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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 표류기

  • 작성자 제이치
  • 작성일 2013-09-26
  • 조회수 425

쌍봉낙타 표류기

사막에서 한 번 길을 잃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낙타 꿈을 꾼다고 한다 모래를 맞은 사람은 한 마리 낙타가 되었다 유난히 황사가 심했던 그해 봄, 낙타들이 마스크를 쓰자 도시가 조용해졌다 모래가 어느 방향으로부터 불어오는지 알지 못한 채 도심은 밤이 될수록 밝아져갔다 낙타들은 별자리처럼 네온사인 불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는 점점 쌓여갔고 우리는 자꾸만 발이 빠졌다

여름

고개를 들 수 없는 우리는 머리 위로 드리운 먹구름을 그늘이라고 생각했다 길고 긴 장마는 모래를 진흙으로 만들었다 내딛는 곳마다 발자국이 생겼지만 우리의 발자국은 모두 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발자국이 어떤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모래가 빗물에 씻겨갔을 때부터 굽은 등 위로 혹 하나가 생겼다 낙타들은 사막을 기억하기 위해 혹 속에 흙탕물을 담고 다녔다 폭우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을 때 내렸고

가을

우리가 업고 다녔던 혹이 물주머니가 아니라 빈 자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가을이었다 혹 속에 담겨져 있던 꿈들을 휩쓸리게 한 빗물, 낙타는 스스로의 혹을 보지 못했지만 서로의 혹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가을은 자꾸만 짧아져갔고 잠에서 깰 때마다 낙엽이 떨어졌다

겨울

눈이 한 송이도 내리지 않은 그해 겨울은 온통 깜깜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날들은 낙타 떼를 한 마리씩 집어삼켰다 우리는 서로의 좌표를 알지 못했지만 마스크를 벗는 법을 잊어버려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둠 어딘가에 잃어버린 모래와 빗물과 아이들과 가을, 그리고 낙타 떼가 있었다 해는 여전히 뜨지 않았고 우리는 등에 무덤 하나씩을 짊어질 필요를 느꼈다 혹이 두 개가 되었다

또, 겨울

일 년이 지나고 부서진 시간들은 모래가 되어 또 다른 곳으로 불어가고 있다 해가 뜨지 않아도 도시는 밝아져갔고 그 때부터 잠을 자지 않은 우리는 꿈을 꿀 수 없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면 혹처럼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만을 살았다 바스라진 모래알 같은 시간 속을 걸으며

제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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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디론가 걸어가면 길이 나와야 하는데, 좌표를 알지못해 우리는 골목 모퉁이를 돌때마다 주저앉아 우는 것입니다

    • 2013-09-30 00:19: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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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지난번에 올린 게시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삭제되어있어서 다시 올립니다.^~^

    • 2013-09-26 21:19:2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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