력층의 성폭력 사례가 줄줄이 나왔어요. 2016년과 다른 점은 성폭력 행위자가 고은 시인 같은 최고 권력층이었다는 것이에요. 무용계는 잠잠하다가 2019년에 체육계 미투 터지고 난 후에 무용계도 터졌고요. 앞으로도 꾸준히 미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안 나온 곳이 전통예술과 클래식 음악 분야인데, 영역이 되게 협소하고 어릴 때부터 훨씬 더,

 

정여울 : 그루밍(grooming)이 심하죠.

 

이성미 : 맞아요, 그루밍이 심한 장르예요. 아무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영역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라서 이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합니다. 미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예술계 안의 권력 관계를 드러내고 예술계의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게 했다는 거예요. 문단에서는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부터 시작해서 2016년, 2018년 성폭력 문제, 그리고 이제 저작권 침해와 불공정까지, 나올 문제가 다 나왔어요. 다 나왔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너무 망가져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 있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저는 2015년에 표절 문제를 문단이 건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그때부터 문단의 지반이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변화 없이 그대로 가면 구조가 너무나 왜곡돼서 창작자들이 계속 고통 받는 방식으로 문학계가 서서히 몰락할 것이기 때문에 이 불공정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합니다.

 

정여울 : 그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표절 문제와 현 상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요.

 

이성미 : 그 후로도 문단의 권력층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정여울 :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 말씀하시는 거죠?

 

이성미 : 네, 창비에서 표절이 아니라고, 독자들이 무지해서 그렇게 본다는 식으로 옹호를 했잖아요. 문학계 안에서도 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창비에서 표절을 옹호하는 데 평론가들을 동원하면서 그냥 돌파해 버렸죠. 그렇게 해서 한국 문학계가 독자들의 신뢰를 잃었고 권위가 무너졌어요. 문학계 종사자들의 자존감에도 상처가 컸고요. 그 이전부터 문예지들이 자사 출판물을 홍보하는 역할로 비평가들을 동원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어요. 문예지의 리뷰도 그 출판사에서 중요시하는 책 중심으로 리뷰 청탁을 하게 되었고요. 문예지에 원고청탁을 받아 실리는 것도 그래요. 제 경험으로는 제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그 출판사의 문예지에서 원고청탁을 받게 돼요. 책이 나오기 전후에 문예지에 작품을 실어서 책을 홍보하는 식으로 배치하는 거죠.

 

정여울 : 그 자체가, 원고를 게재하는 것 자체가 홍보라는 거죠?

 

이성미 : 그렇죠. 문학상도 그렇게 가고 있어요. 창비가 두드러지는데,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학상은 자기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에 주는 식이죠. 출판시장에서 출판사의 역할이 더 강해졌고 문예지가 거기에 종속된 것인데, 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그런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문예지가 사실은 자사 출판물 홍보를 하면서 마치 공정한 발표의 장인 것처럼, 보편적인 문학적 취향인 것처럼, 비평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왜곡하고 있어요. 문학권력의 문제는 이전부터 주기적으로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발언했던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문단은 변하지 않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만 주기적으로 바뀌어요. 문학계에서 시스템 개선과 변화의 요구들이 있을 때 대응하는 방식에서 가장 문제인 점은, 담론과 콘텐츠로만 소비하고 끝난다는 거예요. 미투가 문학계를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했느냐면, 페미니즘 책을 내고 페미니즘 작가에게 상을 주고 있죠. 그걸로 모든 책임을 다한 것인 양 하고 있어요. 이 좌담 의뢰가 왔을 때 제가 약간 신경질을 냈는데, 만날 좌담만 하면 뭐 하냐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실태조사 등 후속 계획이 있다고 해서 나왔습니다. 2015년에 표절 사태 터졌을 때도 《실천문학》이 한 권 전체를 문학권력을 주제로 다뤘어요. 미투 때도 문예지에 좌담이 쫙 실렸죠. 불공정 문제도 이번에 문예지에서 다루어요. 문예지에 실리는 특집과 좌담에서 변화할 방향을 얘기하고 나면, 이제 누가 그걸 실천하나요? 좌담에 참여하고 기획한 사람들은 발언한 것에 자족하거나, 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또 문예지와 출판사는 변화의 요구에 호응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변하는 건 없이 문예지의 콘텐츠로 그냥 끝나는 거예요.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콘텐츠로 해소하려는 게 문학계 현실이 변화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그 문예지를 낸 출판사에서라도 뭔가 제도적인 정비를 해야죠.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방지 조항을 넣는다든지, 작가들이 그런 문제에 처했을 때 해결을 한다든지, 영향력 있는 작가가 편집자에게 성추행을 했을 때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춘다든지, 예방 교육을 한다든지, 내부에 처리 시스템을 갖춘다든지, 그런 걸 해야죠. 조금이라도 제도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문예지를 내고, 페미니즘 책을 내고만 있어요. 지금 주도적인 담론이니까 판매는 되겠죠. 문단은 매번 그런 식으로 해왔거든요. 문단 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그랬어요. 사회적 약자의 문제가 이슈화되면 작가들이 열심히 연대 활동에 참여해요. 그러면 문단은 문학상을 주고 제도 내에 편입시키면서 보상을 해주고, 그 콘텐츠를 문예지에서 다루고, 책으로 내서 판매하는 거예요. 젠더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문단 외부에서는 문단이 달라졌다고, 문학의 내용도 바뀌고 있다고 얘기해요. 여성 작가들, 페미니즘 책이 많이 나오고, 여성이 문학상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영향력 있는 출판사의 출간 심사위원과 문예지 편집위원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는지, 주요 결정권을 갖고 있는지, 예술대학의 정규직 교수 중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는지, 이렇게 실질적으로 제도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권력의 구성을 봤을 때는 거의 바뀌지 않았어요. 문학진흥정책위원회가 이번에 2기로 바뀌면서 여성 위원의 비율이 30% 정도로 높아졌는데, 위원회 1기는 전원 남성이었거든요. 문학 분야가 권력이 남성화되어 있는 것이 심해요.

 

정여울 : 그 위원회의 명칭이 정확히 무엇이라고요?

 

이성미 : 문학진흥정책위원회요. 문화체육관광부 자문위원회예요. 최근에 정부 위원회의 성비를 조사하고 여성의 비율을 상향하도록 하고 있는데, 문학과 출판 관련 위원회가 다른 위원회에 비해 남성 비율이 심하게 높아요. 아무튼 이야기만 하고, 출판 콘텐츠가 되고 문예지로 나와서 휩쓸고, 그다음에 잠잠해지고, 현실은 바뀌는 게 없고, 이런 양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이제는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답을 해야 해요. 그런 사람을 불러내야 한다고요. 편집위원만으로는 현실을 못 바꿀 것 같고요. 아무래도 주주를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저희가 출판사에 있는 선생님들을 문단권력 선생님들로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분들이 출판사 주주인 거예요. 문지 편집동인 1세대, 2세대가 문학과지성사의 주주거든요. 백낙청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창비의 주식을 갖고 있는 창비의 대주주예요.

 

정여울 :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거죠.

 

이성미 : 이런 주주, 경영자가 실제로 출판사와 문예지 경영의 방향 또는 문학적 취향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는 거예요. 편집장만으로는 안 되고요, 실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주간, 대표, 경영자, 주주,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분들이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공론장에서 얘기해야 해요. 작가들, 평론가들이 아무리 얘기해 봤자 듣지도 않고, 말하는 사람은 말한 후에 주변부로 밀려나요. 그러고 다음 세대가 나타나서 또 말하고 또 밀려나고, 이제는 신인들이 얘기하는 지경까지 온 거죠. 그래서 요구를 공공연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출판사에 불공정 현황이 이러하고 이런 변화가 필요한데 거기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질의서나 권고서를 보내는 거예요. 성폭력 문제는 페미니즘 콘텐츠 출간으로 면죄부가 주어질 게 아니라, 실제로 문학출판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성폭력 행위를 한 작가를 옹호하는 분위기도 다시 생기고 있다고 들었어요. 문단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이 문학을 너무 단순하게, 문학의 복잡한 속성을 페미니즘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너무 PC(Political Correctness)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식의 관점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어요.

 

정여울 : 아, 고은 시인 같은 경우에요?

 

이성미 : 고은 시인뿐 아니라 미투 때 나왔던 여러 작가에 대해서 그렇게 보는 분위기가 문단에 많아요. 그렇지 않나요?

 

 

권창섭 : 문단 내 성폭력 사태 때도,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 때도, 문제를 제기하고 고발하고 연대하는 운동의 방식이 주로 트위터의 해시태그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해시태그를 통한 운동은 속도도 가장 빠르고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있다는 연대감을 형성하기에 매우 좋아요. 그러나 한계점도 분명히 있죠. 해시태그를 의미하는 샵(#) 자체가 아홉 개의 공간으로 구획을 짓고 있잖아요. 그런 모양처럼 서로를 구분 짓고 단절하며, 배제하고 소외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진행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어요. 해시태그를 사용하는 운동은 형식 자체가 철저하게 개인적인 운동이고, 개인이 용기를 내서 공적 발언을 할 용기가 생겼을 때만 동참할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그 용기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동시에 이 해시태그와 함께할 자격이 있긴 한 건지 끊임없는 자기 검열 과정도 수반됩니다. 가령 문단 내 성폭력 사태 때도, '내가 남성인데 함께 목소리를 내도 되나?', '나는 유사한 지점의 폭력성이 없었나?' 하는 자기 검열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발언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상문학상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은 제가 가장 먼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를 사용하긴 했는데요. 쓰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난 어차피 문학사상사에서 업무 청탁이 올 일이 없는 사람인데…….' (웃음)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 시작해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작가들께서 함께 이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화제가 되며 문학사상사를 압박할 수 있었고 사과까지 받아낼 수 있었는데요.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뜨거움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등단 이후 아직 청탁 한 번 오지 않은 소설가인데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나?', '나는 등단을 아직 하지 않은 사람인데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이 해시태그를 사용할 수 있나?' 등등의 자기 검열과 자기 배제의 목소리들이 존재했어요. 해시태그 운동은 그 흐름이 너무나 빨라서 이 자기 검열과 자기 배제를 극복하고 운동에 동참하려 하면 이미 늦은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넌 왜 동참하지 않았어?'라는 가시적/비가시적 질책에 직면하게 되기도 하죠.
더 많은 공적 발화를 더 명확한 공적 형식으로 낼 수 있는 수행 체계와 추진 주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시태그 운동처럼, 개개인의 점(點)으로서의 발화를 집합하여 두꺼운 선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면과 입체로서 기능하는 시스템 말이죠. 자신의 발화 자격부터 검열해야 하는 모순과, 발화 전후의 가시/비가시적 위협을 감내해야 하는 긴장을 수반하는, 낱개로서의 창과 방패를 넘어선 더 큰 주체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노동조합의 형태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예전에는 작가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라 칭하는 것을 터부시해 왔습니다. 우린 '예술가'인데 무슨 '노동자'냐는 식으로. 반면에 지금은 '활자 노동자', '예술 노동자', '문학 노동자'와 같은 말들로 스스로를 언급하기도 해요. 자신의 작업 과정을 '노동'의 하나라고 인식하기도 할뿐더러 '노동자'라는 지칭에 대한 거부감은 예전과 같지 않죠. 또 하나 작가들에게 '노동자'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걸림돌은 전통적인 개념에서 '노동자'의 역인 '사용자'의 개념이 우리에겐 분명치 않다는 것일 텐데요. 제가 이번에 《AAA》라는 문예지에 작품 청탁을 받고 작업을 하고 다음에는 《BBB》라는 문예지와 엮여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제가 《AAA》에 소속된 노동자였다가 《BBB》에 소속된 노동자이고, 《AAA》와 《BBB》가 제 노동의 사용자이고 이렇게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타인도 그렇게 인식하지 않을 테고요. 매번 일시적이고 단발적인 청탁과 계약, 그리고 노동의 형태가 반복적으로 변이되기 때문에 사용자의 개념이 명확치 않고 따라서 '노동자'로서의 지칭에도 주저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꾸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매번 단발적이고 일시적인 관계가 반복 변이되는 배달 노동자들도 '라이더유니온'이란 조합을 만들었고요. 사실상 사용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타투이스트들도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기 위해 '타투유니온'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노동조합, 혹은 유니온의 형태를 상상하고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상상력을 더욱 발휘해야 할 것 같아요. 일시적이고, 느슨하며, 때론 실효성이 부족한 연대의 형태가 아닌, 영구적이며 집합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운동을 하는 단체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개인이 자신의 자격을 검열한 후에야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그마한 개개인의 창과 방패를 들어야 하는 방식을 넘어서, 대표성과 집합성을 가진 더 든든하고 강력한 방패를 함께 쥐고 추동하기 위한 힘을 함께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건 노동조합일 수도 있고 유니온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겠죠. 지금 우리에겐 그것이 없습니다.

 

정여울 : 너무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지금까지 노조가 없었을까요? (웃음) 그런 타투유니온이나 라이더유니온이 있다는 것이 저희한테도 되게 희망적인 신호인데, 또 어떤 의견이 있는지 들어 볼까요. 정용준 작가님, 미투에 대한 생각도 괜찮고 젠더에 관련된 얘기도 괜찮고요.

 

정용준 : 미투 이후 몇 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몇 년을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자로 또 한 명의 시민으로 미투가 바꾼 풍경과 세계 속으로 매 순간 한 걸음씩 걸어 들어 간 것 같아요. 분노와 슬픔, 허무와 조롱 한가운데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어느 때보다 주의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말 속에도 두려움과 떨림이 느껴집니다. 저는 학교에 있고 문단에 있고 지금은 그만뒀지만 잡지를 만드는 편집위원 자리에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했고 그들의 절망과 슬픔을 위로해 줘야 했어요. 괜찮다, 괜찮을 거다, 이런 식으로는 말 못 했고 그냥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죠. 또한 합평을 하는 시간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뜨겁게 논쟁하는 자리에 앉아 오가는 말을 듣거나 제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잡지를 만들 때는 기획하는 것, 작가들에게 청탁하고 어떤 텍스트를 다루는 작은 선택에서도 신중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만큼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이었던 거죠. 아직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하고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조금씩 움직이고 변했고 혹은 변하려 한다고 생각해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힘은 미투 이후 일어난 연대의 움직임과 용기를 내는 발언들과 고백들이었죠. 미투뿐만 아니라 어떤 부당함과 잘못 앞에 침묵하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공급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공평, 불공정의 문제도 다양하게 조명되고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봐요. 때문에 이번에 터진 이상문학상 문제도 그 영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발언하는 것, 문제 삼고 공론화의 장이 빠르게 형성되는 것은 분명히 미투가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풍경입니다. 윤이형 작가님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다른 걸 다 떠나 이 일로 절필을 선언하신, 아니 절필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저는 믿기지 않아요. 화가 나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아서 그 사건이 일어난 줄도 몰랐어요. 기자의 전화를 받고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죠. 저는 윤이형 작가님이 이상문학상을 받은 해 우수상으로 함께 실려 있었어요. 그 순간까지도 저는 우둔하게도 문제점을 몰랐고 느끼지도 못했어요. '그런 잘못된 조건의 계약서에 왜 사인을 했느냐?'는 질문 앞에 머리가 하얘지더군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도저히 솔직하게 답할 수 없었어요. 작가들이 성명서를 내고 각자의 채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순진무구하게 저는 계약서를 읽어 보지 않았어요, 이렇게 답할 순 없었습니다.

 

정여울 : 맞아요. 다 안 읽어 보죠.

 

정용준 : 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 작품집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계약서를 따로 읽어 본 적은 없거든요. 그냥 '재수록료 얼마 주지?' 이거밖에 생각 안 했어요. 저작권 문제 같은 건 제 책이 아니라서 그런 조항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너무 부끄럽고 모두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네요. 결과적으로 김금희 작가님과 윤이형 작가님 같은 분들의 행동과 발언이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고맙지만 미안하고 괴로워요. 솔직히 이 좌담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그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작가님들께 고맙다는 말과 괴롭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크게 봤을 땐 이런 변화가 좋지만 당사자들, 일선에서 싸우고 발언하는 이들은 소진되고 지쳐 갑니다. 발언하고 문제 삼고 공론화의 장이 마련되고 어떤 큰 바람이 붑니다. 하지만 그 바람이 바꿀 수 있는 건 혹은 바꾸고 있는 건 너무 작거나 제한적입니다. 글을 쓰고 텍스트를 다루는 자들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 봅니다. 작가로서는 작품 속에 문제의식이 담긴 글을 쓰고, 산문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사적인 어필을 할 수도 있겠죠. 또 이런 담론의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모으는 것도 있죠. 그리고 또 뭐가 남아 있을까요. 이성미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 저도 동의해요. 말과 글의 세계를 떠나면 아무도 모르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이게 불이라면 옆으로 퍼져 나가지 않고 위로만 타오릅니다. 거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 소진되고 불타고 있어요. 저는 그게 걱정이 됩니다. 애쓰는 사람들은 지쳐 가고 힘이 떨어지면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멀리 떨어져 나갑니다. SNS로 연대하는 작가들은 그 실감이 훨씬 크겠죠. 저는 SNS를 하지 않지만 최대한 그들과 연대하려 애를 썼어요. 걱정이 되는 사람들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윤이형 작가님께는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는 해시태그는 안 했지만 실제로 청탁에 응하지 않으며 업무 거부도 했고요. 그러면서도 한 편의 마음으론 희미한 허무함과 패배의식도 듭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지만 매 순간 한계도 맛보는 거죠.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고민하고 애쓰는 이들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그들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죠. 문예지 문제로 돌아가 보면 간절한 사람은 언제나 을이 된다고 생각해요. 문예지에서 작품 발표하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아요. 아주 심플합니다. 필자에게 고료가 얼마인데 글을 쓸 수 있겠냐 물어보고 필자가 괜찮다 하면 청탁이 이루어지고 발표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이 단순한 과정이 굉장히 오염되어 있어요. '청탁을 준다'는 것과 '투고를 한다'는 건 결국엔 똑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요. 청탁을 주는 건 출판사가 작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느낌이고, 투고를 하는 건 실어 달라는 요청인데 둘 모두 어떤 위계를 느낄 수 있는 문장입니다. '준다'란 말이 갖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있기 때문이죠. 나쁜 용어죠. 청탁은 물어보는 거고 요청하는 겁니다. 주는 게 아니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구두청탁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사석에서 '소설 쓰고 있어요?' '언제 한번 보여줘요.' '청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해 볼게요.' '물어볼게요.' '일단 저한테 보내줘 봐요. 읽어 볼게요.' 이런 말들에는 관심과 다정함이 묻어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작가를 작게 만들고 눈치 보게 만드는 나쁜 힘이 작용하고 있어요. 내가 청탁하기 전 너의 작품을 심사하겠다. 나한테 잘 보이면 혹은 나는 너에게 청탁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게 은연중에 전해지거든요. 그래서 청탁 문제는 앞으로 사석에서는 하지 말고 구두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화 혹은 메일로 공식적으로 물어봐야 해요. 회의 끝에 나온 공식 멘트로 말해야 합니다. 또 원고료도 적든 많든 반드시 청탁할 때 이야기해 줘야 해요.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단순히 원고료가 적다고 화가 나는 게 아니에요. 그걸 감추고 모르는 척하는 게 힘든 거죠. 이건 문예지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국가기관에서 요청한 어떤 일을 했을 때도 비슷했어요. 자문을 하거나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페이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거죠. 메일로 요청 문서가 와도 적혀 있지 않아요.

 

정여울 : 회의에 참가한 거예요?

 

정용준 : 네, 회의에 참가해 이야기를 나누고 끝나고 물어봤을 때도 관계자들은 어색하게 웃기만 하더군요. 그리고 한참 지나고 입금이 됐는데 너무도 적은 금액이어서 황당했던 경험이 있어요. 물론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라는 거 압니다. 말 그대로 금액이 너무 적어서 민망하거나 거절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말해 줘야 해요. 민망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용기를 내야 한다고 해도 무릅쓰고 말해 줘야 합니다. 문화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예지의 상징권력과 지원사업


 

 

정여울 : 그거는 우리 활자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제가 좀 더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봤어요. 도대체 왜 그럴까? 왜 구두로 청탁할까? 그리고 그것은 청탁도 아닌데 왜 구두로 청탁하는 척하면서 다시 연락을 안 할까? 왜 금액을 정확히 기재하지 않는 걸까? 물론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왜 이런 관행이 수십 년째 없어지지 않는가 생각해 보니까, 그분들은 그렇게 해서 그들의 문예지의 상징 권력을 유지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늘 남는 게 있었어요. 결국은 그 문예지의 편집위원이라든가 이사라든가 그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 권력을 이용해 온 거예요. 그래서 반성적인 성찰이 없어요. 우리는 '왜 청탁서 하나를 제대로 못 보낼까?'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이거는 우리 입장이고 그들은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거예요. 다른 작가들한테 물어보니까 이런 분도 있더라고요. 원고료나 강사료 같은 걸 처음부터 얘기를 안 해주면 아예 그 청탁을 안 받아버린대요. 그런데 이런 분들의 특징은 이제 그래도 좀 안정된 분들이에요. 그 청탁이 없어도 나는 살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이 생긴 분들은 그렇게 거절하더라고요. 하지만 신인작가나 젊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작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거절할 권리조차도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문예지의 상징 권력이라는 게 생각보다 엄청 큰 거죠. 문예지를 갖고 있거나 문예지의 편집위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은 굉장히 큰 힘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서 작가들에게 접근하는 문예지들은 일단 과감하게, 용감하게 거절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창작자들의 권리장전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런 식으로 원고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접근하면 아예 청탁을 못 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권력은 상식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안 돼요. 보이지 않는 권력은 더 위험하죠.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내가 싸우기 시작해야 해요. 일단은 부당한 요구사항이 있을 때는 분명히 항의를 해야 해요. 창작자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귀찮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표현하는 게 낫더라고요. 말을 안 하고 싸워 보지도 않고 그냥 물러나는 것보다는. 저는 원고료가 너무 적은 것 같다고 직접적으로 얘기해요. '원고료가 다른 곳에 비해서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올려 주실 수 없나요?' 하면 다들 당황은 해요. 당황은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본다고 해요. 그러고 조금이라도 올려 주는 곳이 훨씬 더 많았어요.

 

이성미 : 제가 등단 이후 지금까지 혼자 겪어 오면서 내린 결론은 그런 지면에 발표하지 않아도 작가 활동을 못 하게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고료를 너무 적게 주거나, 안 주거나, 원고료를 안 알려주거나, 정기구독을 요구하거나, 이런 지면들이요. 그런 지면에라도 발표를 안 하면 잊힐 것 같고 내가 써놓은 작품들을 어디에 발표하지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잖아요? 신인일 때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요. 그렇게 무례한 대우를 참으면서 작품을 발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거 아니라고, 거절해도 된다고, 단행본을 잘 준비해서 만회하면 된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작가들에게 전환의 기회는 단행본 작품집에서 온다고 보거든요. 단행본 시장이 더 활성화되어서 문예지보다는 이쪽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이 2000년대엔가 시작되었잖아요? 공적 자금이 투입될 때는 신생 영역이나 가능성이 있는 영역, 미처 자리를 못 잡은 영역을 지원해야 하는데, 지금의 문예지는 그렇지 않아요. 시장의 변화와 매체 환경의 변화, 작가라는 위치의 변화, 이런 환경 변화로 문예지가 변화해야 하는 시기에 공적 자금이 10년 이상 투입되면서 문예지가 굉장히 기형적으로 생존하게 되었어요.

 

정여울 : 문예지들이 그걸 노리게 된 거죠. 지원사업을요.

 

이성미 : 맞아요.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고 하면서 전자출판도 늦고, 오디오북도 늦고, 웹진이라든지 디지털 콘텐츠 개발이 많이 늦어졌는데,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의 문예지를 계속 붙들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 공적 자본을 계속 투입해서 유지하게 해줬고요.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도 출판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있는 곳에 지원기금이 갔잖아요?

 

정여울 : 굳이 지원해 주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던 거죠.

 

이성미 : 그렇죠. 변화한 환경에 맞게 잡지 형태의 변화가 이루어졌어야 할 시기에 기존 방식의 문예지를 고수하면서 결국 문예지 독자가 다 없어진 거예요. 요새 작가가 아니고서야 누가 문예지를 봐요? 작가도 잘 안 봐요. 그리고 볼 기회도 없어요. 도서관에 문예지가 들어오질 않아요. 저는 지방에 살고 있는데, 시립도서관에도 메이저 문예지 한두 종만 들어와요. 대학도서관에도 문예지가 많이 들어오지 않아서 찾아보기 어렵고요. 문예지를 웹 콘텐츠로 제작해서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든지 그런 쪽으로 지원했어야 해요. 지금 이 회의 자료를 보면서도 문예지를 계속 지원한다는 방향이 저는 걱정스러워요.

 

정여울 : 차라리 독립출판을 지원해 주는 게 낫겠네요.

 

이성미 : 네, 독립출판이나 전자출판처럼 매체 환경에 적응하는 콘텐츠가 독자를 만나야 하는데, 지금은 문단 안에서만 맴도는 문예지가 된 거예요. 독자들이 읽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잡지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 편집위원들의 권력이 되게 알량한 권력이 된 거죠. 제가 문예지가 어렵다고 말하는 게 화가 나는 게 뭐냐면, 시 원고료를 20년간 3만 원을 주고 있는 그 어렵다는 문예지들이 몇 년 전부터 상금 5백만 원, 상금 천만 원을 주는 문학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수상자 한 명에게 천만 원 상금을 주면서 필자들한테 계속 정기구독을 요구하고 원고료는 안 올리는 거예요. 문학상을 만들면 문예지가 알려지고, 상으로 인한 권위가 생기고, 작품집을 판매할 수 있고, 시집 자비출판 시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문예지 시장이 이렇게 왜곡되어 있는 상황인데, 기울어진 권력 관계나 시장에서의 무자비한 구조의 균형을 잡아 주는 쪽으로 공공지원이 이뤄져야죠.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회의 자료에 '불공정 신고를 활성화한다.' 이런 내용이 있잖아요? 불공정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 문예지는 발간 지원사업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질서를 잡아 주는 거예요. 회의 자료를 보면 아르코 현장소통소위원회에서 하는 일이니까 아르코 사업 중심으로 계획이 잡혀 있어요. 문학창작기금에서 어떻게 공정성을 확보할 것인가,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에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계약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들만 있죠. 저는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문학 지원과 정책은 아르코와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에서 담당한단 말이죠. 그런데 문학은 출판 콘텐츠화 되기 때문에 창작자의 권리들이 출판 과정에서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 연결해서 접근해야 돼요. 문학창작 지원만 공정하게 만들고 점검하는 일 갖고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거예요. 출판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에서 담당하잖아요? 또 저작권은 따로 한국저작권위원회와 문체부 저작권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있단 말이에요. 문학출판계 불공정은 이렇게 각각 접근해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됩니다. 현장소통소위원회가 주도하든지 해서 TF(task force)나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같이 맞물리게 해야 해요.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창작지원사업, 출판 담당부서의 출판지원사업,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불공정센터의 불공정, 이 파트들이 적어도 1년 정도는 매칭을 해서 문학출판계 불공정을 바로잡겠다는 목표를 갖고 일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실태조사도 아르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던 단체, 미선정 단체, 창작기금을 받은 작가, 이렇게 협소하게 조사해서는 안 돼요. 지원을 받은 단체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공정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답변할 텐데 과연 제대로 실태조사가 될까요? FGI,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가 현장 의견 청취의 효과는 있지만, 불공정과 저작권 침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광범위하게 약자들도 자기가 겪은 실태를 알릴 수 있도록 조사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특별 신고기간을 두고 예술인복지재단 불공정센터에 자신이 겪었던 문예지, 출판, 원고료, 저작권, 계약 관련 문제에 대해서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러면 신고가 없도록 출판사가 조심하고 개선하게 하는 효과도 있거든요.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갖는 캠페인 효과가 있어요. 예술계 성폭력 실태 설문조사를 할 때 그랬거든요.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조사에 응답하면서 예술인들이 자각이 되는 거예요. '아, 이런 것도 성희롱이구나.' 그 후에 피해 신고를 하기도 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보호해 주는 곳이 있다는 공적 신호를 받는 거죠. '문예지 원고청탁서에 원고료가 적히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지급일이 안 적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보았을 때, '이게 기재돼서 와야 하는 거구나.' '이런 건 불공정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교육 효과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실태조사를 좀 더 광범위하게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는 쪽으로도 하셔야 해요. 그런 곳에서 불공정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 다양한 사람들이 이 조사에 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작권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꼭 짚고 싶은 게,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는 저작권이나 계약, 문예지 문제는 민간 영역이고 개인 상호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공공이 관여하기 힘들다는 관점을 갖고 있어요. 특히 변호사들이 그렇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저작권 계약이 지금 자유롭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호간의 계약이라고 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저작권 조항에 동의하지 않으면 출판의 기회가 없어지는 작가들의 위치가 있으니까요. 출판사에서 그런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 작가들이 수정을 요구한 적이 거의 없어요.

 

정여울 : 네, 계약서의 모든 조항이 출판사에게 유리해요. 그걸 작가들이 잘 몰라요.

 

이성미 : 공공기관도 지금 그러고 있잖아요?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면 책임지라고 하면서 정작 결과물의 저작권은 양도하라는 계약서를 내밀잖아요. '저작권 문제는 불공정과 다르다'고 하면서 협소하게 접근할 게 아니라, 문학출판계의 기울어진 권력 관계로 인해 창작자가 자유로운 의지로 계약 내용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전제하에 저작권 문제에 접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었으면 좋겠고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공공문화재단 같은 공적인 기관부터 저작권을 비롯해 참여비 명시 등 공정하고 확실하게 하셔야 합니다. 문체부 저작권정책과에서 공공 부문 공모전 저작권 실태조사를 해서 발표했던데, 공공 부문만이라도 2차 저작권을 비롯한 저작권 양도를 요구하지 않는 것 정도는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공공 저작물의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정부가 저작권을 소유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콘텐츠를 누리게 하는 게 정책과제인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저작권을 양도받지 않고 이용허락 계약만 해도 공공의 이익을 누리게 할 수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의 저작권은 침해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누리게 하겠다는 방향은 재고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여울 : 그걸 언제 그렇게 했다고요?

 

이성미 : 공공기금이 들어간 학술사업이나 용역사업은 공공기관에 저작권을 양도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국고가 들어간 결과물은 모든 국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저작권을 소유해야 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공무원들이 많습니다.

 

정여울 : 창작자의 권리를 빼앗아서요?

 

이성미 : 네, 어떤 지역 문화재단에서는 연극 창작 지원금을 주면서 저작권 양도 계약서에 서명하게 해요. 그래서 그 극단은 재공연을 할 때마다 지자체와 지역 문화재단의 허락을 받고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여울 : 자기들이 만든 콘텐츠를 사용하는 데 지자체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이성미 : 네, 너무 어이없죠. 그러니까 민간 영역이기 때문에 공적 기관이 관여할 수 없다고 하면서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라도 공정한 기준을 확립하고 시행하라는 거죠. 그래야 민간 영역에서 공적 기준을 참고해서 따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공적 영역이나 민간 영역이나 똑같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문제죠.

 

정용준 : 이런 좌담을 하고 나면 속은 시원한데 집으로 돌아갈 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런 말들이 전해지지 않고 반영되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죠. 아마 이런 내용이 문예지에 곧바로 반영될 수 있는 건 《문장 웹진》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다른 문예지 편집위원한테 전화해서 너희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수가 없잖아요. 부탁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니까 계약서 명시나 청탁과 관련된 모든 논의가 퍼져 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나오는 고민들은 소설 쪽에서는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소설은 잡지 종류도 별로 없지만 원고료를 안 주지는 않거든요. 대부분 시 쪽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들은 오늘의 논의 그다음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계약서의 경우엔 공공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계약의 문제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자본의 논리가 들어가고 출판사의 입장과 작가가 지닌 영향력도 다르기 때문이죠. 예전에 출판 관계자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슬프게 동의되는 지점이 많았어요. 요지는 작가들마다 경쟁력이 다르니까 출판사 입장에서 당연히 계약서를 다르게 작성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10만 권 팔리는 작가와 천 권 팔리는 작가에게 출판사 입장에서는 접근법이 다를 수밖에 없죠. 냉정하지만 시장의 논리로 말해버리니까 할 말은 없더군요.

 

정여울 : 편집자가 그렇게 얘기를 해요?

 

정용준 : 네. 하지만 수긍하는 면이 많습니다. 제가 말하는 공공의 기준은 모든 작가들끼리의 동일한 기준이 아니라 시작하는 작가들과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다수의 작가들을 위한 기준을 말하는 겁니다. 어떤 표준이 필요해요. 출판사들에게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표준계약서 기준을 알려달라고 해서 그걸 신인들에게 공개해 주는 거죠.

 

이성미 : 작가들이 계약서를 바꿔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출판사도 작가도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작가가 어렵게 얘기를 꺼내도 출판사에서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면서 커트하는 경우가 많아요. 계약서라는 게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과 문화가 필요합니다.

 

정용준 : 작가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에이전시 개념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혼자 고민할 필요 없이 어떤 작가가 계약서를 보고 잘 모르면 이런 걸 상담해 줄 수 있는 분들에게 중요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객관화된 의견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이성미 : 지금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고 있지 않나요? 저작권 법률상담, 컨설팅, 계약 상담을 하고 있는데 작가들이 잘 모르죠.

 

정용준 : 그렇군요. 그럼 《문장 웹진》에 배너로 만들어주면 좋겠네요.

 

이성미 : 서울시에서 일러스트 분야 불공정 신고를 받을 때 홍대 앞에 임시 공간을 열어서 특정 기간 동안 운영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문학 작가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 홍보하거나 지원사업 신청기간 때 집중적으로 홍보해도 좋고요.

 

정여울 : 꼭 《문장 웹진》이 아니어도 《문장 웹진》처럼 많이 알려지고 공적인 영역을 확보한 그런 매체에서 표준적인 작가의 권리를 홍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원고료나 원고료 지급 기한에 대한 약속 같은 여러 가지를 《문장 웹진》 같은 공적인 매체를 기준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퍼졌으면 좋겠고요. 《문장 웹진》을 잘 운영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잘하고 계신다면 원고료도 좀 올려 주시고 원고료 기한도 확실히 해주세요. 그리고 《문장 웹진》 내에서 아예 Q&A 코너를 만들어서 성폭력이나 저작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답변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작가들이 《문장 웹진》은 다 알지 않나요? 잘 알려진 매체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미 : 계약과 저작권 상담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이메일로 보내서 알려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작가회의, 시인협회, 소설가협회, 문인협회에 알려서 회원들에게 메일로 발송해 달라고 하면 협회에도 좀 자극이 될 테고요. 작가 단체에 별 기대는 안 합니다만, 회원들에게 그런 일이라도 해줘야죠.

 

 

 


새로운 플랫폼의 형성


 

정여울 : 그리고 또 플랫폼의 문제가 중요한데요. 《문장 웹진》 작가들의 원고료 명목으로 예산이 어느 정도 책정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에 쏟을 돈을 《문장 웹진》의 원고료로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신인들이나 젊은 작가들이 원고료를 받으면서 새로운 원고를 쓸 수 있게 하고, 또 《문장 웹진》에서 원고청탁도 많이 하고요. 그렇게 쓸데없이 지출되는 예산을 적절하게 쓰는 거예요. 일단 유명한 문예지들은 지원이 필요 없는데 계속 지원받고 있잖아요. 진짜 중요한 건 독자와 작가의 만남인데 그런 건 없이 문예지들과 출판사들만 배를 불려 주고 있는 거예요. 문예지들의 상징 권력을 유지해 주면서요. 필자들한테 어떻게든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살 수 있겠구나. 글을 씀으로써 내가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이런 희망을 줘야 더 좋은 책이 나오고 더 좋은 작가들이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날 노벨문학상 노래만 부르면 뭐 해요. 그러니까 창작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으로 변해야 하는 거죠.

 

권창섭 :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플랫폼에 많은 관심을 줘야 할 것 같아요. 최근에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들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매번 간절하게 문예지 청탁만 기다리던 방향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직접 형성하는 것으로 간절함의 방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마치 'K-POP 스타'나 '슈퍼스타 K'에서 한 라운드 더 올라가기 위해 매번 간절하게 선택과 호출을 기다리기만 하는 처지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죠. 최근에 새로운 길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간 이슬아》부터 시작하여 지금 여러 작가들이 많이 시도해 보는 메일링 시스템이 대표적일 테고요. 문보영 시인 같은 경우는 자신의 글을 우편으로 보내기도 해요. 차현지 작가는 자신이 직접 큐레이터가 되는 《S-R-S》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고요. 청탁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글을 직접 발표하기 위해 만든 《던전》이란 플랫폼도 최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웹소설과 장르문학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조아라》, 《문피아》, 《브릿G》까지도 언급할 수 있겠죠. 지금 예술진흥을 위한 공공의 관심과 국가의 지원도 기존의 문예지들뿐만이 아니라 이 새로운 플랫폼들을 발견하고 관심을 두었으면 해요. 기존의 문예지들은 작가와 독자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가령 A라는 작가가 봄에 《BBB》란 문예지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여름에 《CCC》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했다면, A작가의 팬인 독자가 A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 문예지들을 매번 사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일부러 열심히 검색을 하지 않는다면, A작가가 언제 어디에 발표했는지 알 수도 없고요. 지방 문예지나 군소 문예지는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지 A작가의 작품을 읽기 위해 굳이 읽고 싶지도 않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까지 함께 묶인 문예지를 사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죠. 위에서 언급한 시스템들은 다릅니다. 애초에 작가들이 '직접'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길 원하기에 찾아낸 길이고, 갈고닦은 길이기 때문이죠.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작가와 독자가 더 편안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장을 형성하는 것이 예술진흥을 위한 공적 관심의 목표라면, 바로 이 새로운 플랫폼들과 유관하게 지원해 주었으면 해요. 지원금 방안은 물론이고, 작가들에게 무료로 디자인 교육을 해준다든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 지원을 해준다든가, 서버나 홈페이지를 마련해 준다든가, 홍보를 함께 도와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다양한 지원 방향을 발굴했으면 합니다. 바로 그곳에 간절한 사람들도, 가장 능동적인 독자들도 있거든요.

 

이성미 : 작가에게는 독자와 수용자가 있는 곳에 작품이 발표된다는 게 의미가 크거든요. 그래서 발표 지면이 필요한 것인데, 지금의 문예지는 독자를 만나지 않으니까요. 독자가 안 사 봐요.

 

정여울 : 문예지도 독자를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요. (웃음)

 

이성미 : 그렇죠. 사실은 문예지가 독자를 버린 거죠. 문학계 내부 종사자와 지망생만 독자층으로 보고 문예지를 만드니까요. 플랫폼이나 웹진 같은 곳에 더 많이 투자해서 훨씬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래서 문예지나 출판사의 인맥에 줄을 서지 않아도 더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공적인 지원의 방향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덕희 : 저는 질문을 드려 보고 싶은 게 좀 있는데요. 선생님들은 이제 갓 등단한 신인들이 만약에 이렇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하실지 궁금해서요. 만약에 후배가 '청탁이 너무 없는데 저 어디에 투고해 볼까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면 선배로서 어떻게 대답해 주실지 궁금해요. 제 경우에는 투고를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거든요. 편집위원들의 마음을 역으로 짚어 봤을 때, 그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읽어 온 작품들보다 좋은 작품들을요. 혹은 자기가 관심을 덜 두고 있던 작가에게서 좋은 작품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그런 생각이 없는데 당장 누구한테 '하나 합시다.' 말하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요. 물론 우리의 스테이지를 우리가 만들자는 운동도 좋고 그런 방향도 긍정적인 파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만, 이 투고 문화에 대해서도 너무 터부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투고 작품이 만약에 반려되면 내 자존심이 크게 다친다, 나는 예술가니까 이렇게 굽히면서 들어갈 수는 없다, 하는 이런 생각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거죠. 저는 편집위원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편집위원들이 좀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그들을 뭉뚱그려서 권력을 휘두르는 대상으로 볼 필요가 없다면 투고 문화에 대해서도 고민을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청탁만 기다리고 있으면 권익을 침해하는 매체라도 오랜만에 온 청탁이니까 응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게 악순환이 돼요. 그런 출판사나 문예지의 청탁을 받아 주는 걸 보고 자기네의 부족한 청탁도 흔쾌히 받아 줄 것 같아서 청탁하는 경우도 생긴다고요. 그러니까 계속 그 장에서 자꾸 소모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청탁은 받지 말라고, 자신 있게 '안 하겠습니다. 저는 못 합니다.'라고 얘기하라고 그러면 신인들은 '청탁이 없는데 어떡해요.' 이렇게 나온다고요. 그때 투고를 권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정용준 : 투고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최근엔 실제로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등단에 대한 회의감이나 권위에 대한 비판의식이 굉장히 강해졌기 때문이죠. 《문학3》 같은 문예지는 아예 '투고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다른 차원으로 투고를 하려는 심리엔 더 나은 지면을 통해 발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지면 자체는 많고 채널도 많아요. 하지만 어떤 권위를 지닌 문예지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바꿔 말하면 조금 더 존중받는 지면이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신춘문예 얘기를 하셨는데, 문예지에서 신춘문예 특집을 하잖아요.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가장 나은 작품을 쓴 작가에게 청탁하겠다는 기획인데 선정하는 대상이 기본적으로 중앙지들이죠. 공식적으론 부정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문예지도 비슷한 상황인 거 같아요. 발표하면 읽히고 거론되는 지면이 따로 있다고 믿고 있는 거죠. 작가들이 투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점은 지적할 수 있지만 대책은 마련하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죠.

 

이성미 : 공공 문학창작기금을 신청할 때, 웹진이 아닌 문예지에 기발표한 작품이라는 조건이 있어요. 더 이름 있는 지면에 발표하고 싶어서 투고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면이 없는 사람은 투고를 해서라도 문예지 지면을 얻어야 하는 여건이 있다는 거죠.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지원요강을 보니까 시 부문은 1차 심사에 미발표 작품을 내고, 2차에는 기발표 작품을 추가로 내게 되어 있어요. 몇 년 전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으로만 창작기금을 신청할 수 있게 했어요.

 

김덕희 : 활동 실적을 그걸로 제출하라고 그러지 않나요?

 

이성미 : 활동 실적 증빙이 아니라 아예 심사 대상을 문예지 발표 작품으로만 한정한 적이 있어요. 지금 문예지 지면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있는데 문예지 지면에서 발생하는 혜택의 차이가 공공 문학창작기금을 받는 영역까지 연계되어 격차가 심해지는 거거든요? 미발표 작품으로만 심사할 수도 있고, 미발표와 기발표 작품 상관없이 할 수도 있는데, 문예지에 발표됐던 작품으로만 지원하라고 하면, 결국 불공정 행위를 하는 잘못된 문예지에라도 작품을 발표해야만 창작기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등단제도가 문제가 됐을 때도 등단 작가들이 갖는 혜택들이 있잖아요. 등단 작가만 레지던스에 지원할 수 있다든지, 등단 작가만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든지, 이런 식으로 혜택이 연계되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거는 바꿔 주셨으면 좋겠어요. 공적인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정여울 : 얘기하다 보니까 문예지들이 왜 그렇게 갑질을 하는지 알겠네요. 이 구조는 그냥 문예지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이익인 거예요. 문예지를 소유하고 운영하고 지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많은 부가적인 이익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갑질을 하는 거였어요.

 

권창섭 : 등단이란 건 출판사나 언론사 등을 통해 사적으로 부여된 권위인데, 국가에서 공적으로도 승인해 줄뿐더러 주요 기준으로 삼아도 되는가 하는 말씀인 거죠?

 

이성미 : 공공의 입장에서는 국고로 직업적인 창작자를 지원해 주려면 어쨌든 직업적인 창작자와 동호인 활동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있어야 하니까 등단을 기준으로 정한 거겠죠. 그 기준이 협소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은 넓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경우에는 예술인 증명 요건을 ISBN이 있는 단행본을 출간한 경력이 있거나, 몇 년 이상 발행된 문예지에 발표한 전력이 있거나, 예술 활동 수입이 있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화했어요. ISBN이 없는 독립출판물은 아직 해당이 안 돼요. 그래서 제가 아는 소설 쓰는 친구는 심리 상담이 필요해서 예술인 증명을 신청했는데, 요건을 충족 못 해서 상담을 못 받고 있어요. 제가 아까 얘기한 문제는 이것과는 좀 다른 얘기예요. 문예지 발표 지면을 갖느냐 못 갖느냐에 따라 이미 차이가 발생했잖아요. 그 차이를 문학창작기금의 조건으로 설정해서 또 다른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이곳에서의 불이익이 저곳에서의 불이익으로 연장되는 거죠. A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 B의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더구나 공공 영역이 굳이 기준을 그렇게 둘 필요가 있냐는 거예요. 발표 지면을 많이 가진 분들은 이게 불리한 조건이라고 못 느끼겠지만, 청탁을 많이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조건을 못 채울 때가 있거든요. 지역에 계신 작가들, 중앙에서 책을 출간하지만 거주지가 지역이거나, 또는 청탁이 많지 않은 작가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문예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라고요. 이분들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요. 문예지 발표 작품보다는 출판된 책을 제대로 심사하고 봐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청탁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한테는 문예지가 없어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거예요. 이게 뭘 뜻하느냐면, 지금의 문예지 발표 시스템이 작품 발표의 절대적인 형식이 아니라는 거죠. 저는 문학 작품 발표가 출판 중심, 단행본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그런 필요성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제가 시집을 묶어 보니까 한 권 단위의 사고를 잘 못해요. 청탁이 올 때마다 한 편씩 써서 발표하기 때문에 한 권을 고려하면서 시를 쓰지를 않거든요. 한 권 단위의 호흡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한 권의 시집으로 묶으려고 하면 통일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거죠. 책 한 권을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서 몇 년 동안 그 사유와 형식에 집중해서 책을 내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 문예지 발표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작가의 호흡에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은 결국 책의 형태로 독자들을 만나잖아요. 제가 시집을 읽을 때 어떤 걸 느끼느냐면, 시 한 편 한 편이 다 좋고 다 잘 써요. 그런데 그 책을 딱 덮고 나면 이 작가의 이 책의 특징과 저 작가의 저 책의 특징이 구별이 잘 안 돼요. 한 권으로 구별되는 선명한 주제의식이나 형식적 차이가 별로 없는 거예요. 장편소설은 어차피 한 권이니까 다르지만, 단편소설집도 마찬가지예요.

 

정여울 : 단편집 해설 쓰는 게 그래서 어려워요.

 

이성미 : 네, 그럴 것 같아요. 단편집도 그때그때 발표한 것들이 8편이 되면 묶어서 내는 거니까요. 그리고 출판사가 어떻게 하고 있냐면, 문예지에 8편의 단편이 다 발표되어야만 단편소설집을 내줘요. 이것도 되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8편을 다 써놨고 출간 심사를 통과해서 책을 출간하기로 했는데도 아직 문예지 발표가 안 된 단편들이 있다고 출판사에서 출간 일정을 안 잡아 주는 거예요. 어디라도 다 발표를 해야만 책을 내준다고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요?

 

정용준 : 네, 그게 일반적이죠.

 

이성미 : 지면을 늘 받는 사람들은 한 권 분량이 모이면 묶어서 책이 나오겠지만, 소설은 지면이 적으니까 지면을 못 얻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 사람들은 한 권 분량의 작품을 다 써놓고도 책을 못 내고 1년, 2년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단지 문예지 지면 때문에요. 아까 말씀드린 것과 똑같은 문제예요. 문예지 지면의 차이가 단행본 출간 기회의 차이로 연결되는 거죠. 바뀌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문예지 지면이 창작기금의 조건으로 연결되는 것도 바뀌어야 합니다.

 

정여울 : 네, 아쉽지만 우리가 좌담 시간을 벌써 넘겨서요. 오늘 이 말을 꼭 하려고 준비해 왔는데 못 한 게 있거나, 아니면 얘기하다 보니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나,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말씀하신 뒤에 아쉽지만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요.

 

권창섭 : 아까 얘기가 나왔으면 좋았을 테고, 정말 사소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계약서나 청탁서에 원고료 지급일도 반드시 명시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원고가 늦으면 늦는다고 쪼임을 당하는데, (일동 웃음) 반대로 우린 원고료 지급일이 안 적혀 있으니까 돈이 왜 안 들어오느냐고 출판사를 쫄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나중에 실태조사를 하실 때 지급일을 적고 있는지도 포함해서 조사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정여울 : 오히려 기업의 사보에서는 그런 걸 기재해 주시더라고요. 저는 사보에도 에세이를 쓰는데, 사보들은 지급일이 늦으면 늦어서 죄송하다고 메일도 보내요. 근데 문예지들은 안 그러더라고요.

 

권창섭 : 그리고 작가별로 지급 금액이 편차가 있는지, 그 문예지로 데뷔한 작가의 작품 게재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성비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상세한 조사들이 필요해요. 단지 원고료 문제뿐만 아니라 각 출판사 문예지의 구성 방식이 어떠한지 다양한 측면에서 조사를 해주시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이성미 : 실태조사 하실 때 문학출판사의 편집자를 대상으로 FGI(집단심층 면접)나 IDI(심층 인터뷰)를 하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출판사에 현직으로 계신 분들은 어렵겠지만, 이전에 문학출판사를 다녔던 편집자들의 얘기를 들어야지 입체적으로 실태가 드러나거든요. 작가들은 출판사가 내놓는 입장만 듣기 때문에 모르는 것들이 있어요. 실제로 원고료는 어떻게 지급하고 있는지, 계약이 어떻게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이런 거는 편집자들이 잘 알아요.

 

김덕희 : 기회가 있으면 논의해 보고 싶은 게 저자와 문예지 간의 편집권 문제가 있어요. 작품에서의 어떤 표현에 대한 저자와 편집자의 의견 차이 말이에요. 작가는 작의에 따라 일부러 어문규칙과 다르게 표기한다든지 문장의 구조가 어색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과감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편집부 직원들이 그쪽 편집 방침에 따라 저자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물론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결국엔 명백한 오기나 비문으로만 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편집자의 판단이나 출판사의 방침을 일방적으로 적용해서 해소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단 말입니다. 과연 어떤 의견들이 나올지 궁금해지네요. 작가의 힘이 강하면 작가의 의견이 수용되고, 문예지의 힘이 강하면 그런 요구는 묵살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꼭 함께 논의해 보는 기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용준 : 오늘 얘기한 것 중에 십 퍼센트라도 바뀌거나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열심히 말을 한 보람을 느껴 보고 싶은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뭐랄까, 100명의 사람이 먼지를 뒤집어썼는데, 그중 5명만 자기가 그걸 알고 샤워를 하는 것 같아요. 그들만 계속 씻고 또 씻는 거죠. 이제 변화는 높게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옆으로 번지는 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여울 : 맞죠. 피해자들만 계속 반성을 해요.

 

정용준 : 오늘의 논의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그동안 제가 이런저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지 그걸 겪는 당시에는 잘 대응하지도 못했고 지식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문단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땐 좋아진 것과 노력하는 이들을 고려해 가며 말하는 게 좋겠어요. 최근의 젊은 작가들과 평론가들, 젊은 편집위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부끄러움과 예민함을 갖고 섬세하게 다가가고 있거든요. 저는 그들이 고민한 끝에 얻어낸 인식과 상식, 보편과 어떤 기준은 이전의 문단 문화와는 모든 면에서 다르거나 최소한 달라지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들에게는 응원과 칭찬을 해주면서 이런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권창섭 : 딱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싶은데요. 제가 지금 이 기획회의 참여자를 다 살펴봤는데, 참여자들이 그래도 다들 책 한 권 이상을 낸 중견급 작가들이라고 생각이 돼요. 여기서는 지금 제가 제일 어리려나요? 그럴 것 같은데요. (웃음) 그런데 저도 마흔 살이고 등단 6년차거든요. 이보다 훨씬 더 젊은 세대의 작가들로 이뤄진 좌담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다음 회차는 이미 구성원이 정해졌고, 3회차의 내용은 아마 젊은 작가나 신인작가를 대상으로 하기엔 힘들 것 같은데요. 연령 자체가 젊은 신인,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 혹은 등단이란 제도를 아직 통과하지 않은 작가, 혹은 거부한 작가, 또 지방에서 활동하는 작가, 시나 소설 같은 전형적인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문학을 하는 작가 등, 이 좌담의 구성원을 꾸리는 대상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미 : 네, 문제를 제기했던 신인작가들,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좌담을 기획하면 어떨까 해요. 하나만 더 말씀드릴게요. 공공기관의 기금 지원을 받은 사업에서는 출판사가 체계적으로 절차에 따라서 진행을 하는데, 아닌 경우에는 계약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 그런 것도 점검하는 방안이 있을지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여울 : 네,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사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으실 테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이제 마무리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일을 여러 번 해봤는데, 이 창작자들의 권리 문제에 대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그래도 가장 꾸준하게 관심을 가져 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립적인 곳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우선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자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일을 다른 출판사나 작가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작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문서로도 배포하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홍보하고요. 상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표준을 홍보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큰 역할을 해주셨으면 하고요. 이 저작권 가이드라인, 젠더 가이드라인은 꼭 실행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성인지 감수성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생기게요. 창작자 본인이 일단 그런 인식을 장착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계약서가 오면 뭐든지 다 읽어 봐야 해요. 아무리 귀찮아도 그 계약서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읽어 봐야 해요. 우리가 그걸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한 것도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이드라인의 형태로 만들어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리고 저는 이 모든 문제에서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을 너무 쓰고 싶어서 이 자리까지 와 있는 거잖아요. 제가 인문학 강연이나 글쓰기 강의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분들이 바로 작가 지망생들이예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와서 선생님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상담을 해요. 그러면 예전에는 제가 '얘야, 작가가 되는 건 너무 힘들어.' (웃음) 하면서 다른 걸 하면 안 되겠냐고 그랬어요. 그땐 제가 너무 고생만 하고 있었으니까, 저처럼 고생하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인데, 그게 참 잘못된 태도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죠. 지금은 진정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우리는 미래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의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이후에 올 미래의 작가들, 작가 지망생들이 이런 부당함 때문에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부디 한때의 담론으로 소비되지 않고 반드시 현실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를 소망합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폐회〉

 

 

 

 

 

 

 

 

 

 

 

 

 

 

 

정여울 사회 / 정여울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인문학과 여행의 만남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인문 교양서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등과 『빈센트 나의 빈센트』, 『마흔에 관하여』, 『월간 정여울』, 『공부할 권리』, 『그림자 여행』,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시네필 다이어리』,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권창섭 참여자 / 권창섭

2015년부터 시인으로 활동중

 

김덕희 참여자 / 김덕희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전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급소』가 있으며 제23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성미 참여자 / 이성미

시인.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칠 일이 지나고 오늘』 출간.
여성문화예술연합(WACA)에서 예술계 성폭력 해결을 위한 정책활동을 하고 있다.

 

정용준 참여자 /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펴낸 책으로 『가나』, 『바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프롬 토니오』, 『유령』, 『세계의 호수』 등이 있습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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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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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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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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