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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주세요

  • 작성일 2023-03-24
  • 조회수 1,26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장편)]




사막을 주세요

신주희

0. 스위트룸


“죄는 물에 가라앉을까?”

한영진은 신입생들 사이에 서서 침례식(浸禮式)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소스라칠 만큼 차가운 4월의 호숫가에 아이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아이 하나가 목사의 팔을 잡자, 목사는 아이의 뒤통수를 손으로 받히고 그를 물속에 담갔다 일으켰다. 머리까지 푹 젖는, 아주 짧고 간단한 수장(水葬)이었다.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을 했었나.


그들과 똑같은 하얀 가운 차림의 나는 한영진의 물음에 잠깐 뜸을 들이다가 “글쎄.” 하고 말끝을 흐렸던 것 같다. 죄를 수장시키고 물 밖으로 나와서는 새사람이 되는 것, 이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건 그 질문의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그 순간을 떠올려 보면, 나는 영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욕조에 떠 있던 노란색 러버덕 같은 걸 말이다. 아무리 물속에 처박아도 기어코 떠오르던, 선명하고 질긴 오리 새끼. 어쩌면 나는 죄와 러버덕의 관계 같은 걸 떠올리다 깔깔 웃기만 한 것 같다. 설마, 이 정도의 죄가 물에 가라앉을 만큼 무거운 것일까, 자문하면서. 그러자 한영진은 이유 없이 웃고 있는 나의 머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목덜미를 감싼 한영진의 가는 팔에서 불안하게 뛰는 맥박이 느껴졌다. 어쩐지 기괴한 오후였다.


사실,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이후부터 나는 종종 그때를 떠올렸다. 꼭 온다던 종말이 아직까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스팸치고는 흥미로운 문자였다.

언뜻, 뻔한 수작처럼 보였기 때문에 무시했는데 두 번째 메시지에 있던 이름이 눈길을 잡았다. 한영진. 나는 그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다가 흠칫 놀라 안경을 썼다. 그리고 다시 한번 메시지를 확인했다. 분명히 그 이름이었다. 한때 내가 줄기차게 부르고, 선망하고, 때로는 질투하던 고등학교 선배의 것. 그러니까 22년 전의 이름이었다. 한영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인 사람의 이름이었고 살면서 다시 떠올릴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곧장 서재로 향했다. 영진 선배의 얼굴이 희미해서 사진이라도 들춰 볼 요량이었지만 앨범은 집안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사를 앞둔 어수선한 집에서 고등학교 때 앨범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영진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호수가 유일한데. 호수는 분명 선배의 사진을 가지고 있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호수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삼 개월 전부터 호수와 나는 별거 중이었다. 우리는 오 년 동안의 동거 생활을 완전히 끝내기 전에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가 짐을 싸 나가기 전까지 우리는 집에서 마주쳐도 서로를 못 본 척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전 세계를 휩쓸던 전염병이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다시 확진자가 급증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이제는 재택근무가 더 익숙했고, 마스크를 끼지 않던 시절이 공룡이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꼈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 호수와 나는 업무시간엔 자연스럽게 서로가 머무는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 서로가 마치 각각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마주쳐도 암묵적으로 침묵했다. 한 명이 거실을 점령하면 다른 한 명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한 명이 식탁을 차지하고 점심을 먹고 있으면 또 한 명은 빵 봉지를 들고 서재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내가 처음 별거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호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근무시간이야.”


시간이 지나 여섯 시, 퇴근 시간의 호수는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선데이 모닝>을 듣고 있었다. 스피커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탓에 대화를 이어 갈수록 호수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또 왜?”

“우리, 시간을 좀 갖자고.”

호수는 잠깐 내 얼굴을 말끄러미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스피커 소리를 높이며 뭐 잘못 먹었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재차 별거 얘기를 꺼내자 그는 함께 산 지 오 년이나 된 동거인의 의무감으로 반쯤 기대어 앉았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안다. 그런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오 년간의 동거를 수포로 만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고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외도를 했으니까.


그즈음 호수와 나의 관계는 심각한 권태기에 놓여 있었다. 호수와는 오랫동안 ‘너희 둘이 아직도 만나?’가 조금도 낯설지 않은 사이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우리는 ‘커플’이나 ‘연애’ 같은 것을 죄악으로 여기던 성화고등학교에 함께 다녔다. 성화고는 한때 종말론 논란으로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공중 재림의 증인들’의 자녀들만 다니는 미션스쿨이었다. 호수와 나는 그 학교의 커플처럼 여겨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와 호수 사이에는 한영진, 영진 선배가 있었다. 나는 그저 영진 선배를 향한 호수의 짝사랑 타령을 들어주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 유일한 여사친인 셈이었다. 졸업 이후 대학 때까지 연락 없이 지내다가 직장 생활 9년 차에 다시 만난 호수는 첫 만남에서 잔뜩 취해 버렸다. 술에 취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공중 재림의 증인들’의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원래 여, 호수아였던 이름을 여, 호수로 개명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를 호수아, 라고 부르는 대신, 호수, 라고 불렀고 그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고등학교 시절 우정을 돈독히 나누던 사이였다. 둘 중 한 명이 사랑에 빠지면, 다른 한 사람이 고백에 실패했더라도, 그 고백 때문에 한동안 잊을 수 없는 굴욕을 짊어지고 있더라도, 꼭 그 고민을 나누는 짝사랑 상담 메이트. 비록, 그가 목사 아들에 모태 신앙이라는 이유로 그보다 더 자주, 거리 선교나 찬송 봉사 메이트로 지목되긴 했지만 우리는 틈틈이 한영진이라는 미제를 두고 마음을 모았다. 호수는 늘 상처를 받고 속이 후련한 결말보다는 상처를 덜 받아서 결론이 나지 않는 쪽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는 주로 고민을 털어놓는 쪽이었고 나는 들어주는 쪽이었다. 나는 호수가 던진 질문들(뻔하게 영진 선배에 관한 질문이면서 아닌 척 무심함을 위장한)에 더 무심한 말투로 대답을 해 주는 방식으로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그는 선심을 쓰듯, 나중에 우리 둘 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 서로 보증도 서 주고, 누구 한 사람 먼저 죽으면 장례도 치러 주는 사이가 되자, 했다. 우연히 다시 만난 해에 우리는 자주 만나 술을 마셨다. 여전히, 우리의 안주는 영진 선배였다. 다만, 술에 취한 호수는 그 옛날의 호수는 아니어서 더는 영진 선배에 관한 질문들을 위장하지 않았다. 띄엄띄엄 어디선가 들은 풍문에 가까운 얘기들이 질문과 섞여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약속, 나중에 다시 만나면 보증도 서주고 먼저 간 사람 장례도 치러 주자던, 을 실없는 농담처럼 했다. 안주 뭐 먹을래? 하는 종류의 질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집에는 언제 들어올래? 하는 식으로. 술을 마시던 차였으므로 호수의 말은 숙취처럼 맴돌다 사라지곤 했는데, 어느 날은 내 사정이 그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치지 못할 만큼 좋지 않았다. 월세 계약이 끝나가던 차였고, 집은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인데, 일산에서 강남으로의 출퇴근이 지긋지긋했다. 돈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없는 돈이 없음을 숨기는 자존심마저도 부릴 여유가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호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줬다는, 아직도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지하철역 앞에 있는 아파트라는 사실을 들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동거라는 농담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그래, 하자, 동거, 하고. 따지고 보면 호수와 나는 술김에 같이 살게 되었고 그것이 몰락의 시초였다.


나는 웹소설 피디 12년 차로 중소 규모의 웹 콘텐츠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알고, 다 알기 때문에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제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데, 잘 팔리는 소설 속에서는 어김없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이켜졌다. 순간의 선택으로 망한 삶도, 지나가 버린 시간도, 심지어 죽은 애인도 살아서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소설들을 읽을수록 나는 전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갔다. 나는 일찌감치 집을 마련한 호수가 나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 주길 바랐다. 얼마의 생활비를 유지하면서 남는 돈으로 호수와 여행을 다녔던 것도 그런 바람의 일환이었다. 호수의 삶이 안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나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것으로 그와 함께 사는 것에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호수를 만족시킨다고 믿었고, 그것은 내가 독립적인 삶을 꾸려 나가는 데는 매우 불리한 처사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호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리는’ 류의 통속에는 영 관심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결의 실마리를 더욱 깜깜하게 만든 것은 나의 임신이었다. 솔직히 호수는 물론, 나 역시 준비는 고사하고 예상조차 못 한 사건이었다. 나는 오랜 꿈이었던 작가 등단을 위해 새 소설의 플롯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마쳤고 이제 원고를 쓸 일을 남겨 두고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고 산부인과에 다녀온 그날, 호수와 나는 출산에 대해 오랜 시간 상의했고 결혼하기로 합의했다. 길고 까다로운 회의를 마친 기분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려는데, 호수가 과장된 몸짓으로 임산부에게 카페인이 좋지 않다며 내게 꿀물을 데워 주었다. 나는 꿀물을 마시며 더는 내 인생이 낭비되지 않기를, 순조롭기를 바랐다.

초기에는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언제 어디서고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어야 했다. 그다음은 냄새와 울렁증이었다. 특히 밥 짓는 냄새가 힘들었는데, 덕분에 호수는 거의 몇 달 동안 밥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졸음과 냄새, 울렁증이 차츰 사라져 갈 때쯤 호수와 나는 태교 여행을 떠났다. 호수와 내가 주고받는 말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왈칵 피를 쏟았다. 당황한 호수가 나를 보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나는 그때 이미 희망하던 미래가 나를 지나쳤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따져 묻고 싶었다. 대체 뭐가 괜찮은 건지. 그의 차 가죽 시트에 피가 묻은 것? 아니면 예전처럼 다시 애매한 관계로 돌아가는 것? 나는 갑자기 그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머리가 차가워졌고, 그 순간에도 나는 현실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를 보내고 난 뒤, 나와 호수의 관계는 급격히 서늘해졌다. 그것을 권태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 권태기는 모든 적을 다 해치워도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는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얼핏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것으로 넘길 수 있는 일처럼 보였지만, 실은 내내 익숙하고 쉬웠던 모든 것이 한순간 어색하고 낯설어지는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서로의 몸을 만지고 비밀스러운 일상을 공유하는 것, 그것에 반응하고 순간 뜨거워지는 것들이 매 순간 아득해졌다. 때문에 딱히, 싸우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다. 둘 사이에 희망적인 기호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부추기고 있었다. 오 년이라는 시간이 완벽히 부서지기 전에, 어떤 형태도 갖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져 버리기 전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런던에서 열리는 웹 콘텐츠 컨퍼런스에 참가 제안을 받은 것은 그즈음이었다.

회사가 제안한 컨퍼런스는 <웹콘텐츠 산업의 미래>라는 다소 장황한 주제였는데, 사실 그건 제안이라기보다 위안에 가까웠다. 당시 회사는 퇴락 일로였고 팀장들은 되도록 많은 희망 퇴사자를 받는 것이 주 업무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딱히 목적이 없는 런던으로의 출장을 제안받은 사람들은 퇴사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처치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점심시간 나를 청국장 집으로 불러낸 팀장은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나빠진 회사 사정에 대해 오래 설명했다. 내용인즉슨, 회사는 시내 한복판 빌딩에서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할 예정이며 종당에는 ‘웹 콘텐츠 기획팀’도 게임 파트와 통합될 거라고 했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이 모든 사태를 몰고 온 특정 종교의 일명 ‘슈퍼 전파자’를 탓하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확진자가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절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야단하며 낱낱이 동선을 공개하던 것의 후유증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 일 같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가 곧이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언급했고, 그 고등학교가 ‘슈퍼 전파자’의 종교와 연결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자신은 종교에 관한 편견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밝힌 그는 나의 공공연한 비밀인 오랜 동거 생활에 관해도 물었고, 파트너가 성화고 동창인지 물었다. 그는 그 이후 예상되는 파국의 시나리오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 시나리오 속에서 나는 종교적 이유로 조직 문화를 무너뜨리는, 나는 테트리스 게임의 마지막 긴 막대 같았다. 이어 팀장의 통보는 회사 전체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으로 향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설득 방향과도 전혀 다른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직은 ‘처자식 먹여 살릴 일이 없는’ 내가 신실한 종교인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는 것이었다. 나는 장황한 설명 끝이 너무 허탈해 팀장을 물끄러미 봤다. 그 빤한 눈이 민망했는지, 팀장을 다급하게 컨퍼런스의 목적지가 런던이라는 걸 강조했다. 컨퍼런스는 핑계고, 공기 좋은 곳, 이를테면 영화 <어바웃 타임>의 촬영지인 콘월 같은 곳으로의 여행을 추천했다. 그간 강제로 반납되었던 휴가와 남은 연차를 붙여 사용하라는 조언을 해 준 것도 그였다. 아무튼 혼자 비행기 좌석을 예약할 때는 이미 호수와 나 사이의 뭔가가 차갑게 식었고, 이미 굳어 버렸고, 방출되지 못한 것들이 냄새를 풍기며 썩고 있었다. 나로서는 선택지가 없는 선택이었다.


목적지는 런던이었다. 여행 후에 사표를 내는 것으로 팀장과는 말을 맞췄고, 나는 컨퍼런스 뒤에 연차를 붙여 여행을 계획했다. 호수 없이 혼자 여행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여행의 모든 준비가 무엇인가에 쫓겨 출구를 찾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처리됐다. 호수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 것의 전부였다. 어쩌면 석이라는 사람을 만난 것은 그 마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인지도 몰랐다. 런던에서 네 시간 떨어진 콘월(Cornwall), 트루로(Truro)역 조그만 카페에서부터 처음 만난 그와 몸을 섞기까지는 고작 이틀이 걸렸다. 이틀이라는 건 물리적인 기준이고 실은, 석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의 모든 것에 평소보다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콘월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인인 그는 그곳에 몇 달째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서핑을 하기 위해 콘월 비치에서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먼 곳까지 와 서핑을 즐긴다니 좀 극성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어딘지 욕심이 없어 보이는 석이 유일하게 욕심내는 취미라는 인상을 받았다. 석은 매력적인 남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동시에 나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 느낌이 어딘지 낯설지 않다고 여기다가 나는 잠깐, 영진 선배를 떠올렸다.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밴을 개조해 캠핑카처럼 사용한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도 바닷가 앞에 세워 둔 밴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영진 선배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잠시 뒤, 어이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나는 예상 밖의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석의 밴에 두 시간만 머물기로 한 것이 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석이 친구의 결혼식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한 것은 이틀째, 그의 밴을 떠나지 않은 채, 바닷가를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되물었다.

“결혼식이요?”

“그냥 결혼이 아니에요. 집시들의 결혼이지.”

“아.”

“집시들이 결혼하는 거 본 적 없잖아요.”

“네. 뭐. 근데 친구 결혼식을 아무하고나 가요?”

“그쪽은 아무나가 아닌데요?”

나는 멋쩍게 웃어 버렸다. 별 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어느새 ‘아무나가 아니’란 그의 말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다. 아직은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는 일말의 증거 같은 거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 초대를 거절한다면 그의 밴에서 나가야 할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밖은 아직도 아름다웠고, 콘월의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석은 이 잠깐의 침묵을 승낙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빙글거리는 표정이 된 그는, 정말 멋질 것 같지 않아요? 하며 콧노래를 했다.

의외로 결혼식 장소는 캠핑장에서 조금 떨어진 목장이었다. 석을 뒤따라 목장에 들어서자, 장미를 털 사이사이 꽂아 넣은 심상치 않은 양 떼들이 보였다. 나는 내심 결혼식에 참석하자던 석의 말이 장난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하얀 티셔츠에 넥타이를 동여맨 목장 주인을 보고 석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주례사 내용은 내 의심을 완벽히 불식시켰다. 결혼식이라면 ‘두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물음 정도가 적당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두 사람이 “아이 두”라고 대답한 대목은 “사랑이 다하면 즉시 이별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질문에서였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석의 얼굴을 봤다. 석이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속삭였다.

“집시들의 결혼식은 이별의 맹세를 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더 깊은 사랑을 하기 위해 만약을 위한 준비를 하거든요.”

그 묘한 진지함이 불편해질 때쯤 석의 친구인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웨딩 키스를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나에게, 마치 신부가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는 상황과 비슷하게, 바싹 마른 장미로 만든 포푸리를 결혼식 하객을 위한 선물로 건넸다. 각자 먹을 음식과 와인을 담아 든 하객들이 하나둘,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았고 새신랑이 기타를 잡아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였다. 카펜터스의 이라고 석이 노래 제목을 내 귓가에 속삭였다.

세상에는 왜 그렇게 무지개에 관한 노래가 많은 것일까.

또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무지개는 선명하게 보이지만 환상 속에만 있는 것.

우리는 그렇게 말해 왔지.

무지개는 숨기는 것이 없다고.

그걸 믿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믿겠지.

하지만 두고 봐.

그건 그렇지 않아.

언젠가는 찾게 될 거야. 레인보우 커넥션.

연인들과 몽상가와 나 사이의.

멜로디에 취한 사람들은 조그맣게 속삭이고 부드럽게 웃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 서로 몸을 포개고 누운 사람, 서서 창밖을 응시하거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서 낮은 대화 소리와 노래가 이어졌다. 나는 석과 담요 하나를 나눠 덮고 나란히 앉아 와인을 홀짝거렸다. 아는 멜로디가 나오면 흥얼거렸고, 흥이 오르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어쩌면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오래 했다. 어느 순간 볼이 발그레해진 석이 내 어깨를 감쌌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 순간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그런 종류의 마음이 있기나 할까, 나는 고민스러웠다.

“뭐가 너무 어려우면 그냥 이 순간을 빛 같은 거라고 생각해 봐요.”

“빛?”

“눈이 부셔서 잠깐 눈을 감은 거면 어때요.”

나는 말없이 눈만 깜빡거렸다.

“별을 생각해 봐. 우리가 지금 보는 별은 빛의 과거잖아요. 빛이 뿜어내는 엄청난 빛과 에너지를 인간은 당장 볼 수 없다고요. 시간이 지나야지요. 이 시간이 그렇게 빛처럼 남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나는 한참 동안 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동자가 검게 빛났다. 갑자기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다. 취해서인지, 기분 탓인 건지 이유는 알 수 없고,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내 입술에 키스했다. 한동안 그렇게 어색하던 스킨십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전히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석과 나는 서로의 몸을 만졌고, 반응했고, 멀리 두고 온 세계를 까마득하게 잊었다.


호수에게 나의 외도를 고백했을 때도 호수는 집을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별거를 제안하자 그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짐을 챙겨 본가로 갔다. 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뜻이었는데, 그는 나를 포함한 그의 물건 대부분을 남겨 놓고 집을 나간 거였다. 어딘가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집 전체가 휑했다. 주사위가 던져진 느낌이었다. 벌칙으로 내가 없는 동안 짐을 챙겨 나가시오, 하는 의미 같기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팸 문자라 여겼던 문자에서 영진 선배의 이름을 봤을 때 나는 더 그런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고 덜그럭거리는 창문 때문에 가까스로 내린 잠이 수시로 달아났다. 나는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와인 한 잔을 따라 침대에 기대앉았다. 호수와 영진 선배 그리고 내가 함께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밤새 쏟아지던 비바람은 새벽이 돼서야 겨우 멎었다.


다시 메시지가 온 것은 그날 오후였다. 사표를 냈지만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작가의 기획서 작업 중이었다. 마음이 초조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 프로젝트 이벤트를 받아 놔야 퇴직금 외 팀장이 약속한 보너스를 챙길 수 있을 거란 계산 때문이었다. 호수와의 관계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판국에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내게는 집을 구할 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호수에게 돈을 빌려야 할지도 몰랐다. 텍스트 작업이 막 테스트 폰 확인에 이르렀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오타가 보이는 페이지를 뒤적이다 한쪽 어깨로 전화를 받았다. 맑은 여자 목소리가 또박또박 들려왔다.

“주하나 씨 되시나요?”

“네.”

“며칠 전에 메시지를 남겼던 H호텔 컨시어지 데스크입니다.”

“아. 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손으로 받아 들었다.

“메시지를 확인 못 하신 것 같아 전화 드렸습니다.”

“아니요. 메시지를 보긴 했는데, 제가 한영진 씨를 만날 의향이 없어서요.”

“한영진 씨가 지인이 맞긴 맞으신 거죠?”

여자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 와 주셔야겠는데요.”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 보세요. 제가 만날 의사가 없다고요. 그쪽에서 왜 제 이름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제 기억에 한영진 씨는 22년 전에 함께 다니던 고등학교 선배일 뿐이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한영진 씨 상태가 좀 안 좋으셔서요.”

“그래서요?”

여자는 다급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일단 한 번만 와주시겠습니까? 직접 보시면 제 얘기를 이해하실 겁니다.”

여자는 내게 H호텔의 위치와 룸 넘버를 알려 주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거절할 틈도 없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 그쪽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조차도 해야 하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H호텔 파크 스위트 1601호.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던 생각은 결국, 갈 것 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원고 작업은 끝내 마무리하지 못하고 같은 지점에서 같은 단어를 썼다 지우기만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러다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H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나는 영진 선배를 만났다. 영진 선배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않은 것과 상관없이, 호수를 제외한다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일 때 그녀는 2학년 전학생이었고, 일 년 조금 넘게 학교를 다니다 자퇴를 했다. 그 이후 서로 연락할 일이 없어졌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쯤 술집에서 마주쳐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전화번호가 잘못된 것인지 없는 번호였고 그것으로 선배와의 인연은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영진 선배가 영진 선배답게 등장을 한 거였다. 짜잔, 하고. 광택이 도는 핑크색 실크 가운을 걸친 선배는 여전히 근심 없는 철부지처럼 나를 맞았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영진 선배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해 보였다. 양호 정도가 아니라 사십이라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잘 관리된 피부와 머릿결, 적당한 탄탄함이 엿보이는 팔과 다리. 어딘지 모르게 변한 것 같은 이목구비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순정 만화 같은 이미지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선배의 화려한 결혼 소식을 들었고, 그는 그 이후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선배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호수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호수는 영진 선배의 SNS 계정을 주기적으로 염탐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언젠가 호수의 입을 빌어 흘려들은 영진 선배의 화려한 생활이 지금 선배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물론, 그건 영진 선배의 남편이 재력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선 이미 영진 선배의 남편이 부동산업을 하다 대박이 난 케이스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주하나, 너무 반갑다!”

영진 선배는 룸 앞에 서 있는 내 목을 다짜고짜 끌어안았다. 차가운 살의 감촉에 나는 움찔 놀라 선배를 밀어냈다.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영진 선배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응접실 소파로 자리를 안내한 선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직접 연락을 하면 네가 안 나올 것 같아서. 거짓말을 좀 했어.”

나는 일단 자리에 앉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놀랐어. 선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은 좀 그렇지 않나?”

“음. 그건 거짓말이 아니고.”

짜증에서 허무로 감정의 추가 옮겨가고 있었다. 나는 잠깐 침묵하다 다시 물었다.

“선배 어디가 안 좋아요?”

“응.”

“어디?”

“그 얘긴 나중에.”

나중에? 나중 언제, 보다는 나중에 또, 하는 쪽으로 의미가 해석되자 나는 다시 짜증이 올라왔다. 용건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낸 이유가 더욱 의심스러웠다. 영진 선배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잘 지냈니? 그나저나 존댓말 너무 어색하다. 얘!”

“나야. 뭐. 선배는 어떻게 지냈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중간에 자를 수 없는 말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가만히 보니 영진 선배는 다른 신상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 곳에도 고정되지 못하는 눈, 쉬지 않고 꼼지락거리는 손 그리고 순간순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내뱉는 혼잣말. 영진 선배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우리 포크댄스 추던 거 기억해? 작은 예배당 앞 잔디에서 말이야. 그때 나온 노래. 나는 아직도 그 노래가 그렇게 좋더라.”

“아. 그랬어요?”

“그 라라라라, 하는 노래 있잖아. 내가 찾아봤잖아. 제목이 . 하버 알베스타인 여자 노래래. 어렸을 땐 가사도 가수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엄청 우울한 노래였더라? 가사가 ‘한 번만 더, 그 시절로 갈 수 있다면’ 뭐 이런데, 조금만 더 버텨서 너랑 함께 졸업도 하고 했음 좋았을 텐데. 그치?”

전기 포트에 물을 넣고 딸깍, 버튼을 누른 영진 선배는 뭔가를 말하려는 나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긴. 그랬던들 뭐가 달라졌을까? 아니지. 내가 거길 일찍 떠나서 우리 남편을 만난 거지. 우리 남편 말이야. 큰돈을 벌었다가 말아먹고는 다시 엄청 벌어들였어. 정말 엄청. 대단했지. 근데 웃긴 건 내가 우울증 약을 여섯 종류나 먹고 있다는 거야. 그걸 칵테일이라고 해. 그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 나 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약을 섞어 먹기 시작했던 거.”

두서없이 이어지는 영진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던 것을 멈췄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컨시어지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혹시 모를 사고 수습을 위한 사람으로 나를 지목한 것일지도. 그게 영진 선배의 판단인지 컨시어지 직원의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묘하게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린 영진 언니는 빈 약봉지를 흔들며 덧붙였다.

“근데 이 약, 꼬냑만큼도 효과가 없어. 의사 말은 믿을 게 못 되잖아. 그치?”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건 무의미했다. 호텔 스위트룸 구경이나 하라고 나를 부른 것이 아닐 테니 이제 그만 궁금한 건 물어야 했다.

“그런데 선배. 나한테는 어떻게 연락을 한 거야?”

그러자 영진 선배는 담담한 표정으로 두툼한 노트 여러 권을 내게 내밀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나는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봤다.

“이게 뭐야?”

“기억 안 나?”

“글쎄?”

“그 안에 사진 스크랩도 있고, 메모도 있고, 일기도 있었잖아.”

“이걸 나한테 왜?”

“너 정말 생각 안 나?”

생략된 것이 많은 한마디였다. 그 순간, 허공 어딘가를 떠다니던 습한 기억이 머릿속 어딘가로 한꺼번에 몰려왔다.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처럼 우르르 쾅쾅하고, 마음 한구석이 시끄러웠다. 오래전 경험했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 그랬다. 영진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잊고 싶은 기억에 자꾸만 태엽을 감는 사람.

“이거, 예전에 네가 썼던 내 얘기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어?”

“당연하지. 그때 교환 일기를 썼잖아. 아니, 교환 소설인가?”

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걸까. 정말 그것 때문에 나한테 연락을 했다고? 근데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고? 혹시? 하는 의혹이 스쳤을 때 영진 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소리를 내 웃었다.

“너 호수랑 같이 살고 있다며? 곧 정식으로 결혼도 할 거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반쯤 쉰 목소리를 냈다.

“호수랑 연락을 하고 있었던 거야? 걔가 내 연락처를 줬어? 선배한테?”

“뭐 그런 셈이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라 생각했던 어떤 일이 벌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잠시 영진 선배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으리라는 듯, 영진 선배는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어두운 느낌을 풍겼다. 크고 시원한 눈이 인상 깊도록 검은빛이라 그런 생각을 더욱 부추겼다.

“몰랐네. 둘이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을 줄은.”

“호수가 내 얘기 안 해?”

“아무튼. 그 옛날 얘긴 왜?”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자서전을 좀 써 줘.”

“자서전?”

“그때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 그걸 기록해 놓고 싶어졌어. 알다시피 나는 글을 잘 못 쓰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나는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간단해. 내 자서전을 써 볼 생각 없어? 우리 일기를 정리하면 대충 나올 것 같은데. 너, 기획자라며.”

“나는 웹 소설 관련 기획을 해. 일기가 아니라.”

“너 여전하구나.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너 고등학교 때 소설도 쓰고 그랬잖아. 너 그거 되게 잘했어. 기억 안 나?”

“그 말도 안 되는 게 용건이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자서전을 쓰겠다니. 뭔가를 잘 못 들은 게 아닐까, 생각하던 나는 영진 선배를 향해 되물었다.

“그러니까 선배한테 자서전이 왜 필요한데?”

영진 선배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지만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우리의 일기 전부면 될까? 메모, 서류들도 많고. 그런 게 있음 만들 수 있다고 들었어. 물론 비용을 지불할 거야. 원하는 만큼 줄게. 부탁해.”

선배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과 동시에, 이 선배는 인생이 너무 심심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놀기 심심해서 자기 과시용으로 비싼 돈을 내고 책을 갖고 싶다는 뜻인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았으나 내 귀에 걸린 건 다름 아닌 ‘비용’이라는 단어였다. 지금으로서 내 상황을 조금 덜 비극적으로 만들어 수 있는 유일한 단어, 돈. 그것도 원하는 만큼의 돈. 영진 선배의 시선이 찻잔을 넘어 창밖으로 멀어졌다.

“이해가 잘 안 될 거야.”

침묵이 흘렀다. 나는 초조하게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이유이든, 갑작스러운 영진 선배의 제안은 결정이 어려웠다. 영진 선배는 갑자기 감정이 복받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차를 한 모금 마신 영진 선배가 속삭이듯 말했다.

“대신 약속할게. 자서전이 완성되면, 그때 제일 먼저 너에게 그 이유를 말해 줄게.”

맥이 탁 풀리듯,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영진 선배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선배의 눈은 나를 간신히 붙잡은 지푸라기처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맞춤법 오류를 찾듯 영진 선배를 응시했다. 그렇게 보니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선배는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 영진 선배와 나, 그리고 호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다.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첫사랑의 실패를 경험한 직후였다. 말 한마디 못 붙여 본 사랑은 끝났고 상대방은 내 마음을 전리품을 자랑하듯 사방에 떠들고 다녔다. 내가 너무 스킨십을 밝힌다는 식의 얘기였는데, 사실 나는 그 애와 포크댄스를 출 때 손을 잡아 본 것이 스킨십의 전부였다. 규율이 엄격한 미션스쿨이자 전교생이 기숙 생활을 해야 하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그 학교’에 보내졌다는 게 정확하다.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 사춘기 딸은 늘 분쟁의 원천이었고 나의 부모는 그것에 진저리가 난 상황이었다. 아무튼, 영진 선배 덕분에 나는 그 학교에서 자란 조금 다른 어른이 되었다. 고독하고 씁쓸한 어른의 맛을 함께 나눈 것이 다름 아닌 호수였고.


H호텔을 걸어 나오는데 호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잡다한 관리비 업무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내내 사무적으로 말했고, 나 또한 건조하게 대답했다. 뒤이어 그는 영진 선배의 안부를 물었다. 내가 선배를 만났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 영진 선배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내 외도에 대한 보복이라도 되는 듯 빈정거렸다. 내가 잠시 침묵하자 그는 새삼스럽게, 우리 관계가 지금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고, 그 이유가 온전히 내게 있음을 상기시켜 줬다. 이제 남은 것은 쌍방이 치러야 하는 ‘처리’에 관한 것이라는 요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달게 받아야 하는 처벌이란 그의 방식대로 빠른 시일 내에 집을 구해 나가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영진 선배의 전화는 다행인 걸까. 나는 내게 던져진 ‘처벌’을 구체적인 액수와 연관지어 생각했다. 한시가 급했다. 진짜 호수를 떠나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면 머물 곳이 필요했고 그건 돈의 문제였다. 게다가 책을 만드는 일이라면 품이 들 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서전을 기획하는 일도 비슷했다. 카테고리별로 자료를 정리하고, 질문을 지정하고, 키워드에 따라 적절한 답이 나오게만 하면 되는 일. 나는 벌써부터 모든 상태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지되었던 삶이 다시 시작될 것이고, 그 뒤에는 어쩌면 호수와의 관계도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을지도 몰랐다.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던 나는 영진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라는 단어 대신에 영진 언니, 하고 시작하는 메시지였다.


며칠 뒤, 종이 상자에 담긴 물건들이 도착했다. 영진 선배와 함께 썼던 다이어리, 앨범, 시집 두 권, 공문서와 일기 여섯 권. 교환 일기 이외에도 영진 선배가 그토록 오래 일기를 썼다는 것은 나로서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뭐 이런 거라면 모를까. 나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시집을 들여다보았다. 모두 내가 썼던 시들이었고 겉이 빳빳한 노트에 한 편씩 정성 들여 손으로 쓴 시집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기도 했지만 내가 쓴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어두웠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영진 선배가 보내 준 자료를 바탕으로 긴 글을 쓰는 거였다. 나는 그것을 죽 이어 붙인다는 기분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것이 무엇이 되거나, 아니, 정확히는 되리란 기대도 없었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을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마음이 붕붕거렸다.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온전히 글로 다 담을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의 글이었다. 그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그 마음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아 견딜 수 없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기분이었다.


1. Young jean


한영진은 이태원에서 태어났다. 용산구 이태원동 166-4. 봄이라기엔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3월이었다. 한영진의 어머니는 이태원에서 청바지 가게를 했다. 휴일도 없이 일하는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만삭의 몸으로 새벽 시장에 다녀와 집으로 들어서던 어머니는 다리 사이로 미지근한 물이 흐르자 그 길로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늘 집에 없던 남편에게는 따로 연락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니던 산부인과 이름을 대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는데, 택시 시트가 이미 양수로 흥건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어머니는 자신의 치마를 들쳐 보았다. 거웃 사이로 아기의 까만 머리통이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이가 숨이 막혀 죽을 것을 직감했다. 위험을 감지한 어머니는 아이의 숨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아이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통증으로 짐승 같은 비명이 새어 나왔지만 혼비백산으로 시장에서 들고 온 봉지를 뒤져 단골이 주문한 청바지를 꺼냈다. 그것을 다급히 펼치자 택시 안에서 그나마 깨끗한 공간이 생겨났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자신이 알던 상식을 총동원했다. 숨을 깊이 삼키고 내뱉기를 반복하며 아랫배에 힘을 줬다. 누군가는 돌처럼 딱딱한 수박덩이를 밀어내는 느낌이라 했던 것을, 또 누구는 단전에 힘을 주고 배를 짜내는 느낌이라고 한 것을 기억해 냈다. 좌석 뒷문에 몸을 기대고 운전석을 지지대 삼아 있는 온몸의 힘을 아래로 밀어냈다. 힘을 줄 때마다 아기에게 숨 쉴 구멍이 열린다고 생각하면서, 어서 그곳을 빠져 나오란 듯이. 반쯤 넋이 나간 택시 운전사도 어느새 어머니의 호흡을 따라 힘을 주고 있었다. 비릿한 피 냄새와 땀 냄새, 비명이 뒤섞인 택시가 이태원을 벗어나기도 전에 한영진은 세상에 나왔다. 머리칼이 유난히도 길고 까만 아이였다. 어머니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탯줄도 못 뗀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 열 개를 확인하고 곧바로 기절했다. 막 병원 앞에 도착한 택시 기사가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불러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한영진, 어머니의 청바지 가게 상호인 “Young Jean”에서 따왔다. 어머니에게는 한없이 아름답고 푸르른 이름이었다. 결혼 전부터 이태원 골목골목의 작은 상점들의 점원으로 돌던 어머니는 장사 수완을 익힌 탓에 삼십 대에는 제법 번듯한 크기의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일하던 종합상가 해피타운의 호객꾼이었고 선천적으로 언변과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법대 진학을 마다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일명 ‘휘파리계의 지식인’으로 통했다. 그는 나름의 영어 실력으로 외국 관광객과 미군들을 골목 상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Young Jean으로 안내했다. 어머니와는 그로 인해 눈이 맞은 셈인데, Young Jean도 그의 아이디어로 지어진 상호였다. 젊고 푸르른 시절의 상징이자 청바지처럼 질기고 경쾌하게 살자는 염원을 담은 이름. 한영진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럴싸한 작명 실력에 반해 끝내 한 이불을 덮는 사이가 되었다.

세 평짜리 Young Jean이 열 평이 되고 스무 평이 되는 동안 어머니는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을 완벽히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성과도 없이 떠도는 남편 탓인지, 그런 남편을 무시한 탓인지 따져 본 적은 없지만 어머니는 늘 막연한 거리를 두고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자주 남편의 부재를 살림의 보탬이라고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게 일말의 기대가 없다는 점이 이 두 사람의 결별을 유예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한영진의 어머니는 남편이 늘 없었기 때문에, 원한다면 언제라도 갈라설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한영진은 잔병치레 없이 건강히 잘 자랐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늦었다. 온종일 장사에 매달리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제대로 된 교육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곳이었으므로, 한영진에게는 청바지 가게 한구석이 식당이자 거실, 침실이자 마당이었다. 한영진은 간혹 옷더미 위에서 쪽잠을 자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곤 했는데, 꿈속에 너무 까맣거나 너무 하얀 사람들이 나오곤 했다. 그들은 모두 거대했고,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한영진은 그것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그건 유독 외국인들 앞에서 위축되는 어머니의 태도를 봐 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이 늦던 한영진이 가장 처음에 한 말은 그의 악몽에 자주 등장하던 단어였다. 바로, 디스카운트였다. 해피타운 사람들은 손님이 들어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디스카운트를 외쳤기 때문이다. 그러면 손님들은 고개를 돌렸고, 흥정을 했고, 기분이 좋거나 아쉽다는 표정을 보였다. 한영진이 최초로 ‘디스카운트’를 외친 사람은 어머니의 단골손님이었다. Mr. 블랙웰이라고 불리는 백인 미군 장교였는데, 퇴역을 앞둔 그는 특별히 한영진을 귀여워했다. 청바지나 티셔츠를 사러 올 때마다 한영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록달록하게 생긴 롤리팝을 쥐어 주었다. 다섯 살 아이의 입에서 디스카운트라는 말을 들은 블랙웰의 표정은 오묘했는데, 한영진은 뒤늦게 그것이 동정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영진은 청바지에 빨간색 폴로 티가 잘 어울리는 소녀로 자라났고 여전히 해피타운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주었다. 여름에는 짙은 색깔의 진청에 귀여운 고양이가 수놓아진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혔다. 겨울에는 폭신한 니트 모자와 토끼털로 안감을 두른 모직 코트를 사다 줬다. 크리스마스에는 금발의 아름다운 바비 인형을, 생일에는 손잡이에 핑크색 술이 달린 앙증맞은 자전거를 선물하기도 했다. 모두 어디에서도 본 적 없이 이국의 냄새를 풍기는 선물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Mr. 블랙웰과 관련이 있던 선물들이었다. 그즈음 한영진은 어머니가 자주 블랙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의 이름은 주로, ‘언니’라고 불리는 옆 가게 주인들과의 대화에 자주 등장했다. 어머니는 선뜻 가게 한편에 찌개백반이나 칼국수, 하다못해 믹스 커피라도 차려 놓고 ‘언니’들을 불러 음식을 나누곤 했는데, 언니들은 음식을 먹으며 저마다 자기가 아는 블랙웰에 관한 설들을 떠들어 댔다. 그중에는 블랙웰이 본토에 두고 온 처가 둘이나 된다는 증언도 끼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말을 한 ‘언니’에게 괜한 시비를 걸어 싸움을 붙였고 다시는 식사 자리에 초대하지 않았다.

한영진이 이야기를 엿들은 바, Mr. 블랙웰은 매끈한 연미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왕처럼 느껴졌다. 한영진은 미스터 블랙웰이 가져다준 바비 인형에게 드레스와 유리 구두를 신기고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놀았다. 이야기의 끝은 대게 바비 인형이 블랙웰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그 바비 인형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집과 타고 다닐 자동차, 결혼 후 살게 갖게 될 귀여운 딸과 아들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 버전이 존재했다.

1993년, 그러니까 한영진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이태원 해피타운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 어머니가 Mr. 블랙웰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열 살의 한영진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을 똑똑히 기억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던 시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어머니는 한영진에게 흰색 레이스가 층층이 달린 드레스를 입혔다. 어깨에는 종이로 만든 날개를 달아 주며 한영진을 천사로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는 한영진에게 그날이 핼러윈 데이라 일러 주고 재미난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는 날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구상에 그렇게 멋진 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던 한영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어머니는 웃으며 한국에서는 아니고 미국에서, 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에 이미 미국 땅이 있다는, 더 믿기 힘든 어머니의 말에 한영진은 또 한 번 입을 벌렸다. Mr. 블랙웰의 초대였다. 천사로 분장한 한영진이 난생처음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택시 기본요금을 내고 게이트 앞에 내렸지만 문 안은 미국이라는 황당한 말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고 무엇보다 어른들이 이렇게 엉뚱한 일을 벌인다는 사실이 한영진은 이상하기만 했다.


매끈하게 흰머리를 잘 빗어 넘긴 Mr. 블랙웰은 친절하게 웃으며 어머니와 한영진을 맞았다. 함께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그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호박 바구니를 한영진에게 내밀었다. 어머니의 설명으로, 이제부터 그 바구니를 들고 집을 돌아다니면서 ‘트리커트리’라고 말하면 사탕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한영진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블랙웰의 “trick or treat”과 어머니의 “트리커트리”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한영진은 곧장 두 사람을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한 무리의 아이들이 사탕 바구니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으므로, 그들 틈에 섞여 사탕을 얻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집 문 앞이건 ‘트리커트리’를 외치면 사탕이 한 움큼씩 바구니 속에 채워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영진은 블랙웰의 집으로 돌아왔다. 문이 잠겨 있지 않아서 쉽게 집안으로 들어선 한영진은 이층에서 들리는 엄마의 웃음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한영진은 두 사람을 놀래 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살금살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사탕이 가득 찬 바구니도 자랑하고 싶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방을 향해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발을 내딛었다. 문이 조금밖에 열려 있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엄마와 블랙웰을 엿보는 것은 충분했다. 하지만 거대한 침대가 놓인 그 방에서, 두 사람은 기이한 숨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고 있었다. 블랙웰의 손이 어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어머니가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뭔가에 깊숙이 빠져 있는 사람처럼, 어머니는 겁먹은 한영진의 인기척을 듣지 못했다. 대신 블랙웰의 목덜미를 더 바짝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영진은 그 광경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윽고 일층에서 “trick or treat”하는 소리가 들렸고, 화들짝 문에서 멀어진 한영진은 이번엔 쥐처럼 일층을 향해 뛰었다. 재빨리 문을 열고 나와 문 앞에 선 아이들 속에 다시 섞였다. ‘trick or treat’ 속에서 한영진은 다시 ‘트리커트리’를 외쳤다. 블랙웰의 집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넋을 놓고 돌아다니다 보니 사탕이 너무 많아졌다. 블랙웰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한영진은 길가에 사탕을 버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블랙웰의 집에 도착한 한영진의 사탕 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다. 빈 바구니를 흘긋 보던 블랙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시 사탕 한 줌을 바구니에 채워 줬다. 그것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던 어머니가 폭죽처럼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한영진을 집에 데려다 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소문이 떠돌았다. 어머니가 블랙웰을 따라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의 손에 어딘가로 팔려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영진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친척들의 집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 한영진이 가장 먼저 그만둔 것은 바비 인형과 Mr. 블랙웰 놀이였다. 대신 바비 인형의 장례식을 치러 줬다.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벗긴 바비 인형의 몸을 천으로 감쌌다. 목과 허리, 무릎과 발목 위에 나름의 염을 한 뒤, 화단에 구덩이를 팠다. 수십 벌의 드레스와 유리 구두를 바비 인형과 함께 묻었다. 그러고는 정성껏 골라 온 돌을 하나씩 쌓았다. 금세, 돌무덤이 생겨났다. 진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었는데, 한영진은 어머니가 사라졌을 때보다 더 오래 울었다.


이후 한영진은 눈에 띄게 자라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꾸준하게 며칠씩 집을 비웠다. 한영진은 어머니가 그랬듯 아버지를 대했다. 막연하게 거리를 뒀고, 아버지가 돌아온 밤에는 차라리 아버지가 없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처럼 한영진은 축축하고 질기게 자라났다. 청바지와 빨간색 폴로 티는 완전히 작아졌고 더는 어머니가 해 준 어떤 것도 몸에 맞지 않을 때쯤, 한영진은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바로, 발레였다. 한영진은 자신의 얇고 긴 몸에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다 문득, 지지 아줌마를 떠올렸다. 이태원에서 무용 학원을 운영하는 지지 아줌마는 어머니의 단골 중 하나였다. 그는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고 남편과는 사별을 했고,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아이 없이 혼자 살았다. 늘, 영진과 같은 딸이 있다면 하고 한탄하던 모습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그는 한영진이 어렸을 때 발레 동작을 가르쳐 준 적도 있었다. 해피타운에서 가짜 샤넬이나 루이비통을 찾던 지지 아줌마 역시 한영진의 어머니가 퇴역 장교와 바람이 나 사라졌다는 소문을 들었을 터였다. 한영진은 지지 아줌마가 운영하는 교습소를 찾았다. 말이 교습소이지, 수강생을 본 적은 없었고 그녀가 그곳을 집처럼 이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지지 아줌마의 발레 철학은 꽤 복잡했다. 발레는 기본적으로 연기를 하는 예술인데, 진정한 연기란 모두 경험에서 나온다는 식이었다. 발끝으로 서거나 다리를 찢는 것, 팔을 둥글게 올리고 허리를 꺾는 것들은 모두 그다음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이태원 뒷골목에서 가짜 샤넬이나 루이비통을 찾는 신세였지만 지지 아줌마는 꽤 오랫동안 무대 위에 오르던 발레리나였다. 그녀는 발레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티튜드’로 자주 호텔 커피숍과 레스토랑을 드나들었다. 꾸준한 수입 없이 죽은 남편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호텔 방문은 자주 부담이 되었다. 언젠가 한영진이 하필 연기 연습을 왜 호텔 커피숍에서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로 발레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관객을 이해한 뒤에 테크닉이 깊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지 아줌마를 따라 자주 호텔 커피숍과 레스토랑을 드나들었던 한영진은 어느새 서울의 호텔마다 전혀 두리번거림 없이 화장실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어느 호텔의 아이스크림이 맛있는지, 어떤 순서로 포크와 나이프를 잡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멋들어지게 걸치고 피우는 방법은 덤이었다. 완벽히 파산을 한 지지 아줌마가 발레 교습소를 정리할 때까지 한영진은 이 년간 교습소를 드나들었지만 정작 발레는 준비 동작 말고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한영진은 대학에 간다면 발레를 전공할 거라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 다짐을 들은 아버지는 그런 딸의 장래 희망과 상관없이 발레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늠해 보고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사이 좀 살아나는가 싶었던 아버지의 양고기 수입 사업이 다시 주저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뒤에 계속되리라 생각했던 활황의 기운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위기를 타개해 볼 요량으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몸에 좋다는 사슴 고기까지 대량으로 구매했으나 그마저도 고스란히 냉동고에서 처리 불능의 얼음덩이가 되어 갔다. 추락은 원래의 제 계획대로 차근차근 부녀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실패를 견뎠고 한영진은 좀 더 강하게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으로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


한영진, 그러니까 영진 선배의 유년 시절이 어땠는지 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애초부터 책을 만들고 목차를 짜는 것에는 기분이나 심정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시간 순으로 목차를 정하고 그것과 연관되는 일련의 사건을 정리하면 됐다. 물론, 간단한 인터뷰는 필요했다. 때문에 영진 선배의 어릴 적 주소지, 이태원에 대해 잠깐 물었는데 영진 선배가 숨 한번 쉬지 않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나 이제, 물 좀 마셔도 되겠니?”

영진 선배는 룸서비스 식탁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 차려진 커피와 쿠키 사이에 에비앙이 놓여 있었다.

“어. 그래. 천천히 편하게 해. 어차피 말한 내용을 다 담을 수도 없고.”

“그럼 뭘 담아?”

“선배가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무슨 일을 했고 뭘 좋아했는지, 그런 거.”

“말했잖아.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고.”

“그럼 선배한테는 뭐가 중요한데?”

“내 생각에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이런 거야. 물고기를 기른다고 생각해 봐. 데이터가 먹이지. 물고기가 먹이를 먹고, 몸집을 키워. 비늘도 생기고 지느러미도 생기고, 심장도 뇌도 가슴도 생기고 말이야. 내 이야기들이 플랑크톤처럼 떠다니고 그 물고기는 내가 될 건데, 뭘 먹느냐가 얼마나 중요하겠어. 말하다 보니 내가 무슨 양식장 주인 같다 얘.”

생각지도 못한 비유가 의아했지만 나는 수긍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진 선배의 말이 맞았다. 언젠가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웹 콘텐츠 회사의 계약직 직원이었고 데이터 마이너로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원래 데이터 마이닝은 광산에서 광물을 캐듯 의미 있는 데이터를 찾아 프로그램에 맞게 가공하는 일이었는데,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양식장에서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기분, 아니 결국은 그 물고기의 밥이 되는 기분. 모니터 속의 무생물들이 생물이 되어 가는 동안 나는 소모품처럼 교체될 기계가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뭐, 선배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아무튼 특별히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키워드로 말해 줘. 참고할게.”

“우리가 같이 보낸 고등학교 때 얘기는 어때? 나중에 들으면 그리워지는 것들이면 좋겠어.”

“그때가 그립다는 얘기야?”

“동창들과 만나면 죄다 옛날 얘기만 하잖아.”

결국, 나는 영진 선배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졸업 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본 적이 있어?”

“응.”

“왜?”

“궁금해서.”

“뭐가?”

“잘들 살고 있는지.”

“뭘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

나는 그렇게 쏘아붙인 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일은 일.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호텔로 온 이상 선배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건 여러모로 낭비 같았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다잡았다.

“미안해. 나는 이상하게 그때 너무 힘든 기억이 있어서.”

“에이. 그렇게 힘든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잖아.”

“내가 기억할 만한 게 있었나?”

“그럼. 그때 너는 조용했지만 다른 애들과는 확연히 다른 면이 있었지. 조숙한 느낌의 시를 썼고, 일기도 매일 쓰고. 그리고 날 좋아했잖아. 아주 많이. 둘이 동아리도 같이 하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런 때도 있었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우리 늘 붙어 다녔잖아. 번갈아 가며 따돌림을 당해서 그랬나?”

1999년, 종말이라는 글자가 적힌 푯말을 든 사람들을 서울역 광장에서 심심치 않게 보던 시절이었다. 1992년 휴거 소동이 있은 뒤로 우리에게 ‘휴거’는 헤프닝이 되었지만 실은 ‘재림’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을 뿐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끝을 앞두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있던 나도 그 비슷한 심정이었다. 내가 향할 곳이 내가 겨우 익숙해진 세상의 끝을 의미했다. 내 방의 끝. 동네 친구의 끝. 어린아이의 끝. 하지만 좋은 것도 있었다. 바로, 부모의 불화를 목격하는 것의 끝.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화는 다채로운 전개를 가졌지만 늘 하나의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바로, 주님의 뜻이었는데 두 사람이 ‘공중 재림의 증인들’이라는 선교회에서 만난 탓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와 아버지는 식당이 딸린 작은 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식당 일이 끝난 저녁에는 퉁퉁 부은 발을 주무르면서 성경을 읽었고, 밥 먹기 전과 잠들기 전에는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 부모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라 자주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번번이 많은 것이 너무도 확실하지 않아서 그들은 믿음에 더 절실히 매달려야 했다. 때문에 그 믿음의 결실인 나는 아버지의 찬송 소리와 어머니의 방언 기도를 들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이토록 확실한 ‘믿음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지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믿음의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배신의 원흉은 결국 돈이었다. 두 사람에게 수입이란 언제나 크기가 명확했다. 구체적이었고, 한계가 명확했고, 늘 불화를 동반하는 반면 지출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피함을 동반했다. 월급과 목돈, 비상금과 거짓말, 과도한 헌금과 배신, 신앙심과 융통성 등등 아버지의 믿음이 무너지는 경우는 다양하게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새로 만난 신과 새로운 거래를 시작했다. 새로운 신은 다양한 거래처를 허락했고, 전보다 더 여유로운 생활을 약속했다. 아버지는 한 번, 두 번 증인의 모임에 빠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나가지 않았다. 종당에는 ‘공중 재림의 증인들’에서 보다 더 많은 돈을 새로 나간 교회에 가져다줬다. 그 교회는 ‘공중 재림의 증인들’을 이단이라고 부르는 곳이었고 그 이후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타협할 수 없는 논쟁을 시작했다. 어머니를 이단 종교에 빠진 사탄 취급하던 아버지는 끝내, 나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머니의 외도로 나온 자식으로 아버지를 닮지 않은 내 얼굴을 그 첫 번째 증거로 들었다. 상식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초 생물학 지식, 혈액형이나 성향, 유전적 특이사항 같은 것들은 비극을 막지 못했다. 그것은 결국 나를 멀리 기숙사 학교에 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기도나 찬송으로 극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나의 부모는 나를 이 학교, 성화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성경 친화적 자급자족을 교육 방침으로 내건 사립 고등학교인 것도 그들이 나를 보낸 이유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모든 혜택은 온전한 ‘공중 재림의 증인들’의 자녀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가십을 떠드는 대신 성경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가십처럼 떠들었다. 그중에서 성경 「아가서」는 우리에게는 빨간책과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젖가슴과 키스, 침실과 꿀물 등이 난무한 일종의 시였다. 영진 선배와 나도 교환 일기에 이런 구절을 적어 놓고 키득거리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성화고 교문 밖에는 떡볶이도 없었고, 노래방도 첫 키스나 첫 경험이란 단어도 없었다. 이것들은 모두 영진 선배가 학교에 전학 온 이후에 생긴 단어들이었다. 학교에서는 교칙이나 학칙이라는 단어보다는 율법이란 단어가 더 많이 떠돌아다녔고 대부분은 모태 신앙을 가진 ‘증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영진 선배는 심각하게 오염된 ‘사회’에서 온 이교도였다. 영진 선배가 성화고에 전학 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여자 기숙사의 사감인 윤의 조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영진 선배와 하나로 묶이게 된 이유는 순전히 내가 그곳 아이들과 불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목차를 채울 새로운 키워드를 찾아 정리하면서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 양식장의 치어 따위를 상상하니 더욱 그랬다. 마치 다른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하듯 가볍게 말하는 영진 선배의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그 말들이 왜 거슬리나, 생각하다 이 모든 답답함의 원인이 짐작되었다. 바로, 호수 때문이었다. 통상적인 의미로 셋의 관계를 설명할 때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던 사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영진 선배와 호수는 비슷했다. 호수를 떠올리자마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불안이 조금씩 머릿속을 점령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내게 영진 선배가 가벼운 새소리를 냈다.

“내가 2학년 때 전학을 왔으니까 내가 널 처음 만난 게 벌써 몇 년 전이니?”

“이십이 년이 됐네. 벌써.”

“너는 그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라며. 너는 확실히 다른 애들하고 다르게 보였어. 다른 애들은 투명한 유리 같았는데, 너는 좀….”

“그 투명한 애들 때문에 많이 괴로웠지. 그게 화가 나는 건 아닌데, 마음이 참 많이 부글거리던 시절이었어.”

“아무튼, 그때 너는 좀 힘이 없어 보였어. 나는 좀 달랐지만.”

“맞아. 선배는 좀 달랐지. 전교에서 유일하게 치마 허릿단을 세 번씩 접어 입는 사람이었고, 새벽에 기숙사 담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지. 그게 좀 부럽기도, 이상하기도 했어.”

“알아. 나도 내 소문이 어땠는지.”

풉, 하고 영진 선배는 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마도 그 소문을 떠올린 듯했다.

“그 선생님?”

“응.”

“그거 소문이 아니잖아. 선배, 정말로 그 선생님을 좋아했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 되게 별로였는데.”

“그래?”

“키는 컸는데 좀 허약해 보였달까? 안색이 늘 창백했어. 성격도 너무 차갑고 예민했고.”

“그치만 선배는 늘 음료수, 손수건, 사탕 바구니 이런 것들을 수시로 갖다 바쳤다며.”

“내가 그랬던가?”

“그래서 내가 물은 적도 있는걸? 그 인간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거냐고. 선배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

“글쎄?”

“선배를 경멸하듯 본다는 거야. 그 눈빛이 좋았데.”

“참 이상한 애였네. 근데 내가 다른 건 말 안 해 줬나 보다.”

“뭔데?”

“날 그렇게 보던 그 선생이 매일 밤 나를 불러냈다는 거.”

“정말?”

“응.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는데, 그 선생님이 날 부르는 거야. 잠깐 교무실로 와 보라고. 날 불러다 놓고 수업 태도를 지적하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용건 같지가 않은 거 있지. 근데 전화가 왔어. 그때 선생님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거든? 그런데 전화를 건 약혼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나와 함께 있는데 다른 선생님과 함께 얘기 중이라고. 그 뒤부터 용건도 없이 기도실로, 양호실로, 빈 교실로 나를 불러내곤 했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뭐야. 정말?”

“사실, 그래서 실망스러웠어.”

영진 선배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까, 내가 어른이라 여겼던 그 선생님도 영 쑥맥이 아니었나 싶어. 몇 번이나 불러냈으면서도 아무것도 해낸 게 없으니까. 그런데 웃긴 건 뭔지 아니? 소문의 근원지가 그 선생님이라는 거야.”

“뭐라고?”

“그 선생님이 목사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놨나 봐. 어느 날 원목이 나를 불러다 놓고 추궁을 하는 거야.”

“호수의 아버지?”

“응. 원목이 그러더라. 자기는 그 선생님과 아주 잘 아는 사이래. 그 선생 초등학교 때부터 봐 왔다는 거야. 자기가 아는 한 그는 누구보다 믿음 안에서 신실한 사람이고, 남을 속일 줄도 모르며, 배우자 기도를 아주 열심히 오랫동안 해 왔다고.”

“그런 얘길 왜 해?”

“선생님을 유혹한 여학생으로 소문이 난 건 교목실에 불려 갔다 나온 직후부터였어.”

나는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영진 선배의 말이었지만 그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학교에서라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아니 그럴 소지가 충분했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 갈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 그 선생님이 선물한 거야.”

영진 선배는 우산과 함께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존 밀튼의 『실낙원』이었다.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졌다. 영진 선배가 묵고 있는 스위트룸을 빠져나온 나는 잠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호텔 로비에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영진 선배의 방에 녹음기를 놓고 왔음을 알았지만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영진 선배가 쥐어 준 책의 맨 앞장을 펼쳐 보았다. 『실낙원』이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필독서였다는 것과 함께 신에게 반항을 해 전쟁을 일으킨 천사의 이야기라는 것이 떠올랐다. 천사와 마찬가지로 그때 나 역시 반항에 진심이었다. 성경에서 부정하다고 정한 음식들,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모든 짐승과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들을 몰래 먹었다. 다만, 그것들을 혼자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진 선배와 함께 규율이라 적힌 말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일은 내게 복수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나를 이 학교에 보낸 부모에 대한 복수이자, 신앙을 핑계로 상처를 주는 아이들에 대한 복수. 복수를 하자면 내게는 영진 선배가 꼭 필요했다. 나는 영진 선배와 함께 마른오징어를 질겅거리고, 페페로니가 올라간 피자와 삼겹살을 몰래 먹었다. 커피와 술을 마셨다. 금지된 것들을 맛본 뒤 먹는 학교와 기숙사 식당 밥은 어딘지 떫고 썼다. 영진 선배를 동반한 복수 중에는 시드니 셀던의 소설들도 있었다. 통상 열 번 이상의 적나라한 정사 장면이 묘사된 이 책을 나는 마스터베이션에 사용했다. 『낮과 밤』, 『최후의 심판』 등은 최고의 오르가슴을 선사해 주고는 했는데, 나는 죄책감이 쾌락을 얼마나 증폭시키는지 몸소 깨달았다. 나는 매일 숨 막히는 학교생활이 어서 끝나기를, 예배 시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환상 속의 침실을 기웃거렸다. 나중에는 수학 시험을 보는 동안에도, 기도를 하는 중에도 그것에 쉽게 몰입했다. 쾌락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나는 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쥐약을 사서 침대 머리맡에 숨겨 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인지 모른다. 잠들기 전 루틴, 마스터베이션과 죽음에 대한 생각, 이 생겨났고 나는 나의 죽음으로 세상에 내가 줄 수 있는 타격을 가늠하며 꿈을 꾸었다.

타락 천사 놀이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진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 역시 영진 선배의 활약이 컸다. 선배는 남자 기숙사에 쪽지나 편지를 배달해 주는 비둘기 역할을 자처했다. ‘동남아 순회 선교를 막 마치고 돌아온’ 권사의 아들인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는데, 내게 사귀자는 말 대신 자기의 이름이 새겨진 성경을 선물했다. 그 애와 처음 손을 잡은 것은 일요일마다 식당 앞마당에서 열리던 포크댄스 시간이었다. 축축한 손바닥을 바지에 닦느라 춤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내가 춤을 리드했는데, 그는 그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사귀는 동시에 헤어졌다. 그 후에 영진 선배의 소문과 더불어 나에 대한 소문도 돌았는데, 내가 너무 밝힌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호수의 전화는 목요일마다 걸려 왔다. 그는 챗봇의 답처럼 단조로운 목소리로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는 꼭 더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가 듣고 싶은 것이 나에 관한 얘기인지, 영진 선배에 관한 건지 헛갈려 입을 다물었다. 이해는 했다. 영진 선배가 그의 첫사랑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속앓이를 본 사람도, 하지만 그것을 끝내 영진 선배에게 전하지 않는 사람도 나였기 때문이다. 끝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그는 마지못해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마음에 영진 선배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는 걸까? 내가 저지른 부적절한 관계에 관한 얘기라면 나는 충분히 자세히 그에게 털어놓은 상태인데. 아니면 사과라도 받고 싶은 건가? 그러면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호수의 마음이 내가 아닌 영진 선배에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쪽으로 몰아갈수록,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왜. 호수는 끝내 헤어지자는 말은 꺼내지 않는 걸까.



2. 기도의 동산


한영진이 성화고등학교에 전학을 한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봄방학이 막 끝난 1999년 2월이었다. 성경은 고사하고, 교회 근처도 가 본 적 없는 한영진이 성화고에 전학을 온 이유는 그곳에 어머니의 동생, 그러니까 그의 막내 이모가 있다는 게 유일했다. 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막내 이모, 윤은 어머니의 가출, 혹은 행방불명 이후 드문드문 한영진에게 연락을 해 왔다. 둘은 서먹한 사이이긴 했지만 한영진은 확신했다. 그가 어머니의 말처럼 사이비 종교에 빠져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낸 ‘미친년’은 아니라는 걸. 게다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비난의 주체가 어머니인 것이 한영진의 확신에 무게감을 더했다. 한영진이 파악한 바, 윤은 잘해 봐야 어머니를 배신한 배신자일 따름이었다. 환영받지 못한 딸들 중 막내. 한영진 어머니의 계산으로, 형제들을 대표해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살며 무상으로 가사와 간병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윤이었다. 동시에 자신이 쥐어 주는 용돈 말고는 재산은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 그러니까 윤은 한영진의 어머니에게 제일 만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한영진 어머니의 야무진 계획은 윤이 집을 나가면서 무산되었다. 윤은 이따금 수가 틀리면 가출을 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는데, 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은 때는 ‘공중 재림의 증인들’이란 종교 단체를 접한 이후부터였다. 한영진의 어머니가 두둑한 용돈으로, 백화점 브랜드의 옷과 가방으로 회유해 보았으나 윤이 들고 있는 신앙이라는 방패는 쉽게 뚫리지 않았다. 한영진의 어머니가 기억하는 윤의 마지막 모습은 이랬다. 종로3가와 4가 사이에서 다른 이단 종교와 시비가 붙어 싸우고 있는 윤을, 구하려 했으나 되려 자신을 시비가 붙은 이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하더란 거였다. 길바닥에서 제 언니에게 욕을 섞어 통성 기도인지 저주인지 모를 것을 중얼거리던 윤을 봤을 때 딱 감이 왔다고 했다. 쟤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진 못하겠구나, 하고.

이렇게 말하면 윤이 불행해 보이겠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신앙이라는 옷이 있었다. 마치, 신에게서 청혼을 받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윤은 물색없이 투명했다. ‘주님을 영접하는 날’마다 진주 귀걸이에 리본 블라우스를 우아하게 차려입고 기숙사를 나서는 윤은 ‘하나님께 사랑받기는 기도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마치 하나님을 든든한 뒷배로 둔 사람처럼 행동했는데 가끔은 그것을 명분으로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예배에 빠지려고 꾀를 쓰는 사생들에는 사랑받는 일에 게으름을 부린다면 남편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논리의 잔소리를 하곤 했다. 현실의 윤은 신앙생활을 핑계로 노처녀인 것을 커버한 것에 불과했지만, 타의가 반인 비혼주의 선언 덕분에 기숙사 사택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아이, 한영진을 곁에 두겠다는 결심은 어쩌면 그가 미혼에 자식을 가질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션스쿨이자 남녀공학, 모두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성화고에서 한영진은 등장부터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회’에서 온 여학생답게 옷차림에 취향이 뚜렷했고 관심사나 취미도 성화고의 학생들과는 완벽히 달랐다. 참견을 싫어했지만 논쟁이나 설득은 즐겼다. 성화고 기숙사생들 중 잡지, 음악과 패션, 과학 잡지를 읽는 학생은 한영진이 유일했고 거기에 더해 그는 스크랩 노트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발레 슈즈도 성화고의 학생들에게는 뜻밖의 물건이었다. 그때까지 피아노나 플릇, 바이올린과 비올라처럼 성가 합창이나 반주에 쓰일 수 있는 악기들이 취미의 전부였는데, 몸을 쓰는 발레는 완벽히 다른 의미의 취미였다. 한영진의 토슈즈를 목격한 몇몇은 하늘하늘한 발레복을 입은 한영진의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상상하며 질투를 하기도 했다. 성화고 학생들이 ‘다름’이라는 걸 겪어 보지 못했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타인과 갈등할 기회는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점지되듯 배 속에서부터 ‘증인’의 신분을 달고 나온 이들에게 한영진은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넓이의 문제였다. 종교에서 이탈된 무엇인가를 발생시키는 금지된 유혹의 존재 같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영진은 전학 전 교목과의 입학 면접에서 그 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영진 학생은 인간이 뭐라고 생각하지요?”

교목이 물었다. 한영진은 질문을 던진 그의 번들거리는 미간을 잠시 바라봤다. 난생처음 ‘정말 그게 뭘까’를 생각했다. 그거다 문득, 커다란 콧구멍을 벌름거리던 교목을 보던 한영진이 대답했다.

“구멍이요. 콧구멍, 입 구멍, 땀구멍….”

간신히, 똥구멍이란 말은 삼켰지만 교목의 표정은 이미 블록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한영진이 씨익,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자신의 말에 후회를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은 태어날 때도 구멍을 빌리지 않나, 하는 생각에 눈이 커졌다. 하지만 원목의 생각은 달랐다. 내심 정해둔 답인 ‘주의 증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한 대답을 기대했다는 얼굴이었다.

“음. 이유를 물어도 될까?”

“사실 그렇잖아요. 다들 구멍으로 먹고 구멍으로 싸고….”

교목의 얼굴이 달군 돌처럼 붉게 번들거렸다.

“아이고. 신이 우리 인간을 그렇게 아무 뜻 없이 만드셨을 리가.”

“저는 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저만 특별히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만든 건 아닐까.”

은근히 자신의 말에 설득이 된 한영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약, 16년간 중단 없이 지긋지긋했던 일들에 목적이 있었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처사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한영진을 응시하던 원목은 할 수 없다는 듯, 파일에 메모된 특이사항을 다시 한번 슥, 훑었다. 신실하기로 소문이 난, 성화고의 사감, 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성화고의 기숙사는 캠퍼스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녀 사생들이 함께 쓰는 식당과 강당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여자 기숙사가 왼쪽에 남자 기숙사가 있었다. 여자 기숙사의 철문 안에는 서른 개가 넘는 방이 ㄷ자 모양의 기숙사 난간을 따라 죽 늘어서 있었다. 중정처럼 가운데가 뚫려 있는 기숙사 중앙에는 테니스장 두 개 넓이만 한 마당이 있었고 화단이 길게 놓여 있었다. 화단 중간에는 무화과나무와 앵두나무, 칠이 벗겨진 벤치가 놓여 있는데 그곳은 주로 사생들이 이불이나 빨래를 말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그 뒤로는 장미 가시넝쿨을 두른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담장은 ‘공중 재림의 증인들’이 초창기 교회로 쓰던 건물이 기숙사로 사용하기로 하며 신축한 유일한 조물이었다. 누구라도 마음을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을 만한 높이의 담은 그 너머 기도 동산에 오르면 기숙사 주변에 그어 놓은 선처럼 보였다.

기도 동산은 여자 기숙사 뒷마당과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진입로에서 정상의 나무 십자가까지 이르는 길을 제외하고는 모든 길이 사람의 발길을 따라 좁고 은밀하게 뻗어 있었다. 성화고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그곳에 자신만의 기도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무 밑이나 작은 바위 앞에 자기만 아는 표시를 해 두었는데, 주로 작은 나무 십자가나 코팅을 한 기도문 같은 것들을 놓아 두었다. 학생들은 경쟁하듯 자신만의 표식을 걸어놓았는데, 저희들끼리 신앙심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기도 동산은 또 죽은 것들을 묻는 용도로도 쓰였다. 개나 고양이, 쥐덫에 걸린 쥐들도 죽으면 모두 그곳 기슭에 묻었다. 하지만 기도하는 자와 죽은 동물들만 기도 동산을 찾는 건 아니었다. 나무와 바위 사이에 숨을 곳이 많은 그곳은 성화고에서 가장 신성한 동시에 가장 은밀한 장소였다. 성화고는 학생들 사이에 연애를 금지했지만 그것은 애초에 금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들은 금지된 사랑을 위해 기꺼이 기도 동산에 올랐다. 어린 연인들이 선호하는 모든 종류의 어둠이 그곳 기도 동산에 있었기 때문이다.

9시 점호와 7시 아침 식사, 12시 소등은 기숙사생들에게는 불문율이었다. 그 외의 상황이 생기면 증빙서류로 외출증과 귀가증을 내야 했다. 외출증이 있으면 10시까지 외출이 허락되었는데, 외출의 정당성은 주로 사감과 종교 부장이 판단했다. 이런 활동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면 벌이 뒤따랐고 그것 또한 그 두 사람의 고유 업무였다. 한영진은 지금도 기숙사의 첫인상을 냄새로 기억했다. 철문 안에 들어서 처음 풍겨 오던 내음은 존슨즈 베이비로션 냄새와 그와 섞여 떠돌던 비린내였다. 그 묘하게 거슬리던 비릿한 내음은 한영진이 커다란 트렁크와 함께 기숙사 1호실로 사라질 때까지 코끝을 맴돌았다.

4인실 방이 서른 개가 넘는 기숙사는 2학년 세 명과 3학년 한 명이 룸메이트가 됐다. 3학년이 방을 책임지는 방장 역할을 했고 나머지 2학년들은 방장의 지시에 따라 생활했다. 신입생은 기도실이라고 불리는 교실 크기의 커다란 공간을 나눠 썼다. 스무 개가 넘는 이층 침대가 벽을 따라 놓여 있었고 사물함으로 나름의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각 이층 침대마다 천을 빙 둘러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는데, 신입생들은 그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겨울이면 함께 감기를 앓았고, 여름엔 서로에게 비릿한 냄새를 풍겼으며, 누군가는 가끔 생리대를 도둑맞았다.

한영진은 기숙사 사감실과 가장 가까운 1호실에 살았다. 1호실은 기숙사의 실질적인 1호인 종교 부장이 머무는 곳이었다. 종교 부장이란 사감의 대리인이자 기숙사 내부에서의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임을 뜻했다. 그러니까 ‘순종, 순결’이라는 기숙사 훈을 커다랗게 적어 놓은 1호실은 그것과 제일 가깝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묵언의 암시가 깃든 방이었다. 거의 모든 사생들이 몰래 훔쳐보는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노래방에 가는 것 혹은 가요를 부르는 것도 1호실에서는 철저히 금지되었다. 남녀공학인데도 불구하고 교문 밖에서 이성을 만나는 일이 발각되는 날이면 정학도 맞을 수 있는 곳이 성화고였다. 교복 바지에 빨강 양말을 신었다고, 사복 치마를 좀 짧게 입다고 반성문을 써야 하는가 하면, 그것 때문에 교목실에 불려가 회개를 하고 형량처럼 주어진 기도 시간을 채워야 했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으나, 그것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존재했다.

한영진이 이 학교에서 평범하게 지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한영진은 한영진이었으므로, 기숙사 1호실을 배정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를 꾸미는 일이었다. 그 당시 한영진은 홍콩 배우들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장국영의 열렬한 팬이었고 당연히 한영진의 머리맡은 그의 차지였다. 그가 임청화와 주연을 맡은 영화 <백발마녀전>의 포스터를 붙이는 한영진에게 성경 구절이나 십자가, 그도 아니면 풀을 뜯어 먹고 양 그림 정도를 기대한 종교 부장이 그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 봐.”

“네?”

“지금 뭘 붙이고 있는 거니?”

“포스터요.”

갑작스럽게 싸늘한 표정이 된 종교 부장에게 한영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분이 나쁘거나 황당할 때 억지 미소를 짓는 것은 한영진의 특유의 버릇이었다.

“왜 웃니?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니?”

“아니요. 그게 아니라….”

“여기 어디지?”

어디긴, 내 침대 머리맡이지,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한영진은 그저 포스터와 종교 부장을 번갈아 보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종교 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 주님, 정말, 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한영진에게 장국영은 포기할 수 없는 위안이었다. 한영진은 종교 부장을 피해 귀가 헐도록 타국의 멜로디 사이를 서성거렸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늘어질 대로 늘어진 홍콩 영화의 OST를 들으며 가난한 여자와 상처를 입은 남자, 목숨을 걸어야 증명되는 사랑과 그 사이를 통과하는 총알, 피 묻은 웨딩드레스, 죽음을 각오하고 달리는 질주들을 상상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현실을 잊었다.

한영진에게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때와 별로 다른 게 없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일도, 외톨이를 자처하는 일도 비슷했다. 음식 재료로 쓰일 야채를 직접 기른다거나, 난방을 위해 연탄을 나른다거나, 청소기와 세탁기 없이 청소와 빨래를 해결하는 것이 다른 정도였다. 한영진은 지구 어느 곳도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성화고에는 아버지가 없고, 돌아온 아버지가 다시 집을 나가길 바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대신 어떤 질문도 허용되지 않고, 의문을 가져도 원하는 답을 구할 수 없는 게 이곳의 문법이라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욱하고 답답한 마음이 폭풍처럼 몰아칠 때가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생각을 멈췄다. 그저, 남들이 기도하러 오르는 기도 동산을 운동 삼아 올랐고, 나무마다 붙어 있는 수십 개의 십자가들을 보면서 인간의 기도가 이렇게 징그러울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영진이 주하나를 눈여겨본 것은 쥐약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화단에 쥐약을 묻는 주하나를 본 것이다. 주하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식당에서 배식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신입생 중에 유일하게 낯이 익은 아이였다. 때문에 어둠 속에서 주하나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밤, 화단에 구덩이를 파는 것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영진은 그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몰래 담배를 피우러 나왔으니, 인기척을 낼 이유도 없었다. 조용히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주하나가 구덩이 속에 무엇을 파묻었는지 알게 된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개가 죽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진돗개였는데, 사감이 애지중지하던 개였다. 그 개가 간밤에 주하나가 파 놓은 구덩이 옆에 죽어 있었다. 혀를 길게 빼고 죽은 개는 하얗게 거품 물고 있었고 그 곁에는 너덜너덜하게 구멍이 뚫린 쥐약 봉지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냄새를 맡은 개가 구덩이를 파고 쥐약을 먹은 것 같았다. 개의 죽음을 목격한 사감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죽은 개를 황망하게 바라봤다. 개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흰 블라우스에 복사뼈를 덮는 긴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사감은 싸늘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몸을 바르르 떨었다. 사생들을 추궁했지만 그가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생들을 죽 훑은 사감은 한쪽 입꼬리를 의미심장하게 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겠네요. 죄를 지은 사람이 정직하게 나서지 않는 걸 보면.”

한영진은 이성을 잃어 가는 사감 옆에 서서 주하나의 표정을 살폈다. 한영진의 시선을 느낀 주하나가 학생들 틈 사이로 몸을 숨겼다. 사감은 개를 기도 동산에 묻어 주러 간 사이 종교 부장은 몇몇 간부들을 식당으로 집합시켰다.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특히, 신입생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한영진으로서는 오리엔테이션이란 단어에 왜 그렇게까지 겁을 먹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영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희미한 조명이 켜진 앞마당에 수많은 기숙사생들이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이라기보다 군대의 얼차려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앞에 세워 놓고 그간 쌓아 놓은 뒷담을 대놓고 하는 인신공격에 가까웠다. 기숙사의 기강을 바로잡으면서 동시에 기숙사생들의 고충을 듣는다는 것은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대부분인 기숙사였다. 자칫, 아이들이 엇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이 복잡해지기 일쑤였다. 혹시 어디선가 일탈이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학생들에게 달려 있는 소문들을 파악해 초반에 싹을 자르자는 것이 오리엔테이션의 숨은 의도였다.

오리엔테이션은 3학년이 맡았고 학년별, 거기서 다시 방이나 모둠별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1학년, 2학년 아이들이 일렬로 집합되었다. 용수철이 튀듯, 학생들은 호출과 동시에 방에서 튀어나왔지만 너무 늦거나 빠른 아이들 때문에 그 일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숨을 헐떡이는 학생들에게 이번에는 강당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강당 안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의자를 밀어 놓은 불려온 학생들은 눈을 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3학년이 그들을 죽 둘러섰다. 이제, 이름이 호명된 학생이 다시 용수철처럼 일어설 차례였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앉아 있는 쪽도 일으켜 세운 쪽도 누가 누구인지, 어떤 비난을 받는지도 모두 알 수 있었다.

“최수지.”

“네”

“눈 감아.”

“네. 죄송합니다.”

“너, 요즘 장난 아니더라? 아직도 방 청소를 그렇게 안 한다며?”

“더러워 죽겠어.”

“빨래도 제때 안 해서 지린내가 방에서 풀풀 난다니까?”

“혹시, 너네 집도 그러니?”

“너 선배들이 기도 되게 열심히 하는 거 아니? 너랑 방 같이 쓰지 않게 해 달라고.”

이런 식이었다. 비난과 질책이 이어지면 눈을 감고 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뿐이었다. 걸핏하면 선배 뒷담을 해 댔던 아이들 누구도 찍소리를 못 냈다. 한영진은 더 몸을 움츠리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간절히 다른 세계로 빠져들기를 바랐다. 되도록 신의 세계와 아주 먼, 이를테면 물리(物理)의 세계. 심장이 뛰지 않는 것들의 세계. 고요하고 차갑고 날카롭고 정확한 것들의 무게와 속도로 정확히 예측이 가능한 세계. 수수께끼 같은 예언이나 기도는 한영진의 모든 상황을 불가해한 쪽으로만 몰아갔기 때문이다.

“주하나.”

“네!”

주하나의 이름이 불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짝, 하고 따귀 맞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한영진은 슬며시 실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다봤다. 주하나의 뺨으로 날아왔다 돌아가는 손을 볼 수 있었지만 그 충격에 고개가 꺾인 주하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거 너희 아버지 대신이야.”

“네……?”

“이단에 빠졌다며?”

1호, 종교 부장의 목소리였다. 여기저기서 무거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식 이름을 주, 하나만 믿겠다는 뜻으로 지어 놓고 정작 아버지란 작자는 그렇단 말이지? 그 벌이야. 아버지 벌 대신 받는다고 생각해. 성경에서도 아버지의 죄를 자식이 받고는 하잖아.”

누군가 조용히, 그럼 불쌍한 거 아닌가? 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단이라는데 그건 죄지, 무슨, 했다. 주하나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눈물만큼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듯 미간이 단단히 뭉쳐있었다.

“너 기도 동산에 아직 네 자리도 안 만들었지?”

“네…….”

“크게!”

“네!”

“이거 봐. 네 믿음이 이 정도인데, 이게 너네 아버지랑 아무 상관이 없었겠니? 아버지가 이단이면 너도 곧 그렇겠지.”

“…….”

“너 하나 때문에 우리가 다 물들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제대로 하란 말이야!”

주하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온통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막느라 그의 몸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불같고, 얼음 같고, 가시 같고, 유리 같은 단어들이 모두의 귓가를 맴돌았다.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팔아, 탐욕스러운, 패륜에, 비정상. 소리는 점점 더 거칠고 험악했다.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머! 쟤 봐!”

주하나의 회색 트레이닝 엉덩이 부분에 손바닥만 한 핏자국이 번졌다. 하지만 주하나는 눈을 감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야! 너 뭐야? 정말 너란 애는 어쩔 수가 없는 얘구나? 빨리 화장실 다녀와.”

1호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주하나가 눈을 내리깐 채로 엉거주춤 걸었다. 다시 눈을 감은 한영진의 아랫배에 찌르르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며칠 뒤, 한영진은 주하나와 마주쳤다. 그가 얼마간 식당 배식 아르바이트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꽤 오랜만처럼 느껴졌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 있던 주하나는 통화 중이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한 한영진은 순서를 기다리는 척, 줄을 섰다. 작지만 주하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위치였다. 통화 내용은 주로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하나는 되도록 밝고 명랑한 톤으로 친구도 제법 많이 사귀고, 공부도, 신앙생활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주하나는 늘 혼자였다. 주하나의 뒷담을 하는 애들 옆을 지날 때마다, 한영진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그들을 상상했다. 아무것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중 단골 소재는 남자 기숙사생과 관련된 뒷담일 거였다. 남자 기숙사생과 얽힌 추문들은 한영진과 주하나에게 공통으로 찍힌 주홍글씨다. 한영진은 잠자코 있다가 전화 통화를 끝낸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너, 주하나 맞지?”

짧은 커트 머리에 하얀 얼굴의 한영진이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난기 많은 소년 같은 투로 한영진이 말을 이었다.

“나 전학 왔어. 2학년으로.”

“알아요.”

주하나는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남녀 기숙사를 통틀어, 지난달 입사한 한영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귀엽게 생겼네.”

“네?”

주하나는 한영진을 빤히 쳐다봤다.

“새벽에 봤을 땐 좀 으스스했는데.”

한영진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주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언제 시간 되면 인터뷰 하나 해 줄 수 있어?”

주하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 후, 주하나가 한영진을 피해 다니기라도 한 듯 둘은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한영진은 주하나와 기숙사 현관 앞에서 다시 한번 마주쳤다. 토요일이었고, 예배가 끝난 뒤였다.

“학교 가는 거지? 같이 가자.”

한영진은 주하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여러 개의 가방 중 하나를 주하나에게 맡겼다.

“이거 조금만 들어 줘.”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주하나를 앞서갔다. 둘은 기숙사에서 나와 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소나무 숲을 지나는 길에 몇몇 남학생들이 한영진에게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4월의 캠퍼스는 청명한 공기로 상쾌했고 운동장은 동아리를 홍보하는 부스들로 분주했다. 성화고는 예배가 있는 토요일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을 해야 했는데, 주로 4월에 자신이 할 동아리를 결정했다. 주로 기도회나 성경 퀴즈, 찬양 동아리 등이었지만 뜨개질이나, 그림 그리기, 식물을 키우는 동아리들도 있었다. 한영진은 주하나와 함께 동아리 방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한영진이 주하나에게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냐고 물었다. 주하나는 성경 연구 동아리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아버지의 일이 때문인지 선뜻 결정을 못 했다고 했다.

“우리 동아리 같이할래?”

“같이요?”

“너도 딱 정한 거 없잖아.”

“무슨 동아리인데요?”

“인터뷰 동아리야. 카페-인이라고.”

“인터뷰?”

“응. 카페에서 신앙 관련 인사를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글로 써서 소식지를 만드는 거.”

주하나의 표정이 심드렁해지자 한영진은 목소리를 한껏 낮춰 귓가에 속삭였다.

“근데, 진짜는 그게 아니야.”

“진짜는 뭔데요?”

“가 보면 알아.”

“그 동아리 선배가 만든 거예요?”

“응. 근데 클럽장은 따로 있어.”

“아.”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한영진은 눈을 반짝거렸다. 주하나의 팔짱을 끼며 자신은 지금 오늘의 비밀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지금 결정하기 좀 그렇다면, 우리 하는 거 보면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한영진은 가방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줬다.

“어? 학교에서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커피도 못 마셔?”

“네. 카페인은 몸에 나쁜 거잖아요.”

“그게 왜 나빠? 우리 동아리 진짜 이름이 카페인인데? 카페-인 아니고.”

한영진은 딸깍, 소리가 나게 캔 뚜껑을 따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무튼 여기 애들 고지식해서 큰일이네.”

엉겁결에 캔 커피를 받아 든 주하나는 생각해보겠단 핑계로 혼자 운동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한영진이 일러 준 동아리 방을 찾아갔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달큰한 두유 냄새가 부드럽게 밀려왔다.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한영진 앞에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그가 뒤를 돌아봤다. 여호수아였다. 주하나와 같은 반 아이이자 성화고 교목의 아들. 두 학년 선배인 백영운도 주하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멀뚱하게 서 있는 주하나를 향해 한영진이 손을 흔들었고 엉거주춤 불려 가 앉으니 네 명의 ‘인-터부(人-taboo)’가 시작되었다. 주하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영진이 귓속말을 했다.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금지된 것을 공유하는 거야. 연대보증 같은 거지.”

주하나가 엥? 하는 표정으로 한영진을 다시 봤지만 소용없었다. 무거운 돌을 든 것 같은 표정의 백영운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질문은 종말이 오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였다.

“나는 사실 종말을 안 믿어. 생각도 안 나고, 생각해도 안 무서워. 나는 그걸 믿지 않는 내가 더 무서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있는데, 여호수아가 탄성을 터뜨렸다.

“와, 선배 너무 세다.”

“우리 엄마 아빠는 상상도 못 하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 건 한영진이었다.

“뭐야 그게?”

“종말이 안 온다잖아요. 나는 어릴 때부터 매일 그걸 생각하는데, 아직까지 그게 안 와서 매일 불안한데. 그럼 선배는 뭔데?”

“나는 종말 같은 건 벌써 지난 느낌이야. 원래는 유리병이었는데 깨져서 유리 조각이 된 기분. 근데 또 그게 오히려 계시 같아. 그러니까 유리 조각처럼 살아 보려고. 막 날카롭게 굴어 보려고. 자세한 얘기는 하기 싫어. 공감받는 유리 조각은 안 멋져.”

이번에는 여호수아와 백영운이 한영진을 바라봤다. 둘 다 뭔가에 푹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한영진이 주하나를 보며 이번엔 너, 하는 턱짓을 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모이자 주하나는 얼굴을 붉혔다.

“정말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요? 사실은 내가 누군지 알기 싫잖아. 나도 내가 누군지 알기 싫은데 함부로 정의 당하기는 더 싫어.”

그런데 뜻밖이었다. 셋은 모두 주하나의 반응을 꽤 흡족해했다. 백영운이 합격! 하고 소리치자 셋은 또 키득거렸다. 여호수아는 주하나에게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는 일을 맡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영진은 인터뷰이를 구하는 일을, 한영진은 사진을 찍는 일을 맡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하나의 대답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주하나에게 지금은 동아리 회원이 몇 명 없으니 수습 기간은 빼 주겠다는 허세를 부렸다. 얼떨결에 ‘인-터부(人-taboo)’를 끝낸 주하나는 그들과 둥글게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 사이 한영진은 ‘사회’에서 공수해 온 캔 커피를 돌렸다. 주하나와 나눠 들고 온 가방이 그것이었다. 한영진도 주하나도 성화고에 와서는 처음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싫고, 좋고, 이상한 이야기들이었고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해에 주하나는 학교와 동아리 방을 오가며 인터뷰 동아리에서 글을 썼다. 달랑 세 명, 한영진, 주하나, 여호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글로 정리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주하나는 무척 그 일을 즐겼다. 위장을 위해 신앙과 관련된 간증 같은 내용들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때때로 한영진이 제안한 꼭지들을, 성경과 관련이 없지만 딱히 금지하기에도 뭐한 패션이나 문화에 관한 정보들, 소식지에 조그맣게 실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제법 인기를 끌었다.

그해 가을쯤, 인터뷰 동아리는 최우수 동아리 상을 받았다. 회원 수도 최고를 찍었다. 네 명이던 인원이 어느새 열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 대부분이 한영진에게 관심이 있는 남학생들과 그 남학생을 감시하기 위해 따라온 여학생이었지만. 하지만 한영진의 관심은 이미 한 사람에게 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백영운. 한영진에 따르면 자신이 백영운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직 한영진의 우상인 장국영과 닮았다는 것인데, 주하나의 눈에 그의 머리 스타일 외엔 장국영과 비슷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깡마른 체구였고, 그가 머리 스타일을 바꾼 시점도 한영진의 관심사가 홍콩 영화라는 것을 안 뒤였다. 두 사람은 주로 조금 거리를 둔 채, 학교 뒷산, 기도 동산을 산책하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몇 번인가 그의 250CC 스쿠터를 타고 몰래 극장에도 다녀왔는데, 그 후로는 손을 잡고 기도 동산을 산책하는 두 사람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영진과 백영운은 기도의 동산을 오가며 연애를 시작했다. 관계는 몇 개월간 지속되었다. 이제 백영운은 한영진의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며 떨지 않았다. 입을 맞출 때 자연스럽게 혀를 밀어 넣을 줄도 알았고, 얼굴을 감싸던 손으로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더듬을 줄도 알았다. 무엇보다 목사를 꿈꾸던 그였다. 그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죄라고 여기고 회개 기도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모두 앞에서 자신이 음탕한 생각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그것을 기도로 극복하고 싶다는 고백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한영진과의 사이가 깊어질수록, 그의 기도 주제는 달라졌다. 아무도 모르게, 이번만 넘어가게, 한영진을 만나서 만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는 어느새 성화고에서 가장 막장으로 여겨질 죄, 한영진과 첫 경험을 치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영진은 ‘첫 경험’을 하기엔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로 그의 말을 받아쳤지만, 좀 더 솔직하게는 자신은 ‘첫 경험’은 이미 지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영진은 전학 오기 전 학교 물리 선생과 첫 경험을 치렀다. 쟤물포, 쟤 때문에 물리 포기, 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한영진의 기억에 남는 것은 반지하 천장에 핀 곰팡이와 누렇게 변한 배게 냄새였다. 한영진은 입을 꾹 다물어 키스를 하는 선생님이 혀를 넣지 못하게 반항을 하긴 했으나, 끝내는 애걸복걸하는 그를 받아 줬다. 허둥지둥 티셔츠 안에 손을 넣고 팬티를 내리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비밀을 지키겠다는 한영진의 다짐을 받아 냈다. 자신이 하려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원래 진짜 사랑은 이렇게 물리적인 운동이라고. 오히려 느긋한 쪽은 한영진이었다. 몇 번이나 삽입에 실패하고 쩔쩔매는 쟤물포가 초짜라는 것이, 실은 그가 자신만큼이나 애송이라는 것이 한영진을 안심시켰다. 한영진은 자신의 위에서 헐떡이는 그를 보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젠가 그가 했던 장황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미터는 5세 아이의 평균 키야. 어른의 양팔 길이, 혹은 누군가의 큰 보폭 정도고. 1센티미터는 10의 마이너스 2제곱미터고. 엄지손톱, 벌, 땅콩 정도의 크기지. 10의 마이너스 4제곱으로 내려가면 바늘이나 곤충의 다리 굵기에 도달해. 여기서 100배를 더 줄이면 10의 마이너스 6제곱. 세포 속의 커다란 분자들, DNA의 크기가 되는 거고.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 원자의 지름은 10의 마이너스 10제곱, 원자핵의 크기는 10의 마이너스 15제곱이고, 양성자나 중성자의 지름은 10의 마이너스 16제곱미터야. 그러니까 이렇게 작고 작게 줄이고 줄여서 닿을 수 있는 가장 최소의 크기는 10의 마이너스 35제곱미터야. 이 한계에 이르면 크기는 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거야. 영진아, 세상은 그런 거야.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은 거.’

한영진은 쟤물포가 일으키는 규칙적인 반동에 흔들리며 크기에 대해 생각했고, 곧 무의미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한영진은 화장실 문을 잠그고 오래 샤워를 했다. 다리 사이로 샤워기의 물줄기를 가져다 대며 환상 속의 연인인 장국영을 불러냈다. 자연스럽게 그와 팔짱을 끼고 곰팡이가 핀 반지하 방으로 들어섰다.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그는 한영진을 거칠게 다루었다. 한영진의 귀와 목, 입술에 키스한 장국영이 한영진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장국영의 목을 감싼 한영진의 귓가에 그가 뜨거워진 숨을 내뿜었다. 절정에 오른 한영진은 생각했다. 자신의 실질적인 첫 경험은 물리 선생이 아니라 장국영이라고.


한영진은 성진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집안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학교에 알려진 바대로, 한영진은 그저 신앙심이 깊기로 소문이 난 윤 사감의 조카일 뿐이었다. 좀 엉뚱한 면이 있지만 구김살 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과 예배 시간의 단정한 태도를 미뤄 보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영진을 윤 사감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백영운도 마찬가지였다. 한영진 스스로 집안에 관한 어떤 말도 한 적 없지만 그가 한 오해를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언젠가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영진은 아버지가 변호사의 꿈을 꿨지만 끝내는 집안에서 하는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얼버무렸을 뿐이다. 그전까지는 법대를 지원했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것이 다였는데, 자신의 입에서 그냥 튀어나온 말 때문인지 그 뒤로는 그렇게 믿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변호사를 꿈꾸다 사업가가 되었고, 딸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고, 대체로 그런 사람은 신앙심도 깊은 편이라 설명하는 것이 수월했다. 마침내 몸집을 불린 소문 속 한영진의 아버지는 알고 보면 ‘공중 재림의 증인들’의 신실하고 능력 있는, 게다가 세계 이곳저곳에 머물며 전도하고 있는 교인이 되었을 때, 한영진은 비로소 자신이 한 거짓말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진실을 고백하기로 한 마음은 다음 날 아침이면 또 희미하게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주하나 때문이었다. ‘증인’에서 ‘이단’이 된 사람의 자식에게 성화고의 아이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들은 불시에 목을 물어뜯고, 뼈를 씹을 기세로 주하나를 비난했다. 사감도, 선생도 그저 방관할 뿐 주하나를 감싸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영진은 그들이 자신에게도 이빨을 드러낼까 봐 두려웠다.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지옥행이 결정된 이단자가 되는 것도 무섭지 않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소름이 돋을 만큼 싫었다. 그런 이유일지도 몰랐다. 한영진은 주하나를 상대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친절을 베풀었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주하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꽤나 열심히 그를 숨겨 주고 함께 있어 줬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쌓인 죄책감을 조금씩 가볍게 했다.


백영운의 생일날, 백영운의 부모는 한영진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한영진이 백영운을 통해 듣기로, 백영운의 집안은 ‘증인’들 중에서도 늘 베푸는 쪽이었다. 아니, 베푼다기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모든 가정 예배 모임의 식사비를 냈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주머니에 차비를 찔러 주었다. 습관에 가까워 보이는 그것에 교인들은 자주 미안함을 느꼈다. 교인들이 그 가족의 호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는 그저 그들의 부름에 거절 없이 나타나 적절한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정작 한영진은 잘 알지 못했다. 백영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비워 낸 주머니의 허탈함을 어떤 식으로 채우는지. 백영운의 가족이 한영진에게 기대한 것 역시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을. 그런데 한영진은 겨우, 자신의 밝고 명랑함을 내세워 첫눈에 부부의 눈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부부의 친절함은 아들을 통해 한영진의 아버지가 변호사 출신의 사업가이며 누구보다 신실한 ‘증인’임을 전해 들은 뒤에 생긴 것이었다. 교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그의 어머니는 식사를 하는 내내 얼굴에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백영운의 아버지는 동사무소에서 정년퇴직을 목표로 삼은 공무원이고 자신의 아들이 신학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재산으로 규모 있는 교회를 짓고, 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한 종교 치유 센터를 만드는 꿈이 있다고 했다. 백영운의 아버지가 경험한 바,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토요일에 예배가 있는 공중 재림의 증인으로서는 ‘사회’의 불이익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고 한탄했다. ‘공중 재림의 증인들’의 사회에서 신학대학은 그들만의 공무원 사관학교나 다름없었고, 월급을 받는 동시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도사를 거쳐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성화고에 들어온 남학생 중 목사를 유능한 장래 희망으로 꼽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식사 전, 백영운의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사심을 담아 간절하게 기도했다.

“소중한 우리 아들의 생일날 이렇게 예쁘고 착한 친구 한영진 양과 함께 식사를 허락하여 주심이 감사합니다. 이 두 사람, 주님 안에서 신실한 종으로 거듭나 주님의 뜻에 쓰이길 간절히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두 사람의 미래를 묶어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함께 구원으로 나가는 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하고 장단을 맞추는 백영운 어머니의 소리에 한영진은 슬쩍 눈을 떴다. 백영운이 눈도 감지 않은 채 한영진을 보며 영혼 없이 아멘을 외치고 있었다. 한영진이 웃음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자 백영운이 씨익, 바보처럼 웃었다. 기도가 끝나자 백영운의 어머니는 남편을 향해 부드럽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직 졸업도 안 한 애들인데, 당신도 참.”

백영운의 어머니는 한영진의 빈 접시에 반찬을 올려 주며, 백영운에게 ‘예비된 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영운 아빠가 교회에 뜻이 커서 그런 거니까. 우리 영진이가 이해 좀 해 줘. 영운이가 신학대학을 가면, 전도사가 될 수 있는데, 좀 일찍이긴 하지만 대부분 그때 결혼을 하거든.”

한영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점차 마음이 무거워졌다. 백영운의 미래도 그렇지만 식사 내내 이어지는 보드랍고 조용한 속삭임이, 서로를 향한 칭찬과 축복이 유지되는 것이 낯설기만 했다. 헤어지기 전, 백영운의 어머니는 부드럽고 우아한 표정으로 한영진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우리 영진이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할게.”

한영진은 문득 집을 나간 어머니가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울적해졌고 한껏 웃어 보였지만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기분이었다. 그보다는, 이들이 둘러앉은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들이 반드시 파국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이후 한영진은 백영운의 부모가 부를 때면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나 단란함과 신실함이 가득한 4인용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백영운의 부모가 백영운을 한영진만큼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백영운은 신학대학이 아니라 더는 그 어느 대학도 희망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에게 꿈이란 생성 과정에 한계가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점에서 불가했다. 그러나 사라지는 과정은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이었다. 한영진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한영진은 목사의 부인, 혹은 목사 사모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한영진이 백영운에게 언급한 미래는 고풍스러운 호텔 레스토랑이 있고, 값비싼 발레 공연이 있었다. 충동적으로 떠나는 홍콩 여행이나 빨간 자동차, 작고 앙증맞은 다이아몬드 반지도 있었다. 모두 목사 부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한영진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이 섞여 백영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은밀한 만남과 키스, 포옹과 속삭임들은 그를 점차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급기야 백영운은 자기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것들을 훔쳐서 한영진의 환심을 샀다. 그중에는 어머니가 결혼기념일에 받은 진주 귀걸이도 있었다. 새 모양의 담수 진주 위에 금으로 된 부리와 꼬리를 가진 귀여운 액세서리였다. 한영진의 머릿속에 그 귀걸이를 한 백영운 어머니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청혼을 하는 사람처럼, 백영운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한영진의 손에 진주 귀걸이를 쥐어 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졸업 후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백영운은 한영진을 위해 살 거라고 했다. 돈을 벌 것이고, 두 사람을 위한 집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 모든 혜택의 조건은 오직 한영진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거였다. 한영진은 잠시 귀걸이를 들여다보았고 선뜻,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쌓여 가는 걸 느꼈는데, 눈물이 맺힌 백영운의 눈을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런 백영운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거짓쯤은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를 향한 사랑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한영진은 가족의 환대와 환영을 받으면서 그와 새로운 출발을 상상했고, 그 답례로 백영운에게 ‘첫 경험’을 허락했다.


백영운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한영진은 여호수아를 통해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목의 아들이자 인터뷰 동아리 장인 그가 백영운에게 술을 처음 권한 사람이기도 했다. 여호수아가 백영운에게 악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영진을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진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 생각해 낸 것이 술이었다. 여호수아 역시 술을 마셔 본 경험이 없어서 두 사람은 새로운 ‘경험’ 차원이라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술병에 입을 가져갔다. 소주 한 병을 비우는 동안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특히, 백영운은 경계심이 많은 것인지 까다로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호수아를 의식하는 데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는데, 여호수아의 의도를 알아차린 탓이었다. 그것은 술자리가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의미했다. 술자리는 동아리 활동이 끝난 방에서 은밀하고 빈번하게 벌어졌다. 아직까지 인터뷰 동아리 사람들 누구도 두 사람의 ‘경험’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다. 그 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것은 주하나가 유일했다. 동아리 활동이 학교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주하나는 두 사람의 은밀한 모임에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뷰 동아리의 캐치프레이즈가 “미지로의 탐험”이었으므로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세 명이 되었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으로 백영운은 자신의 절절한 감정을 털어놓을 정도로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취한 여호수아 역시 그 고백을 잠자코 듣다가도, 그건 아니지, 혹은 말도 안 돼, 와 같은 추임새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수 있었다. 시소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늘 주하나의 몫이었다. 주하나는 주로 두 남자의 의견에 대해 한영진의 입장을 대변했다. 영진 선배라면 영운 선배 쪽 말이 더 맞는 것 같아, 내지는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더 영진 선배 쪽이야, 하는 식으로. 주하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판정을 기다리는 두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백영운이 주하나의 잔을 채워 주며 “역시, 하나가 예리하다니까!” 하면 주하나는 눈을 감고 캬, 소리를 내며 소주를 음미했다. 빈 소주병을 처리하기 위해 쓰레기 소각장 근처에 갈 때면 여호수아와 함께였는데, 그는 예리하다는 표현은 좀 신경질적인 느낌이고 자신의 생각으로 주하나는 섬세한 관찰자에 속하는 편이라고 백영운의 평을 고쳐 귀띔해 주곤 했다. 주하나는 다정한 여호수아를 호수, 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한영진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지만, 그것은 백영운과 한영진 사이를 질투한 여호수아에 의해 발각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영진은 ‘한백여주’란 이름을 들고 이 비밀 술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다.


작가소개 / 신주희

2012년 『작가세계』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작품집 『모서리의 탄생』과 『허들』이 있다. 21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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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이혜오 휴대폰 알람은 새벽마다 나를 밀쳤다. 나는 미지근해진 자리끼처럼 엎질러졌다. 바닥에 쏟아진 나를 겨우겨우 주워 모아 연습실로 출근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그제야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엎질러진 나를 어떻게든 수습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 댄스 학원에 다닌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될 만큼 뛰어나게 예쁘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대개 그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대형 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열여섯, 중3 때 중소형 기획사 하나에서 내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대면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사옥이 위치해 있던 청담동은 내가 살던 동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동네 전체가 백화점 같았다고 할까.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 나는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가서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밤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연습생 숙소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이 때에 따라 열 명에서 열네 명까지 모여 살았다. 어깨선을 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애 열네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끝없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줍고, 줍고, 또 줍다 보면 문득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지곤 했다. 그곳에선 언제나,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까지. 화장실과 콘센트의 개수나 냉장고와 옷장과 침대의 넓이,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이불 속밖에 없었다. 나는 좁다란 이층 침대에서 늘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었다. 그 어둡고 텁텁한 공간만을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천천히,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회사가 작아서인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시스템이랄 게 없어서, 데뷔 조가 아닌 연습생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어린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또 우르르 나갔다. 들짐승처럼 방치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했다가 또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물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고참들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텃세로 풀었고, 신입들은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졌다. 매일 갈등이 있었고 매일 누군가 울었다. 누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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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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