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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 작성일 2014-09-01
  • 조회수 1,722

사람

김연필


밤마다 어둠이 대지를 품어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밤마다 울고 밤마다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 있다


목이 잘리고도 계속해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을 본 일이 있다 목 없이 목 놓아 울고 목 없이 사방을 바라보는 이상한 사람을 본 일이 있다


아무 구멍 없이 둥그렇기만 한 어떤 얼굴을 본 적 있다 얼굴을 그려 줘도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어떤 얼굴을 본 적 있다 표정 없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한 어떤 얼굴, 얼굴에 아무런 글자를 적어 줘도 아무 뜻이 없는 둥그런 얼굴을 본 적 있다


무언가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을 본 일 있다 무언가를 더 붙여도 아무런 소용 없는 사람들을 본 일 있다 그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아무렇지 않게 놀아 본 적이 있다 다리가 두 개든 네 개든 달만 보며 춤을 추는 이상한 사람을 본 일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련다


살면서 바라본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물에서 살며 개처럼 짖어대는 사람들이 있고 죽어서 알이 된 사람이 있다 죽어서 곡식이 된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죽어도 아무런 먹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나는 밤이 품어도 아무렇지 않게 출산하는 어떤 짐승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나는 사실 짐승이다 나는 목이 잘리고도 계속해서 목 놓아 울 수가 없다 언젠가 잘릴 목에서 아무런 곡식도 나누어 줄 수가 없다


나는 아무런 사람도 될 수 없어서 운다 밤마다 운다 밤이 품어 주질 않아서 밤마다 운다 나는 매일 운다 울어도 짐승이 되지 않는다 짐승이 되고도 울 것이다 울다가 죽어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저 많은 사람이 있다 나는 그중 어떠한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그중 어떠한 이야기도 아니다 또다시 어둠이 대지를 품는다 이윽고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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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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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 ▶  시  「통사」외 3편, 김연필 시인 [...]

    • 2015-11-05 11:59:4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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