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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10주년 기념_선배 글티너들의 귀환]글틴유감

  • 작성일 2015-05-19
  • 조회수 722


[글틴 10주년 기념_선배 글티너들의 귀환]



글틴유감



안여진





오늘은 거의 온종일 너를 생각했다. 그리워한 것은 아니다. 그냥, 너라는 사람이 있었지, 하는 생각.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까. 2010년 여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네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음악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 네가 더 이상 글티너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아니, 다행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기 직전, 네가 내게 보내주었던 파니핑크의 「밤은 좋고 그래서 나쁘다」를 다시 들었다. 아주 오래 전 네가 들려주었던 노래. 너와 글틴 이야기를 하던 때. “어려웠던 날들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사라지는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져”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너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같이 글틴에서 글을 썼을 뿐인데. 이런 글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혹시라도 네가 이 글을 읽게 되면 어쩌지.


너의 말투, 너의 문체, 너의 박자, 너의 멜로디를 떠올린다. 모든 것이 전부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이미 이지러져 조각난 지 오래고, 나는 이미 조각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처음으로 글틴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 도서관 문 앞에 붙어 있던 글틴 홍보 포스터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포스터인데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그 포스터를 유심히 보았고 그 사이트를 수첩에 적었다. 집에 돌아와 글틴에 접속했고, 그 때부터 글틴에서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전교생 중 그 포스터를 보고 글틴에 가입한 건 나 혼자였다. 글틴에서 하는 어떤 행사에도 같은 학교 친구들은 없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2010년 글틴 문학특강 때 너를 처음 만났다.
전아리 작가님과 전삼혜 언니의 특강이었다. 아니, 구병모 작가님의 특강이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오래도록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만이 기억난다. 나는 그해 글틴 캠프에 처음 참가했다. 하지만 너는 캠프에 오지 않았다. 캠프가 있기 전 너와 사이가 틀어졌는지, 그냥 네 개인 사정으로 캠프에 오지 않았던 건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너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이 다 지워졌구나. 그 해의 2박 3일이 내 미래를 크게 좌지우지했다. 글틴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열정이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네가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할 때에 좋은 친구, 선배들과의 인연을 맺게 해주고 나의 길을 확신할 수 있게 해준 곳이 글틴이기에 언제나 글을 쓸 때마다 글틴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글틴을 알게 된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고 있다. 글틴으로 이어진 인연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처럼 글에서 멀어지기도 했고 계속 글은 쓰지만 글틴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캠프에 가도 그때 보았던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캠프에 꼭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글틴 청소년 문학 캠프에 함께 가지 않을래?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는 건 너도 잘 알 것이다. 나는 너보다 더 잘 알 것이고. 그렇게 네게 연락도 없이 글틴 캠프를 신청했다. 나는 비밀요원이라는 졸업생 자격으로 2015년 글틴 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곳에 갔을 때, 놀랍게도 네가 도우미로 참가해, 우리는 토지 문학관으로 가는 셔틀버스에서 놀란 눈으로 마주쳤다.
라고 말한다면, 내 삶은 얼마나 소설 같을까. 당연히 너는 없었다. 너에게 내 필명은 아직도 고양이공포증일까.


캠프 장소가 토지 문학관으로 바뀐 것도 좋았고, 참가자 인원수가 적어서 좋았다. 이번 캠프에서 나와 대화를 많이 한 친구들 중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얻어간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너무 고마울 것이다. 둘째 날 촌극이 끝나고 조 모임을 할 때 자신의 고민에 대해 털어놓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고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너와 함께 글을 쓰며 아파했던 순간들. 그 친구들의 글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예쁜 태도가 너무 부럽고 고마웠다. 물론 그 고민이 그때의 우리처럼 스스로에게는 고통스럽고 아프겠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것저것 개인 사정과 주변의 현실 때문에 글을 그만두거나 자연스레 멀어지는 친구들이 생기게 될 거라는 것을 너무도 당연스럽게 알고 있다. 마치 너와 같은 친구들. 그래도 지금의 모습들이 정말 예뻤다. 모두들 인연을 함부로 쳐내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이유도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글틴을 떠난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비난할 이유도 없다. 다만,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안여진


고등학생 때 방황하다가 글틴을 접하게 된 글티너. 현재 사진집과 문예지의 결합 형태인 독립잡지 《소녀문학》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예쁘고 순수한 것만이 소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는 하기 싫어서 사진 촬영도 하고 글도 쓰며 용돈벌이를 하는 습작생.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는다.



《글틴 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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