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기자 안동방문기] 이육사 탄생 110주년, 이육사문학관 개관 10주년 기념 이위발 사무국장 인터뷰
- 작성일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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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기자 안동방문기]
이육사 탄생 110주년 기념,
이육사문학관 이위발 사무국장 인터뷰
글틴기자단 / 김유진, 김선정
‘안동’ 하면 생각나는 게 무얼까? 하회마을, 도산 서원, 안동찜닭 등등. 현대시를 즐겨 읽은 글틴 중에는, 이육사문학관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늘 교과서로만 만났던 시인, 이육사. 그가 태어난 곳이 안동이다. 올해 탄생 110주년을 맞았다. 더불어 시인을 알리는 이육사문학관도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안동이 국내에서 제일 면적이 넓은 도시라 안동역에서 이육사문학관까지는 다소 멀긴 하지만, 안동역에 내렸을 때 꼭 먼저 경유할 곳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버스가 잘 닿지 않으므로 배차 시간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그곳에 닿으면 조금 낯설지만, 한결 인간적인 작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던 시인 이육사, 그를 더 깊이 만나는 문학관이다.
지난 10월 글틴문학특!기자단 정기모임에서는 이육사 탄생 110주년과 이육사문학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이육사문학관의 사무국장인 이위발 시인을 만나, 이육사문학관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 글틴기자단(김유진, 김선정) : 올해가 이육사 문학관 개관 10주년인데요. 이위발 사무국장님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일하셨는지요.
◆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 처음부터는 아니에요. 2004년 10월 1일에 안동에 내려왔어요. 이육사문학관은 2004년 7월 30일 개관했는데, 문학관 개관 뒤에는 4년 동안 안동시 공무원이 파견 나와서 문학관을 운영했어요. 그때는 해설사나 학예연구사도 없었어요. 문학관 왔던 사람들이 질문해도 답변을 못 듣고 가니, 안동 시에 민원도 들어오고 시 게시판에 항의 글도 올라왔어요. 시 입장에선 건물은 잘 지어놓고 운영이 잘 안 되니깐, (사)이육사추모사업회를 설립해서 전문가들에게 민간 위탁을 하게 돼요.
개관 이전에도 ‘이육사연구회’(1988년 발족)가 활동했어요. 이육사를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이육사 정신을 알렸죠. 문학 강연, 시 낭송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해오다가 1994년에 ‘이육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고 안동 문화인들이 뭉쳐서 10년 정도 활동했어요. 2004년 이육사문학관을 개관하고 난 뒤, 민간 위탁을 하려다 보니 명칭을 정해야 하는데, 기념사업회가 이미 활동을 하다 중단된 상태여서 똑같은 이름을 쓸 수 없으니 기념사업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분들이 이육사추모사업회로 넘어와 새롭게 발족이 된 거예요. 2008년 12월 1일에 이육사문학관이 민간 위탁으로 안동 시와 협약을 맺고, 문학관을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회가 운영을 하게 된 거죠. 운영에 필요한 공공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안동 시에서 지원해줘요.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 글틴기자단 : 이위발 사무국장님은 문학관과는 어떤 인연으로 일을 하게 되셨나요?
◆ 이위발 : 2004년 7월에 이육사문학관 개관식 때 와서 보고는 서울로 갔어요. 안동에 있는 안상학 시인 만나서 안동에 내려오겠다는 이야길 하고, 몇 달 뒤 10월 1일 정식으로 안동으로 내려오죠. 그 전에는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면, 제가 대학원 논술 자격증이 있어서 논술 학원에 있었는데, 매일 근무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육사 문학관을 해설해주는 일도 했어요. 권정생 생가는 안상학 시인이 해설해주고, 이육사 파트는 제가 맡았죠. 마이크 잡고 버스 안에서 해설하고, ‘광야’의 시상지(地)인 윷판대나 ‘절정’의 시상지(地)인 칼선대(갈선대)에 직접 데리고 가서 설명해주고 그랬어요. 그때도 ‘이 일(이육사문학관 일)을 내가 하면 잘할 거 같은데’ 싶었죠. (웃음)
아까 얘기했듯이 저도 우연찮게 이육사기념사업회에서 활동했던 분한테 갑자기 의뢰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해보겠느냐’도 아니었고, 관계자들과 만나서 같이 어디를 갔어요. 거기가 ‘김유정문학촌’이에요. 육사 선생님의 따님인 이옥비 여사도 함께 가셨고, 총 5명이서 김유정문학촌을 벤치마킹하러 간 거죠. 전상국 촌장님 뵙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안동에 내려와 곧바로 일을 맡았어요. 총회 시작해서 이사들 선출하고 (사)이육사추모사업회 조직이 내부적으로 갖춰지면서 2008년 12월 1일부터 민간 위탁을 받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그 전에는 공무원 평직원 한 명이 일을 맡고 있었고, 청원 경찰이 있었어요. 1년에 예산 2억 5천을 썼는데 민간 위탁 후로는 운영비를 1억 5천 썼어요. 시에서 비용 절감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죠.
◆ 글틴기자단 : 김유정문학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평소에도 다른 문학관과 교류가 있나요?
◆ 이위발 : 예전에는 교류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2004년 문학관협회가 조직된 이후로 지금은 문학관 교류가 활발하죠. 그리고 저희처럼 민간 위탁한 문학관이 몇 군데 안 돼요. 민간위탁으로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문학관으로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조직 체계부터 인건비까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자문을 많이 받아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 문학관협회에 76개 관 정도 등록이 돼 있어요. 등록이 안 된 것까지 합치면, 100개 관 정도 될 거예요. 지금 기획하고 있는 데도 많고요.
제 경우에는, 경북대학교에서 프랑스의 문학관 관련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프랑스의 문학관들의 사례를 얘기하고 이육사문학관 사례와 대비해서 토론자로 나가기도 했어요.
◆ 글틴기자단 : 프랑스와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세요.
◆ 이위발 : 예를 들면 프랑스의 문학관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와요. 우리는 건물만 지어놓고 관람료를 받아요. 관람료 안 받는 데에도 전시 위주로 보여주죠. 프랑스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길가에서 ‘여기는 어느 작가가 꽃을 심었던 장소다’라고 얘기해요. 그런 것도 스토리가 다 되는 거예요. 큰 건물이 없더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고스란히 보존한 상태예요. 큰 건물 안에 전시 해놓고 해설을 하는 게 아니라 다니면서 스토리를 전해 주려고 하죠. 우리도 스토리를 만들어야 해요.
요즘 다들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하는데 문학 쪽도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입힐 수 있어요. 나쁜 건 아니에요. 스토리 입히는 게 황당무계한 게 아니니까요. 그런 쪽으로 얼마든지 작품을 가지고 만들 수 있거든요. 작품 한 편을 가지고서도 ‘이 작가가 살아 있을 땐 이랬습니다’ 하면서 거기에 이야기도 입힐 수 있어요. 이야깃거리들이 많아야 돼요.
우리는 학교에서 문학을 배울 때 흔히 ‘시험공부 때문에’, ‘학교 교과서에 나오니까’ 문학을 공부하죠. 학교에서는 정형화된 수업을 해요. 시도 주입식으로 가르치다 보니깐, 육사의 인간적인 모습은 전달이 안 돼요. 문학관에 오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이육사문학관에 오는 관람객들에게는 이육사 시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문학 관람객으로 오는 학생들에게 해설할 때 제일 역점을 두는 것도 그런 거예요. 인물을 배우면 아이들이 인간적인 모습도 더 접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정답을 두고 시를 가르치잖아요. 예를 들어 ‘청포도’ 시 전문을 실어놓고 ‘내 고장’이 의미하는 것은 뭐야?’ 그러면 ‘조국’이 정답이고, ‘청포도’는 ‘백성’이에요. 그게 정답이다 보니 ‘먼 데’는 ‘조국 광복’이 정답이에요. 그 외의 다른 대답은 틀린 거예요.
그런데 이육사의 고향 원촌(遠村)에 관한 마을지가 1962년에 발견됐는데, 그 조그마한 책자 마을지에 지명 유래와 풍습도 나와 있어요. 거기 보면 원촌 마을이 조선 초창기에 ‘마계촌(馬繫村)’, ‘원원대(原原臺)’였어요. 마계촌 살던 사람들은 ‘말 마(馬)’, ‘맬 계(繫)’를 써서 ‘말 맨 데’ 산다고 했고, ‘멀 원(遠)’, ‘멀 원(遠)’, ‘곳곳 대(臺)’를 써서 ‘원원대’라고도 했죠. 마을이 머니깐, 멀다는 말이 두 개 붙은 것이죠. 정말 멀었어요.
지금 국학진흥원이 있는 곳이 ‘서부리’라는 마을인데, 예전에 거기까지만 버스가 왔어요. 원촌 마을이 진성이씨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종갓집에서 안동 장날에 장보러 갔다가 제사 음식 사갖고 오면 서부리에 내려요. 짐을 갖고 가지 못하니깐 놔두고 원촌까지 들어와서 구루마 끌고 다시 서부리로 와서 장본 것을 싣고 가죠. 그럼 한나절 걸렸어요. 그만큼 멀었어요. 그래서 ‘멀 원 자’를 썼어요. ‘원원대’가 바뀐 게 ‘원촌동’이에요.
원촌동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먼 데’ 라고 불렀대요. ‘청포도’는 이육사가 고향을 노래한 대표적인 서정시인데, ‘먼 데’를 이중적인 뜻으로 썼더라도 조국광복만 정답은 아닌 거죠. ‘청포도’로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시는 다양하게 해석되는 게 맞아요.
또 한 예를 들면 중견 시인 최승호 시인의 ‘북어’, ‘대설주의보’ 같은 시가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되어 나온다니까 최승호 시인이 문제집을 구해서 풀어봤대요. 직접 풀었는데, 한 문제도 못 맞혔대요. 거기에 문제 중 하나가 ‘최승호 시인은 어느 파(사조)에 속합니까?’라고 했대요. 모든 시인은 사조에 입각해 시를 쓰지 않아요. 다 쓰면 평론가가 해석할 뿐이죠.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게 잘못된 것이죠. 시인이 무슨 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건, 시를 읽고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거예요. 다른 교육은 암기하는 것이지만, 예술은 사고를 확장하는 거니까요.
‘광야’를 예로 들면,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에서 산맥이 한자어인데, ‘뫼 산(山)’, ‘줄기 맥(脈)’ 자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뫼 산(山)’, ‘마주볼 맥(?)’이 맞아요. 둘이 같은 글자이지만, 문학관에는 원전 그대로 ‘마주볼 맥(?)’으로 ‘광야’ 시를 동판으로 새겨놓았어요. ‘마주볼 맥’이어야 ‘연모(戀慕)’가 나올 때 맞는 거예요. 이육사는 한자 시나 한자 활용에 밝았고, 7살 때 사서오경을 다 떼었어요. 중국어에 능통해서 중국어판 성경을 보고 그랬다니까요. 잘못된 것도 바꾸려고 하는데 힘들죠. 국어 선생님들도 이런 현실을 알지만 잘 안 고쳐져요. 교육부에서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정치와 연결돼 있어서 잘 안 고쳐지죠. 오류를 맞는 걸로 생각하고 배우는 사람과 그것을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도 이런 오류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방문객 올 때는 꼭 확인시켜주죠.
◆ 글틴기자단 :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이육사 시인이 감옥에 있었을 때 수인번호를 따서 이름을 썼다고 해서 믿었는데요. 사전 취재를 해보니깐 원래 ‘죽일 육(戮)’ 자를 쓰다가 다른 글자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죄수번호 264’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 이위발 : 이육사 선생님이 처음에 감옥에 가신 게 ‘장진홍 의거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요. 당시 일본은행인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져 터트린 사건이에요. 거기에 연루가 됐어요. 이육사 선생님하고 형 이원기, 동생 이원일, 이원조까지 대구 교도소에 갔어요. 이원조 선생님은 혐의 없다 풀려나고 육사 선생님은 264번 달고 2년 6~7개월 있었어요. 그때 수인 번호가 264번이었어요.
출소해서 글을 쓸 때, 맨 처음 대구라고 한문을 쓰고 그 뒤에 二六四 썼어요(大邱二六四). 사회 평문은 ‘이활(李活)’로 쓰고, 시를 발표할 때는 ‘陸史’ 아니면 ‘李陸史’로 했어요. 처음에 ‘죽일 육(戮)’ 자를 썼는데, 그건 너무 강하다고 들어서 ‘육(陸)’ 자로 바꾼 것이죠.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 죽이는 것과 되돌리는 게 의미는 다르지만 광복의 의미는 있으니까요. 시대가 일제강점기이니, 시 밑바탕에도 독립정신이 깔려 있어요. 육사 선생님은 호를 지을 때 죽일 육, 되돌릴 육, 수인번호 모두 한문으로 만든 거죠.
그런데 수인번호가 64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예요. 오류가 오류를 생산하다 보니까 잘못된 텍스트가 돌고 있어요.
◆ 글틴기자단 : 문학관에 이육사 선생님의 따님이 사신다고 들었는데요. 지금도 문학관과 관계돼 있나요?
◆ 이위발 : 육사 선생님이 17세까지 고향에 사셨어요. 17세 가을에 가족들이 대구(남산동 662번지)로 이사를 갔는데, 18세에 영천의 안일양 여사하고 혼인을 해서 첫째 아들을 낳았어요. ‘이동윤(李東胤)’으로 호적에 올라 있는데, 2세 때 홍역으로 사망했어요. 그 뒤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가서 두 번째 딸을 낳았는데 100일 만에 또 홍역으로 잃어서 이름은 호적에 안 올렸죠. 현재 유일한 혈육이신 이옥비(李沃非) 여사가 세 번째 따님이에요. 고명딸이라고 표기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 쓰거나 말하는 겁니다. 이옥비 여사는 1남 2녀의 막내딸이죠. 지금은 문학관에 상임이사로 계십니다. 문학관 프로그램 중에 ‘나의 아버지 육사’가 있어요. 따님이 10~15분 강의를 해줘요. 삼촌이나 어머니에게 들었던 얘기 중에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죠.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완전히 달라요. 육사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 있는 얘기를 주로 해주십니다.
문학관에 따님이 계시니, 오시는 분들도 사진이라도 한 장 더 찍고 사인 받고 싶어해요. 문학관에선 상징적인 존재예요. 따님이 이곳에 없다면 이렇게까지 운영되지 못했을 거예요. 중요한 역할을 하시고 계시죠.
◆ 글틴기자단 :또 이육사 문학관이 다른 문학관과의 차이점이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이위발 : 행사 부분이에요. 문학관 행사를 초창기에는 3박 4일 한 번에 몰아서 했어요. 해보니 뭐가 문제였느냐 하면, 보조금 받아서 하는 건데 개막식 때 가수 부르고 무대장치 하다 보면 거기에 돈을 다 쓰는 거예요. 굉장히 돈이 많이 나가고 실제적 행사는 안 되겠다 싶어서, 봄?여름?가을?겨울 나눠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게 완전히 정착됐어요. 육사 선생님이 태어난 4월 4일 즈음 봄에는 학술대회와 낭독회를 같이 하고, 여름에는 이육사문학학교, 청포도사생대회, 육사문학상시상식 등 다양하게 해요. 가을에는 육사백일장, 시낭송대회, 시노래공연 등을 해요. 겨울에는 안동 지역 문인들을 초청해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져요. 이육사문학관이 지역 문화 공간의 사랑방이기 때문이에요.
예산을 더 받는 게 아니라 나눠서 실질적인 행사를 하는 것이죠. 이젠 고정 팬들이 생기고, 대구에서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외지에서도 많이 보러 옵니다. 그런 부분은 다른 문학관과 차별화가 돼 있어요.
◆ 글틴기자단 : 행사에 문학관계자가 아닌, 다른 방문객들도 많이 오나요?
◆ 이위발 : 비문학인들도 많이 옵니다. 문학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면 시노래 공연은 문학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올 수 있어요. 또 ‘청포도사생대회’는 초등학교나 유치원 대상 대회라서, 문학과 관련된 사람만은 아닌 거죠.
이육사문학관에 근무하면서 제일 감사한 게, 육사 선생님은 독립운동과 문학을 같이 하셨다는 거죠. 이육사 문학관이 현충시설로 돼 있어서 국가보훈처의 보조금을 받아요.
그래서 광복절 행사도 하는데, 그때는 지역의 12개 초, 중등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나라사랑글짓기대회를 해요. 지역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문화 행사가 없어서 글짓기 대회를 시작한 거예요. 문학관이 지역민들을 배척하지 않고 안고 가야 하는데, 특히 학생들이 배우고 느끼는 게 중요하거든요. 문학관을 토대로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글짓기 외에도 계획 잡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올해 3회째 재능나눔 시낭송 대회도 하고 있어요. 안동의 특수학교인 진명학교 지체장애자 아이들이 참여해서 시낭송 대회를 해요. 지역의 시낭송 단체인 ‘문낭회’ 회원들이 참여해서 지체장애 학생들에게 시를 일대일로 가르쳐서 낭송을 하게 해요. 재능나눔 대회는 올해도 11월 19날 진명학교에서 열려요. 선정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낭송하고, 헤어질 땐 울고 그래요. 애들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니깐, 나중엔 안 떨어지고 싶은 거죠.
문학관에 앉아서 관람 손님만 받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직접 찾아가서 해요. ‘찾아가는 문학관’ 일환으로 문학관 파견 작가들이 지체장애인들 찾아가서 책 읽어주고 같이 낭독도 했어요. 앞으로는 지역 노인정을 돌면서 잠깐 동안 책도 읽어주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순회 행사들을 할 계획입니다.
◆ 글틴기자단 : 지난가을에 ‘연변이육사문학제’도 하셨던데요.
◆ 이위발 : 이번이 4회째예요. 지난달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갔다 왔죠. 지금은 연변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이틀은 연변에서 하고 그 다음 날은 상 받은 사람들하고 문학 및 문화 유적 탐방하는 일정이 있어요. 하루는 이육사 시인이 독립운동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요.
육사 선생님은 북경 일본 총영사관 감옥소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돌아가신 감옥소가 그대로 있어요. 군인 가족들이 살고 있었어요. 북경 시내 중심에 있는데, 언제 허물어질지 몰라요. 남의 땅이라 표지석도 못 세워요. 중국 정부의 허락을 못 얻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거기는 당 지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 시스템하고 달라요. 연변작가협회의 회장, 부주석, 사무국장이 모두 공무원이에요. 우리 협회는 민간단체인데, 거긴 당 소속의 조직이에요. 북경에 갔을 때 우리가 ‘우야면 좋노?’ 그랬어요. 나라와 나라의 협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해야 하는데 쉽지 않죠. 감옥소 건물 밑에 조그만 창살 구멍이 있는데, 안으로 들여다보니 옛날 모습 그대로 있어요. 녹이 슬은 수갑이 보여요. 지하에는 사람이 안 살고, 위에서만 살고 있어요. 거기 탐방 가서, 육사 선생 따님은 많이 울었죠. 작년에 처음 가 본 거예요.
올해는 남경에 갔어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있던 곳이에요. 남경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인데요. 산 밑의 동네가 산하촌(山下村)인데요, 정상에서 보면 남경 시내가 다 보여요. 총을 겨누고 시내를 보고 감시하던 벙커가 아직 그대로 있어요. 안에 들어가면 시내 방향으로 총구를 놓고 주시하던 창틀도 그대로 있어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3기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육사 선생님이 1기 졸업생이에요. 거기선 변장술, 폭파술, 사격술 외에 인문철학도 가르쳐줬어요. 거기 졸업할 때 육사 선생님이 연극을 무대에 올렸어요. 그 학교 교장이 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이에요.
이육사가 의열단원이 맞다, 아니다 분분한데, 육사 선생님이 일본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의열단원이 아니다 했어요.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갔을 때 조사한 부분만 남은 거예요. 육사 선생님이 의열단이라고 한 게 김원봉 단장이에요. 의열단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겠어요? 이육사 처남인 안병철도 졸업생이었는데 국내 들어와서 안병철이 잡히면서 고문에 의해서 단원 이름을 다 불었어요. 그 일로 육사 선생 사모님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제가 생각할 땐 의열단원이 확실해요.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변 박물관에 가보면 육사 선생 소개에 정확하게 의열단원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어요. 남경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 학교 터에 가서 묵념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죠.
내년에는 상해에 가요. 상해는 육사 선생님에게 중요한 장소예요. 거기서 루쉰을 만났거든요.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루쉰이 죽고 난 뒤 추도문을 조선일보에 3회 걸쳐 연재했어요. 굉장히 마음속으로 흠모했던 분인데, 그때 루쉰을 만났던 장소가 아직 상해에 그대로 있어요. 쑨원의 비서 출신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부주석인 양싱포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거예요. 루쉰도 문상을 왔던 거죠.
내년에는 그곳과 임시정부를 돌아볼 계획이에요. 연변 이육사문학제는 주 핵심이 공모전이에요. 조선족 대학생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비조선족, 한족 대학생이 다니는 한국어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해요. 이번에 대상 받은 대학생은 정말 잘 썼어요. 그쪽 지역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커요. 아이들에게 상을 조금 주는 게 아니라 많이 줘요. 한 50명씩 줘요. 다들 좋아해요. 이번에도 연변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그 외 시낭송, 학술대회도 하고, 상 받은 학생들과 문학탐방도 하죠.
◆ 글틴기자단 : 마지막 질문이에요. 올해 이위발 사무국장님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도 출간됐는데요. 다음 책은 언제 나오나요?
◆ 이위발 : 지금도 시를 쓰고 있고, 발표도 하고 있어요. 두 번째 시집이 내년 초에 나올 거예요.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첫 시집만 상재되어 있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요. 다작 스타일이 아니라서 뜸을 많이 들이죠. 사실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웃음)
이번 인터뷰는 이위발 시인의 자택에서 진행했다. 대화 후 글틴 기자들은 사인이 들어간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을 받았고, 여담을 나누다 안동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까지도 시인이 직접 배웅해줬다.
글틴 기자단(김유진, 김선정)은 안동 취재 전, 세 개의 일정을 두고 고민했다. 권정생 문학관을 가느냐, 이육사 문학관을 가느냐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다. 게다가 안상학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안동 소풍에 나섰다는 소식을 건너듣고, 그 세 자리 중 어디라도 문의를 하고 가야겠다던 찰나, 이육사문학관에 먼저 연락이 닿았고 이위발 사무국장의 해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단 얘기를 들었다. 10월 첫째 주말 바로 안동으로 향했다. 하루 안에 이곳저곳을 다 도는 것은 무리인지라, 최종으로 이육사 문학관에 가서 이위발 시인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사전 스케줄을 짰다. 중간에 인터뷰 장소가 바뀌면서 이육사문학관 방문은 놓쳤으나 안동에 거주 중인 글틴기자가 있기에 후속 취재는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참고로, 문학특!기자단 1기로 안동에 거주 중인 김유진 기자가 짰던 하루 일정들과 (아직 취재하지 못했으나) 안동을 소재로 준비했던 글틴기자단 아이템들도 함께 덧붙인다.
[김유진 기자가 짠, 안동기행 하루 취재 일정 공개]
1. 고전 관련, 문학 취재 여행기를 쓰려면?
이육사문학관 → 한국 국학진흥원 일정.
이육사 문학관 취재 뒤 국학진흥원에서 국학이나 중세문학, 목판본 관련 아이템을 찾아 취재한다. 단 장소들이 안동 시내에서 꽤 멀다. 버스타고 2~30분, 아무래도 시골이라 버스가 몇 대 없어서 시간을 잘 잡아야 한다.
2. 문학과 관광을 한꺼번에 하려면?
권정생문학관 →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 벽화마을 경로.
안동찜닭도 먹고,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세 개 받았다고 알려진 ‘맘모스 제과’에도 가서 빵도 먹는다. 복합적인 기행 느낌으로 안동 시내 위주로 돌아다닌다.
3. 요즘 새로운 안동의 관광지는?
안동에서 엄청 공들여 만드는 온뜨레피움(http://www.ontrepieum.com/)을 방문한다. 온뜨레피움(허브공원, 동물농장, 각종 박물관과 민속촌)을 구경하고 월영교, 나들이길을 걷고, 시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을 구경한다. 요즘 안동에서 투자 많이 한다고 약간 말도 많은 곳이다.
[최종 예비 아이템]
1. 김주환 안동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글틴 편집위원, 초기 글틴 창립 공로자, 김주환 교수에게 듣는 글틴의 초창기 역사
2. 안상학 시인 : 안동의 시인,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신간 발간
3. 이육사 문학관 관람 사전 신청 : 문학관 소개
4. 그 외 안동 아이템 : 권정생문학관, 이야기하는 할머니 외 안동 특색(전반적 안동 여행 소식)
[10월 4일 실제 진행 일정]
안동찜닭 거리, 탈춤국제페스티벌 방문 → 이위발 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총장)과 안동간고등어 식사 → 이위발 시인 자택 마당과 서재에서 인터뷰
[예고] 다음 달에는 김유진, 김선정 글틴기자의 안동 방문 뒷이야기가 후속으로 연재된다. 이육사문학관 방문기를 비롯해, 안동의 문학적 아이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글틴 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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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천운영 1. 여행과 나날 여행 짐 꾸리는 데는 꽤 능숙하다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고심을 많이 했다. 여행자와 거주자를 오가는 ‘여행과 나날’을 위해 필요한 것들. 가방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있어야 하는 것과 있으면 좋은 것 사이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것만 추려서. 목표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였는데, 추울까 불편할까 모자랄까 들었다 놓았다 하다 보니, 24인치 캐리어에 백팩까지 꽉 채우고 말았다. 그런데 또 막상 가서 풀어 보니 텀블러는 두 개나 챙겼으면서 꼭 필요한 약주머니는 통째로 두고 왔다. 비상약이야 그렇다 치고 일정 시간에 복용해야 하는 처방약들은 어쩌란 말인가. 짐을 풀다 말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찾아갔다. 딱 보기에도 연식이 오래된 병원이었다. 새로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단서로 약만 처방받으면 될 일이니 상관없었다. 나이 든 간호사와 더 나이 든 대기실의 환자들. 대화로 짐작건대 서로의 사정까지 다 알고 지내는 단골들만의 병원인 듯했다.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 꽤 지났는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변명하듯 말했다. 치매야 치매, 하루가 멀다 하고 와서 약 내놓으래. 소화 안 되고 허리 쑤시고. 약을 그렇게 드시니 소화가 안 되지. 오늘은 아들이 돈 훔쳐 갔다고 하소연. 원장님은 그걸 또 다 들어줘. 힘들게 왜 그걸 다 받아 주고 있냐고. 환자의 비밀인지 간호사의 하소연인지. 정감 있다 해야 할지 대책 없다 해야 할지.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은, 데스크 간호가 왜 그리 세세히 문진을 했는지 알겠는 의사의 상태. 허리가 기역자로 꺾여 머리가 거의 책상에 닿을 것 같았는데, 그나마도 목을 못 가누는 어린애마냥 흔들흔들 매가리가 없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처럼 보였다. 의사가 내게 물었다. 어디 불편해? 불편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다 들어줄게. 요즘 뭐 힘들어? 뭐라고 답해야 하나. 고지혈증약을 먹어야만 되는 몸 상태를 말해야 하나. 하도 글이 안 써져서 이 먼 곳까지 왔다 말해야 하나.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의사가 재촉했다. 지금 고통스러운 게 뭐야? 다 말해 봐. 저 깊은 곳의 통증까지 끌어올려야 하나 어쩌나. 여기가 내과인가 정신과인가 성당인가. 그냥 처방전이나 내주시라고요, 하고 싶었다. 내게 들을 하소연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엔 다른 걸 들어야겠다 나섰다. 어디 심장 소리 좀 들어 보자. 의사가 다짜고짜 청진기를 들이댔다. 숨소리도 아니고 심장소리. 나는 얼결에 외투를 벌리고 가슴을 밀었다. 이곳저곳 청진기가 지나갔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겠나 싶은 곳까지 구석구석. 이제 그만하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때, 의사가 마침맞게 청진기를 떼며 웃었다. 잘 뛰고 있네. 잘 뛰고 있어. 못 뛰고 있으면 여기 왔겠냐고요, 할 뻔했다.
- 천운영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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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문학의 곁]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신춘문예를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신춘회관(@Sinchun.co.kr) 김휴일 1. 2024년 10월의 마지막 주. 퇴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3호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크린도어 고장으로 출발은 한참이나 지연되었다. 출발 즈음에는 서로의 몸으로 잔뜩 끼어 버려 손잡이를 잡을 필요조차 없었다. 불특정한 사람들의 불쾌한 체취를 참아 내며, 나는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어야지. 침대에 누워 영화나 보아야지. 바라기엔 너무나 소박하고 초라한 소망들만 떠올랐다. ‘신춘문예’는 그 답답한 열차 내에서 불현듯 떠오른 단어였다. 2015년. 국어를 전공했지만 글을 쓰지 않고,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이라니.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선배였고, 대학교는 언제나 1, 2학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 치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노인이 있듯이 고등학교에는 고3이 있는 법이었고, 대학교에는 3, 4학년이 있는 법이었다. 내년이면 내가 졸업반이 되는구나. 그렇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겠구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몹시 두렵고 조급했다. 좀 알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대학 생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3학년의 봄은 그렇게 왔다. ‘시창작특강’을 수강 신청한 이유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들을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첫 강의를 들은 날부터 시에 매료되어 졸업에 이르기까지 내 대학 생활의 포커스는 오로지 시 쓰기가 되었다. 교수님의 권유로 학과 내 문학 창작 동아리에 뒤늦게 들었고, 시를 읽고 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세상을 시로 보고, 시를 통해 세상을 보니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눈이 생긴 기분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눈 하나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로 보였다. 비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타이어와 사랑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고, 낙지젓갈과 미래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일상의 사건 사이 낯선 감정들을 구태여 파고들면서, 모든 생각을 시로 재구성하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졸업 후의 삶도 나름대로 다채롭고 재미있었지만, 먹고살 걱정을 하면서 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 이상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삶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아저씨들이 “국문과 나왔다고? 나도 한때 작가의 꿈을 꿨었는데.” 하는 말들에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어느새 ‘한 때 시인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30대가 되어 있었다. 영원히 낭만적일 거라 호언장담했던 그 시절의 나를 가볍게 배신하고, 시의 세계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
- 김휴일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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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길이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 -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문장서포터즈] 가능성의 길이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 -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이성 1 안녕하세요.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네요. 개인적으로는 문장서포터즈 2기 ‘쓰담’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학 콘텐츠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문학을 매개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 무척 보람찬 시간이었죠. 아마 이 글을 보고 계실 때쯤이면 새해가 밝아있을 텐데요. 저는 이번 원고를 구상하면서 파일 제목을 ‘세밑에서 새해로’라고 붙여놓았대요.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과연 새해에는 또 어떤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새해에도 역시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쓰담’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것처럼 무엇보다 가능성을 믿는 한 해가 된다면 좋겠네요.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엄마, 나 소설 안 쓸래. 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래.”1) (엄마는 이렇게 답하죠. “쓸 거면서 또 저런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앞의 문장을 반복해서 읊조렸어요. 일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는 인물의 태도가 미래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어쩌면 때로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다짐이 우리를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저도 이제 새해라는 가능성을 향해 첫발을 내디뎌보려 하는데요. 그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새 출발을 앞두고 있던 제가 문학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얻었던 순간이죠. 새해로 도약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 중인 분들에게 세밑에서 전하는 저의 후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때 그 순간을 전해보아요. 2 지난 2025년 가을, 일상을 지속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는 문학주간 행사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 물리적으로 문학과 멀어져 있던 시기였기에 문학의 힘을 빌려 조각난 일상을 수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문학주간과 관련된 글을 찾아 읽고, 저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 기획의도 우리가 만약 어떤 트랙을 달리고 있다면 그리 머지않은 곳에 구름판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견고하고 상상할 수 있지만 막상 상상한 대로는 닿지 않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은 몹시 중요합니다. 높이 뛰어오르려면 적당한 타이밍을 생각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죠. 문학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구름판을 감각하게 해줍니다. 내가 아닌 삶과 삶으로 이루어졌기에 분명 나인 세계 같은 것들이요. 문학은 자그
- 김이성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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