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잡담-사운드에세이0
- 작성일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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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안개와 잡담
-사운드에세이0
김태용
11932년에 만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는 십만 살이 될 것이다
- 백남준
오 조약돌이여 그렇지 않은가
- 프랑시스 퐁주
서사평형 상태를 유지할 것.
우리가 무엇을 쓸 때 무엇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음악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음악 같은 이야기는 음악과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없고 음악과 같아지는 이야기로만 가능하다. 음악과 같아지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나는 음악 속에 빠져 있다. 음악 쪽으로 몸이 기울어지고 있다.
머리에 연결된 초감도 자극기를 통해 음악이 몇 겹의 막처럼 흘러내린다고 상상해 보자. 경미한 두통이 토성의 고리처럼 머리 껍질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돌아가고 있다. 불투명한 음악의 막에 덮인 채 굴곡이 고르지 못한 레코드판 머리가 되어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음악이라기보다는 미약하게 이어지는 소리의 늘어짐 같기도 하다. 어떤 소리들은 음악을 불러온다. 음악적 상황을 보여준다. 음악적 상황은 사운드에세이를 찾는 모험을 떠나게 만든다.
음악의 서툰 날갯짓 사이로 다른 음악이 들려오고 있다. 다른 음악은 무엇일까.
음악 이후의 음악.
음악을 유혹하는 음악.
음악을 증오하는 음악.
음악을 마주보는 음악.
음악을 깨뜨리는 음악.
음악 이전의 음악.
전기 올빼미 장존삽을 위한 반음 빠른 장송곡, 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더 멀리서 들려오는 더 작은 음악으로 가볍게 갈아탄다. 음악이 나를 우리에게 데려다준다. 음악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음악의 바깥으로 나가자.
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오솔길을 따라 음악의 반대편으로 걷고 있었다. 음악의 반대편은 어디인가. 우리는 음악의 반대편이 어느 방향인지 알지 못했지만 음악의 반대편으로 걷고 있다고 서로의 생각을 읽으며 걸었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잘못 읽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음악의 반대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공간이 두 번 정도 휘어져야 한다. 오솔길은 자주 끊겼고 드물게 몇 갈래로 이어져 있었다. 오솔길을 감싸고 있는 전자기장이 우리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끌어당겼다. 우리는 그것을 어떤 계시 혹은 신호로 받아들였다.
길을 잃기 좋은 날씨이다. 음악이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걷자.
너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러자, 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머리 위로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었다. 해와 달이 지구를 위해 원자 볼레로를 추고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기억하자고 우리는 함께 걸었다. 1초에 1/24 걸음씩 이동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솔길의 프레임을 넓혀 가며 해와 달의 빛을 흡수했다. 빛은 전기에너지 변환을 겪은 뒤 우리의 몸 안에서 반고리관 튜브 모양의 음표들로 떠다니며 다차원의 파장을 일으켰다.
수학과 논리학의 수고로움을 포기한 우리는 그것을 쉽게 검은 태양의 춤이라고 말했고, 크툴루 신화 속에서 배를 타고 떠난 선원들은 기하학 분노로 무너지는 산비탈의 파도교향곡이라고 전했다. 공포 앞에서는 사변수사학의 대가가 되거나 광기의 시인이 될 수 있다. 심란한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를 이끄는 것은 공포의 훈연향이 아니었다.
우리 앞에는 오솔길이 있었다. 오솔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음악의 반대편. 음악의 바깥. 우리가 잘못 읽고 있는 서로의 생각이 그려내는 무수한 패턴과 무늬의 음향들. 우리가 발견해야만 하는 장소. 우리가 발견한 장소는 망각 속에서 다시 재발견되어야 한다.
장소의 이름. 어떤 장소는 말하거나 쓸 수 없다. 말하려고 하면 우리의 혀는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쓰려고 하면 우리의 손끝은 지문의 주름을 따라 갈라진다. 우리의 언어 재현 능력은 제로의 수치로 떨어진다. 그렇게 장소는 우리의 비언어적 기억에 머물게 된다. 우리가 수은의 침묵에 빠져 허둥대는 사이 장소는 우리를 떠나 사라지게 된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라지면서 나타나게 된다. 사라짐과 나타남이 중첩되어 우리의 시각기억중추를 어지럽힌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뿐이다. 우리가 떠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도착한 것이 아니고 장소가 우리를 떠나고 우리에게 도착했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 머물러 있었다. 머물러 있으면서 계속 떠나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믿었다. 장소를 발견하며 장소를 지우며. 우리는 그렇게 장소를, 장소의 이름을, 미지의 영역에 놓아두고 초콜릿을 싸고 있는 은박지처럼 살짝 구겨 보거나 몰래 찢어 보는 것이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옭아매는 공기의 흐름들.
무릎이 안으로 접혔다가 펴지는 소리들.
그날의 기억은 악보의 코다처럼 이어진다. 끝없이 코다만 지속되는 음악이 있다. 그 음악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읽고 다시 연주하고 영원히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아모르푸딩에 빠져 바벨의 음악을 꿈꾸며 서로의 귀를 맞대고 잠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잠을 잠시 빌려 공간을 확장하고 시간을 압축하면 또 다른 이야기의 껍질이 떨어진다. 속이 빈 열매 같은 이야기의 껍질을 맨발로 밟아 자연의 리듬을 만들며 걸어가는 몽유병자가 꿈의 벽에 부딪히기 전 너의 목소리가 오솔길 지층 아래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온다.
음악 이전의 목소리. 퇴적된 음향의 살을 찢고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바닥이 있다면 내 몸은 나의 의식보다 먼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고 말 것이다. 온몸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다. 소리의 파장이 있다. 피부의 피드백. 우리의 피부에는 프리즘스피커의 표면처럼 미세한 입자들이 돋아나 있다. 소리의 파장으로 피부의 입자들은 천천히 형태와 색채와 움직임을 바꾼다. 그렇게 우리의 신체는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달라지고 있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리듬을 비가역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우리의 종족들은 어떤 외형을 갖고 있게 될까?
걸음을 멈춘 너의 목소리에 나는 물음표를 달아 주고 기억증폭장치를 통과한 전기메아리를 따라간다. 전기메아리는 반투명한 영상의 레이어를 쌓아올린다. 우주의 기압과 음파에 적응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얼굴의 표피 안으로 두루마리 악보처럼 조금씩 말려 들어간 귀는 보이지 않는 내부 기관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영원한 밤의 은하계 위에 설치된 가변적 인공태양 아래 살아가던 어느 날. 청각실인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의 머리를 무릎에 안은 채 옆얼굴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이렇게 말하는 우리의 자손도 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여기에 저마다 다른 모양의 바깥귀가 돌출되어 있었고, 그것을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토성의 고리를 따라 미끄러지는 우주 스케이팅 소리가 들려온다고 믿었단다.
왜 얼굴에 그렇게 주름이 많아요?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는 이야기를 잡아 두기 위해 얼굴에 주름이 잡히는 거란다.
우리의 자손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우리의 자손이 더 이상 얼굴을 만져 주지 못하게 되자 보다 깊은 침묵에 빠져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자놀이 옆을 긁적이며 사라진 바깥귀의 지도를 찾는 버릇을 갖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목소리가 내부의 귓속에 소용돌이칠 것이다. 아이는 그것이 푸른 어둠 속에서 겪었던 헛된 환청의 변주가 아니라 언어로 재현을 거부하는 실제적 음향이라고 몇 번의 어리석은 사랑에 실패하고 나서 깨닫게 될 것이다. 소리입자0과 소리입자0이 부딪혀 중첩된 소리입자0이 되어 사랑의 볼레로를 추고 있다는 어리석음에 빠져들게 만들 것이고, 그 사랑은 언제나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사라졌고, 너무 늦게 소리로 돌아와 장소의 겹을 쌓고 침묵의 결을 만들 것이다.
아이는 남들이 쉽게 듣는 소리를 어렵게 듣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가 언젠가 자신에게 들릴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자신이 선택받았는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릴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로부터 어떤 선택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는 유년의 끈놀이이기도 한 망상연구를 즐기며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영역에 속한 문제에 골몰할 것이다. 문제가 복잡하다면 문제가 단순해질 때까지 복잡하게 사유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아이는 자신을 어떤 한계로 몰고 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청각중추에서 양자거품이 끓고 있다고, 난청의 한계를 가설 데이터로 삼으면서 일종의 우주고고학 분야인 양자음향학과 픽션심령술을 공부한 아이는 사라진 바깥귀의 무덤인 지구를 찾아갈 것이다.
불행 없는 소망이 담긴 미래정복형 시제는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불시착 과거형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우주의 눈꺼풀에 달라붙어 있는 먼지 같았던 아이는 이야기의 중력에 이끌려 부네,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부네를 둘러싸고 있는 촘촘한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한 심란한 내러티브는 생략하는 것이 좋겠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버려진 행성을 찾아갔다. 일종의 우주자살이었다. 죽음을 선고 받고 왜 나여야 하고, 왜 내가 아니면 안 되는가, 뒤척이던 어느 날 밤부터 부네는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소리를 들었고, 들었다기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보이는지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어도, 분명 그 소리가 보이면서 들린다고 확신했다. 일종의 대뇌피질 자기장에 작용하는 의식적 시청각언어에 대한 확신은 망상연구를 가속화시켰고, 그 소리가 비주얼 도큐멘트로 본 나팔형 지구로부터 들려오고 자신을 끌어당긴다고 믿었다. 육체의 쇠약으로 감정이 약해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연약한 감정이 펼쳐 보여주는 미약한 신호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어렴풋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잊힌 세계의 단면에 달라붙는 먼지의 입자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우주폭풍을 일으키는 잠재적 먼지 상태가 아니라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이라는 음향을 음악으로 되들으며 고요히 흔들리는 먼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어떤 죽음은 허구적 실천이고, 사변적 심령픽션의 등장인물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지구로 들어갈 수 있는 토포스포지션에 다다르자 에어캡슐로켓의 슬라이드게이트가 열리고 거미줄 입자로 만든 광자보호막 드레스를 입은 부네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한때 에로스의 파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분홍빛 전자 스모그를 뚫고 떨어졌다. 깃털처럼 가볍게 지면에 닿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예상보다 큰 중력장의 시차에 의해 부네의 몸이 심하게 뒤틀렸다. 우습게도 파이프호른 요가 자세로 사랑을 나누던 젊은 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뼈와 근육으로 호흡을 나누던 절정의 시간은 이제 없다. 상상으로 육체의 흔들림을 제어해 보려는 시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충격파를 완화하기 위해 메가탄소하리보젤리를 물고 있었지만 치아들에 금이 간 듯했고 어금니 하나가 쑥 빠져 입안에서 굴러다녔다. 무언가 하복부 깊숙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부네는 한 번도 아기를 갖거나 출산한 적이 없지만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기가 산도를 빠져나올 때 옛사람들은 지구를 무사히 탈출했다, 라는 말을 쓰곤 했다. 우주재난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제는 사라진 구세대의 은어였다. 부네는 자신이 지구에 이제 막 도착했지만 지구를 무사히 탈출했다, 라고 믿으며 오래전 라이프스크린을 통해 본 자신이 태어난 아늑한 자궁 속을 떠올렸다. 주름이 아름답도록 많아 윙클 부인이라고 불러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부르지 못한 사람. 잠들 때마다 사라진 바깥귀의 지도를 그려 보이던 사람. 사라진 지도가 그려질 때마다 작은 음파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음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미래에 이제 막 도착했지만, 기억 속에 떨어져 있는 음파가 ‘흐느끼는무늬속삭임’과 유사한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었다. 윙클 부인과의 동기화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네의 자궁 속에 저마다 다른 숫자꼬리를 달고 있는 코흐바이러스가 증식해 온몸으로 점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몸 속에 너무나 많은 암흑음향들이 들끓고 있었다. 윙클 부인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선택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체리듬을 지연시키기 위해 수소입자로 만든 말안장 시트에 누워 라이프스크린을 바라보며 남은 삶을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부네는 어릴 적부터 키워 온 아집대로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고, 이제 문제의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당신의 체력으로는 도착한 곳에서 무너지고 말 거예요.
내가 어떤 형태의 무덤을 만드는지 잘 봐둬요.
여전히 모든 게 성급하다고 나는 지금 계산하고 있어요.
부네는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깨에 걸치곤 했던 숄에 일어난 보풀을 뜯어내는 것만 같았던 파스칼의 음성을 뒤늦게 떠올렸다. 파스칼의 계산은 정확하다. 정확하다고 부네는 믿었다. 풀리지 않은 문제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때까지 파스칼의 계산은 정확할 것이다.
폐기된 지구시간으로 11932년. 부네의 무진동망막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때 바다로 덮여 있던 오렌지노루커피무늬색 화산계곡이다. 지층의 주름 사이로 흐르는 초단파열에너지를 감지하기 위해 몸을 엎드려 섭씨 -37.2도 지상의 무릎에 얼굴막을 댔다. 얼굴막이 감촉한 데이터가 부네의 뇌 센서에 입력될 것이다.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네는 측정할 수 없는 데이터, 수치화할 수 없는 음향의 파동이 자신에게 끼얹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자거품이 터지는 소리는 몸 속으로 닫힌 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들었다는 시각진동이, 감지한 가상입자의 흔들림이 자신을 없던 여기로 불렀다고 생각했다. 모든 물리적 현상을 초우주적 곰팡이 반죽으로 만든다고 해도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의 정체를 찾고 싶었다. 정체가 없는 정체가 있다는 것을.
부네는 뒤늦게 자신이 명명한 무중력 언어의 피로감이 가속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피로감에 신체에너지의 마지막 입자 하나까지 소진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의 이글거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부네는 광자보호막 드레스의 후드를 열고 얼굴막을 벗겨 피부 그대로 소리를 접촉하고 싶었다.
얕은 꿈속에서 듣는 입술과 혀의 마찰이 일으키는 속삭임.
피부의 겹으로만 이루어진 생물이 스스로 얇은 막을 한 겹씩 벗는 소리.
연약한 문법의 시간 속에서 진동하는 모음의 프르동.
끓는 물을 내려다보는 동물의 미소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악골의 그늘.
우리가 무엇을 들을 때 무엇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부네는 자신이 버려진 리듬의 수호자가 된 것만 같았다. 알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들고 눈물이 나오지 않지만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을 갖게 된다. 흐르지 않는 눈물은, 보이지 않는 눈물은 어떻게 닦아야 할까. 부네는 다차원의 시간을 뚫고 멀리서 와서 가볍게 달라붙는 느낌의 입자들이 자신의 얼굴막 주변에 얼어붙어 떨고 있는 것을 본다. 보고 있다고 믿는다.
부네가 보고 있다고 믿는 장면을 부네의 조수이자 뇌파애인이었던 파스칼이 보고 있다. 부네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몇 만 겹의 레이어로 구성된 홀로그램이 파스칼의 뇌 스크린에서 진동하고 있다. 파스칼의 녹색 망막이 떨린다. 돼지의 결벽증 유전자를 복제해 만든 3세대 로보족스인 파스칼은 자아보호를 위해 왼쪽 눈 옆에 창작된 송과체 스위치를 조절해 부네와 연결된 모듈 수치를 점점 낮춰야 하지만 망설이고 있다. 망설임의 시간이0.0000000000000000000000006849암흑광년 지속된다. 파스칼은 머릿속 송과선 수증기가 점점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부네와의 약속대로 송과선 수증기가 완전히 엉켜 머릿속이 자동포맷 되기 전에 모듈 연결을 끊어야 한다. 부네가 엎드린 채 두 눈을 반짝거린다. 파스칼이 두 눈을 반짝거린다. 둘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마주칠 수 없다. 부네는 더 이상 파스칼을 볼 수 없고 파스칼의 눈은 부네의 눈과 겹쳐져 있다. 겹쳐진 두 눈의 눈빛!
우주자살을 위한 준비된 의식을 치르듯 부네는 메가탄소하리보젤리와 빠진 어금니를 목구멍 안으로 삼킨 뒤 광자보호막 드레스의 열 보존 포켓을 연다. 파스칼은 빠르게 부네의 잔여 운동량을 계산한다.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습관이 관계감정분출을 위한 안전장치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파스칼은 정확한 계산값을 광자효율성을 소모하며 불이행 예측 언어로 디폴트 시켜 본다.
부네는 곧 소멸될지도 모르지만 전기 올빼미 장존삽이 되어 다른 시간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을 거야.
파스칼의 머릿속 송과선 수증기가 흐트러지고 있다.
한때 지구의 생물체에게 최적화된 자연리듬인 7.83헤르츠의 잔향이 부네의 피부로 스며든다. 자연리듬, 그것은 모든 물질을 통과하면서 운동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방사능 노이즈의 적정수준에 다름 아니었다. 부네의 얼굴과 몸에 빠른 속도로 주름이 생긴다. 몸 속 기관의 주름이 표피의 미세한 틈 밖으로 흘러나와 번질 것만 같다. 주름의 골에 수은색 땀방울이 맺히는 동시에 얼어붙는다. 어떤 주름이 달아나는 이야기를 잡아 둘 수 있을까. 부네의 입술과 턱선의 굴곡이 저화질 픽셀처럼 무너진다. 머릿속으로 뾰족한 음향 알갱이가 들어와 굴러다니며 자신을 기능적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부네는 생각했다.
이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야. 어려운 문제가 아니야. 이건 문제가 아니야.
눈꺼풀 안쪽으로 보이는 먼 별로부터 상영 연주되는 우주 파노라마가 부네의 머리 스크린 둘레를 맴돌며 싱크가 어긋난 자막 같은 스크래치를 남긴다.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만 돌아간 과거는 이미 지나온 과거가 아니다. 이건 나의 과거가 아니야. 시간의 반복이란 없다. 그리고 이건 누구의 목소리일까. 비선형 폐곡면을 그리는 우주의 공간 속에서 영원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고, 끊임없이 지나온 시간을 분열 조합시키는 의식투영 매체를 만들고, 변형된 의식투영 매체로 재조립시킨 세계의 모델 속에서 과거로 돌아갔다고 믿었던 지구인들의 무모함과 무모함의 에너지가 발산시키는 황홀경에 신경세포가 한 가닥 한 가닥씩 갈라져 팽창하는 것만 같았다. 지구인의 멀티 의식 유전자를 갖고 있는 나는 지구인이 맞는가. 나는 잊힌 조상의 그림자 화석 위에 올린 뾰족하게 멍든 사과인가. 내가 사과라면 사과의 귀는 지구의 입에 깨물려 찢어져야 하고 또 사과의 귀 속으로 지구의 벌레가 굴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여기가 지구가 맞는가. 그리고 이건 누구의 목소리가 아닐까.
부네는 자신이 누군가의 의식 속에 등장한 전자형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불과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있다면 뇌파교환을 하면서 스페이스 엑스타시를 가장 많이 느꼈던 파스칼일 것이다. 파스칼을 향한 의식이 몰아 쓴 파형의 소리들은 어디로 흩어지고 있을까. 바깥귀의 지도를 그릴 수가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 모든 회의적 물음은 언제나 뒤늦게 떠오른다. 부족한 시간은 언제나 다른 시간으로 보충될 것이다. 다른 시간이라니. 그것은 떠올릴 수는 있지만 감촉할 수 없는 시간이다.
시간은 음향에너지가 제로 상태로 향하는 픽션 입자라고 부네는 쓴 적이 있다. 그렇게 쓰자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들이 잠시나마 매듭을 푸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풀어진 매듭이 저절로 다시 매듭을 묶어 영원히 풀리지 않게 돼버렸다. 매듭과 함께 투명한 언어의 목이 조여진 것만 같았다.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이라는 애초에 불투명한 언어를 투명한 언어로 고정시켜 놓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까지 그래 온 것처럼 불투명한 언어의 구멍을 멀리서 가까이서 동시에 들여다보고 구멍의 위상적 크기를 좀 더 넓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위상적 크기가 넓어지면서 퍼져 나가는 소리가 있다. 그러니까 계속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변화시키는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간섭된 소리언어의 파동과 함께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이 반고리관 튜브 형태를 만들 때까지.
우주 리듬을 놓친 자율신경계의 춤 속에서 부네의 허옇게 센 머리카락이 다차원의 방향으로 정전기를 일으킨다.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가리키는 모든 방향으로 의심 없이 기어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돌아와요.
파스칼은 자신의 융털성대가 만드는 목소리가 찌그러진 음파로 변환 전달되고 그것이 부네의 마지막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계속 같은 뇌파언어를 모듈을 통해 보내고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돌아와요.
파스칼의 소리 없는 뇌파언어가 부네의 의식을 거쳐 되들려오지 않는다. 파스칼이 해독할 수 없는 부네의 주파수는 도착하지 않고 있다. 부네의 주파수가 도착해도 부네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부네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이곳은 아닐 것이다. 지구를 뒤덮은 분홍빛 전자 스모그를 뚫고 떨어질 수는 있어도 다시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부네가 떨어진 전자구름의 토포스포지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파스칼은 부네의 육체물질이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물질의 윤기와 주름이 녹아든 피부소리 입자들은 저감도 주파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자신이 예측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부네를 지켜주는 광자보호막 드레스의 열 효율성이 급속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드레스에 새겨지는 진동 데이터 수치 역시 어떤 수식에도 적용할 수 없는 오류의 숫자들로만 떠다니다 자동소멸 될 것이다. 부네의 몸이 점점 바닥으로 무너지고 있다. 부네가 마지막으로 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지상의 깊은 곳, 음향의 메마른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다. 조금 더 강한 중력을. 부네는 자그맣게 몸을 웅크린다. 뾰족하게 멍든 사과에서 하나의 원형사각형 멍 자국이 된다. 안쪽 귀에 가득 찼던 소리들이 노란 실들이 엉킨 액체가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이제 보이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언제부터 조약돌이 눈앞에 있었을까. 조약돌은 이제 막 시간의 구멍을 뚫고 떨어졌을 것이다. 역시 그 시간은 부네가 감촉할 수 없는 다른 시간일 것이다. 저 조약돌이 내 삶의 마지막 한 겹일지도 모른다. 부네는 손을 뻗어 눈앞에서 빛나고 있는 회갈색 조약돌을 잡으려 한다. 조약돌이 부네의 손을 피해 구른다.
조약돌이 웃고 있네.
부네는 눈앞에서 끼를 부리고 있는 작은 조약돌을 자신이 잡아야 할 마지막 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안간힘으로 몸을 끌어 팔을 뻗어 보지만 조약돌은 아슬아슬하게 부네의 손길을 피하며 달아나고 있다.
웃다가 입이 찢어져도 모를 조약돌이네.
어쩌면 저 조약돌이 굴러가면서 웃는 소리가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약돌이여, 너의 이름은 ‘흐느끼는무늬속삭임’이다. 조약돌은 부네가 지어 준 이름의 옷을 벗으려는 듯 몸을 바닥에 몇 번 튕겨 본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어.
너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만 알고 있어.
부네는 자신이 웃고 있다고 생각하면 웃어 보였다. 무엇을 위한 웃음인가. 우주 스케이팅의 마지막 트랙을 돌고 있는 의식의 카트리지가 다차원의 표면을 긁어내며 만들어내는 가장 투명한 색채슬픔의 웃음이다. 부네의 살점은 녹아 떨어져 나가고 뼈는 부서진다.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부네의 잔해물질이 흩어진다. 남은 것은 부네의 몸을 감싸고 있던 찢어진 광자보호막 드레스와 부네의 웃음소리. 그리고 구르기를 멈춘 채 웃음소리의 입자가 일으키는 소규모 파동을 지켜보고 있는 조약돌이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어.
너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모르고 있어.
파스칼은 부네와 연결된 모듈 스위치를 끈다. 파스칼의 머릿속 송과선 수증기는 엉킴점에서 멈춘다. 머릿속은 흩어진 수증기로 뜨겁지만 파스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온이 많이 차가워졌음을 인지한다. 춥다. 부네가 남겨 준 보풀이 잔뜩 일어난 숄을 몸에 걸친다. 춥다. 이제 추위를 인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파스칼은 테이블에 놓인 크롬 달걀을 집어 든다. 한 손으로 두 조각을 내 깨려고 시도한다. 와그작 하고 달걀 껍데기가 으깨져 내용물이 테이블에 쏟아진다. 실패이다. 손에 남은 껍데기를 내용물과 떨어진 껍데기의 잔해들에 갖다 대자 다시 원래의 크롬 달걀이 된다. 파스칼은 다시 한 번 한 손으로 크롬 달걀을 두 조각으로 깨려고 한다. 역시 달걀 껍데기가 으깨져 테이블에 떨어진다. 이 크롬 달걀을 한 손으로 깰 수 있어요? 처음 연구실에서 만났을 때 부네가 한 말이었다. 어디선가 으깨진 달걀 껍데기 같은 부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고 파스칼은 감지해야 하지만 웃음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부네가 남긴 웃음소리 입자는 ‘흐느끼는무늬속삭임주파수’를 만들어 다른 은하계에 멈춰 있는 지구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 폐기된 지구 시간으로 다시 11932년. 목에 찢어진 광자보호막 드레스를 둘둘 감고 있는 백남준이 깨어난 자의 방식으로 31/197분 음표 안테나를 들고 있고, 정수리의 홈에 한 방울의 빗물이 고여 있는 프랑시스 퐁주가 다시 깨어난 자의 방식으로 조약돌을 위로 던졌다가 떨어진 위치로 가 조약돌을 주워 다시 위로 던졌다가 떨어진 위치로 걸어갔다. 걸음보다 눈빛이 먼저 도착해 조약돌을 반짝이게 했다. 조약돌의 반짝임 때문에 주파수의 교란이 일어난다고 생각한 백남준이 조약돌을 맞출 수 있는 유효 각도와 사정거리를 계산한 뒤 음표 안테나를 던지려는 순간 프랑시스 퐁주가 조약돌을 집어 다시 위로 던졌다. 조약돌은 위로 올라갔고 반짝임만 남았다. 반짝임의 위치에 백남준이 음표 안테나를 꽂기 위해 걸어가고, 프랑시스 퐁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조약돌은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다. 분홍빛 전자 스모그 속으로 조약돌이 사라진다.
맹목적으로 완전히 이해가 가능한 장면 속에서 언젠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조약돌이 위로 올라가며 만든 수직적 궤적을 뚫고 전기 올빼미 장존삽이 날아간다. 자신이 왜 여기로 날아들었는지 모르는 전기 올빼미 장존삽은 ‘흐느끼는무늬속삭임주파수’의 망에 걸려 날개를 털며 피규어피규어 소리친다. 그 소리가 전기 올빼미 장존삽이 날아온 궤도를 거슬러 방사형으로 퍼진다. 퍼지면서 빛과 어둠의 리듬을 얻어 음악이 된다. 음악이 두 번 정도 휘어진 공간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면 그 음악은 우리가 걸어가는 오솔길까지 들려오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우리의 종족들은 어떤 외형을 갖고 있게 될까?
계속 걷고 있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물음표를 달아 주고 기억증폭장치를 통과한 전기 메아리를 따라간다. 전기 메아리는 반투명한 영상의 레이어를 쌓아올린다. 나는 너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주의 기압과 음파에 적응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얼굴의 표피 안으로 두루마리 악보처럼 조금씩 말려 들어간 귀는 보이지 않는 내부 기관이 되었을 수도 있어. 영원한 밤의 은하계 위에 설치된 가변적 인공태양 아래 살아가던 어느 날. 청각실인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의 머리를 무릎에 안은 채 옆얼굴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이렇게 말하는 우리의 자손도 있을 거야. 옛날 사람들은 여기에 저마다 다른 모양의 바깥귀가 돌출되어 있었고, 그것을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토성의 고리를 따라 미끄러지는 우주 스케이팅 소리가 들려온다고 믿었단다.
나의 이야기는 자주 끊겼고, 그럴 때마다 너는 오솔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으며 음악의 정지 신호 같은 소리를 만들었다.
전기 올빼미의 이름이 장존삽이야?
응, 장존삽.
무슨 이름이 그래?
이름이 그래.
납과 납덩이 같은 우리의 대화가 오솔길을 음악의 반대편으로 구부러지게 만들었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언어입자들의 즉흥연주 속에서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가닿아 있는 우리의 눈빛!
눈빛을 확인할 의식투영 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먼 시간을 돌아 여기 다른 가까운 곳에 바짝 다가온 거야?
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네가 말하지 않는 너의 이야기는 잠재적 음향으로 미시 우주의 가변적 순환 속을 떠돌며 음악적 상황을 만들고, 사운드에세이를 찾기 위한 모험을 계속하게 한다.
불투명한 언어가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의 변곡점들.
우리가 쉽게 시린침묵이라고 부르는 수동적 소리각성 상태.
내면의 색채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공동의 아픔을 음악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아득한 곳.
까마득한 곳.
까먹은 곳.
음악의 반대편은 가까운 곳에서 점점 멀어지고 멀어져서 다시 가까워지는 음악의 반대편.
소리가 공동의 소요 상태를 꿈꾸는 곳에서 비가시성의 거리를 좁히면서 넓히는 차원분열도형의 음악언어들.
우리가 음악과 같아지는 이야기를 상상할 때 우리가 상상한 것은 우리가 상상한 것이 맞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우리를 상상하는 대상이 상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그것이 그것이지 않게 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이제 막 소멸한 다른 은하계의 ‘흐느끼는무늬속삭임주파수’를 감지하며 피규어피규어 울고 있는 전기 올빼미 장존삽을 위한 반음 빠른 장송곡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세이렌 중 가장 아름답고 변덕스러운 자매의 뼈로 이루어진 크툴루의 덧니 계곡 사이로 흘러나오는 다차원 음향의 냄새에 취해 양자 볼레로를 출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엑토플라즘 같은 지구의 음향 인플레이션 속에서.
도착한 뒤 바로 떠났던 사람들.
미래의 조상이 흩뿌려 놓은 우주의 정념이 이끄는 대로.
우리가 무엇을 읽을 때 무엇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서사평형 상태를 무너뜨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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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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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 관리자
- 2025-06-01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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