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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수, 「내일의 연인들」을 배달하며

  • 작성일 2023-07-20
  • 조회수 1,181


   그때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다른 말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넌 정말 대단해.” 지원과 나는 어느 순간 그 말이 다른 어떤 말들보다 서로를 감동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나와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정말 감탄스럽다는 표정을 하고는 조용히 “넌 정말 대단해” 하고 말하면, 나는 “아냐, 네가 더 대단해”라고 대답하곤 했다. (……)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에도 나는 그녀의 그런 말들이 나를 어떻게 그토록 감동시켰는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더욱 열렬히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내가 믿게 만들어주었던 것이, 내가 정말로 그러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에 대한 그녀의 애정으로 인한 왜곡된 시선 혹은 배려였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시기에 그 말이 필요했고, 그녀가 그 말을 제공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내일의 연인들』, 문학동네, 2020, 58-59쪽)


소설가 이승우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을 배달하며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해줘야 한다고 정영수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말을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넌 정말 대단해, 라는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넌 정말 대단해, 라고 말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이 말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그것은 연인의 도리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아주 예민해야 한다. 사랑에 빠진 자기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예민해야 한다.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에게 예민해져 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민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사랑에 빠진 자기에게 예민한 사람은 자기가 필요한 말을 한다. 자기에게 필요한 말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말을 했다고 착각한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나의 필요를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필요를 위해 나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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