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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 작성일 2022-10-01
  • 조회수 2,413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과 타인의 호의에 대한 익숙함이다. 어차피 병실의 환자들은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들”(13쪽)이기에 그들의 시선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병원 사람들은 시안을 “요즘 애들”답지 않게 엄마의 수발을 드는 대단한 희생정신을 가진 아이로 여기지만, 정작 시안은 이로부터 도망치거나 외면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간병은 막상 닥치면 누구도 할 수밖에 없는 다소 강제적이고도 의무적인 일임을 깨달은 것도 오랜 돌봄 경험으로 터득한 이치다.


너도 언젠간 네 가족을 간병하게 될 거야. 그렇게 충격 받을 거 없어. 너도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게 될 거야.(118-119쪽)


하지만 이런 시안에게 유독 견디기 힘든 것이 있으니 바로 책임감이 결여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때다. 엄마의 병간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정작 학교에서 당번으로서의 책임감은 소홀히 한 시안은 같은 반 친구로부터 책임감 없다는 말을 듣게 되고 이에 모욕감을 느낀다. 시안이 병원에서 기특하고 책임감 강하다는 평가에 익숙해질 동안 학교라는 세계의 법칙은 시안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정해진 기한이 있다면 온 마음 다해 간병할 수 있을 텐데 기한을 예측할 수 없어서 힘든 시안은 자신의 미래가 간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예감한다. 간병 이후의 삶을 떠올려 보아도 홀가분함보다는 또 다른 막막함에 가로막혀 있다. 시안은 자신이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 모든 사랑과 마음을 받고 자랐기에 엄마를 간병하며 보내는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해원과 신촌에서 데이트를 한 날, 병원에 몸이 매어 있는 시안은 엄마에게서 잠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지만 이내 곧 자신의 책임감 없는 행동을 탓하고 만다. 시안에게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은 곧 책임감의 결여이기에 신촌에서의 하루를 달콤한 휴가나 보상이 아닌 벌을 주어야 마땅한 일탈이라고 여긴다.
엄마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포기하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시안은 엄마의 삶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할 만큼 지쳐 간다. 엄마를 안쓰러워하다가 서서히 냉담하게 변해 가는 시안은 엄마가 자신의 삶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다.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97쪽)


견디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시안에게는 죽음조차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아득할 뿐이다. 시안은 다시 만난 해원을 보며 그동안 자신이 감수해 왔던 수고로움과 불편들이 불합리하게 느껴지고 이제껏 묵혀 두었던 감정들을 해원에게 전가한다. 그렇다면 해원은 어떠한 삶을 견디고 있을까?


되찾고 싶은 평범함


해원에게 ‘그 일’은 두 번 다시 반복하기 싫은 악몽과도 같다. ‘그 일’은 해원의 엄마가 해외에 사는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오고 감염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부터다. 그동안 해원은 시안을 만나고 학원에 가고 예배에 참석하고 외식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이어 갔고, 그렇게 해원의 가족은 ‘슈퍼 전파자 N번’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원의 가족은 신상이 공개되고 각종 악플과 경멸에 시달리며 숨죽이며 살아왔다. 해원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지방으로 이사를 갔지만 시안의 등장으로 자신이 되찾은 평범한 일상이 다시금 위협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해원은 6년 만에 자신 앞에 나타난 시안의 존재가 불편하다. 6년이란 시간 동안 단절된 거리를 비집고 들어온 시안이 자신의 개명한 이름을 끝까지 불러 주지 않는 것도 마치 ‘넌 슈퍼 전파자 김해원이야’라며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원은 시안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시안과의 관계를 마지못해 이어 간다. 이미 ‘그 일’로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나타난 시안으로 하여금 해원은 불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해원은 ‘그 일’로 자신의 가족이 망가진 삶을 복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런 사소한 행복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리라는”(140쪽) 것 또한 알고 있다. 해원의 집 안 곳곳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과 해외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은 행복한 모습을 전시하고 있지만, “무차별 공격을 받으니 이상하게도 죄책감은 희미해지고 생존 욕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135쪽)은 해원의 가족에게 다시 찾은 평범한 삶은 적당히 고생하며 궁상맞게 살고, 무엇보다 ‘그 일’에 대한 충분한 벌을 받은 대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안에게 해원의 평범한 삶은 그동안 견뎌 왔던 감정을 분출하는 기폭제가 된다. 과거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해원의 모습을 보면서 시안의 마음은 더욱 고약해져 간다. 주말의 약속과 계획이 있는, 그리고 입시를 준비하고 연애를 하는 해원의 삶은 시안에게 상상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상 아니던가. 해원을 만나고 시안은 그동안 엄마와 함께 잠들어 있던 어떤 무의식이 작동하고 그동안 자신을 “지탱하던 부품 하나가 빠진 것처럼”(135쪽)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시안은 자신이 견딘 만큼 해원도 견뎌야 마땅하다는 생각과 그저 해원이 자신의 고통을 일부라도 이해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그동안 숨겨 왔던 엄마를 해원에게 보여준다. 자신을 짓눌러 왔던 죄책감의 근원을 해원에게 넘기는 것이 억지임을 알면서도 시안은 해원에게 모든 책임과 화살을 돌리고 엄마를 포기하고 싶은 자신의 무의식까지 의탁한다. 해원의 과거를 빌미로 엄마의 산소공급을 차단해 달라는 섬뜩한 부탁을 하면서 말이다.


해원에게는 내가 재앙이었을까. 일상을 망가뜨린 재난 같은 것. 재난은 계산을 하고 우리를 덮치지 않는다. 나는 계산을 하고 가장 약한 해원만을 노려왔으니 더 최악일지도 모른다.(211쪽)


자신의 손이 아닌 해원의 손을 빌려 엄마를 놓아버리고 싶은 시안의 눈에서 해원은 섬뜩함이 아닌 착잡함과 절박함을 읽어낸다. 그리고 시안을 도와 시안의 엄마를 함께 간병하는 해원은 시안이 능숙하게 간병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어떤 시간과 과정을 지나왔을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능숙하게 돌본다는 것은 그만큼 고된 숙련의 시간들을 거쳐 왔다는 뜻이니까.
해원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결국 엄마에게 시안의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이미 시안의 엄마가 식물인간임을 알고 있었다. 해원이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쩌면 해원의 엄마에게는 이 사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해원은 망연자실한다. 엄마가 시안의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함께 나눌 거라 여긴 자신의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깨달은 해원은 시안의 세계를 경험하며 문득 자신의 평온하고 단조로운 세계가 가상공간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시안의 공간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고단함을 나누고 견디며


이들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엉킨 것일까. 시안의 엄마가 식물인간이 된 사실을 알고 해원의 엄마가 건넨 약간의 목돈, 그리고 그걸 받은 사실을 숨긴 시안의 아빠, 이러한 정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시안과 해원.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이 관계를 풀어낼 수 있을까. 소설은 인과관계를 추적해 책임의 원인을 묻기보다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견뎌내는지에 집중한다. 즉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덜어 주고 견뎌 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시안은 자신보다 힘들어 보여서, 그냥 견뎌 주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에게 어깨를 빌려주다가 버스에서 내려야 할 곳을 놓치기도 할 만큼 삶의 고단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안의 죄책감과 외로움을 덜어 주는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이 있기에 시안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힘을 낸다. 그동안 최선희 선생님이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것에 내심 서운함을 지니고 있었던 시안은 선생님 또한 장애가 있는 아들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얽매여 있었음을 알게 된다. 최선희 선생님에게도 퇴근 후의 삶이 있고 그 시간이 누군가를 돌보는 데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시안은 간병인과 보호자라는 비슷한 처지에서 오는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를 얻는다.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155쪽)

아프면 위로받아야 하는 거지,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그 말이 해원의 입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누가 그렇게 해주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를 돌봐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아플 수 있다는 것을 해원은 깨달았다.(182쪽)


누군가를 보살필 줄만 알지 정작 보살핌을 받을 줄 모르는 시안의 짐을 함께 지고 싶어 간병을 돕던 해원은 왜 시안이 그동안 냉소적이고 방어적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기약 없는 간병으로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진실로 시안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한다. 그리고 시안이 누군가의 손을 빌려 엄마를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어쩌면 진정 시안을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마의 산소통 밸브에 올려진 손은 시안도 해원도 아닌 시안 아빠의 것이었다. 해원은 시안의 집에서 시안의 아빠가 그의 손으로 엄마를 버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막아 시안의 엄마를 그리고 시안의 세계를 지켜낸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죄책감과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 너무도 버거웠던 걸까. 시안과 해원은 결국 서로의 영혼을 해치지 않기 위해 함께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언젠가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다면 그때도 옆에 있는 서로를 원망할지 모르니까. 시안과 해원은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서로에게 화해하고 용서를 구한다.


나는 해원이 안전하기를 바라며 그 애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나 자신을 멀리 떠나보내기로 했다.(208쪽)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페퍼민트처럼 알싸한 잔향처럼 기억되며 자신들의 세계를 살아갈 것이다.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 하지만 함께하지는 않은 채. 우리는 자신의 삶에 한없이 고여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삶에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매듭지어진다. 그 끈을 더욱 단단히 동여매며 관계를 이어 가고 싶었던 해원과 느슨하게 풀어 정리하고 싶었던 시안은 서로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도 혹은 얹어 주기도 하며 연결과 단절을 경험한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실의 고단함을 견뎌 온 해원과 시안이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햇볕이 있는 곳으로”(212쪽) 나아가길, 그리고 누군가의 삶과 세계에 계속 흘러 들어가서 고여 있지 않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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