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민들레문학상_수필]한 평 반 내 방
- 작성일 201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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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민들레문학상 장려상_수필 ]
한 평 반 내 방
정해옥
죽고 싶었다. 그래서 죽으려 했다.
여자의 몸으로 길거리로 쫓겨나야 한다는 두려움에, 지금껏 시달려 온 대부업체의 빚 독촉에…….
이제는 힘든 삶을 억지로 지속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이르니 새삼 맘이 편해졌다.
마지막 비상금으로 모텔 방을 잡고, 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을 시도했다.
그 전화를 추적해서 짧은 시간에 경찰과 119 그리고 지역 정신보건 팀 직원들까지 잠겨 있던 모텔 방을 강제로 열고 들어왔다.
자살위험도가 높아서 절대로 혼자 둘 수 없다는 그들의 판단에 난 처음으로 정신병원인 은평시립병원에 72시간 응급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퇴원하던 날 병원 로비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갈 곳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눈물만 났다. 그런 나의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보던 한 직원분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해 주었고, 돈 한 푼 없던 나는 경찰차를 타고 서울역 쪽방촌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고, 곧 서울역 다시서기 센터에 인계되었다.
그곳에서 한 차례 면담을 거치면서 담당 직원이 와야 하기에 또 많은 시간을 기다렸고, 그렇게 주거 지원을 받기까지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혹여 지원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고, 저녁 9시쯤 지금까지 살고 있는 창문 없는 한 평 반 남짓한 작은 고시원 방을 얻게 되어 고시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방에 처음 들어간 날은 작년 무척이나 더웠던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두컴컴하고, 습하고, 에어컨이 고장 나 무척이나 무더웠고, 바람 한 점 통하는 창문도 없었다. 더군다나 50여 명이 사는 고시원 거주자들 대부분이 시커먼 남성들이었고, 여자는 나까지 네 명 그나마 연세 많은 분들이었고, 젊은 여성은 나 혼자라 문조차 맘대로 열 수 없었다.
그날 지치고 힘들어 삐거덕거리는 침대에 누워서 무서움에 문을 꼭 잠그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면서 쪼그리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눈을 떴을 때 나는 그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현실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여전히 가진 것은 없고, 갚을 수 없는 많은 액수의 빚, 그동안 돈이 없어서 제대로 병원에 다니지 못해 건강하지 못한 몸. 배고픔과 낯선 곳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된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다시 엄습해 왔다.
이곳저곳의 상담을 받아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좌절하고 있을 때쯤, 남대문 상담센터를 알게 되었다. 그곳을 처음 방문한 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안쪽에 있는 한 분이 “안녕하세요! 혹시 정○옥 님이세요?”라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렇게 남대문센터의 실장님과, 간호사님 등 여러 선생님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가 생기면서 수시로 찾아오던 대부업체 직원을 피하고자 어두운 방에서 불도 켜지 못하고 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지낸 고시원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나의 건강을 우려한 실장님께서 서울의료원의 협조를 얻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 주셨고,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여유가 있으니 고마움도 더 크게 느껴졌다.
그 마음을 담아 감사의 글을 써서 보내드렸는데, 그것을 받은 센터의 실장님은 너무나 감동을 받으셨다며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말씀을 꺼내곤 하신다.
수술 후 깁스를 한 채 고시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에게 때때로 찾아오신 간호사님, 그리고 수줍게 전해 주신 빵과 음료.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그때만 해도 돈이 없어서 제대로 된 식사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사먹지 못할 때였다. 더더욱 깁스를 하고 옥상에 위치한 부엌까지 올라가 음식을 해먹을 생각도 못 하던 때라 간호사님이 챙겨 주신 빵을 아끼고 아껴서 하루에 한 개씩만 먹었다.
우울증으로 몸이 불어 있었던 터라 자연 다이어트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재활치료를 하던 어느 날 고시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살짝 열었던 문틈으로 법원의 등기를 전해 받고 한참을 정신없이 멍하니 앉아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은 대부업체의 한 곳으로부터 온 채무에 대한 서류였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남대문센터 실장님을 찾아갔다.
그 시간 이후로 실장님의 조언을 받으며 감당할 수 없는 빚의 해결을 위해서 개인파산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미 다른 주민의 개인파산 진행 경험이 있던 실장님이라서 꼼꼼히 서류 준비를 도와주셨고, 부족한 부분은 보험사든 어디든 전화해서 알아봐 주셨다. 준비가 다된 날 묵직한 서류 뭉치를 직접 들고 법률구조공단에 접수하러 갈 때 동행해 주시고, 상담을 받아 주시고, 접수 후에는 한 번씩 확인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하셨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드디어 개인파산과 면책이 받아들여진 서류를 실장님께 전했을 때 나보다도 더 좋아하시던 모습. 그런 긴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면서 그동안 가슴속에 숨겨 두었던 끝내지 못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이미 고등학교 중퇴를 한 지 20년이 훌쩍 지나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곳저곳 문의하면서 2014년 검정고시부터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니 또 금전 문제와 부딪히게 되어, 우연히 남대문센터의 간호사님께 그런 고민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센터의 회의 때 같이 상의를 해보겠다고 해주셨다.
그 후 실장님께서 공부하는 데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는 질문에 내 생각을 말씀드렸고, 센터의 도움으로 후원처를 찾고, 인터넷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당당히 합격했고,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찾았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느끼면서 좀 더 높은 꿈을 꾸고 싶어졌다.
작년에 우연히 사단법인 열린복지센터의 서울역 일문화 카페를 알게 되었다. 그곳은 힘없는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주로 정신질환자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이 모여서 부업을 하는 곳이다. 그곳을 알게 되면서 한두 번 가다가 3월부터는 매일 세 시간씩 봉사를 하고 있는데,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잘해 드렸다. 손동작도 말씀하시는 것도 기억력도 부업을 하기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도와드리고 잘해 드리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뭐든 도와드린 것이 역효과가 되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도 나한테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일에 있어 이렇게 하면 저분들이 무척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정작 본인들은 전혀 행복해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다른 것을 원하는 모습을 보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조금씩 지쳐 갔고, 내가 열심히 한 만큼 저분들에게서 반응이 오지 않으면 실망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생각들로 힘들어할 때, 그분들이 틀린 것이 아니고,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사람들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아주 조금씩 그분들을 이해하면서 정말 저분들한테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들은 남대문센터의 선생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실장님과 함께 나에게 맞는 대학을 찾으며 수시원서를 접수하고, 면접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았다.
면접 보러 가는 날 정신없는 나에게 빈속에 가면 안 된다며 간호사님이 든든한 차 한 잔을 타주었고, 그 덕분인지 얼마 전 백석예술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 합격했다. 나와 함께 일 년 동안 검정고시부터 대학 수시 합격까지 함께했던 남대문센터의 센터장님, 실장님, 간호사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런 기쁨을 드릴 수 있게 되어 정말 행복했다. 사회복지 서비스 대상자로 많은 도움도 직접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고, 또 다른 분들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봉사를 하면서, 공부가 끝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오히려 나의 이런 경험들이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센터의 실장님은 나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오늘도 백방으로 알아보신다. 난 공부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혼자가 아닌 함께 서는 세상을 알았다. 나도 공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세워 주고 나누고 싶다. 이 모든 일들은 한 평 반 남짓 나의 방에서 이룬 일들이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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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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