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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기자 안동방문기] 이육사 탄생 110주년, 이육사문학관 개관 10주년 기념 이위발 사무국장 인터뷰

  • 작성일 2014-12-01
  • 조회수 910


[글틴기자 안동방문기]



이육사 탄생 110주년 기념,
이육사문학관 이위발 사무국장 인터뷰




글틴기자단 / 김유진, 김선정




‘안동’ 하면 생각나는 게 무얼까? 하회마을, 도산 서원, 안동찜닭 등등. 현대시를 즐겨 읽은 글틴 중에는, 이육사문학관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늘 교과서로만 만났던 시인, 이육사. 그가 태어난 곳이 안동이다. 올해 탄생 110주년을 맞았다. 더불어 시인을 알리는 이육사문학관도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안동이 국내에서 제일 면적이 넓은 도시라 안동역에서 이육사문학관까지는 다소 멀긴 하지만, 안동역에 내렸을 때 꼭 먼저 경유할 곳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버스가 잘 닿지 않으므로 배차 시간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그곳에 닿으면 조금 낯설지만, 한결 인간적인 작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던 시인 이육사, 그를 더 깊이 만나는 문학관이다.
지난 10월 글틴문학특!기자단 정기모임에서는 이육사 탄생 110주년과 이육사문학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이육사문학관의 사무국장인 이위발 시인을 만나, 이육사문학관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육사-1


글틴기자단(김유진, 김선정) : 올해가 이육사 문학관 개관 10주년인데요. 이위발 사무국장님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일하셨는지요.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 처음부터는 아니에요. 2004년 10월 1일에 안동에 내려왔어요. 이육사문학관은 2004년 7월 30일 개관했는데, 문학관 개관 뒤에는 4년 동안 안동시 공무원이 파견 나와서 문학관을 운영했어요. 그때는 해설사나 학예연구사도 없었어요. 문학관 왔던 사람들이 질문해도 답변을 못 듣고 가니, 안동 시에 민원도 들어오고 시 게시판에 항의 글도 올라왔어요. 시 입장에선 건물은 잘 지어놓고 운영이 잘 안 되니깐, (사)이육사추모사업회를 설립해서 전문가들에게 민간 위탁을 하게 돼요.
개관 이전에도 ‘이육사연구회’(1988년 발족)가 활동했어요. 이육사를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이육사 정신을 알렸죠. 문학 강연, 시 낭송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해오다가 1994년에 ‘이육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고 안동 문화인들이 뭉쳐서 10년 정도 활동했어요. 2004년 이육사문학관을 개관하고 난 뒤, 민간 위탁을 하려다 보니 명칭을 정해야 하는데, 기념사업회가 이미 활동을 하다 중단된 상태여서 똑같은 이름을 쓸 수 없으니 기념사업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분들이 이육사추모사업회로 넘어와 새롭게 발족이 된 거예요. 2008년 12월 1일에 이육사문학관이 민간 위탁으로 안동 시와 협약을 맺고, 문학관을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회가 운영을 하게 된 거죠. 운영에 필요한 공공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안동 시에서 지원해줘요.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글틴기자단 : 이위발 사무국장님은 문학관과는 어떤 인연으로 일을 하게 되셨나요?


이위발 : 2004년 7월에 이육사문학관 개관식 때 와서 보고는 서울로 갔어요. 안동에 있는 안상학 시인 만나서 안동에 내려오겠다는 이야길 하고, 몇 달 뒤 10월 1일 정식으로 안동으로 내려오죠. 그 전에는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면, 제가 대학원 논술 자격증이 있어서 논술 학원에 있었는데, 매일 근무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육사 문학관을 해설해주는 일도 했어요. 권정생 생가는 안상학 시인이 해설해주고, 이육사 파트는 제가 맡았죠. 마이크 잡고 버스 안에서 해설하고, ‘광야’의 시상지(地)인 윷판대나 ‘절정’의 시상지(地)인 칼선대(갈선대)에 직접 데리고 가서 설명해주고 그랬어요. 그때도 ‘이 일(이육사문학관 일)을 내가 하면 잘할 거 같은데’ 싶었죠. (웃음)
아까 얘기했듯이 저도 우연찮게 이육사기념사업회에서 활동했던 분한테 갑자기 의뢰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해보겠느냐’도 아니었고, 관계자들과 만나서 같이 어디를 갔어요. 거기가 ‘김유정문학촌’이에요. 육사 선생님의 따님인 이옥비 여사도 함께 가셨고, 총 5명이서 김유정문학촌을 벤치마킹하러 간 거죠. 전상국 촌장님 뵙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안동에 내려와 곧바로 일을 맡았어요. 총회 시작해서 이사들 선출하고 (사)이육사추모사업회 조직이 내부적으로 갖춰지면서 2008년 12월 1일부터 민간 위탁을 받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그 전에는 공무원 평직원 한 명이 일을 맡고 있었고, 청원 경찰이 있었어요. 1년에 예산 2억 5천을 썼는데 민간 위탁 후로는 운영비를 1억 5천 썼어요. 시에서 비용 절감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죠.


글틴기자단 : 김유정문학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평소에도 다른 문학관과 교류가 있나요?


이위발 : 예전에는 교류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2004년 문학관협회가 조직된 이후로 지금은 문학관 교류가 활발하죠. 그리고 저희처럼 민간 위탁한 문학관이 몇 군데 안 돼요. 민간위탁으로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문학관으로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조직 체계부터 인건비까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자문을 많이 받아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 문학관협회에 76개 관 정도 등록이 돼 있어요. 등록이 안 된 것까지 합치면, 100개 관 정도 될 거예요. 지금 기획하고 있는 데도 많고요.
제 경우에는, 경북대학교에서 프랑스의 문학관 관련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프랑스의 문학관들의 사례를 얘기하고 이육사문학관 사례와 대비해서 토론자로 나가기도 했어요.


글틴기자단 : 프랑스와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세요.


이위발 : 예를 들면 프랑스의 문학관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와요. 우리는 건물만 지어놓고 관람료를 받아요. 관람료 안 받는 데에도 전시 위주로 보여주죠. 프랑스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길가에서 ‘여기는 어느 작가가 꽃을 심었던 장소다’라고 얘기해요. 그런 것도 스토리가 다 되는 거예요. 큰 건물이 없더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고스란히 보존한 상태예요. 큰 건물 안에 전시 해놓고 해설을 하는 게 아니라 다니면서 스토리를 전해 주려고 하죠. 우리도 스토리를 만들어야 해요.
요즘 다들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하는데 문학 쪽도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입힐 수 있어요. 나쁜 건 아니에요. 스토리 입히는 게 황당무계한 게 아니니까요. 그런 쪽으로 얼마든지 작품을 가지고 만들 수 있거든요. 작품 한 편을 가지고서도 ‘이 작가가 살아 있을 땐 이랬습니다’ 하면서 거기에 이야기도 입힐 수 있어요. 이야깃거리들이 많아야 돼요.
우리는 학교에서 문학을 배울 때 흔히 ‘시험공부 때문에’, ‘학교 교과서에 나오니까’ 문학을 공부하죠. 학교에서는 정형화된 수업을 해요. 시도 주입식으로 가르치다 보니깐, 육사의 인간적인 모습은 전달이 안 돼요. 문학관에 오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이육사문학관에 오는 관람객들에게는 이육사 시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문학 관람객으로 오는 학생들에게 해설할 때 제일 역점을 두는 것도 그런 거예요. 인물을 배우면 아이들이 인간적인 모습도 더 접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정답을 두고 시를 가르치잖아요. 예를 들어 ‘청포도’ 시 전문을 실어놓고 ‘내 고장’이 의미하는 것은 뭐야?’ 그러면 ‘조국’이 정답이고, ‘청포도’는 ‘백성’이에요. 그게 정답이다 보니 ‘먼 데’는 ‘조국 광복’이 정답이에요. 그 외의 다른 대답은 틀린 거예요.
그런데 이육사의 고향 원촌(遠村)에 관한 마을지가 1962년에 발견됐는데, 그 조그마한 책자 마을지에 지명 유래와 풍습도 나와 있어요. 거기 보면 원촌 마을이 조선 초창기에 ‘마계촌(馬繫村)’, ‘원원대(原原臺)’였어요. 마계촌 살던 사람들은 ‘말 마(馬)’, ‘맬 계(繫)’를 써서 ‘말 맨 데’ 산다고 했고, ‘멀 원(遠)’, ‘멀 원(遠)’, ‘곳곳 대(臺)’를 써서 ‘원원대’라고도 했죠. 마을이 머니깐, 멀다는 말이 두 개 붙은 것이죠. 정말 멀었어요.
지금 국학진흥원이 있는 곳이 ‘서부리’라는 마을인데, 예전에 거기까지만 버스가 왔어요. 원촌 마을이 진성이씨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종갓집에서 안동 장날에 장보러 갔다가 제사 음식 사갖고 오면 서부리에 내려요. 짐을 갖고 가지 못하니깐 놔두고 원촌까지 들어와서 구루마 끌고 다시 서부리로 와서 장본 것을 싣고 가죠. 그럼 한나절 걸렸어요. 그만큼 멀었어요. 그래서 ‘멀 원 자’를 썼어요. ‘원원대’가 바뀐 게 ‘원촌동’이에요.
원촌동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먼 데’ 라고 불렀대요. ‘청포도’는 이육사가 고향을 노래한 대표적인 서정시인데, ‘먼 데’를 이중적인 뜻으로 썼더라도 조국광복만 정답은 아닌 거죠. ‘청포도’로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시는 다양하게 해석되는 게 맞아요.
또 한 예를 들면 중견 시인 최승호 시인의 ‘북어’, ‘대설주의보’ 같은 시가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되어 나온다니까 최승호 시인이 문제집을 구해서 풀어봤대요. 직접 풀었는데, 한 문제도 못 맞혔대요. 거기에 문제 중 하나가 ‘최승호 시인은 어느 파(사조)에 속합니까?’라고 했대요. 모든 시인은 사조에 입각해 시를 쓰지 않아요. 다 쓰면 평론가가 해석할 뿐이죠.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게 잘못된 것이죠. 시인이 무슨 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건, 시를 읽고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거예요. 다른 교육은 암기하는 것이지만, 예술은 사고를 확장하는 거니까요.
‘광야’를 예로 들면,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에서 산맥이 한자어인데, ‘뫼 산(山)’, ‘줄기 맥(脈)’ 자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뫼 산(山)’, ‘마주볼 맥(?)’이 맞아요. 둘이 같은 글자이지만, 문학관에는 원전 그대로 ‘마주볼 맥(?)’으로 ‘광야’ 시를 동판으로 새겨놓았어요. ‘마주볼 맥’이어야 ‘연모(戀慕)’가 나올 때 맞는 거예요. 이육사는 한자 시나 한자 활용에 밝았고, 7살 때 사서오경을 다 떼었어요. 중국어에 능통해서 중국어판 성경을 보고 그랬다니까요. 잘못된 것도 바꾸려고 하는데 힘들죠. 국어 선생님들도 이런 현실을 알지만 잘 안 고쳐져요. 교육부에서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정치와 연결돼 있어서 잘 안 고쳐지죠. 오류를 맞는 걸로 생각하고 배우는 사람과 그것을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도 이런 오류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방문객 올 때는 꼭 확인시켜주죠.


글틴기자단 :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이육사 시인이 감옥에 있었을 때 수인번호를 따서 이름을 썼다고 해서 믿었는데요. 사전 취재를 해보니깐 원래 ‘죽일 육(戮)’ 자를 쓰다가 다른 글자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죄수번호 264’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이위발 : 이육사 선생님이 처음에 감옥에 가신 게 ‘장진홍 의거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요. 당시 일본은행인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져 터트린 사건이에요. 거기에 연루가 됐어요. 이육사 선생님하고 형 이원기, 동생 이원일, 이원조까지 대구 교도소에 갔어요. 이원조 선생님은 혐의 없다 풀려나고 육사 선생님은 264번 달고 2년 6~7개월 있었어요. 그때 수인 번호가 264번이었어요.
출소해서 글을 쓸 때, 맨 처음 대구라고 한문을 쓰고 그 뒤에 二六四 썼어요(大邱二六四). 사회 평문은 ‘이활(李活)’로 쓰고, 시를 발표할 때는 ‘陸史’ 아니면 ‘李陸史’로 했어요. 처음에 ‘죽일 육(戮)’ 자를 썼는데, 그건 너무 강하다고 들어서 ‘육(陸)’ 자로 바꾼 것이죠.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 죽이는 것과 되돌리는 게 의미는 다르지만 광복의 의미는 있으니까요. 시대가 일제강점기이니, 시 밑바탕에도 독립정신이 깔려 있어요. 육사 선생님은 호를 지을 때 죽일 육, 되돌릴 육, 수인번호 모두 한문으로 만든 거죠.
그런데 수인번호가 64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예요. 오류가 오류를 생산하다 보니까 잘못된 텍스트가 돌고 있어요.


글틴기자단 : 문학관에 이육사 선생님의 따님이 사신다고 들었는데요. 지금도 문학관과 관계돼 있나요?


이위발 : 육사 선생님이 17세까지 고향에 사셨어요. 17세 가을에 가족들이 대구(남산동 662번지)로 이사를 갔는데, 18세에 영천의 안일양 여사하고 혼인을 해서 첫째 아들을 낳았어요. ‘이동윤(李東胤)’으로 호적에 올라 있는데, 2세 때 홍역으로 사망했어요. 그 뒤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가서 두 번째 딸을 낳았는데 100일 만에 또 홍역으로 잃어서 이름은 호적에 안 올렸죠. 현재 유일한 혈육이신 이옥비(李沃非) 여사가 세 번째 따님이에요. 고명딸이라고 표기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 쓰거나 말하는 겁니다. 이옥비 여사는 1남 2녀의 막내딸이죠. 지금은 문학관에 상임이사로 계십니다. 문학관 프로그램 중에 ‘나의 아버지 육사’가 있어요. 따님이 10~15분 강의를 해줘요. 삼촌이나 어머니에게 들었던 얘기 중에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죠.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완전히 달라요. 육사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 있는 얘기를 주로 해주십니다.
문학관에 따님이 계시니, 오시는 분들도 사진이라도 한 장 더 찍고 사인 받고 싶어해요. 문학관에선 상징적인 존재예요. 따님이 이곳에 없다면 이렇게까지 운영되지 못했을 거예요. 중요한 역할을 하시고 계시죠.


글틴기자단 :또 이육사 문학관이 다른 문학관과의 차이점이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위발 : 행사 부분이에요. 문학관 행사를 초창기에는 3박 4일 한 번에 몰아서 했어요. 해보니 뭐가 문제였느냐 하면, 보조금 받아서 하는 건데 개막식 때 가수 부르고 무대장치 하다 보면 거기에 돈을 다 쓰는 거예요. 굉장히 돈이 많이 나가고 실제적 행사는 안 되겠다 싶어서, 봄?여름?가을?겨울 나눠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게 완전히 정착됐어요. 육사 선생님이 태어난 4월 4일 즈음 봄에는 학술대회와 낭독회를 같이 하고, 여름에는 이육사문학학교, 청포도사생대회, 육사문학상시상식 등 다양하게 해요. 가을에는 육사백일장, 시낭송대회, 시노래공연 등을 해요. 겨울에는 안동 지역 문인들을 초청해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져요. 이육사문학관이 지역 문화 공간의 사랑방이기 때문이에요.
예산을 더 받는 게 아니라 나눠서 실질적인 행사를 하는 것이죠. 이젠 고정 팬들이 생기고, 대구에서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외지에서도 많이 보러 옵니다. 그런 부분은 다른 문학관과 차별화가 돼 있어요.


글틴기자단 : 행사에 문학관계자가 아닌, 다른 방문객들도 많이 오나요?


이위발 : 비문학인들도 많이 옵니다. 문학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면 시노래 공연은 문학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올 수 있어요. 또 ‘청포도사생대회’는 초등학교나 유치원 대상 대회라서, 문학과 관련된 사람만은 아닌 거죠.
이육사문학관에 근무하면서 제일 감사한 게, 육사 선생님은 독립운동과 문학을 같이 하셨다는 거죠. 이육사 문학관이 현충시설로 돼 있어서 국가보훈처의 보조금을 받아요.
그래서 광복절 행사도 하는데, 그때는 지역의 12개 초, 중등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나라사랑글짓기대회를 해요. 지역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문화 행사가 없어서 글짓기 대회를 시작한 거예요. 문학관이 지역민들을 배척하지 않고 안고 가야 하는데, 특히 학생들이 배우고 느끼는 게 중요하거든요. 문학관을 토대로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글짓기 외에도 계획 잡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올해 3회째 재능나눔 시낭송 대회도 하고 있어요. 안동의 특수학교인 진명학교 지체장애자 아이들이 참여해서 시낭송 대회를 해요. 지역의 시낭송 단체인 ‘문낭회’ 회원들이 참여해서 지체장애 학생들에게 시를 일대일로 가르쳐서 낭송을 하게 해요. 재능나눔 대회는 올해도 11월 19날 진명학교에서 열려요. 선정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낭송하고, 헤어질 땐 울고 그래요. 애들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니깐, 나중엔 안 떨어지고 싶은 거죠.
문학관에 앉아서 관람 손님만 받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직접 찾아가서 해요. ‘찾아가는 문학관’ 일환으로 문학관 파견 작가들이 지체장애인들 찾아가서 책 읽어주고 같이 낭독도 했어요. 앞으로는 지역 노인정을 돌면서 잠깐 동안 책도 읽어주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순회 행사들을 할 계획입니다.


글틴기자단 : 지난가을에 ‘연변이육사문학제’도 하셨던데요.


이위발 : 이번이 4회째예요. 지난달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갔다 왔죠. 지금은 연변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이틀은 연변에서 하고 그 다음 날은 상 받은 사람들하고 문학 및 문화 유적 탐방하는 일정이 있어요. 하루는 이육사 시인이 독립운동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요.
육사 선생님은 북경 일본 총영사관 감옥소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돌아가신 감옥소가 그대로 있어요. 군인 가족들이 살고 있었어요. 북경 시내 중심에 있는데, 언제 허물어질지 몰라요. 남의 땅이라 표지석도 못 세워요. 중국 정부의 허락을 못 얻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거기는 당 지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 시스템하고 달라요. 연변작가협회의 회장, 부주석, 사무국장이 모두 공무원이에요. 우리 협회는 민간단체인데, 거긴 당 소속의 조직이에요. 북경에 갔을 때 우리가 ‘우야면 좋노?’ 그랬어요. 나라와 나라의 협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해야 하는데 쉽지 않죠. 감옥소 건물 밑에 조그만 창살 구멍이 있는데, 안으로 들여다보니 옛날 모습 그대로 있어요. 녹이 슬은 수갑이 보여요. 지하에는 사람이 안 살고, 위에서만 살고 있어요. 거기 탐방 가서, 육사 선생 따님은 많이 울었죠. 작년에 처음 가 본 거예요.
올해는 남경에 갔어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있던 곳이에요. 남경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인데요. 산 밑의 동네가 산하촌(山下村)인데요, 정상에서 보면 남경 시내가 다 보여요. 총을 겨누고 시내를 보고 감시하던 벙커가 아직 그대로 있어요. 안에 들어가면 시내 방향으로 총구를 놓고 주시하던 창틀도 그대로 있어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3기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육사 선생님이 1기 졸업생이에요. 거기선 변장술, 폭파술, 사격술 외에 인문철학도 가르쳐줬어요. 거기 졸업할 때 육사 선생님이 연극을 무대에 올렸어요. 그 학교 교장이 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이에요.
이육사가 의열단원이 맞다, 아니다 분분한데, 육사 선생님이 일본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의열단원이 아니다 했어요.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갔을 때 조사한 부분만 남은 거예요. 육사 선생님이 의열단이라고 한 게 김원봉 단장이에요. 의열단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겠어요? 이육사 처남인 안병철도 졸업생이었는데 국내 들어와서 안병철이 잡히면서 고문에 의해서 단원 이름을 다 불었어요. 그 일로 육사 선생 사모님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제가 생각할 땐 의열단원이 확실해요.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변 박물관에 가보면 육사 선생 소개에 정확하게 의열단원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어요. 남경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 학교 터에 가서 묵념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죠.
내년에는 상해에 가요. 상해는 육사 선생님에게 중요한 장소예요. 거기서 루쉰을 만났거든요.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루쉰이 죽고 난 뒤 추도문을 조선일보에 3회 걸쳐 연재했어요. 굉장히 마음속으로 흠모했던 분인데, 그때 루쉰을 만났던 장소가 아직 상해에 그대로 있어요. 쑨원의 비서 출신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부주석인 양싱포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거예요. 루쉰도 문상을 왔던 거죠.
내년에는 그곳과 임시정부를 돌아볼 계획이에요. 연변 이육사문학제는 주 핵심이 공모전이에요. 조선족 대학생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비조선족, 한족 대학생이 다니는 한국어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해요. 이번에 대상 받은 대학생은 정말 잘 썼어요. 그쪽 지역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커요. 아이들에게 상을 조금 주는 게 아니라 많이 줘요. 한 50명씩 줘요. 다들 좋아해요. 이번에도 연변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그 외 시낭송, 학술대회도 하고, 상 받은 학생들과 문학탐방도 하죠.


글틴기자단 : 마지막 질문이에요. 올해 이위발 사무국장님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도 출간됐는데요. 다음 책은 언제 나오나요?


이위발 : 지금도 시를 쓰고 있고, 발표도 하고 있어요. 두 번째 시집이 내년 초에 나올 거예요.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첫 시집만 상재되어 있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요. 다작 스타일이 아니라서 뜸을 많이 들이죠. 사실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웃음)



이번 인터뷰는 이위발 시인의 자택에서 진행했다. 대화 후 글틴 기자들은 사인이 들어간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을 받았고, 여담을 나누다 안동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까지도 시인이 직접 배웅해줬다.


글틴 기자단(김유진, 김선정)은 안동 취재 전, 세 개의 일정을 두고 고민했다. 권정생 문학관을 가느냐, 이육사 문학관을 가느냐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다. 게다가 안상학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안동 소풍에 나섰다는 소식을 건너듣고, 그 세 자리 중 어디라도 문의를 하고 가야겠다던 찰나, 이육사문학관에 먼저 연락이 닿았고 이위발 사무국장의 해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단 얘기를 들었다. 10월 첫째 주말 바로 안동으로 향했다. 하루 안에 이곳저곳을 다 도는 것은 무리인지라, 최종으로 이육사 문학관에 가서 이위발 시인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사전 스케줄을 짰다. 중간에 인터뷰 장소가 바뀌면서 이육사문학관 방문은 놓쳤으나 안동에 거주 중인 글틴기자가 있기에 후속 취재는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참고로, 문학특!기자단 1기로 안동에 거주 중인 김유진 기자가 짰던 하루 일정들과 (아직 취재하지 못했으나) 안동을 소재로 준비했던 글틴기자단 아이템들도 함께 덧붙인다.



[김유진 기자가 짠, 안동기행 하루 취재 일정 공개]


1. 고전 관련, 문학 취재 여행기를 쓰려면?
이육사문학관 → 한국 국학진흥원 일정.
이육사 문학관 취재 뒤 국학진흥원에서 국학이나 중세문학, 목판본 관련 아이템을 찾아 취재한다. 단 장소들이 안동 시내에서 꽤 멀다. 버스타고 2~30분, 아무래도 시골이라 버스가 몇 대 없어서 시간을 잘 잡아야 한다.


2. 문학과 관광을 한꺼번에 하려면?
권정생문학관 →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 벽화마을 경로.
안동찜닭도 먹고,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세 개 받았다고 알려진 ‘맘모스 제과’에도 가서 빵도 먹는다. 복합적인 기행 느낌으로 안동 시내 위주로 돌아다닌다.


3. 요즘 새로운 안동의 관광지는?
안동에서 엄청 공들여 만드는 온뜨레피움(http://www.ontrepieum.com/)을 방문한다. 온뜨레피움(허브공원, 동물농장, 각종 박물관과 민속촌)을 구경하고 월영교, 나들이길을 걷고, 시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을 구경한다. 요즘 안동에서 투자 많이 한다고 약간 말도 많은 곳이다.



[최종 예비 아이템]

1. 김주환 안동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글틴 편집위원, 초기 글틴 창립 공로자, 김주환 교수에게 듣는 글틴의 초창기 역사
2. 안상학 시인 : 안동의 시인,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신간 발간
3. 이육사 문학관 관람 사전 신청 : 문학관 소개
4. 그 외 안동 아이템 : 권정생문학관, 이야기하는 할머니 외 안동 특색(전반적 안동 여행 소식)



[10월 4일 실제 진행 일정]


안동찜닭 거리, 탈춤국제페스티벌 방문 → 이위발 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총장)과 안동간고등어 식사 → 이위발 시인 자택 마당과 서재에서 인터뷰


[예고] 다음 달에는 김유진, 김선정 글틴기자의 안동 방문 뒷이야기가 후속으로 연재된다. 이육사문학관 방문기를 비롯해, 안동의 문학적 아이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육사-2



《글틴 웹진 11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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