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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아람선생님-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의 가치를 전하는 사람

  • 작성일 2008-10-14
  • 조회수 745


       

 

인디고 서원(사진 위)의 앞쪽 풍경에는 얼핏 낡고 오래된 질감이 느껴지는 ‘시간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저 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문학, 철학, 역사&사회, 교육, 예술, 생태&환경이라는 6개의 서가를 만날 수 있다. 지나가던 발걸음의 방향을 틀어서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책들의 유혹이 가득한 곳이고, 그 책내음이 맘껏 흘러나오는 입구가 바로 이곳이다. 그 주위로 쌓인 벽돌들의 ‘응집과 응시’가 벽돌 한 장 한 장의 시선으로 되살아나서 들뜬 이의 마음을 쏘아보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그래서 걷던 걸음을 여기에 이르러서 멈추는지도 모른다.

 그런 깊은 벽돌들의 응시를 받으면서도 뚜벅뚜벅 용기 있게 이곳으로 들어가서 책을 만나는 이들은 누구인가. 혹시 저 벽돌들처럼 거짓 없는 질서와 조화를 꿈꾸는 이들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충분히 부끄러움을 느낀 채, 내 앞에 열려 있는 어떤 진리의 정면이라고 할 수 있는 풍경 하나를 슬쩍 밀치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나는 이곳을 통과하면서-그 첫 계단을 올라가는 그 낮은 첫 계단이 정확히 말하자면 느린 계단이라고 명명하고 싶은-그 첫 계단의 감촉이 발뒤꿈치에 가볍게 붙었다가 이내 슬쩍 떨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내가 듣는 내 발자국 소리가 이런 것일 것이다’. 서둘러 갈 수 없게 만든 이 계단은 마치 거대한 책의 서언(序言)처럼 낮고 차분한 걸음만을 받아들이는 듯싶었다.


 ‘아람샘’은 국제적인 규모의 ‘북페어’를 얼마 전에 끝낸 뒤로도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것을 캐묻는 이의 질문에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분명히 이번의 인터뷰로 인해서 아람샘의 피로는 더 두꺼워졌을 것이다. 혹은 평소 발언하고 싶었던 속내를 조금이라도 꺼내놓을 수 있었던 기회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인디고 서원’이 있는 부산까지 서둘러 온 이의 마음은 뻗친 머리칼로 이미 예의를 잊은 채로 앉아 있었다. 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가 바람이 뜨거운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일찍부터 아람샘과 합의하여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인터뷰를 진행하다 중간 중간에 문을 닫기도 했다. 나는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수많은 인문서의 책등에 굳이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책이 많지만 어쩐 일인지 책이 아니라 사람이 더 눈에 띄는 그런 심리적인 장소인 것도 같았다.

 나는 이제 막 탁자 위에 놓여진 ‘착한’ 커피 한 잔으로 말문을 열었다. 눈앞에 ‘고딕체’로 앉아 있던 초콜릿은 인터뷰가 한참 시작되고 나서야 더 녹아내리기 전에 겨우 하나 건드릴 수 있었다. 그때의 초콜릿은 분명 부드러운 ‘명조체’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우리 앞의 초콜릿은 홀수에서 짝수로 그들의 연합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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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꾸벅)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를 끝낸 후라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바쁜 시기예요. 개인적으로는 휴식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번 행사가 끝나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인터뷰 요청이 많네요. 또 촬영도 너무 많아서 좀 안 좋아요. 이번 주만 해도 두 건이 더 남아 있어요. 또, 에 『꿈을 살다』(궁리)라는 책이 선정돼서 더 바쁘네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인터뷰가 끝나면 또 이곳에서 촬영해야 할 것 같네요.


 ‘인디고 서원’ 은 언제, 어떤 계기로 해서 문을 열게 되었나요?



= 글쎄요. 오래 전부터 서점을 해야겠다고 따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친 지는 꽤 오래 되었어요. 대략 10년 정도. 그 동안은 꾸준히 책읽기 수업을 진행했어요. 독서토론 수업을요. 수업을 통해서는 글쓰기나 논술지도를 한 것이 아니라, 독서 자체가 갖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들, 일테면 내 삶의 양식으로 체화되고,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독서 활동을 했었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필요한 책을 선정하고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책 구입을 위해서 당시 서울에 있는 종로서적을 찾아야 하고 그랬죠. 지방에 사는 이들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죠. 그러던 차에 한 열흘 정도 첫 해외휴가를 가게 되었죠. 그 여행을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서점을 둘러보게 된 것이 자극이 되었어요.

 저는 그때 여행지를 여섯 개 대학이 있는 도시로 정했어요. 대학이 있는 곳에는 당연히 서점이 많을 테니까요. 대략 70여 군데를 돌아본 것 같아요. 당시에는 서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어요. 그저 단순하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가기 위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어떤 기록물을 남기거나 자료집을 챙겨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그냥 여러 도시를 돌다 마음에 드는 서점이 있으면 하루 종일 책을 봤어요. 그러다가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그랬죠. 그런 방식으로 여러 서점을 둘러보는 여행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짧은 메모를 하나 하게 됐죠.


 우리에게도 문화라는 이름으로 말해질 수 있는 그런 서점이 하나 존재했으면 좋겠다.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대형 마켓 말고, 동네에서 참고서만 파는 그런 슈퍼마켓도 아닌 서점. 우리가 ‘문화의 장’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공간이 왜 한국 사회에서는 드물까? 왜 나는 일찍이 이와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죠. 제가 90학번이니까 당시는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도 거의 다 문을 닫았던 때였어요. 그래서 서점에 대한 갈망이 더 컸죠. 비행기 안에서 짧은 메모를 하나 했어요. ‘내가 사는 동네에 내가 둘러봤던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서점이라면 좋겠다.’라는 짧은 메모였죠. 그리고 메모 끝의 그냥 빈 공간에 ‘인디고 서원’이라고 메모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에코토피아’라는 식당으로 바뀐 자리에 인디고 서원을 열었어요. 그때는 그곳이 13평짜리 공간의 빈 가게로 있었어요. 또 제가 수업을 하는 곳 맞은편에 있었고요. 여기에 책방을 열자고 생각해서 한 달 준비해서 서점을 열었죠. 그때는 유통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반면에 ‘문학과지성사’나 ‘창비’ 출판사에서는 저의 이런 생각을 호의적으로 받아줬어요. 그래서 직거래 서점으로 기회를 주기도 했어요. 그 무렵 제가 선정한 도서는 대략 3천 권 정도였는데, 도서목록은 제가 이제껏 갖고 있던 책들이나 아니면 이전에 읽었거나 혹은 앞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목록들이었죠. 이것을 옥스퍼드 대학에 갔을 때 그곳에서 인문학 책을 6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놓은 걸 본 적이 있어서 같은 방식으로 분류했죠.

 

 

 

 ‘인디고(INDIGO)’ 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그 말의 어감이 ‘착한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이름 같기도 해요. 이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좀 웃긴 이야긴데 제 이름에는 한자가 없어요. ‘아람’은 그냥 순 한글 이름이에요. 그래서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이름을 써야 하는 경우에는 한글로만 이름을 썼어요. 간혹 한자로 쓰는 공란도 있었는데 저는 그곳에도 한글로 썼어요. 그때마다 주변에서는 넌 왜 한자를 안 쓰느냐, 한자를 몰라서 안 쓰느냐 등의 얘기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은 ‘아름’이라는 이름이 그냥 한글 이름인 줄  모르고 있었죠.

 

 71년도인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주최로 ‘제1회 한글 이름 대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저희 아버님이 제 이름으로 1등을 한 적이 있어요. ‘아름’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는 아마 제가 처음일 거예요. 그래서 저도 한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러다가 제 스스로 내 이름을 한자로 한번 짓자 해서, 스무 살 무렵에 지은 것이 ‘나 아(我)’ 에 ‘쪽빛 람(藍)’ 자를 썼어요. ‘인디고’라고 하는 천연식물의 염료가 예로부터 인류에게 얼마나 득이 되는 좋은 식물염료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쪽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제가 쪽빛 람 자를 쓰다 보니 친구들도 어느새 저한테 편지를 쓸 때는 ‘인디고’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었죠. 저는 20대 초반부터 인디고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쪽빛을 ‘인디고’라고 하는구나 했죠. 그 뒤로 ‘인디고 블루진’, 혹은 ‘인디고 블루’라는 단어를 늘 마음에 지니고 있었죠. 그러다가 인디고 서원을 열 즈음에, 낸시 앤 태프(Nancy Ann Tappe)가 쓴 『색깔을 통한 인간 심리의 이해』를 통해 ‘인디고 세대’를 알게 됐죠. 국내에서는 샨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죠. 『인디고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요.

 

 8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로 창의적이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뭔가 선지적인 세대를 가리켜 심리학에서 새로운 컬러가 등장했는데, 이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인디고 아이들’이라 한다는 것을 책에서 읽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제 이름의 쪽빛과 책에서 심리학의 용어로 얘기했던 ‘세대를 밝히는’이라는 의미의 ‘인디고’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또, 우리말에 보면 ‘청어람(靑於藍)’, 혹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람(藍)’이니까 나에게 배우는 아이들은 ‘청(靑)’이 되어서 ‘쪽(藍)’보다 더 푸른 아이들이 되길 바라는 이념까지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단어가 ‘인디고’가 되기도 하잖아요. 아무튼 이래저래 본래의 영단어인 ‘인디고’도 좋은 의미이고 ‘청어람’, 혹은 ‘청출어람’의 ‘람’도 쪽빛으로도 좋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된 것이지요.

 

 


 ‘인디고’라는 말에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 네(^^). 그래서 우리도 인디고 컬러를 항상 쓰거든요. 이 카탈로그는 이번에 한국을 찾은 알바로 레스뜨레뽀(Alvaro Restrepo)의 <몸의 학교> 공연을 위해서 만든 것인데, 우리 인디고 서원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그린 거예요. 그리고 선물을 할 때도 쪽물을 들인 손수건 같은 것을 제작해서 외국에서 오신 분들에게도 드렸어요. ‘인디고’라는 단어 때문에 이번과 같이 여러 가지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진 위는 인디고 서원 내부 도서 진열장>


2004년 (8. 28) ‘인디고 서원’이 최초 문을 열었을 당시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 저의 어려움은 책의 유통에 관련한 문제가 제일 컸어요. 우리가 책방에서 책을 산다는 행위는 평등한 가운데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뭐랄까, 구조적인 문제, 혹은 관례에 있어서 그것이 평등하지 못했어요. 저 역시 이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책은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데, 그 진열된 책은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모든 신간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거예요. 통상적으로 매일 하루 평균 100권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 모든 책이 판매대를 차지할 수는 없죠. 그렇다면 선택받아서 진열된 한 권의 책은 나름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좋은 책이라는 근거는 다양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일반 서점에는 거의가 돈 많은 출판사의 책이 판매대에 올라온다는 것이죠. 그러면 소비자가 서점에서 책을 구매할 때는 오늘 나온 아흔아홉 권의 책은 접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게 다 돈 많은 출판사의 집중적인 마케팅 탓이죠.

 

 거대 출판사들의 책이 사업적 마케팅으로 ‘한 권의 책’으로서 판매대에 있을 때, 그리고 그런 책들로만 구성된 판매대를 볼 때 이미 전략적으로 짜인 그들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구매라는 것을 제가 서점을 열면서 알게 됐어요. 그 다음에는 소위 책을 판매했을 때 생기는 이윤이라는 것인데, 이 마진율은 많게는 30, 또는 적게는 20퍼센트죠. 제가 선정한 도서는 10, 혹은 5퍼센트의 마진율도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적은 마진의 책은 사지 않게 되죠. 왜냐하면 서점에서 팔지 않으니까요. 이윤이 남지 않으니까 팔지 않죠.


 당시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죠. 아무튼 그때는 유통에 관한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좋은 책은 유통 자체가 안 되는 상황, 또 절판이 되거나 재고가 없는 상황도 많아요. 또 일방적으로 다시 찍지 않는 문제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죠. 동시에 큰 유통회사를 끼고 하는 도매에서는 제가 선정한 목록의 책을 사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죠. 책을 주문하고 어서 보내라 해도 안 오는 책이 50퍼센트 정도였죠. 이것이 큰 문제였어요. 제가 다음 달에 서점유통협회에서 하는 포럼에 패널로 참여하는데 이런 문제들을 얘기하려고 해요. 사실 이런 포럼은 처음 가보는데(^^). 

 


 이번에 있었던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인 ‘인디고 유스 북페어’와 관련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접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 이 문제는 절대적으로 지역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번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면 ‘박 터지는’ 행사였을 거예요. 오늘도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했죠. 얼마 전에 서울의 중요 매체지가 인터뷰 요청을 했었는데, 그 기자분이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저보고 자료 챙겨서 서울로 올라오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실어주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죠. 당신은 이라크를 취재하러 갈 때,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전쟁을 서울에 와서 하라고 하는 기자냐. 메이저 매체였지만 인터뷰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서울에 계신 기자들이 대부분 내려와요. 또 인디고 서원 취재를 위해서 일정을 일부러 잡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지역에 관한 문제인데 중앙에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 하는 식이었죠. 기존의 관례에 너무 익숙해 있었죠. 심지어는 인디고 서원을 이용하는 시민과 학생들도 서울에 본점이 있고 이곳을 분점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지역에서 이와 같은 ‘문화의 진원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것 같았어요. 또 상식적으로 믿고 싶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아요.

 

 ‘북페어’ 행사에 앞서 여러 언론 매체에 이번 행사와 관련한 자료들을 동시에 보냈죠. 이번 행사는 일 년 반을 준비한 행사였어요. 그래서 저는 서울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런 행사가 부산에서 열린다는 것을 열심히 홍보했죠. 또 일반 시민들을 만날 때도 강조했고요. 강의를 통해서도 공지를 했고요. 그런데 결국은 이런 행사가 ‘지방 행사’, ‘지역의 행사’로 치부된다는 것이죠.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와야 하는 수고와, 또 교통비를 들여야 하는 이 같은 지역 행사를 보러 오는 것이 굉장히 낯선 것이죠. 거꾸로 우리 지방 사람들은 서울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매그넘 코리아전’이라든가 ‘고흐전’같은 것을 보기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요.


 하지만 지방 행사에 내려오는 것이 어려운 현실, 이것은 역시 지역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역시 여전히 지역에서 싸워서 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에요. 왜냐하면 이번 행사에는 6대륙에서 45명이 초청되어 왔는데, 그 사람들은 창조의 진원지인 이곳 ‘인디고 서원’이 있는 부산으로 왔다는 것이지요. 한국의 서울로 간 게 아니에요. 6대륙에서 온 이 분들은 김해공항을 통해서 입국했어요. 물론 어쩔 수 없이 인천공항을 통해서 온 분들도 몇 분 있지요. 저는 앞으로도 이 지역을 통해서 행사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이번 행사가 보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대한민국의 지역 간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아마 서울 사람들이 이번 행사에 참여해서 직접 봤다면 오히려 중앙에 몰려 있는 수많은 단체와 서점, 출판사는 도대체 무얼 했나 하는 분노와 억울한 심정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인디고 서원 내부 풍경>

 


인디고 서원의 활동은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활발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특히 최근에 있었던 ‘인디고 유스 북페어’는 훌륭한 북페어 행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번 행사의 준비도 오랫동안 공들이지 않았나 싶고요. 이번 행사의 배경과 기획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 제가 인디고 서원을 열었던 그 다음해였을 거예요. ‘올해의 서점인상’이라는 것을 받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출판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해 가을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 갔어요.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초청된 상황이었죠. 저는 서점인으로서 북페어에 간 거예요. 평소의 제 스타일이기도 해서 저는 단체로 움직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참가신청을 했죠. 북페어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서점인으로 가입을 했고, 또 그곳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돈을 지불했어요. 여섯 살 조카하고 먼저 유럽을 잠깐 둘러보고 독일에 도착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더라고요. 사직구장 크기의 돔 8개는 정말 큰 책 시장이었죠. 그때 한국관을 찾아가 보니 ‘한국을 빛낸 100권의 책’이라는 콘셉트로 행사가 열리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작가들을 봤지요. 그 분들은 제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였지요. 같이 간 것도 아니고 전 개인으로 참여한 것이니 당연히 모르죠.


 거기에서 이틀, 사흘을 있으면서 일종의 엄청난 ‘문화 권력’이라는 것을 엿보게 되었어요. 엄청난 돈을 들여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위치와 문화를 알리려고 이 같은 큰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했을 것이며, 이 커다란 홀을 꾸미고 이 많은 작가가 여기에 오기까지는 국세로 왔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한국 작가들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물론 그 작가들은 나를 모르죠.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인간적인’ 담론들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저는 독일의 여성작가들이 인디고 서원보다 훨씬 작은 서점에서 우리책 낭독회를 몇 달에 걸쳐서 하고, 그 낭독회를 다큐로 만들어서 방송하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감동했는데, 도대체 이 많은 한국 작가들은, 그리고 한국의 작은 서점들에서는, 또 한국의 큰 서점들에서는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얼마나 문화적이고 능동적인 대화의 자리를 가졌는가 생각하니 너무 큰 불신이 생기더라고요.

 

 작가를 보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외국에 와서 본 그들의 행사는 별것 아니었어요. 책 한 줄 읽는 게 행사의 다였어요. 뭐 대단한 담론을 발표하는 자리도 아니었고요. 여기에 엄청난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보여주기 위한 뒷거래와 같은 것들도 봤죠.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저는 그냥 개인적으로 참여해서 도서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서점인의 자격으로 살펴보았을 뿐이었죠. 그러다가 그 당시 우리 문화의 실체, 또 우리 문화 권력의 실체, 문화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엉터리의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돌아와서 몇몇 공적인 자리에서 ‘문화’라는 것은 그렇게 전 세계에 돈을 ‘쳐 넣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했죠. 사실 그 비용의 절반으로 국내의 출판문화, 또는 서점에서 책 읽는 국민을 위해서 썼더라면 그런 분노는 아마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당시에는 공적으로 이런 발언들을 했는데, 제 목소리가 별로 크지 않으니까 들리지 않았죠. 그 기억이 계속 제 마음 속에 있었어요.

 

 그 후 저는 인디고 서원을 충실히 잘 이끌었죠. 그리고 『인디고잉(INDIGO+ing)』(우측 사진)이라는 잡지를 창간해서 일단은 우리의 인문학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또 청소년 교육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기본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콘셉트를 계속 잡아서 4년 동안 열심히 했죠. 그렇게 모든 것들이 안정되어가는 시점에서 ‘북페어’가 생각난 거예요. 또 ‘주제와 변주’도 20여 회 정도를 하면서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사실은 더 모시고 싶은 더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좋은 책이 곧 좋은 작가는 아니더란 말이죠. 책이 너무 좋아서 저자를 어렵게 모셨는데 너무나 실망스런 인품을 가진 저자의 자리는 정말 후회스러웠어요. 반면 내가 발굴한 작가로 아직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 작가인데 너무나 진실하고 좋은 작가의 경우도 있었어요.


 이 두 가지 경험이 겹쳐지면서 자연히 국제적인 작가들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잡지『INDIGOing』을 통해서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1940~)하고는 이미 메일을 주고받던 상황이니까 이제 뭔가 실제로 만나는 작업들을 해야겠는데, 이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까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내 마음에서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던 분노의 씨앗이 ‘북페어’니까 그럼 이번 기회에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북페어, 본질적인 의미의 북페어를 한번 해보자 했죠.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얘기를 꺼냈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죠. 

 결국 ‘북페어’도 서점과 관련된 일이죠. 인디고 서원을 통한 ‘문화혁명’이라는 역할을 가장 서점다운 방식으로 한 것이 이번 북페어예요. 지금은 한국 사회에 ‘이것밖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행사는 2년 단위로 열릴 거예요. 다음에 열릴 ‘2010년 북페어’를 시작하는 회의가 이번 주 토요일에 있어요. 이 행사는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변화를 이끄는 ‘문학의 장’이 될 것 같아요. 그 결과물들은 제가 말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서 거꾸로 한국에 알려지는 그런 계기가 곧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른쪽 그림: 인디고서원에서 진행했던 주제와변주프로그램은 책으로 발간됐다. 오른쪽은  책 표지.



 이번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어떤 분들이 초청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이번 행사에는 저희가 초청한 분들이 모두 오셨어요. 단 한 사람, 마튜 르 루(Mathieu Le Roux)라는 분만 참석을 못 했어요. 이분은 참석을 약속하셨는데,『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의 공저자인 실뱅 다르니(Sylvain Darnil)가 8월 24일 결혼을 한다고 해서 못 오셨어요. 우리의 ‘북페어’ 일정과 겹쳐서 중간에 통보를 보내왔어요. 그 밖에는 모든 분들이 다 오셔서 이번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의 프로그램에 참가하셨어요. 그리고 피터 싱어(Peter Singer) 선생님은 원래 초대하려고 했던 분이 아니었지만, 이번 행사에 오시는 분들 모두에게 숙제를 냈던 분이라서 오신 거예요.

 

 초청된 분들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올리비에 프뤼쇼(Olivier Fruchaud), 발레리 제나티(Valérie Zenatti), 오사 에릭스도터(Asa Ericsdotter), 클라우디아 구알라(Claudia Jiménez Guala), 브라이언 파머(Brian Palmer), 안나 라페(Anna Lappé), 안나 포트노이(Anna Portnoy), 케이트 홀브룩(Kate Holbrook), 산토시 샤흐(Santosh Shah), 바다브 기미르(Madhav Ghimire), 알바로 레스드레뽀(Álvaro Restrepo), <몸의 학교> 꼼빠니아 무용수들, 마크 호너(Mark Horner) 로시나 라트남(Roshina Ratnam), 피터 움브렐로(Umbulelo Peter), 주킬레 자마(Zukile Jma), 애런 우드(Arron Wood). 이 분들과 함께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닷새 동안 프로그램 일정에 따라서 열띤 토론 자리가 열렸고 그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은 주제로 계속 이어졌죠.

 

 첫날은 초대 손님들을 모시고 <여는 행사>를 마쳤고요. 이후 시작된 둘째 날의 본격적인 포럼/강연으로 <희망의 유리병에 담은 꿈> 섹션1. 문학-꿈, <아름다운 인간성의 실현> 섹션2. 예술-인간, 포럼 <생명의 장을 꿈꾸며>가 진행되었으며, 셋째 날의 포럼/강연으로는 <젊은 이상가들, 창조적 실천가가 되다> 섹션1. 생태․환경-생명, 섹션2. 역사․사회-네트워크, 섹션3. 교육-희망, 그리고 공연으로 ‘존재 그 자체로 숨 쉬는 시간’이 열렸고, 넷째 날의 포럼으로는 <제5회 ‘정세청세’> 청소년/Youth, 공연으로 콜롬비아 ‘몸의 학교’의 무용 공연 <바다의 신>이 무대에 올랐죠. 그리고 마지막 날인 24일에는 포럼 <제34회 주제와 변주 & 닫는 행사>를 비롯해, ‘철학-책’의 주제에 놓고 강연안(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선생님과 브라이언 파머(스웨덴 괴텐부르크 대학 사회인류학과) 교수의 강연을 경청할 수 있었죠. 이 빡빡한 일정이 참으로 알찬 시간이었어요.

 

 우리는 이번의 행사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보다 구체적인 장을 펼쳐 보이려고 노력을 했어요. 일테면 <인간(人+間) 가슴 뛰게 하는 말, 꿈 dream> <모든 것의 근원, 인간 human>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 생명 life> <진실한 사람들의 만남, 네트워크 network> <창조적 실천가들의 삶, 희망 hope> <존재 그 자체로 숨 쉬는 시간, poetry night>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몸의 학교’ 공연 바다의 신(A Dios El Mar)> <또 하나의 세계, 책 book> <다시, 인간(人+間)>과 같은 것들이죠. 

 

 


 이런 구체적인 행사를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위 사진은 2008 북페어 행사 현장 모습>

= ‘북페어’ 이전까지만 해도 우린 그저 막연히 ‘북페어’를 하자는 생각만으로 떠났던 시간이 있었어요. 아무렇게나 떠난 일본에서 좌충우돌한 시간도 있었고, 뭔가를 준비하자고 했던 이런저런 메모가 있기는 해요. 이 메모들은 우리가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한 메모와 그 가치들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매주 토요일 만나 이야기한 것들 속에서 나왔지요. 그러니까 이 작은 메모들이 이 행사를 열게 된 전부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저희가 준비한 것은 처음부터 굉장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야기 속에서 나온 이 메모를 통해서 결과물들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저는 제가 뭔가를 정해 놓고서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뭔가 떠오른 것이 생기면 그것을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게 해서 아이들이 만든 것으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일깨워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교육이니까요. 그래서 결과물을 제가 알고 있어도 먼저 얘기하지 않았어요.

 

 이번 ‘북페어’ 행사는 비교적 쉬운 콘셉트로 시작되었어요. 전 세계에는 6개의 대륙이 있는데, 그것을 인디고 서원이 갖고 있는 6개의 서가와 매치시키는 것이었어요. 일테면 유럽은 문학, 아시아는 역사․사회, 북미는 철학, 남미는 예술, 오세아니아는 생태․환경, 아프리카는 교육. 그렇다고 이걸 미리 정하고 세계의 이상가들과 실천가들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에요. 하다보니까 나중에 자연스럽게 각각의 주제로 얼개가 짜인 거예요. 그러니까 6개의 키워드에 인디고 서원의 6개 서가, 전 세계 6대륙, 6개의 가치 이런 것이 묶여서 6개의 프로그램으로 묶인 거예요. 이런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예술적이고 문화적이고 교육적이었던 것이죠. 북페어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이미 각국으로 가신 분들은 이번 행사를 긍정적으로 보시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신들의 블로그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려놓으셨더라고요. 이러한 평가는 서서히 ‘거꾸로’ 한국 사회로 되돌아올 것 같아요. 제가 이번 행사를 통해서 가장 큰 성취로 보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했다는 점이에요. 또 『꿈을 살다』와 같은 책으로 담아냈다는 점이고요. 이 책의 저자들은 팀장인 고려대 4학년 학생인 김용준과 더불어 참여한 ‘인디고 유스 북페어 프로제트 팀’의 고등학생들이에요.

 


 이번 행사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이번 북페어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저희가 필독으로 제시한 3~4권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만 했어요. 또 우리가 제시한 3개의 질의에 대해 모두 대답해야만 비로소 한 개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워졌어요. 행사장에 마련된 자리가 120석으로 제한된 상황이었고요. 그 자리에 1,700여 명이 몰렸으니 대성황이라고 볼 수 있죠. 각 프로그램마다 120명씩 다 왔어요. 이것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돼요. 일반적인 포럼이나 북페어, 세미나에서처럼 그냥 입장하는 방식이 아니었잖아요. 각각의 프로그램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필독으로 제시된 3~4권 책을 읽고 문답에 응해야만 입장을 할 수 있었잖아요.

 

 이번과 같은 일은 전 세계에서 저희가 처음일 거예요. 제시한 책을 읽고 문답에 응한 후 각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들의 기록이 사이트 게시판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신청서 내용들을 공개적으로 다 열어놨어요. 저희는 우리가 요구한 이러한 방식의 서류를 제출한 사람들만을 프로그램에 초대했어요. 무료로 초대했어요. 적어도 우리가 일 년 반 동안 피땀 흘려서 모시려고 하는 이분들과 건성으로 만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지요. 그러니 당신들은 적어도 이분들이 했던 작업들을 최소한 『꿈을 살다』를 통해서 살피고, 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또 이 사람들의 연구들을 읽어 와야 한다고 했죠. 또 저희가 초청한 45명 모두에게도 14권의 필독서를 제시했어요. 이분들도 모두 다 읽고 오셨어요. 이렇게 해야만 그 짧은 시간에 서로가 만났을 때, 진지한 대화와 포럼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냥 얼굴 보려고 하면 뭐 하러 만나겠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까다로운 콘셉트를 굉장히 걱정했어요. 누가 과연 이걸 다 읽고 올까 했는데, 1700여 명이나 되는 분들이 다 읽고 왔던 거예요. 이런 참여도로 보자면 저는 이번 행사에 크게 만족합니다. 더불어 이번 행사에서는 ‘씨앗’을 뿌린 것으로도 만족해요. 이분들이 오신 각 대륙에서는 그분들 자체가 씨앗과 같은 존재들이기도 해요. 예를 들면 콜롬비아에서 오신 알바로 레스드레뽀 같은 분은 이번 행사의 카테고리로 볼 때, 예술 대표로, 남미 대표로 오신 분인데, 말 그대로 그분이 계시는 콜롬비아는 지금도 정치적 불안이 상존하는 곳이죠. 제가 그곳에 갔을 때도 게릴라들 때문에 아이들이 사는 변두리 지역에 가서도 인터뷰를 못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알바로 레스드레뽀라는 분은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남미 전체의 혁명을 꿈꾸는 분이세요. 이분은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서 마약, 폭력, 가난으로부터 자기 존재를 예술적으로 승화해서 어떤 인간성의 실현을 꿈꾸는 분이죠. 이분은 학교에서 춤을 가르치는 분이에요. 학교 크기가 (‘인디고 서원’ 건물) 정도 해요.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와서 10년 정도 춤을 배우면 세계적인 무용수가 될 수 있는 그런 학교예요. 그곳에서 춤을 추는 친구들이 있어요. 이들이 이번에 부산에 와서 700석 규모의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고, 우리 학생들이 그 자리를 가득 채웠죠. 공연은 무료였어요. 서울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 번 했고요. 그리고 10월에 일본․콜롬비아 양국 정부의 100주년 기념공연차 일본에 올 때 한 번 더 와서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계획이에요. 이 팀을 후원한 한 회사의 사장님이 큰 감동을 받은 상태에요. 이 팀의 아시아 첫 데뷔는 우리 인디고 서원을 통해서 한 거예요. 남미에서는 12000명의 학생을 뽑아서 이 교육을 시킨다고 해요.

             

 

<북페어 행사를 준비하며 인디고 서원이 만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오신 젊은 물리학자 마크 호너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위키디피아(Wikipedia)처럼 전 세계에서 누구나가 무료로 과학 도서를 다운받을 수 있게 했어요. 이 분은 ‘무료 과학 교과서 만들기’ FHSST(Free High School Science Text)를 했던 분이에요. 저희가 이분을 발굴했죠. 아프리카 지역신문 『교사(The Teacher)』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잡지를 통해서 찾아냈어요. 그래서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이후 초대를 했고, 그래서 이분이 오게 된 거예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들이 각 대륙마다 처해 있는 문제 상황들을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사람들이죠. 마크 호너는 물리학자니까 과학 교과서를 써서 이뤄낸 것이죠. 이분 혼자서 다 한 게 아니에요. 인터넷으로 수백 명의 지원자들을 모았어요. 그렇게 모인 그들은 각 나라의 교사들입니다. 그들은 무료로 글을 썼어요. 그 글을 모두 다 합쳐서 한 권의 과학 교과서를 만들었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리고 또 책으로 만들어 아프리카에 전역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준 거예요. 이런 일을 했던 31살의 물리학자가 온 거예요. 그 사람이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끼칠 영향, 또 그 무료 교과서가 전 세계 인터넷을 통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사용되어질 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는 것이죠. 저희는 이런 팀들을 일 년 반 동안 찾아낸 것이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꿈을 살다』라는 책 한 권이 가진 폭발력은 향후 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영향이 클 거라고 생각해요. 오셨던 분들 모두가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돌아갔어요. 이 책을 그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스페인어로,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작가분들 스스로가 하겠다고 했어요.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좋은 거래잖아요. 이게 바로 ‘북페어’잖아요.

 


 이번 북페어의 이런저런 성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는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성과를 위해서 이 일을 한 건 아니에요. 이 모든 과정이 제 삶의 진화과정이기도 해요. 제가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고, 어떤 사회․역사적인 인식을 갖고 변화를 위해 뭔가 혁명을 하고자 서원을 열고 잡지를 내고 이런 문화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충일한 한 개인의 삶이 공적으로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 그런 시각으로 보시는 게 맞을 거예요. 제가 특별히 사회운동가이거나 교육문화운동가이거나 그래서 소셜(Social) 디자이너로 이런 기회를 갖고 일하는 것이 아니고, 제 일을 열심히 하다가 보니까 어느 순간에 공적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고, 또 공적인 여건으로 엮어서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책무가 주워졌고, 그 주워진 것을 더 잘하고 싶고 열심히 살고 싶은, 쉽게 말하면 제 개인의 선한 욕망이 결국 이런 국제적인 행사의 규모로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후를 따진다면 어떤 변화나 성과를 위해서 제가 이것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충실한 삶이, 또는 선한 욕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공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했을 때는 어느 정도 기여한 바가 조금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인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요.

 

 인디고 서원의 아이들도 마찬가지 같아요. 아이들 스스로 우리의 활동이 너무 좋아서, 과정이 너무 행복해서 즐겁게 참여하면서, 동시에 행복한 과정 자체가 사회적으로 어떤 책임을 다하고 공공의 영역으로 스스로 어떤 역할을 부여하기까지는 저의 어떤 개입이나 의도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런 역할과 임무를 갖게 했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두루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은 굉장히 평범한 일반계 고등학교 아이들이에요. 다만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소위 사회에서, 또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잘 해야겠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지운 학생들이죠. 그러니까 하나를 버리고 대안학교를 간 학생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학생들이 다 학교에서 10시, 11시까지 자율학습하고,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 다 치르고, 내신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죠. 그런 아이들이 주말에 여기 와서 시간 아껴가며, 북페어 준비를 하고, 잡지 『INDIGO+ing』을 위해서 글을 쓰고 해요. 어떤 의미에서 삶이 치열한 아이들이죠.

 

 그런 아이들이 한데 모임으로써 생기는 결과물이 있거든요. 어쨌든 저한테는 개인의 성장이 일차적으로 가장 큰 성과죠. 어쩌면 제가 더 성장했죠. 제 개인의 삶이 더 행복해졌고요. 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더 큰 능력을 키우고 긍정적인 삶의 가치관들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든 훌륭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일차적으로 제가 의도한 좋은 결과예요. 또 사회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거창하게 보이는 성과들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도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을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여기 오시는 분들이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런 분들이 아니었죠. 그러나 인문학이라는 제가 선정한 ‘문학, 역사․사회, 철학, 예술, 교육, 생태․환경’이라는 영역에서는,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을 이루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각자의 삶의 방식 그 자체로 충분히 타인으로, 또는 공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을 발굴하여 모시고 소개한 거잖아요. 만약 오신 분들끼리 네트워크화되었을 때, 연대를 통해 공공의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힘이 더 커질 것이고요. 동시에 이 사람들은 권력의 가장 윗자락에서 보이는 행사를 했던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뿌리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장 민주적으로 좋은 일들을 했던 이들이죠. 다시 말해 ‘인간희망’의 증거와 같은 역할을 했던 분들인데, 이런 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5일 동안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포럼을 하고, 또 오전 시간에는 인터뷰를 하고, 또 밤새공부를 하는 이런 행사를 이뤄냈을 때 이 사람들 각자가 얻어간 개인적인 성과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각자의 나라에서 긍정적인 노동으로 자신의 일들을 펼쳐나가겠죠. 이런 변화만이 지금 우리 시대가 당면한, 또 전 지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회복함에 있어서 실질적인 변화의 물꼬가 된다는 점,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성과입니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겠죠. 거대 권력이나 큰 문화 권력에서 봤을 때는 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크게 비쳐지지 않더라도, 분명히 그 한 사람이 100명에게 준 영향, 또 그 100명이 1000명에게 준 영향, 또 그 1000명이 10000명에게 준 영향과 같은 연대론은 충분히 큰 폭탄과 같은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또 될 거라고 믿고요.   

     

         

 

< 인디고 서원 출입구> 


서울대 법대 교수인 조국 선생님의 어느 글에서, 인디고 서원의 성취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문학적 사고와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위기에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부족한 점은 연대를 통하여 메워내고 있는 인디고 서원 청소년의 모습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희망이라고까지 말했는데요, 인디고 서원의 실제 활동은 어떤가요?

 


= 조국 선생님의 이 같은 표현이야말로 인디고 서원의 사회적 활동을 정말 정확하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인디고 서원의 활동도 부족하죠. 부족한 부분은 연대론을 펼쳐서 메우고 있지요. 그 연대의 파트너들은 저희보다 100배로 훌륭한 사람들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100배, 1000배로 훌륭하다고 하는 그 분들은 자신들을 만나러 온, 먼 타국까지 달려온 우리 인디고 서원을 최고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연대를 묶어낼 수 있는 유일한 팀이 인디고 서원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지금까지 각자가 열심히 했던 거예요. 인디고 서원이 없었다면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분들로부터 지난 5일 동안 받은 감동과 감사의 인사는 제가 5년 동안 굶어도 배가 부를 만큼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환대를 잘한 것도 있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희는 남 좋은 일을 시킨 거예요. 이번에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온 ‘무료 과학 교과서’를 만든 마크 호너라는 분하고 호주에서 온 환경운동가로 ‘2001년 올해의 젊은 호주인상(환경 분야)’과 2006년 뛰어난 개인에게 주워지는 ‘UN 환경 분야상’을 받은 서른두 살의 앨런 우드라는 분을 하나로 묶어주었지요. 앨러 우드라는 사람은 전 세계의 ‘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위해서 혼자서 670만 달러의 기금을 모금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다섯 살에 빌라봉 강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피부병에 걸렸는데, 그것을 잊지 않고 청소년시절부터 지금의 서른두 살까지 전 세계 ‘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거예요. 호주 정부에서도 지원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우리가 이 사람과 아프리카의 마크 호너를 맺어준 거예요. 내년에 호주의 애런 우드가 아프리카에 가서 자신의 재단과 함께 아프리카의 환경운동을 시작한대요. 말하자면 우리가 중매를 선 셈인데 너무 큰 건을 연결해준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하자고 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오세아니아의 젊은 두 친구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좀 배가 아프죠. 그런데 기분 좋은 배 아픔이죠.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인디고 유스 북페어’에서 본질적으로 생산해내고 싶었던 결과물이 아니었냐고 즐겁게 농담했죠.


 이번의 결과물들은 이렇게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참여했던 사람들이 수많은 아이어디를 공유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물망처럼 엮어지면 또 다른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겠죠. 그 순간은 인디고가 어떤 실리적인 이익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좋겠죠. 인디고 서원이 가진 역할은 인문학이라는 정신이겠죠. 인문학이 뭡니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가장 쓸모가 있는 것이라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이고, 또 그 역할을 해내는 것이 전 세계에서 인디고 서원밖에 없다면, 우리야말로 가장 쓸모 있는 인문주의를 실천하는 그룹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이들은 실제로 환경을 바꾸고, 어떤 이들은 아이들 교육을 살리는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쓸모 있음’을 실현하지만, 우리의 ‘쓸모 있음’은 그런 사람들을 엮어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할 수 있는 에너지들을 모으는 일이죠. 이런 역할을 우리 인디고 서원이 지속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번 행사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 이번 행사에는 황지우 선생님도 오셨어요. 저희 스폰서 가운데 하나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인데 황 선생님이 그곳 총장님이시잖아요. 그래서 ‘북페어’에 오셨어요. 그런데 자신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당시 주빈국일 때 총감독이었는데 “인디고가 기적을 만들었다.”고 극찬을 하시고 가셨어요. 저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때 사실 황지우 선생님하고 싸웠거든요. 그게 저인 줄 모르는 거예요. 제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답변을 거부하셨어요.


 그 당시 저의 질문은 “당신은 80년대에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 역사와 사회에 시인으로서 시적 의무를 하셨는데, 지금 당신은 80년대의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2000년대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000년대의 시인으로서 지금 우리들의 세대에 대해서 어떤 시를 쓰고 싶냐?”는 것이었고, 또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시적 의무를 주고 싶은지를 물었죠. 이 질문이 방송을 위해 녹화중이었는데 황지우 선생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어려워서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하시고 대답을 안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언짢아했어요. 뭐랄까, 그 순간 작가의 오만함을 느꼈죠. 아무튼 그때 기분이 안 좋아서 후에 책에도 이런 얘기를 썼어요. 그런데 그때의 젊은 여자가 바로 나인 줄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번에 오셔서, “인디고가 기적을 만들었다.”고 감탄을 하고 칭찬을 한 거예요. 인생 새옹지마라고 생각했죠. 그 후 『INDIGO+ing』을 보낼 일이 있어서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때 도서전에서 따졌던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었죠. 그런데도 답장이 없더라고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나를 매칭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기분 나빴던 언쟁의 주인공이 나인 줄 모르는 거예요. 이번에 황지우 선생님께서 오셔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더 좋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적자를 봤어요. 지원금보다 많은 돈을 썼어요. 이번 행사 준비에서는 제 개인 연구비도 없었어요. 이런 사정은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차비만 우리 기업 카드로 끊었습니다. 그것도 네 명이 같이 앉는 좌석으로요. 아이들은 이런 불편한 좌석으로 매주 이곳으로 왔죠. 참 건실하고 훌륭한 친구들이에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저하고 있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은 친구들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만나서 지금은 동료로서도 더없이 좋은 관계이기도 하죠. 이들 모두가 다 인문학계에 남을 이들은 아니에요. 그들이 지금 하는 공부는 경제, 사회, 철학 분야로 서로 다 달라요. 그래도 대학시절의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아는 이들로 정말 열심히 했죠. 그 친구들이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으니까 제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아프겠어요. 인터뷰고 뭐고 안 하고 싶기도 했어요. 사실은 저한테도 안정이 필요한 시기예요. 그동안 일 년 반 동안이라는 시간에 거의 열 몇 명이서 거의 동거에 가까운 삶을 살았잖아요. 그 친구들하고 여행을 가서도 경비 절약한다고 한 방에서 9명, 10명씩 자기도 했어요. 남자․여자의 구분, 선생․제자의 구별이 따로 없었던 긴 시간이었어요. 그랬던 시간들이 정리되고 지금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때이니 제 마음이 어떻겠어요? 제 마음이 이런데 그 친구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싶어요. 잠시 휴지기로 좀 쓸쓸한 시간이 이어졌는데, 얼마 전 2010년의 새 팀장이 결정이 돼서 그 친구의 주재로 이번 주 토요일부터 곧 새 일을 시작하게 될 거예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인문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은 이 시대에 있어서 인문학이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이러한 물음, 다시 말해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피해가지 않으려고 해요. 그건 무엇인가 하면  인문학이 무엇이냐는 질문 이전에, 내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 짧은 생에 제 존재가 시간과 만난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으면서 살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살아가죠. 그렇게 존재가 시간을 만나는 순간을 잘 느끼지 않고 인식하려고 하지 않지만, 어쨌든 하루 24시간 단 한 순간이라도 내가 인간이고, 왜 태어났고, 나는 무엇이고,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죽어가고 있다는 불변의 사실 앞에서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죠. 이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저는 하루에도 수없이 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질문이 없는 세상, 또 이런 질문을 무가치하게, 근본적으로 보지 않는 사회는 비본질인 사회로밖에 흐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물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자본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내 삶을 잠식시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저항하고 밀어내어서 온전한 나, 인간을 만나는 일을 굉장히 어렵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에 존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각자가 내린 답들이 있겠죠. 아니면 답을 못 내리더라도 답을 내려야 하는, 또는 답을 내리지 않으면 살기 힘든, 그런 본질적인 삶의 순간에도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질문을 놓치지 않게 하고, 그래서 내가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 있게 느껴지게 하는 유일한 근원과 힘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인문학이라는 것을 학문으로서 저기 저만큼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눈떠서 음식을 먹고,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24시간의 나의 생 그 자체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데 있어, 그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인문학인 거죠. 그럼 이 인문학이 학문의 세계에 갇혀 있어야 할까요? 본질적으로 인문학은 그런 것이 아니었고, 특히 지금의 책은 어떤 정보나 효용을 위해서 우리가 이용하는 매개가 되었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밥을 먹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행위와 똑같은 생존을 위한 방식이자 삶의 양식의 하나거든요. 그러니까 책을 읽지 않고, 그런 사유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독서와 사유라는 본질적인 삶의 방식을 택하는 대신 오히려 그런 삶의 방식을 특별한 행위, 또는 의무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용주의적 세계관이나 자본주의적인 가치에 근거하는 이러한 선택은 결국 우리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고, 그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인문학은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좋은, 그냥 다만 학제적으로, 정보로, 과학 연구 분야와 같이 그렇게 연구되어야 하는 한 분야의 것으로 빼내어진 인문학에는 저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학문의 분야도 아닌 것 같아요.

 

 책은 여전히 저한테 새로운 삶을, 또는 가치 있고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욕망의 뿌리를 흔드는 가장 훌륭한 동기와 근원을 제공해 줬던 매체일 뿐이죠. 저는 책 자체를 읽거나 책의 정보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에게 얼마나 많은 독서를 했느냐고 묻는데, 그건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한 권의 책이 저를 지구 저쪽으로 끌고 가게 했고, 한 권의 책이 인디고 서원을 열게 했고, 한 권의 책이 『INDIGO+ing』이라는 잡지를 만들게 했던, 한 권의 책 안에 있던 다른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사랑,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 그것이 나에게 중요할 뿐이지, 책이라고 하는 물질 자체가 아주 의미 있고 가치 있거나, 아니면 책 자체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다독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거나 하는 독서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적으로 그것을 이미 잘 하고 있는 제가 청소년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나눠주듯  좋은 책을 선정해서 서점이라는 형태로 공급하는 것은, 마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과 음식을 나눠줘서 굶은 아이를 먹여 살리는 일과 다를 바 없는, 아주 가치 있는 생명을 향한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일이 참 좋고, 또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안정적으로 빚지지 않고 잘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곳의 살림은 어떻게 꾸려나가시는지요?

 


= 책방을 통해서는 돈을 벌지 못해요.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죠. 그렇지만 인디고 서원은 전국에서 현금결제를 제일 잘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희는 어음결제가 없어요. 어음결제를 어떻게 하는 줄 몰라요. 저희는 외상도 없어요. 현금을 받으면 그 현금을 몽땅 책 가져온 데 줍니다. 또 책 주문을 한 출판사에 바로 줍니다. 우리가 받은 그 돈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길 바라요. 그것을 인디고 서원의 자금으로 축적해 두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굉장히 독특하죠. 인디고 서원은 한국 사회에서 훌륭한 경제활동의 사례로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곳은 안 그래요. 큰 서점들은 어음 깔고 책 잔득 받아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안 해요. 판 만큼 현금으로 다 되돌려 줍니다. 놀라운 경제활동이죠.

 

 반면에 이런 국제 활동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저희가 『INDIGO+ing』이라는 잡지 한 권 만드는 데 매호 천만 원씩 들거든요. 2000부 찍는데요. 『INDIGO+ing』이라는 잡지는 현재 500부 정도가 정기구독자들에게 가요. 이런저런 대형 서점에서 좀 팔리고 하고요. 그러다보니 1000부 정도는 나가요. 제 개인적인 돈으로 4호까지를 마이너스 천만 원씩 들여서 잡지를 냈는데, 어느 해 겨울에 콘서트를 할 때였어요. 인디고 서원에는 활동하는 동아리들이 많아요. 록그룹도 있고 합창단도 있고 봉사단체도 있고 기자단도 있어요. 제 개인적으로도 음악 하는 걸 무척 좋아해서 제가 10곡 정도를 준비하고 또 가수 이상은 씨가 6곡 정도를 열창하는 그런 무대가 있었어요. 한 천만 원을 들여서 준비한 콘서트였어요. 그런데 그 공연장에 우연히 한 학부모가 오셨던 거예요. 한 10년 전에 저한테 배웠던 아이가 어느덧 서울대에 입학해서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 싱어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이 무대에 객원가수처럼 와서 노래를 하기로 했는데, 이 친구의 부모님도 함께 따라온 거예요. 그 콘서트의 엔딩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이렇게 좋은 잡지를 선택하고 참여한다는 것은 정말 수준 높고 문화적으로도 훌륭한 활동이에요.”라고 홍보했어요.


 그리고 그때는 슬라보예 지젝이 『INDIGO+ing』에 원고를 줘서 전국 신문에 다 났던 때거든요. 아무튼 그 무렵이었어요. 거기에서 부산상호저축은행 사장님이 자기 아이 때문에 거기 오신 거예요. 그 분께서 저한테 회사로 한번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영문을 모르고 갔죠.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잡지가 좋은 것 같은데 약간의 후원금을 내고 싶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사회에 가서 잡지 내는 데 매번 천만 원씩 든다 해죠. 그랬더니 “그럼 앞으로 3년 동안 지원해 주겠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감사하게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그것으로 끝이었죠. 그리고 여기『INDIGO+ing』이라는 책 끝에 한 줄 들어가요. “이 책은 부산상호저축은행의 지원을 받습니다.” 이후 어떤 압력도 없습니다. 이 한 줄로 잡지를 잘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이번 북페어를 앞두고 프로젝트 이야기를 당연히 했죠. 그래서 “얼마 필요해?” 해서 또 받았죠. 처음에는 제가 큰 금액을 불렀어요. 8억 원이요. 그랬더니 “그럼, 8억을 다 줄게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말했어요. “아니요, 사장님. 제가 중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우선 일 년 동안 외국에 나가는 비행기 운행료를 포함한 경비 및 인터뷰 비용으로 먼저 2억 필요합니다.”라고 했죠. 그래서 2억을 먼저 받았어요. 그리고 그 2억으로 재작년 인문주간에 네팔 팀 7명, 브라이언 파머가 있는 하버드대 팀 7명까지 포함해서 작년 국제행사 단초전을 한번 해봤어요.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죠. 그리고 이후 이들의 초대 비용으로는 3억 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부산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총 5억을 받았는데, 그 지원금도 제 발바닥에 불나게 돌아다녀서 얻어온 게 아니었어요.


 돈이 조금 더 필요해서 몇몇 군데 협조를 요청하자고 하는 얘기도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일로 기업에 가서 설명하고 돈 얻어내는 시간에 제가 공부 더 많이 해서 더 좋은 사람들을 모실 수 있는 시간을 아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한 기업의 지원으로만 행사를 끝냈습니다. 그분과 특별히 안면이 있지도 않았어요. 또 학부형이었어도 관계가 좋았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분이 그 기업의 대표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신문에 난『INDIGO+ing』잡지의 기고 때문에 지원을 해주겠다고 한 거죠. 저희로서는 굉장히 운 좋고 기회를 잘 잡은 지원 형태였어요. 반면 이 외에 공적자금을 신청한 데에서는 모두 떨어졌어요. 이게 좀 아쉬웠어요. 돈이 없어서 일을 못 한다는 것은 거짓말 같아요. 제 경험으로는 그래요. 

 


 인디고 서원을 통해서 구체적인 독서토론 활동은 못 하지만 그래도 인디고의 여러 활동에 깊이 관심 갖고 있는 이들에게, 또 여건상 직접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소수의 학생만이 ‘아람샘’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다수의 학생들을 위한 다른 방안의 계획들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인디고 서원 내부 모습-도서 열람실>

 


= 이곳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은 강남의 돈 많은 학생들이 부모 승용차를 이용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그런 무기력한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탁월한 아이들이죠. 여기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바를 실천하는 아이들이기도 해요. 1층부터 5층까지 쉬는 시간마다 쓸데없이 켜져 있는 전깃불을 끄러 다닌다든지, 또 학교에서 민주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앞장서는 아이들이지요. 학교 회장으로 출마해서 학교의 변화와 교사의 변화, 선생님과의 관계를 풀어낸다든지 하는 활동들도 적극적이에요. 그러니까 나름대로 그런 활동을 지금 이 시점에서 하는 아이들이에요. 중요한 것은 사교육을 딴 곳에서 받지 않고 나한테 돈을 내죠. 20만원씩 내요.(^^) 그런 활동들을 하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들이 맞죠.


 그런데 이 아이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소위 사회적으로 잘 나간다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에요. 부모님들은 다 평범한 분들이에요. 평범한 교사에 지역운동을 하시는 분들이고, 또 지금의 대한민국의 교육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의식을 가지신 분들이기도 하죠. 이런 분들이 학부모의 대부분이니까, 사실은 이분들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가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돼요. 또 20만 원을 온전히 내 수업료로 내지만, 전 그 돈을 긁어다가 여기를 운영하는 만큼 사실은 공적인 부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그것이 제 개인적인 노동으로 가능하다면 전 기꺼이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라도 계속해야만 운영이 되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전 여기 있는 아이들이 정말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똑똑한 아이들이 아닌가 생각해요. 아이들은 겸손하고 제도권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이에요. 또 문제를 순리적으로 풀어낼 줄 알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또 그런 장을 열어내는 아이들이에요.


 이를 테면 이 노란 포스터는 부산에서 일 년에 8회씩 열려, 작년에 이어 올 해로 16회를 맞이한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포스터예요. 제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이렇게 좋은 ‘아람샘’ 수업을 우리만 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그럼 이걸 우리가 다른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아이들 스스로가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그래서 부산시의 소외된 계층에 있는 아이들이 매번 100명씩 참여하는데, 이것은 ‘아름다운 재단’으로부터 3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서 일 년 동안 운영하는 행사예요. 이 행사는 지금 부산에서 2년 동안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로, 일명 ‘정세청세’로 불리는데 다른 지역의 아이들도 많이 와요. 그래서 이것을 내년에는 전국 단위로 하려고 해요. 이걸 기획했던 아이들이 내년에 대학교 1학년이 되거든요. 대학생이 되면 시간이 좀 자유롭잖아요. 그럼 10명이 조를 짜서 2명씩 어느 도시로 파견되는 거예요. 전주, 광주, 대구, 서울, 부산 식으로요. 그래서 전국에서 동시에 ‘정세청세’가 열리는 것이죠. 그러면 국내에서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는 것이죠. 그걸 지금 아이들이 기획하고 있지요. 이런 방식의 일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아이들을 보통 아이들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이 아이들이 자랑스럽죠. 이것이 저의 가장 자랑스러운 부고 재력이죠.

 

 우리 아이들은 그동안 ‘정세청세’를 충분히 잘했고, 또 국내에서 이런 장을 잘 만들 거예요. 그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이번에 뿌렸던 것과 같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 세계 청소년들과 이 행사를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정세청세’는 한국 인문학의 수출품이 될 거예요. 이것은 100퍼센트 청소년들에 의해서만 진행될 거예요. 이 모든 기획과 준비 영상을 아이들이 고르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죠. 제가 생각해도 이런 것들을 홍보 안 해주면 어떡하나 하는 정도로 훌륭한 프로그램이에요.

 


 선생님을 ‘아람샘’이라고 부르는데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 제 이름은 부르기 좋은 이름이지요. 또 부산에서는 선생님을 줄여서 ‘샘’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저는 공식적으로, 여기 말고 수업 장소가 따로 있어요. 걸어서 1분 거리에 있어요. 크기는 여기 이 자리만 하고, 거기의 이름도 ‘아람샘 소행성 B612’이거든요. 그럴 때의 ‘샘’은 ‘샘솟을 샘’이에요. 그러니까 두 개의 ‘샘’으로 불리는 거예요. 나를 지칭할 때는 ‘아람샘’이라는 사투리로, 공간을 지칭할 때는 ‘아람샘’(샘솟을 샘)으로요. 오랫동안 이렇게 불리다보니 지금은 특별하다는 생각은 없어요.

 


 인디고 서원을 거친 아이들의 공통적인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곳으로 계속해서 오는 아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 이것은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은 굉장히 많지만 계속해서 이곳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대략 10퍼센트 정도가 될 거예요. 이 정도가 계속 이곳에 와서 활동하는 아이들이죠.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계속 얘기했던 순수․진실․정의․용기가 대학에 입학하는 그 순간 꿈이나 물거품으로 변하는 걸 느껴요.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존방식을 빨리 깨친 아이들은 이곳에 오지 않습니다.


                       <인디고 서원 창가에 걸려있던 시가 새겨진 보>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순수․진실․정의․용기에 대해서 ‘아람샘’ 수업에서 3년간 혹은 5년간 공부를 했지만,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이 현실에서 순수하거나 진실하거나 정의로워서는 더 이상 지금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진짜 현실이 눈앞에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해 버리는 친구들은 더 이상 여기 올 수가 없고 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길 찾아오면 왠지 모르게 나한테 미안하고, 또 오게 되면 자기들의 현실과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죠. 그 전에는 한 공간 안에서는 함께 연대해서 싸우고 동료애를 느낀 공동체였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죠. 그런데 대학에 가면 혼자거든요. 그러니까 혼자서 그 많은 것들과 싸우기에는 참 힘들죠. 술자리에 가서 정의나 진실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하면 정말 웃긴 놈이 되고, 이런 일을 몇 차례 겪은 이들은 술자리에 안 가거나 여기에 못 오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죠. 그래서 90퍼센트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 옵니다. 오고 싶지만 다 고시원 들어가서 교직 공부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그래요. 도서관 들어앉아서 “선생님 보고 싶지만 나의 현실이 이렇다.”고 말해요.


 얼마 전에도 사법시험 준비하는 아이한테서 편지 한 통과 릴케 시집을 받았는데, 편지 내용이 그래요. 마음은 언제나 이곳에 와서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지만 제가 넘어야 하는 것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오지 못함을 얘기해요. 90퍼센트의 아이들은 이렇게 살죠. 학점에 신경 써야 하고, 또 각자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준비해야 하지요.

 
 그렇지만 이들에게도 갈등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쪽물처럼 물들여지는 청소년기에 이곳에서 배운 시퍼런 꿈과 청춘에 대한 순수한 욕망들을 그렇게 손쉽게 저버릴 것 같지는 않아요. 분명히 남아 있겠죠. 그런데 돌아오는 10퍼센트의 아이들은 그쪽에서의 패배자가 아니라 굉장히 정의롭고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혼자 싸우기 위해서 ‘무기’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그 무기를 제공받을 데가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학교는 안 되니까 기차를 타고 먼 이곳까지 오는 겁니다. 그렇게 모인 몇 명이 이번과 같은 국제적인 규모의 훌륭한 북페어를 만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썼고, 이곳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죠. 저는 결국 이것은 신념의 문제 같아요. 그것은 나의 마음과 정신과 행동과 의지가 하나가 되어 실천할 때, 우리는 그를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이것을 하기란 쉽지 않은데 적어도 이곳에 계속 남아서 이런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그래도 정의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 싶은, 삶에 대한 신념이 나름대로 굳건한 친구들이라고 봐요. 그래서 이곳을 찾으면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참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정말 좋은 아이들이죠.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기서 바다가 멀지 않아요. 저 쪽으로 가면 바다를 볼 수 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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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기 *

 

“서울역에 당도하기까지, 밤늦게 구리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아람샘’으로부터 받은『꿈을 살다』에 한 줄 번진 명구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살아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마르케스와 그의 『꿈을 빌려드립니다』를 만나는 밤이 깊도록 지나가지 않았다.”


 

<허아람 선생님 프로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
독서토론 공동체 <아람샘> 운영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대표
청소년 인문교양지 《INDIGO+ing》발행인
인디고 글로벌 인문학 프로젝트-인디고 유스 북페어  총괄책임
『My beautiful girl, Indigo 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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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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