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방학특강 참가후기] 우연과 함께하는 시 쓰기, 오늘처럼만
- 작성일 2013-08-15
- 댓글수 0
우연과 함께하는 시 쓰기, 오늘처럼만
방보경(필명 : 고운매)
지난 8월 6일, 예술가의 집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여름 특강이 있었습니다. 준비할 것은 책 두 권이 전부. 요즈음 소설을 계속 써야 할지 시를 새로 공부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강을 신청했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하시는 분은 심보선 시인과 김소연 시인이었는데, 두 분의 시집인 『슬픔이 없는 십오 초』와 『극에 달하다』를 따 와 〈시를 갖고 노는 십오 초, 극에 달하다〉라는 이름이 붙여졌더군요. 책을 챙기다가 알게 된 신기한 사실이 있는데, 김소연 시인은 2010년에 ‘다행한 일들’ 외 네 편의 시로, 심보선 시인은 2011년에 ‘지금 여기’ 외 다섯 편의 시로 노작문학상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글티너 두 명(필명 유진과 유진, 서권)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인 세 시를 넘기고 예술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있었고, 맨 앞에는 시인 두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대충 조를 짠 후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모둠에서 모둠으로 마이크가 오가고 나서, 대학생 2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김소연 시인께서는 지금까지 한 워크숍 중에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워크숍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시를 쓴 후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네 명이 〈싫어〉, 〈형광등〉, 〈크림〉, 〈양말〉이라는 네 가지 글제를 냈습니다. 저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시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형광등〉을 주제로 한 글이 제일 많았는데, “형광등을 바라보니 눈이 아프다”는 내용의,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가 마음에 들었어요. “형광등을 갈기 어렵다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라고 말하는 시도 있었어요.
두 번째 순서는 아무 단어나 골라 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심보선 시인이 연관성 없는 여러 단어들(김중혁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악기들과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제안하는 게 어떻겠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을 띄워 놓으시고 재배치하며 시범을 보이셨어요. 설명이 끝나자, 각자 가져온 책을 꺼내서 단어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과 시집 『첫사랑 두근두근』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속한 모둠의 모둠원들은 모두 소설을 써서, 플롯을 짜며 시를 지었습니다. 문장을 연결할수록 '아침드라마 아니냐, 막장이다' 등의 말이 나왔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즐겁게 시를 지었습니다. 일찍 끝나서 친목을 다지다가, 발표할 때에서야 제목을 짓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지만요. 다행히도 발표자가 제목은 무제라고 자연스럽게 넘기면서 시 낭송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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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조에는 사회과학 입문 도서가 한 권 있었는데, 시인들께서는 지배와 소속 같은 단어나 분위기가 그 책에서 나온 것 같다는 평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조들이 차례차례 시를 발표하는 중에, 마지막 「홀로코스트」라는 시에 많은 질문과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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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에서 ‘덧니꽃’은 덧니와 꽃, 두 단어를 결합해 고유명사를 만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체르니 사십 번에서 악보를 차용하여 시 낭송을 할 때 연주하는 등 실험적 기법이 사용되었어요.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구보다도 더 잘 썼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각각을 떼어놓고 보면 열두 권의 책에서 옮겨온 단어일 뿐이지만, 그것을 합치면 특정한 느낌을 만든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워크숍이 끝나고 사인을 받을 때 김소연 시인께서 시를 쓰는 사람이 될 거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저는 소설을 써서, 시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늘처럼만 쓰면 된다는 말과 함께 사인 뒤에 “시가 있는 자리에서 또 만나요”라는 글귀를 써 주셨습니다.
어쩌면 시는 김소연 시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감흥에 따라 매번 다른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강을 통해 비로소 시를 쓰는 방식 중 하나를 배운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연에 의해 시가 만들어지듯,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그런 ‘우연’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특강 내용의 짤막한 정리 》
김소연 시인
-시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져 간다.
-모든 경험은 나 자신을 변화하도록 하는 계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을 시에 녹여내는 것이다.
-시는 확고한 자아가 아니다. 단어도 하나의 세계고, 단어를 따라가는 과정이 새로운 세계와 시를 만드는 과정이다. 내 깜냥 안에서 내 단어들만 활용하지 말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시를 썼을 때 생각보다 괜찮은 문장을 뽑아낼 수 있다.
-단어 역시 추상형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름과 공간 같은 것들이 시를 만든다.
심보선 시인
-혼자서 시 쓸 때 웃은 적이 있나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이렇게 웃으면서, 몸을 쓰면서 쓴 시들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는 홀로코스트의 전문가가 쓰지 않았습니다. 이 시 안에서 홀로코스트를 폄하하는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의미는 존재합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가 쓰여진 것입니다. 쉽고 재미있고 진정성 있게 시를 쓰세요.
-습관과 알고리즘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느낌이 중요해요. 낯선 만남, 낯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시 쓰는 재미는 어떤 상태와 어떤 존재로 가느냐입니다. 시는 상태나 느낌 속으로 해방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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