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황금동의 죽음

  • 작성일 2022-07-01
  • 조회수 1,416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2021년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황금동의 죽음



윤지영





등장인물


황영서 (18세)
금여사 (82세)
석자연 (18세)
황금동 (황금동은 개다. 하지만 50세에 가까운 건장한 사람,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강지수 (18세) / 수의사(40대 중반) 1인2역



1. 강둑
개껌을 문 채 유모차 안에 누워 있는 황금동, 몸이 커서 꽉 낀다.
그런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고 있는 황영서, 많이 맞았는지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영서석자연이 또 때렸어.


황금동(하품)


영서걔는 항상 가랑이를 벌리고 앉더라.


황금동(관심 있게 듣는다)


영서남자 선생님들 앞에선 더 쫙 벌리고 앉고.


황금동(입 모양만) 오!


영서변태들.


황금동(눈치 보며 다시 개껌을 핥는다)


영서야, 평소엔 벌점이니 뭐니 말도 잘하는 새끼들이 석자연이 가랑이를 벌리고 앉으면 왜 입을 다물까? 자식 같은 애 팬티를 보면서 뭐라도 상상하는 걸까…… 이 자식아! 주인님 말씀하시는데 낑낑이라도 대야 할 거 아니야.


황금동(콧구멍 벌렁거리며) 아우, 얘 오늘 그날인가.


영서자연이 그년이 또 팼다고.


황금동며칠 전에 3반 강지수랑 한 판하고 안 그래도 잡티 많은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난 화풀이를 너한테 한 거잖아.


영서며칠 전에 3반 강지수랑 한 판하고 안 그래도 잡티 많은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난 화풀이를 나한테 한 거라니까.


황금동(고개를 끄덕인다)


영서(황금동이 무슨 말을 했나 갸웃하며 황금동을 보다가 말을 꺼내려고 하면)


황금동잡티 하나 없이 곱디고운 하얀 얼굴 니가 참아야지, 누가 참겠니.


영서잡티 하나 없이 곱디고운 하얀 얼굴 내가 참아야지, 누가 참아. 참으면 반이나 간다고


황금동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사람구실 한다고.


둘이(동시에) 며칠 전에 이쪽 세상 빠이빠이하고 위쪽 세상으로 간 금여사가 그랬잖아.


둘 다 입을 다문다.
황영서는 유모차를 끈다.


영서……석자연이 또 때렸어.


황금동나쁜 년이네 그거.


영서걔는 항상 가랑이를 벌리고 앉더라.


황금동미친 거 아니야?


황영서와 황금동,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2. 방
작은 상 하나를 두고 금여사와 황영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상에는 김치찌개가 놓여 있다.


금여사(김치찌개에 숟가락을 푹 담그면)


영서에이즈 환자랑 이렇게 같이 퍼먹어도 안 옮을까?


금여사야!


영서아니, 좀 궁금해서. 과학적으로다가.


금여사넌 이제껏 낳아 주고 길러 준 은혜를 이렇게 갚냐.


영서그치?


금여사뭐?


영서낳았지?


금여사아 머리 아파.


영서낳은 거 맞네. 그런 걸 손녀라고 여지껏 구라를 까냐.


금여사……니 엄말 내가 낳았으니까, 거 뭐시냐. 비유. 비유 몰라? 국어 시간에 안 배워?


영서쪽팔리지?


금여사뭐?


영서18년간 내도록 손녀다 손녀다 우겼던 걸, 김치찌개 앞에서 뒤집게 된 거.


금여사…….


영서근데 도대체 몇 살에 낳은 거야. 64(육사)? 육온가? 아니 그맘때는 원래 여자구실 못 하는 거 아니야?


금여사몰라 나도 인마. (밥을 먹는다)


영서엄마.


금여사(울컥) ……할머니! 할머니라고 불러. 나 죽고, 너 죽을 때까지 난 할머니야. 누가 들어서 좋은 일 없어.


영서왜 김에다만 꾸역꾸역 싸 먹어? 아까 에이즈 옮는 얘기해서 그래?


금여사…….


영서할머니!


금여사…….


영서(금여사 얼굴을 보며) 똑같은 얼굴인데.


금여사…….


영서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엄마라는 걸 아니까…… 어쩐지 정이 더 가. 사람 맘이 참 간사해, 그치.


금여사그래.


두 사람, 말없이 밥을 먹는다.


3. 편의점
황영서 물건 정리를 하고 있고, 석자연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자연그래서?


영서뭐 손녀라고 하면 나나 그쪽이나 손해는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자연야 근데 너네 할머니, 아니 엄마면서 할머니로 위장하는 금여사, 남편 없었잖아. 몇 십 년 동안.


영서응.


자연근데 어떻게 널 낳아?


영서말미잘이냐. 미혼모는 남편 있어서 애 낳아?


자연아…….


영서종로 어디 공원에서 만났대.



영서없는 자리에서 누굴 욕 못 해?



자연벌써 죽진 않았겠지?



영서?



자연니네 아부지.



영서설마.



자연찾아가 그럼.



영서뭐 하러.



자연금여사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영서그놈의 아가리는 태어날 때부터 눈치가 없지.



자연아니, 너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라. 너 장례비 있어?



영서…….



자연금여사 죽으면 어디서 살 건데.



영서여지껏 살던 데 살지 어디 사냐. 월세도 내가 다 냈구만.



자연하긴. 알바를 졸라리 많이 하는데, 너 하나 사는 덴 문제없겠다. 근데 드라마 보면 엄마들이 죽기 전에 숨겨 놨던 아버지 찾아 주고 그러지 않냐. 출생의 비밀 이러면서. (갑자기 놀라) 어?



영서왜?



자연재벌 딸 아니야, 너?



영서지랄.


자연, 라면 먹는다.


무대 한쪽
목줄을 맨 황금동을 데리고 금여사가 나타난다.


영서그건 뭐야.


금여사공원에서 자고 있더라고.


황금동, 여기저기 오줌을 지린다.
자리를 못 잡고 빙빙 돈다.


영서에이. 뭐야 개가 노망이 났나.


금여사(개 오줌을 닦으며) 어려서 똥오줌을 못 가리는 거야.


황금동(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영서딱 봐도 열 살은 넘었겠구만.


황금동(인상을 쓰며 고개를 젓는다.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다)


금여사너 몇 살이야? 아이구 그랬어? 아직 애기야? 봐라, 애기란다.


황금동(어색한 웃음)


영서참 내.


금여사, 이불을 펴준다.
황금동에게 와서 누우라고 손짓하면 싸구려 이불에는 안 앉겠다는 황금동의 표정과 몸짓
금여사, 그런 황금동을 안아서 이불 위에 누인다.
황금동, 잠깐 놀라지만, 금여사를 가만 보다가 손을 핥는다.


영서키울라구?


금여사그럼.


영서남이 버린 걸 왜?


황금동(울적해 고개를 숙인다)


금여사남이 버리긴. 날 찾아와 준 거지.


황금동(감동해 금여사를 올려다본다)


금여사……너처럼.


영서누가 버린 걸 주웠어? 할머니 딸이 아니고?


금여사야. 비유잖아, 비유. 국어공부 좀 해라.


영서난 또.


금여사황금동 어때?


영서뭐가?


금여사이름.


영서동네 이름도 아니고 뭔 황금동.


금여사황영서의 황. 금숙자의 금. 황금은 좀 그러니까 황금동. 어때?


황금동(썩소를 짓는다)


금여사봐봐라. 얘도 좋아서 웃잖아.


영서황? 황 씨야?


금여사뭐가.


영서내 아부지.


금여사자자, 황금동아. (황금동을 토닥인다)


영서누구야?


금여사…….


영서누군지도 몰라?


금여사아이고, 잠이 오네, 그치 황금동아?


영서(금여사에게로 다가가) 누군데?


금여사(강하게) 몰라.


영서…….


금여사(속삭이듯) 진짜 몰라.


금여사와 황금동, 사라진다.


라면을 다 먹은 석자연,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황영서에게 다가온다.


자연(낄낄거리며) 야, 그런 거 아니냐.


영서뭐가.


자연박카스 할머니.


영서뭐?


자연못 들어 봤어? 종로 공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졸라리 앉아 있잖아. 할머니들이 할아버지한테 박카스 주면 그게 그 의미라던데?


영서야, 너 짜증나게 뭔 소리하는 거야?


자연에이즈에 걸린 이유를 생각해 보자고. 니네 할머니. 아니, 니네 엄마. 일하는 데가 어디였지?


영서요새 일 안 하거든.


자연그니까, 너 알바하기 전에. 뭐라도 했으니까 널 먹여 살렸을 거 아니야.


영서하고 싶은 말이 뭔데.


자연봐봐. 시나리오가 이런 거야. 육십넷에도 니네 할머니는 할머니였으니까, 뭐 공원 같은 데 가가지고. 어느 할배한테 박카스를 딱 줬는데, 그날 하필이면 날이 날이어서(낄낄거리며) 아, 씨발. 임신이 됐네. 어째. 애 뗄 돈이 없어서 낳았는데, 낳고 나니까 또 애 키울 돈이 없네. 그래서 종로 공원 일대를 욜라리 다니다가 어느 에이즈 걸린 할배한테 박카스를 딱 줬던 날. 그날 하필이면 날이 날이어서(낄낄거리며) 아, 씨발. 에이즈에 걸렸네. 어때?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겠냐.


영서야.


자연(여전히 웃으며) 왜, 안 재밌어?


영서너 이게 웃기냐.


자연아, 왜 그래. 시나리오 구상한 걸 가지고. 애가 가만 보면 참 예민해.


영서이년이 진짜 똥을 삼키고 태어났나. 입에서 구린내가 계속 나네. 내가 너 오늘 적혈구 백혈구로 가글 한번 하게 해줄게, 응?


황영서, 석자연을 때리기 시작한다.
멍하니 한두 대 맞던 석자연, 화가 나서 황영서의 머리끄덩이를 잡는다.
둘의 싸움, 더욱 거칠어진다.


4. 교실
‘황영서는 에이즈다’ 커다란 낙서가 그려진 칠판
1장보다 더 상처투성이인 황영서, 책상에 앉아 있다.
몇 줄 앞, 석자연 스마트폰을 하며 웃고 있다.
이하, 칠판을 향해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독백하듯 이루어진다.


영서넌 왜 자꾸 날 때리냐.


자연니가 덤볐잖아.


영서우리 친구 아니었냐.


자연씹감성충 나셨네.


영서또 때릴래.


자연응.


영서언제까지.


자연니년 죽을 때까지.


영서왜.


자연니가 덤볐잖아.


영서그게 다냐.


자연난 주제도 모르고 잘난 척하는 것들이 싫어.


영서뭐?


자연내가 너랑 왜 어울려 줬게? 나보다 못나서 어울려 준 거잖아. 너랑 같이 있으면 폼이 나니까. 내가 더 이뻐 보이고, 더 잘나 보이니까. 감히 너 같은 게 날 때려?


영서허허.


자연그렇게 좀 웃지 마. 나보다 세상 더 안다는 듯이 웃지 말라고. 할머니도 죽은 년이. 할머니라고 알고 있던 에이즈 걸린 엄마도 죽은 년이. 병 걸린 개밖에 안 남은 년이. 에이즈도 옮았을 게 틀림없는 년이.


수업 종이 친다.


영서그만하자.


자연아, 씨발, 뭘 그만해?


석자연, 자리에서 일어나 황영서를 때린다.
수의사, 황금동이 탄 유모차를 밀고 들어온다.


수의사혹이 잡히는데.


영서(여전히 자연에게 맞으면서) 그럼?


수의사수술해야지.


영서수술하면 살아요?


수의사응.


영서수술 안 하면 어떻게 돼요?


수의사죽겠지?


영서수술 안 하면 얼마나 살아요?


수의사일주일 견딜 수도 있고, 잘 먹이면 두 달 버틸 수도 있고.


영서수술비는 얼마나 돼요?


수의사한 70만 원. 날짜 잡고 갈래?


영서아니요. 전화로 예약할게요.


수의사, 사라진다.
황금동, 맞고 있는 황영서를 바라본다.
영서, 운다.


황금동금여사 죽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더니, 왜 그래. 안 어울리게.


영서씨발.


황금동알바비 가불해서 의젓하게 장례까지 치른 고등학생이 왜 울어. 답지 않게?


영서그만 때려.


자연(낄낄대며) 너 우냐? 왜 울어?


영서가불할 알바비가 안 남아서 운다.


자연병신이네 이거.


영서그만 때리라고. 나 맘 바뀔라 그러니까 진짜 그만 좀 때려.


황금동처음 볼 때 몰랐어? 이렇게 늠름하고 잘생긴 날, 전주인이 왜 버렸겠어. 병에 걸렸으니까 버렸지.


자연니가 날 완전히 우습게 봤지. 오늘 저쪽 세상 간 니네 할머니이자 엄마 따라 저승으로 가라, 응?


수의사와 얼굴이 똑같은 강지수 나타난다.
강지수, 황금동의 유모차를 잡는다.


지수야, 너 7반이지.


영서3반 강지수?


지수너 돈 필요하지?


영서뭐?


지수다 들었어. (고갯짓으로 병원 가리키며) 저기 우리 병원이야. 강지수 동물병원.


영서아.


황금동(올려다보며) 어쩐지 좀 사는 애다 했다. 눈 코 입 수술을 안 한 데가 없어.


자연단칸방에 병 걸린 개랑 사는 년이 나를 이렇게 무시하네. 아씨 짜증나. 너 내가 그동안 어울려 주니까 친군 줄 알고 기어올랐냐?


지수너, 석자연이랑 사이 안 좋대매?


영서걔 내 친구야.


지수친구는 개뿔. 너 에이즈라고 학교에 소문 퍼뜨렸다던데?


영서…….


지수너 에이즈 안 걸렸다는 것쯤은 알아. 그년이 구라까고 댕긴 거 전교생이 다 아니까 걱정 마.


영서근데.


지수(한쪽 다리를 유모차 위에 올려 스타킹을 내린다)


황금동(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다 훔쳐본다)


지수(스타킹 사이에 끼어 있던 면도칼을 꺼낸다) 석자연 뺨 한쪽만 긁어 줘. 그년 짜증나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자연(영서를 때리며) 니가 짜증나서 견딜 수가 없어.


영서짜증나면 니가 긁어.


지수야.


영서왜.


지수나 전교 1등이야. 서울대 가야 되는데 기록이라도 남으면.


영서허허. 1등이나 꼴등이나 하는 짓은 죄다 유아틱이야.


자연너 지금 나한테 꼴등이라고 그랬냐. 내가 공부 안 하는 거라고 했지. 했다 하면 강지수 이기는 건 한입에 마카롱 먹기라 그랬잖아.


지수너도 이 기회에 갚아. 참지 말고.


영서석자연. 인제 그만 좀 해. 진짜 못 참아.


자연한 줌도 안 되는 게 어디서. 나 여섯 살 때부터 태권도 배웠어, 이년아.


지수(윙크하며) 강아지 수술은 걱정하지 말고.


지수, 사라진다.


영서너무 당차게 치마를 펄럭거려서 자꾸 안 생겨도 될 신뢰가 생기잖아. 강지수한테. 눈 코 입 다 갈아엎고도 자연미인같이 자연스러운 강지수 말이니까 한번 들어 보자 싶잖아.


자연뭐?


황금동야, 황영서!


영서에이즈는 불치병이라 아예 마음을 비웠는데, 수술하면 산다니까 자꾸 솔깃하잖아.


황금동황영서, 참으면 반이나 간다고.


영서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사람구실은 한다고. 며칠 전에 이쪽 세상 빠이빠이하고 위쪽 세상으로 간 금여사가 그래서 진짜 참아 볼라 그랬는데.


자연(비명) 악.


석자연, 한쪽 볼을 감싸 안으며 황영서에게서 떨어진다.


영서황금동까지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수술하면 산다는데. 황금동이 산다는데. 황금동 없이는 나 진짜 혼자라서…… 미안해, 석자연.


5. 강둑
유모차를 끌고 가는 황영서, 그 옆으로 걷고 있는 황금동
석자연, 나타난다.


영서왜. 또 팰라구.


자연이게 합의해 준 은혜도 모르고. 너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빵에 있어.


영서……헛소리 할라믄 가라.


자연(뺨을 보이며) 어때, 감쪽같지?


영서그러네.


자연강지수 엄마한테 수술비 받았어.


영서나한테 받아야지 왜 걔네 엄마한테.


자연왜긴, 강지수가 너한테 시켰잖아. 넌 돈 없을 게 뻔하고.


영서(한숨)


자연아, 나도 정학이나 당할까. 낮에 학교도 안 가고, 팔자 좋네.


영서(헛웃음) 야, 쓸데없는 소리 할라믄 학교나 가.


자연(유모차 보며) 타봐도 되냐? (유모차에 앉는다)


영서아씨.


자연야, 밀어 봐.


영서뭐?


자연밀어 보라고. 황금동이 타고 있을 때처럼.


영서허참.


황영서, 유모차를 민다.
황금동, 옆에서 아이들을 따라 걷는다.


자연(유모차에 기대며) 이런 뷰였구만.


영서뭐가.


자연황금동이 본 경치.


영서……좋냐?


자연cozy.


영서뭐, 코딱지?


자연아씨, 무식한 년. 아늑하다고.


영서(웃음) 전교 꼴등이.


자연(버럭) 너 또 나 무시하냐.


영서내가 언제 너 무시했냐. 지도 맨날 나 무식한 년이라고 하면서.


자연황금동만 챙겼잖아. 나 보지도 않고.


영서너 지금 개를 질투하냐. 그것도 죽은 개를?


자연……난 친구 너 하나야.


영서(한숨)


자연그동안 나 상대해 준 거 너 하나라구.


영서…….


영서그냥 가라.


자연그때, 편의점에서. 니네 엄마 얘기한 거 아니야. 진짜 스토리 구상한 거야. 재밌을 거 같아서.


영서…….


자연나 눈치 없잖아. 다들 나보고 눈치 없대. 철도 안 들었고.


영서…….


자연난 이야기 생각한 건데 니가 내 얘기 들어 보지도 않고 씹었잖아. 맨날.


영서그래서 팼냐.


자연그래.


영서그게 친구냐.


자연……먼저 버림받기 싫어서 그랬다.


영서…….


자연아씨, 졸라리 재미없네. 학교나 가야겠다.


석자연, 사라진다.


황금동쟤 얼굴 진짜 감쪽같네. 과학기술이 점점 발전돼.


영서그 의사, 무슨 생각으로 수술하면 낫는다 그랬을까.


황금동원래 돌팔이였대. 다들 하는 말이.


영서동물병원 강아지 고양이 하는 말 들어 봤어?


황금동너 지금 내 말 들리는 거 아니지? 어쩐지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야.


영서널 안 데려왔으면 더 나았을까?


황금동공원에서 자고 있는데…… 금여사가 날 깨웠거든. 그렇게 자다 죽었으면 사람이 미웠을 텐데, 금여사가 날 깨워서, 니네 단칸방으로 데려가 줘서 다시 좋아지더라, 사람이. 금여사가 좋고, 니가 좋더라.


영서……위쪽 나라 갔지?


황금동아직 못 갔어. 사람 죽을 때랑 동물 죽을 때랑 시스템이 다르더라고.


영서금여사 만났어?


황금동…… (한숨) 조금 답답할라 그러네.


영서(울컥) 둘이 행복해?


황금동……살면서 눈물 보일 때는 엄마 죽을 때밖에 없는데 너는 그나마도 할머니밖에 없으니까 눈물 보이지 말고 잘살다 위쪽 나라 와라.


영서(눈물 닦으며) 금여사 유언이잖아.


황금동(웃는다) 그래, 가끔은 들리는구나. 나 여기 있어, 영서야. 너 혼자 아니야. 석자연도 있고 나도 있고. 저기 다리 건너 하늘엔 금여사도 있어. 금여사가 4년 대학 등록금 무사히 내고, 시집가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보험금까지 빵빵하게 나오게 해놨더만. 계약서 잘못 써서 아직은 못 쓰겠지만. 이제껏 편의점 알바로 용돈 쓰고, 참고서 사고, 전기세, 수도세까지 냈으니까 앞으로 2년은 잘살 수 있지? 넌 늘 의젓했잖아. 영서야, 우리 둘이 안 만났으면 나는 참 불행했을 거야. 여기 이렇게 떠돌아다니면서 누구 행복을 빌어 줘? 날 버린 사람들밖에 안 남아 있는데. 난, 여기 바람에 실려서 니 행복을 빌어 주다 너랑 같이 갈 거야. 그게 우리 할일이래. 알고 있었니? (입김을 분다) 후- 니가 여기 있을 동안 나도 내내 같이 있을 거라고.


황영서, 가만히 유모차를 내려다본다.
유모차에 앉는다.
앉아 하늘을 본다.
황금동, 황영서가 앉은 유모차를 민다.
황영서, 핸드폰을 든다.


영서(번호를 누르더니) 석자연, 라면 먹을래?


황금동과 유모차를 탄 황영서, 천천히 사라진다.(*)









윤지영
작가소개 / 윤지영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2005년 〈장흥댁〉 공연(극단 작은신화)·2005년 〈장흥댁〉 부산 공연(극단 연희단거리패)·2010년 〈上船〉 공연(극단 작은신화)·2010년 신작희곡페스티벌 희곡 당선·2010년 〈인간 김수연에 관한 정밀한 보고〉 공연(극단 작은신화)·2011년 목포문학상 희곡 당선·2013년 우리연극만들기 당선·2013년 〈우연한 살인자〉 공연(극단 작은신화)·2013년 〈上船〉 동경 공연, 주최 베세토 연극제(연출 야마다 히로유키) ·2014년 〈우연한 살인자〉 공연(극단 작은신화)·2018년 〈인간 김수연에 관한 사소한 보고〉 공연(극단 작은신화)·2019년 창작산실 〈하거도〉 공연(극단 작은신화)·2019년 남산예술센터 낭독 공연 〈생존3부작〉(극단 꿈의동지)


《문장웹진 2022년 7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