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명란(明卵)

  • 작성일 2023-03-17
  • 조회수 1,69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단편)]


명란(明卵)



이화리

여섯 번째 집이다. 지난번 그 집을 나올 때처럼 바람이 분다.

대상이 또 남성이라서 거절하고 싶었다. 센터장에게 눈치가 보여 혀끝에 매달린 말을 아래위 입술에 고루 발라 버렸다. 근무시간과 보수의 조건이 좋았다. 또 부딪쳐 보자.

다섯 번째 집에서는 세 번의 곤욕을 치렀다. 첫인사 차 들렸을 때, 정장을 입은 치마 속으로 환자의 손이 쑥 들어왔다. 방바닥에 누운 환자는 여든아홉 살인 거구에 깊은 주름마다 검은 정욕이 번들거렸다. 며칠 후 밥을 먹이는데 젖가슴을 잡았고, 손을 떼어 내려는 순간 가슴을 아프게 비틀기까지 했다. 마지막 날에는 기저귀를 빼고 닦는 동안 내 손을 끌어다 성기 위에 올렸다. 손은 크고, 손 매듭은 억셌다. 참을 만큼 참았다. 마감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센터로 오는 내내 되돌아가 환자의 손목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대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주었다.

센터장은 ‘육체’와 ‘인체’의 구분을 못 하는 내 탓이라 한다. ‘성기’가 아니라 소변만 나오는 ‘생식기’라는 말은 맞다. 발기가 없었다는 나의 대답에 동료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한 마디씩 던지는 충고나 위로도 텃세로 의심된다. 그들의 다양한 체험담은 필수의 간접 지식이라지만 초보자 여럿에게 써먹던 야유로 보였다. 모욕을 당하고 나와서 수모까지 감당하지 않으려면 나는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로 다른 쪽의 일자리는 꿈도 못 꾼다. 이젠 나이 때문에도 안 된다.

바람에 날린 머리칼이 무더기로 뺨에 감긴다. 내 머리칼은 유난히 굵은 건강 모발이다. 하필이면 첫날인데, 첫인상이 좋아야 하는데, 산발로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왼손으로 잡은 머리칼을 놓는 순간 바람은 머리칼 따귀를 세차게 때리고 만다. 따끔하다. 더 이상 이 집 저 집 다니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내 머릿속의 수화 같은 건지 모른다. 가방을 뒤적여 보지만 고무줄이 없다. 차를 지하에 주차하고 올라갔으면 괜찮을 일이다. 나에게 어두컴컴한 지하는 공포다. 습한 지하 방에 살아 본 트라우마 때문이다. 요즘 생기는 아파트는 아예 지상 주차장이 없어서 건너편 자그만 우체국 귀퉁이에 주차를 했다. 이런 소소한 버릇도 이제 고쳐야 한다. 센터장이 회의 때면 자주 그랬다. “우리 식구들 중 어떤 사람은 천당에 갖다 놔도 불평불만을 할”, 맞다. 다들 무던하고, 허허실실 성격이 좋은데 분명 나를 지칭하는 걸 안다. 나도 이번에는 이를 앙다물고 극복하리라. 장애물 경기에 일정한 크기와 부피와 모양만 있는 건 아니다. 센터장이나 동료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는 아둔하지 않다. 언젠가 그들을 능가해야 한다. 시간과 노력이 성공적인 나를 만들 것이다. 지겹지만 소중한 생활비가 되는 이 일을 한 지 일 년을 넘기고 있다.


나는 지은 지 22년 된 낡은 아파트에 산다.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의 공동 현관에서부터 나는 루저가 된다. 전화를 했더니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 앞에 가기 전 다시 현관이 있다. 전화를 하려는 순간 문이 열린다. 거울이 없어도 전체가 거울처럼 빛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 빗질로 머리를 가다듬고, 입꼬리를 올린다. 시험 문제가 절반 이상 틀려서 서너 주먹 쥐어박힌 듯 띵한 인상이 조금 똑똑해진다. 입꼬리만 올라간 게 아니라 눈도 크게 벌어져서 그렇다. 이번에는 커지기만 했지 맹한 눈에 웃음기를 덧씌운다. 눈가에 익숙한 주름이 잡힌다. 이 정도면 됐다. 흠흠, 이제 목소리는 곱고 말씨는 교양 있게. 이 집에선 청결하고 단정한 사람을 구한다고 했고, 센터장이 고맙게도 나를 지목했다.

입구에서부터 3개의 문을 거치는 것을 다 지켜본 듯 벌써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다. 나는 못 보는데 상대가 나를 다 보는 건 불공평하다. 아뿔싸, 이런 분석을 하는 사고방식부터 버려야 한다. 장갑을 벗으며, 나의 양손이 나를 번갈아 나무라듯 지그시 비튼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그녀와 나는 동시에 동일한 인상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서울말이다. 장년이 되어도 소녀의 말씨 같은 하이 톤은 맑고 싱그럽다. 의외로 젊어서 환자와의 관계가 모호하다. 부잣집답게 한겨울임에도 실내는 봄날 같다. 내일부터는 내복을 벗고, 실내복도 춘추복이라야 될 것 같다.

“여기 앉으세요. 커피와 홍차 중 뭘 마실래요?”

“네. 홍차 주세요.”

나 역시 반짝이는 목소리를 내려 했는데, 경상도 사투리는 억양부터가 글러 먹었다. 80여 평의 고급 아파트, 이런 집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다 기가 죽는다. 키 큰 기린 두 마리가 거실 창가에 서 있다. 산이 다가와 있어 마치 숲에서 막 나온 것 같기도 하다. 18평 우리 집엔 공짜로 줘도 놓을 데가 없는 티브이가 있고, 옆에는 화려한 장식의 코끼리 두 마리가 내 몸통 절반만 하게 건장하다. 비싼 티브이를 꼭 지키겠다는 일념인지, 주인 내외의 수명을 지켜주려는 신념인지 콧대가 중심에서 단호하다.

주방 옆의 편백나무 창살 뒤 다이닝 룸이 있다. 8인용은 족히 될 원목 식탁이 있고, 벽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보인다. 바탕이 음영 처리된 흑백사진은 더욱 고상한 품위로 무게감을 주지만 거리감 때문에 얼굴은 분별이 안 된다. 소파의 사이드 테이블 위 분청 항아리에 파스텔 톤의 꽃들이 전문가 솜씨로 풍성하게 꽂혀 있다. 식탁과 복도 콘솔 위에도 화사한 꽃들이 영화의 예고편처럼 새봄을 소곤거린다. 비싼 꽃값 때문에 나는 늘 꽃집 앞에서 멈추었다, 다시 걸었다. 걷다가 종종 뒤돌아설까, 망설이기도 했다. 어릴 적 우리 집 넓은 마당에는 동네에서 소문 난 크고 둥근 화단이 있었다. 장미꽃 송이 하나가 어린아이 머리통만 했고, 갖은 색상의 국화꽃들이 서리를 맞으며 꽃 대궐을 이뤘다. 한겨울이면 유리문 달린 마루에 어마어마한 대형 공작선인장에서 붉은 꽃들이 수십 개씩 피었다. 초저녁에 긴 꽃대의 꽃망울에 귀를 대면 타닥타닥 꽃잎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투어 피는 꽃말을 듣느라 나는 추위도 곧잘 견뎠다. 얼어 죽지 말라고 들여놓은 백합과의 구근들이 즐비한 마루에서 나는 해마다 이른 봄이면 움트는 새싹에도 귀를 갖다 대곤 했다. 정말 어떤 속삭임이 들렸는데 식구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내열유리 티팟과 워머가 테이블에 놓이고, 유리잔을 내리는 그녀의 가느다란 팔목부터 손가락까지 선이 곱다. 어른이 되어서도 걸레 한 번 쥐어짜 보지 않은 게 틀림없다. 집과 손이 무척 어울린다. 내 손등에는 노동으로 불거진 지렁이들이 눈치껏 숨어 있다. 워머 속 홍차는 붉은 노을빛으로 우러나온다.

“뜨거워요.”

워머를 기울여 내 찻잔을 채우며, 그녀는 여전히 맑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말한다. 나이가 얼마냐고 자칫 물을 뻔했다.

“네. 사모님, 홍차는 색이 참 예뻐요.”

첨엔 사모님, 사장님, 이 말을 하기가 무척 힘에 부쳤다. 이젠 그냥 또 하나의 이름이라 생각한다.

“그런가요? 남편은 지금 산책 중이에요.”

“아, 네. 먼저 만나 뵈어야 하는데.”

“이쪽으로 와 보세요. 지금 단지 안에서 산책 중이라.”

하늘색 바탕에 연노랑 리본과 연한 고동색 구치 문양이 연속적으로 꼬인 드레스에 키가 큰 뒷모습은 훨씬 더 젊다.

“네에.”

“저어기, 분수 옆에, 보이죠? 가끔 전동차를 타기도 하고, 부축해 주면 지팡이로 아주 천천히 걸어요. 크게 어려운 건 없을 거예요.”

“아, 네. 보여요.”

아까보다 사무적인 목소리여서 나도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 집은 7층이지만 로비가 있는 1층을 빼면 주거 6층이다. 기저귀를 갈지 않고, 체형이 거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걸음이 느리면 어떤 날은 배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시급 만오천 원, 육 개월 근무 시 특별 보너스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월급은 오를 거예요. 출근 결정되시면 오늘 계약서를 쓰고요.”

아까보다 조금 더 사무적이며, 고압적이지만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게 프로다.

“네. 특별, 들었어요.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계약서는 사모님께서 저희 사무실에 가셔서 센터장님과 함께 작성하시면 됩니다.”

환자의 상태와 조건이 다 좋은 면접에 통과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지그시 참으며, 그녀의 사무적인 어투와 유사하게 흉내 냈다.

“지금 마트에 간 가사 도우미 선생님께서 내일 주임 요양사 선생님을 소개해 드릴 거예요. 세 분이서 교대 근무라는 건 아시죠? 가사 도우미 선생님을 우리 집에선 가쌤, 요양사 선생님을 요쌤, 이라 줄여서 불러요.”

“네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아까보다 덜 사무적이며 조금 웃었고, 나도 밝게 대답했다. 그녀의 표정에 따라 움직이는 나는 마리오네트 인형이 되었다.

“이제 가도 됩니다.”

“아, 네.”

온 김에 남편 분을 만나 인사라도 드리고 가면 어떨지요? 라든가, 또는 남편 분 산책 중이신데 제가 가서 인사드리고 갈까요? 라는 말을 생략했다.

나에 관한 어떤 질문도 없이 면접은 짧다. 이는 내가 대단히 만족스럽기보다 실질적으로 써 보고 여차하면 또 바꿀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소파에서 신발장까지 거리가 한참 길다. 번쩍거리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나를 칭찬한다. 남들보다 늦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구질구질 긴 말을 안 한 것도 프로다워지는 것 같다.

내 직업은 요양 보호사다. 1년밖에 안 된 짧은 경험이지만 대체적으로 부자들은 말이 짧다. 상대가 함부로 질문하거나 말이 긴 걸 극도로 싫어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오만과 도도함이 극에 달한 그들은 정말 쓸 말만, 제 할 말만 했다.

부자들은 일찍 귀가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밤늦도록 흥청망청 유흥가를 헤매고, 천박한 돈 자랑에 빠진 졸부들과 달리 대대로 내림 부자들은 매사 안정감이 있어 언행이 일목요연하다. 방금 본 사모님처럼 언행뿐 아니라 몸 전체에서 풍기는 품격이 벌써 다르다. 아주 예의 바르고 친절하지만 그들과 우리가 대등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나의 말에 네, 라는 공감의 대답도 생략했다. 도우미는 불가피한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거래 관계다. 노동력을 제공받고, 금전으로 지불하는 지극히 적절한 타산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에서 흘러내린 음악 소리가 1층 입구까지 적셔 흥건하다. 트로트의 가사는 농밀하고 끈적인다. 선율은 감당 없이 나오는 실리콘처럼 물컹하고, 발성은 척척 감기는 문어의 흡반 같다. 나는 이 음악이 어렵거나 쉬운 것과 무관히 너무나 싫다. 아시아에서도 독특한 장르의 트로트라지만 내 취향이 아니다. 아마 여럿이 함께 부르는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어그 부츠의 바닥에 지그시 뭉개지는 겹겹의 음계들이다. 트로트는 남편의 취향이다. 코로나로 사방이 단절되는 판에 신흥종교처럼 등장한 트로트에 열광하는 이들이 엄청 불어났다. 센터의 동료들 컬러링도 전부 트로트 일색이다. 집이나 직장이나 티브이에서는 종일 트로트가 간드러진 유혹을 하지만 나는 싫다. 클래식 마니아인 나하고 남편은 안 맞다. 1년 내내 책 한 권 안 읽는 남편과 1년 360일 책을 읽는 나는 맞는 것보다 안 맞는 게 더 많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너무 착하다.

도어를 돌리는 순간, 볼륨이 급격히 낮아진다. 갑자기 토종벌 날갯짓이 된 트로트는 흘러내리는 꿀처럼 끈적거린다. 현관에서 거실까지 길이가 한 팔 갸웃하다. 좀 전 방문한 집에서 원거리로 늘어났던 시야가 급격히 축소된다.

소파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난 게 분명한 남편은 뒤통수의 까치집을 손보느라 바쁘다. “어? 일찍 오네? 마이 춥제?” “응. 괜찮아.” 나는 일부러 못 본 척, 등 뒤에 대답만 남기며 욕실로 향한다. 손만 씻으려다 코로나 감염 걱정에 샤워까지 한다. 다 아는데,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이 순수한 남자는 매일 나의 귀가에 어떤 성의를 보인다. 그게 외려 불편하다. 조금 무심해도 된다. 이런 생각이 든 건 불과 4년 전부터다. 남편의 노고쯤은 당연지사로 여기던 전업주부인 내가 노동자가 되고부터다. 그 당연지사는 나의 고생보다 훨씬 길다. 남편이 가장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한 건 무려 30여 년이다.

교통사고로 골반이 크게 부서져 척추가 비틀린 남편의 현재 모습은 어쩌다 골목에 버린 쭈그러진 깡통 같다. 비바람에 쓸려 군데군데 녹이 쓸고, 재활용으로도 부적절한 그런 상태다. 재활 운동 삼아 하루 두 시간 산책을 하느라 눈가와 손등과 팔에 자잘한 잡티가 녹이 슬 듯 불어나고 있다. 꼿꼿하던 등이 오랜 다리미질로 굽고, 탄탄하던 엉덩이는 스프링 깨진 소파처럼 푹 꺼졌다. 당장 버려도 주워 갈 사람 하나 없을 남편의 현재 모습이다.

나는 가끔 잠든 남편의 모습에서 아득한 젊은 날을 덧씌운다. 참 반듯했다. 새로 개설된 은행 지점의 모든 시설은 새 형광등 아래서 반짝반짝 윤이 났다. 갓 취업해 하얀 와이셔츠와 감색 양복이 무척 잘 어울리던 뽀얀 얼굴의 청년이었다. 동글한 얼굴에 웃으면 덧니가 귀여운 남편을 더 좋아한 건 나였다. 나이가 세 살 더 많은 내가 연애에 주도적인 건 자연스러웠다. 불과 5개월 만에 결혼했다. 남편은 엄청 순수했고, 내가 첫사랑이었다. 나는 서른을 갓 넘겼고….

아무튼 8년 후, 나라의 기둥뿌리가 흔들린 IMF를 맞았다. 남편은 권고사직으로 쫓겨났다. 초등 1학년과 유치원생 딸 둘이 있었다. 종일 마주 보는 하루가 48시간으로 부풀려지자 할 말의 간격도 그만큼 커졌다. 몇 달 뒤 그는 친구의 주유소를 헐값에 인수한다며 무척 들떴다. 대출이 꽤 많았고, 돈을 만지던 사람은 돈의 출납에만 민감했다. 싸게 산 것은 영업 시작 전 이미 이익이 창출한 걸로 여겼다. 반경 8km 안에 주유소가 3개나 있는 환경 평가는 예외였다. 기름밥을 먹은 경험이 없었기에 나머지 두 주유소 사장들과 형님, 아우로 잘 지냈다. 그들은 수시로 기름을 빌려 가고 갚기를 거듭했다. 다들 어려운 시기였다. 남편은 유류 값의 파동 정보에 약했다. 기름을 빌려주고 나면 어김없이 값이 뛰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어서 수업비를 톡톡히 지불한 셈이다.

나라의 큰 기둥이 휘청거리자, 서까래 같은 대기업들도 부대끼고, 부지런히 마당을 기어 다니던 일개미들의 집이 사라졌다. 자가용 보유가 최고조에 이른 때였지만 더 이상 환호를 지르며 여행을 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터질 듯 실은 짐을 비집고 내려 주유소 식당으로 몰려가던 풍경이 점점 멀어졌다. 붕괴되는 도처에는 이혼과 자살이 흔한 소문의 유행이 되어 버렸다.

이 집 기름의 연비가 유독 나쁘다는 무례한 평가를 던지는 손님들이 자꾸 많아졌다. 발길이 뜸해진 주유소 마당 곳곳의 온갖 풀들이 돈도 안 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시멘트 바닥의 균열이 그토록 많은 줄 몰랐다. 깨진 틈마다 자란 풀들이 비웃듯 꽃을 피웠다. 통장은 비고, 잡풀은 빼곡했다.

경매 직전 똥값으로 주유소를 처분한 뒤 누군가 그랬다. 지하 기름 벙커에 물 몇 톤을 쏟아부어도, 진짜 기름이 더 많은 기름이라고. 그러니까 비싼 원액 기름을 빌려주고, 기름 섞인 물이나, 또는 물 섞인 기름을 되받은 셈이었다.

불과 4년이 채 못 되어 우린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었다. 남편의 순수한 눈에 담긴 체념은 그래도 맑았다. 잠시 가장의 역할을 내리고 칩거하더니 낚시를 다녔다. 후줄근한 점퍼에 탄 얼굴은 실업자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아이들은 장마의 죽순처럼 날로 자랐다. 몸만 편한지 반년이 지났다. 이때 등장하는 이들이 가족이다. 흰 와이셔츠와 감색 양복이 무척 어울리던 남편은 매일 남의 와이셔츠와 양복을 만지는 일을 시작했다. 누나와 매형이 경영하는 세탁소에서 기술을 배웠다. 원래 성실한 사람은 늘 성실한 법이다. 시아버지의 땀을 머금은 네 마지기의 논이 팔리자 우리 세탁소가 생겼다. 나는 이웃 아파트를 다니며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는 일을 거들었다. 당시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가 대부분이라 몇 달 만에 무릎 관절이 부어서 그만두었다. 다행히 장사가 잘되어서 은행에서 함께 퇴직했던 후배를 불러 둘이서 세탁소를 꾸려나갔다. 재봉을 배워 수선까지 겸했던 남편은 늘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왔다. 바느질 솜씨가 맹탕인 내가 수선 부분을 거들어 볼까 했지만 날로 번성한 세탁소는 내가 끼어들 틈조차 없이 옷들이 즐비했다. IMF 여파로 이혼율이 사상 최대였던 그즈음, 남편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걱정하며 전업주부의 자리를 지키길 원했다. 노동에 서툰 나를 위한 배려였다. 흔한 바람 한 번 안 피우고, 잡기에 빠져 속 한 번 안 썩힌 남편이다.

남편의 교통사고 후, 노동이 생소한 나는 대형 골프장 구내식당에 취직했다. 예순이 다 된 여자가 찾는 일거리는 한정되었다. 일이 서툰 탓에 태산 같은 설거지와 식자재 손질 등 매일 실수를 해 댔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방법은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일반 식당의 서빙과 설거지를 겸해야 하는 조건도 나는 싫었다. 쟁반을 들고 남자들의 술 시중을 드는 일은 정말 하기 싫었다. 환자의 불결함이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요양사인 친구 승희의 봉사 정신 권유로 택한 것이 요양 보호사다. 우리도 머지않아 더 늙을 테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자격증은 땄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해서 직업이라 말할 처지도 못 된다. 승희처럼 거룩한 희생정신도 요원하다. 그간 사업체 구내식당 등에서도 진득하게 일을 못 한 탓에 경제 사정이 엉망이다. 이번 달 가스 요금을 미리 걱정하느라 최대한 온수를 아껴 쓴다. 샤워는 금방 끝났다. 며칠 쉬어서 그런지, 새로운 일자리의 조건이 만족스러운지 내 얼굴이 맑다.


이른 아침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이 내 나이에는 요행이다. 아예 저녁때까지 먹을 소고기뭇국을 넉넉히 끓였다. 김장 김치와 정말 어울리는 겨울 소고기뭇국은 대충 끓여도 맛이 좋고 싫증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남편이 즐겨 먹어 자주 끓인다. 음식 솜씨가 신통찮은 나에게 흔한 투정이나 핀잔조차 없어서 요리가 늘지 않는다고들 한다. 신혼집에 들른 친정엄마에게 남편이 그랬다. “짜면 적게 묵고, 싱거우면 많이 묵으면 되니더.” 얼마나 합리적인 대답인지 친정 친척들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칭송이다. 이런 남편이다 보니 우리는 아직 부부싸움이란 걸 딱히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취향이나 견해가 달라도 몇 차례 옥신각신 주고받다 만다. 내가 제법 주장이 세고 까다롭지만 성격 좋은 남편에게 문제 되지 않는다. 남편의 성품은 화목한 시부모님의 가풍에서 잘 배운 것 같다. 나는 일면 외통수인 아버지 경향이 있다.

출근 가방이 1박 2일짜리 여행 가방만 해졌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마당에 감기에 걸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출퇴근 시는 내복을 입고, 그 집 실내온도에 맞는 얇은 실내복을 별도로 챙겼다. 황사94 마스크 5개들이 한 봉지와 혹시 청소나 환자 목욕 시 젖으면 갈아 신을 여분 속옷과 양말, 내가 쓸 타월과 미끄럼 방지 덧신까지 꼼꼼히 챙긴다. 잠시 쉬는 시간에 읽을 시집도 한 권과 소설 한 권도 가방 옆에 끼운다.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김선우 시인의 소설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1』이다. 시집은 백 번을 읽어도 행간의 숨은 뜻을 되새기느라 늘 새롭다. 『발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요석과 원효의 사랑이 안타까워서 중고 사이트에서 샀다. 대학 국문학과 2학년을 다니다 자퇴한 나에게 문학은 늘 갈증이다.

지난번처럼 혹시 또 있을지 모를 성추행을 떠올리며 차에 시동을 건다. 그들은 환자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동료들의 충고도 되새겨 본다. 우리 부부는 제 가정 건사하기도 힘든 아이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를 약속했다. 술 담배도 모르고, 허튼짓도 없는 남편이다. 우리 둘의 노령연금과 국민연금으로 보험과 적금과 공과금, 차량 유지비는 해결되고, 생활비는 나만 잘 견디면 보충된다.

요양사가 된 이후 가장 마음에 드는 조건의 첫 출근이다. 환자가 남성이라는 그 점이 걸린다. 할아버지들을 돌볼 남성 요양 보호사가 현저히 적은 현실이다. 보호자들은 일부 소소한 집안일까지 맡겨야 하기에 남성 요양 보호사를 선호하지 않는다.

나의 첫 환자도 남성이었다. 나를 그 집에 배치한 것은 일종의 트레이닝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의심이 든다. 재산이 수백 억대라는 어르신은 한사코 요양 병원을 거절한다고 했다. 주로 큰 며느리가 그 비위를 다 맞추며 간병을 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뼈대가 아주 큰 편인 어르신은 심장 제세동기를 달고 있고, 치매 중기를 넘어섰다. 성격은 괴팍하고 인정머리가 없어 수시로 요양 보호사가 바뀌었다. 변을 못 참는 탓에 변기 앞에서 바지를 내려 주는 도중 팔뚝만 한 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물론 가는 도중에 싸기도 했다. 세 끼니마다 고기를 드시고, 식성이 무지 좋아서 옛날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그득하도록 먹었다. 변 냄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겨우 일주일을 넘긴 어느 날은 누운 채 변을 보았다. 빨래를 널고 욕실 청소를 다 끝낸 뒤 발견한 탓에 변의 일부가 마르는 중이었다. 그날따라 환자는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남성 환자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사타구니는 체온이 높아서 터럭들 사이마다에 변 찌꺼기가 끼어 마르기에 불려 가며 닦아 내야 한다. 거기다 커다랗게 늘어진 생식기와 물컹한 고환을 들치고 구석구석 닦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황사 마스크를 겹으로 끼고, 니트릴 장갑을 두 겹으로 끼지만 냄새는 내 전신을 캡슐로 가두었다. 전신만 아니라 머릿속 뇌까지 똥 냄새에 절여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이 어르신은 고환 망태기가 두 개인 줄 알고 처음엔 기겁을 했다. 고환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혹이 있어서 물티슈 한 통을 다 쓰고도 온수 타월을 몇 개나 썼다. 방안에서 집안으로 번져나간 악취를 뚫고 퇴근한 뒤 나는 그 집을 더 이상 가지 못했다. 두통은 사나흘 계속되었다. 다음 집은 사사건건 명령하고, 일거수일투족 간섭하는 할머니 때문에 극심한 탈모가 와서 그만두었다. 그다음도, 다음도, 너무나 부당하고 불쾌한 일들을 겪었다. 내가 선택한 직종에 나 스스로 사회 부적응의 위기를 느끼던 참이었다.

오늘도 지하 주차장은 내키지 않아서 우체국 귀퉁이에 주차를 한다. 출근 전 시간대라 공간이 넉넉하다. 나는 우체국만 보면 어떤 추억을 떠올린다. 사랑을 하는 동안 우체국이 아니어도 자주 얼굴이 붉어졌다. 해외 우편요금이 무척 비싸서 봉함엽서 3면에 빼곡히 사연을 채웠다. 연한 하늘색 해외 봉함엽서의 가장자리는 빨강 파랑 빗금이 그려져 있었다.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부치고, 다음에 쓸 새 엽서를 살 때면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아직 답장이 도착할 날짜가 아닌데 벌써부터 우편배달 아저씨의 낡은 자전거를 기다렸다. 오래되어 귀퉁이가 다 낡고 누런 우체부의 가죽 가방처럼 내 사랑은 길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새 엽서를 사지 않았다. 대신, 이별이 아파서 눈물로 일기를 썼다. 또 봉함엽서를 사게 될까 봐 우체국을 피해 먼 길을 돌아다녔다. 새빨간 거짓말 같은 우체통이 나의 이별을 번복할 것만 같았다. 우체국은 나의 비밀을 함구해 준 젊은 날의 친구처럼 볼 때마다 반갑다.

어제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가사 도우미가 받는다. 저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제법 고압적이다. 텃세인가? 가사 도우미가 시키는 대로 몇 개의 문을 통과 후 벨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려 있다.

“안녕하세요. 좀 일찍 오셨네요.”

“첨 뵙겠습니다. 삼십 분 미리.”

“내일부터는 시간 맞추세요. 당겨 오는 것도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오 분 정도면 몰라도.”

“예. 알겠습니다. 물을 좀 마시고 싶은데요, 잔을 좀.”

“저쪽에 정수기, 그 아래 장식장에 컵이 있어요.”

“예. 감사합니다. 아침에 짜게 먹었는지….”

묻지도 않는 설명을 곁들이며, 나는 시종 미소를 띠었다. 이 집에 오래 근무해야 하고, 누구하고든 잘 지내야 한다.

머그잔을 꺼내고 정수기에서 물을 내려 마시며, 나는 가족사진 앞으로 자석처럼 끌려간다. 물 잔을 든 채 한발 다가서는데 저분은, 저 사람은…. 안면이 있다. 그냥 안면이 아니고, 닮았다. 어쩌다 불쑥 떠오르던 얼굴, 알 것 같은, 그, 같다. 좀 전 우체국 앞에 주차하면서 잠시 생각한 그와 같은, 그와 닮았다. 당시 캐나다의 어느 대학 교환교수였던 그는 혼자 귀국한 기러기 아빠였고, 우린 어른이 되어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이별 이후 그는 다시 캐나다로 갔다. 분명 이민이라고…. 내가 보낸 엽서는 캐나다의 어느 대학교로 갔다. 그가 돌아올 수도 있다. 고향이니까, 누구나 나이가 들면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들 한다. 만약 그라면, 정말 그라면…. 다리의 떨림이 스르륵 복부를 거쳐 양팔로 퍼진다. 잔을 식탁에 내린다. 혹시 정말 그가? 만약 그라면….

연대의 두서없이 마구 엉키던 기억의 끄나풀 중 마지막에 흘러내린 하나가 잡힌다. 그는 무척 미안해했다. 우린 그날이 마지막임을 충분히 알았다. 이별을 베고 잠들기는 뻔뻔했다. 울지 말라면서 우린 울었다. 다시는 못 볼 거라면서 다시 보고 싶었다. 슬픔의 절망을 달랠 길은 우리의 알몸뿐이었다. 몹시 그리울 날들을 위해 오래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온몸이 눈물에 젖었다. 우리의 사랑은 자유롭지 못했기에 이별 또한 예사롭게 슬프지 못했다. 마치 반 통의 물처럼 ‘물이 반이나 있네.’ 한순간도 감사해야 했다. 늘 가슴의 절반 수위에 사랑을 채웠다. 나머지 절반은 내가 다 가질 수 없는 그를 위한 배려였다. 그도 나처럼 절반의 사랑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우린 서로 엄연한 현실을 무서워할 줄 알았다. 나는 속으로만 내 사랑이 미안했고, 그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미안하다는 건 비어 있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어떤 기억은 의외로 질기다. 삶의 풍파에 쓸려 보풀이 일지언정 결코 툭 끊어지지 않는 기억은 그 시간의 진정성에서 오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운 것은 잘 연마된 보석처럼 깊이 간직된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사진 속의 남자를 세밀히 분리해서 본다. 조금 큰 눈, 먼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 흰자를 절반 가린 눈꺼풀, 긴 주름을 물고 있는 눈꼬리, 그 위에 희고 검은 눈썹은 숱이 엉성하다. 조금 길고 큰 코의 콧잔등은 선이 좀 무뎌졌다. 인중의 가운데 패인 선도 흐릿하다. 대신 입가의 팔자주름이 깊고 선명하다. 입술, 그의 입술과 가장 닮은 건 입술이다. 오므리면 윗입술이 약간 더 두툼해서 귀여웠는데 사진 속에서는 일자로 얇게 펴져 있지만 닮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다. 잘 간직했다 생각한 그리움들이 지우개 밥처럼 흩어져 버렸나. 정말 연필 자국마냥 흐릿하다. 뒤로 주춤 물러서 전체 모습을 본다. 앉아 있어서 키를 알 수는 없지만 어깨와 팔다리의 길이 등은 모호하다. 무릎에 단정히 얹힌 손도 주먹을 쥐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키가 컸던 그에 비해 사진 속 남자는 보통 체격으로 보인다.

“저기요, 저기요, 물 다 마셨으면 이쪽으로 오세요.”

가사 도우미가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보세요. 요양사님! 인수인계 받으셔야죠.”

나와 교대할 요양 보호사가 제법 크게 불렀을 때 정신을 차렸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거듭 말했다. 처녀 적부터 나의 신조는 죄송, 미안, 이런 단어를 쓰지 않기 위한 완벽주의였다. 생활 전선에 나서면서 그런 게 무너진 지 오래다.

“컵은 주세요.”

“제가 씻어야 하는데.”

“괜찮아요. 일 보세요.”

가사 도우미는 아까보다 나긋하다.

“저쪽으로 가요.”

나보다 10년은 젊은 요양사가 서편의 복도로 향한다. 흰 면직 에이프런을 입었고, 곧은 등의 뒷모습도 프로페셔널하다. 그래, 저래야 한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프라이버시가 바로 저런 당당함이다.

“예예. 가족사진이 하도 화목해 보여서, 그만.”

새빨간 거짓말이 불쑥 나온다. 사진을 보는 순간 복원되는 기억 때문에 화목은 생각조차 안 했다. 다른 가족들은 제대로 안 봤다. 옛날에 그의 지갑에서 보았던 아이들 얼굴도 살피지 않았다. 혹시 그라면…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며, 발바닥도 쩌릿쩌릿하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환해진다. 높은 층고의 천정까지 닿는 기역자 붙박이 책장에 책이 빼곡하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얼핏 봐도 영문 원서들이 일반 서적보다 더 많다. 도서관에 들어설 때처럼 책 냄새를 맡으려고 심호흡을 하자 상쾌한 향기가 반기듯 품에 안긴다. 환자의 방답지 않게 실내가 청량하다. 부자들은 거의가 정리 정돈에 철저하며 청결하다. 우람한 오크 책상이 놓인 방은 리모델링을 한 듯 대학의 강의실만큼 크다. 책장을 뺀 나머지 서쪽 벽은 대형 유리창으로 산의 능선들을 그림처럼 보여 준다. 노을이 질 때 저 창은 박대성 화백의 ‘삼릉비경’에 버금갈 대작이 될 것 같다. 창 아래 환자의 하얀 침대와 좀 떨어진 곳에 역시 하얀 시트의 요양사 침대가 마치 모형처럼 작아 보인다. 두 침대 사이에는 소파와 테이블로 구분되어 있다. 짙은 초록의 전나무들이 빼곡한 산과 노랑 소파의 배치는 마치 개나리 만발한 꽃밭 같다. 골마루로 된 플로어에 가구들이 설치미술처럼 놓인 멋진 방이다.

“교수님, 새로 오신 분입니다. 인사받으세요.”

교수님? 우연인가? 우연일까? 아니다, 정신 차리자. 나는 절박하게 일자리를 구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 …저 머리, 저 검은 생 머리칼은, 저 단발머리의 여자는….

“오늘부터 선생님을 돌봐 드릴 요양 보호사 석혜란입니다.”

살은 빠지고, 얼굴의 균형이 무너져 사진보다 낯설지만 영 낯설지는 않다. 갑자기 심한 복시(複視) 현상으로 환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나의 기억 중 아주 먼 날부터, 이별의 그날이 낡은 필름으로 동시에 풀린다. 아이와 어른, 노인의 세 가지 형태가 뒤섞인다. 순식간에 불려 나온 기억들은 제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인화지가 잠긴 암실의 물속이다.

- 석혜란, 석혜란, 석,혜,란, 이 흔치 않은 이름이 나의 귓속을 맴돌다 세반고리관에 한 개씩 걸린다. 이 이름을 알 것 같다.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듣기만 한 게 아니라 불러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불러 본 것만 아니라 그리웠던, 아프게 그리웠던 너… 혜란아! 혜란이가 내 앞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슴에 들어찬다.

“커피 한 잔 가져올 테니 방 구경하고 계세요.”

“아, 아, 네네.”

물에 잠긴 그림 속에 생각을 담근 나는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책장의 군데군데 감사패들이 놓여 있다.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간다. 정치 외교학 박사 서정호 교수. 이런 우연은 비현실적이다. 이런 우연은 가혹하다. 가슴에 서늘한 칼날이 들어와 심장을 통째로 도려내는 듯 오싹하고 아프다. 주임 요양사가 전율이 돋은 나의 팔을 위로하듯 뜨거운 커피를 건넨다.

“말씀을 거의 못 하세요. 가끔은 서툴게 한두 마디 하시고요. 혼자 한국에 나오셔서 계실 때라 너무 늦게 발견되었나 봐요. 뇌출혈 시 왼쪽 뇌 손상으로 오른 팔다리 마비에 왼쪽도 거의 힘이 없어요.”

“네에〜에〜에〜.”

숨길 수 없다. 이 짧은 한마디가 스키드마크처럼 목젖을 긁는다.

“어디 불편한가요?”

“아, 목이, 아아, 아닙니다.”

“얼굴이 좀 창백해요.”

“아침 먹은 게 체했는지. 괜찮아요.”

연습도 없는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사모님께서 요양사님 나이가 있지만 건강하시다는 자기소개서를 믿고 채용했어요. 어제 그만둔 분도 여기저기 아파서 잘렸어요.”

“아니에요. 전 정말 건강해요. 사모님께 인사드려야 할 텐데.”

사모님, 세 음절에 갑자기 목구멍으로 원기둥의 눈물이 가로막는 걸 간신히 밀어 내린다.

“네. 사모님은 아침 일찍 서울 집에 가셨어요. 아무 연고도 없는 여기 계시기엔 너무 지루하셔서, 일 년 중 몇 달은 아들들이 사는 캐나다 집에 가세요. 서울 친정집에도 캐나다 오가시는 동안 머물고, 골프를 좋아하셔서 친구들과 필드에 나가시느라 주로 서울에 계세요. 요양사님 건강은 믿어 볼게요. 거짓말은 이내 탄로가 나니까요. 저기 수납장 약통에 소화제 종류별로 있으니 찾아 드세요.”

“네에에. 고맙습니다.”

사실 눈앞이 흐리고, 기억과 현실이 나선형으로 꼬이며 울렁거림이 심했지만 나는 새로 발견한 능력처럼 거짓말을 잘하고 있다.

“교수님 화장실 가시면 볼일이 끝날 때까지 부축해 드리고 뒷마무리까지 해야 하니 곁에 꼭 계셔야 되어요. 전에 한 번 사고 난 적 있어요. 특별히 신경 쓰시고요. 여기 제가 꼼꼼히 정리한 수칙들을 출력해 놓은 게 있으니 잘 읽고 실수 없도록 하셔야 해요. 교수님도 사모님도 굉장히 위생적이고 정갈하세요.”

“네. 저도 결벽증이 좀. 염려 마세요.”

“건성건성 시간만 때우다가 잘린 사람 많아요. 일에 비해서 보수가 최상이니 정직하게 일을 하시기 바라요. 액수를 지금 알려 드릴 수 없는데 일 년에 두 번 보너스 받으시면 놀라실 거예요. 저도 같은 입장이지만 교수님 병이 나신 후부터 쭉 근무했어요. 그래서 사모님은 저를 주임 요양사로 불러요. 그냥 줄여서 ‘주요쌤’이라고. 8시간씩 총 3명의 요양사가 교대 근무로 교수님을 간호해요. 그동안 오신 분들 중 연세가 가장 많아서 좀 조심스럽네요.”

“아, 네. 주요쌤, 선배이시니 그냥 개의치 마시고 뭐든 시키세요.”

이번에도 나는 개펄 같은 심정을 숨기고 가성을 잘도 만든다. 곧 뛰쳐나갈지 모르는데, 이런 맞장구라니, 아무래도 내 정신이 아니다.

환자 침대 발치의 긴 수납장 서랍마다 상세 내용물을 적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주요쌤은 일일이 열어 보이고, 방에 딸린 욕실까지 안내한다. 환자 샤워 전용 의자가 있는 큰 욕실에는 편백향이 진한 사우나까지 있다. 사우나에는 밖에서 전신을 볼 수 있는 통유리가 있다. 사우나 사용 시간과 방법까지 상세히 적힌 수칙 노트를 보고 있는데 글씨는 무겁고, 마음은 자꾸 창밖으로 달아나려 한다. “보이는 쪽보다 보이지 않는 쪽까지 철저한 위생 관리와 물품의 제자리 정리 정돈”을 거듭 당부한다.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대 시트 교체와 방 청소, 세탁이다. 다음은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욕창 예방이다. 스팀 온장고의 뜨거운 물수건으로 전신을 마사지하듯 혈액순환을 시키는데 속옷도 다 벗긴 상태에서 한다. 이어서 근육을 풀어 주기 위해 일본산 천만 원짜리 안마 의자에 앉혀 운동을 시킨다. 점심 식사 후 30분 산책한 뒤, 10분간 사우나가 끝나면 비누 없이 미온수로만 땀을 씻어 준다. 중간중간 건강식품과 제시간에 약 챙겨 먹이기도 있다. 건조기에 나온 세탁물 정리도 내가 할 일이다. 오전 9시부터 근무하고 오후 5시 퇴근까지 빽빽한 스케줄이다.


모든 이야기를 새겨듣는데 한편으론 뭉근히 삭아 버린다. 머릿속이 이등분으로 자른 사과처럼 양분된다. 한쪽은 멀쩡한 사과이고, 나머지 한쪽은 물러 터진 사과다. 그를 돌볼 수 있음과 없음이 사과 속처럼 데칼코마니다. 썩은 사과는 버려두고, 멀쩡한 사과를 깎듯 사각사각 주요쌤의 말들이 돌려 깎기로 베어지고 있다. 싱싱한 사과조차 나는 먹을 수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과 알레르기가 있다. 첨엔 근질거리던 입술이 나중에는 안에서부터 부풀고, 아릿하게 메스꺼우며, 목 안이 가렵다가 심하면 구토증세가 온다. 특히 붉고 향이 좋은 사과일수록 증세가 심하다. 신 푸른 사과는 덜하다. 탐스럽고 맛있는데 먹으면 불편한 과일이 사과다.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한때 그토록 그립던 사람이다. 주 6일을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 근데 어쩌라고. 나에게 금기였던 그의 집에 들어와 그를 바라보고, 그를 만지고, 우리의 젊은 날 한때 불타던 가슴은 재가 된 지 오래인데…. 이별 이후 많이 울었었지. 오래전 말라 버린 옛날의 눈물들을 이제 와서 어쩌라고. 기록조차 남길 수 없었던 불의한 눈물, 그 눈물들의 온도조차 잃어버렸는데…. 한때의 사랑을 불러내 애타던 당신을 돌볼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한순간도 미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 어떤 이해타산도 없어 원망조차 해 본 적 없지만, 우린 불온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우린 묵언 속에서 이별을 완성시켰다.

- 혜란아, 내가 얹어 준 봉숭아 꽃물의 손톱이 예쁘던 혜란아. 넌 아직 내 가슴 속에 물들어 있다. 이렇게 널 만나다니. 너는 삶이 아프고, 나는 몸이 아프게 만나네. 그래, 우린 첨부터 어긋난 자리에서 살았지. 나는 네가 사는 안채의 골기와 집이 부러웠고, 내가 사는 문간방 행랑의 지붕 낮은 셋집이 부끄러웠다. 네 아버지가 장대 끝에 매달린 망태로 홍시를 딸 때,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흙모래가 묻은 터진 것들을 주워 먹었다. 여름날 평상에서 밥을 먹던 너희 집 밥상 위의 명란찜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평상 가에 자주 서성였단다. 가마솥 쌀밥 향기가 스미도록 쪄낸 명란의 냄새에 침을 삼키다가 엄마에게 끌려가며 등짝이 아프게 맞았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가던 방문턱에 엄마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걸 나는 봤어. 맞은 나는 안 우는데 때린 엄마는 오래 울었지. 내가 여덟 살 때 네가 태어났고, 여동생이 없는 나는 걸음마 하는 네가 예뻐서, 장독 옆 함박꽃처럼 화르르 웃는 네가 예뻐서, 자꾸 업어 주었다. 너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였을까?

“저 퇴근해요.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반찬이 명란이에요. 밥을 거절하실 때 명란을 얹어 드리면 잘 드세요. 가쌤 솜씨가 좋으셔서 다양한 명란 요리가 나올 거예요.”

잠깐 사이 주임 요양사는 몰라보게 우아한 정장을 갈아입었다.

“네에.”

대답이 들리기나 했을까?

재작년에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명란을 보면 그랬다. “혜란아, 니 정호 생각나나? 가가(그 애가) 대학교수가 댄단다. 참말로 미꾸라지 용댔제. 옛날에 우리 식구들 여름에 입맛 없일 때 내가 맹란찜을 한 양지기썩(양푼씩) 맹글었다 아이가. 정호 가가 애릴 때 춤(침)을 질질 흘리믄서로 폥상 가에 붙아 있다가 적 엄마한테 붙잡히가 뚜대리 맞디마는, 대학교수가 댔이까네 인자 실컨 묵을 끼라. 한 달이 길믄 한 달이 짧다고, 참말로 걸비 겉이 산 가가 그래 잘 댈 줄은 몰랐다 아이가.” 나의 부모님은 인심이 야박했다. 가난한 부모 형제에게 매몰차게 눈 감고, 모르쇠로 귀 막으며 인색했다. 누구도 모르게 안방 벽장 그득히 돈을 쌓아 모으며, 늘 돈이 없다고 앓았다. 돌고 돈다는 돈은 갇혀서 질식하다 끝내 뜨겁게 타 죽었다. 빈집에서 저지른 막내 남동생의 불장난으로 집은 그을린 기둥만 남겼다. 정호 오빠네를 내보내고, 우리가 행랑채 문간방에 살았다. 이후, 부모님은 하는 일마다 실패만 거듭했다.


나를 업어 주고, 내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올려 주던 정호오빠는 눈을 감고 있다. 호흡이 불규칙해서 잠이 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뛰는 왼 가슴에 가만히 손을 올린다.


이별 이후 긴긴 시간,


투명한 보석으로 연마된 한때의 시간을 목에 걸고,


주연인 당신 아내 앞에서,


나는 아카데미 조연상을 탄 여배우처럼…


나는 아카데미 조연상을 탄 여배우처럼…

작가소개 / 이화리

2002년 제14회 신라문학대상 소설부문 당선. 2013년 경주문학상 수상. 2015년 불교신문신춘문예 동화 ‘대성이’ 당선. 2016년 경북문협작품상 수상. 2019년 경주예술상 수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추천 콘텐츠

없는 사람

없는 사람 이혜오 휴대폰 알람은 새벽마다 나를 밀쳤다. 나는 미지근해진 자리끼처럼 엎질러졌다. 바닥에 쏟아진 나를 겨우겨우 주워 모아 연습실로 출근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그제야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엎질러진 나를 어떻게든 수습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 댄스 학원에 다닌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될 만큼 뛰어나게 예쁘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대개 그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대형 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열여섯, 중3 때 중소형 기획사 하나에서 내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대면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사옥이 위치해 있던 청담동은 내가 살던 동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동네 전체가 백화점 같았다고 할까.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 나는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가서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밤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연습생 숙소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이 때에 따라 열 명에서 열네 명까지 모여 살았다. 어깨선을 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애 열네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끝없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줍고, 줍고, 또 줍다 보면 문득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지곤 했다. 그곳에선 언제나,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까지. 화장실과 콘센트의 개수나 냉장고와 옷장과 침대의 넓이,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이불 속밖에 없었다. 나는 좁다란 이층 침대에서 늘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었다. 그 어둡고 텁텁한 공간만을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천천히,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회사가 작아서인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시스템이랄 게 없어서, 데뷔 조가 아닌 연습생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어린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또 우르르 나갔다. 들짐승처럼 방치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했다가 또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물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고참들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텃세로 풀었고, 신입들은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졌다. 매일 갈등이 있었고 매일 누군가 울었다. 누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 이제는

  • 관리자
  • 2023-11-15
멜들다

멜들다 양혜영 멜*이 들어왔다. 강 선주가 포구 안으로 들어온 멜 떼를 발견했다. 강선주는 포구에 매어 둔 배를 살피러 나왔다가 방파제 아래 바닷물이 은색으로 팔딱이는 것을 보고 멜 떼가 들어온 걸 알았다. 강 선주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양동이와 족대를 챙겨 나오며 멜이 들어왔다고 마을 안쪽을 향해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소도리 포구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급히 나오느라 베개에 눌린 머리와 엉덩이께 대충 걸친 바지 차림을 하고도 양손 가득 뜰채와 양동이를 들고 나오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랑이가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바닷물 속으로 텀벙텀벙 들어가 뜰채로 멜을 건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은빛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아이구, 이제랑 좀 앉아 쉬어 보카” 일찍 멜을 발견한 덕에 양껏 멜을 건진 강 선주가 슬그머니 방파제 한쪽에 술자리를 벌였다. 그 모습을 본 남자 서넛이 뜰채를 넘기고 방파제로 올라와 강 선주 옆에 앉았다. “아이고, 맛나다.” 검지 끝으로 멜의 꼬리지느러미를 잡아 입 속에 털어 넣으며 장 씨가 웃었다. “그냥 녹암쪄, 녹아.” “입 속에서 꿈틀꿈틀 헤엄쳠서.” “아이고, 맛 좋다. 맛 좋아.” 누가 채여 가기라도 할 것처럼 남자들은 쉴 새 없이 멜을 집어 먹었다. 멜이 수북이 쌓였던 접시가 어느새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아이고, 다 떨어지기 전에 여기들 왕 한잔씩 합써.” 강선주가 선심 쓰듯 바다에서 멜을 건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좀 조용헙써! 바당 전세 냈수과!” 갑자기 강 선주를 향해 볼멘소리가 날아왔다. 대성호를 모는 박 선주였다. 민망해진 강선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박 선주를 쏘아보았다. 박선주도 강선주의 눈을 피하지 않고 한판 붙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옆에 있던 박 선주의 아내가 황급히 박 선주의 팔꿈치를 낚아챘다. “그냥 멜이나 건집써. 시간 아깝수다.” 아내의 말에 박 선주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멜을 건지기 시작했지만, 잔뜩 굳은 어깨가 못마땅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강 선주는 그런 박 선주의 뒤통수를 계속 노려보다 바지통을 잡아끄는 일행의 손끝에 못 이긴 척 앉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보통 멜 떼가 머무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소도리 포구 사람들은 죄다 포구에 나와 있었다. 이미 강 선주와 박 선주 사이가 껄끄럽다는 소문을 아는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둘을 힐끗거렸다. 강 선주는 그런 사람들의 눈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 눌렀다. 포구 사람들 사이에 끼어 멜을 건지던 정순도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둘 만큼이나 정순도 그들과 껄끄러웠다. 몇 년 전 화재 보상 문제로 생긴 앙금이 다 풀리지 않은 탓이었다. 한숨을 쉬며 시선을 내리자 바닷물 속에서 희끗거리는 멜 떼가 보였다. 정순은 손을

  • 관리자
  • 2023-11-15
물을 잡으면

물을 잡으면 호인 티브이 화면 가득 연한 푸른색의 거인이 누워 있다. 거인의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며 숨을 쉬는 동안 배꼽에서 꿈틀꿈틀 연두색 싹이 올라온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듯 시야가 확 멀어지며 줄기가 솟구쳐 오른 끝에 등불처럼 맑고 밝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봉오리가 활짝 연꽃으로 벌어지자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화면이 빙글 돌며 보여 주는 남자는 사방마다 하나씩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 남자가 눈을 뜨자 주변의 어둠이, 캄캄한 태초의 우주가, 섬세하게 일렁이며 여명이 밝아 온다. -멋있다. 저거 뭐니? 말을 걸 기회를 노리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온다. -멋지구리하면, 게임 광고일 걸요? 한솔이는 티브이 쪽을 보지도 않고 중얼댄다. 그래도 그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물게 긴 대답이다. 나는 용기를 얻어 질문을 계속해 본다. -게임? 무슨 게임인지 아니? 한솔이는 티브이를 흘끔 보더니 곧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짧고 무성의해진다. -인도 신화예요. 지난해 동남아 여행에서 본 기억이 난다. 저 거인들은 비슈누나 브라마 같은 힌두교의 신들이겠구나. 티브이 화면이 휙휙 바뀌더니 중세 유럽풍 갑옷을 입은 힌두 신들의 영상이 번쩍거리면서 브라흐마가 눈을 뜨면 새로운 칼파가 시작된다아,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나를 사로잡은 건 멋지구리한 신들의 모습보다는 칼파라는 단어다. 칼파, 겁파, 겁(劫). 내가 아는 하나의 겁은, 세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주기,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 무한한 시간이 게임이 서툰 아이에게는 한순간에 끝나겠구나. 그리고 곧이어 하나의 겁이 새로 시작해서 금방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겁이 시작하겠지. -저거, 네가 하는 게임이니? 내 질문은 어딘가 건성이 되어 버린다. -아니요. -요즘 컴퓨터 게임은 여럿이 함께 한다며? 너도 그러니? 한솔이는 수저를 탁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가 버린다. 티브이에서는 신들과 악마들이 단 몇 초 화려한 전쟁을 벌이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하나의 칼파가 끝나 세상이 캄캄해지고 티브이 화면 가득 게임의 이름이 반짝거린다.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하지만, 텅 빈 거실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남편은 집을 나간 후 생활비를 보내지 않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즈 팔찌를 만들려고 작업실로 가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인 곁눈질이 무언가 이상한 걸 감지한다. 고개를 돌리자 어항이 보이고, 역시나, 금붕어 한 마리가 불길한 수류를 따라 떠돌고 있다. 지난 보름 사이 네 번째. 금붕어가 죽었다. 이 년 전, 남편이 한솔이를 위해 사 왔던 금붕어가. 이 년 전 지나가 버린 그 시절 책임감 있던 가장이 착했던 아들을 위해 사 왔던 그 금붕어가. -*- 시조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이 년 전, 그러니까 재작년 가을이었다. 툭하면 사람을 패고 다니는 시동생이 또 사고를 치고, 동서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인 때문이었다. 부부가

  • 관리자
  • 2023-10-2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