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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웹진》 2022년 기획 연속좌담 ‘읽는 사람’ 4차 : ‘개인채널 시대의 독자들’

  • 작성일 2022-12-01
  • 조회수 1,959

[연속좌담]

 

 

《문장 웹진》 2022년 기획 연속좌담 ‘읽는 사람’
4차 ‘개인채널 시대의 독자들’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2년 기획 연속좌담 ‘읽는 사람’ - 4차
     - 소주제 : 개인채널시대의 독자들
   ㅇ 일 시 : 2022년 9월 16일(금) 14:00~16:00
   ㅇ 장 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테라스 01
   ㅇ 참여자 : 박인성(문학평론가/사회자), 해나(북튜버/해나책장J.H), 조아란(민음사 마케팅부 팀장/민음사TV), 공백(북튜버/공백의 책단장), 다이애나(북튜버/다이애나의 책장)

   - 연결되는 독자들과 공공의 독서법
   - 다양성과 폐쇄성 사이에서
   - 숏텀 피드백 시대의 책과 독자
   - 독자의 전면화와 영향력의 세계
   - 울타리 낮추기와 넘나들기
 

 

 

〈개회〉

박인성 :
안녕하세요. 오늘 ‘개인 채널 시대의 독자들’ 좌담 진행을 맡은 평론가 박인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드리면서 좌담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겸해서 운영 중인 개인 혹은 회사의 유튜브 채널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아란 :
저는 지금 ‘민음사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회사에서 운영하는 채널이 많은데도 저를 불러주신 건 저를 포함한 많은 직원이 얼굴을 내어놓고 마치 개인 채널인 것처럼 운영하는 방식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구독자이자 유튜브 중독자로서 처음 이 채널을 기획하고, 어떻게 할지 많은 스탭들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자연스레 볼 만한 채널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였어요. 회사의 입장에서 책을 홍보하는 것보다는 구독자1로서 나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는 게 가장 큰 목표였고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지금껏 운영하고 있고, 그래서 아마도 이런 재밌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브랜드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불러주시는 것 같아요.

박인성 :
회사의 지원은 잘 이뤄지고 있나요?

조아란 :
잘 되고 있습니다. 적절한 지원과 무관심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공백 :
안녕하세요. 저는 ‘공백의 책단장’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공백이라고 합니다. 2018년 말부터 운영해서 이제 거의 5년 차가 되어갑니다. 저 같은 경우 이 채널 개설 당시에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서점에서 일하면서 서점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평생직장으로 삼기에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리적인 힘을 정말 많이 필요로 하는 공간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안에서 다른 뭔가를 준비해보자고 생각했던 게 유튜브 채널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전업으로 하게 되었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해나 :
안녕하세요. 저는 유튜브 ‘해나 책장’을 운영하고 있고요. 다들 제 기준에선 대형 유튜버이신데, 저는 작은 가게처럼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문학과 예술의 경계라는 주제로 문학과 전시를 다루고 있는데요.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유튜버보다는 제 포트폴리오 용도였어요. 제가 콘텐츠 기획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상 제작 능력과 전달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필요했고, 와중에 관심 분야가 책이었어요. 활동하다 보면 구독자들이 쌓이잖아요. 문학 유튜버를 하면서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찾다보니 보니 문학 유튜버가 되었고 전시 다니면서 미학 공부하는 게 아까워서 콘텐츠를 쌓다보니 문학과 예술을 소개하는 유튜버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박인성 :
별도의 실용적 목적성이 있었지만, 차츰 외연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컨텐츠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해나 :
아까 무관심 얘기하셨는데, 저도 누군가 지시하거나 성과를 보고하지 않아도 됐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이애나 :
저는 2016년부터 ‘다이애나의 책장’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유튜버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온 게 처음이라 손이 떨리는데요. 저는 6년 전에 대학 한창 다닐 때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상에서 책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제 손으로 뭔가를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요. 지금은 그때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영상을 제작하게 됐고, 책 추천이나 브이로그뿐만 아니라 일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편하게 다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결되는 독자들과 공공의 독서법

 

 

박인성 :
말씀을 듣다보니 공통적인 게 적당히 가벼운 마음, 적당히 내려놓는 마음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유튜브라는 채널도 그렇고, 요즘 같은 소셜 미디어의 특성상 너무 엄근진하게 접근하면 안 될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께 너무 진지하고 어려운 질문을 사전에 공유한 것 같아서 죄책감을 가지고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 좌담을 통해 저희가 응답해야 할 가장 큰 질문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독자란 누구인가’입니다. 연속 좌담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순서입니다. 저희는 개인 채널 시대에 개인 채널을 운영하기도 하고, 구독하기도 하는 독자들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독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에 조금이나마 구체화하기 위해서 다각도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첫 번째 질문은 우선 독자로서의 여러분들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간단하게나마 평소 어떤 방식의 독서 스타일을 취하고 계신지, 그리고 개인 채널을 만들게 되면서 독서 스타일에 변화나 책 선택의 기준에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공백 :
제가 먼저 말씀드려 보자면 독서 스타일에는 변화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독서 자체가 물리적으로 책을 읽고, 혼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행위 자체가 변하진 않더라고요. 다만 채널을 가진다는 것은 발화하는 입장이 되는 거니까 내가 혼자 하는 행위에서 좀더 뻗어나가는 행위, 읽은 걸 어떻게 전달하느냐, 어필하느냐 하는 걸 생각하게 돼요.

다이애나 :
저는 최근에 유튜브 초창기에 올렸던 영상을 다시 보게 됐어요. 그때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지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에 겹치는 게 많이 없더라고요. 그 정도로 취향이랄지 하는 게 지난 몇 년간 많이 변했는데, 물론 채널 때문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양 자체가 늘어나면서 더 다양한 작가들을 접하게 되고, 그렇게 변한 거겠지만, 유튜브도 분명 영향을 주긴 했어요. 평소 독서 스타일에 대해 크게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의 독서는 영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도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몇 분짜리 단독 리뷰로 만들지, 다른 여러 권의 책과 엮어서 이야기할지, 책 읽는 과정 자체를 브이로그로 담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연출하게 돼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책을 혼자 읽을 것인가, 카페 가서 읽을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고, 제 읽기 과정 자체가 책을 펼치는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고 있어요. 책 자체도 소개하지만, 독서라는 행위가 편하고 재미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는 걸 영상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유튜브 하는 게 예전보다 좀 더 집중적이고 꾸준한 독서에 도움을 주는 것 같고, 제 취향을 다듬어가는 데도 좋은 것 같고요. 현생에 치이다가 도피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얻는 것도 같아요.

박인성 :
읽는 책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 원래 책장에 꽂혀 있던 책과 요즘 꽂혀 있는 책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다이애나 :
대학 입학하고 초반까지만 해도 작가를 많이 알지 못하고, 출판사도 대형 출판사 이외에는 많이 알지 못했어서 베스트셀러나 원래 유명한 작가들 위주로 찾아 읽었어요. 요즘은 한국 문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작가도 더 많이 찾아보게 되고, 소형 출판사에서도 책을 골라 보게 되기도 하고요. 엮어가며 뻗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박인성 :
굉장히 능동적인 독자로 변모하셨군요.

다이애나 :
적극적으로 찾아 읽는 것 같습니다.

해나 :
저는 기본적인 독서 스타일은 병렬독서로 변하지 않았어요. 업과 관련해서 브랜딩과 경제 경영을 신간 위주로 읽고, 문학 같은 경우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읽는 것도 변하지 않았고, 예전 책도 제가 공부하는 위주로 하게 돼요. 유튜버를 하면서 가지게 된 정체성이 있다면 전달자와 해석자라는 것 같아요. 그냥 읽고 넘어갔던 것들이 제 역할이나 쓰임(어려운 걸 쉽게, 진입장벽을 낮춰주는)을 생각하며 읽을 때도 영향을 받는다는 게 긍정적인 것 같아요.

조아란 :
저의 독서는 민음사 책 위주예요. 대형 출판사에 다니다 보니 너무 많은 책들이 나오고, 숙제처럼 기다리고 있어서 제가 읽고 싶은 책이나, 다른 출판사들의 책(외부의 책들)을 읽을 일이 점점 줄어들어요. 재밌는 지점은 회사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오히려 다른 회사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거예요. 너무 민음사 책만 홍보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다른 책을 따로 챙겨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이에나님과 비슷하게 오히려 더 찾아 읽고, 더 다양하게 읽으려고 하고요. 또 다양한 읽기 방법들도 시도해 보고 있어요. 요즘은 책 의 포맷도 전자책, 오디오북 등 다양한데 그게 또 플랫폼이나 디바이스마다 읽기의 경험이 다르잖아요. 저는 사실은 확신의 종이책파이긴 한데, 다양한 걸 경험해보고 전달해야 한다거나, 팔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각 매체마다 장점들을 찾아 경험해보고 있어요.

박인성 :
말씀 듣다 보니 재밌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이나 텍스트에 대한 경험이란 근대 이전에는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건데, 출판 산업이 발달하면서 외로운 개인의 독서 과정이 되었단 말이죠. 종이책을 읽는 시간은 온전히 개인의 시간이라고 하는 생각이 발달했는데, 거꾸로 요새는 다시 우리는 어떻게 독서를 통해 소통해야 하는가, 서로의 독서 경험을 연결할 수 있는가 하는 공공의 독서법이 개발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공백 :
공감합니다. 알려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서 특히나 더 그래요. 원래도 잘 읽으셨던 분들은 잘 읽으시는데, 저희가 심리적으로 느끼기에는 독서량이 줄어든다고 느끼니까 조금 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최근 저희의 미션인 것 같아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말을 해야 개인 채널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고, 구독자분들이나 독자분들이 그런 커뮤니티를 더 원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니즈가 서로 맞아 떨어져서 공공의 장소로 옮겨 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박인성 :
그렇다고 했을 때 역시 가장 좋은 장소는 유튜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해나 :
인스타그램도요.

박인성 :
각각의 성격은 다르겠지만 확실히 두드러지는 플랫폼들이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말씀해주셨듯 오늘날 우리가 책을 즐기는 방식은 굉장히 다양화되었어요. 종이책, 전자책, 웹 플랫폼을 포함한 웹 텍스트들, 오디오북 등등요. 독자는 어떤 면에서 사라진 것 같지만, 오히려 기존과 다른 형태로 존재할 뿐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프라인이나 블로그 형태로 수용되었던 독서 경험과 그에 대한 공유가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웹 플랫폼에서 댓글이나 별점 기능이 활발하게 사용되는 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플랫폼에 개인 채널들이 운영되며 간접적이었던 독자의 소비가 전면화되고, 실체화되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나로 종합하기 어려운 입체적 독자들이 오늘날 존재하는 만큼, 그러한 독자의 특징을 여쭤보고 싶어요.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편하게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백 :
말씀하신 대로 너무 여러 경향이 있는데, 체감하는 경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웹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잖아요. 최근에 저는 과거에 댓글로 표현했던 건 작품에 독자가 속하면서 의견을 내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독자들이 자신의 개인 채널을 가져서 자신의 개인 채널에 책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저도 체감하는 게 저에게도 이런 문의가 많이 와요. 북스타그램, 북튜버 어떤가요, 어떻게 하나요 하는. 도서관이나 센터에도 요새 이런 강연 문의가 많고요. 그래서 독자들이 수용하는 입장에서 벗어났구나, 적극적으로 뭔가를 피력하려는 걸 최근에 가장 많이 느껴요.

박인성 :
꼭 책이 아니어도 되지만, 개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책이라는 수단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해나 :
전시가 어느 정도 되거든요. 내가 이런 문화를 향유해, 이것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타내고 있어, 하는 분들이 많아요.

조아란 :
저도 좀 비슷한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독자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있었어요. 안경 쓰고 너드 느낌처럼. 그런제 지금은 진짜 다양해진 것 같아요. 또 저 스스로도 다양한 독자들을 상상하려고 하고요.

박인성 :
대학교에서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사회》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시절의 독자는 아닌 거죠.

조아란 :
그런 독자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층위의,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독서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숨어서 책 읽는 독자도 있고, 과시하기 위해 표지 찍어 올리는 독자도 있고요. 정말 다양한 것 같아요. 예전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었겠지만, 이것들을 보여주는 게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전보다 당연한 시대이니까요. 마케터 입장에서는 가끔 혼란스럽기도 하죠.

박인성 :
출판사 입장에서는 정말 혼란스럽겠네요. 구체적인 독자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조아란 :
편집자님과 회의할 때 독자는 어떤 사람일까 했을 때 한두 가지로 모여 구체화하는 게 어려워요. 출판뿐만 아니라 마케팅하는 사람이 다 그럴 것 같아요. 더 이상 고정된 타입의 타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독자가 어디에 있느냐 했을 때도 어디에나 있기도 어디에도 없기도 한 느낌이랄까요. 마케팅 측면에서 독자에게 접근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졌어요.

해나 :
너무 동의해요. 브랜딩을 하다 보면 대중이란 대중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독자들을 받아들이다 보면 오히려 피로한 것 같아요. 저는 작은 가게처럼 운영하다 보니 오히려 편안해졌어요. 대중에게 어필하는 마음을 버리고 작은 가게처럼 운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하려면 생업이 있어야 해요. 경제적인 영향을 안 받는다는 선에서 자유롭게 운영을 할 수 있어요. . 제가 느낀 독자들은 자기가 바라는 상에서 맞는 부분이 있는 책을 인스타그램이나 독서 취향, 동경하는 이미지가 있는 분들과 맞을 때 그 책을 고르게 되는 셀링 포인트 같아요. 그렇게 됐을 때 구매까지는 가능하지만, 읽고 자기화하는 것까지는 못하는(혹은 안하는) 독자가 많을 거란 말이죠. 그건 각자의 역할일 것 같고요. 제가 느낀 독자들은 다양한 걸 원하고, 속도감을 원해요. 창작자는 본인이 역량껏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그 모든 걸 충족하려고 하면 압도되더라고요. 나랑 맞는 사람이 한 명, 열 명, 서른 명 되는 것처럼 확고한 독자를 만드는 게 자신의 브랜딩이고 자신의 독자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박인성 :
너무나도 다양한 독자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시군요.

다이애나 :
저는 독자들이 더 직접 나서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느껴요. 예전 독자들의 이미지는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독자로서 뭘 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책 출간 전에도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책 표지 투표에도 참여하는 걸 봤어요. 그 과정에서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책에 직접적으로 입힐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어떤 게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아진 것 같고요.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SNS의 발달로 인해서 그게 더 쉬워졌고요. 제가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큰 뜻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얘기를 꺼내놓고 싶다는 목표가 컸어요. 유튜브가 제일 매력적이었던 건 내가 권위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내 이야기가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고,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어요.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이나 댓글을 달면서 내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이루었다는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고요. 화살표로 표현해보자면 예전에는 책→독자 같은데, 지금은 책⟷독자 같아요. 사방으로 넓게 뻗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다양성과 폐쇄성 사이에서

 

 

박인성 :
집중화된 독서보다 여러 방향의 연결성이 강조되는 독서 현상이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럼 반대로도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날에도 베스트셀러는 있잖아요. 베스트셀러의 위상이나 독자층이 예전처럼 잘 체감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어요. 취향의 다변화로 인해 트렌드나 유명세를 따라가지 않는 독자들이 많아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요?

공백 :
이게 참 묘한 게, 저는 트렌드가 강화되었다고 체감해요. 독서 시장만 봐도 어떤 키워드의 책이 나오면 후속작 같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계속 베스트셀러가 되잖아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고, 개성있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이상하게 트렌드도 강화되는 걸 보면서 가끔은 묘하게 느낄 때가 있어요. 과거와는 다른 다양한 모습의 작가와 독자, 그리고 다양한 주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왔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같고요. 정말 알 수가 없어요.

박인성 :
여전히 베스트셀러는 유의미한 독자 시장이라고 이야기하신 걸로 볼 수 있을까요?

조아란 :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됐으면 좋겠다는 목표라는 걸 보면…….

박인성 :
양가적인 것으로 봐도 될까요? 베스트셀러 같은 트렌드도 놓치고 싶지 않고, 내 취향도 찾아보고 싶은 독자들의 욕망?

조아란 :
베스트셀러 트렌드라는 건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죠 하지만 달라진 점은 원래는 없었거나 무시되어 왔던 소수자성이 존중되기 시작했죠. 또 하나의 거대한 담론보다 소소한 일상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박인성 :
어떻게 보면 독자 시장의 다양성은 긍정적으로 말할 수도 있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 취향, 취향의 파편화가 가져올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의 양가성처럼요. 알고리즘이라는 건 인공지능에 의한 객관적인 추천 기능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것만을 더 폐쇄적으로 지향하게 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단 말이죠. 나와 취향이 맞고,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같은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독자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과 취향이 다르면 배척할 수도 있는 거죠. 너무 손쉽게 원하는 경향성만을 향유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감상의 확장, 공감의 소통이 오히려 폐쇄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파편적 독자의 독서 경험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해나 :
제가 2년 차쯤 매너리즘이 왔어요. 제가 하는 말, 제 취향, 인사이트가 너무 뻔하다는 생각에 재미가 없더라고요. 읽는 책들이 편파적이었기 때문에 그때는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때 해결했던 방법이 ‘다른 분야’ 책을 봤어요. 이어령 선생님 말씀 중에 ‘낯선 언어는 의식을 확장시킨다’고 하시잖아요. 저는 그때 과학이나 다른 분야를 봤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편중된 인사이트에서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게 문학이라면 제가 하는 일은 가장 상업적인 분야잖아요. 그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느낌이 들었어요. SNS 독자들을 보면 에세이 좋아하는 분들은 에세이, 소설 좋아하는 분들은 소설을 읽고, 다른 걸 좋아하지 않은 채 고여있는 흐름을 보면서 제가 최근 읽은 미학 에세이집이 떠올랐어요. 거기에 ‘일제시대보다 지금이 더 문화적으로 지배하기 쉽게 노출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흐름이 가져가는 문화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건데, 어떤 면에서는 끌려가기 너무 쉬운 거더라고요. 독자의 역할은 빠르게 정보를 얻는 것, 취향은 아니어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게 트렌드잖아요. 유튜버들이 좋아하는 걸 소개해주면 소비하기 좋잖아요. 그걸 소비하되 본인이 끌려가지 않는 고유한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인지와 노력을 의도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박인성 :
선택했다는 환상을 주기에 좋은 것 같아요.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수동적으로 끌려간 거죠.

공백 :
그런 얘기가 있었잖아요. 디지털 매체에서 정보가 쏟아질 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이다. 저는 독서 시장도 똑같다고 보거든요. 책이 막 쏟아지는데 뭔가 다 읽기는 힘들고, 그래서 강화된 것으로 큐레이션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큐레이션에도 분명 한계는 있어요. 나는 내 입맛에 맞는 큐레이션을 주도적으로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리즘에 의해서 한정된 분야의 큐레이션에 닿게 되거든요. 알고리즘 밖의 다른 큐레이션과는 단절되어 있는 거죠. 말씀해주신 것처럼 마치 내가 어디로든 이동 가능하고, 어떤 정보든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짜 폐쇄적인 거죠. 저만 해도 제 구독자분들이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거든요. 이분들이 다른 시장과 섞이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자신의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일정하게 굳어버리는 경향도 짙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사실 유튜버는 자기 경향을 강화할 수밖에 없어요. 유튜브 트렌드 자체가 굉장히 마이크로한 전문성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저는 그 전문성과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저도 편협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팬층도 그렇게 견고해지는 거고요.

조아란 :
저는 더 멀리에서 보면 개인 크리에이터로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다양한 취향들이 있고, 자기가 집중할 수 있는 건 스스로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당연히 자기 복제든 자기 계발이든 ‘자기’ 얘기를 할 수밖에 없고요. 조금 떨어져서 보면 결국은 각자가 비슷하게 좁지만 깊은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다들 읽는 책 같이 읽고, 생의 주기도 비슷했죠 그런데 지금은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달라졌잖아요. 파편화 됐죠. 그래서 마케터는 힘들고요. 그런데 이런 걸 그냥 받아들이면 편한 것 같아요. 회의실에서도 편집자랑 얘기하다가 ‘편집자님이 생각한 독자는 누구예요?’ 하는 얘기를 하게 돼요. 독자가 어딨지? 하고요. 저는 디자이너나 편집자가 그것에 대해 애착과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냥 본인의 감을 믿으라고해요.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본인에게 확신이 있으면 가자 라고요. 누구 하나라도 만족하면 충분하다. 무책임하지만 이런 말을 해요.

박인성 :
아무래도 여기에 계신 분들은 독자이면서 동시에 콘텐츠 생산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자기 정체성을 배신하거나,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갔을 때 생겨날 수 있는 문제까지 고려하시는 것 같아요.

다이애나 :
저는 제가 잘 알고 있어야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정체성은 시간과 콘텐츠가 누적되면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정체성과 관련해 무언가를 의도하고 행동하거나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은 아직은 없어요. 하지만 채널의 성격과 구독자의 성격이 닮아있다는 데는 충분히 공감해요. 지금까지 독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저는 가끔 책을 유튜브에서 다루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내 활동이 독자가 아닌 사람도 알고리즘에 이 영상이 떴을 때 클릭하게 만들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에 대한 콘텐츠를 보지만,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책에 대한 콘텐츠를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화장에 큰 관심이 없기는 하지만, 누가 화장을 잘했다고 알고리즘에 뜨면 썸네일 클릭해서 보기도 하고, 집 짓는 영상도 보는데요. 만약 책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책이 알고리즘에 떴을 때 클릭해서 볼까? 하고 묻는다면 좀 회의적이에요. 지금 내가 독자가 아닌 분들이 영상을 시청하게끔 목표해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 할 필요 없나 하는 고민도 하게 돼요. 책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해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 영상을 많이 올리게 되고.

박인성 :
지금 어떻게 보면 저희에게 이미 공통의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의 참여에 정답은 없고 우선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는 상황 인식인데요. 그만큼 여기에 계신 분들이 본인들이 참여하는 채널에 대한 운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채널을 통해 만나게 되는 실제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개인 채널의 향유자에 대한 경험 말입니다. 결국 독서 시장, 출판 시장에 있는 독자라면 너무 많은 소립자처럼 흩어진 독자들에 대해 유츄하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신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시는 게 어떨까 싶어요. 채널의 시청자 혹은 구독자들과 어느 정도로 존재를 실감하고 계시는지, 시청층에 대한 분석이나 구체적인 대상 설정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조아란 :
저희는 기존에 민음사를 좋아했던 독자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메인 타깃은 아닌 것 같아요. 저희의 타깃은 책에 대한 인식이 있는 모든 사람들 입니다. 책에 대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다양한 인식들이 있잖아요. 좋다 싫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등등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채널에서는 책에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면서도 그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이야기 끼워 넣어 반전 매력을 느끼도록 하고 있어요. 사람도 되게 딱딱한 사람 같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허술한 모습을 마주하면 급 호감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저희 채널도 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책은 이래야 돼’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놀아보자는 거죠. 다이애나님이 알고리즘에 뜨면 사람들이 봐줄까? 하는 의문에서 브이로그라는 시도도 하고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저희는 알고리즘에 책을 띄우기 위해서 브이로그 콘텐츠를 찍어요. 그냥도 책이 알고리즘에 뜨면 땡큐조. 그런데 그게 어려우니까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합니다.

해나 :
저는 어느 정도는 알고리즘을 버렸어요. 너무 소모적인 거예요. 잘 되지도 않고요. 안 되더라고요. 저는 소통이 제일 고민이었어요. 모든 사람과 소통하기에는 제 분량이 작아서 그냥 저는 제 분수에 맞게 내성적으로 할 수 있는 독자들과 소통하자는 식이었어요.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독자층을 보면 2~40대 여성분들이었어요. 문학과 전시, 클래식 좋아하는 분들이었고요. 그건 제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걸 편히 들어주는 사람에게 말하면 되니까 좋고요. 하지만 제작자로 일하다 보면 역량에 대한 퀘스천이 오죠. 나는 이렇게밖에 못 하는 사람인가? 4년이나 됐으면 이걸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저의 숙제예요. 결론은 못 내겠습니다.

공백 :
저도 어떻게 공략할 것이냐 같은 건 이제 생각 안 하거든요. 일단 잘 안 되고, 피로하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 에라 모르겠다, 나 좋은 거 하자 예요. 민음사TV 같은 경우 전략적으로 움직여야겠지만, 안 된다면 걍 하자. 내가 좋은 거 했을 때 운 좋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서 호들갑 떨자 이렇게 다짐해요. 그래도 막연하게 큰 비전을 본다면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마스다 무네아키가 한 말을 보면 ‘책이라는 건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매개’라고 했는데, 저는 그게 인상 깊었어요. 제 타깃 독자는 책을 읽지 않지만, 책 읽는 라이프 자체를 가져보고 싶은, 그런 삶에 대한 선망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끌여들여 볼까 하는 비전정도만 가지고 있습니다.

박인성 :
실시간 방송하실 때는 채팅 확인도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좀 더 독자의 존재가 실감이 나나요?

공백 :
그렇죠. 매번 비슷한 분들이 오세요. 이분들은 정말 계속된 커뮤니티에 속한 분들이구나 하는 실감이 와요.

다이애나 :
저도 일단은 앞만 보고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유튜브가 개개인의 존재보다 숫자로 많은 것들이 표현되기 때문에 댓글에서 자주 보이는 분들을 보고 우리가 같은 걸 공유하는구나 하는 체감을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제가 나서서 채널의 구체적인 구독자층을 설정한 적은 없지만, 통계상 저와 비슷한 연령대 여성분들이 많이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대학생 브이로그’나 ‘대학원생 브이로그’라고 제목을 달아서 올리면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분들이 많이 보시고. 그렇게 몇 년을 영상 만들다 보니 아무래도 저는 2~40대까지 젊은 여성 독자층들이 보시는 것 같아요. 가끔은 더 많은 연령대, 성별이 욕심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럴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앞만 보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것 같아요.

박인성 :
개인 채널 분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총량과 회사 채널의 ‘인싸력’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이네요.

조아란 :
여력이 되고, 출연자도 개인 채널에 비해 많지만, 한 치 앞을 못 보고 시도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나 :
사실 가장 좋은 건 내가 크리에이터로서 소모되지 않는 거예요. 에너지를 소모시키지 않는 게 최고고, 그 안에서 해나가는 거예요.

 

 


숏텀 피드백 시대의 책과 독자

 

 

박인성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연속적인 질문일 수 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 많은 개인채널들이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사람이 있는 곳, 광장에 진입해 또 다른 연결지점을 찾고 있죠. 최근 영화나 드라마 본편보다 요약 영상이 더 인기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현상들을 크게 아울러 숏-텀(short-term) 피드백 시대라고 명명하는데요, 무엇보다 사람들의 만족감을 결정하는 기준에 있어 피드백이 빨라야 한다는 거죠. 긴 시간을 투자해 어렵고 복잡한 결론을 얻어내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거부감이 심하잖아요. 유튜브 영상도 10분조차 1.5배속, 2배속하는 경우가 있고, 건너뛰기하는 시대란 말이죠. 가장 대표적인 롱-텀 피드백인 종이책 시장에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데, 긴 콘텐츠를 짧은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 북튜브 자체가 다소 이질적이거나 양가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삐딱하게 말하면 유튜브 향유자들이 원하는 건 손쉬운 독서 경험의 대체다. 책 읽었다는 느낌적 느낌. 그런 느낌만을 소비하려고 하는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죠. 그런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백 :
영화나 드라마를 요약해서 소개하는 거 저도 많이 보거든요. 재미있는 건 그래도 긴 호흡으로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고, 요약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콘텐츠가 있다는 거예요. 긴 호흡으로 소화되어야 하는 콘텐츠라면 그에 버금갈만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북튜버의 입장에서 조금 더 덧붙여보자면 중간 전달자인 저희의 매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을 소화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멋지다는 식의 매력. 혹은 재밌다는 식의 매력. 단단해 보인다는 식의 좋은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박인성 :
긴 걸 짧게 전달하는데서만 그치면 안 된다는 말씀이시죠.. 개인채널 자체의 매력을 살려 캐릭터를 전면화하고, 책을 향유하는 사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장하는 것 자체로 중요하다는…

해나 :
책을 다들 안 읽잖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독자들이 챌을 보는 거에 대해 ‘그게 어디야’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유튜버분들이 제가 읽었던 걸 다시 리뷰해줄 때 아, 이래서 재미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일단은 다리 역할을 하되 내가 잘 선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다리 역할을 해줘야 해서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저는 아까부터 작은 가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모두가 숏 폼을 제작할 때 어떤 이들은 롱폼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콘텐츠들에 대한 갈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장이 변하지만, 분명히 책 읽는 사람이 있거든요. 모두가 숏 폼을 소비하지만, 만족감으로서 깊이 있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있고, 그런 시장을 원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박인성 :
확실히 숏 폼에 대한 인기가 과잉되어 있죠. 그 자체로 좋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백 :
저도 영상을 올리면 책 여러 권 소개하면 어떤 댓글이 달리냐면, 타임라인 달아 달라고, 제목만 보고 나가시는 거예요. 책 목록만 보고 나가겠다는 분이 많아요. 저도 여러 가지 콘텐츠를 해 봤지만, 완전히 풀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진중하고 길게 책을 같이 이야기하는 걸 원하는 분이 있고, 숏폼을 원하는 분이 있고, 저는 그냥 크리에이터 본인이 진득하게 끌고 나가면 될 것 같아요. 그건 독자가 선택할 일이고, 개인의 정체성에 맞추어 할 얘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고요.

박인성 :
어떻게 요약해야 저작권에 안 걸릴지 알려주는 콘텐츠도 따로 있을 정도더라고요.

조아란 :
영화도 공인받지 않은 소개 영상들은 모두 저작권을 침해받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공공연하게 놔두는 건 홍보 효과 때문인데. 저희도 저작권팀과 부딪힐 때가 있어요. 저희는 책을 알리는 부서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고요. 저작권팀의 원칙은 이만큼도 안 된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다가는 민음사 책은 언급도 하지 말라는 건가? 하게 되죠. 또 매체가 다양해지고, 자칫 콘텐츠의 주도권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고 불안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책은 원래 이런 거라고 가두어 놓는걸로는 부족하니까요. 짧은 폼이든 긴 폼이든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걸 시도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안 되면 다시 돌아가거나. 일단 해보고 나서 결정해야하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책이 정체성이 바뀔 수도 있고요. 기존의 형태를 지키려고만 하는 것보다 새로운 시도에 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공백 :
영화사에서 영화 리뷰 유튜버에게 광고를 주는 경우도 있어요. 아예 그것 자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 거죠. 숏폼을 티저처럼 공개하고, 흥미가 생긴다면 와 달라는 식으로 정말 문학계에서 마케팅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서로의 니즈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있으니 흥미가 동한다면 와 보라는 식으로.

다이애나 :
저는 저작권 관련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단순요약을 지양하자는 주의였어요. 특히 저는 소설을 자주 리뷰하는 편인데, 소설은 문장 하나에서도 얻는 게 많은 장르잖아요. 그래서 방법적인 측면에서 줄거리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이 기준은 온라인 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제 영상을 보고 한 분이라도 책을 사셨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 책의 일일 마케터가 되어 보는 거죠. 그렇게 하니까 확실히 단순 요약과는 거리가 멀어지는데, 동시에 영상이 개인적인 감상 위주가 되다 보니 이 책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얻어가실까 하는 고민도 있고요. 게다가 요즘은 영상 러닝타임이 압도적으로 짧은데 릴스나 숏츠처럼 1분도 안 되는 영상도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저희 소속사에서도 노출도를 높이고 싶으면 유튜브 숏츠를 활용하라고 조언해주셨을 정도예요.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정말 워낙 SNS 세대 교체가 빠르기 때문에 얼마나 짧은 콘텐츠가 나올지, 제가 거기서도 책을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숏폼이 책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참 고민이 많은 부분 같아요. 책이 시각적으로 다양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소품이 아니잖아요. 시연할 수도 없고.

박인성 :
제가 보는 어떤 유튜버 분도 그런 얘길 하더라구요. 할게 없으면 춤이라도 추면 된다고. 막상 따라하기는 어려운데 이게 크리에이터 마인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개인채널의 특성상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콘텐츠 향유 방식이 콘텐츠 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독자로서의 자신과 시청자로서의 다른 독자들 사이의 역할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일방향적인 비평이나 언어적 독서의 경우 공유하는 것과 다르게 개인 채널이 가진 형식적 차원, 어떻게 영상을 만들어야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려하면서 영상을 제작하시는지 궁금하고요. 콘텐츠 선정, 주제 선정 방식도 독자 개인으로부터 확정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독자들의 수요를 가급적 검토하고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아란 :
그걸 다 해야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찾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찾고. 두 가지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민음사TV 같은 경우도 브이로그, 언박싱 등 별의별 걸 다 하는데 그게 트렌드이기 때문에 하는 것도 있지만, 그냥 출연자인 제가 잘 할 수 있어서 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아예 쇼핑할 줄 모르는데 언박싱한다고 하면 하기 쉽지 않잖아요. 이것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나 답고, 사람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걸 찾아가는 거죠.

박인성 :
여러분은 영상 편집과 촬영을 같이 하시니까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해나 :
저는 두 가지 버전으로 해요. 무슨 말이냐면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나는 당신들이 원할 것 같은 거. 조회수나 평균 조회시간을 봤을 때 요즘 인기 있는 건 언박싱이나 브이로그잖아요. 그리고 또 그런 것들을 할 때는 원하시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이분들이 하다 보면 아까 말했듯 고정적인 대상이 명확해지거든요. 그분들이 좋아할 포멧으로 만들어요.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고요. 반대로 제가 했을 때 가치 있지만, 분명히 조회수가 안 나올 거라는 게 있어요. 특히 예술이나 전시 쪽 책은 아예 조회수를 버리고 시작해요. 이게 성과 보고를 안 해도 되기 때문에 가능한 스타일인데요. 아예 시작할 때부터 조회수 안 나온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그냥 그걸로 타격이 덜 해요. 왜냐하면 저를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

조아란 :
유튜브가 재밌는 점은 조회수가 잘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해도 안 나온다는 거 아닐까요?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오는 게 있고요.

해나 :
그리고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커뮤니티에 먼저 물어봐요. 수요가 있으면 새로운 걸 할 때 먼저 물어보고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저는 편지, 뉴스레터로 시작했어요. 뉴스레터를 구독 서비스로 하기에는 자신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방대한 양의 현업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파일럿 같은 느낌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어요. 지난달부터 시작했는데, 제가 한 달 동안 소비했던 콘텐츠들 중 저에게 의미 있던 걸 압축해서 편지 형식으로 만들고, 영상으로 만들게 됐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의 소통 방식이에요. 저는 유튜브하면서 처음엔 축적을 의미로 뒀는데, 지금은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 대상을 향해 편지 쓰는 마음으로 하게 됐어요, 계속 그 대상이 있고, 읽을 때나, 제작할 때나 할 때도 항상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 같아요.

공백 :
저는 사실은 이제는 어떤 구독자 층을 어떻게 늘려서 어떻게 영상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최근에는 거의 안 해요.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일단 한다.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고, 누군가가 ‘너 그러니까 돈을 못 벌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정도로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걸 유튜브에서 하고 있고, 다만 개인 브랜딩을 외부에서 하려고 하기는 해요. 개인 브랜딩 강의가 됐든, 어떤 독서 모임이 됐든, 토론 모임이 됐든 밖에서 개인 브랜딩을 해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런 것들을 하려고 하죠. 저술 활동이든, 칼럼을 쓰든요.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정도만 생각합니다.

박인성 :
즐기는 자의 여유인가요?

공백 :
사실 우당탕탕 유튜브 합니다. 책임은 밖에서 지고. 그런 느낌으로 돌려막습니다.

다이애나 :
저도 시작은 항상 저로부터 시작해요. 어떤 책을 소개할 것인지, 어떤 영상을 만들 것인지. 그래야 오래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우선 의욕이 있어야 하고, 꾸준히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영상의 줄기는 제게서 시작하고, 그것이 브이로그가 될 것이냐, 무엇이 될 것이냐는 모르죠. 다른 분들의 의견을 참고하기 위해서 인스타그램에 설문을 올린다거나 채널에 가끔 묻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유튜브가 숫자로 많은 게 보이다 보니 좋아요나 조회수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평균 몇 프로인데 이번엔 몇 프로 증가라는 식으로 나오다 보니 아예 무시하기는 힘들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책 한 권을 10분 동안 소개하는 것보다 여러 권을 2~30분 동안 함께 소개하는 영상이 조회수가 더 잘 나오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보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을 참고해 업로드 텀 같은 것도 계획합니다. 좋아요, 싫어요 개수를 따져 왜 싫어요가 많은지 고민하게 돼요. 저 혼자 보자고 올리는 영상이 아니니까 그런 것들을 다양한 방면에서 참고해 영상 만들 때 적극적으로 합니다.

박인성 :
프로이신데요? 영상에 ‘싫어요’가 눌리면 상처도 입을 것 같은데.

다이애나 :
상처는 입어요. 예전에는 싫어요 기능을 괜히 만들어서 의욕을 꺾을까, 굳이 있어야 하나 하는 식으로 생각했어요. 지금은 싫어요도 하나의 의사 표현이다, 싫어요가 쌓이다 보면 사람들이 영상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서 추측하는 거예요.

박인성 :
MCN에 소속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회사에서도 영상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시나요?

다이애나 :
회사마다 다른데, 제가 소속된 곳은 거의 제가 만드는 것을 터치하지 않으세요. 제가 기술적인 어려움, 고민 같은 게 있을 때 연락드리면 조언해주시거나 알아봐 주세요. 제가 문의를 안 드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쪽에서도 콘텐츠 만드는 것에 있어 크게 터치하지 않으세요.

공백 :
기획사의 경우 성과 보고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있나요?

다이애나 :
아니요. 기획사마다 크리에이터마다 다 달라서 말씀드리기 애매한데, 제가 소속된 곳은 그런 게 없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어려움이 생기면 도움을 주시거나 하는 방식입니다.

박인성 :
이건 번외 질문인데, 반대로 모든 독서 경험이 만족스러울 수 없으므로 비판적인 리뷰를 콘텐츠로 생산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공백 :
저는 그달에 읽은 모든 책을 리뷰하는 콘텐츠가 있어요. 이름은 ‘월말정산’인데, 거기에서 얘기해요. 나는 이 책의 이런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아쉬움이 있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편이에요. 특별히 논쟁이 필요한 책들은 단독으로 다뤄보기도 하지만, 읽고 내게 유의미한 책은 아니었다면 ‘월말정산’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수준인 것 같아요.

박인성 :
영화와는 시장의 크기와 향유자의 숫자가 달라서 문학/ 도서 출판의 영역에서는 뭔가를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콘텐츠 생산자들이 조심스러운 지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백 :
비평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채널은 또 따로 있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책을 읽을 때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하고 읽는 편이어서 비평의 관점을 많이 다루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독자의 전면화와 영향력의 세계

 

 

박인성 :
준비된 좌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개인 채널 시대의 독자들’은 출판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나 요구가 있는가.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서포터즈, 북클럽 등 다양한 형태의 서평가가 존재하고, 출판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나서고 있잖아요. 책과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독자들로부터 도움받기 위한 시도들이죠. 독자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해진 만큼 독자의 욕망을 우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환기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평단, 서포터즈도 솔직히 본인들 하는 것에 대해 대가가 대단하지도 않잖아요. 책 지원받는 정도니까요. 개인 채널 운영자분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큰 수익을 위해 운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종이책과 출판 분야에 참여하는 심리와 욕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아란 :
초반에도 이야기하셨던 창작자분들 있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분들. 그게 다 연결되는 이야기 같은데, 매체가 발달하면서 자기를 전시하고,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게 훨씬 편해졌잖아요. 전시한다는 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긴 한데, 그런 것들을 따라가고 소진하지 않기 위해 자기가 창작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파도가 치니까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세계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책을 쓰지 않아도, 비평한다거나 적극적인 측면으로 드러나고, 능동적이고, 다면적이죠. 한 가지 캐릭터로만 살아가지 않아요. 그게 특징 같아요. 앞으로 출판사나 플랫폼이 다양한 독자들의 욕망을 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소통하고, 쌍방 성장이 이루어지는 게 방향성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팬 문화라고 하면 가장 발달한 게 아이돌 분야잖아요. 예전에는 아이돌 따라다니고,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느낌이었는데, 최근에는 팬들이 굉장히 양육자의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다가도 아닌 것 같으면 피드백을 하기도 하고, 그런 게 명확하고요.

박인성 :
적극적인 팬덤 형상도 함께 나타날 것으로 보시는군요.

공백 :
팬슈머라고 하잖아요. 우리 모두가 소비하는 동시에 생산하는 사람이고, 도서시장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하고, 상호 발달하는 것 같다고도 생각하고요. 특히 출판 시장 같은 경우 기존에 권위와 위치 있던 사람들, 인증받았던 사람들이 책을 내고 목소리를 냈다면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잖아요.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이 나 역시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해 자신을 발화하고, 그걸 본 사람들이 또 유입되고. 그게 서로 강화되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더 강화되지 않을까, 서로 힘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다이애나 :
제가 학생이었을 때 책이란 배우기 위해 읽는 것,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요. 요즘은 저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깨려고 노력하는데, 출판사도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독자들 역시 이제는 그냥 단순한 수용자에서 내가 어쩌면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인지하게 되는 것 같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SNS가 그걸 쉽게 만드는 것 같고요. 작가에 대한 팬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영상에서 저 역시 정말 많이 했는데요. 그러면 그 작가께서 신간을 내시면 구독자님들이 알려주시거든요. 이 작가님 신간 내셨다, 빨리 사셔라, 리뷰 기다린다는 식으로 알려주세요. 그렇게 드러내는 게 ‘내가 이러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있고, 나아가 내 정체성이 이러합니다’라는 식으로 일부분을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져요. 그 과정에서 실제로 그 작가님이 영상을 보시고, 뭔가 고맙다던가 잘 봤다던가 피드백을 남겨주실 때도 있고, 출판사에서 연락 주실 때도 있고, 그런 걸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예전에는 그냥 나 혼자 노트에 쓰고 끝이었다면, 이제는 휘발되지 않고 어딘가에 구체적으로 가 닿고 있다는 걸 느껴요.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그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참여해서 출판 시장에 뭔가를 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데서 재미를 얻다 보니까 그런 것 같고요. 팬덤과 관련해서 간혹 우려를 표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지금으로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독자분들이 앞으로 더 그런 걸 표현하고, 발화할 여지가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해나 :
여러분은 책 읽는 친구들 많으세요? 저 같은 경우 일단 깊이 생각하는 것들을 좋아한다는 게 독서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잖아요. 저도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얘기할 때는 웃긴 얘기하고, 웃기려고 하지 내밀하고 깊이 있는 걸 하지 않거든요.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건데, SNS에서 가족보다 그 사람들과 더 매일 보는 셈이거든요. 얕은 연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즐거움이 있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검증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의미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서 흘러가는 즐거움에 대한 게 있고, 또 하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상승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거예요. 좀 더 나은 취향, 좀 더 깊이 있는 자기 세계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게 독자들의 흐름이고, 나머지는 흐름이 그러하니 궁금한데 해볼까 하는 흐름들 조차 소비하는 영역이 방대하긴 하지만, 진정한 독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 시장을 확장하는 것 같고요.

박인성 :
숫자로 규명된 세계이기 때문에 숫자와 영향력의 문제는 굉장히 직결된 거잖아요. 영향력을 얻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고, 팬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조심스러워하기보다 큰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우선적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도가 없는 세상에 지도를 만들어나가려고 하는 자신만의 지도 그리기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영향력이 중요해진만큼 최근에는 전통적 비평가들의 역할은 약화되었다고 봐야겠죠. 또 잡지가 예전처럼 출판이나 문학에 대한 아젠다를 확립하고, 담론을 구성하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갔던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하던 시대도 자나갔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애초에 구분이 미묘한 영역입니다만, 리뷰와 감상, 서평과 비평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독서주체로서 자기 존재감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독자의 전면화뿐 아니라 독서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나 현황은 없을까요?

공백 :
너무 명확하게 빈익빈 부익부가 확고한 시장 같아요. 알고리즘의 은총을 받아 성장했다면 괜찮은데, 너무 괜찮은 작가님들과 서적들이 묻히고 있는 것이 염려되는 요소이고…

박인성 :
우리나라 최고의 책 소개 계정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시죠. 휴가 때 무슨 책을 읽으셨나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런 상황들, 어떻게 보면 발언과 영향력의 쏠림 현상이 다양성을 해체지 않는가하는 점도 걱정되는 부분이에요.

공백 :
목소리 내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말씀해주신 대로 주목받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 보니 저는 이것조차 어느 정도 긍정적이라고 봐요. 예전에는 큰 언론사 같은 곳에서 메인 목소리만 들렸다면, 지금은 다분화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에 경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기는 하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조심해야 할 건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 어떤 영향력 있는 채널들의 힘이 커진 만큼 호도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문제의식도 그들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큰 것에 가려 못 듣고 있는 목소리가 없는가, 저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이끌려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들이 생각나고요.

박인성 :
작가분들도 예전에는 조용히 작품활동에만 전념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 개인 채널도 활발하게 활동하시고, 다양한 매체에서 열정적으로 자기PR하는 모습이 익숙합니다.

조아란 :
책은 책이랑만 경쟁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우리끼리 보면 예전에 비해 많이 다양화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아직은 너무나 부족하죠. 영상 광고할 일이 있어서 키워드를 설정하는데 그러다보니 유튜브에서 그 키워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규모를 알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관련 키워드들을 모아도 광고 집행을 할만한 유의미한 타켓의 수에 도달하지 못하는거에요. 그때 다시 한 번 느꼈죠.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걸요. 그래서 어떻게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인성 :
작가분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피드백이 다양한 상황이면 소수 비평적 언어에 휘둘리지 않아요. 혹은 심지어 비평가들의 언어도 부족하고, 문학에 대한 피드백들을 찾다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까지 들어가시는 작가분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 정도로 외부의 피드백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상황들이다 보니 사실은 이 피드백이 많아져야 생산적인 소통이 가능할 텐데 부족한 것도 확실해요.

조아란 :
시장 자체가 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 채널 같은 경우 개인 채널들보다 자본력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마켓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 싶어요. 몸집을 키우고 싶고요. 그게 잘 될지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우리에겐 그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더 많은 북튜버 셀럽들이 필요하다는 거죠.

박인성 :
저도 비판적으로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근대 문학의 출발도 이런 것이었거든요. 더 많은 관심을 얻기위한 당대 ‘셀럽’들의 관심끌기와 그들에 대한 자본의 후원 속에 문학이 성장한 거죠. 줄리언 반스의 책 중에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에는 벨에포크 시대 문학의 주변부를 다루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시대 문학이라는 건 실상 셀럽이 되고 싶은 관종들의 사교적 모임의 결과물들이었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맥락이 문학의 성취와 의미를 무너뜨리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조아란 :
미디어 셀러와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충분히 공감하는데, 기본적으로 저는 그냥 다 환영하거든요. 쏠림 현상을 걱정하기엔 그 쏠림 조차도 편향이라 부르며 경계할 만큼 충분히 몸집이 크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마케터로서 아무튼, 어떻게 하면 더 노출할 수 있을까, 사람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울타리 낮추기와 넘나들기

 

 

박인성 :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마무리 발언과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각도에서 유의미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결국 아직 안 한 질문. 우리가 열렬하게 개인 채널에서 발화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 욕망의 이면에 “책이 뭔데? 그런 거 왜 읽는데?” 라고 말하는 선을 긋는 비-독자들의 무감각이나 저항 역시 굉장히 크고, 그들이 느끼고 있는 책에 대한 울타리의 높이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죠. 이건 답이 없는 질문인데, 울타리를 넘어가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꼭 넘어가야 하는가 고민이 됩니다. 연결에 대한 욕망은 잠재적인 독자와 더 많은 독자들을 향해 열려 있고, 결국 영향력의 확장 또한 이러한 비-독자의 영역을 공략하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해나 :
문해력에 대한 위기는 계속 될 것 같고요. 일단 MZ 세대 자체에 이런 숏 폼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각각의 노력이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그게 욕구가 있거나 인지한다면 좋겠지만, 창작자로서는 그게 시대가 원하는 거면 그것에 대한 제작은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 반대되는 부분(깊이 사유하고 확장해가는 일에 대한)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대책과 개발은 계속 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대의 흐름을 안 따라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걸 따라가되, 그 안에서의 확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 같습니다.

조아란 :
누군가는 울타리를 낮추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타고 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들어온 사람들을 가둬야 하겠죠. 다양한 방법들이 다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책이 안팔리는건 안 읽어서 그렇지, 일단 읽어보면 좋은줄 알거야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독서모임을 해보니 그것도 최종 방법은 아니더라고요. 책을 읽었어도 취향의 차이도 있겠지만 특히 해외문학 ,고전의 경우 사람들마다 독서력의 차이가 있어서 읽는다고해서 그냥 책이 좋아지는게 아니더라고요 당연하지만.
그래서 지금은 독자들을 위한 읽기 교육도, 즐거운 커뮤니티도, 크고작은 챌린지들도 모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좋은 책이 있으니 읽어봐라고 말하기 전에, 책 읽는 경험과 습관을 같이 하는 문화 자체를 즐겁고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요. 이런 근본적인 고민들은 일정부분 출판사 생존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문해력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책이 더 잘팔릴 거라는 기대는 가지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거듭 말하지만 책으로 하는 모든 역할과 시도들을 환영하려고 합니다.

공백 :
저도 완벽하게 공감해요. 이를테면 다른 예지만, 비건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치면 가장 전방에 서서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정도만 해도 된다고 살짝만 발을 담가보라고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완전 최전방에서 강경하게 이게 원칙이야, 이런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단단하게 추구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는 거예요. 모든 지점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거죠. 독서도 마찬가지인 거고요. 문에 서 있는 사람, 핵심에 계신 분도 있을 거고, 다만 모든 부분을 촘촘하게 다룰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가 아주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지키면서 촘촘하게 서 있자는 생각이 듭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다이애나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비독자들에게 반드시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강조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이야기한 부분들이 울타리를 낮추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어요. 가끔 책을 잘 안 읽고 안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점점 흥미를 느꼈다고 댓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럴 때 보람이 가장 커요. 그걸 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고, 한 권이라도 더 팔렸으면 좋겠고 하는 마음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렇게 심각한 문제 의식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거니까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고, 당분간 이런 방향으로 서로서로 더 큰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라고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 기대 덕분에 지금 계속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공백 :
독서 행위 자체를 운동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유튜브에서 운동이 삶에 필수적이고 즐겁다고 말하면 관심은 가지겠지만, 운동을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않으면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뒤늦게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운동 필요성을 체감하게 됐을 때 운동을 멋지게 즐기고 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쪽으로 넘어가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해요. 책도 마찬가지 같아요.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면 언젠가 독서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이 생길 거라고 봐요.

박인성 :
각자의 영역에서 울타리를 낮추거나 넘나들며, 그러한 넘나들기를 알리고 가르치는 역할 모두가 중요한 역할인 셈인데요, 그만큼 역할의 다양성을 위한 개인채널시대 독자들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긴 시간 토론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좌담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폐회〉

 

 

 

 

 

 

   《문장웹진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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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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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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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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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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