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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에 대하여

  • 작성자 Alicja
  • 작성일 2024-04-08
  • 조회수 186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첫 두 문장입니다. 정확히는 오바 요조의 첫 번째 수기 중 첫 두 문장.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입니다. 이 두 문장은 막힘없이 활자들을 읽어내려가던 저를 잠시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무슨 이유로 이 부분에서 멈추었는지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제가 평소에 했던 생각과 닮은 구석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잠시 멈추어 섰던 저는 다시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요조는 저 자신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유복한데도, 그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울하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저 자신과의 괴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주인공, 그래서 제가 이 책에 더 빠져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책은 첫 번째 수기의 첫 문장부터 세 번째 수기의 마지막 문장까지 '정상인'이라 느껴지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고, 요조의 삶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요조를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의 방탕한 생활이나 마약 중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의 행동에 날 선 비판을 가하기엔 인정 앞에 너무 무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동족에게서 느껴지는 사랑과 혐오가 뒤섞인 그 감정 속에서 저는 요조의 글에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제 생각에 요조는 아마도 겉으로 보기엔 가장 방탕한 부류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가장 순수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곤)누가 무슨 말을 해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숨기기 위해 '광대 짓'을 하고, 요양원인 줄만 알았던 곳이 정신 병원임을 알고도 아무에게도 화내지 못한 사람. 그는 세상의 부조리와 함께하거나 그에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도 섬세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누군가는 요조를 무식하고 병적이며 "냉수 마찰을 하면 깔끔히 해결될" 문제에 집착한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조가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는 동의하나, 그와 비슷한 사람으로서 그를 옹호하고 싶습니다. 이쯤에서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죠. 요조는 스스로 인간실격자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책에서 인간실격자는 요조가 맞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과연 진정한 인간실격자는 누구일까요? 요조를 인간실격자로 만든, 순수한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 각박한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 아닐까요?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무엇이든간에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나름의 철학이지만, 이번만큼은 잠시 그 비판적 사고라는 것을 끄고 읽었습니다. 아니, 제가 끄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제 스스로 꺼져 있었습니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요. 받고 싶은 선물이 딱히 없는데 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자 탈을 고르는 어린 요조의 모습과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받고 싶은 선물이 없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종이학을 접는 색종이를 받고 싶다고 했던 어린 저의 모습이 겹쳤습니다. 물건을 계산할 때 너무 무서워서 값을 깎기는커녕 산 물건을 갖고 나오는 것도 잊은 요조와 음식점에서 점원이 반찬 몇 가지를 빠뜨리거나 음식의 양이 잘못되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먹은 제 모습은 너무 유사했습니다. 그리고 한두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아무에게도 내면을 보여주지 못하는 요조의 모습을 보며 저는 작가가 제 생각을 읽은 것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저와 놀랍도록 유사한 그를 보며 그에게서 호감 비슷한 것까지 느껴졌습니다. 그 형태는 달랐지만 요조가 타인들로부터 당한 존재의 부정이 저 자신이 경험한 존재의 부정과 어느 한 점에서 만나 제 마음속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실격>이 우울한 책이라고 말합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책은 무척 이로운 책입니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또 인간적인 한 사람을 절정의 미문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손을 내미는, 역설적인 위로이자 "인간 실격자"들을 인간 실격자로 만든, 진정한 "인간 실격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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