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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전진하는 달팽이

  • 작성일 2016-01-05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전진하는 달팽이

 

 

 

황유원

 

 

 

 

  만남

da-01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취미’가 ‘聚美’인 줄 알았다. 아름다움을 모은다는 말. 그리고 그동안의 삶을 반추해 보니 우연적으로 매우 뜻밖에 일어나는 일들만큼 미적인 것도 없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자기 통제를 벗어나는 영역이 주는 쾌감 때문일 터. 통제 하에 이루어지는 일만큼 미에 반하는 것이 어디 있겠나. 삶은 종종 의외의 사건들을 통해 그 방향을 틀고 그 방향 틂으로 인해서 나는 나의 삶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마치 구경꾼처럼 구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이 다 내 마음대로 된다면 그건 남이 이미 끝낸 게임을 리플레이 화면으로 다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게 되겠지. 그러므로 이러한 우연들을 간직하는 것을 ‘취미(聚美)’ 생활이라 할 수 있다면 나의 달팽이 키우기도 취미 생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달팽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의외성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처음엔 손톱 위에 세 마리를 모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렇게 작았다. 자세히 보지 못했더라면, 까딱 잘못했으면 젓갈에 발효돼 내 입안으로 들어왔을 달팽이. 박스째로 사온 싸고 싱싱한 열무 두 단. 그 속에 살고 있던 세 마리의 달팽이. 너흰 우연히 내게로 왔고 난 절대적으로 우연히 너희를 받아들였구나. 운명 같았던 그때 그 사랑처럼. 우연이 아니었던들 그 사랑이 운명적인 사랑으로 느껴지기나 했을까. 우연히 끝났더라면 영원한 사랑으로 남았을 것을. 그러나 사라지는 것들은 늘 어느 정도 예측되는 선에서 서서히 종말을 맞고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달팽이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간다. 지금 그들은 각종 풀로 수북한 락앤락 안에서 살고 있다. 산에서 뜯어온 각종 풀과 가게에서 사온 야채들을 먹으며.

 

 

  먹이

da-02    실험 결과, 그들이 모든 풀을 즐겨 먹는 것은 아니었다. 칡잎, 상추잎, 깻잎, 배추잎, 열무잎, 물에 젖은 식빵 등은 아주 잘 먹는다. 열무잎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것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잘 먹는다. 요즘은 즐겨 먹이던 칡잎이 다 노랑 낙엽이 되어버린 바람에 파릇파릇한 상추를 사 먹인다. 상추는 언제나 잘 먹는다. 산에서 따온 깻잎은 향기가 강해서 싫어하는 듯했으나 곧 적응해서 잘 먹게 되었다. 깻잎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과거에 잠시 런던에 살며 가든 텃밭에 각종 야채를 키우던 시절, 그때 달팽이는 강력한 해충이었지. 10cm는 족히 넘을 듯한 커다란 민달팽이들이 어디선가 몰려와 밤새 텃밭을 초토화시켜 버리곤 했다. 말 그대로 초토화. 그들이 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없었다. 결국 약을 쓸 수밖에 없었고 아침에 텃밭으로 나가 보면 거기엔 쪼그라든 채로 죽어 있는 달팽이들의 시신이 한 가득이었지. 신선한 야채를 먹기 위해 인간은 하는 수 없이 달팽이를 죽이는 약을 만들었고 그걸 우리가 사서 사용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추억.

 

da-03    여하튼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잘 먹는 것들이 있는 반면, 잘 못 먹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망초잎이나 제비꽃잎. 인간들이 나물로 해 먹는 것들. 망초잎은 두껍고 맛이 시금털털해서, 제비꽃잎은 질기고 맛이 고소하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실격.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장난으로 줘본 고등어 뼈는 아주 질색을 했다. 냄새를 맡자마자 목을 길게 쭉 빼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허벌나게 유턴. 달팽이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건 또 처음 봤지. 등껍질을 만들려면 뭔가 비슷한 게 필요할 것만 같아서 달걀 껍데기를 잘게 부숴서 넣어 주기도 했다. 그건 거의 동종 주술 수준의 사고방식이었지만, 그리고 그런 게 인간 마음의 수준일 테지만 실제로 등껍질을 만들기 위해선 칼슘이 필요하고, 그래서 달걀 껍데기를 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전진

da-05-1da-05-2    달팽이는 끊임없이 전진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달팽이의 놀라운 점이다. 흔히 달팽이는 느림의 대명사로 여겨지곤 하지만, 그리고 그건 달팽이가 배가 곧 다리인 복족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텐데 달팽이를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 못 한다. 달팽이는 끊임없이 전진하고 끊임없이 먹어치운다. 내게 이제 달팽이는 활발한 에너지를 상징하는 약간 정신없는 무엇이 되었다. 한번은 달팽이가 뚜껑을 열어 놓은 락앤락 밖으로 나와 내가 써놓은 시를 먹어치운 적이 있다. da-04달팽이는 종이를 먹고, 종이는 나무로 만든 것임을, 그래서 식물성임을 종이를 먹어치우는 달팽이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누구는 이게 달팽이식 패스트푸드라고 말했던 거겠지. 여하튼 못된 달팽이는 괜찮은 문장들이 적힌 부분만 먹어치워서, 단어와 부사 몇 개만 남은 시는 말 그대로 달팽이가 쓴 시 수준이었다. 언어를 모르는 달팽이가 쓴 시는, 그러나 신선하구나. 돌이켜보건대 그것은 참 좋은 시였구나. 너무 길게 쓰는 나를 비웃는 시. 어쩌면 달팽이의 퇴고 실력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후지산을 오른다/ 오, 달팽이/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라고 고바야시 이사는 썼다. 달팽이는 내 시를 하이쿠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da-06    달팽이의 활발한 움직임 가운데 특히 가장 디테일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달팽이의 뿔이다. 와우각상(蝸牛角上)이라는 말도 있지. 두 쌍의 달팽이 뿔은 혀, 그리고 특히 코의 기능을 담당한다. 기다란 코. 달팽이는 코를 말 그대로 휘저으며 전진한다. 그 코는 무척 중요한 것인데, 말하자면 인간의 눈이나 귀와도 같은 것이어서(달팽이의 뿔끝에 달린 눈은 어둠과 빛을 분간해 낼 수 있는 수준밖에 안 되며 애석하게도 그에게 소리의 세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훼손되면 곤란한 것이므로 달팽이는 그것이 어딘가에 닿으면 그렇게 황급히 뿔을 집어넣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달팽이 뿔은 굉장히 미세하게, 그리고 (이 점이 정말 놀라운데) 제각기 움직인다. 그 뿔의 첨단을 신경질적인 틱 환자의 그것처럼 휙휙 꺾으면서. 달팽이가 처음 맡은 듯한 상추 냄새를 감지하고 접근할 때, 마치 복수의 달팽이 뿔이 달팽이 몸체를 질질 이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할 정도의 느낌. 더듬이라는 말. 달팽이는 말 그대로 허공을 더듬는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거대한 허공과 접촉하고 있다는 느낌. 그 순간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확실히 미끄러지며 달팽이는 전진한다. 두려움 없이.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이란 말도 있지. 백거이는 「대주(對酒)」에서 “蝸牛角上爭何事”라고 쓰기도 했다. 고작 달팽이 뿔 위 같은 세상에서 목숨 걸고 아웅다웅하는 꼬락서니는 또 얼마나 우스운 것이란 말인가. 달팽이 뿔이 그렇게 작다는 말인데, 아쉽게도 백거이는 달팽이 뿔의 움직임의 디테일은 보지 못했나 보다. 물론 작고 한심한 짓거리는 그것이 작고 한심한 짓거리임을 자각하는 순간 그만 내려놔야겠지만.

 

 

  소멸

da-07    어느 날 달팽이가 사라졌다. 달팽이가 어디로 갔나 열심히 찾았더랬지. 혹시 발로 밟아 집째로 깨뜨려버릴까 조심조심하며. 넌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난 어렸을 적, 계곡에서 온갖 돌을 다 뒤져 잡아와 장독대에 넣고 키우던 가재 한 마리가 장독대를 탈출했던 날을 기억했다. 그 가재는 나중에 소파 뒤에서 먼지 덩어리가 된 채 발견됐었지. 물론 숨은 이미 멎은 채로. 심지어 넌 가재보다 훨씬 더 작았다. 너는 아직 내게 <마이크로코스모스>에서 본 멋진 섹스 신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새하얀 알을 가득 낳아 놓지도 않았는데 혼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네가 발견된 곳은 어이없게도 바로 너의 거처 바로 옆인 식탁 위 물통이었다. 너는 물통 위에 올라가 있었다. 물통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잠시 쉬고 있었다.

 

da-08    또 다른 한 녀석, 제일 작은 놈은 만날 잠만 잔다. 짙은 갈색으로 물든 두꺼운 떡갈나무는 이불 하라고 깔아 준 것인데 그게 너무 푹신한지, 아니면 가을의 향에 취했는지 도무지 거기 달라붙어 깨어나질 않는 것이다. 아직 영원히 잠에 든 것 같진 않은데 활동량도 별로 없고. 보고 있으면 괜스레 잠이 오는 녀석이다. 열무 사건 이후 배추를 다듬다가도 달팽이 한 마리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 녀석도 처음엔 활발히 움직이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저렇게 가버렸었지.

 

da-09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집, 그것이 죽음이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집 안에서 썩어 가며 쪼그라드는 육신, 그것이 죽음이다. 달팽이가 죽고 나면 빈집 한 채만 덩그러니 남게 될 것이다. 언제 누가 거기 살았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가 믿겠느냐는 듯이. 더 이상 집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집은 가벼운 충격에도 쉬이 바스러져 버리겠지. 그러고 보면 한 권의 시집도 시들이 모여 사는 집인 셈인데 시간이 지나면 내 시집도 그렇게 될까. 시들은 바람에 다 날아가 버리고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시집. 그러나 그건 다른 모든 책도 마찬가지다. 소요되는 시간의 양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인류가 멸망하면 저 모든 책이 모두 텅 빈 달팽이집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 아니, 그 전에 한글을 쓰는 인구가 먼저 사라지고 나면 한글로 쓰인 모든 책이 먼저 그리 되는 것. 그러니까 결국 시간문제 아닌가. 거꾸로 이 모든 책이 나무였던 시절을 떠올려야 할 것. 그리고 그 거대한 상상 불가의 숲 속에서 호흡하다가 다시 한 권의 책 앞으로 돌아왔을 때의 망연자실함. 우린 한 권의 책 앞에서 울어야 하리. 결국 생각과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죽인 것이 아닌가. 육식은 종종 비난받지만 이런 식의 채식이 비난받는 건 본 적이 없다. 더 울어야 한다. 아니 잠깐. 잠시 흥분해서 너무 멀리 가버린 것 같군. “그러고 보면 한 권의 시집도 시들이 모여 사는 집인 셈인데”에서 다시 시작하자. 그러고 보면 한 권의 시집도 시들이 모여 사는 집인 셈인데, 그러나 영원불멸의 집이라는 건 결국 공간의 구획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한 것. 집이 사라지고 나면 온 대지가 다 집이 되어 한동안 그 앞에서 벌벌 떨다가, 어느새 들뜬 마음 진정시키고 다시 어딘가로 전진해야 하는 거겠지. 시는 집 같은 거 없이 오래오래 떠돌아야 한다.

 

 


작가소개 / 황유원 (시인)

-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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