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중편연재] 계류와 표류 제4회

  • 작성일 2014-04-16
  • 조회수 577

[중편 연재 소설]



계류와 표류 (제4회)



안보윤





4


장운구는 컵라면을 빼낸 박스를 일일이 펼쳐 가로수 아래 쌓았다. 버스 정류장 옆 가로수에는 박스 외에도 많은 것이 쌓여 있었다. 담배꽁초는 물론 자잘한 쓰레기들과 함께 무수히 쌓인 전단지가 그것이었다. 길 잃은 하나님의 자녀와 현대인의 미덕이라는 비쩍 마른 몸매를 위해 헬스 트레이닝이 필요한 사람, 점심특가 구천구백 원에 칠첩반상을 받고자 하는 사람, 떼인 돈을 또 다시 돈을 떼이며 받아내겠다는 사람 모두를 한 곳에서 찾겠다니 우스운 발상이었다. 이곳은 종착역을 향해 가던 십 수종의 버스가 문득 멈춰 서는 간이역에 불과했다. 버스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이십 초가 채 안 됐다. 무심히 옆구리를 연 버스 때문에 맹렬해지는 건 몇몇 사람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거니 도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릴 뿐이었다. 한낮의 버스 이용객 상당수가 노인들인 탓에 더욱 느슨한 풍경이 연출되는지도 몰랐다.
버스정류장 외벽에 붙은 빌라 급매 전단지와 과외 알선 전단지를 장운구가 느릿느릿 떼어냈다. 여기서 떨어진 것이 분명한 청테이프 조각들이 바닥에 점선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정류장이 서던 초기만 해도 껌이며 테이프 자국을 떼어내느라 혈안이 되었던 환경미화원과 공공근로자들도 이제 손을 놓은 분위기였다. 어떻게 해도 정이 안 가는 동네라고, 장운구는 투덜거리며 떼어낸 전단지를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가로수 허리께에 매달린 대형 쓰레기봉투가 방치된 길짐승처럼 속을 게워내며 흔들거렸다.
장운구는 슬리퍼 바닥에 붙은 껌을 보도블록 모서리로 긁어낸 뒤 편의점으로 향했다. 매장 창고에 적당히 쌓아놓아도 될 것을 굳이 십 미터는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부려 놓는 건 늙은 여자 때문이었다. 늙은 여자는 그야말로 늙은 여자였다. 어깨와 골반 뼈가 동일하게 왼쪽으로 주저앉아 늙은 여자는 쪽배 노를 젓듯 기우뚱 기우뚱 걸었다. 걷어차면 금방이라도 박살날 것 같은 낡은 수레와 함께 선 여자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장운구는 꼬깃꼬깃 접힌 늙은 여자의 몸뚱이와 유난히 옹졸하고 궁색해 보이는 잿빛 턱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늙은 여자가 슬그머니 수레를 끌고 나타난 건 삼 년 전이었다. 신도시 개발계획이 막바지에 이르러 들판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화원과 논밭을 마구잡이로 밀어내던 때였다. 바다에 맞닿은 지역에는 벌써 이만 세대가 너끈히 들어가는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입주민 편의를 위한 대형 마트며 종합병원, 학원 건물 등등이 마침표를 찍듯 서둘러 건물을 올리고 입점 현수막을 걸었다. 함바 식당을 하던 장운구가 편의점 간판을 사 올린 것도 그때였다. 허름한 건물이 무너지고 빌딩이 새로 올라가는 자리마다 쉬파리처럼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원래 고물을 줍던 사람도 있었고, 그럴 듯해 보이는 물건이 버려져 있으니 무렴한 얼굴로 괜히 기웃대는 사람도 있었다. 늙은 여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쉰내 나는 누덕누덕한 몰골은 특별할 게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늙은 여자를 대하는 다른 노인들의 태도였다. 장운구는 오랫동안 거리를 떠돈 사람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무기력하게 바닥만 보고 걷는 이와 울분이 늘 턱까지 차 있는 이가 그러했다. 누가 손을 대면 전자는 죽은 듯 나자빠져 숨도 쉬지 않았고, 후자는 훌렁훌렁 옷을 벗어 때에 전 배꼽과 젖꼭지를 드러낸 채 덤벼들었다. 그런 그들이 늙은 여자를 대하는 방식은 좀 기묘했다. 마치 여인을 대하듯, 늙고 냄새나는 여자가 아닌 청초한 여인을 대하듯 했던 것이다. 구역 싸움도 하지 않고 철거된 집에서 뜯어낸 선반 따위를 짐짓 늙은 여자 쪽으로 밀어놓기도 했다. 실로 웃기는 노릇이었다.
사립 중학교 교감선생 출신이라. 장운구는 코웃음을 쳤다. 어디 출신이든 어떤 경로를 통했든 장운구가 보기에 폐건물에 모여든 노인들의 뒷모습은 똑같았다. 늙은 여자에 대한 얘기라면 인터넷이나 신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귀족 가문의 양심선언, 몰락, 보복 같은 단어들이 꼬리표처럼 늙은 여자를 쫓아다닌 까닭이었다.
유명 사립 중학교의 비리 폭로는 십여 년 전 최대 이슈가 된 사건들 중 하나였다. 내부 고발자가 일반 직원이 아니라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늙은 여자라는 데, 심지어 이사장의 사촌동생이자 현직 교장의 여동생이라는 데 이목이 집중됐다. 늙은 여자는 양심선언 운운하며 기자회견장에서 거리낌 없이 실명을 거론했고 기부금 장부와 비밀 서류들을 공개했다. 이에 탄력을 받은 언론이며 야당 의원들이 기득권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난 지금 나가떨어진 건 늙은 여자 한 명뿐이었다. 로열패밀리의 권력다툼이니 대선을 앞둔 물 흐리기니 말이 많았어도 그뿐이었다. 잠시 이사장 직과 교장 직을 물러났던 여자의 혈육들은 일 년 만에 서로 자리를 바꿔 앉았고 여자는 축출됐다. 이후 수많은 소송에 휘말렸던 여자가 빈털터리일 뿐 아니라 빚쟁이가 되어 거리에 나앉은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운구는 늙은 여자의 순진무구함이 경멸스러웠다. 잔 다르크라도 되고 싶었던 모양이지. 거리를 지나는 늙은 여자의 쭈그러든 등허리를 볼 때마다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조소를 갈무리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사람들이 주저앉는 순간은 거대한 빙벽과 맞닥뜨렸을 때가 아니었다. 이안류에 휩싸여 심해로 끌려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최악의 절망은 반딧불처럼 나약한 희망 때문에 존재했다. 빙벽 꼭대기에서 줄을 늘어뜨려 주고 있던 이가 얼어붙은 그루터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소용돌이치는 짠 물 속에서 불현 듯 열린 틈으로 하늘이 보이는 순간이 그러했다. 무엇을 기대했든 결국 빙벽 아래에서 얼어 죽을 것이며 부음을 전할 도리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늙은 여자는 더욱 질 나쁜 절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셈이었다. 세상이 정의로워질 거라는, 뭔가 달라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가져오는 까마득하고 질척질척한 절망을.
일부러 늙은 여자를 편의점 안으로 끌어들인 일도 있었다. 그런 식의 멸시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건지 장운구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늙은 여자에게 바닥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이것이 늙은 여자가 선택한 삶이라면 좀 더 철저하게 진창을 구를 필요가 있었다.
박스 줄 테니까 가져가쇼. 밖에 내놓으면 귀신같이들 집어가거든. 그렇게 느려 터져서 언제 수레를 채우나, 한심하긴.
아르바이트생이 창고에서 해체된 박스를 끌어오는 동안 늙은 여자는 편의점 구석에 옹송그린 채 서 있었다. 쭈뼛대며 문질러대는 올 풀린 목장갑 끝이 새까맸다. 밝은 불빛 아래 놓인 늙은 여자의 꼴은 더욱 추레해서, 옷에 더께처럼 앉은 때와 기운 자국이 선명했다. 손님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몸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꼴이 꼭 벌 받는 아이 수준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박스 사이에 목장갑 두 켤레를 슬그머니 끼워 넣는 걸 장운구는 모른 척 넘겼다. 공주님의 반란이니 귀족의 몰락이니 타이틀은 화려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늙은 여자의 고린내 나는 육체와 천오백 룩스짜리 조명만큼 명징해진 가난 정도였다.
할매, 아니지, 여사님이지 여사님. 보통 여사님도 아니고 이대 나온 여사님이니 어떻게 대접을 해드리나. 저대 나온 사장님이라도 소개시켜 드릴까?
늙은 여자는 장운구의 말에 파르르 목젖을 떨었으나 편의점을 나가진 않았다. 직접 창고에 들어간 장운구가 아직 제품이 담겨 있는 박스까지 몇 개 더 뜯어 펼쳤다. 늙은 여자는 편의점 바닥에 쌓인 박스를 하나씩 하나씩, 느린 걸음으로 수레에 옮겼다. 보다 못한 아르바이트생이 박스를 집어 들자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내가, 내가 다 할 수 있으니까 그냥 둬요. 몰골과 달리 곱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장운구는 거리를 훑는 되직한 목소리들, 거칠고 진득한 목소리들을 상기했다. 저런 피리소리 같은 걸로 당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쯧쯧 혀를 차던 장운구가 환풍기를 강으로 돌렸다.
이대를 나오고 유학을 했든 수십억 원대 재산을 깔고 앉아 있던 미망인이었든 늙은 여자는 이제 평범한 고물 줍는 노인에 불과했다. 구부러지다 주저앉고, 그대로 쓰러져 죽는 늙은 여자를 장운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거리를 표류하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러했다. 필사적으로 걷고 줍고 먹어댔지만 헤진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기를 어쩌지 못했다. 고물집하장 담벼락 아래나 골목 어귀에서 시름시름 앓다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노인들을 장운구는 최소 다섯은 알았다. 늙은 여자도 곧, 그렇게 사라질 것이었다.


저 놈은 계속 저기 둘 거야?
장운구가 편의점 맞은편, 주차장 관리실에 앉아 있는 동욱을 가리키며 물었다. 조카들이 상경했다며 배 사장이 동욱과 그 동생을 데려와 소개시킨 게 벌써 이 년 전 일이었다. 강원도 산골 오리 농장에서 왔다는 설명과 달리 작은 놈의 말간 뺨이 어리고 귀여웠다. 카운터 근처에 있는 주전부리를 쥐어주자 덥석 봉지부터 뜯는 동생을 형인 동욱이 붙잡았다. 동욱 역시 훤칠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한 놈은 방송이며 인터넷에서 떠들썩한 천재 화가고 한 놈은 영민하기 그지없어 대학에 덜컥 붙었다더니. 어쩐 일인지 한 놈은 일 년 넘게 주차장에 박혀 있고 다른 한 놈은 수레 끄는 늙은 여자와 붙어 다녔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장 사장 알다시피 내가 좀 바쁜가? 저 놈 휴학해서 할 일 없다니 잠깐 맡긴 거지. 저 놈은 용돈벌이 해 좋고 나는 내 사업하니 좋고, 상부상조 중이야.
사업은 무슨, 끽해야 복권 긁으러 다니는 놈의 걸.
이게 얼마나 심오한 세곈지 자네가 몰라서 그래. 연구하다보면 끝이 없대도.
연구는 무슨, 돈지랄 시간지랄인걸 누가 몰라.
장운구는 주차장을 에워싼 연두색 철제 펜스를 따라 걷고 있던 시들시들한 그림자를 떠올렸다. 동욱은 처음 만난 날과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다부지던 등이며 팔뚝이 거품이 내려앉은 것처럼 푹 꺼져 있었다. 어깨와 무릎이 비슷한 각도로 굽어 이십대 청년이라고 하기엔 무기력하고 지루한 몰골이었다. 주차장의 악질 손님들, 예를 들어 출구 차단기를 부수고 나가버리는 배송 트럭이나 주차해둔 차가 찌그러졌으니 물어내라고 악다구니 써대는 운전자에게도 영 맥을 못 추었다. 건너편에서 보다 못한 장운구가 뛰어나가 중재를 해준 것만도 여러 번이었다. 장운구는 카운터에 붙어 눈알만 굴리고 있는 배 사장에게 담배 한 갑과 즉석복권 열 장 묶음을 내주었다.
배 사장은 전형적인 졸부 타입이었다. 우연찮게 손에 쥔 돈을 불릴 능력도 기술도 없이 욕심만 앞섰다. 그가 원하는 건 또 다른 운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복권에 빠져 있었다. 배 사장은 사십 개의 숫자를 배열해 놓은 종이판을 종일 노려보거나 일등 당첨 숫자들의 조합을 끝없이 써내려가거나 유명한 복권방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걸로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 애초에 장운구와 안면을 트게 된 것도 편의점으로 꼬박꼬박 사러 오는 대량의 복권 때문이었다. 배 사장은 로또뿐 아니라 즉석복권과 스포츠복권 역시 무분별하게 사들였다. 수중에 있던 집들을 모두 팔아버려 임대업을 그만두고도, 건물 올릴 돈이 없어 금싸라기 땅을 주차장으로 썩히고 있으면서도 복권 사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배 사장의 아내가 일찌감치 이혼해 재산분할 소송을 건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복권 때문이었다. 장운구가 알기로 배 사장이 높은 당첨금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삼백만 원 정도가 최고 금액이었지만 그마저도 복권을 사는 데 도로 써버렸다. 이번 당첨금이 32억 4천만 원이래. 배 사장은 그것이 벌써 자기 돈이라도 된 냥 떠들어댔다.
그래서 오늘은 어딜 가는데? 1등 당첨자가 일곱 번 나왔다는 복권방?
나라고 복권방만 다니는 줄 아나. 뭘 좀 팔러 가지, 흐흐.
편의점 앞에 세워둔 자신의 차를 가리키며 배 사장이 의뭉스럽게 웃었다. 견인이 심한 지역이라 웬만해서는 길가에 주차하는 일이 없는데 별일이었다. 신문지로 둘둘 싼 커다란 널빤지 같은 것이 서너 개 차 뒷좌석에 실려 있었다. 저게 뭔데? 뭘 팔아? 순식간에 즉석복권 열 장을 모두 긁은 배 사장이 카운터에 너절하게 흩어진 은박 껍데기들을 훅 불었다.
조카 놈 그림.
그림?
꽃병 바다 뭐 그딴 것들. 애가 촌놈이라 그런가, 그림이 영 세련되질 못해. 그래도 해보니까 이게 꽤 돈이 되더란 말이지. 방송에 나왔던 거라 그러면 아줌마들이 아주 사족을 못 써.
유명한 애라면서? 그런 그림을 막 내다팔아도 되나?
집에 널린 게 그림인걸 뭐. 그놈 학교도 안 가고 방에 틀어박혀 하는 일이라곤 물감 칠밖에 없어. 저딴 건 앉은 자리에서 하룻밤 만에 그린다니까.
암만 그래도……
어차피 이것도 한철이야. 그놈이 왜 유명해졌는지, 그놈 그림이 왜 비싼지 알아? 그림 교육이라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강원도 촌놈 그림이 제법 그럴 듯했거든, 게다가 그 주인공이 어딘가 모자라고 병약해 보이는 어린애라지 않아. 관심 받을 만했지. 근데 그놈이 이제 상경을 했단 말이지.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 미술 전문교육을 받는 거라고, 나이도 먹고 있고. 사람들 관심 끌 만한 것들이 전부 사라진 셈이야. 이제 저놈은 수천 명 애들이랑 똑같아진 거야. 방송빨? 그거 운 좋아야 반년이야. 제일 나쁜 게 뭔지 아나? 저놈이 계속,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지. 희소성이 없어. 특별히 요절을 해 그림이 한정된다면 모를까 앞으로 저놈 그림은 누구도 욕심내지 않을걸. 그걸 내가 미리 팔아준다는데 감사해야지, 안 그래? 내버려두면 폐지나 될 그림을, 단돈 얼마라도 받아주는 게 어디야.
그래도 학교는 나가야지. 저 애들 요즘 이상해. 큰 놈은 넋 빠진 것처럼 주차장에 앉아 있고 작은 놈은 폐지 줍는 늙은이랑 붙어 다니고.
학교 그까짓 거 안 가면 어때. 내버려둬도 돼. 아니, 내버려둬야 해. 도시 생활에 잘 적응해 대학 진학하는 영재라니 이건 뭐 고독한 멋이 없잖아. 강원도에서 포부를 안고 상경했으나 학교에 적응 못한 채 중퇴, 혼자 그림에 매진, 응? 독학 어쩌고 해줘야 그나마 붙일 말이 늘어나지. 에디슨 위인전을 사람들이 왜 읽는지 알지? 천재는 말이야, 시작부터 남달라야 우러러봐주는 거거든. 닭알 품는 건 표절이니 못해먹어도 퇴학 정도는 당해줘야지. 그러다 우울증이니 자살 시도니 하는 극적인 타이틀이 하나 더 붙어주면 금상첨화고. 집에? 뭐 하러 연락을 해. 저놈 부모는 나를 푹 믿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좋은 고모부냔 말이야, 애들한테 집 내줘, 매일 먹을 거 챙겨줘, 돈도 벌게 해줘, 이렇게 헌신하는데 이깟 그림 몇 점 팔아먹는 게 뭐 대수라고. 안 그래?
배 사장이 겨드랑에 끼고 있던 것을 카운터에 올렸다. 서류봉투만한 너비의 납작한 상자가 차에 실린 것과 마찬가지로 신문지에 둘둘 싸여 있었다. 책인가 싶어 들어보니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배 사장 말대로라면 이것 역시 그림인 게 틀림없었다. 장운구의 품에 그림을 밀어붙인 배사장이 고무줄로 묶인 즉석복권 한 무더기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유리문에 붙은 종이 오래도록 혼자 울었다.
장운구는 그림을 싼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구인광고가 빼곡히 찍힌 길거리 무가지라 누렇고 반들반들한 종이가 벗겨질 때마다 손바닥에 검은 얼룩이 남았다. 뜯겨 나온 자음이 겹치고 눌려 읽을 수 있는 글자는 하나도 없었다. 무겁고 낯선 기름 냄새가 신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캔버스에 그려진 것은 수레였다. 어두운 낯빛의 늙은 여자가 수레를 끌고 있었으나 너무 작고 흐려 그쪽으로는 영 시선이 가질 않았다. 화면에는 오로지 수레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밑이 빠지고 바퀴가 풀린 낡은 수레. 거칠게 그은 선들이 황폐하고 메마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오른쪽 귀퉁이에 아주 작은 빛 조각이 실수인 듯 찍혀 있었다. 다시 들여다보니 사금파리 같기도 했다.
자화상, 이라고 장운구는 생각했다.
그것은 소년의 것, 늙은 여자의 것인 동시에 장운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장운구는 구멍가게 카운터에 앉아 토큰 개수와 천하장사 소시지 개수를 세던 어린 날의 자신을 기억했다. 잠깐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박했다 염분에 돛이 삭아버린 어선처럼 자신은 결국 카운터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장운구의 손은 대부분 놋쇠 냄새나는 동전과 지폐 무더기에 묻혀 있었다. 주차장 관리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욱의 검은 정수리는 자신의 그것과 똑같았다. 장운구의 미래 역시 쭈뼛대며 때에 전 손톱을 숨기는 늙은 여자와 크게 다를 리 없었다. 파지를 줍든 엎어진 컵라면 용기를 치우든 아파트 거실에 멍하니 누워있다 정류장 빈 의자들을 떠돌든 자신의 종착지 역시 한 곳이었다. 구부러지다 주저앉고, 그대로 쓰러져 죽을 것이다. 수많은 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리 한구석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장운구는 쯧쯧 혀를 차며 캔버스를 뒤집었다. 바람에 흔들린 유리문이 미약하게 종소리를 흘렸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5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보다 키가 줄었네.
그럴 리가요.
줄었는데? 이것 보렴, 어깨도 좁아지고 목도 구부러졌잖니. 왜 그렇게 몸을 구기고 있는 거지?
여기서 더 구겨지면 나도 거기 실어줘요.
어디? 수레에?
구겨지고 버려진 걸 싣는 수레잖아요. 나 꽤 무거워요, 갖다 팔면 돈 좀 나올걸요. 폐지 일 킬로그램에 백이십 원이랬죠? 그럼 난 오천오백 원쯤 받으려나. 그걸로 할머니 고기 사먹어요, 삼겹살 같은 걸로.
수레에는 다시 찾지 않을 것만 싣는 거야. 영원히 사라져도 후회하지 않을 것들만.
그러니까요.
부모님이, 네 고모부나 형이 널 찾으러 올 거다. 널 수레에 올렸단 사실만으로도 고소당할지 몰라. 유괴나 아동학대 같은 걸까. 난 이제 소송이라면 지긋지긋하단다.
고모부는 드라마를 좋아해요. 지금쯤은 뭔가 충격적인 사건이 필요한 때라고 하던걸요. 내가 집 밖으로 나도는 걸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예요. 내가 누군가에게 유괴당하거나 보도블록에 쪼그려 앉아 돌멩이를 줍다 후진한 트럭에 깔리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끔찍한 소릴 하는구나.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고모부는. 돈도 좋아하고. 형과 나를 돌봐주고 있는 것도 우리가 아직은 돈이 되기 때문이에요. 편의점 아저씨가 우리 고모부는 복권 중독자라고 했어요.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래요. 이 도시에는 중독자가 너무 많다고요. 술, 담배, 돈, 일, 환각제, 성형, 자동차, 커피, 모든 것에 중독자가 있대요. 그렇게 따지면 학교 선생님과 반 애들은 고학력 중독자나 출세 중독자쯤 되는 것 같아요. 우리 형은 고립 중독자고요, 할머니는 고물 중독자나 가난 중독자일 거예요.
너는?
나는…… 그림 중독자였는데 지금은 아녜요.
왜? 내가 보기에 넌 지금도 충분히 그런데 말이다. 종일 그림 얘기만 하고 있잖니. 어젯밤에도 그림을 그렸지? 손에 물감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어.
그런 건 그림이 아니에요. 물감을 아무리 써도 몇 날 며칠 붓을 잡고 매달려도 완성되는 게 없어요. 나도 그런 걸까요. 오십 년 동안 먹어야 할 밥을 한 번에 먹고 죽어버린 사람처럼, 오십 년 동안 매일매일 한 장씩 그렸어야 할 그림을 한꺼번에 그려버려서 모든 재능이 사라져버린 걸까요.
재능이란 건 사라지는 게 아니야. 키가 자라는 것처럼 네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성장하는 거지.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고 불안해할 필요 없단다.
어제는 종일 사과를 그렸어요. 그저께는 컵을 그렸고요. 할머니가 그랬잖아요, 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투정만 부리고 있다고, 도망만 치는 어린애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그렸어요. 학교 선생님이 시켰던 대로 기본부터 충실히, 바다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고 화병도 그렸어요. 기찻길도 아그리파도 전부 그렸어요. 백 장도 넘게 그린 것 같은데 그 중 어느 것도 컵이나 사과 같지 않았어요. 전부 다 죽어 있었어요.
똑같이 그려야만 좋은 그림이 되는 건 아니잖니. 억지로 사과를 그리는 것보다 네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게 좋지 않을까.
난 오리가 그리고 싶어요.
그럼 오리를 그리렴.
그건 안 된다고 했다니까요. 그놈의 오리 좀 그만 그리라고, 오리 그림으로 유명세를 탄 탓에 오리밖에 그릴 줄 모른다고 한심하다고 했어요.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여기선 그릴 게 아무것도 없는걸요. 강원도에선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걷다 돌아보는 각도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새벽하늘과 한낮의 나무에 색상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모든 색이 맺혀 있었고요, 초겨울과 한여름에 부는 바람조차 색깔과 형태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은 밤과 낮과 봄과 겨울이 똑같잖아요. 건물은 검거나 희고 간판과 사람은 한결같아요. 길옆에 세운 포장마차조차 쌍둥이처럼 똑같은데 대체 뭘 그리죠. 우리 반 정원은 사십 명이었어요. 그런데 그 애들이 그린 그림 사십 개를 늘어놓으면 어떤 게 누구 건지 구별해낼 수 없었어요. 이상해요. 그리고 싶은 것과 그려야 할 것이 다르다는 것도, 살아야 하는 곳과 살고 싶은 곳이 다른 것도 다 이상해요.
그래, 그래. 무슨 소린지 알겠다.
정말이요?
그래. 적어도 하나는 분명히 알겠구나. 네가 힘들다는 거. 네가 아주 많이 괴롭다는 것 말이다.
나도 이제 하나는 알아요.
뭔데?
이곳이 싫다는 거요. 난 여기가 싫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형과 내가 싹싹 지워지기 전에, 저 수레에 올라가지도 못할 만큼 쓸모없는 고물이 되기 전에요. 그림 같은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할머니가 수레에 실었던 그림 상자는 사실 내가 버린 게 맞아요. 그래서 계속 미안했어요.
그걸 전부 내버리고 후회하지 않겠니?
할머니 난요, 난 자꾸 왼쪽으로 기울어요. 형 생각을 할 때마다, 고모부와 마주칠 때마다, 내 그림을 욕하고 내 붓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계속 계속 기울어요. 내 접시는 이제 바닥까지 기울어졌어요. 나는 이런 식으로 악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6


동욱은 연두색 철제 펜스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한밤이었고, 주차장은 일찌감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벌써 일주일째 고모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차단기에 두른 전구가 반짝반짝 파란 빛을 내뿜는 걸 바라보던 동욱이 입, 출구에 있는 차단기를 모두 걷어버렸다. 주차장에 남아 있는 차는 다섯 대 남짓이었다. 그 중엔 일주일째 주차중인 고급 차량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스를 따라 가만히 돌고 있자니 정사각형의 좁기만 하던 주차장이 기이하게 넓어 보였다.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켜듯 그림자가 쭉쭉 바깥쪽으로 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텅 빈 중앙 부분이 유독 새까맣고 깊었다.
축축한 바람이 불었다. 비 예보가 있었던가 되짚어 보다 동욱은 머리를 흔들었다. 매일 일기예보를 체크하던 건 아주 예전 일이었다. 오리 축사에 합판을 덧대던 날이 떠올랐다. 흙을 채운 화분과 상자로 합판이 넘어지지 않도록 기대놓던 날이. 아직 시월인데도 한파주의보가 내렸고 급한 김에 축사에 비닐을 덧대고 합판을 받쳐놓은 참이었다. 오리들이 두껍고 넓적한 발로 동욱의 무릎이며 등을 타넘었다. 상자에 느긋하게 올라앉아 동욱과 눈을 맞추는 오리도 있었다. 바쁘고 평화롭던 날들이었다. 동욱은 무심결에 철제 펜스를 축사 기둥 세우듯 수직으로 밀다 멈췄다. 똑같이 펜스가 둘러져 있어도 이곳엔 동욱이 지켜야 할 것이, 돌봐줘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에 멈춘 손끝이 찼다.
손. 동욱은 가로등 아래 흐릿하게 드러난 윤곽을 더듬었다. 이전보다 좀 더 얇고, 좀 더 희어진 손이 거기 있었다. 단단한 뼈마디는 그대로였으나 전체적으로 살이 내린 탓에 살가죽이 겉도는 느낌이었다. 검고 노린내 나던 동욱의 손은 이제 운전석에서 지폐 몇 장과 주차증을 흔들어대는 손과 흡사한 꼴을 하고 있었다. 낯설다, 고 동욱은 생각했다. 그것이 어째서 슬픈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가슴 한켠을 관통하는 스산한 줄기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형.
동욱은 라이터가 켜지는 찰칵, 소리를 그렇게 들었다.
바람 때문인지 유난히 높은 습도 때문인지 찰칵 소리는 여러 번 계속됐다. 주차장 한가운데, 구덩이처럼 검고 깊은 곳에 동생이 서 있었다. 관리실에 앉아 있자면 거리를 오가는 동생을 몇 번이고 발견할 수 있었다. 대개 수레를 끌고 있는 늙은 여자와 함께였다. 동욱은 그 늙은 여자가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던 좀비 중 하나임을, 비생산적이고 파렴치한 잉여임을 금세 알아봤다. 동욱이 부서뜨린 수레는 거짓말처럼 멀쩡해져 있었다. 동욱의 동생은 그 수레를 대신 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하며 동욱 주변을 서성였다. 버스정류장 긴 의자에 늙은 여자와 나란히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도로에 세워둔 수레 때문에 각종 색깔의 버스들이 사납게 클랙슨을 울려댔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동생은 관리실에 앉아 있는 동욱을 오래 쳐다보았다.
동욱의 동생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은 두 개 다 동욱의 것이었다. 이십오 밀리리터짜리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라이터 기름. 양손으로 잡아당겨야 뚜껑이 겨우 열리는 싸구려 지포라이터. 인천에 정착하던 해, 모든 노선의 버스를 타고 종착역을 확인하던 동욱이 어느 고속버스터미널 휴게소에서 산 것들이었다. 형. 동욱의 동생이 찰칵찰칵 동욱을 불렀다.
동생을 향해 걸어가면서 동욱은 동생 발밑에 놓인 크고 작은 사각형들을 보았다. 사각형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매일같이 들어앉아 있는 관리실은 좁고 긴 사각형이었다. 주차장은 물론 맞은편에 보이는 빌딩과 편의점, 대부분의 상점과 간판들 역시 사각형. 오 분마다 들이닥치는 버스도 죄다 사각형이었다. 동욱은 멍하니 앉아 농장 아래 낮은 언덕이 그려내던 완만한 곡선을, 오리 주둥이와 엉덩이가 지닌 보드라운 곡선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또 사각형이라니. 동욱의 찌푸린 시선이 겹겹이 쌓인 사각형들에 닿았다. 여남은 개의 사각형은 모두 캔버스였다. 동욱의 동생이 찰칵, 할 때마다 거기 그려진 미루나무며 끈 풀린 운동화 같은 것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형, 이제 집에 가자.
바람이 묻은 목소리가 축축했다. 발치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 때문에 동욱은 묵묵히 서 있었다. 지포라이터는 아무래도 뚜껑뿐 아니라 부싯돌도 불량인 모양이었다. 서툴게 튀는 불꽃이 너무 미약하고 초라했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참을 찰칵대던 동생이 동욱을 돌아보았다. 사방이 검고 고요했다. 간혹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파랗고 빨간 버스가 쏟아낸 빛이 주차장 중앙에 나란히 선 동욱과 동욱의 동생을 쓸어 그림자를 만들었다. 동욱은 느른하게 기울어지다 사라지는 그림자 끝을 꽉 밟았다. 집에, 가자. 기름 범벅이 된 동생의 손이 어느새 동욱의 손 안에 들어 있었다.





안보윤 (소설가)kim-hae-jun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009년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장편소설 『사소한 문제들』(2011), 『우선멈춤』(2012)을 펴냈다.




《글틴 웹진 4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