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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유랑(流浪)」외 6편

  • 작성일 2023-11-08
  • 조회수 1,909

사막의 유랑(流浪)

김태희

 

 바람의 꼭대기는 지루한 비명이다 

 끝없이 자라나는 사막의 나이테도

 인간의 목소리 아닌 오로라의 누명(縷命)이다  

          

 모래에 묻혀있던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은밀한 허기짐이 달려오는 신기루도

 멍울진 환부 속을 나는 휘파람의 눈빛이다    

       

 어둠의 근친들로 숨어들던 지문들이          

 누웠던 흔적 위로 예감처럼 가려웁다

 그리운 감염으로 덮인 캐러밴도 유랑이다   






아! 병목안 삼거리에서

        

 

 영하의 소매 끝에 설렘을 꼭 쥐고 선

 병목안 삼거리는 그리움을 앞에 둔 채      

 어디서 첫사랑 한 소절 눈발처럼 나부껴

 

 머리엔 눈을 이고 도톰한 옷 펄럭이는

 아~ 아! 저 멋쩍은 웃음까지 기억하며

 무동 탄 눈송이처럼 걸어오는 발자국


 떨리는 헛기침에 발만 동동 구르는데

 창박골 어디선가 분홍빛의 함박눈이

 별안간 뜨겁던 가슴 속 동백처럼 벌어져 






초원의 문장

          

 

 새끼가 어미의 몸 그 밖으로 나온 순간

 표범에게 목덜미 물어 뜯겨 축 늘어진

 평원에 초식동물들 탄생이자 죽음이다


 한 줄의 문장처럼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는

 이 간결한 초원 위에 그려지는 생명의 녘

 정박한 동물의 세계 삶의 트림 쿵쿵거려


 한 발짝 뛸 적마다 그 등을 밟고 가는 

 세렝게티 누와 얼룩 심장 소리 펌프질에

 먹잇감 혼비백산한 눈빛들이 잘려간다






토렴 국밥

       

 

 오래된 주인장의 국자 질이 어설프다

 한 번을 퍼 담고서 인심 좋게 또 퍼담아

 몇 번을 담았다 쏟기를 반복하고 또 한다


 모르는 눈빛으로 바라보면 의아하고

 퍼주기 아까워서 그러는 듯 보이지만

 익숙한 풍경으로는 그 모습이 정겹다


 추운 날 국을 풀 땐 할머니가 그랬듯이

 이 동작 익숙한 걸 나중에야 알게 되고

 음식을 먹기에 적당한 온도에다 맞춘 비법 


 세월 속 저만큼을 나앉은 오늘에도

 그런 날 기억으로 남아있는 토렴 국밥

 뚝배기 밥알과 국물에 식지 않을 뽀얀 기억






능금 꽃 희망 

 


 산비알 그 아래서 꽃향기로 그윽하던

 외로운 가지 끝은 들새 떼 날아 앉아

 하이얀 꽃잎 슬하에 피어나는 새순 소리


 해 뜨면 북을 주고 해지면 꿈을 꾸는

 해 고름 시작으로 애면글면 길어 올려

 까맣게 그을려 피운 햇살 먹인 옹알이들


 팔월의 뙤약 이고 동동 달군 단물 소리

 하늘이 땅에 묻은 비바람과 엉긴 세월

 초록서 익혀낸 날은 또 한 생을 길러 낸다


 산골짝 주렁주렁 매달리는 저 포만감 

 그리움 포개오는 빨간 색의 동요 소리

 옹골진 사과나무 꿈 쌓이도록 흥겨워라 






매화, 저 바보 같은 꽃 얘기

    

 

 이전에 열아홉 때 바람난 처녀같이

 2월의 추위 속도 모르고 피워낸 꽃

 어쩔까 철딱서니 없이 한껏 뽐낸 저 바보 꽃


 그래도 새벽녘의 찬 공기 갈라놓고

 조그만 꽃봉오리 터뜨린 용기 앞에

 반가운 마음도 들고 애틋함도 나부끼고


 한참을 혼잣말로 내 얘기 들려준다.

 네 아래 울 엄마가 시집와서 봄을 맞고

 예순 해 매실처럼 익다 또 하얗게 가셨지


 추웠다 따습다가 날씨 따라 오락가락

 그 곱던 꽃망울을 몽글몽글 익혀가며

 아 그때 고향 집 울안에 귀한 꽃은 엄마였지


 집 안팎 가꾸다가 외로움도 피우다가

 진분홍 물감 같은 황매화도 심으시고

 3월엔 홍매화 백매화 만개했던 엄마 꽃






빈집, 사라지는 것에 대한


 

 하루가 다르게끔 그늘만을 조여가며

 대꾸 없이 숨죽이던 그 집들 사라지고

 지루한 저 하늘가엔 빈 영사기 돌아가듯


 텃밭과 마을회관 코앞에 큰 감나무

 묵시록 풍경 같은 생생한 기억 멎어

 사람들 떠나고 나면 저리 쉽게 폐허가 돼


 훤한 낮도 집안은 빈방처럼 침침하고

 어두운 껍질 뚫고 바람만이 들락날락

 새처럼 울지 못한 밤 얼룩만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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