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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2회)

  • 작성일 2022-09-01
  • 조회수 1,150

[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2회)

 

 

 

 

ㅇ 함께한 사람들 : 은종복, 이진아, 이상영, 김숙이, 이진희
ㅇ 책 :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 2022)
   - 수록작 :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김멜라 「저녁놀」, 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지연 「공원에서」, 김혜진 「미애」, 서수진 「골드러시」, 서이제 「두개골의 안과 밖」
ㅇ 때 : 2022년 8월 9일 화요일 저녁 7~9시
ㅇ 곳 : 책방 〈제주풀무질〉

 

 

 

 

 

이야기 나눈 것

 

은종복 : 오늘 모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함께합니다. 우리 모임은 돌아가면서 사회를 보는데 오늘은 제가 할게요. 먼저 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죠. 이 책에는 일곱 사람이 쓴 일곱 개 소설이 있지요. 먼저 마음에 드는 소설이 무엇인지, 왜 마음에 들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이진희 : 저는 김병운이 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퀴어(Queer), 게이(Gay), 폴리아모리(Polyamory) 같은 단어들의 뜻을 정확하게 몰라서 사전을 찾아서 공부했네요. 이 소설을 읽으며 제가 그런 말들을 알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구나 싶었지요. 다시 말하면 이성애 말고 다른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열심히 알려 하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또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별 어려움 없이 기득권을 누리며 살았구나 생각했어요. 김지연이 쓴 「공원에서」를 읽으며 제가 여자로 태어나서 느끼는 소수자의 삶을 다시 한 번 알았어요. 남자들은 어두운 밤에 공원에 혼자 갈 수 있지만 여자 혼자 밤에 공원을 산책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이 소설에서도 밤에 산책하다가 남자에게 해코지를 당하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소수자일 수밖에 없네요. 그래서 여자들끼리 연대를 하나 봐요. 요즘은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아요. 아니 젊은 작가들 생각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저는 40대 후반으로 집이 있고 4인 가족이 평범하게 살아요. 내가 기득권을 누리며 사는구나, 그래도 이 소설들을 읽으며 잘못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숙이 : 이 책을 읽으며 젊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여다봐서 좋았어요. 작가들 이름이 특이해요. 임솔아, 김멜라, 서이제 같은 이름은 많이 쓰는 이름이 아니죠. 아마도 작가 부모님들이 좀 깨어있고 자식들을 자유롭게 키우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소설가가 되었고 이런 글들을 쓰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제 딸 이름도 좀 특별하게 지었어요. ‘이미지’예요.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 그런지 제 딸은 상상력이 풍부해서 엉뚱한 짓을 많이 하죠. 저는 김멜라가 쓴 「저녁놀」이 와 닿았어요. 섹스 파티를 하는데 도서관에 나오는 이름을 쓴다는 것이 참 신선했어요. 이 책 57쪽을 볼게요. “말의 뉘앙스와 심미적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눈점은 못생긴 말 모텔을 도서관으로 바꾸었다. 콘돔은 책, 섹스는 독서로 하자고 했다. 가령 ‘도서관 가서 책 읽을까?’라는 말은 ‘모텔에 가서 콘돔을 끼고 성행위를 즐기자’라는 뜻이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 두 사람은 아주 사랑하는 사이죠. 하지만 사회는 동성 간의 사랑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아요. 그들만이 누리는 비밀 말을 만들어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이 참 신선하면서 눈물겹네요. 또 이 작품에서는 서로를 본명 대신 눈점, 먹점이라고 불러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줬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이름을 자기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만들어서 부르죠. 이 책 55쪽 끝과 56쪽 앞을 볼게요. “두 여자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애정 표현을 하기 녹록지 않은 세상이라 둘은 ‘지현’과 ‘민영’이란 이름 대신 별명을 지어 불렀다. - 눈점이 어때? 지현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 이름을 자기의 애칭으로 제안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답게 지현은 눈이 점만 한 캐릭터를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로 여기며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눈이 점만 한 캐릭터를 그렸다. 점만 한 눈을 가진 얼굴에 볼이 잘 빨개지는 그 캐릭터는 예민하고 감성이 풍부한 지현의 성격과 닮아 있었다. - 그럼 난 먹점이 할게. 민영은 눈점이란 이름에 맞춰 자신의 별명을 만들었다. 윗입술 오른쪽에 작고 까만 점이 있는 민영은 어려서부터 주위 어른들로부터 입술에 난 그 점 때문에 평생 먹을 복이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언뜻 김 가루나 검은깨가 붙은 것처럼 보여 그 점이 싫은 적도 있지만 민영은 눈점이란 별명에 맞춰 기꺼이 먹점이 되었다. - 먹점아, 보고 싶어!” 그들은 본명을 부르지 않아요. 먹점 눈점이라고 부르며 좀 더 자유롭게 연애를 하지요. 얼마나 서로 사랑하면 그럴까 싶네요. 사실 50대 후반인 저는 젊은 사람들의 동성연애가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럴 수 있구나, 이렇게 여자들끼리도 깊게 사랑을 나눌 수 있구나 생각했지요. 나와 성정체성은 다르지만 그들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영 : 김혜진이 쓴 「미애」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 서로 책읽기 모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가치가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속에도 계급과 계층이 나타나요. 잘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죠. 그들은 그렇게 연대를 하면서 마을 청소 일도 하고 마을에서 일어난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각자가 좀 더 높은 곳에 있다고 자만하는 것 아닐까요. 임솔아가 쓴 「초파리 돌보기」가 나오는 10쪽 마지막과 11쪽 앞을 볼게요. “원영은 1978년 가발 공장 취업 이후 외판원, 마트 캐셔,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볼펜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 등을 거치며 쉬지 않고 일해 왔다. 그럼에도 ‘오십대 무경력 주부’로 취급되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 자체가 드물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일을 하느냐고 했다. 집에 있어도 되지 않느냐 했다. 딸에게 개인 교습을 시켜 줄 수는 없었지만, 학원에 보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었던 시절에도 원영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학원비 몇 푼 버느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낫지 않냐는 식이었다. 원영은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여느 사람처럼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삼십삼 년 동안 그랬다. 텔레마케팅 사무실은 창문이 없긴 했지만 무제한으로 믹스 커피를 제공하는 탕비실이 있었고 천장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있었다. 칸막이가 설치된 책상이 모두에게 제공되었다. 가져 본 적이 없는 자신만의 책상이었다.” 이 글을 보면 여유가 있는 사람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집에서는 가질 수 없는 책상을 텔레마케터로 일을 해야만 자기 책상을 갖는다는 것은 참 슬픈 현실이지요. 소설 「미애」에서도 굴욕을 받으면서도 자기보다 돈이 많은 주부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못 가진 사람만이 느끼는 아픔이지 싶어요. 「미애」 199쪽을 볼게요. “저기 아파트 단지 뒤쪽에 샛길을 막는다는 이야기 들었죠? 보안 때문이라고 하는데,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고 주변 동네 분들은 어떡해요? 다 그 길로 다니잖아요. 저희라도 나서서 이야기해야 해요. 보안이니 안전이니 다 좋지만 이기적이잖아요./ 대담하게 어떤 일을 도모하자고 제안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비장하게까지 여겨져서 사정을 잘 모르는 미애 조차 숙연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 모습들이 놀랍고 얼마간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가 없지 않았으나 미애의 눈에 점점 또렷하게 보이는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이었다. 그들에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그렇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을 지켜 나갈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자신을 그 모임에 끼워 준 진짜 이유라는 것을 미애는 모르지 않았다.” 살면서 여유가 있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치가 되죠. 저도 교사 생활을 오랫동안 했어요.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 여유를 부리며 이런저런 일에 끼어들었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 위에서 가르치려 했지요. 여유가 있어야 활동을 하지만, 그 여유 때문에 자기기만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소설 「미애」는 말해 준다고 생각해요.

 

김숙이 : 「미애」를 읽고 평론가 선우은실이 쓴 글이 다가왔어요. 228쪽이에요. “‘미애’는 자신의 올바름을 시혜(施惠)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한 부분을 거래의 조건으로 저당 잡는 과정에서 ‘도움 받을 만한’ 자격이 어떻게 응당 자발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둔갑하고야 마는지를 그린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시혜하는 이의 위신을 위하여 ‘약자다움’을 요구하는 인물을 초점화함으로써 이 호혜 관계 이면에 내밀한 욕망의 거래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소설의 확장적 성취겠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죠. 뭔가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그 관계가 이루어지죠. 여기서는 미애 스스로가 약자다움을 자처함으로써 관계가 이루어져요. 참 안타까워요.

 

이진희 : ‘시혜’와 ‘호혜(互惠)’를 생각했어요. 온전한 시혜는 불가능해요. 아무런 조건 없이 끝없이 시혜를 베푸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성인군자지요. 보통 사람들은 뭔가를 주면 뭔가를 받을 것이 있으니 그렇게 해요. 「미애」에서도 미애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은 아까 상영 씨가 이야기했듯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눈이에요. 1930~4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의 한계가 그것이에요. 일제강점기에 나온 소설이지만 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작품은 사실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없지요. 오히려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을 진솔하게 그리는 소설이 더 감동을 주어요. 환경을 생각한다거나 연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상하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 속에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야지 오래가지 싶어요.

 

이상영 : 호혜 관계를 정확히 모르겠어요. 위계가 없는 호혜가 있을까요. 평등한 관계에서는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지요. 소설 「미애」에서는 미애 스스로가 약자가 되어야 관계가 이루어지잖아요. 하지만 그것은 결국 민폐가 되고 그런 관계는 오래 이어지지 않아요. 결국은 계급 계층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지요. 이것을 극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혁명 아닐까요. 사회혁명이면서 정신혁명이요.

 

이진아 : 저는 작품을 쓴 젊은 소설가들과 소설에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이다 보니 소설이 잘 읽혔어요. 어느 한 작품을 이야기하기보단 모든 소설들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내가 아는 사람들 이야기였어요. 이 작품들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이 소설에서 나오는 말들 퀴어, 젠더, 게이, 레즈비언 같은 말들이 낯설지 않아요. 이 말들이 어렵거나 멀리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 친구들이 그러니까요. 「미애」를 읽는데 언니가 떠올라서 전화를 했지요.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었죠. 자기정체성을 잃어 가면서 다른 정체성을 쫓아가는 마음에 동감해요. 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지요.
그런 말 있잖아요. 여학생은 바바리맨을 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남학생은 바바리맨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요. 여자로 태어나서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김지연이 쓴 「공원에서」 155쪽을 볼게요. “사람들이 나를 남자로 착각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나는 백칠십오 센티미터 키에 머리가 짧고 화장도 하지 않는 데다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주로 입었다. 길을 가는데 총각이나 아저씨, 하고 나를 부르며 길을 묻는다든가, 찜질방에서 파란색 옷을 주며 남자 탈의실로 안내를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렇듯 한국 사회는 아직도 외모를 가지고 남자니 여자니 판단을 해요. 왜 여자가 남자처럼 하고 다닌다고 욕을 먹어야 하나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성으로 사는 사람들은 참 힘들어요. 서수진이 쓴 「골드러시」는 내 이야기 같았어요. 나도 연애를 참 오래 끌었거든요. 끝내야지 하면서도 못 끝내는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서이제가 쓴 「두개골의 안과 밖」은 소설이면서 시 같아요. 304쪽을 볼게요. “박탈. 씨앗을 심고 식물을 기를 수 있는 능력. 박탈. 스스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능력. 박탈. 스스로 세상을 배울 수 있는 능력. 박탈.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박탈. 스스로 집을 지어 살 수 있는 능력. 박탈. 필요한 것을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능력. 박탈. 자주성 박탈. 소비하지 않을 권리. 박탈. 시간에 맞춰 움직이지 않을 권리. 박탈. 동물로서 살 권리. 박탈. 되찾기 위해.” 이 글들을 보면 언어유희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읽다 보면 내가 나 스스로를 박탈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이 책 310쪽을 보면 “새는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났다.”고 해요. 여기서 새가 사람일 수 있다 싶어요. 박탈을 당했지만, 아니 스스로를 박탈했지만 마지막 저항을 한 것이지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명을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원초적인 새 한 마리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거예요. 사람도 그때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은종복 : 저는 임솔아가 쓴 「초파리 돌보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번 작품들 가운데 몇 개는 소설 속에서 화자가 스스로 소설가라는 말을 하지요. 임솔아 작품도 그렇고요. 그럴 때 좀 식상할 수 있는데 임솔아 작품은 그렇지 않네요. 임솔아는 한 사람의 소설가이기도 하면서 한 어머니의 딸이지요. 어머니는 초파리 실험실에서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자기가 현미경으로 본 초파리는 아주 아름다웠고, 그런 실험실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요. 비록 몸은 아파 오지만 마음은 평화로웠어요. 그래서 소설가인 딸에게 꼭 아름다운 결말로 글을 마쳐 달라고 부탁을 하고, 딸은 그 말을 따르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란 걸 다 알아요. 하지만 딸은, 작가는 어머니가 꿈꿨던 삶을 저버릴 수가 없었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에요. 글 마지막에 어머니는 뜬금없이 로열젤리를 먹고 몸이 낫지요. 독자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회사를 상대로 싸워서, 어머니 몸은 실험실에서 묻은 균으로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야지 속이 후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는 사회투쟁 대신에 어머니 꿈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지요. 이 부문에서 이 소설이 리얼리즘을 저버렸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현실은 그런 회사와 맞서 싸워도 잘 이기지 못하지만요. 아무튼 꿀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결말이 씁쓸하지만 작가가 아닌, 딸로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것이 이 소설을 더 빛나게 할 수도 있죠.
한 마디씩만 했는데도 시간이 금방 흘렀네요. 다음 달 읽을 책도 정하고 날짜도 정해야죠. 이제 작품 전체를 가지고 다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이진희 : 요즘은 소설을 잘 안 읽어요. 소설을 읽어도 감동이 없어요. 소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어요. 조선시대의 시조나 가사가 사라졌듯이 소설도 사라지는 장르 아닐까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잖아요. 소설이 그런 스펙터클한 묘사를 하긴 힘들지요. 그래서 서이제가 쓴 「두개골의 안과 밖」이 신선했어요. 그 글에선 공간을 살렸지요. 글자를 세로 가로로 크게 쓰거나, 한자를 써서 입체감을 주는 방식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거든요. 1930년대 시인 이상이 그런 방식으로 『오감도』(1934)라는 시집을 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선구적이에요.

 

김숙이 : 김지연이 쓴 「공원에서」를 보면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힘들구나 싶어요. 여자인데 오히려 여성처럼 다니지 않으면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또 불륜을 서로 합의를 하는 모습에서 세대 차이를 느꼈어요. 아내가 있는 남자를 만나는 여자가 아주 당당해 보여서 충격적이었어요. 이 소설 169쪽을 볼게요. “내일 와이프 내려온대.” “뭐?” “내일은 오지 말라고.” “그 얘길 왜 지금 해?” “그럼 언제 해?” 이렇게 유부남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 놀라웠어요. 또 공원 화장실에서 나가면 어떤 남자가 당신을 해칠 수도 있다고 시그널을 주었는데도 당당히 나가는 것도 이해가 안 되었지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실험정신을 느꼈어요. 현대 젊은 여성들이 힘들지만 뭔가 맞서서 당당하게 살려는 저항정신이요.

 

이진희 : 저는 김지연이 쓴 「공원에서」를 조금 다르게 봤어요. 아무튼 이 모든 상황에서도 남자들은 편안하잖아요. 여성이 남성스러워도 욕을 먹고, 여성이 아름답게 꾸며도 겁탈 대상이 되는 세상이에요.

 

이상영 : 저는 『2022년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의 공통점을 봤어요. 먼저 공간을 말할게요. 대도시에 사는 가난한 곳이에요. 옥탑방, 다세대주택 꼭대기 방, 임대아파트, 대출 단독주택이에요. 서수진이 쓴 「골든러시」는 호주 사막을 낀 변두리 격리된 도시죠. 이런 것을 보면 젊은 사람들이 참 힘들게 살고 있죠. 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싶어 하죠. 예외인 작품은 서이제가 쓴 「두개골의 안과 밖」이에요. 아니 어떻게 보면 공장식 닭장에 갇혀 있다가 구제역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도 그렇지 않나 싶고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을 닭장으로 볼 수 있지요. 사람이나 닭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소나 돼지도 제 목숨대로 평화롭게 살아야 해요. 당연히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 습성에 맞는 집과 들이 있어야 하고요. 지금처럼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듯이 고기를 만들려고 가축을 키운다면 그런 꿈을 꿀 수 없겠죠.
다음에 여기 나온 인물들의 공통점을 떠오르는 대로 말해 볼게요. 성소수자, 삼성반도체, 게이, 여성, 서부 호주 유학생, 사람보다 더 소수자인 동물들 살처분. 지난날 소설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죠. 사회적 투쟁을 이슈로 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는데 젊은작가상 수상작만 봐도 개인적 아픔과 소수자 아픔, 동물권을 많이 다뤄요. 물론 이런 것들이 사회적 문제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죠. 하지만 뭔가 사회에서 연대를 해서 싸워 나가기보단 개인들이 그냥 해결하려는 모습이 보여요. 이 소설들을 읽고 독자들이 공감을 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체념이 들어 있다고도 할까요.
또 이번 작품집에는 여성 작가가 여섯 분, 남성 작가가 한 분이에요. 모두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들이 느끼는 아픔을 그리고 있어요. 여성 작가는 약자 스스로가 자기 이야기를 하지요. 남성 작가 한 분도 자기가 약자를 알아보지 못한 죄책감을 그려요. 남성 화자가 자기가 높은 단계에서 아래를 보고 있다고 뉘우치면서 말이에요.

 

이진아 : 이번 작품들을 리트머스 시험지에 넣으면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아요. ‘사회를 세밀하고 농밀하게 그렸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깊이 담으려곤 하진 않는다. 깊이 파헤치면 삶이 힘들어진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스스로가 힘들어져서 멘탈이 나간다.’

 

은종복 : 사실 저는 이 작품들을 읽고 나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들이 뭐랄까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문제를 파헤치는 방식이 발을 살짝 담갔다 나왔다고 할까요. 20대인 제 아들은 이 책을 읽으며 엄청 재밌었대요. 내가 이 소설들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하니까, 아빠는 이제 글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젊은 사람들 생각을 따라갈 수 없다고요. 아까 진희 님이 소설은 이제 없어질 거라 얘기했는데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상상력의 폭을 넓혀 줘요. 아무리 잘 만든 영화도 원작 소설이 주는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지요.

 

이상영 : 김병운이 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127쪽 끝부분을 볼게요. “그날 이 사람이 만난 건 언제라도 연락해 만날 수 있는 윤범 씨가 아니라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윤범 씨가 아닐까. 이 사람은 윤범 씨에 대한 마음을 처분하거나 무효화하지 않고 끝내 간직해 보려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이 이 작품 전체를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실에 대해 정확하게 집어서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질문을 놓지 않고 찾아가는 것이 작가의 임무 아닐까요. 그 소설을 읽고 독자의 삶이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소설의 역할을 다 했다고 봐요.

 

이진아 : 서이제가 쓴 「두개골의 안과 밖」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책 320쪽 끝과 321쪽 앞에 조대한 평론가가 쓴 글이 나와요. “노예, 흑인, 여성 등을 온전한 인간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의 인류와 오늘날의 우리는 전혀 다른 인식과 언어를 지닌 사람들일 것이다. 식량으로서 동물을 대량생산하고 도축하는 지금의 우리를 완전히 다른 인간 종으로 여기는 미래 또한 언젠가 도래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어쩌면 이미 늦을 대로 늦었는지도 모를 우리들에게 새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에 대해, 광기에 기대어 구멍이 숭숭 뚫린 허약한 인간의 이성에 대해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죽음을 빌려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의 일상을 향해 보내는 날카로운 경고음인지도 모른다.” 이 말이 여기 실린 작품들 모두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약자들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는, 곧 약자들을 괴롭히며 사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줘요. 더군다나 동물들을 한 해에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세상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결국 인간이 만든 전염병이잖아요.

 

김숙이 : 저는 「두개골의 안과 밖」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반성을 많이 했어요. 닭은 병들고 알을 못 낳으면 폐기처분하잖아요. 사람도 그렇지 않나요. 사람들도 사람 사이에서 인정을 못 받으면 쓸모없다고 버려지지요. 여기에 나온 많은 소설들이 그것을 말해 줘요.

 

은종복 :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네요. 저도 젊은 작가들 작품을 좀 더 읽어야겠어요. 모두들 애 많이 쓰셨어요. 다음 달에 만나요.

 

 

 

 

 

   《문장웹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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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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