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
- 작성일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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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
우다영
노란 나무 벽과 바닥을 가로지는 몇 줄기 빛. 나는 따뜻하고 밝은 곳에서 그늘로, 고요한 어둠 속에서 다시 빛이 있는 쪽으로 걷는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나의 행로에도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곧고 선명한 줄무늬가 뒤섞이거나 훼손되지 않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면서. 부드러운 그물처럼 촘촘하게 몸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언제나 빛과 어둠이라는 놀라운 진실에 서서히 무감해지면서. 어쩌면 이것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이고, 나는 이 순간이 내가 살아갈 삶 전반을 의미하며 작동시키는 신의 중요한 계시가 아닐까 종종 생각했다.
나는 이제 그 장면이 다섯 살 내지 여섯 살의 기억이며 당시 부모님이 자주 방문하던 한 이층 가옥의 넓은 거실 풍경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 거실에서 여자들은 바닥에 나무 도마와 커다란 쟁반을 놓고 여러 사람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식사를 준비했다. 신문지에 싸인 파와 물기를 털어낸 통통한 양파에서 나던 향긋하고 매운 냄새. 수북이 쌓인 그것들을 도마 위에 올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다듬는 소리. 국에 넣을 고기를 썰면 분리되어 도마에 고이던 선홍색 피와 유선형 식칼의 물결무늬를 따라 묻어 나오던 크림색 지방.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엄마는 "위험해." 하고 주의를 주며 식재료로 쓰기 위해 얇게 썰어 둔 배나 조그맣게 뜯어낸 호박떡을 입에 넣어주었다. 여자들은 손에 칼을 쥔 채 웃었다. 그 집에 온 사람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갓 지은 음식을 나누어 먹은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집이 일종의 교당이며 거기서 지금으로서는 정체를 알 길이 없는 종교집회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집의 가장 깊숙한 방에서 어른들이 향초와 휘장, 조각상, 장신구로 꾸며진 벽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드리던 모습이나, 자그마한 가죽 책을 손에 들고 읽으며 노래 부르던 모습을, 그 모든 과정에 경건한 태도로 임하던 부모님 곁에서 내가 칭얼거리며 다리에 몸을 기대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나는 늦은 밤 돌아온 아버지가 뜨거운 손을 내 이마에 짚고 중얼중얼 입말로 외던 간절한 기도나, 집에 든 강도에게 값나가는 물건들의 위치를 알려준 뒤 어린 나를 등 뒤에 숨기고 절박하게 반복하던 어머니의 작은 손짓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이 사람들끼리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신앙의 형태라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던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오랜 세월 동안 그 일에 별다른 신경을 기울인 적이 없으며 무의식의 발로일지라도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부모님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한동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맥락으로 유추했을 때, 그 종교는 종교라기보다 신화에서 유래한 원시신앙에 가까웠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랜 세월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전파되며 추가되고 변형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고대 기독교와 유럽의 토속신화, 중국 신화, 일본 불교, 도교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명백해 보였다. 신의 강림이나 재림을 염원하는 사이비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안도감을 주었다. 기도를 주관하던 인상 좋은 그 집 주인 부부가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부모님은 그 집에 3년 정도 방문하다가 발길을 끊었다. 그곳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과는 여전히 교우했지만 그들과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때의 일을 언급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그 집에 모였던 사람들이 대개 부부 단위의 평범한 소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병이나 죽음 때문에 슬픔에 빠진 사람들. 혹은 해결방법을 모르는 문제에 직면하거나 과거의 괴로운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모두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평범한 일상의 순간 속에서 축복을 찾아내는 방법, 신이 보내는 섬세한 위로의 신호를 놓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그 집에 온 아이들은 놀이방으로 마련된 좁은 다락방에서 함께 놀았다. 내 또래의 유담은 선천적으로 두 다리와 발목이 안쪽으로 휘는 기형이 있었다. 유담의 다리는 자랄수록 뼈가 나선형을 그리며 안에서 바깥으로, 다시 바깥에서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 애가 두 팔로 바닥을 짚고 기어가면 뭍에 나온 인어 꼬리처럼 축 늘어진 다리가 천천히 앞으로 끌려갔다. 물속에서의 필요와 기능을 잃고 퇴화할 운명만을 기다리듯이. 우리는 유담을 위해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했다. 구슬치기가 특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손가락 사이에 작고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끼우고 햇빛에 비춰 보면 살짝 꼬인 채 영원히 얼어버린 색색의 깃털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작은 새의 깃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손가락만 한 작은 새들이 죽기 위해 날아가는 얼음의 나라가 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정말 내가 상상한 것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읽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때,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운 유담이 몸의 관절들을 이상한 방향으로 꺾으며 괴로워할 때, 내가 그것이 유리구슬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유담이 매끄러운 유리구슬을 입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것을 삼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유담아 어서 뱉어, 어서 뱉어 소리쳤지만 정작 입 밖으로 흘러나온 것은 공포에 질린 울음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울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두려움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두려운지도 모른 채 두려움을 느꼈다. 누구든 붙잡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에 빠진 사람처럼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때 내 손에 은령의 손이 잡혔다.
은령은 울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유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조금도 울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그 애를, 아니 그것을, 아니 그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가만한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 왜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무서웠지만 잡은 은령의 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그 손은 그때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내 손에서는 더운 땀이 흘러내렸다.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은령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은령. 내 손을 뿌리치지 않지만 내 공포에 공감하지 않는 은령. 나는 지금도 그 순간 이전의 은령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은령이 말했다.
"뭐라고 말을 해."
은령은 내 손을 잡아끌고 유담에게 다가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은령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어코 투명한 거품이 맺힌 유담의 입술에 가까이 귀를 기울이고 그 애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소리와 입 모양을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유담은 비틀린 손목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여기에 환한 것이……."
아래층에서 기도를 하던 어른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요란하게 나무 계단을 밟으며 올라왔다. 그들이 얼어붙은 물고기처럼 뻣뻣해진 유담의 몸을 안고 다락방을 나갈 때까지, 놀란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고 주저앉듯 달려들어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자신의 품으로 와락 끌어안을 때까지 나는 은령의 손을 잡고 있었다. 최초의 수수께끼를 발견한 사람처럼 골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은령. 그 애의 작고 가벼운 손을 놓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은령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이런 기억도, 은령에 대한 생각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강렬한 경험이 분명했지만 아무 의미도 획득하지 못하고 어두운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다가 은령으로 인해 주목하고 호명하게 된 기억이었다. 그러나 열일곱 살 봄에 은령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마치 오랫동안 그 애를 그리워한 사람처럼 한눈에 은령을 알아봤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시간에 의해 왜곡된 기억.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리움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적이 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동질의 공포였다.
은령은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학생 대표로 선서를 했다. 은령이 선서, 하고 외친 뒤에 그것을 복창하는 신입생들의 목소리가 출렁이는 파도처럼 등 뒤에서 밀려왔다. 손가락을 가지런하게 붙인 은령의 손바닥이 의미가 있는 하얀 돌처럼 빛나고 있었다. 은령은 당당한 목소리로 선서를 마치고 겸손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다. 강당 한구석에서 아는 얼굴들을 발견했는지 잠시 친밀한 눈짓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미소 지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은령이 정말이지 보통 사람처럼 보여서 은령이 아닌가 싶다가도, 이미 직감은 그 애가 은령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기억 속 어디에도 웃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은령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은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복도나 운동장에서 마주친 은령은 늘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애들의 눈을 마주 보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은령을 찾으며 은령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은령에 대한 이야기나 소식을 전하는 모르는 애들의 말소리, 대개는 긍정적이고 선망하는 시선을 담은 일련의 태도들을 나는 기묘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실제로 내가 아는 몇몇 남자애들은 은령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은령과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간 적이 몇 번 있다. 처음은 등굣길에 교문에서였다. 학생들의 복장과 용모를 검사하던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워 타이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주의를 주었을 때, 은령은 팔에 노란색 선도 완장을 차고 벌점이 적용된 학생들의 이름을 기록부에 적고 있었다. 은령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명찰에 있는 이름과 벌점을 간단하게 기록했다. 또 한 번은 내가 테니스공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옮기다가 실수로 떨어트렸을 때, 연두색 개구리 떼처럼 운동장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공들을 친절하게 주워준 여자애들 사이에 은령이 있었다. 나는 은령이 흙 묻은 테니스공을 건넬 때 용기를 내어 "고마워." 하고 인사해 보았는데, 은령은 대수롭지 않은 시선으로 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그대로 등을 돌리고 친구들에게 가버렸다.
그 후로도 은령과 눈이 마주치거나 짧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은령은 정말 나를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나는 점점 더 자신감이 붙어 대담하게 은령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그마저도 3학년이 되자 정말 내가 은령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쯤 별거와 화해를 반복하던 부모님이 완전히 갈라섰기 때문에 어머니와 둘이 살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인생의 아주 미미한 변곡점에 불과했지만, 그때의 나에겐 하늘의 일부가 무너지고 땅 곳곳에 허방이 뚫린 것처럼 믿고 있던 세상이 불분명한 세계로 변하는 체험이었다. 외부로 향하는 분노와 내부로 파고드는 고독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그런 어느 날, 은령은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불렀다.
"13번 문제 풀었어?"
우리는 한 대학교에서 주최한 과학 경시대회를 치르고 대기실로 지정된 로비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령과 나를 포함해 학교 대표로 나온 학생은 다섯 명이었다. 이전에도 올림피아드나 백일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은령을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고 그 애가 바로 옆 소파에 앉아 있는 것도 눈치재지 못했다. 은령은 가죽 소파 팔걸이의 온도를 재듯 손바닥을 올려 두고 있었다.
"물고기와 개구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서술형 문제 말이야."
나는 그것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풀었다고 대답했다. 3억 7500만 년 전 데본기 후반에 물속에 살던 어류가 뭍으로 나와 양서류가 되었다고. 그것을 증명할 만한 첫 번째 근거로 물고기와 개구리 사이의 중간개체종 화석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는 점과, 두 번째 근거로 회색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으며 움직이는 사물만 인식하는 개구리의 눈을 들었다고. 그런 것들을 침착하게 말하며 놀란 마음을 숨겼다.
"우리는 답이 비슷하네."
은령이 말했다.
"애초에 물속에서 굴절하는 빛을 보도록 진화해 온 물고기 눈은 공기를 매개로 깨끗하게 퍼지는 빛을 보기에 적합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래서 개구리 눈은 형편없는 시력이 됐다고 썼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령은 잠시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나는 은령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게 아니라 내 동공과 안구와 그 너머에 자리 잡은 복잡하게 얽힌 시신경들을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인간의 눈도 물속에서 왔대."
은령이 설명했다.
"우리가 아직 물고기일 때, 눈 속의 액체가 빛의 굴절 효과를 해결해 줬을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육상동물로 살아가며 건조한 공기에 적응해야 했고, 우리는 다시 진화를 거듭했지만 아직도 물속에서 정교하게 진화해 온 3억 7500만 년 전 물고기보다 나쁜 시력을 가지고 있대."
"정말?"
나는 긴장을 풀어 보려고 조금 웃었다. 하지만 은령은 웃지 않았다.
"그러니까 진화는 차근차근 최상의 점을 향해 발전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때그때 처한 환경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라는 거야. 생물학자가 종의 기원을 추적해 나가는 건 그 종이 지나온 역사와 순간들, 선택들, 그때그때의 우연을 담은 미로이자 지도를 살펴보는 일이라는 거지. 한번 선택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내정된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미래. 그게 모든 종의 운명이라는 게 재밌지 않아?"
"재밌네."
"하지만 네가 시험지에 추가로 적었어야 할 문장은 그게 아니야."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령을 쳐다봤다.
"그러한 학설이, 진화론의 입장에서, 주장되고 있다."
은령은 그제야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이 대학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문제야. 사람들은 서로 믿고 싶은 게 다르니까."
은령은 내 쪽으로 살짝 틀고 있던 몸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 시선을 내리깐 뒤 정면의 둥근 유리 탁자를 바라봤다. 더 이상 나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하지만 잠시 후에 은령은 내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둘 다 종교에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날 입상한 사람은 은령뿐이었다. 그 후로 은령은 학교에서 나와 마주치면 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나는 그 인사를 받아 주면서도 혼란스러운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은령이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지난 2년간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겼다가 들킨 것처럼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은령이 어떤 마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사실은 머릿속이 온통 은령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마치 물이나 바람이 있는 조용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에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연상 같은 것이었다. 나는 혼자서 점심을 우물거리다가도 은령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항상 그 애를 장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했다. 그 애들처럼 은령에게 가까이 다가가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무엇이든 질문하고 그런 다음 은령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는데,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 은령과 나 사이에 일종의 비밀이 생겼으며, 없어진 줄 알았지만 존재한다는 걸 확인한 서로를 알고 있는 십여 년의 시간이 느닷없이 강렬한 감정을 불러온 것 같았다. 은령도 그런 것들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은령에게 물어본 것은 엉뚱한 것이었다.
"그 신이 어떤 신이었는지 기억나? 그 종교 말이야."
은령은 수업에 필요한 유인물들을 받아 교무실에서 나오던 참이었고 나는 우연하게 그 앞을 서성거리다가 은령을 봤다. 은령이 나를 보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애를 따라 빙글빙글 도는 중앙계단을 올라갔다.
은령이 말했다.
"신이나 종교 이름은 나도 몰라. 이름이야 있었겠지만 어른들이 그런 단어를 잘 쓰지도 않았고. 성실하게 기도만 했잖아. 기억나지?"
나는 사실대로 거의 기억나는 게 없다고 털어놓았다. 은령은 재미있어했다.
"나는 너랑 교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실은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도록 옛날이야기 같은 형태로 만든 것이었지만 반복해서 들었잖아. 찬송으로도 부르고."
"내가 정말 그런 걸 다 잊었다고?"
아연해진 내가 물었다. 그 종교에 대해 진짜 궁금증이 일었다.
"너는 정말 쉽게 잊는구나."
그건 감탄도 타박도 아닌 말투였다. 너는 그렇구나 하는 말처럼 들렸다.
계단을 오르는 나와 은령 곁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이 계속 지나갔다. 가끔 은령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과 은령은 간단하게 인사했다. 그 애들이 지나가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초에 거인이 있었고, 거의 영원한 시간 동안 홀로 존재하던 거인의 눈에서 어느 날 신이 태어나. 눈이 멀어버린 거인은 본래 가지고 있던 특별한 힘과 능력을 잃어버리지. 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력해진 거인의 따뜻한 내장을 꺼내 그것으로 산과 바다를 만들고, 진흙과 공기를 분리하고, 다시 진흙과 공기를 한데 빚어 세상 만물을 창조해. 그러고는 눈과 심장을 모두 잃은 거인에게 땅과 하늘 사이에 서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영원히 짊어지는 형벌을 내린 거야."
마침내 4층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그대로 서서 숨을 골랐다. 은령은 두 손에 반듯하게 유인물을 든 채로, 복도 창문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린 채로 말했다.
"이게 그 종교의 창세기이고, 너는 우리들 중 유일하게 거인이 무슨 죄를 지은 거냐고 질문했잖아."
며칠 후에 나는 은령의 교실을 찾아가 그 종교에 대해 알고 싶고 그와 관련된 단서들을 모으고 싶다고 말하며 그런 일을 가끔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교실 문턱에 선 은령은 잠시 고개를 기울이고 생각해 보더니 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시작하기 전까지 15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은령은 정말 매일 그 시간을 온전히 나와 함께 보냈다. 우리는 텅 빈 미술실에서 만나 그 종교에 대해 새롭게 떠오른 정보를 교환하고 가정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맥락을 이야기했다. 은령이 미술실 열쇠를 가지고 있는 미술부 부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화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거의 전무했고 당시에 역시 너무 어렸던 은령이 알고 있는 내용도 한정적이었다. '눈에서 태어난 신'이나, '세상을 짊어진 거인'을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비슷비슷한 신화나 동화가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은령도 나도 어쩐지 부모님에게 그때 일을 여쭤 보자는 쉬운 방법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은령과 대화를 나누며 얼떨결에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은령은 별다른 질문이나 위로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은령에게 두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은령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직 해가 짧은 이른 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시간이면 미술실 안으로 노을이 들어왔다. 팔이 없거나 코와 귀가 훼손된 석고상들, 개수대에서 물감이 덜 씻긴 채 말라 가는 팔레트들, 동그랗고 까만 뚜껑의 작은 물감 통들, 하얀 회벽에 거꾸로 매달린 여러 굵기의 붓들 위로 그 시간 고유의 붉고 투명한 빛이 덮였다. 그건 빛이라기보다 잠시 드리웠다가 사라지는 얇은 그림자 같았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색하게 은령의 눈치를 보았는데, 은령은 아무런 감동 없는 표정으로 그런 빛깔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색을 볼 줄 모르는 눈동자처럼 멀고 쓸쓸하게. 홀로 직사각형 모양의 넓은 육인용 책상 위에 걸터앉아 허공에 늘어뜨린 다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그렇게 '어디에도 없는 신'을 찾는 오후가 하루하루 이어졌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은령이 그 일에 강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싫어한다거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심 기쁘게 여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은령이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동안 마음이 들뜬 채로 지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은령은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유심히 지켜본 은령은 믿기 힘들 정도로 친구가 많았다. 3년째 함께 등교하는 동네친구들이 있었고, 쉬는 시간엔 항상 누군가의 비밀이나 고민을 들어주었으며, 점심을 먹는 친구들도 따로 있었다. 미술부의 남자 아이들과도 자주 어울렸고, 야자 때는 또 다른 친구들과 가까이 앉아 공부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그 애들과 함께였다. 은령의 모든 일과 속에는 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들끓었는데, 나는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은령은 힘들거나 귀찮은 기색 없이 모두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은령이 나를 어떤 울타리 너머에 우두커니 세워 두고 초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령의 친구들은 저마다의 문제를 세상의 중심에 가져다 놓고 심각해져 있는 애들이었다. 항상 슬픔과 분노와 기쁨에 빠져 있었는데,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두 타인에게 해로웠다. 은령은 친구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 내가 보기에 은령이라면 전혀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을 시시한 문제들을 그 애들의 마음과 같이 무겁게 생각해 주었고, 그 애들보다 한 발 먼저 현명한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그런 일을 하는 데에 자신의 시간을 다 내주었다. 해결할 수 없는 골치 아픈 고민도, 쓸데없는 한심한 걱정도 끈기 있게 들어주었다. 그 애들이 다투거나 갈등에 빠지면 나서서 부드럽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중재하기도 했다.
은령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재능이 있었고, 설사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는 사람의 마음도 간파할 수 있었으며,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달라질 마음까지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 정보들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읽어냈다. 언제나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사람을 대하고 있다고, 은령은 내게 말해 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그 모든 걸 생각하고 행동해?"
"그냥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야."
은령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거기에 모든 정답이 들어 있다는 듯이.
"과정을 분절해서 설명하니까 어려운 일처럼 들리겠지만, 직감이나 예감이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해. 어떤 상황을 접했을 때 감각기관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뇌가 그 정보를 기존의 지식과 조합해 순식간에 답을 내는데, 사람의 의식은 모든 과정을 인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결론만을 기억하는 거야. 아 불길해, 아 왠지 이쪽일 것 같아, 아 이 사람한테 자꾸 끌려, 하면서. 말하자면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이라고 믿어 왔던 부분이 실은 그저 뇌의 연산 작용 끝에 마련된 텅 빈 공간일 수 있다는 말이야. 나는 감정보다 이성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아마 다른 사람보다 힘들이지 않고도 마음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단지 그것뿐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말은, 왜 그런 일을 하냐는 거야. 그건 네 일이 아니잖아."
"아아."
은령은 그것 역시 아주 쉬운 문제라는 듯이 웃었다.
"도울 이유가 있어서 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돕지 않을 이유가 있다면 돕지 않는다고 반대로 생각해 봐."
은령은 미술실 한쪽에 놓인 검은색 유화로 그리다 만 캔버스를 가리켰다.
"저기서 색을 볼지 여백을 볼지 스스로 결정하면 돼. 그럼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은령의 무한한 호의와 누구에게나 공평한 태도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며, 오히려 그것은 만인에 대한 박애라기보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정 없이 오직 머리로 이해하는 행위는 공감이 아니라고, 게임이나 퍼즐의 공략법을 찾듯이 사람들을 분석하고 규정하는 행위는 기만이라고,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도울 수 있는 건 마음을 기계처럼 쓰기 때문이라고, 그것이 '인간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느껴지는 작은 위화감으로만 간직하고 있었고, 은령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은령 안에 존재하는 분명한 논리와 규율을, 그것이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존중하고 있었다. 은령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균형감에 감탄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은령의 인생에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는 미술실 창문을 모두 열어 두고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해가 길어지면서 더 이상 마법 같은 순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사방에서 요란하게 밀려드는 매미소리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며 우리를 전혀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갔다. 은령과 나는 항상 앉게 된 바깥이 잘 내다보이는 창가 쪽 책상에 걸터앉아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애들을 구경했다. 그러면서 각자 가져온 블루베리가 든 머핀이나 달콤한 사과 소다를 나눠 마셨다. 창가 가까이 붙은 모과나무 가지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은령도 나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쯤 우리는 더 이상 그 종교에 대해 새롭게 알아낸 것이 없었고 그냥 서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은령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지만 등록금 부담이 없는 교대로 진학할 생각이라는 것을 들었다. 물리교육학과나 생물교육학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그러면서 은령은 미술실 한쪽에 마련된 철제 캐비닛에서 직접 그린 그림들을 가지고 와 내게 보여줬다. 그 그림들은 풍경화도 인물화도 아니었다. 원색의 물감으로 그린 선과 도형들이었는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패턴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무정형한 연속체처럼 보였다. 보는 방향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나는 어째서인지 은령을 좋아하는 우리 반 남자애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 애가 언제부터 은령을 좋아하게 됐는지, 그 애가 얼마나 웃기는 애인지, 오늘은 어떤 농담을 했는지, 어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지 따위를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은령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한 번도 그 애 이름을 부르거나,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무언가를 물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애 이야기를 꺼내면 은령은 손으로 턱을 괴고 내가 이야기를 마치길 조용히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은령의 태도에서 내가 멀리 밀쳐진 것 같은 잔잔한 상처를 받았다. 물론 은령에게 내색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 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아."
어느 날 대화를 나누다가 은령이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오래전에 잊어버린 신을 찾고 있었지만 둘 다 신앙심이 없었고 종교도 없었다. 나는 그동안 조사를 거듭하며 대표적인 종교들의 교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어떤 종교든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형태의 종교가 형성된 시대적 문화적 배경과 각 종교 간의 차이와 유사성, 상호관계 등을 분석학적으로 들여다보는 데에는 흥미가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설사 그 종교에 오랫동안 몸담는다고 해도 마음속에서 진짜 신앙심이라고 할 만한 믿음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내가 평생 아무런 종교 없이 살아갈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했다. 그런 생각을 말하자 은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부모님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어. 신앙이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거라고. 아주 나쁜 마음을 먹었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줄 거라고. 나는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하는 편인데, 사람의 마음속에 변하지 않는 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것이 선명하고 강력하게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는 종교적 교리라면 효과적이겠지. 종교를 선택하는 게 가장 편리한 방법일 거야. 하지만 나는 나의 윤리를 계속 구체화하는 중이고, 윤리에 대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 윤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종교가 진정한 '선'을 제시해 준다면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할 거라고 믿고 있어. 나는 부모님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계속 아이를 낳는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아이를 사랑하지도 않으니까. 교리를 지켰으니 도덕을 지켰다고 믿고 있지만 그건 분명 부도덕한 일이야."
나는 그때 은령의 어머니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뱃속의 아이까지 태어나면 은령의 동생은 이제 다섯 명이었다.
"사람들은 왜 도덕적으로 살아갈까. 보편적 도덕에서 벗어나면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받으니까? 그런 계산적인 판단으로는 완벽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어. 그럼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는 인간으로 진화하며 본능적으로 부도덕한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거라면 어떨까? 도덕적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종 생존에 더 유리했을 테니까. 생각하지 않아도 직감으로 알 수 있도록 몸과 뇌에 새겨진 메커니즘이 되었다면. 그건 수억 년 동안 인간이 최선이라고 여겨 선택해 온 결과가 결국 '선'이라는 걸 의미해. 사람이 당장의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작은 선의가 종 운명에 더 유리한 작용을 한다는 거야. 그건 마치 수억 번을 계산한 슈퍼컴퓨터의 답처럼 오차가 없어 보이고, 나는 종교보다 진화에 대한 신뢰를 품고 '선'을 지지하고 있어."
은령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내 표정을 살피고 태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내 마음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그때 어떤 표정으로 은령을 보고 있었나. 은령에게 느꼈던 알 수 없는 적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좀 섬뜩한데."
어느새 내가 말하고 있었다.
"네 말대로 사람들이 도덕을 본능으로 진화해 왔다면, 너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잖아. 본능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이성으로 판단하고 있잖아. 어떻게 너의 이성이 항상 '선'일 거라고 자신할 수 있지?"
나는 스스로 말해 놓고서야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심의 정체를 알았다.
"너는 그 애가 죽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잖아."
은령과 내가 유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유담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은령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악'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래 맞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너와도 다르고."
은령은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이 없어도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어. 슬픔을 이해하고 분노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어. 물론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길 테지만, 고지능의 이기심은 선량함을 만들 거라고 믿고 있어. 나는 내가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선과 악은 불변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되는 것이라고, 윤리는 정해진 강령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선과 악을 분별해 내는 거울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어. 지금까지 윤리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늘 신중했고,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실수하지 않을 거야."
은령의 말은 어떤 맹세나 애절한 구애처럼 들렸다. 시간이 흐른 뒤 이따금 이 순간의 은령을 떠올리면, 은령이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고백을 나에게 하고 있다는 걸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네 말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지?"
내가 물었다.
"울고 있는 사람과 분노에 찬 사람을 똑똑한 머리로 이해하면 그만이라는 말을 하는 거야 그렇지?"
은령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네가 품고 있는 불안과 거부감을 이해할 수 있어.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사람을 구별해 내는 본능이 네 안에 있을 거고, 눈물이나 웃음 같은 감정의 제스처가 단서로 작용할 테니까. 그렇게 분리해 낸 사람을 멀리하는 게 항상 더 쉽고 안전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선'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고, 내가 도착한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너와 마찬가지로."
은령은 책상을 짚고 있던 내 손등 위로 가볍게 손을 겹쳤다. 어릴 적 내가 두려움에 빠졌을 때 떨리는 손을 잡아 주던 작은 손처럼.
은령이 속삭이듯 말했다.
"모르겠어? 이것이 일반적이라는 믿음, 혹은 이것이 일반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진짜 '악'이야."
나는 그 순간에도 은령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일까? 본능이었을까? 나는 은령을 비난하고 금속같이 매끄러운 그 애의 내면에 상처를 남기고 싶었다.
"한 번의 실수."
내가 차갑게 말했다.
"보통 사람은 넘지 않는 선을 한순간 넘어버리는 한 번의 끔찍한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잠재성을 가진 사람을 위험으로 간주하는 거야."
나는 은령에게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에 실망한 줄도 모르는 채로. 내가 죽어서 영혼이 되었을 때, 나무 높이의 허공에 떠서 조금도 울지 않는 은령을 가만히 가만히 바라보는 상상을 하며.
"너는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
은령은 역시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 때문에 도리어 내가 상처를 받았다. 은령은 실패한 실험의 결과를 보는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은령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자 은령은 천천히 일어나 미술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후로 은령은 다시 예전처럼, 나를 한 번도 알고 지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지나쳐 갔다. 나는 은령에게 한 말들을 후회했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은령은 내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번 용기를 내 수돗가에 혼자 서 있는 은령에게 다가갔을 때, 은령은 정말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 너머 먼 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나는 내가 진짜 유령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어 손과 몸을 내려다봐야 했다. 어쩌면 은령과 함께한 시간들이 실재하는 일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함께 찾던 어디에도 없는 신처럼, 거인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보잘것없는 조각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업이 끝난 뒤 미술실에 가보면 굳게 닫힌 문에 무겁고 차가운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해들은 은령의 소식은 교대에 수시로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정한 인생으로 나아갔다는 것. 그 뒤로 은령은 학교에서 잘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내 삶으로 나아갔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 수력발전소에 취직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에서 살았다. 일이 끝나면 아주 좁은 투룸 아파트로 돌아와 TV를 작은 볼륨으로 틀어 두고 맥주를 마셨다. TV를 끄지 못하고 그대로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침 8시면 걸어서 발전소로 갔다. 댐의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걸었는데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자욱한 안개가 깔리는 곳이었다. 하얀 어둠 같은 안개 속에서 어느새 코앞까지 불쑥 다가온 사람을 마주치기도 했다. 회사 동료인 김 씨가 가끔 자전거를 타고 뒤에서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김 씨는 특유의 요란한 목소리로 인사한 뒤 자전거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서서 걸었다. "나는 이곳이 싫습니다. 안개가 웃음소리를 잡아먹습니다." "나는 댐이 싫습니다. 고여 있는 물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늘 괴상한 말투로 부정적인 말을 해서 회사 내에서도 묘하게 겉돌곤 했다. 나는 김 씨의 말에 "네." "그런가요." 하고 적당히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김없이 안개 속에서 나타난 김 씨의 얼굴이 은령의 얼굴로 보였다. 그건 아주 짧은 찰나의 착각이었지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김 씨의 얼굴을 계속 힐끔거렸다. 그날 김 씨는 별다른 말없이 옆구리에 자전거를 끼고 내 옆에서 걸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페달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나는 하루 종일 은령에 대해 생각했다. 당시 은령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왔다. 그 많던 친구들과 모두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은령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쯤 나는 어쩐지 평생 다시는 은령을 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떠올리곤 했다.
그날 대부분의 발전소 직원들이 퇴근한 뒤 당직이었던 김 씨가 댐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물속을 구경하듯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김 씨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됐다. 유서는 없었고 회사 자전거 주차장 한쪽에 김 씨의 자전거가 거의 2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몇 년 뒤에는 여자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은령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나는 생선 요리에서 가시를 발라내다가 마치 재채기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은령아." 하고 불렀다. 내가 낸 소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그즈음 나는 은령을 전혀 떠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결국 그것이 발단이 되어 여자 친구와 다투고 속초에 가려던 주말여행도 취소했다. 나는 주말 동안 집에 틀어박혀 라디오 여러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는 맥락 없는 노래들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일요일 저녁에 여자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속초에 산불이 났어.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어." 여자 친구는 두 팔로 나를 꽉 끌어안고 목과 등을 쓸어내렸다. "사람들이 죽었어. 우리가 죽을 뻔했는데……."
여자 친구와 이듬해 봄 결혼식을 올리고 곧 딸이 태어났다. 딸은 다섯 살 무렵에 소아 림프종에 걸려 고생했다. 목에 두툼한 종괴를 달고 온종일 기침을 하는 딸아이를 위해 외삼촌이 어린 앵무새를 선물했다. 앵무새가 사람 손을 탈 수 있도록 직접 윙컷을 해주었다. 나는 욕실에서 나오다가 날지 못하고 뒤뚱뒤뚱 방 안을 걸어 다니는 앵무새를 밟고 말았다. 앵무새의 꺾인 다리에서 이슬 같은 피가 흘러나왔다. 딸아이가 울면서 "어떡해요. 어떡해요." 하고 외쳤다. 피를 흘리는 새에게는 다가가지 못하고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때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 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나는 곧장 딸아이와 함께 동물병원에 가서 앵무새를 치료하고 데려와 열흘 동안 정성껏 보살폈다. 종이 상자에 따뜻한 수건을 깔고 새를 넣어 주었다. 그러곤 아침저녁으로 다진 소고기와 잘게 으깬 아몬드를 섞어서 부리 안으로 흘려주었다. 아이가 걱정하지 않도록 달래며 새가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도록 했다. 그런 것이 아이가 병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새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기운을 차리고 플라스틱 통에 넣어 준 물을 곧잘 먹으며 짹짹 울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작고 가벼운 몸을 늘어뜨리고 죽어 있었다. 딸은 상자 가장자리를 잡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죽어가는 새를 보며 질겁하던 딸은 이미 죽어버린 새에게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딸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가 죽인 거예요?" 어째서 그 순간 은령을 떠올렸을까?
세월이 꽤 흘러 내 나이 마흔쯤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은령이 내 삶에 찾아왔다. 이번에 은령은 분명한 실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라운지 바에서 혼자 위스키를 마시고 있을 때 예쁜 드레스를 입은 은령이 다가왔다.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나는 나이가 든 은령의 모습을 처음 보았지만 이번에도 단번에 은령임을 알아봤다. 그날 은령과 술을 마시며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처럼 여겼던 아내의 남동생이 사업자금을 빌려간 뒤 완전히 종적을 감춘 이야기, 아내와 별거중인 이야기, 몰래 만나고 있는 애인 이야기를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불가해한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의심스러우며, 어쩌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삶에 개입하는 신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해 전 수력발전소 시설정비 금액을 부풀려 횡령한 사실을 고백했다.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를 비난하거나 자리를 피해버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은령은 그러지 않았다. 바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다음날 술에 취해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그것이 술김에 본 헛것이나 꿈이었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생각이었는데, 당시에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없었고 거의 십여 년간 연이 끊어지다시피 한 상태였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걱정과 달리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어머니도 정정하셨다.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누구의 부고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은령을 떠올린 마지막 순간이었다. 은령의 그림자는 더 이상, 두 번 다시는 내 삶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은령의 이름과 은령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 어릴 적 꿈처럼 아득한 것이 되었고, 그러므로 은령이 내 앞으로 남긴 유산이 있으니 그것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장난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은령의 아들이었고, 그는 은령이 지난달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은령이 살던 집으로 초대되었다. 미심쩍은 마음을 품고도 나는 그 초대에 응했다. 어떤 함정에도 빠지지 않고, 어떤 속임수에도 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내 안에서 흐른 진물이 고치가 되고, 딱딱한 고목이 되고, 결국 무쇠처럼 단단한 바위가 되었던 일련의 과정을 떠올렸다. 내가 소중하게 여겼지만 한순간 나를 배반한 사람들, 평생 곁에서 서로의 인생을 뒤섞으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 믿었지만 이제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변하던 순간들, 이미 오래전에 변했지만 모르고 있다가 그래도 결국엔 그것을 깨닫게 되던 지겨운 경험들을 떠올렸다. 그 일들에 비하면 세상에 더 고약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집은 놀랍게도 내가 퇴직한 뒤 혼자서 쭉 살고 있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새벽 등산을 갈 때, 또 가끔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조용한 저수지로 야간 낚시를 떠날 때 은령이 사는 동네를 지나갔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은령과 내내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묘한 충격을 받았다.
적어 둔 주소로 차를 끌고 가 진입로에 들어서자 이층 벽돌집이 보였다. 어깨 높이의 낮은 담벼락에는 빨간 넝쿨장미가 촘촘하게 자라 있었고, 지붕은 햇볕을 따스하게 반사하는 주황색이었다. 내게 전화했던 은령의 아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20대라고 예상했던 목소리와 달리 그는 적어도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알고 보니 앞을 보지 못했다. 지팡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앞장 서 걸으며 이따금 뒤를 돌아봤다. 나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웃었다. 그는 나를 정원으로 안내하며 한쪽에 텃밭으로 가꾼 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붉은 고추와 상추, 어린 파, 반쯤 익은 토마토 같은 작물들이 구획에 따라 가지런한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것을 내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의 빛깔과 모양을 볼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집 안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놀랐다. 어른은 아들을 포함해 아홉 명이었고, 아이도 일곱이나 되었다. 내가 모두 은령의 가족들이냐고 묻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은령의 자식과 자손들이라고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입양하셨어요." "전부?" "네, 다 친자식이 아니에요. 결혼도 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들은 내가 온 것을 봤지만 자주 만난 적 있는 이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인사한 뒤 하던 일을 계속했다. 거실에는 종이와 크레파스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손에 크레파스를 옳게 쥐도록 바로잡아 주며 관심 있는 얼굴로 그림을 들여다보고 이따금 무엇을 그리는지 물어봐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도 찬찬히 훑어봤다. 은령을 닮았을 리 없는 얼굴들에서 희미해진 은령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다. 은령의 아들은 이제 그들이 모두 함께 살지는 않지만 오늘 나를 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은령의 오랜 친구에게 무엇이든, 얼마나 사소한 것이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은령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모두 함께 앉을 수 있는 식탁이 없었기 때문에 거실에 앉은뱅이 상 세 개를 놓아야 했다. 그 일은 은령의 세 아들들이 했다. 접시를 상으로 나르는 건 아이들의 일이었다. 그 애들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정확히 알고 움직였다. 식사는 파와 당근을 넣어 육수를 깔끔하게 낸 불고기전골과 텃밭에서 기른 쌈 채소였다. 케일과 로메인, 치커리가 고루 섞여 있는 쌈 채소가 접시마다 수북이 쌓여 있었고 사과와 토마토, 블루베리 같은 과일이 채소와 함께 놓였다. "우리는 이렇게 먹어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은령의 큰손녀가 맞은편에 앉아 말했다. 누구나 자기 접시로 가져갈 수 있는 삶은 달걀과 구운 호박도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계속 손을 뻗는 요크루트 볼도 있었다. 그 애들은 익숙하게 그것에 시리얼과 꿀을 넣어 맛있게 먹었다. 그밖에도 상에는 된장으로 간을 한 오이고추와 싱거운 마늘장아찌, 치자로 색을 낸 매실장아찌, 어리굴젓 같은 짠지 반찬들이 놓였다. 모두 은령이 만들어 둔 것이라고, 맛이 아주 좋다고 은령의 딸이 말했다. 큰손녀만큼이나 어려 보이는 그녀는 식사 내내 어린 아들이 턱에 흘린 음식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3년 전 열일곱 살 미혼모였던 그녀를 은령이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죽은 은령을 엄마라고 부르며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입맛엔 으깬 두부와 매운 고추로 만든 쌈장이 특히 맛있었다. 나는 식탐이 있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컵에 담긴 물은 차갑게 냉침한 보리차였다.
식사가 끝나자 은령의 자식들은 먹은 그릇들을 정리할 동안 내가 아이들과 집을 구경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아이들은 내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고 나를 이층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 애들은 장난감과 푹신한 쿠션이 가득한 다락방으로 요정들처럼 쏙쏙 들어갔다. 나는 거인이 된 기분으로 허리를 깊게 숙이고서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조그만 아이들이 눈앞에서 오고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 애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순간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떠올려 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리둥절함을 느꼈지만 이내 속을 든든하게 채운 뒤에 찾아오는 기분 좋은 노곤함이 밀려왔다. 꿈결처럼 반복되는 아이들의 의미 없는 움직임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고 바로 그 영원이라는 속성이 거기에 어떤 의미나 패턴을 숨겨 놓은 것 같았다. 맞은편 벽에는 노란 전등 불빛에 흔들리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민첩한 유령들처럼. 빛이나 어둠처럼.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세 살, 네 살 정도 되는 어린애들은 자꾸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뻗어 그 애들이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도록 꽉 붙들었다. 아이들의 등과 배에 붙은 말랑말랑한 살에 깜짝 놀라면서. 까딱까딱 흔들리는 아이들의 정수리에서는 따뜻한 우유나 달큰한 자두 냄새가 났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팔이 빠진 로봇을 가지고 와서 내가 그것을 고쳐 주었다. "아빠가 사주신 거예요." "부럽구나." "할아버지는 아빠가 없어요?" "없지." "엄마는요?" "없단다." 그러자 아이는 로봇을 내려놓고 나를 안아 주었다.
은령은 나에게 약간의 수표와 편지를 남겼다. 법적 효력을 가진 건 아니었고 자식들에게 부탁해 둔 것이었다. 수표는 200만 원이었는데, 나는 내가 그 애매한 금액의 돈을 보자마자 딸의 결혼식 때 입을 새 양복을 떠올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나는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은령의 아들이 은령의 편지를 건넸다. 나는 그것을 거실에 선 채로 읽었다. 편지는 인사말도 없이 이렇게 시작했다.
어쩌면 신은 거인이 꾸는 꿈일지도 몰라. 거의 영원 동안 홀로 존재하던 거인이 눈을 감고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세계가 나타난 거야.
나는 그 부분을 두 번 읽고서야 은령이 '어디에도 없는 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은령은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자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미술실에서 나누었던 그 대화를 이어 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도착한 세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탐구하고 이해했어. 인간과 인간. 인간의 마음. 생각과 감정. 하지만 끝까지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감정은 보복과 혐오였어. 그건 아무런 이득도 없이 대상뿐 아니라 자신의 일부도 파괴하니까. 그럼에도 매번 인간을 사로잡고 인생 안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며 행로를 방해하고 파괴하고 뒤흔드는 힘은 불행과 죽음, 그리고 악이었어. 정말 놀랍지. 세계는 악의 중력으로 움직여. 빛을 휘게 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암흑처럼. 그토록 많은 별이 빛을 내도 우주에는 어둠이 존재하고, 심지어 대부분이 어둠이라는 불가사의처럼. 나는 이제 선을 쫓는다는 건 최상의 선을 향해 직선으로 도달하는 경주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최선들이 그리는 나선형의 궤적으로 춤추는 것임을 알고 있어. 평생 제자리를 뱅글뱅글 맴돌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고 영영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선은 영구불변한 형태로 소유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오직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보통의 삶을 통해 느리고 단단하게 배웠어.
하지만 이것은 모든 일이 지나가고 난 뒤에, 실은 다가오는 죽음을 감지하고 인생을 은하수처럼 길게 펼쳐 본 뒤에 알게 된 것이고, 나는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을 그저 살았어. 선을 잘 떠올리지도 못했어. 선택의 기로는 그것이 기로인 줄도 모르게 찾아오고 대체로 선이나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어. 세상에는 가해와 피해, 보복과 증오, 혐오와 폭력이 줄지어 배열되어 있을 뿐, 그 때문에 인간은 선에서 악으로 악에서 선으로 변해 갈 뿐, 선과 악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을 뿐, 완전한 악도 온전한 선도 존재하지 않았어. 처음 죄는 사라지고 벌을 받는 사람들만 남아 세계의 모양과 역사를 짐작 가능하게 할 뿐이었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이 질문은 어떤 경우에도 내게 답을 주지 않아.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인 채로. 사람들이, 그리고 네가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유전적인 요인이나 가정환경이 '잘못된' 인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내 경우엔 아니었어.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내가 나인 것에는 원인과 인과가 없고, 나는 그저 무작위하게 발생한 돌연변이라는 이야기. 정말 우리 가족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어. 여섯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내 다섯 번째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애를 낳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불행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변하게 한다는 건 그때의 나에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 아버지는 그 애를 미워했지.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라고 생각했어. 정말이야. 진짜로 미워했어. 그는 스스로도 그것이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눈치였지만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미움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였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지. 말하자면 그 미움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었던 거야.
어머니의 죽음은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일부가 되어 계속 살았어. 그 애는 탄생과 동시에 죽음의 영향 아래, 아버지의 이유 없는 증오와 그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가정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의기소침하고 신중하고 차가운 아이로 자랐어. 결국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됐지. 다름 아닌 사랑 때문에 말이야. 그 애는 겨우 여섯 살 때 친구를 밀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단단한 턱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게 만들었고 뇌진탕에 빠뜨렸어. 집에서는 얌전하게 굴었지만 어린이집에 가면 돌연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자기보다 약한 애들에게 난폭해진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어. 아버지와 내가 다친 아이의 병실에 찾아갔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작은 아이가 먼 눈으로 나와 아버지 사이 어디쯤을 바라봤어. 앞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이 왜 해결되지 않는지 정밀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 아이 부모가 말해 줬어.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아버지가 울기 시작했지.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동생에 대한 미움을 제외하면 모두 메말라 버린 것 같았던 감정이 뜨겁고 섬세하게 살아나고 있었어. 아버지의 눈물에는 가식이 없었어. 나는 사람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었고 아버지의 두려움과 죄책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다친 아이와 아이 부모가 느끼고 있는 공포에 공감하며 그것을 끔찍하게 여겼지. 그리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두 번째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아버지는 동생을 안아 주었어. 어째서일까? 죄책감이었을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돌연 아이는 죄가 없다는 깨달음이었을까? 그 애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천연한 눈으로 아버지의 흐느낌 때문에 작은 몸이 앞뒤로 흔들리는 채로 가만히 품에 안겨 있었어. 자신이 온당 받아야 했지만 잠시 잃어버렸던 사랑을 이제 돌려받게 되리라는 것과, 그럼에도 자신이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 그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말이야.
다행히 다친 아이의 시력은 정상으로 돌아왔어. 끔찍하고 무서운 일은 그림자처럼 우리 발밑까지 찾아왔다가 꿈속에서 들려오는 포성처럼 아득히 멀어졌어. 아버지는 그 아이가 다시 앞을 보게 되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병실을 찾아갔지. 아이와 부모에게 사과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사과가 동생을 향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그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 슬픔과 증오가, 죄와 죄책감이, 사과와 용서가 엇나간 방향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적인 성운처럼 움직이는 일 말이야. 나는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용서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병실 밖으로 나와 환자와 환자의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휴게실에 앉아 그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우연히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었지. 잠든 아이의 눈꺼풀 위로 길고 미세한 침을 찔러 넣어 실명시킨 엄마가 있다고, 그것으로 얼마간의 보험금을 탔지만 남은 한쪽 눈을 마저 실명시켰기 때문에 덜미가 잡혀 경찰들이 그녀를 체포했다고, 엄마와 아이를 분리시켰다고, 앞을 보지 못하는 그 아이가 지금 이 병원에 있다고.
어째서일까? 다시 앞을 보게 된 아이와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아이를 함께 떠올린 것은. 두 번째 아이와 내가 연결되어 있고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낀 것은. 내가 그 아이를 돕겠다고 결심한 것은. 복잡하고 기나긴 절차를 감수하고도 그 애와 가족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왜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어째서 사람의 선택은 선과 악의 분별이 아니라 그저 선택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이 삶과 이 가족들을 알지도, 꿈꾸지도 않았는데 내가 한 선택들은 어떻게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나는 이 많은 질문들의 답을 모르는 채로 살았어.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무수한 윤리적 기로에 직면했고 늘 답을 찾았어. 흡족하지 못한 답을 선택할 때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어. 그리고 어느 날, 윤리적인 결정을 하는 순간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을 깨달은 거야. 나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할 때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풍경들을 떠올렸어. 아름다운 자연 광경이나 평범한 일상, 단순한 대화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답을 알 수 있었지만, 때로는 생각하기도 했어. 내가 앞으로 할 선택이 그 풍경을 훼손시키지는 않는지, 풍경 속 나에게 부끄러워지지는 않는지, 풍경 속 너를 영영 잃게 되는 결정은 아닌지 생각해 본 거야. 너는 내가 실패할 거라고 말했지. 하지만 바로 그 말이, 그 순간이 내 안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가 되었어. 나는 너를 잊고 있는 순간에도 너를 떠올리면 알게 되는 '선'을 따라갔어. 그러니까 말하자면, 가장 윤리적인 순간마다 네가 있었던 거야. 그건 마치 신의 역할과도 같고, 거인이 꿈속에서 바라본 풍경과도 같다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어.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평생토록 가장 미스터리한 감정이었지만, 아마도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야.
편지를 다 읽은 뒤, 나는 문득 은령의 가족들이 주변을 빙 둘러싼 채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부드러운 석양이 그 얼굴들 위에서 물결이나 불꽃의 운명처럼, 영원이나 불멸의 의미처럼 너울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미 나는 그들의 마음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를 좋아했니?"
나는 손을 뻗어 아이들의 작고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할머니는 편안하게 떠나셨겠지?"
"그럼요."
은령의 큰손녀가 대답했다.
"우리 모두 곁에서 지켜봤어요."
"남기는 말씀은 없었고?"
"할머니는 잠시 숨을 쉬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여기, 여기에 환한 것이……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천천히 눈을 감고 웃으셨는데 저는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더 하시려는 줄 알고 조금 더 기다리다가 잠시 후에 할머니 하고 부르며 가볍게 몸을 흔들어 봤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떠나신 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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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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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5-01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 관리자
- 2025-05-01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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