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문법
- 작성일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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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불가능한 문법
전미경
조가 얇은 겉옷을 챙겨 들었을 때 그는 막연히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의 해는 길었다. 어느 날은 저녁 여덟 시에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조는 그 햇빛을 직접 만끽하기보다는 창틀에 기대어 보는 것을 선택하곤 했다. 얼굴은 커튼 뒤에 숨기고 팔이나 종아리, 허벅지를 뜨겁게 데우거나 산만한 날벌레들이 몸 위에 앉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다.
그가 창밖을 보며 마지막 자두를 씹어 삼키는 동안, 날벌레 몇 마리는 재밌는 파티를 벌인 듯했다. 조가 뱉은 자두씨에 과육이 충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끈적한 손을 청바지에 비비며 겉옷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제 정말로 나가야 했다. 더 미룰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조는 몇 개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문장이 적절한지를요.
얕은 개천을 따라 일직선으로 건축된 산책로는 누구나 좋아할 법한 장소였다.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인공적인 길이었다. 나뭇결을 닮은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나무로 만든 계단이나 운동하는 사람들, 혹은 아이들을 위한 우레탄 바닥재가 깔려 있고 제철에는 작고 큰 오리들이 날아와 물결에 몸을 맡기는 곳이었다. 양손을 머리까지 뻗은 아이가 단단히 부모의 손을 잡는 것, 그리고 부모가 두 팔에 힘을 줘 아이를 들어 올리는 것까지 보고 조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운동복을 차려 입은 여자는 순식간에 조를 지나쳤다. 대여섯 명의 초등학생들이 동그랗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쪽에서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바지를 정강이 위까지 걷은 아이가 친구들을 향해 만세 했다. 야, 주웠다. 주웠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산발적이었다. 백팩을 든 남자가 학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입을 벌렸다.
*
조는 옆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집 있는 남자는 엄지와 검지를 입안에 넣어 강한 휘파람 소리를 냈다. 호루라기 같기도 했다. 남자는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양손을 입가에 모아 소리쳤다. 와! 조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사방은 박수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조는 반사적으로 침을 삼켰다. 비행기를 탈 때 조는 침을 끌어 모아 삼키곤 했다. 귀가 먹먹했다. 관객들이 치는 박수는 대부분 수석 무용수를 향한 찬사였다.
무용단 산하 발레 학교를 다녔고 졸업과 동시에 솔리스트로 낙점되어 춤을 춰왔다는 사람이었다. 톡 튀어나온 둥근 발등과 강한 발목, 긴 목을 가진, 가늘지만 모든 근육이 제대로 짜여 있는, 가장 미국적인 무용수, 발란신의 안무를 가장 적합하게 수행하는, 아름다운 사람. 조에게는 별 의미 없었다. 그가 바리에이션 하나를 완벽히 끝내고 박수를 받을 때조차 조는 느리게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조가 기다리는 사람은 해나였다. 무용단 산하 발레 학교를 학기 중에 겨우 입학한, 단 두 개의 콩쿠르 입상 상패를 가진, 오래된 나무의 달콤한 냄새가 나는, 창백한 얼굴에 다시 흰 파우더를 칠한 아름다운 무용수. 조의 특기는 흰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무대에서 해나를 발견했을 때, 조는 조용히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안무의 끝이나, 잘 수행된 동작 뒤에 따라온 것이 아니었기에 조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조를 바라보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조는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혹은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뭉툭한 소리의 박수와 무대 조명에 희게 빛나는 해나만이 중요했다.
해나는 코르드발레1)였다. 약간 기울어진 무대 뒤편에서 해나는 옅은 황토색 드레스에 흰 앞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액자 같은 거지. 여기가 가장자리예요. 가운데를 보세요, 하는. 조는 해나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해나의 한쪽 발끝은 몸 바깥을 향해 있었고 나머지 한쪽은 바깥쪽 발의 중심을 위해 약간 뒤를 향해 있었다. 낯설고 불편한 형태였지만 해나를 포함한 무용수들이 모두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그들은 목을 길게 뽑아 한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가장 약한 부위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자연법칙에 반대하듯 뛰어올랐고 토슈즈의 끝으로 바닥을 밀어냈다.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커튼콜이었다.
조가 가방 안의 노란 튤립을 떠올린 순간, 해나는 무대 가운데로 통통 튀어나왔다. 해나와 비슷한 키, 혹은 체형을 가진 무용수들 역시 치마 끝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해나는 땀을 흘리며 굳어 있었다. 다른 무용수처럼 웃지도, 누군가에게 비밀스러운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다. 조는 박수를 계속 쳤다. 해나가 사라진 후에도, 뚱뚱한 남자가 그를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고 공연장을 떠났을 때도. 조의 심장이 손 안에 있는 것처럼 박자를 함께했다. 기분 좋은 속도였다.
그러나 해나가 기어코 나타나지 않았을 때, 조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해나는 조의 꽃을 받으러 나오지 않았다. 어떤 꽃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조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몇 모여 있다가 사라지고, 결국 조만이 공연장에 남게 되자 그는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다. 이 튤립은 어디에 버려야 하지. 조는 자신의 신발 앞코를 가만히 관찰했다. 둥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신발, 누구에게도 데려다주지 않는 사십오 달러짜리 검정 플랫슈즈를. 조가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바스락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조가 쥐고 있는 튤립 포장지가 엉망으로 구겨져 있었다.
1) 군무를 추는 단체 무용수.
*
날은 더웠다. 겉옷을 챙길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높게 자란 풀 어딘가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났다. 조는 콧등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젖은 손을 바지에 비볐다. 그는 좀처럼 걸음을 빨리할 수 없었다. 규칙적으로 손목시계를 찬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해나의 갑작스러운 연락은 그가 공연장에서 사라진 것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조가 해나에게 보냈던 여러 개의 메시지는 확실히 걱정으로 시작했다. 해나가 결국 조를 만나지도, 꽃을 받지도 않을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나서는 약간 공격적으로 변했다. 조가 마지막으로 작성한 메시지는 길었다. 초대해 놓고 어째서 나타나지 않았는지, 몇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 건지, 혹시 다치기라도 한 건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조는 속으로 십오 초를 세고 다시 메시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백스페이스를 길게 눌렀다. 메시지가 빠른 속도로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첫 글자는 지워지지 않은 채 보내지고 말았다.
너.
그게 전부였다. 조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글자 중에 가장 안전하고 모호한 글자였다. 그러고 나서는 끝이었다. 해나와의 일은 문득 떠오를 때마다 불쾌했지만 조에게도 일상이 있었다. 해나가 매일 오전 아홉 시에 무용단에 출근하는 것처럼 조는 유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했다. 현지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들을 바꾸기를 권유하고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에 학생을 구겨 넣고 나면 점심시간이었다. 단순한 환율도 검색하지 않는, 몇몇 학생들이 엉겨 붙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집으로 와줄래?
해나의 메시지는 금세 다른 메시지들로 묻혔다. 조가 그의 의도를 읽으려 노력하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해나였다.
미안.
해나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사과했다. 그는 해나의 메시지와 전화의 순서가 어긋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오라는 부탁이 미안한 것인지 그날의 일이 미안한 것인지 불분명했다. 조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그의 학생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떤 표현이 적절한데요?
*
해나는 이사 간 적이 없다. 해나가 자란 집은 그의 외조부모가 살다가 죽은 집이었다. 벽 어디에서나 죽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엄격한 표정으로, 가끔은 배부른 표정으로 벽에 걸려 있었다. 해나는 조에게 사진을 소개해 주곤 했다. 그의 외조부모부터 멀고 가까운 친척들, 이해할 수 없지만 집을 설계한 부부의 사진 역시 공평하게 걸려 있었다. 조는 긴 역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
이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발 딛는 곳마다 삐걱거리는 나무소리가 났다. 어린 조와 해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늘 실패했다. 어떤 것도 걸려 있지 않은 게임이었으므로, 마지막 계단에서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계단을 오르며 서로의 눈을 보는 것, 짧게나마 참던 숨이 한꺼번에 뱉어지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강박적으로 닦아 놓던 난간은 따듯했다. 난간은 부드럽게 휘어 있었고 끝은 둥글었다. 오를 때와는 달리 계단을 내려올 때는 누가 더 소음을 요란하게 내는가 대결하는 것처럼 뛰었다. 그들은 이층 정면의 구조적 결함인 작은 화장실을 좋아했다. 변기와 세면대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체구가 작은 아이들만 그곳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구석에 있었더라면 문이라도 잠가 놓겠지만, 수상하게도 그 화장실은 이층에 올라가면 반드시 마주치는 곳으로 해나의 집을 방문한 모든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집의 모든 벽이었다. 짙은 갈색으로 한 번 더 덧칠한 나무 벽은 직사각형의 액자 모양으로 양각되어 있었다. 끝없는 벽, 볼록 튀어나온 직사각형을 두드리는 것, 그 가운데 소리가 다른 곳을 찾아내는 것을 조는 정말로 좋아했다. 해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 그건 벽이잖아. 모두 같은 소리가 날 거야. 조가 분명히 다른 소리가 났다고 한 벽을 앞에 두고도 해나는 같은 말을 했다.
햇살이 좋은 날엔 마당의 커다란 버드나무 잎사귀 그림자가 온 집을 흔들어 놓았다. 해나가 그림자를 향해 목을 길게 빼면 조는 손가락을 펼쳐 그의 얼굴을 훑었다. 조의 손바닥이 해나의 얼굴을 가렸다. 해나가 습관처럼 뻗은 긴 팔다리에 나뭇잎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조는 지치지 않고 주장했다. 너는 정말 좋은 무용수가 될 거야. 해나의 콩쿠르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가 완전히 수행해 낼 수 있는 바리에이션 역시 적었다. 해나는 늘 노력하는 학생입니다. 그러나 그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해나의 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해나가 무용단 산하의 발레 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다.
해나는 개의치 않았다. 수석 무용수가 성공의 동의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귀가 맞지 않는 녹슨 철제 창틀이 폭우를 이기지 못했을 때, 방 안으로 들이닥친 비가 그의 토슈즈를 망가뜨렸을 때, 그는 토슈즈, 튜튜, 트로피 가릴 것 없이 집어 던지거나 찢으며 울었다. 그의 작은 공구함에는 토슈즈를 길들이기 위한 망치나 칼, 바늘이 가득했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발레를 사랑해. 움직임을 사랑해. 무대를 사랑해. 죽어도 춤출 거야. 해나는 그의 방을 옮겼다. 유독 창틀이 약한 방을 사용해 왔다는 이유였다. 해나의 새로운 방은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차례로 임종을 맞은 곳이었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침대 매트리스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넓고 나무 바닥이 반들거리는 곳에 해나는 짐을 풀었다. 어째서 집을 수리하지 않아? 조의 물음에 해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면 이사를 가거나. 해나는 조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발레를 그만두는 것도, 낡고 오래된 집에서 떠나는 것도 해나는 고려하지 않았다. 생을 다한 마당의 버드나무가 음침하게 말라 가는 것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너무 닳아 더는 부드럽지 않은 난간에 손가락을 찔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전히 이층의 작은 화장실은 열려 있지만 새로운 손님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 화장실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해나는 선생의 말대로 크게 성공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무용단 홈페이지의 무용수 프로필 가장 끝에 위치해 있었고 동명이인이 있는 탓에 해나b로 표기되었다. 해나a와는 대화해 본 적도 없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해나는 조에게 전화했다.
사람에게는 왜 육체가 있는 걸까.
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곧 집을 떠나, 조.
*
조의 걸음 속도를 개 한 마리가 따라 잡고 있었다. 조는 혀를 빼고 있는 개를 내려다보았다. 귀가 잔뜩 뒤로 젖혀진 것은 개의 기분이 좋다는 의미였다. 개는 앞보다는 조를 더 자주 올려다보며 걸었다. 개의 목줄을 쥔 사람이 머쓱하게 웃었다. 얘가 사람을 좋아해서요. 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제스처에 주인이 환하게 웃었다. 이름은 탱고예요. 얘가 자주 두 발로 서는 걸 잘해서요. 원래는 코가 까매서 탄코였는데 발음도 어렵고 그래서 탱고. 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구나. 그의 대답에 주인은 신나게 말을 이어 갔다. 애견유치원에서 가장 활발한 개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때, 개가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남자였다.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생 같았다. 어쩌면 중학생 같기도 했다.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외양이었다.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나머지 한 손에는 백팩을 어깨에 걸쳐 메고 있었다. 조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던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조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와…… 그리고 실실 웃었다. 남자는 혀로 앞니를 쓸었다. 그러고는 다시 와, 와,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가 길을 비키지 않았기 때문에 조가 몸을 돌려야 했다. 개가 왕, 하고 짖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개는 남자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개 주인은 쪼그리고 앉아 개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탱고, 일어나. 조가 뒤돌았을 때 남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전화를 하면서도 남자의 시선은 끈질기게 조를 향해 있었다. 불쾌감은 약간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더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개 주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겉옷을 걸쳤다.
개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자 주인은 어, 어, 하는 소리를 내며 끌려갔다. 개의 황금빛 털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개의 헥헥거리는 소리나, 수다스러운 주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는 사방이 너무 고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많은, 다양한 소리가 필요해. 그는 사람이 많은 쪽을 향해 걸었다. 햇볕을 듬뿍 받은 그의 머리카락에서는 탄내 비슷한 것이 났다.
냉정하게 말해 보겠습니다. 무용수가 된다는 것은 해체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관객은 당신의 발등만 볼 것입니다. 당신이 아라베스크2)를 했을 때, 그 선이 얼마나 부드러운지에 집중할 겁니다. 다른 관객은 당신이 얼마나 높게 점프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우아하게 착지하는지를 보겠지요. 작은 얼굴이나 긴 목과 팔다리, 유연하되 강한 몸, 테크닉을 빠르고 정확하게 외우는 기술, 변별력 있는 음악성, 이차 성징을 쉽게 무시하는 것들. 우리가 엄격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발레는 유산이에요.
당신은 유산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해나는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고 있었다. 바짝 당겨 묶었다가 푼 머리에서는 여전히 헤어스프레이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두피를 강하게 문질렀다. 실핀으로 찔렀던 자리가 계속해서 아파 왔기 때문이다. 조는 해나의 옆구리를 발가락으로 콕 찔렀다. 하지 마, 조. 테이프 감기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고 그건 조를 선잠에 들게 하기 충분했다.
해나의 긴장한 표정 따위는 비디오에 찍히지 않았다. 무대 하수에서 등장한 자신의 모습에 그는 침을 삼켰다. 세 달을 연습한 바리에이션은 등장부터 삐걱였다. 해나, 팔을 분리해. 크게 써. 선생의 어떤 말도 떠올릴 수 없었다. 테이프에 찍힌 대부분의 안무는 처참했다. 음악과 안무는 반 박자 동떨어져 있었고 그의 시선은 둘 곳 없이 불안했다. 아름다운 비즈가 촘촘히 박힌 튜튜는 안쓰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관객들의 박수는 단순히 동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의 자식, 친척, 형제가 그 다음 무대에 나올 것이다.
… 돌아보지 마.
살짝 눈을 뜬 조가 말했다. 해나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았다. 볼록한 TV에서는 파란 빛이 새어 나왔다. 깨끗하게 닦은 유리창에 나방 몇 마리가 달라붙었다. 빛을 향해 파닥거리다가 자리를 잡은 듯했다. 조는 해나 뒤에서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적게나마 땀을 흘린다는 것을, 조는 알고 있었다.
2) 한 다리로 나머지 몸을 지탱하며, 지탱하는 다리를 뒤로 길게 뻗는 동작
*
조는 약간 휘청거렸다. 단단히 묶지 않은 운동화 끈 탓이었다. 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신발 끈을 갈무리했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조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닮았다는 소리 안 들어요?
백팩을 들쳐 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였다. 그는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조는 남자의 코에서 새는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조가 그대로 자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똑같이 생겼는데. 남자의 노란 눈이 조를 구석구석 훑어봤다. 더 자세히, 더 구체적으로, 더 집요하게.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뻗은 손을, 조가 거절한 것은 단순히 그의 손톱이 더러워서가 아니었다. 조의 온몸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조가 내뱉은 말은 정당한 분노나 적절한 질문이 아닌 다른 말이었다.
제가 좀 늦어서요.
완전히 일어난 조가 양손과 엉덩이를 털었다. 그리고 가방 끈을 부여잡았다.
이 근처 살아요?
조가 침을 삼켰다. 그가 뒷걸음질 치는 것과 상관없이 남자는 조를 따라왔다. 산책로의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간 것인지 조는 알 수 없었다. 조와 남자의 공간만 유리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 년 전에는요?
비켜 주세요.
조는 그 말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비켜 달라니, 부탁해야 한다니. 피가 식는 듯했다. 화를 내도 되는 걸까, 조는 계속 판단해야 했다. 남자는 그저 조를 따라왔을 뿐이다. 어떠한 물리적인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을 때, 남자가 휴대전화를 조에게 들이밀었다.
조는 눈을 찌푸렸다. 역광 탓에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사진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사람인가? 조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요. 그의 말에 남자가 웃었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남자는 입술을 핥았다. 맞잖아요. 조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니까요……! 조의 신경질적인 대꾸에 남자가 웃음기를 거뒀다.
이거 너 맞잖아.
조는 남자를 지나쳤다. 무서웠다. 킥킥대지 않는 남자가, 백팩을 내려놓은 남자가. 산책로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금방 해나의 집에 도착할 것이다. 조는 남자가 더는 자신을 붙잡지 않기를 바랐다. 달리고 싶지 않았다. 뒤돌아볼 용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치면 남자는 망설이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남자가 보여준 건 대체 뭐지.
길이 왜 이렇게 긴 거지.
조의 겨드랑이가 축축해졌다. 등에 옷이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게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조는 해나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다. 조는 자신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산책로의 반대쪽에서 산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허리에 겉옷을 동여매고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 서로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웃는 아이들, 목줄이 엉켜버린 개들. 정해진 시각에 켜지는 가로등, 가로등에 달려드는 나방, 그런 것들을 향해 달렸다.
산책로의 끝 혹은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너머로 계단이 보였다. 난간을 쓸며 내려오는 사람들을 밀치고 조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그에게 부딪쳐 신음을 내는 몇몇을 지나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고 나자, 조는 뒤를 돌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안 돼. 그러지 마. 그는 아주 살짝 목을 꺾어 뒤를 흘깃 쳐다봤다. 남자는 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이 아니었다. 나이도, 특징도 판단하기 어려운 대여섯 명의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바짝 치켜든 모습이었다. 그것은 모두 조를 향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양손을 입가에 모아 무언가를 소리쳤다.
조. 왜 사람한테 틈이 있는 걸까. 우리는 동굴에서 나와선 안 됐어.
그대로 퇴화해 버렸어야 했는데.
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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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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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5-01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 관리자
- 2025-05-01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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