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회상
- 작성일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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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스페셜-글틴 출신 작가 초대석]
글틴 회상
양선형
글틴에 처음 가입했을 때 내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나는 열일곱 여름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으며, 기나긴 잠, 그리고 잠보다 더 지루하게 계속되는 무기력한 기분 속에 빠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내게 청소년기는 무기력과 권태, 소파 위에 누워 뭔지 모를 불만으로 뒤척이는 나날들을 환기시킬 따름이다. 나는 종일 영화를 보거나 제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가끔 산책을 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을 만나, 이 불쌍한 고등학생 놈들, 이죽거리며 반나절에 이르는 수면 시간이나 궤도를 완전히 잃어버린 생활의 리듬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침울한 기분을 느꼈다. 친구들은 내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제외한 자퇴생의 장점들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았다.
글틴 사이트를 알게 된 것은 그쯤이었다. 청소년 시절 심한 글쓰기 충동을 느꼈다면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터넷 유령이 되는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섬세하고 예민한 자의식의 처소들이 인터넷 위상공간 안에 가득 흩어져 있다. 이렇게 서술하고 나니 내 강렬한 문학적 경험들 중 하나란 내가 선망하던 어느 인터넷 유령의 블로그 일기였던 것도 같다. 나 또한 개설한 블로그에 꿈 일기나 기묘하게 편집한 일기를 자주 썼는데, 별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지적 허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는 서점의 시집 코너나 해외문학 코너를 서성거렸다. 문학은 엄청났으며 그때 내가 체험했던 고양된 감정들은 이제는 문을 닫은 블로그 게시판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래, 문학이란 이렇게 고독하고 놀라운 것이지, 시인이란 두뇌 멋쟁이들이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나는 문학 관련 사이트를 뒤졌고 글틴 사이트를 발견했다. 푸른 배너, 당시 '연장원'을 받았던 분의 시가 플래시로 재생되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이트에는 게시판마다 시인이나 작가인 선생님들이 있었다. 시나 소설을 게시하면 선생님의 코멘트가 달렸다. 내 기억으로 당시의 백일장이나 청소년 대상의 문학 공모전은 오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비재학 청소년은 응모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글틴에 써낸 시와 소설을 빠짐없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주나 월 단위로 우수작품을 뽑는 '주장원'이나 '월장원'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썼던 시나 소설들은 이미 소설가가 된 지금은 흑역사나 다름이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끔 이러한 내 애물단지들을 꺼내 보면서 그곳에서 떠내려가고 있었던 시간이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감정은 약간 창피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정, 그때의 나를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더 이상 부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위로의 감정과 유사한 것 같다.
내게 글틴은 작품을 완성하고 발표한다는 경험, 독자를 가져 보는 경험, 선생님의 평가나 의견과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 모두 가능한 최초의 공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기 폴더 옆에 '시'나 '소설' 같은 폴더를 만들어 그러한 형식과 유사한 무언가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문예창작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일기 속에는 "시를 쓰고 싶다"거나 "이건 소설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문장들이 자주 출몰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인터넷 유령이었던 내게 글틴은 일종의 고등학교 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문학이란 결국 세상을 부유하는 자의식의 유령들이 다니는, 그들을 위한, 그들에 의해 지속되는 학교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틴에 이 학교의 신입생들이 여럿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당시 글틴에는 '궁냥궁냥'이라는 이름의 자유게시판이 있었고,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메신저의 단체 채팅방에는 밤새도록 글틴 회원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한심하고 부끄럽고 즐거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대화방 탭이 항상 깜빡이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
한 시절을 회상하는 일은 한 시절을 정리하는 일이라기보다는 한 시절의 삐뚤빼뚤함에 습격을 받는 일과 같다. 그러니까 서랍 속에 안전하게 축약된 채로 존재하는 과거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곳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거기에 있었던 수많은 감정이나 갈등, 쉽게 수렴되지 않는 사건들의 편린과 자연스레 맞닥뜨리고 만다. 글틴의 경우 이미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글틴 시절을 함께 통과했던, 당시엔 유난히 친밀하고 사랑스러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 전부를 마냥 아름다웠던 추억의 형태로만 포장해 서술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그 시절의 어린 나, 그리고 나와 엇비슷한 나이의 문학을 꿈꿨던 아이들이 함께 겪었던 불편하거나 괴롭고, 때로 기쁘며, 낯뜨겁거나 조마조마하기도, 미안하기도, 서글픔이나 서러움을 느꼈던 시간들이 함께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치기나 어리숙함, 일그러짐, 과장된 마음, 외로움이나 결핍 또한 거기 있고, 깔깔거리고 손뼉을 치면서 밤이 새도록 '글틴 캠프'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고, 훌쩍이며 마음을 털어놓고는, 남부럽지 않게 '마로니에 공원'을 행진하며, 서로에게 든든한 위안을 받았던 시간 또한 거기에 따로 또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활동했던 시간은 1년 남짓이었지만 이 짧은 시간을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청소년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자주 만났기 때문일까. 이 회상은 쓰면 쓸수록 복잡해져서 그 시절의 나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당시 글틴 사이트에서 활동했던 이들 중 몇몇은 이미 등단을 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당시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나는 그들과 어떤 시기를 우연히 함께 보냈지만 그들이 그때 그대로일 리는 없다. 다들 조금씩 변해 다른 사람이 된다. 그때 글틴은 글을 쓰고 싶었던 많은 청소년들의 아지트였다. 지금은 각자 별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듣고, 그들을 응원하거나 격려하기도 한다. 글틴을 떠올리면 거기 나의 열여덟 살이 있다. 당시 글틴은 나와 같은 청소년에게 마음 놓고 글을 쓰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소중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회상을 끝맺을 때가 되었으니 그 시절의 어느 하루를 묘사하고 싶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탄다. 나는 경기도 남쪽에 살고, 혜화역 정모에 참석하려면 한 시간 삼십 분 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만난 글틴 회원들과 나는 할 일 없이 마로니에 공원을 돌아다닌다. 문학 이야기를 하거나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한없이 걷지만 장소는 혜화역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같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몇 번을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난다. 그리고 혜화역 주변을 걷는다. 했던 이야기를 또다시 되풀이하면서, 이러한 일도 언젠가 끝이 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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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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