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칸
- 작성일 20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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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누군가의 칸
남궁지혜
칸이 죽은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다만 확신하는 것은 칸은 죽었으며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만간 오빠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의정부로 가야 한다. 항주를 만나기 전만 해도 반년에 두 번 정도는 갔으나 이젠 그것마저도 어렵다. 거의 일 년 만이나 다름없는 면회라 오빠를 보면 무슨 말을 먼저 던져야 할지 난감하다. 어쩌면 나보다도 세 끼 꼬박 챙겨 먹고 살지 모르는데도 잘 지내고 있느냐 따위의 식상한 질문만 생각난다. 자연스럽게 칸에 대한 안부가 나올 게 뻔했지만, 그전까지는 칸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물비린내가 나는 검은 속옷을 챙겨 들었다. 세탁을 미루다 보니 여분이 없는 걸 깨닫고 저녁에 급하게 빨래를 돌렸지만 여전히 축축했다. 작은 창문이 방 안에 하나, 부엌에 하나 있는 이 집은 여름만 되면 벽지 틈 사이로 곰팡이가 작게 올라온다. 세상 모든 습기를 머금으려는 듯 곳곳에 물웅덩이도 야트막하게 생길 정도이니 말 다했다. 저번 여름에는 항주가 그 물기에 미끄러져서 엉엉 울며 누운 채로 나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나는 누워서 손을 뻗은 채로 우는 항주의 그 작은 손을 쳐내며 말했었다. 일어나. 항주가 다시 크게 울었다. 일어나, 병신아.
아, 나는 이런 하루의 반복들이 지겹다.
항주는 뒤통수가 찌그러진 이후로 사람답게 사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제일 좆같은 건 가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를 자신의 가족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때마다 귀 언저리에 대고 너는 가족은 없고 애인이 있었다니까 하고 말해 주고 싶다. 말해도 못 알아먹을 것이 분명하니 입을 그냥 다물고 사는 거지만 나는 어쨌든 정말 지겹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너를 버릴 거야, 항주야. 나는 너를 버릴 것이다.
“칸이 왜 안 와?”
“죽었으니까 안 오지.”
“왜 안 와”
“너처럼 뒤통수 맞고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다고.”
“그런데 양선아, 칸이.”
“…….”
“칸이 왜 안 와.”
신발 끈을 묶었다. 내 작업복이나 다름없는 검은색 속옷이 든 비닐봉지를 챙겨들었다. 항주가 내 옆에 쭈그려 앉아 칸을 계속해서 묻는다. 듬성듬성 난 머리칼이지만 사실 앞에서 보면 그렇게 흉측하진 않다. 다만 잘 때만 되면 뒤척이다가 가끔 뒤통수를 내 앞으로 내미는데 그때마다 베개로 덮어씌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신발장 위에 올려 둔 리모컨을 눌렀다. 문 사이로 보이는 티브이에 전원이 들어오고 시끄러워진 방으로 항주가 고개를 돌렸다. 가서 티브이나 보고 있어. 항주가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 오목하고도 찌그러진 뒤통수가 보기 싫어 고개를 끝까지 들지 않았다. 그냥 신발 끈만 마저 단단히 맸을 뿐이다.
이 동네 자체가 워낙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거리만 나가도 나랑 다른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우리 빌라만 해도 바로 맞은편에 가난한 주제에 애를 셋이나 둔 조선족 부부가 산다. 나는 그 집 부인을 마주칠 때마다 봉 씨가 생각난다. 봉 씨는 내 고용주이자 직장동료이다. 조선족인 봉 씨는 9년 전에 귀화하자마자 목욕관리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원래 성격이 지랄 맞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상할 정도로 자신이 때밀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굴곤 했다. 그래 봤자 고작 때밀이이면서 어쩌다 한 번씩 누군가가 자신을 때밀이라고 부르는 날이면 온종일 벌게진 얼굴로 중얼댄다. 대부분이 상스러운 욕이다. 어쨌든 그런 봉 씨처럼 조선족 부인은 몸 전체가 퉁퉁 부어 있어 보이는 데다 늘 어딘가가 억척스러워 보였다. 그게 삶에 대한 애착인지, 이 나라에 대한 집착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라도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다. 나는 그들이 싫다. 정확한 이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냥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내게 왜 함부로 미워하냐고 책망할 수는 없다. 이 동네가 얼마나 고약한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온화한 사람들의 부류들은 내게 그래서는 안 된다.
사실 나는 그녀의 역겨운 살집들이 튜브처럼 접힌 채로 튀어나올 때마다 이 족쇄 같은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기엔 이미 내 손톱 밑에는 물때가 가득 낀 지 오래고 나는 어떻게든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비록 조선족 밑에서 이런 세신 기술 따위나 배우며 일하고 있는 신세가 자신도 천박하기 짝이 없지만 별수가 있나. 어쨌든 오빠가 출소하기 전까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때를 밀 때마다 종종 우스운 생각을 한다. 밀면 밀리는 대로 굵고 얇은 때들이 가락 뽑듯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꼭 사람을 해감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소금물에 담겨 조개들이 하나같이 토악질을 해대듯 나는 열린 모공들이 토해 내는 그 죽어버린 몸의 표피들을 박박 문지르고 씻겨낸다. 이미 죽어버린 세포들인데도 그것들은 내 손에 달라붙은 채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무심코 이것들을 내가 다 뒤집어쓰고 살고 있구나, 싶은 거다. 이 동네 여자들의 죽어버린 그 어떤 것들이 내게 덕지덕지 붙어 기생하는 그런 기분. 그리고 그런 기분이 지속될 때면 그들의 피부가 벌겋게 되어 쌍욕으로 내게 소리칠 때까지 때밀이를 멈추지 않는다. 고의는 아니다. 봉 씨는 그런 나를 불러서 덩치도 큰 게 일을 꼭 그렇게 해야겠냐고 묻는다. 내가 일을 못 하는 것과 덩치가 큰 게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그냥 웃으며 죄송하다고 한마디를 하고 나는 그렇게 살아간다.
“얘, 양선아. 퇴근하니? 가는 길에 담배 하나만.”
저 개 같은 조선족 년과.
*
항주는 밥을 먹을 때 오른쪽으로만 씹는다. 머리가 찌그러지기 전에도 그랬다. 차라리 으깨질 거면 잘게 으깨져서 저런 버릇이나 잊어버릴 것이지, 나를 사랑했다는 것 빼고는 사소한 버릇 하나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오른쪽 볼을 젓가락으로 툭툭 쳤다. 항주가 기괴하게 웃는다. 웃으며 크게 벌린 항주의 입에 달걀장조림을 넣었다.
“나 이번 주말에 의정부 가. 오빠 만나러.”
“왜?”
“칸이 죽었잖아. 금방 올게”
“칸 왜 죽었어?”
“몰라, 나도.”
“그래, 그래.”
항주가 크게 밥 한 숟가락을 떴다. 자기 입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고 무작정 넣는다. 나는 그 입술 옆에 붙은 밥알들을 떼어먹었다. 항주가 잘만 먹다가 다시 말했다. 양선아, 칸 보고 싶어. 육개장 고사리를 건져서 입에 욱여넣었다. 오는 길에 반찬가게에서 항상 저녁을 사 가는 편인데 매일 국 메뉴가 다르다. 항주는 화요일에 먹는 미역국 메뉴를 제일 좋아한다. 나는 이 육개장이 제일 좋다. 고사리를 건져 먹는 동안 항주가 칸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어벙한 말투로 끊임없이 말했다. 짧은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으로 칸을 추억했다. 나는 항주만큼 슬프진 않았다. 그립지도 않았고.
칸은 우리 오빠가 8년 전에 데려온 새끼고양이였다. 어디서 길고양이를 데려와선 바로 칸이라고 불렀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오빠는 영화에 빠져 있었고 오빠가 아는 유일한 영화제 이름이 칸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를 좋아했고 나는 그런 오빠가 빨갱이인 줄 알았다. 무식한 남매였다. 오빠는 칸을 많이 사랑했다. 당시 오빠는 백반 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집에만 들어오면 난폭한 언어를 내게 퍼부었다. 그게 나를 향한 욕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오빠가 악을 쓰고 토해 내듯이 말하는 게 무서웠다. 식당 아줌마들이 자기를 우습게 본다고,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대놓고 무시를 한다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손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화를 내다가도 칸이 발 근처로 와서 몸을 비비면 금세 조용해져선 칸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오빠가 사라지고 나면 내 귀에 남는 건 오빠가 시팔, 시팔 거렸던 욕뿐이었다.
항주가 뒤통수를 긁었다.
“그런데 양선아.”
예쁘고 가느다란 항주. 뒤통수가 오목하게 찌그러진 항주. 나 없이는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든 나의 항주.
“칸은 왜 죽었어?”
항주의 입 주변을 휴지로 닦았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너처럼 뒤통수를 맞지 않았을까. 박박 닦아내는 내 손길이 따가웠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벌게진 입 주변을 한 번 더 확인하곤 다시 국을 먹였다. 항주가 나를 쳐다본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때 너처럼 어딘가 길목을 나오다가 뒤에서 야구 배트로 누가 때린 거지. 아, 너는 파이프였나. 그런데 그게 그거잖아. 어쨌든 칸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맞았을 거야. 묻지 마 범죄 알지? 그런 거처럼. 몰라? 네가 당해 놓고도 모르냐? 병신 같은 게 그러게 왜 밤길을 다녀 가 지고 그랬어. 그것도 게이 클럽에서 나오는 길에 그런 거잖아. 걔가 말하는 거 들었냐? 자기는 싫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정말 싫대. 하지만 왜 내가 아니고 너였지? 내가 아니고 이렇게 가녀리고 예쁜 너였냐고, 항주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항주가 긴 수술 시간을 거치고 납작해진 머리로 실려 나온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사건 현장의 그 참혹한 흔적들도, 기담처럼 동네에만 나돌던 항주의 비명과 애원도 어떠한 매스컴에도 실릴 수 없던 작고 흔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적당하게 막을 내리기 좋았다. 나는 그게 항주를 위한 일이라 여겼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합의금으로 받아냈던 항주의 통장을 가끔 확인한다. 매일 목욕탕으로 출근하면서 염증을 느낄 때나, 갑자기 용산역으로 무작정 항주를 데리고 나서고 싶을 때마다 안방 서랍 세 번째에 겨울 옷 사이로 껴 있는 그 통장을 가만히 꺼내본다.
누누이 말하지만, 항주는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다.
내가 항주를 데리고 밖을 나가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용산역이 전부이다. 그게 주말이 될 때도 있고 퇴근한 후의 밤이나, 출근하기 전의 아침일 때도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을 드나들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한 번쯤 데리고 나가기 좋은 곳을 생각한 게 버스 한 번으로 갈 수 있는 용산역이었다. 가서 하는 거라곤 정신없이 사람들이 다니는 역 한가운데에 앉아 어디론가 출발한다는 전광판을 바라보는 게 다다. 항주는 그런 내 옆에 앉아 멀뚱히 앉아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주변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항주의 뒤통수가 용산역의 명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흘금대기도 했고 수군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상처받기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아무렇지도 않다. 항주는 용산역 앞에서 파는 포장마차의 핫도그를 좋아하고 나는 그곳에서 파는 순대를 제일 좋아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서서 먹는다. 맛있다고 말갛게 웃는 항주의 얼굴을 볼 때면 문득 7년 전이 생각이 나는데 그게 오빠의 손에 죽은 그 여자를 떠올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재판 때에 나를 올곧게 보던 그들을 떠올리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항주가 그렇게 웃는 게 이제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차라리 평소대로 얼굴의 근육이 곳곳에 경직된 기괴한 웃음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해방된 것이 하나도 없나.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고작 항주에게 공기 바람이나 쐐주려고 매주 용산역에 가는 게 아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 당장 사는 것도 벅찬데 항주의 뒤통수를 어떻게 평생 보고 사나. 그 뒤통수를 보면 증인석 위의 내가 보이기도 하는데. 나를 노려볼 힘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그들이 생각나는데. 어떻게든 오빠를 옹호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굴었던 옹졸한 내가 보이는데. 그걸 어떻게 다 껴안고 산단 말인가. 나를 사랑할 줄도 모르는 이 병신이 내게 뭘 더 해줄 수 있다고. 내게 도대체 어떤 것을. 그러니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항주를 버린다 해도 그 누구도 내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항주와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가녀린 그 손끝에 얼마나 입을 맞추고 살았던가. 가난한 연애를 했어도 그 얼마나 풍족하게 사랑했던가.
처음은 게이 커뮤니티. 소수자들이 가득한 그 세상 속에서 항주를 만나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밥을 먹고 첫눈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보통’을 관통하고 싶었다. 보통에 얽매이고 싶어 하는 나를 항주는 이해하지 못했고 우린 그것 때문에 많이 다퉜다. 너는 내가 부끄럽니? 항주는 둥근 머리로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아니, 사랑하지.
항주가 밥을 깨끗이 비웠다. 나는 건조된 검은색 브래지어의 개수를 셌다.
*
의정부로 가기 전에 봉 씨에게 전화가 왔다. 주말 아르바이트가 빠졌으니까 너라도 나오라는 말이었다.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니 요즘 젊은 애들은 간절하지 못하다고 했다. 간절한 게 뭔데요? 돈 받고 일 배우는 게 어디 가서 할 수나 있는 일인 줄 아니? 아니, 그러니까 간절한 게 뭐냐니까요. 어디서 말대꾸야. 됐다, 너 같은 애들이 그렇지 뭐. 봉 씨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핸드폰을 쥔 채로 창만 바라보다 봉 씨가 말한 나 같은 부류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 같은 부류는 살인자인 오빠를 두는 것인가, 병신인 애인을 두는 것인가. 짧게라도 고민해 봤을 때 내린 결론은 전자였다. 살인자인 오빠를 두었지만 적어도 병신인 오빠는 애초에 두지 않았다. 나는 가끔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나 자신을 3자로서 지켜보는 꿈을 꾸는데 그때마다 오빠에게 물어보지 못한 말이 불쑥 목 끝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다를 건 없다. 나의 증언은 항상 간단한 세 마디가 전부이다. 집은 가난했고 오빠는 가끔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으며 그는 가장이다. 변호사는 그 세 가지를 내세워 선처를 빌었다. 부모가 있지만 보호자 행세를 실질적으로 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집안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이 청년이 다였다고, 정신이상 증세가 보이므로 이 또한 감안해 주길 바란다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사람으로 재판에 섰고 죽은 여자의 가족들은 나를 올곧이 바라봤다. 아주 올곧이 바라봤다. 나는 당시 오빠가 필요했다. 불과 18살이었다. 백반 집에서 벌어오는 그 돈이 필요했다. 무기력한 부모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게 돈을 대주는 오빠가 필요했다. 그가 교도소에 들어간다면 비워질 공백을 메워야 할 내 미래가 두려웠다. 그래서 선처를 바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빠는 계속해서 항소했고 착한 이 나라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반성한단 이유로 계속해서 오빠의 죗값을 덜어 갔다. 난 그렇게 좋은 나라에 살았다. 적어도 항주가 병신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 좋은 나라에 살았다. 항주의 뒤통수가 깎인 그해에 나는 오빠에게 가서 처음으로 물었다. 왜 그 여자였어? 오빠가 손장난을 치다가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속이 울렁거렸다. 형광등에서 반사되는 빛들이 나와 오빠를 비추고 있었고 찬란했다. 재판에서의 그들의 얼굴은 허망하고 일그러지기 짝이 없었는데 우리는 너무나 빛나는 곳에서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메스꺼웠다. 생각해 보면 난 그날 의정부를 내려오기 전날에도 그 꿈을 꾸었다. 온전히 유가족들의 시야 한가운데에서 서 있던 나를 바라봤다.
오빠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양선아. 너도 알잖아. 오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매일 그 쌍년들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는 이런 오빠 알아줘야지. 내가 그때는 정말 화가 나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니까. 정말 홧김이었어. 충동적이었단 말이야. 누구든 꼭 하나를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니까. 그래서 찾아 나선 거지.”
“뭐를?”
“왜 그런 거 있잖아, 양선아.”
“…….”
“내가 밀면 넘어질 수 있는 거.”
오빠를 내보낸 기사에서는 이를 묻지 마 범죄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무서운 일이 또 일어났다고만 했다. 내가 아는 지극히 정상적인 오빠는, 나의 오빠는, 나의 가장이자 사랑하는 오빠는 다만 찾아 나섰을 뿐이었는데도 세상은 이를 물을 수 없는 범죄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죽였느냐고. 18살의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대답해 줄 이는 아무도 없을 텐데, 아줌마 묻지 마세요. 다 아시면서 그렇게 묻지 좀 마세요. 우리 오빠가 왜 사람을, 아니 여자를 죽였는지를 이미 알고 계시면서 그렇게 묻지 좀 마세요. 나는 세상이 이를 묻지 마 범죄라 불러 주는 것에 감사했다. 적어도 오빠에게 더 추한 오명은 붙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소리 지르는 유가족들이 안쓰러웠으며 미안했고 또 짜증이 났다.
의정부에 가까워지는데 갑자기 오른쪽 겨드랑이 밑 부분이 가려웠다. 셔츠 밑으로 손을 넣고 브래지어를 살짝 위로 올렸다. 없는 손톱을 세워서 그 부분을 긁었다. 알레르기라도 올라온 것처럼 작은 두드러기가 만져졌다. 계속해서 긁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따가웠지만 그만큼 시원했다. 한참을 긁다가 셔츠 밑으로 손을 뺐다. 반대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나를 보고도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의정부 교도소에 도착해서 바로 접견을 신청하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는 전보다 더 머리가 짧아 보였다. 수염 정리 하나 제대로 못 하는지 턱밑이 거뭇거뭇했지만 눈에 거슬리진 않았다. 오빠는 나를 보고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언제나 같은 패턴이었다. 세신 관리사로 일하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모양인지 오빠는 내게 일은 잘하고 있냐고도 물었다. 봉 씨가 생각났지만 예전의 오빠처럼 시팔, 시팔 거리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침묵이 지속되다가 오빠가 물었다.
“칸은 아직도 밖에 나돌아?”
“다른 거 물어볼 건 없고?”
“어떤 거?”
“칸이 아닌 어떤 것이라도.”
이미 죽어버린 칸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빠는 이마를 긁었다. 나는 그 얄팍한 입술에서 무언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낡은 이야기라도 좋다. 너무 낡고 흔해빠져서 차마 묻는 것도 민망한 7년 전이라도 좋다. 오빠는 그들에 대해 내게 물어야 한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사람처럼 굴어야 한다. 그럼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들의 근황을 짐작할 수도 있다.
오빠, 오빠. 그 여자네 가족들 있잖아. 그 사람들 말이야. 나도 가끔 아주 궁금해진단 말이야. 그 사람들. 오빠가 죽인 그 여자네 가족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뭐 할까. 어떻게 살아갈까. 오빠 봤어? 나 그때 재판에 섰을 때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모르지? 나는 다 기억하는데. 하지만 오빠는 모른다고 했잖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잖아. 오빠 말이 돼, 그게? 항주가 그렇게 머리가 찌그러졌다니까. 병신이 돼가지고 나 없이는 밥도 못 먹어. 근데 어떻게 그게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끝날 수가 있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끝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오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골목골목마다 숨어서 항주 같은 아이를 찾아다니는 건 아닐까. 나 같은 애한테는 차마 덤비지는 못하니까 우리 예쁘고 착하고 작았던 항주를 찾으러 다니는 건 아닐까. 왜냐면, 오빠가 죽였으니까. 오빠가 그 여자를 죽였으니까 그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뭐 있어. 그 사람들이라고 못 죽일 이유가 어디 있냐고. 항주가 역겨워, 오빠. 나는 항주가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오빠. 항주한테 왜 그랬어, 오빠. 말해 봐. 항주 머리를 왜 그렇게 만들었어. 우리가 그렇게 싫었어? 오빠가 나약하고 가난한 사람인 거잖아. 그렇다고 생각 안 해? 정말 나에게 다른 거 물어볼 말이 없어?
“없어. 그런 거 없어.”
오빠의 둥근 머리를 쳐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이제 겨우 2년이다. 2년 뒤에 오빠는 나와 같이 다시 한 집에 살고 일하고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 나는 세신사로, 오빠는 전과자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 미래에 항주는 없다. 두 번 다시는 없다. 없어야 한다.
오빠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칸은?”
“죽었어.”
오빠가 오열했다.
*
항주가 달력을 가리켰다. 의정부에 다녀오자마자 21일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더니 아무래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항주는 다시 입을 벌렸다. 그 입에 고구마줄기를 넣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검은색 브래지어를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항주가 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목욕탕으로 들어가서 봉 씨와 마주쳤다. 봉 씨는 어제의 통화는 없던 사람처럼 굴었다. 어쩌면 평소보다 더 살가워진 것도 같았다. 우리는 아무 말 않고 각자 손님을 맞이했다. 나는 목청껏 대기번호를 불렀고 숫자로 매겨진 여자들은 나에게로 와서 가슴과 등을, 엉덩이와 허벅지를 맡겼다. 나는 그 건강한 육체들을 밀 때마다 항주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의 항주를 이곳에서 꼭 한 번 씻겨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전보다 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확실히 의정부를 다녀온 후로 그랬다. 아무래도 나에겐 오빠가 필요하다. 축 처진 몸으로 탕에서 나와 마루에 앉아 선풍기를 쐬는데 마지막 손님을 끝내고 나온 봉 씨가 나를 보며 웃었다. 야, 너 체력이 어지간히 좋은 게 아니다. 봉 씨가 내게 다가와서 옆에 있는 달걀을 아무렇지 않게 까먹었다.
“이모, 얼마 들었어요?”
봉 씨가 가랑이 벌리고 앉았다.
“뭐가?”
“보증금이요. 보통 얼마 정도 들어요?”
“천은 들지. 왜?”
티브이에서는 연속극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봉 씨는 입안에 들어간 달걀 껍데기를 혓바닥으로 내밀다가 퉤퉤거렸다. 천이나 들어요? 봉 씨가 그제야 나를 보며 웃었다. 아, 너 벌써 나중 일 생각하니? 자격증이나 따고 말해. 봉 씨가 천박한 웃음소리를 내며 배를 잡았다. 튼살이 흉하게 드러나 있는 그 뱃살이 보기가 싫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내게 봉 씨가 둥근 달걀을 건넸다. 난 그것을 받아들고 가만히 있었다. 야, 먹어. 그 둥글고 깨끗한 달걀을 한 입 먹었다. 부드러운데 먹먹하다. 분명 계란인데 둥글고 예쁜 계란인데 이 한 입도 숨이 막혀서 넘기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이 마루를 박차고 나가서 항주가 있는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검은 브래지어를 입고서 거리를 활보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이것을 차는 이유는 다 있었다. 내가 여자라서 아니고, 나는 단순히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괜찮았다. 항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항주야, 항주야 너는 나 안 사랑하잖아. 애초에 네가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도 그 새끼한테 있다지만 그 몫은 다 돈으로 돌아와 버렸고 이제는 청산된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가득하다. 이 얼마나 깨끗하고 가벼운 세상이야. 항주야, 너 말고는 다 번듯하게 이렇게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둥근 달걀을 먹고 내일이라도 당장 너를 용산역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 오빠는 2년 뒤에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 자기 일이 아닌 방관자들은 매일이 평범하다.
봉 씨가 등을 두들겼다. 묵묵히 달걀을 삼켜내는 내 등을 세게 내리쳤다. 머리를 말리거나 몸을 닦아내던 여자들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왜 이런대요? 아니, 미련하게 달걀을 먹어 가지고는. 한 여자의 손가락이 내 입 속으로 들어와 헤저었다.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게 신호인 것처럼 봉 씨가 더 등을 두들겼다. 노랗고 투명한 달걀이, 둥글지 못한 달걀이 내 입 밖으로 나왔다. 패닉에 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봉 씨는 내 어깨 근육을 계속해서 만져댔고 나는 가만히 내가 토해 낸 것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반대편 욕탕 문에 그 여자의 가족이 보였다. 늘 올곧게만 바라보는 그 죽은 여자의 가족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어쩌라고, 그래서. 나도 할 만큼 했잖아. 그러고 있잖아. 그렇게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항주야 천만 원 정도는 괜찮지 않니?
*
21일이었다. 전날 은행에 다녀오자마자 서랍에 다시 숨겨 넣었던 통장을 꺼냈다. 여태까지 두 사람 몫의 생활비를 감당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이 정도는 오히려 간소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젠 사천만 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통장은 항주의 모든 인생을 앞으로도 보상해야한다. 나는 이제 그럴 수 없다. 항주에게 전날 사둔 미역국을 먹이고 짐을 마저 챙겼다. 봉 씨가 출근하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 했다. 항주는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나를 알아본 카운터는 항주를 한 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열쇠를 건넸다. 나는 그 열쇠로 장을 열고 항주의 옷을 벗겼다. 마르고 하얀 항주의 피부가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항주의 몸에 물줄기를 뿌리고 따뜻한 탕에 들어갔다. 우리 둘이 그곳에 들어갔다. 애매한 새벽이라 그런지 여자들은 거의 없었다. 물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탕에서 나와 항주는 서로 물장난을 간간이 치며 웃었다. 물이 너무 따뜻해서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오히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나는 얼굴까지 탕에 담았다가 다시 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항주는 내 얼굴이 수면 위로 뜰 때마다 아이처럼 좋아했다. 손뼉을 치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항주의 손을 잡고 세신대로 데려갔다. 두 개의 세신대 중에 항상 내가 손님을 눕히는 곳에 항주를 눕혔다. 항주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나는 봉 씨가 삼만 원짜리 마사지를 할 때마다 듬뿍 뿌리는 오일을 꺼냈다. 오이향이 났다. 항주는 오이를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손에 잔뜩 짜서 항주의 몸 위로 오일을 문댔다. 항주가 간지럽다고 웃다가 오이 향을 맡고서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싫어. 간지러워. 싫어. 항주는 자꾸만 세신대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 봤자 가늘고 마른 항주는 어디를 갈 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세신대에서 일어나 탕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항주야. 내가 너 정말 한 번 해주고 싶어서 그래. 항주야 좀 얌전히 누워 봐. 이러지 좀 말고 여기 와서 제발 좀 누워 봐. 나의 애원에도 항주는 목욕탕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소리를 지르면서 돌아다녔는데 꽤 신난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게 아무래도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항주를 붙잡고 다시 세신대에 눕히기를 반복했다. 항주야, 그러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 봐. 내가 배운 거라니까. 내가 나중에 이런 것도 하면서 돈을 번다고. 이 비싼 거 하나 좀 해주려고 하니까, 몸 좀 눕혀 봐. 칠만 원이 어디 남의 돈이니. 너 어디 가서 이런 거 해본다고 이렇게 구니, 항주야. 끝내 항주는 번들거리는 제 몸을 제대로 씻겨내지도 못하고 목욕탕을 나왔다. 카운터가 오일을 쥐고 나온 나를 보고 멍청하다고 욕했다. 입 모양으로도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분명 눈빛이 그랬다. 내가 장애인을 데리고 목욕탕에 왔다고 비웃는 게 틀림없었다. 기껏해야 때밀이 주제에 봉 씨의 눈을 피해 새벽에 데려와선 비싼 오일 하나도 몰래 제대로 못 쓰는 찌질이라고 욕하고 있는 게 뻔했다. 나는 그런 카운터 앞에 가서 머리통을 잡고 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항주가 있었다. 항주 앞이었다. 주먹만 몇 번 쥐다가 다시 들어가 오일을 제자리에 두고 항주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덜 닦인 오일들이 항주의 몸 곳곳에서 향을 냈다. 항주는 그 향 때문에 괴로워했다.
목욕탕을 나와서 용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항주는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전처럼 늘 오면 먹는 포장마차를 찾았다. 하지만 이 이른 아침에 열 리가 없었다. 나는 대신 항주의 손에 고로케 하나를 사서 쥐어주곤 미리 끊어 놓은 표를 발행했다. 늘 전광판만 보고 지나쳤던 이곳에서 드디어 목적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나는 포항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항주는 내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뭘 봐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와 같은 시선을 유지했다. 전광판은 오늘따라 유독 정신없이 변하고 방송은 여기저기서 열차 운행에 대해 안내했다. 7시 10분이 되었다. 항주의 손을 잡고 포항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항주가 창밖을 쳐다봤다.
“양선아”
“응?”
“포항이 어디니?”
열차는 출발했다. 나는 항주의 손을 놓고 묻어 나온 땀을 바지에 문질렀다. 아무래도 서울하고는 멀겠지. 항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저녁에 삶아 놓은 달걀을 까서 항주에게 주었다. 항주의 못생긴 손톱은 뭉툭했다. 항주는 전에 자신의 손톱이 개구리 손톱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유심히 한 번 더 그 손가락들을 쥐고 구경했었다. 참 말도 잘 짓는구나. 이게 개구리라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톱의 면적이 넓고 뭉툭한 그 손을 한참이나 보다가 웃었다. 항주는 이제 자신의 손톱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개구리를 기억이나 할까. 거침없이 항주의 입으로 들어가는 하얀 달걀을 보다가 나도 달걀 하나를 까서 먹었다. 평소 목욕탕에서 간식 대용으로 먹는 맥반석하고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나는 차라리 이쪽이 좋았다. 매점에서 사온 사이다까지 한 모금 마신 항주가 노른자를 입가에 묻히고 웃었다. 나는 그 노른자를 또 박박 닦아내었다. 세게 문질러도 아픈 기색 없이 다시 달걀 하나를 까먹었다. 나는 그런 항주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항주야,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봐.”
“응?”
“그렇게 바보 같은 얼굴 좀 그만 하고 사랑한다고 좀 말해 보라고.”
“…….”
“됐다. 병신.”
항주에게 가방을 한 번 더 확인시켰다. 미리 사둔 알록달록한 새 속옷도 말했다. 검은색은 지긋지긋했다. 항주는 내가 알려주는 것을 듣는 둥 마는 둥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 어깨에 기댔다. 나는 항주의 가방을 발밑에 두고 손을 쥐었다 펼치기를 반복했다. 열차는 광명을 지나 오송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일정하게 느껴질 때 나는 항주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왼손을 들어 항주의 머리에 가져다댔다. 앞머리를 쓰다듬다가 찌그러진 그 뒤를, 나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그 오목한 뒤를 만졌다. 아아, 울고 싶었다. 나는 항주의 그 오목함 뒤에 숨어 살고 싶었다.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평생 이 오목함 뒤에서 숨 쉬고 싶었다. 나는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사람이므로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장담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빠가 돌아온다. 그 사람이 돌아온다. 7년 전 그 눈초리를 고스란히 받으며 지켜낸 살인자가 내게 온다. 항주는 내게 줄 것이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 오목함을 볼 때마다 죽은 여자를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 아이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때마다 서랍 속의 통장을 새벽마다 몰래 훔쳐보던 때는 지겹다. 나는 항주에게 그래서는 안 됐다.
오송역에 도착했다. 어깨에서 항주가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나가는 그 물결에 몸을 숨기고 열차에서 빠져나왔다. 달렸다. 숨이 헉헉거렸다. 항주가 잠에서 깼을까. 열차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겠노라 다짐해도 자꾸만 얼굴은 열차를 향했다. 수많은 창을 지나치며 항주를 본 것 같았다. 창에 기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것 같았다. 아주 지그시 나를 내려다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울면서 그 길로 역 안에 들어갔다. 다시 용인으로 가는 표를 끊으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에 맞춰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오빠의 말을 기억해 냈다. 내가 밀면 넘어질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내게 정말 그런 것들이 있었나.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용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주저앉았다. 그리고 끝내 내가 내린 결론의 모든 것은 봉 씨였고 조선족이었다. 온갖 우울을 끌어안은 지금의 내게로 오일 통이 절반 빈 사진 한 장 보내 놓고 염치없다고 말하는 이 봉 씨는 정말 징그럽기 짝이 없다. 그 문자가 담긴 핸드폰을 꽉 쥐고 있다가 코를 풀었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덩치 좋고 힘 좋은 나는 오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
나는 집에 도착할수록 점점 침착해졌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이 떨릴지언정 이젠 두렵지 않았다. 항주는 없다. 이제 내게 항주는 없다. 내가 버렸다. 이 세상은 나같이 가난하고 심약한 이에게 자비롭고 나는 그것을 잘 안다. 조선족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경 써줄 그런 위인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제나라처럼 구는 게 잘못된 것이다. 파이프를 찾았다. 골목마다 놓인 쓰레기봉투를 괜히 지나쳤다. 파이프가 없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봉 씨의 말들을 곱씹었다. 곱씹고 곱씹었다. 잘근잘근. 입안이 텁텁했다. 옆집에 사는 조선족 꼬마들이 오늘은 있으려나. 빌라로 들어갔다. 베란다에 언젠가 두었던 펜치가 생각났다. 걸음을 빨리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잘 때마다 찌그러진 얼굴로 울어대던 항주처럼 처연하고 구슬펐다. 벗어났노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나의 뒤에는 거대한 열차가 놓였다. 창을 내려다보는 항주의 시선도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아, 칸이었다. 계단 아래 나를 보는 칸이 있었다. 칸이 저는 다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항주보다 더 앳된 얼굴로 내게 구걸하고 있었다. 칸이 죽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나는 왜 칸을 죽었다고 확신했는가.
칸이었다. 틀림없는 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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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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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5-01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 관리자
- 2025-05-01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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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죄송합니다. 인용이 틀려 수정합니다. 신형철 선생님은 '산문시를 꿈꾼 흔적이 없는 산문은 시시하다'고 하셨네요. 저질 기억력이라...
여기는 수정이 안되나요? 시가 되지 못한 산문은 시시하다고 했는데 은 저에게 한 편의 시였고
잘 읽었습니다. 읽고나서 제 입은 환타스틱 페블러스 오썸이러고 있더라구요. 이건 아니지 싶어 우리말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대박'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언어빈곤자로서 반성을 했습니다. 결국은 신형철 선생님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시가 되지 못한 산문은 시시하다고 했는데 은 저에게 한 편의 시였고 독립영화였고 잘 만들어진 단막극이고 모든 장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써주셔서. 평소 96을 소망하며 사는 69년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