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우리동네 놀러와] 놀기 좋은 동네

  • 작성일 2013-06-15



[우리동네 놀러와]


놀기 좋은 동네


한서영





이사를 많이 다닌 나는 고향이라 말할 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긴 했다. 이곳저곳 살아 보니 여러 동네의 특징과 각 동네의 단점과 장점을 알아서 어째야 좋은 동네라 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동네의 경치, 시설, 접근성 같은 여러 요소들이 모두 잘 어우러져야 좋은 동네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시골 마을인 영동으로 이사하기 전에 포항에서 살았다. 포항에는 해맞이 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하나 있다. 첨단 시설을 들여놓거나 조경을 아주 잘 해 놓은 공원은 아니었지만 산책길이나 운동장, 족구장 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종종 공원으로 놀러가곤 했다.
나는 공원에서 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자전거와 달리 신발처럼 신고 달리는 것이라 다양한 폼을 잡으면서 갈 수도 있었지만 소심했던 나는 폼은커녕 빨리 가지도 못하고 혹시 실수해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과 긴장을 하며 탔다. 그것은 재미보다는 힘든 일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인라인을 탔던 그 공원은 나에게 가장 즐거웠던 곳 중 하나였다.
여름이 되면서 더 이상 더워서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가 귀찮아지면 물놀이를 했다. 따로 물놀이를 하라고 조성해 놓은 시설은 없었지만 동네 아이들은 공원 조경용 분수에서 놀았다.
호수나 연못 위에 있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분수가 아니라 평지에 있는 분수여서 마음만 먹으면 분수 줄기 사이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물살도 거세지 않아서 놀기에 알맞았다. 날이 더워지고 정해진 시간에 분수가 나오면 우리 가족도 가서 놀았는데, 나오는 분수에 엉덩이를 대며 ‘분수 비데’라고 하며 놀거나, 무모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들어가 바퀴 로 물 자국을 남기며 놀다가 결국엔 추위에 떨며 나와서는 분수 곁에 생기는 무지개를 보면서 쉬었다.
분수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폭포도 물방울을 날리며 우리를 시원하게 해줬는데, 폭포 아래에는 물이 가득 차서 큰 연못 같은 곳이 생겼다. 그 연못은 폭포가 가동을 멈추는 겨울이 되면 완전히 얼어버렸다. 그러면 그곳은 판판한 빙판이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빙판에서는 스케이트와 미끄럼을 즐기기도 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공원이 있는 포항을 떠나 영동으로 이사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귀농 계획 때문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영동의 한 시골 동네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살던 포항도 따지고 보면 시골이나 다름없는 동네였지만, 우리 가족이 바라던 것은 물 좋고 공기 좋고 이웃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자연 속의 시골 동네였다. 소위 말하는 전원생활.
그러기 위해서라면 정든 동네, 무엇보다도 정말 놀기 좋았던 공원을 버려야 했기에 우리 5남매는 반대를 하기도 했다. 5년 넘게 살다보니 인생을 얼마 살아 보지 않은 애들로서 포항은 거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동네였고, 공원을 버리고 가는 건 아쉽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우리를 잘 타이르셨다. 영동에 가면 지금 있는 동네에 있는 공원과 같은 곳은 없지만 더 좋은 자연이 있고, 그 자연은 인라인 스케이트나 분수나 폭포보다 더 좋은 놀이터를 제공할 거라고. 시골에 있는 우리 집 근처에는 같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친구들도 있고, 분수보다 더 크고 맑은 하천이 흘러 물놀이하기도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말이다.
부모님 말씀에 우린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영동에 가서 더 잘 놀기로 결정한 우리 5남매는 그렇게 생각하자 빨리 포항을 떠나고 싶어졌다. 하긴 공원이 자연보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사방이 돌로 깔린 공원은 아이들이 뛰다가 다칠 수도 있고 자연의 숨결을 느끼려고 해도 드문드문 심어 놓은 나무밖에 없는데.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시골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애완동물 기르기나 정원 조경 같은 더 좋은 장점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공원에 대한 아쉬움은 서서히 잊게 되었고, 더 재미있게 살 시골 동네만 염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기다리던 이삿날이 찾아오자 마침내 우리 가족은 영동의 시골 동네, 사실 정말 놀기 나쁜 곳이었던 그 동네로 추운 겨울에 이사를 갔다. 마침내 기다리던 봄이 오고 추위가 마침내 물러가자 인라인 스케이트를 꺼내 신고 집 밖으로 나가보았다.
허나 그 순간 어마어마한 상실감이 찾아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밖에 나가 보니 사방이 비탈길이고 흙길이었던 것이다. 이 시골 동네는 어느 무명 설계자가 지은 것이었는데, 그 설계자는 아쉽게도 설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동네에서 정말 중요한 땅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그저 생각 없이 싼 값에 산을 하나 사서 대충 밀어버린 다음 아무것도 없는 산비탈에 집들을 지은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문화를 즐기고 행복하게 살기로 약속했던 동네는 돌만 잔뜩 쌓인 흙먼지 가득한 비탈길 장소로, 인라인 스케이트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하는 어설픈 동네가 되어 있었다. 우린 그 시골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완전히 탈 수 없었다. 슬프긴 했지만 참고 조금만 더 더워지면 마을 앞 하천에서 놀 날을 기다렸다. 예전부터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은 물이 맑아 다슬기를 채취하거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놀기 좋다고 인근 주민들과 건축업자가 광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동네를 만들기 전에 하천이 맑다는 것을 직접 보고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는 실망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로 받은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하천에서 우리는 실망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4대강 사업의 하나로 근처 상주에 보를 건설한 것 때문에 물이 더러워진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집 앞의 하천은 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늘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이 가득했고 날카로운 폐자재들 때문에 사람이나 물고기나 돌아다닐 수가 없는 하천으로 변해 있었다.
물놀이도 할 수 없다면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개나 닭을 기르는 것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것조차 힘들었다. 동네에 들어온 입주민 전부가 원래부터 시골 사람이 아니어서 시골에서 생기는 기본적인 소리를 다 소화하지 못했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를 괴로워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개나 닭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개를 기르는 일은 참 불편하고 찜찜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았던 동네 중 가장 놀기 좋았던 곳은 의외로 자연이 있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이라 할 수도 없고 도시라 할 수도 없었던 가난한 동네, 포항이었다. 정말 시골이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동네일까? 물론 내가 살았던 영동만큼 끔찍한 곳이 아니라면 자연 속에서 놀며 사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어른들도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가 더 좋았다고 얘기하고, 여러 지식인들은 자연에 맞게 놀며 살아가는 것이 건강이나 아이큐 지수를 높여준다고 주장한다. 더러운 공기로 가득한 대도시는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고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 여러 가지 문화적 여건, 예를 들어 공원 같은 걸 누릴 수는 없어도 시골 동네야말로 아이들이 놀기 좋은, 그야말로 친환경으로 가득한 환상의 장소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자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는 이제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그 자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일부러 많은 자본을 들여서 찾아가 살지 않는 한 살 수가 없다. 예전에는 모두가 살 수 있었던 자연이 이제는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부자가 아닌 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자연 속의 시골 동네가 어이없게도 내게는 그런 모습으로 자리 잡혀 버렸다. 부잣집 아이들은 좋은 유기농 식품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콜레스테롤이 가득한 싼 식품으로 건강을 망친다고 하는 것처럼, 영동에 살기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시각이 바뀌면서 이제 좋은 시골에서 즐겁게 노는 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지금도 역시 놀기 좋은 곳이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사방이 허름하고 가난한 분위기로 가득해 보이는 동네라 해도 놀기 좋은 공원 하나가 있다면 동네의 인상이 달라진다. 놀기 좋다는 장점 하나 때문에 다른 점이 부족해도 나에게 최고의 동네로 기억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대전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하지만 시골이었던 영동보다 놀기가 더 좋다. 집 앞에 있는 하천은 영동에서와 비슷하게 더럽기는 해도 훨씬 넓고 잔잔한데다 건너편으로 건너 갈 수 있는 큰 징검다리도 있다. 하천 근처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어서 이제는 실컷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 시골 비탈길이라 하지 못했던 농구나 축구도 이곳에선 마음껏 할 수 있다. 비록 매연이 많은 도시이긴 해도 어차피 완전히 깨끗하게 놀 수 있는 시골이 없다면 즐겁게 놀 수 있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글틴 웹진》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

  • 포엠맥
  • 2026-05-01

문장웹진 모색

토끼가 사는 섬

[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 구돌
  • 2026-05-01

문장웹진 모색

내가 만났던 서랍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 하가람
  • 2026-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