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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놀러와] 놀기 좋은 동네

  • 작성일 2013-06-15
  • 조회수 965



[우리동네 놀러와]


놀기 좋은 동네


한서영





이사를 많이 다닌 나는 고향이라 말할 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긴 했다. 이곳저곳 살아 보니 여러 동네의 특징과 각 동네의 단점과 장점을 알아서 어째야 좋은 동네라 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동네의 경치, 시설, 접근성 같은 여러 요소들이 모두 잘 어우러져야 좋은 동네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시골 마을인 영동으로 이사하기 전에 포항에서 살았다. 포항에는 해맞이 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하나 있다. 첨단 시설을 들여놓거나 조경을 아주 잘 해 놓은 공원은 아니었지만 산책길이나 운동장, 족구장 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종종 공원으로 놀러가곤 했다.
나는 공원에서 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자전거와 달리 신발처럼 신고 달리는 것이라 다양한 폼을 잡으면서 갈 수도 있었지만 소심했던 나는 폼은커녕 빨리 가지도 못하고 혹시 실수해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과 긴장을 하며 탔다. 그것은 재미보다는 힘든 일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인라인을 탔던 그 공원은 나에게 가장 즐거웠던 곳 중 하나였다.
여름이 되면서 더 이상 더워서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가 귀찮아지면 물놀이를 했다. 따로 물놀이를 하라고 조성해 놓은 시설은 없었지만 동네 아이들은 공원 조경용 분수에서 놀았다.
호수나 연못 위에 있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분수가 아니라 평지에 있는 분수여서 마음만 먹으면 분수 줄기 사이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물살도 거세지 않아서 놀기에 알맞았다. 날이 더워지고 정해진 시간에 분수가 나오면 우리 가족도 가서 놀았는데, 나오는 분수에 엉덩이를 대며 ‘분수 비데’라고 하며 놀거나, 무모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들어가 바퀴 로 물 자국을 남기며 놀다가 결국엔 추위에 떨며 나와서는 분수 곁에 생기는 무지개를 보면서 쉬었다.
분수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폭포도 물방울을 날리며 우리를 시원하게 해줬는데, 폭포 아래에는 물이 가득 차서 큰 연못 같은 곳이 생겼다. 그 연못은 폭포가 가동을 멈추는 겨울이 되면 완전히 얼어버렸다. 그러면 그곳은 판판한 빙판이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빙판에서는 스케이트와 미끄럼을 즐기기도 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공원이 있는 포항을 떠나 영동으로 이사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귀농 계획 때문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영동의 한 시골 동네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살던 포항도 따지고 보면 시골이나 다름없는 동네였지만, 우리 가족이 바라던 것은 물 좋고 공기 좋고 이웃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자연 속의 시골 동네였다. 소위 말하는 전원생활.
그러기 위해서라면 정든 동네, 무엇보다도 정말 놀기 좋았던 공원을 버려야 했기에 우리 5남매는 반대를 하기도 했다. 5년 넘게 살다보니 인생을 얼마 살아 보지 않은 애들로서 포항은 거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동네였고, 공원을 버리고 가는 건 아쉽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우리를 잘 타이르셨다. 영동에 가면 지금 있는 동네에 있는 공원과 같은 곳은 없지만 더 좋은 자연이 있고, 그 자연은 인라인 스케이트나 분수나 폭포보다 더 좋은 놀이터를 제공할 거라고. 시골에 있는 우리 집 근처에는 같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친구들도 있고, 분수보다 더 크고 맑은 하천이 흘러 물놀이하기도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말이다.
부모님 말씀에 우린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영동에 가서 더 잘 놀기로 결정한 우리 5남매는 그렇게 생각하자 빨리 포항을 떠나고 싶어졌다. 하긴 공원이 자연보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사방이 돌로 깔린 공원은 아이들이 뛰다가 다칠 수도 있고 자연의 숨결을 느끼려고 해도 드문드문 심어 놓은 나무밖에 없는데.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시골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애완동물 기르기나 정원 조경 같은 더 좋은 장점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공원에 대한 아쉬움은 서서히 잊게 되었고, 더 재미있게 살 시골 동네만 염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기다리던 이삿날이 찾아오자 마침내 우리 가족은 영동의 시골 동네, 사실 정말 놀기 나쁜 곳이었던 그 동네로 추운 겨울에 이사를 갔다. 마침내 기다리던 봄이 오고 추위가 마침내 물러가자 인라인 스케이트를 꺼내 신고 집 밖으로 나가보았다.
허나 그 순간 어마어마한 상실감이 찾아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밖에 나가 보니 사방이 비탈길이고 흙길이었던 것이다. 이 시골 동네는 어느 무명 설계자가 지은 것이었는데, 그 설계자는 아쉽게도 설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동네에서 정말 중요한 땅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그저 생각 없이 싼 값에 산을 하나 사서 대충 밀어버린 다음 아무것도 없는 산비탈에 집들을 지은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문화를 즐기고 행복하게 살기로 약속했던 동네는 돌만 잔뜩 쌓인 흙먼지 가득한 비탈길 장소로, 인라인 스케이트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하는 어설픈 동네가 되어 있었다. 우린 그 시골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완전히 탈 수 없었다. 슬프긴 했지만 참고 조금만 더 더워지면 마을 앞 하천에서 놀 날을 기다렸다. 예전부터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은 물이 맑아 다슬기를 채취하거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놀기 좋다고 인근 주민들과 건축업자가 광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동네를 만들기 전에 하천이 맑다는 것을 직접 보고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는 실망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로 받은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하천에서 우리는 실망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4대강 사업의 하나로 근처 상주에 보를 건설한 것 때문에 물이 더러워진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집 앞의 하천은 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늘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이 가득했고 날카로운 폐자재들 때문에 사람이나 물고기나 돌아다닐 수가 없는 하천으로 변해 있었다.
물놀이도 할 수 없다면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개나 닭을 기르는 것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것조차 힘들었다. 동네에 들어온 입주민 전부가 원래부터 시골 사람이 아니어서 시골에서 생기는 기본적인 소리를 다 소화하지 못했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를 괴로워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개나 닭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개를 기르는 일은 참 불편하고 찜찜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았던 동네 중 가장 놀기 좋았던 곳은 의외로 자연이 있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이라 할 수도 없고 도시라 할 수도 없었던 가난한 동네, 포항이었다. 정말 시골이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동네일까? 물론 내가 살았던 영동만큼 끔찍한 곳이 아니라면 자연 속에서 놀며 사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어른들도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가 더 좋았다고 얘기하고, 여러 지식인들은 자연에 맞게 놀며 살아가는 것이 건강이나 아이큐 지수를 높여준다고 주장한다. 더러운 공기로 가득한 대도시는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고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 여러 가지 문화적 여건, 예를 들어 공원 같은 걸 누릴 수는 없어도 시골 동네야말로 아이들이 놀기 좋은, 그야말로 친환경으로 가득한 환상의 장소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자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는 이제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그 자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일부러 많은 자본을 들여서 찾아가 살지 않는 한 살 수가 없다. 예전에는 모두가 살 수 있었던 자연이 이제는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부자가 아닌 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자연 속의 시골 동네가 어이없게도 내게는 그런 모습으로 자리 잡혀 버렸다. 부잣집 아이들은 좋은 유기농 식품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콜레스테롤이 가득한 싼 식품으로 건강을 망친다고 하는 것처럼, 영동에 살기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시각이 바뀌면서 이제 좋은 시골에서 즐겁게 노는 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지금도 역시 놀기 좋은 곳이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사방이 허름하고 가난한 분위기로 가득해 보이는 동네라 해도 놀기 좋은 공원 하나가 있다면 동네의 인상이 달라진다. 놀기 좋다는 장점 하나 때문에 다른 점이 부족해도 나에게 최고의 동네로 기억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대전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하지만 시골이었던 영동보다 놀기가 더 좋다. 집 앞에 있는 하천은 영동에서와 비슷하게 더럽기는 해도 훨씬 넓고 잔잔한데다 건너편으로 건너 갈 수 있는 큰 징검다리도 있다. 하천 근처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어서 이제는 실컷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 시골 비탈길이라 하지 못했던 농구나 축구도 이곳에선 마음껏 할 수 있다. 비록 매연이 많은 도시이긴 해도 어차피 완전히 깨끗하게 놀 수 있는 시골이 없다면 즐겁게 놀 수 있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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