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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인터뷰_고은 시인과 함께]내 모국어의 명예는 시다

  • 작성일 2014-05-21
  • 조회수 1,803


고은 시인 문학청년에게 답하다




내 모국어의 명예는 시다

- 잉여의 삶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만인보>




인터뷰 및 정리 / 김경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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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 2010년, 아시아나 기내지에서 발행하는 잡지 인터뷰 건으로 4년 전에 댁에서 뵙고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최근에 <만인보>도 내셨고 해서 일단 <만인보>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하는데요.


고은 : <만인보>는 최근에 쓴 게 아니죠. 그전에 알려진 것들을 모은 거죠.


김경주 : 그렇긴 하지만(웃음), 대상을 청소년들이라 생각하시고 아직 <만인보>를 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한테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어떻게 사람 이름을 갖고 시를 쓰는지?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시로 썼다는 사실에 놀라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만인보>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주신다면요.


고은 : 우리 문학에서는 시인들이 자주 새를 노래해 왔습니다. 또 그 새를 어떤 시인은 한 번 이상, 어느 시인은 백 번 이상 노래한 경우도 있었겠죠. 집에서 같이 사는 짐승뿐 아니라 집 밖의 모든 자연환경 속에 있는 자기 삶을 유지하는 짐승들도 많은데, 그 짐승에 대한 것도 노래한 경우가 적지 않죠. 하지만 짐승의 삶 전체를, 새의 삶 전체를 드러내본 적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또 시인들은 어떤 정서를 발로시키는 서정시의 세계에서조차도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을 개별적으로 노래한 적은 많았지만 자기가 만난 수많은 매혹을 다 노래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문학의 광의성에 대해서 어떤 결핍을 발견했고, 그 결핍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한 번 메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을 세워봤습니다.


김경주 : 우리 문학 그중에서도 우리 시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가 많이 부족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고은 : 네. 하지만 그 뜻을 세워본 것이 아주 행복했던 때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주 지독하게 불행했던 때였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 시들의 세계는 불행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건 1980년대에 들어와서 군부와 독재라는 길고 긴 암흑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올 줄 알았던 것이 얼마나 착각이었나를 느끼게 할 만큼 지독한 새로운 암울이 시작됐었습니다. 다시 말해 전두환의 신군부시절이었죠. 그때 나는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들과 함께 내란음모라고 하는 죄, 또 계엄령 위반이라고 하는 죄, 또 계엄령 위반을 교사했다고 하는 죄목들에 씌워져서 육군교도소라는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감옥이 보통 교도소들과는 달리 미로 같았는데 거기는 창도 없는 밀실이었고, 불이 나가면 마치 사진 현상하는 암실이나 다름없었죠. 그러한 암흑 속에 있으니까 내 현재는 완전히 박살나고, 내게 남은 건 기억 속에 있는 과거만이 있었죠. 과거가 현재를 감당해주는 꼴이었던 겁니다. 현재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때 현재를 살아가면서 잊고 있던 과거 속 기억들이 내게로 되돌아왔습니다. 고향, 외할머니, 건넛마을 아저씨, 아주머니, 머슴 등 이런 사람들이 내게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또 내가 떠돌아다니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도 떠올랐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 직전의 한 오 분 안에 자신의 과거가 반추되었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재판 받을 동안의 상당한 시간이 주어졌기에 과거를 담을 시간이 충분했죠. 그 당시 우리는 이제 재판 받고 적어도 다섯 사람은 처형되어야 하는 예감을 갖고 있었으니까. 다만 나중에 해외, 특히 미국과 서독에서 구명운동을 많이 해서 살아나긴 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죽을 준비까지 했으니까. 죽을 때 마지막 한 마디를 뭐라고 해야 할까, 시를 몇 마디 써서 읊고 죽느냐, 등등의 몇 가지 이벤트까지도 생각해놓고 있었죠. 그럴 때 과거가 찾아왔고, 그 과거에 꿈이 더해졌죠. 만약 내가 살 수 있다면 나의 기억 속 과거를 현재화시켜야겠다, 물론 이것은 내 몽상에 지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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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는 고유명사의 운명을 돌보는 작업


김경주 : <만인보>의 출발이 그런 암흑기의 감방에서 출발했군요.


고은 : 네. 하지만 그게 당시를 견뎌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방은 관과 같았습니다(직접 방의 구조를 몸짓으로 묘사해주면서) 보통 감옥하고 달랐죠. 전기가 나가면 입관된 시체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그럴 때 오는 절절한 과거의 기억. 살아나갈 수 있다면 과거의 기억들을 시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소망이 <만인보>가 된 거죠. 날 격리시키기 위해 내 방에 인접해 있는 13개의 방을 비워놓기도 했었죠.


김경주 : 감옥이라는 환경이 가지는 구조상 글을 쓰거나 기록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선생님은 시를 선택하셨는데 어떻게 과거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환기해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고은 : 그때 내게 어휘가 모자라다는 걸 느끼고 영단어를 외울까, 산스크리트어를 배울까 하다가 국어사진을 사입시켜 달라고 했었죠. 헌데 그것 또한 거절당해서 제가 14일 동안 금식을 하기도 했죠. 그제야 사전을 보는 동안 간수가 곁을 지키는 조건으로 사전을 들이게 됐죠. 그때 모국어 공부를 확실하게 하게 됐고 그 시절이 <만인보>의 기본이 되기도 했죠. 물론 출소 후에 많이 잊어먹기도 해서 다시 사전을 두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 공부를 통해 <만인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김경주 : 감옥에서부터 기록을 하셨던 건가요?


고은 :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출소 후 1985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그때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아내의 지원 덕에 <만인보>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의 고독과 내 아내의 사랑, 두 개가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게 <만인보>의 사적인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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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공부는 인문학의 본질. 문학의 존엄을 찾는 길.


김경주 : 감옥의 삶에서 모국어를 다시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그 시작이 <만인보>가 되었군요. 시를 쓰시면서 모국어에 대한 선생님만의 깨달음이나 새로운 의미 같은 것이 많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요즘 문학청년들이나 학생들은 영상 시대의 흐름 탓인지 모국어에 대해 조금 많은 생각을 가지고 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학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모국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고은 : 영국의 천재 웨일즈는 ‘모든 인간은 하나의 기호다.’라고 얘기했어요. 그것이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뱀이나 벌을 보면 이름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뱀이나 벌이 고은이나 김경주와 같은 이름을 지니지 않잖아요. 헌데 인간도 그렇다는 얘깁니다. 거대한 성층권에서 우릴 바라보면 우리가 개미만도 못하잖아요. 우리가 인문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저 먼 별에서 본다면.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고유명사와 그의 운명을 전혀 다른 그 사람만의 것을 부여하고 싶은 거죠. 그런 점에서 내가 웨일즈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조금 다른 쪽에 서 있는 것이죠.


김경주 : 고유명사의 운명을 선생님 스스로 돌보고 그것들에게 부여해보고 싶었다는 말씀이 문학을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의미가 깊을 것 같은데요.


고은 : 만일 내가 훌륭한 교사이고 교실에 30-80명의 학생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 모두를 학생으로만 생각지 않고, 그 30-80명이 되는 독특한 삶의 존엄성들이 독립되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판단하는 교사만이 위대한 교사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만인보>를 쓸 때의 나의 하염없는 고독이나 혼란 역시 나 스스로를 고유명사로 보고 드높이고 싶은 것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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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외래어에 길들어져 있고, 영어교육을 많이 받게 되다 보니까, 실상 문자 메시지나 메일을 쓰지만 모국어에 취약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국어에 대한 존엄성, 혹은 선생님께서 평생 동안 이루어 오신 모국어로만 이루어진 시의 속살들,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데, 선생님께서 언제 청소년들에게 모국어에 대한 말씀을 좀 더 해주실 수 있다면 좋은 지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은 : 네. 그런 기회가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제 절대로서의 모국어는 끝났다고 봅니다. 가령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억도 할 수 없지만 솔제니친이 갖는 러시아는 ‘절대’였어요. 그래서 그는 추방당하는 것을 감옥에 가는 것보다 더 치욕으로 생각했었죠. 오늘날 세계의 어떤 작가도 솔제니친처럼 자신의 모국어의 환경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현재 모국어는 고독, 외로운 섬에 갇혀 있는 셈이죠. 그리고 그 섬의 주변은 전부 타국의 언어들로 둘러싸여 있죠.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언어는 바로 ‘시장언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식인의 고급 언어로써도 가령 19-20세기 초까지 유럽 사회에서 프랑스어가 주 언어였는데, 지금은 영어로 변화했죠.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영어는 천박한 언어였습니다. 심지어 영국 본토에서조차 상류사회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했습니다. 영어는 천한 사람들만이 쓰는 언어였죠. 한국의 현대사회에서도 식민지시대의 고급 지식인들은 전부 일본어를 썼죠. 조선어는 하층민만이 썼죠. 그렇게 보면 늘 언어를 지켜온 역사는 하층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죠. 또 한글을 얘기하자면 세계의 언어학자들에 의해서 지구상 최고의 언어라는 공식적인 선언까지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명예로운 문자를 갖고 있는 것이죠.


김경주 : 세계어 안에서 많은 모국어들이 고립되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모국어로 시를 쓰시고 우리 언어인 한글이 갖는 고유함에 대해 귀한 가치를 강조해 오셨습니다. 우리 언어를 넘어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고은 : 세종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문자 언어를 남겨주었죠. 개인적으로 나는 우주 천계의 신을 믿는 게 아니라 내 모국어에 문자를 부여한 세종이 나의 신입니다. 나는 다른 장군이랄지 여호와랄지 등의 드높은 창세의 신을 갖지 않고, 몇 백 년 전의 나와 똑같이 밥을 먹고, 고민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도 했던 왕, 그러나 우리에게 문자를 남겨준 세종을 신으로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는 언어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와서, 사전의 고전적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사전을 굳이 열 필요 없이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게 이루어지죠. 그 덕에 우리 머릿속에 내장되어 있는 ‘사전’ 역시 잃어버렸습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클릭 한 번으로 어휘를 찾아버립니다. 우리는 우리 두뇌의 역할을 기계에게 빼앗겨버린 것이죠. 우리 머리에는 기호, 문자, 추억의 기억, 다시 말해 과거를 담아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치매의 삶을 시작해버린 것입니다. 치매가 증상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린 것이죠.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셀 줄 압니다. 부시맨 역시 열까지는 셉니다. 열 하나가 넘어가면서부터 복잡해집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기억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살아왔는데 지금 우리는 열까지밖에 못 세는 지옥에서 사는 것이죠. 열까지 세는 낙원이 아닌 열까지밖에 못 헤아리는 지옥에 갇혀 있는 것이죠. 이것은 치매입니다. 치매는 모국어의 어휘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죠.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극을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김경주 : 디지털감수성으로 인해 활자화되는 일상이 도리어 모국어의 본령을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고은 : 우리는 세계화라고 하는 위대한 제국 문화에 의해서 완전히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카페, 우리가 실은 여기 있어도 그만, 다른 곳에 있어도 그만이거든요. 이전에는 다른, 천천히 거닐 수 있는 마당이라든지 이것은, 마치 봉건시대 한자로 써야 근사하고 조선말을 쓰면 불명예스럽고 밑바닥 하층민이 쓰는 용어라 생각하는 것, 우리는 지금 이것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역사를 통해서 도시적인 비애를 느낍니다. 또 하나, 모국어는 앞으로 500년 정도 같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지구상의 6500-6800개의 언어가 남아 있습니다. 지구상의 언어는 많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언어가 사장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끝까지 믿지 않습니다. 언어는 그저 일정 기간 같이 함께하는 것인데, 앞으로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절반 혹은 80퍼센트 이상 지구상의 언어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언어는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영어뿐일 겁니다. 아주 최악의 경우에 말이죠. 가장 가까운 일본어, 몽골어, 중국어까지 수많은 지방언어들이 사라질 것이고, 베트남어, 필리핀의 원주민어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엘레지(?)로서 모국어를 쓰는 것입니다. 내 이후의 어떤 세대에게는 ‘사어’가 될 모국어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비장한 각오를 갖고 모국어를 붙들고 있는 것이죠. 나의 정조는 모국어입니다.


김경주 : 그건 세계의 시선에서 시인으로서 선생님이 노력하시고 추구해 오신 가치 같기도 합니다. 남달리 모국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고 세계 언어라는 보편성 속에서 모국어의 위치가 갖는 위상을 드높이신 시인으로 선생님은 꾸준히 활동해 오셨죠.


고은 : 네. 하지만. 나는 모국어에 갇혀 있기는 싫습니다. 모국어는 그동안 수많은 다른 언어와 섞여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이를테면 ‘엄마’, ‘어머니’와 같은 근본 어휘의 발음은 지구상의 모든 아이가 태어나서 쓰는 발음이기도 합니다. ‘마더’와 ‘엄마’의 발음이 같은 것은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지구의 시원적인 보편성이 존재하는 것일 테죠. 또 ‘하늘’, ‘땅’과 같은 언어 역시 구성 환경을 일컫는 근본언어 중 하나인데, ‘땅’이라는 어휘가 본래 ‘따’인데요. 이는 본래 우리의 어휘가 아니고 사천 년 전의 고왕조 이집트의 어휘입니다. 그 어휘가 어떻게 흘러 흘러 우리에게로 온 것이죠. 또한 그 옛날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정서와 가장 닮아 있는 ‘옥자마’꽃 역시 본래 이 땅이 아닌 아르헨티나가 원산지입니다. 이렇듯 우리 언어 역시 수많은 다른 문화 지역의 유전인자가 흘러 들어와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만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근 조상들부터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에 모국어라 불리어질 뿐입니다. 내가 모국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배운 언어라는 뉘앙스, 어머니의 ‘모’자를 따서 ‘모국어’라고 부른다는 점, 교육을 통해 학습하는 언어가 아닌 어머니의 유방과도 같은, 끊을 수 없는 혈육의 언어라는 점, 가시적인 언어로서의 모국어를 나는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 딸이나 손자에게 나의 모국어를 쓰라고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들이 타국에 나가게 된다면 다른 언어를, 새로운 언어를 창시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경주 :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시 공부나 문학 공부는 결국 인문학적 사유나 인간에 대한 질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가 닿는데요. 근래 들어 인문학의 위기론이나 제도권 교육 안에서 문학 수업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여러 말이 오고갑니다.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하구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고은 :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나는 동감하지 않아요. 거대한 문명의 실용성 속에서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인문학은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학문입니다. 유사 이래 인문학은 인간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을 반성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인문학의 본질에 시가 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구요. 하지만 인문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대중에게 내려와야 합니다. 인간 안에 무수한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

음....... 제도권 교육의 문학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은데....... 순기능이나 긍정적 기능도 많아요. 하지만 강단 문학이라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강단 문학이 독점하고 있는 방법론은 시를 뜻풀이하는 것입니다. 그건 시체를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문학은 살아 있는 생명인데 그걸 뜻풀이로 해석하려고 할수록 멀어지는 것이죠.


김경주 : 시의 위기론이나 소통에 대한 질문들과도 닿아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문이지만 시를 아직 쓰지 않거나 언젠가 시를 쓸 문학청년들에게 만일 시가 찾아오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은 문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대선배로서 덕담 한 마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은 : 시는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다만 시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아무리 시대가 급변하더라도 시는 더디게 인류의 맥을 끊지 않을 것입니다. ‘내 모국어의 명예는 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세요.


김경주 : 긴 시간 내주셔셔 감사합니다.


고은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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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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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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