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글틴 방학특강 참가후기] 우연과 함께하는 시 쓰기, 오늘처럼만

  • 작성일 2013-08-15
  • 조회수 759




우연과 함께하는 시 쓰기, 오늘처럼만


방보경(필명 : 고운매)




지난 8월 6일, 예술가의 집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여름 특강이 있었습니다. 준비할 것은 책 두 권이 전부. 요즈음 소설을 계속 써야 할지 시를 새로 공부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강을 신청했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하시는 분은 심보선 시인과 김소연 시인이었는데, 두 분의 시집인 『슬픔이 없는 십오 초』와 『극에 달하다』를 따 와 〈시를 갖고 노는 십오 초, 극에 달하다〉라는 이름이 붙여졌더군요. 책을 챙기다가 알게 된 신기한 사실이 있는데, 김소연 시인은 2010년에 ‘다행한 일들’ 외 네 편의 시로, 심보선 시인은 2011년에 ‘지금 여기’ 외 다섯 편의 시로 노작문학상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글티너 두 명(필명 유진과 유진, 서권)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인 세 시를 넘기고 예술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있었고, 맨 앞에는 시인 두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대충 조를 짠 후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모둠에서 모둠으로 마이크가 오가고 나서, 대학생 2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김소연 시인께서는 지금까지 한 워크숍 중에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워크숍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시를 쓴 후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네 명이 〈싫어〉, 〈형광등〉, 〈크림〉, 〈양말〉이라는 네 가지 글제를 냈습니다. 저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시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형광등〉을 주제로 한 글이 제일 많았는데, “형광등을 바라보니 눈이 아프다”는 내용의,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가 마음에 들었어요. “형광등을 갈기 어렵다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라고 말하는 시도 있었어요.
두 번째 순서는 아무 단어나 골라 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심보선 시인이 연관성 없는 여러 단어들(김중혁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악기들과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제안하는 게 어떻겠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을 띄워 놓으시고 재배치하며 시범을 보이셨어요. 설명이 끝나자, 각자 가져온 책을 꺼내서 단어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과 시집 『첫사랑 두근두근』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속한 모둠의 모둠원들은 모두 소설을 써서, 플롯을 짜며 시를 지었습니다. 문장을 연결할수록 '아침드라마 아니냐, 막장이다' 등의 말이 나왔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즐겁게 시를 지었습니다. 일찍 끝나서 친목을 다지다가, 발표할 때에서야 제목을 짓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지만요. 다행히도 발표자가 제목은 무제라고 자연스럽게 넘기면서 시 낭송을 시작했습니다.



찻숟가락 한가운데 스며든다
나는 마녀다 거짓말처럼 말한다
희미하게 빛바랜 피부
솜털 대신 자란 수염을 비질하는 여자
문제는 공작과의 결혼
안경알 위로 눈물이 피어 있다
깊은 푸줏간에서 울리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
활짝 점프하고 까르르
기쁨에서 출발할 것이다
지배와 소속에서 벗어나
한 줄 울음을 바라본다



저희 조에는 사회과학 입문 도서가 한 권 있었는데, 시인들께서는 지배와 소속 같은 단어나 분위기가 그 책에서 나온 것 같다는 평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조들이 차례차례 시를 발표하는 중에, 마지막 「홀로코스트」라는 시에 많은 질문과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까마귀는 생각보다 기독교 신자
모기는 하품조로 가오 잡는다
입 없는 빈민굴
작품세계가 자살할 것이다
계집애들은 반은 노래였고 반은 수용소였다
그놈들만 없어지면 젖꼭지의 말씀대로요
미친 년! 삽질을 하고
풍선은 책임감이 없어
인간적인 체온으로부터 장기를 사고팝니다
난쟁이 집배원이 덧니꽃을 팔아요
폴 매카트니는 실낙원을 포기했을까?
담배를 연주할 수 없었다
“나가 있으라” “왜요?”
제 28번 할애비는 파블로프의 뺨을 때렸다
아 - 아 - 아 - 오우 - 오!



입 닥쳐
…….
(안녕) 소매치길 당했는지 귀여워져갔다



위 시에서 ‘덧니꽃’은 덧니와 꽃, 두 단어를 결합해 고유명사를 만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체르니 사십 번에서 악보를 차용하여 시 낭송을 할 때 연주하는 등 실험적 기법이 사용되었어요.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구보다도 더 잘 썼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각각을 떼어놓고 보면 열두 권의 책에서 옮겨온 단어일 뿐이지만, 그것을 합치면 특정한 느낌을 만든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워크숍이 끝나고 사인을 받을 때 김소연 시인께서 시를 쓰는 사람이 될 거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저는 소설을 써서, 시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늘처럼만 쓰면 된다는 말과 함께 사인 뒤에 “시가 있는 자리에서 또 만나요”라는 글귀를 써 주셨습니다.
어쩌면 시는 김소연 시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감흥에 따라 매번 다른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강을 통해 비로소 시를 쓰는 방식 중 하나를 배운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연에 의해 시가 만들어지듯,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그런 ‘우연’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특강 내용의 짤막한 정리 》


김소연 시인

-시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져 간다.
-모든 경험은 나 자신을 변화하도록 하는 계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을 시에 녹여내는 것이다.
-시는 확고한 자아가 아니다. 단어도 하나의 세계고, 단어를 따라가는 과정이 새로운 세계와 시를 만드는 과정이다. 내 깜냥 안에서 내 단어들만 활용하지 말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시를 썼을 때 생각보다 괜찮은 문장을 뽑아낼 수 있다.
-단어 역시 추상형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름과 공간 같은 것들이 시를 만든다.


심보선 시인

-혼자서 시 쓸 때 웃은 적이 있나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이렇게 웃으면서, 몸을 쓰면서 쓴 시들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는 홀로코스트의 전문가가 쓰지 않았습니다. 이 시 안에서 홀로코스트를 폄하하는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의미는 존재합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가 쓰여진 것입니다. 쉽고 재미있고 진정성 있게 시를 쓰세요.
-습관과 알고리즘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느낌이 중요해요. 낯선 만남, 낯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시 쓰는 재미는 어떤 상태와 어떤 존재로 가느냐입니다. 시는 상태나 느낌 속으로 해방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0819-teen-12
0819-teen-13
0819-teen-14



《글틴 웹진》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