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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특!기자단]팀 볼러에서 한유주까지

  • 작성일 2013-12-25
  • 조회수 832

[문학특!기자단]




팀 볼러에서 한유주까지

― ‘영국 문학의 날 북 콘서트’ 참석 후기



배혜지 (‘문학특기자단’ 글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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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 파주북소리가 한창인 파주출판도시의 아시아출판문화센터 대회의장에서 특별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한국이 내년 런던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을 기념하는 영국 문학의 날 북 콘서트가 바로 그것. 팀 볼러, 줄리아 골딩과 같은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와, 영국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 캐리 허드슨, 한국의 젊은 작가 한유주가 등장해 문학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주한영국문화원 원장 마틴 프라이어의 짧은 연설로 행사가 시작됐다. 그는 ‘파주북소리’라는 명칭이 “어린아이들이 책을 읽는 소리를 말하는 것”이라며, 파주북소리 북페스티벌을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더 많은 책을 읽게 하는 독서 운동”이라고 칭했다. 그는 또한 영국에는 많은 출판 축제가 있는데, 파주북소리도 영국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축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와 독자 간의 만남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북페스티벌을 통해 서로 다른 나라의 책과 문화를 나누는 것이 “단순히 무역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에 대한 것(not about trade, but about content)”이라고 의의를 평가하는 것으로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리버 보이』의 저자 팀 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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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I am young how say you[암녕하세이유]?)


이어서 본격적으로 작가들과의 만남이 시작된 순간.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리버 보이』, 『스쿼시』 등으로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팀 볼러였다. 가장 먼저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말해 객석의 박수를 받은 그는, 한국어는 굉장히 아름답지만(your language is absolutely beautiful) 어렵다며, 한국에는 2001년 이래 세 번째 방문이지만 여전히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세 마디밖에 할 줄 모른다고 실토하기도 했다(그것도 발음이 어려워 ‘안녕하세요’는 ‘I am young how say you’로, ‘고맙습니다’는 ‘Come up see my that’으로 영어 단어로 말하며 익힌 것이라고). 이어 몇 마디 가벼운 인사말을 이어 나가다 본격적으로 낭독을 시작했다.



‘리버 보이’ 자칭 “마술적이고, 두렵고, 놀라운 작품 리버 보이”


팀 볼러가 낭독한 작품은 그의 대표작 『리버 보이』. 솔직히 말해 나는 『리버 보이』를 읽기는 했지만 그렇게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어 작품을 낭독하기 시작한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자가 직접 낭송했기 때문일까, 번역되기 이전 쓰인 대로의 텍스트였기 때문일까. 팀 볼러가 낭송한 『리버 보이』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깊고 풍부한 느낌이었다. 『리버 보이』는 비록 어린 소녀의 시각에서 쓰였지만, 숲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과 같은 느낌은 팀 볼러의 목소리를 통해 더 풍성하게 드러났다. 텍스트의 힘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읽는 팀 볼러의 힘이 더 컸다. 단순히 써놓은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야기를 읊어 주는 느낌. 팀 볼러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리버 보이』를 원서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독 끝에 팀 볼러는 이 작품이 ‘어린 소녀, 할아버지, 강, 소년’ 등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신도 모르게 쓴 이야기로, 마술적이고, 두렵고, 놀라운(magical, frightening, amazing)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며 그가 작가란 신이 아니라 산파와도 같은 존재라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어내는 역할이라고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문학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는 청소년 독자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문학의 미래가 젊은 세대에 달려 있다며, “여기 있는 어린 여러분, 여러분은 미래입니다. 그러니 그것(문학)을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것이 계속 살 수 있게 해주세요.(To young people here, you are the future. So don't let it die, keep it live.)”라며 자연스럽게 ‘경쟁사회에서의 아동문학’이라는 강연 주제로 넘어갔다.



“책에는 한계가 없다. 그냥 무언가를 시도해 보라”


그는 한국의 아동과 청소년이 경쟁 구도에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후, 그러한 현상이 비단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문학이 그러한 현상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주목했다. 그는 비록 자신이 많은 문학상을 받았고 그것을 기쁘게 여기지만 상은 결코 소설의 첫 번째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문학은 거부하고, 분노하는(refuse, rage) 것이어야 한다. 반드시 어떤 사회적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문학에서는 그저 안주하고 만족하는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맥락의 말이었다.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런 노력, 또는 그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보상이라는 말. 팀 볼러의 창작관과 작가로서의 태도가 엿보이는 말이었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그것들이 결합되어 문장과 이야기를 만드는 자체가 하나의 마법과도 같은 일이라며 “책에는 한계가 없다(Book is unlimited)”고 말했다.
글을 쓰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글쓰기는 좌뇌와 우뇌를 모두 활용하는 작업”이라며, 이성적이고 기계적인 좌뇌와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우뇌의 작용을 모두 강조했다.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시도하는 것’ 자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청소년들에게 “그냥 무언가를 시도해 보라(Just try some)”고 권유하기도 했다.
강연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문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말했다. 보이지 않는,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단어의 결합으로 ‘보이게끔’ 하는 작업. 그렇기에 문학은 무한한(infinity) 것이며, 그 무한을 향해 달려가는 창조를 하나의 ‘미스터리(mystery)’라고 규정하는 것으로 그의 강연은 끝났다.



『코니 라이온 하트』 시리즈의 저자 줄리아 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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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무대로 올라온 줄리아 골딩의 첫 마디는 “죄송하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 오기 직전, 팀에게서 한국어를 배웠어요”라며 팀 볼러와 마찬가지로 서투른 한국어 솜씨를 선보였다. 객석에는 소소한 웃음이 퍼졌다.



마술이 현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몇 마디 사소한 인사말을 이은 후 줄리아 골딩 역시 자신의 대표작인 ‘코니 라이온 하트(이하 ‘코니’)’ 시리즈의 부분을 직접 낭독해 보였다. 팀 볼러의 낭독이 『리버 보이』의 풋풋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면, 줄리아 골딩의 낭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코니’ 시리즈답게 난롯가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안했다. 어린 코니가 ‘독수리 아이’의 도움을 받아 ‘폭풍새’의 벗이 되는 대목이었는데, 어린이용이라 쉽고 직설적으로 표현된 이야기 속에 현실적인 암시가 담겨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아동도서인 만큼 지금의 내게 완전히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만일 어렸을 때 마주쳤더라면 제법 끌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독을 마친 그는 “제가 좋아하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며 ‘아동은 왜 판타지 문학에 열광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시작했다.
“누구나 한번쯤 마술에 대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판타지란 ‘마술이 현실이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꿈꾸던 마술이 현실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싫어할 수 있을까?’”
그는 이게 바로 판타지가 사랑받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판타지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누구나 떠올려 보는 생각의 확장이라고 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고. 또한, ‘판타지’라는 장르를 보통의 소설과 따로 떼놓아서 얘기하지만, 판타지라고 해도 결국 ‘스토리텔링’의 일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들어오세요, 여러분은 굉장히 환영받을 겁니다”


결국 사람들은 왜 판타지 문학에 열광하는가? 줄리아 골딩의 말을 요약하자면 “판타지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처음으로 흥미로웠던 경험은 판타지”라고 그는 말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판타지를 읽고, 그것이 실재하는 세계인 양 설레어 보곤 한다. 나 역시 그랬기에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여기는 어린아이들에게도 모든 새로움이 차 있는 판타지란 가장 흥미로운 경험이고, 그것은 또한 다른 문학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강연의 끝은 판타지 세계를 향한 매력적인 초대의 말이었다.
“그건 내 머릿속에 있어요. 그 세계에 머물러 보세요. 들어오세요. 여러분은 굉장히 환영받을 겁니다!(Come on in. You'll very welcomed!)”



팀 볼러, 줄리아 골딩과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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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5분은 책을 읽는 시간으로…
책에 흥미가 없던 아들, 퍼시 잭슨에게 감사


두 사람의 강연이 끝난 뒤, 사회자가 다시 무대로 올라와 두 작가와 함께 대담을 벌였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뒤 첫 질문은 “책 읽는 문화가 줄어 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금 더 책 읽는 문화가 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였다. 이에 팀 볼러는 “이 축제와 같은 행사가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파주북소리와 같은 북페스티벌, 즐겁게 책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아이들을 혹독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영어 속담에 ‘softly softly catch the monkey’라는 말이 있어요. 책 읽는 습관도 그렇게 부드럽게 키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하루 15분, 아무것도 아닌 15분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앉아 책을 읽는 시간으로 가져 보라”고 권했다. 아이에게 무작정 고전을 읽히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이며, “고전을 읽어야 하는 건 차라리 부모들이고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재밌는 책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라”고 말했다. 또 크게 소리 내어 읽고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라고 조언했다.
이어 줄리아 골딩은 자신의 작은 아들을 예로 들어 답변했다. 그는 “아들이 오로지 축구와 게임기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퍼시 잭슨’ 시리즈에 열광하며 책 읽는 습관을 길렀다”며 앞선 강연에서 강조한 판타지의 긍정적 효과를 말하기도 했다.



“청소년 소설을 쓰는 방법은 ‘공감하는 것’. 쓰기 힘든 이야기라도 계속 써야 한다”


이어진 질문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업에 관한 것.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혹시 유난히 동안을 자랑하는 이유가 청소년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냐는 사회자의 농담에 두 사람 다 잠시 웃음을 터뜨린 후, 줄리아 골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아무래도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인 만큼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어휘를 고르는 데 신경을 쓴다며, 그 이상의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팀 볼러도 마찬가지였다.
“노력하는 게 있다면 공감하는 것일 뿐 특별한 기술은 없다”고 말했다.
그 다음 비극적인 글을 쓸 때, 몰입으로 인한 동일시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팀 볼러는 ‘좋은 질문’이라며 분명 비극적인 이야기를 쓸 때는 몹시 고통스럽고 힘겨워 그만두고 싶기도 하지만, 더 큰 이야기의 맥락에서 그것을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줄리아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모든 판타지 소설은 결국 세계에 대한 것.
인간을 멋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생존과 관계없는 ‘예술’


이번에는 사회자가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렸다. 번쩍 손을 들고 앞으로 달려 나온 사람은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여학생이었다. 자신을 고양외고 학생이자 팀 볼러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후, 떨림을 감추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판타지에는 긍정적 효과가 많지만, 판타지가 현실도피인 경우 현실과 괴리되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팀 볼러와 줄리아 골딩은 우선 여학생의 용기와 태도를 칭찬한 다음 답변했다. 줄리아 골딩은 “모든 판타지 소설가들은 결국 세계에 대해 글을 쓰는 겁니다”라며 “해리 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것들 역시, 마법을 쓰는 것만 제외하면 현실과 똑같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타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이나 사건들을) 대하는지(how we live, how we die, how we treat)를 다루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팀 볼러는 “인간을 멋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예술이다 그것은 생존과 관계없는 일련의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이야기 ? 신화 ? 판타지 등 그것이 무엇이든 예술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며, 무언가를 향한 작은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며 ‘환상적인 질문’이었다는 칭찬으로 말을 맺었다.



한-영 젊은 작가의 만남, 캐리 허드슨 & 한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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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휴식과 음악가 하림의 공연이 펼쳐진 후, 영국의 주목받는 신예 작가 캐리 허드슨이 무대에 올랐다. 『토니호건은 엄마를 빼앗아가기 전 나에게 아이스크림 플롯을 사주었다』(이하 『토니호건』)라는 독특한 제목의 처녀작으로 영국에서 시선을 끈 캐리 허드슨은, 짧은 영상에 이어 직접 『토니호건』 일인극의 앞부분을 열연해 박수를 받았다. 정적이 이어지다 갑작스레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의 집안 여자들의 독특하고 혈기 넘치는 태도에 대한 설명이 시종 유쾌하게 이어졌다. 톡톡 튀고 개성 넘치는 소설이리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연극이었다.
『토니호건』 일인극은 실제로 영국 극장에서 상영돼 캐리 허드슨 본인이 직접 연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상 깊은 일인극에 이어 한국의 젊은 작가 한유주가 무대에 등장하고, 두 키 큰 여자 작가와의 질의응답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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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소재에 대한 질문에 한유주는 “딱히 경험을 적은 적은 없다”면서도 “대화체를 별로 반영하지 않아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서울 사투리랑 강원도 사투리를 쓰셔서, 글을 쓸 때 그런 걸 활용해야지 하는 생각은 해봤어요. 할머니가 인생을 소설로 써달라고 했는데, 용기가 없어서 쓰지 못한 게 아쉽네요”라고 말했다. 반면 캐리 허드슨은 “자신의 처녀작은 어린 시절 가족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라며 『토니호건』 속 독특한 인물들도 자기 가족의 모습과 언어생활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 말했다.
이어 왜 작가가 되었냐는 질문에는, 우연히도 두 사람의 대답이 겹쳤다. 상상도 하지 못하게 우연히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
한유주는 그저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고, 읽다 보니 쓰고 싶었고, 쓰다 보니 어느새 작가가 되었다며, 대학 시절 주위의 권유로 우연히 투고한 소설이 당선돼 등단하게 되었다고 했다. 캐리 허드슨 역시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야 글을 썼는데 처음 쓴 글이 덜컥 당선이 되어 ‘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감을 표했다.
두 사람 모두 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또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해 주는 것이 글쓰기의 매력이라며, 엉겁결에(?) 글을 쓰게 됐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두 작가를 알아 가는 것은 물론 초면인 두 작가끼리도 많은 부분 공감하고 친밀해져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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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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