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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와 인육

  • 작성일 2020-12-01

[단편소설]



거위와 인육



양선형




황금알을 위하여


아무도 그에게 대화를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한없이 말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는 보통 한없이 말하는 일에 어떤 장애도, 어떤 단절도 겪지 않는다.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어제의 산들바람처럼 사소하게 들린다.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뜬구름을 응시하고 있으면 홀로 헤아리는 날짜들이 무균형의 칸막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들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그의 혼잣말은 오솔길의 구슬픈 어둠 속에서 나란한 위상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귓전을 배회하는 말들이 누군가 보내는 탄원이나 구명, 그들이 반드시 응답해야만 하는 신호가 아닌지, 말의 내용을 놓쳤을 때 그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했다는 자각에서 기인하는 경제적이며 윤리적인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같은 문제들을 잠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는 순간 그가 하는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어김없이 판명될 따름이다. 혼잣말은 혼잣말일 뿐, 말은 희미해지는 배경처럼 그들의 후방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말이 사람들의 귓가를 맴돌아 미끄러지지만 그의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해 잠시 멈춰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 가장자리에, 그곳의 입간판처럼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베레모를 이마에 비스듬히 눌러쓴 채로, 구강의 타액을 굴리고 불어 영롱한 방울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손뼉을 치는 동안 공중을 떠다니던 방울들이 하나둘 사그라졌을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 증언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언제나 그 자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언제나 말의 내용보다 더욱 참혹한 한계에 불과하다. 그는 영원히 자신을 향해 자기 자신을 강의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밤중이라 오솔길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하늘에는 창백한 초승달이 걸려 있다. 인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바닥을 짚을 때 부서지는 낙엽의 촉감, 모래를 쓸고 다니는 바람의 기척이 보다 선명하고 확실하게 감지된다. 대낮엔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이 소란스레 떠들며 오솔길을 지나갔다. 사람들 사이에 혹여 허풍쟁이 악마가 끼어 있을까 머리통 하나씩을 눈여겨 살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음식 이야기에 열렬했던 것으로 미루어 그들은 가짜 푸아그라 농장을 방문하려는 미식가들이 아니었을까.
그는 여기 매복한다. 허풍쟁이 악마가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통과하리라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허풍쟁이 악마와의 악연을 끊어야 했다. 황금알을 낳아야지. 그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나무 그루터기 뒤쪽에 몸을 엄폐하고 허풍쟁이 악마가 오솔길 위로 진입하기를 기다렸다. 지금은 몸을 엄폐하지 않는다. 만사가 귀찮다. 그는 지쳤고, 은밀함을 가장할 여력이며 끈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중대한 잘못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돌멩이와 초승달을 향해, 미풍에 뒤채는 나뭇가지와 촐싹거리며 덤불 사이를 오가는 족제비들에게 말이다. 물론 나뭇가지와 족제비와 초승달과 돌멩이는 지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다 수틀린 모양인지 칭얼거리며 만물의 응답을 재촉하고 있는, 이 한심한 매복자의 탄식 및 어리광을 향해 그들이 보유한 맑은 지혜를 제공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는다. 허풍쟁이 악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보객들만이 오솔길을 한가롭게 드나들었을 뿐이었다. 연인들이 은신처 가까운 장소에서 애정행각을 벌였다. 애정행각이 끝나고 바지를 추켜올릴 때까지 연인들 가운데 누구도 그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엄폐가 지나치게 완벽해 이런 같잖은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툴툴거리며 은신처를 옮겨야 했다. 허풍쟁이 악마를 처단하지 못한다면 고스란히 납부해야만 하는 막대한 배상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풍쟁이 악마와는 온전히 이자적인 관계가 되어야 했다. 그는 갈망했다. 아무도 방해하거나 개입하지 못하는, 단지 둘뿐인 관계. 홀로 어떤 관계를 단지 둘뿐인 관계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상대를 향한 하염없는 기다림, 항상 순연하며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기다림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오솔길에는 이런 기다림을 신실하게 추구하는 일에 훼방을 놓는, 예컨대 기다림의 불청객들이 도처에서 출몰한다. 그는 매번 남루해진 기다림을 수선해야만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다. 기다림이 농밀해진 만큼 허풍쟁이 악마를 발견했을 때의 쾌감도 엄청날 텐데. 이때 그가 지속하는 기다림의 소실점이란 아직 등장하지 않은 허풍쟁이 악마이기도 했지만 제 장기를 떼다 팔아도 다 변상하지 못할 막대한 배상금 자체이기도 했다. 허풍쟁이 악마를 기다리는 동안 그에게 청구된 배상금 또한 그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소실점, 다시 말해 오지 않는 상대에 대한 어떤 의존적인 입장을 집요하게 고수하지 않는다면 기다림이란 신빙성이 결여된 망상이나 몽매한 자기기만 따위로 전락하고, 이 매복 행위가 무위와 삶에의 태만을 변명하고 벌충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마련한 픽션에 불과하지는 않느냐는 의혹이 머릿속으로 무성하게 자라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빈번하게 오솔길에 출몰해 그의 기다림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이제 은신하지 않는다. 양팔로 무릎을 감싸고 앉아 다가오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본다. 오뚝이처럼 덩실거리기도 한다. 혼잣말이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향한 암시에 순종하고 싶지 않다.


*


허풍쟁이 악마의 의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때 그는 어렸다. 돈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더는 어리다고 할 수 없는 지금, 그는 생애 내내 지출했던 돈을 허풍쟁이 악마에게 전부 반납해야만 하는 얄궂은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매복 행위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을 예정이었다. 앞으로도 줄곧 빈사 상태임이 자명할 제 통장의 간병인이 되어 먼 훗날까지 비통하고 처량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었다. 그는 두려웠다. 그는 제 몫의 황금알을, 그것도 꽁무니가 아닌 주둥이로 토해 내야만 하는 거위가 되어 있었다. 연금술이라도 익히지 않는 이상에야 머릿속의 공허를 황금으로 치환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허풍쟁이 악마는 한 인간의 생애를 금덩이를 소화시키는 과정에 비유하는 건방진 자산가였다. 한 인간의 귀중한 생애를 금덩이 따위에 빗대다니 정말 무례하고 난폭하기 짝이 없구나. 그는 생각했다. 역시 부자의 두뇌란 머릿속에 축재된 숙변일 가능성이 높아. 존재 자체가 비리, 만악의 근원이자 판도라의 화장실이 아닐 수 없지. 당시 허풍쟁이 악마는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경박함과 울적함을 수다스럽게 오르내리다가도 다소 부담스러운 침묵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전체적인 인상은 하는 말마다 유치한 투정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의뢰의 내용이 일종의 숨바꼭질이었다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허풍쟁이 악마는 허풍쟁이라는 별명처럼 허풍이 심했다. 사족이지만 부자들이 하는 말은 대개 허풍처럼 들린다. 부자들의 세계에서 현실과 허풍은 분간되지 않고, 최소한 듣는 사람에 불과한 그는 현실과 허풍을 구별할 어떤 유형의 지성에 접근할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부자들이 허풍으로 현실을 직역하고 있으리라 추측할 때, 인간의 현실이란 부자의 허풍에 내재한 과장과 왜곡, 기상천외하고 초현실적이며 신뢰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함께 포함하는 영역이 된다.
의뢰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허풍쟁이 악마의 혼란스러운 말들을 여기 옮겨 놓고 싶다. 내 황금이 어디로 증발했지? 허풍쟁이 악마가 불안스레 주변을 기웃거렸다. 눈빛에 흐리멍덩한 광기가 배어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침팬지 한 마리가 있다고 가정해 봐. 황금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억울해 가슴을 사납게 두들기며 흐느끼는 고릴라 두 마리가 있다고 가정해 봐. 그는 가정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허풍쟁이 악마는 이윽고 선언하듯, 탁자를 내리치며, 자신의 빛나는 통찰을 과시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격양된 테이블 위를 일거에 평정한 뒤 레토릭의 권좌를 쟁취하려는 사람의 야심 가득한 호승심을 발휘하듯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승심이란 언제나 좌중의 뻘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마련이다. 허풍쟁이 악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심경이 그러했다. 섬광 같은 깨달음이었지! 허풍쟁이 악마가 소리쳤다. 이윽고 허풍쟁이 악마는 자신이 가진 황금이 결국 왜소한 스스로의 몸뚱이를 매입하는 일에 통째로 헌납되고 말리라는 엄혹한 진리를 깨우쳤다고 말했다. 이제 자신은 그런 고독하며 허망한 미래를 부인하거나 망각할 근거를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달라졌어! 허풍쟁이 악마의 감격스러운 갱생에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그는 무슨 태평한 소리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 참 그게 부자의 특권은 아닌지, 귀를 후비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허풍쟁이 악마의 말을 청취하는 중이었다.
황금이란 허기의 불구덩이 안으로 투입되는 비옥한 연료에 불과하다는 말이야. 내가 황금을 투자해 빌어먹을 굶주림을 사들이고 있었다는 말이지. 허풍쟁이 악마의 방만한 언사가 계속되었다. 황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궁극적인 대상이란 제 황금을 다 나눠준 뒤에도 인간의 손아귀에 들려 있을 텅 빈 자루…… 이 텅 빈 자루야말로 인간의 존귀함과 비천함이 모두 담겨 있는 소망의 무덤이기도 하다는 것이 허풍쟁이 악마의 생각이었다. 인간에게 부과된 단 하나의 계약이란 고갈되지 않을 허기와의 계약이야. 허기란 죽어서도 꺼지지 않을 창백한 불꽃이지. 허기와 싸우려고 하지 마. 너는 허기의 외곽을 비행하는 똥파리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아. 세상을 불매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굶주림을 불매할 수는 없는 거야. 심지어 허풍쟁이 악마는 이러한 유형의 욕망에 관한 시답잖은 객설로 말을 끝맺지도 않았다. 청각이 피곤해졌다. 짜증이 몰려들었다. 허풍쟁이 악마에 따르면 허기와의 계약을 중단하고 파기하기 위해서는 제 영혼의 몫을 초과하는 황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영혼의 몫이란 쉽게 말해 그릇의 크기를 뜻해. 네 그릇이 종지 사이즈면 내 그릇은 덤프트럭 크기. 그릇 안에 금은보화가 고봉으로 수북하게 담겨 있다고 가정해 봐. 인간은 그만큼을 먹는 거야. 물론 네 종지엔 금은보화 대신 썩은 제삿밥이 올라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어 허풍쟁이 악마는 위장에 황금을 임계 너머까지 투입하는 일, 한계를 허용치 않는 황금의 과잉을 통해 허기가 깃든 기관 자체를 멸절하고 괴사시키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허기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 황금만능주의를 엔트로피 너머까지 속주하는 일을 통해 황금만능주의의 핵심인 굶주림을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황금이 허기의 동력이 아니라 허기에 대한 폭력으로 작용할 때까지. 여기서부터는 도무지 사고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었다. 가성비는 불황에 예속된 인간이 제 노예 상태 속에서 자유의 환영을 수확하기 위해 마련한 궁여지책이 아니냐는 거야. 절약이란 모래와 먼지를 비축하는 절차란 말이야. 오직 사치를 능가하는 사치, 죽음을 불사하는 절대적인 사치만이 허기를 불허하고 종식시키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거야. 바닥을 드러낸 통장이 왜 백지수표가 아니냐는 거야. 왜 신체포기 각서에 서명하기를 두려워하느냐는 말이야. 최저점에 도달한 신용을 담보로 왜 가공할 허무와 몰락의 재화를 반출할 생각을 하지 못하냐는 거야. 내가 백만 원을 들여 생산한 천만 장의 위폐가 대체 왜 거리에 떨어진 동전 하나만도 못하냐는 거야. 거위의 배를 갈라 비대해진 푸아그라를 적출하기 전에 왜 비대해진 푸아그라가 거위의 배를 찢고 커다래질 수는 없냐는 거야! 그는 허풍쟁이 악마의 말은 무엇이든 믿지 않았다. 의뢰를 수락한 뒤 갑작스레 증가한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간덩이가 쪼그라지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만큼의 착수금이 그의 통장으로 입금되었기 때문이다.


*


경천동지.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이다. 받은 금액의 쥐꼬리를 떼어 빌딩 스무 채를 간단히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화입니까?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는 경탄했다. 코 묻은 돈을 옥상에서 휘날리며 히죽거려도 코를 풀 지폐가 떨어지지 않는다. 반신반의하며 허풍쟁이 악마가 건넨 약정서에 사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약정서가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약정서는 얼토당토않은 조항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단에 기재된 허풍쟁이 악마와 그의 사인 또한 무성의하게 갈겨쓴 낙서처럼 옹색해 보였다. 그에게 일확천금을 선사할 계기가 되기에는 진지함이나 엄연함이 모자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통장에 찍힌 0의 개수를 헤아리는 과정에서 현실의 밑바닥이 까마득한 현기증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어떤 현란하고 근사한 문장으로도 돈다발 속을 헤엄칠 때 느낄 법한 순수한 환희를 온전히 전달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허풍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현실과 환상을 구획하던 견고한 제방이 산사태처럼 떠밀려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지폐들에 의해 허물어졌다. 인생에 성공하고 말았다. 운수가 너무 좋아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사실이 확실시된다. 빈곤했던 시절은 어느덧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그는 가난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극적으로 유턴해 풍요 쪽으로 핸들을 꺾어 올라탄다. 이후로는 긴 시간 막히지 않는 쾌적한 주행이 이어진다. 허풍쟁이 악마는 의뢰의 내막을 상세하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해의 공백이 있었다. 이해의 공백에 괘념치 않고, 합리성이나 개연성을 추월해 당도하는 기막힌 행운을 사람들은 보통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기적의 당사자가 되어 있었다. 무지는 곧 안락한 생활의 기쁨으로, 낭비할 삶이 바닥나지 않는다는 경이로운 활력의 깊이로 전환되었다. 괜찮아. 얼마든지 더 써도 돼. 그는 자비로운 통장의 속삭임 속에 머무른다.
어디까지나 착수금은 허풍쟁이 악마가 제안한 의뢰를 성사시키는 대가로 지급된 금액이었다. 때문에 의뢰를 달성하기 전까진 그의 재산은 아니었다. 착수금이 뒤집혀 배상금으로 둔갑하고 나서는 부유하게 살았던 나날들이 후회스럽게 여겨졌다. 아껴 썼어야지.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배를 째라지. 그는 이 소설이 그의 배를 째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허풍쟁이 악마는 계약과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소식이 불명이었으며 지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듯했다. 잠적한 허풍쟁이 악마를 추적하는 것, 다시 말해 의뢰인인 허풍쟁이 악마의 의뢰를 통해 의뢰의 표적이기도 한 허풍쟁이 악마를 추적하는 것이 허풍쟁이 악마와 체결한 계약의 내용이었다. 이는 허풍쟁이 악마가 줄곧 지껄이던 사치와 굶주림에 관한 어수선한 장광설들을 떠올리게 했다. 쫓고 쫓김의 구도가 제 꽁무니를 둥글게 말아 탐식하는 지렁이 괴물인 우로부로스를 연상케 하는 기이한 자아의 원환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해하겠는가. 그는 계약으로 말미암아 허풍쟁이 악마의 자의식 속에 입회하게 되었으며 그 납득하기 어려운 내면적 극장의 하수인으로 고용되었던 것이다. 이 원환에서 그는 허풍쟁이 악마가 가진 꺼림칙한 자의식의 운동성을 대리해 수행하는 피동적인 배역으로 활동해야 했다. 꼭두각시, 혹은 자아의 말판 위에 놓인 윷말과도 유사했다. 허풍쟁이 악마의 원환이란 그의 황금이 매장되어 있는 금광이기도 했는데, 당장 허풍쟁이 악마를 발견해 자아의 궤도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가 착수금을 통해 구가했던 호사스러운 나날들이 한때의 환상이자 허황된 꿈으로 소각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뜬구름에 매몰되었다는 느낌, 짙은 물안개가 스스로를 에워싸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이러한 목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저절로 혼잣말이 줄줄 새었다. 멍하니 넋이 나가 의식이 혼몽해졌다.


*


청년 시절의 그는 분수에 넘치는 횡재를 누리며 살았다. 노동하는 대신 매일 소박한 파티를 벌였다. 흔들의자에 앉아 양손을 가슴에 얹으면 꿈이 그를 납치해 남모를 우주로 데려갔다. 그는 하얀 돛을 단 범선에 탑승해 하나같이 키메라를 모사하는 별자리들 사이를 항해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조그맣고 흡족한 탐험의 순간들, 무엇보다 잔디밭 위에 떨어진 카스텔라 조각이 노동요를 부르는 개미들에 의해 가지런하게 허물어지는 속도로 탐구되어야 하는 내면의 신비가 있었다.
당시 그는 대체 어디서부터 허풍쟁이 악마의 행방을 추적해야 하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거듭 강조하자면 그때 그는 어렸다. 그에겐 주어진 착수금과 함께 아직 작성되지 않은 많은 시간이 예비되어 있었다. 딱히 정해지지 않은 마감 기한까지 성실하고 침착하게 허풍쟁이 악마의 흔적과 자취를 수집한다면 언젠가 허풍쟁이 악마를 근거리에서 미행할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흥청망청 생활하는 동안에도 간혹, 아니 거의 매일, 허풍쟁이 악마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허풍쟁이 악마는 사실 내 마음속에 있는 녀석이 아닐까, 녀석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꺼내고 ‘찾았다!’고 소리치는 게 탐정으로서 내게 부여된 잔인한 운명의 역설은 아닐까 등등의 시시한, 그 물음 자체가 근본적이며 철학적으로 기능하는 까닭에 내용이며 구체성이 부재하기 쉬운 공상들을 머릿속으로 굴리며 시간을 때웠다. 결단코 그에게 공상이란 단서라곤 주어지지 않은 허풍쟁이 악마를 추적하고 조사하는 탐문의 일환이었다. 캄캄한 미래를 향해 상상력으로 불붙인 예지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 그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폐곡선을 그리며 밤하늘 아래로 가라앉는 광경을 보았다. 대개 불발이었으므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공상의 광채는 덧없고 아름다웠다.
허풍쟁이 악마는 끝내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이어진 오솔길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각종 재테크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많았다면 배상금을 갚은 뒤 허풍쟁이 악마와 맺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느끼는 공허는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문제야. 그것을 인정해야 해. 그는 읊조렸다. 그럼에도 이 공허를 거부하거나 긍정하기 위한 다양한 우회로, 바보 같고 어리석은 시도들, 분기하고 달아나며 폭죽처럼 터지는 착란의 궤적이 흩뿌려져 수놓인 공허의 천체가 이전과 같이 무의미하지는 않아. 나는 그것을 믿어. 그는 가느다랗게 뇌까렸다. 나는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거야. 머릿속에 잘 기입하고 나중에 복습해야지. 사랑이란 날마다 암송하지 않으면 쉽게 휘발되는 법이니까. 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에게 사과했다.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따분하게 하소연을 늘어놓는 자신과 입씨름을 해야 했다. 농담입니다. 미안해요. 농담이라니까요. 농담인데 왜 예민하게 굴어요. 농담이니 딱 한 번만 용서해 달라니까요. 침울하게 고개를 휘젓는 꼴이 안타까워 기운 좀 내시라고, 세상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체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팝콘처럼 곳곳에서 터져 입만 벌리면 받아먹을 정도가 되었는데, 대체 왜 농담 한마디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그렇게 빌빌거리고 있냐고요. 표정 관리 좀 하시고요. 농담? 농담! 당장 농담한 자의 혓바닥을 잘라 내게로 가지고 와!



매복자의 밤


거위들이 줄지어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나아갔다. 할머니 거위가 선봉에서 아기 거위들을 인솔했다. 뒤뚱거리는 거위들의 행렬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그의 망연자실한 심경이 증대되었고, 거위들은 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단했던 여행이 곧 끝난다는 사실에 산뜻하게 기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짜 푸아그라 농장까지 오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개울을 건널 때, 멀리뛰기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아기 거위들은 그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는 것 같은 물살에 겁먹어, 계곡의 싸늘한 공기 속에서 웅크려 몸을 떨었다. 할머니 거위는 아기 거위들을 한 마리씩 부리에 물고 급류 너머로 무려 스무 차례 이상의 목숨을 건 도약을 감행해야만 했다. 할머니 거위의 이러한 희생에 감동한 아기 거위들은 서로를 다그치며 그들의 연약한 체력으로는 수행하기 힘든 가짜 푸아그라 농장까지의 여정을 군말 없이 뒤따랐다. 다행스럽게도 여정은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무사히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비록 내가 쓰러져도 좋다. 아기 거위들을 가짜 푸아그라 농장까지 안전하게 인도할 수 있다면. 할머니 거위는 천천히 닳는 호흡 속에서 매양 발랄하게 율동하는 아기 거위들의 걸음걸이를 자주 떠올렸다. 둥실둥실한 엉덩이와 보드라운 솜털의 촉감 또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할머니 거위는 평생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할머니 거위의 간을 부식시켜 캄캄한 그을음을 만들었다. 간암을 앓고 있는 할머니 거위는 가짜 푸아그라 농장에 도달하는 순간 제 숨이 끊어지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주둥이가 파리했다. 늘 풍성해 자랑거리였던 깃털 또한 곳곳에 땜통이 생겨 너저분했다.
할머니 거위는 꿈에서 소인배 천사를 만났다. 소인배 천사가 자애로운 말투로 할머니 거위를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초대했다. 할머니 거위가 소인배 천사에게 항의했다. 소인배 천사 당신이 내 아기들을 책임질 수 있어요? 나만 책임질 거면 그런 무책임한 소리 제발 하지를 말아요. 소인배 천사가 생글거리듯 미소를 지었다. 데리고 오렴. 가짜 푸아그라 농장은 거위라면 누구든 환영한단다. 그날로 할머니 거위는 아기들을 이끌고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향하는 순례길에 올랐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아기 거위들을 주시하던 맹금류들 또한 할머니 거위의 마음에 감화되어 매양 표적을 빗나가지 않는 제 날카로운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한눈팔기 기술을 연마하기로 했다. 물론 한눈팔기란 맹금류들의 천성을 위배하는 행위였으므로 그들에게도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소인배 천사에 관해선 이후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할머니 거위를 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레 할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할몽은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매일 도서관에 출근해 소설을 썼다. 그가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아침이면 말린 구아바 잎을 달인 물을 스테인리스 보온병에 담았다. 밤새 막혔던 콧구멍을 미온수로 세척하는 절차를 거쳤다. 구아바 또한 축농증에 특효라고 널리 알려진 작물이었다. 비염과 축농증은 생애 내내 할몽을 괴롭힌 고질적인 질병이었다. 민간요법을 포함해 다양한 처방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할몽은 정숙이 요구되는 도서관에서 평소처럼 코를 훌쩍거릴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할몽이 노트북과 함께 지니고 나가는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종일 코를 풀었던 휴지들이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그는 소설을 쓰고 있는 할몽보다 고요한 열람실에서 코를 세게 풀어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할몽의 모습을 더 자주 상상했다. 그게 죄책감으로 남았다.
할몽의 새빨간 코는 녹아내린 양초를 닮았다. 손가락은 성마르고 뾰족하다. 이구아나, 혹은 그로테스크한 구관조와 유사한 외모이지만 형형한 눈빛과 얼굴을 뒤덮은 주름이 고집스러운 강인함을 표현한다. 장식 없는 머리띠로 백발을 정갈하게 빗어 올렸고, 얇은 입술에는 연분홍색 립밤을 발랐다. 당시 할몽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한 작가에게 위대함이 머무는 기간이란 고작해야 반나절, 대개는 눈을 감았다 뜨는 짧은 단위에 한정되기 마련이지만 이때 할몽은 그런 위대함의 가파른 벼랑에 무려 한 달 이상을 견실하게 매달려 있을 수 있는 언어적 피지컬을 획득한 상태였다. 언어와 씨름했던 많은 무용한 시간이 할몽에게 위대함을 제어하고 운용할 비밀스러운 교섭의 기술들을 자연스레 가르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타는 목마름과 영하의 온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폐소공포증을 견디며 재해 현장이나 극지방에서 한 달 이상을 생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할몽이 견뎠던 위대함의 강도란 그런 사람들에 필적하는 할몽의 초인적인 역량을 증언하는 일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언젠가 음습한 고블린을 연상시키는 늙은 초인이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할몽은 그야말로 골격이 분해되는 것만 같은 위대함의 중력에 맞서며 꼿꼿하게 들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압도적인 전율을 얻어맞고 있었다. 이때 손가락들은 뇌리를 타고 척추로 쏟아지는 전율의 자기장을 언어를 향해 방사하고 분유하는 피뢰침과 같은 역할을 했다. 자판 위를 격렬하게 질주하던 그 앙상한 손가락들이 없었다면 할몽의 두뇌는 머리로 퍼붓는 전율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까맣게 전소되었을지도 몰랐다. 전율은 빠르게 언어로 교환되어야 했다. 전율에 말문을 약탈당하기 전에, 전율 자체가 재고 품목으로 전락해 먼지와 침묵의 포로가 되기 전에 위대함을 세계를 향해 반출할 미지의 기교들, 능숙하고 세련된 협상의 방법들을 동원해야만 했다.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연달아 가로지르는 손가락의 리듬이 신체에 관류하는 전율의 에너지를 텍스트를 향해 유통하는 동안, 할몽은 자신이 드디어 이 전율의 유통망을 손아귀에 움켜쥐어 자유롭게 휘두를 저력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전율 속에서 실감했을 것이었다. 할몽이 남들의 시선에선 팽팽 코를 풀며 민폐를 끼치고 종일 티슈를 남용하며 도서관의 적막을 훼손하는 주변머리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할몽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나? 할몽의 몸에서 감식초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무슨 문제인가? 고집쟁이 할망구가 얌전히 집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괜히 도서관으로 나와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도서관의 엄숙한 분위기를 저해하는 괴팍한 무법자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할몽을 도서관에서 내쫓기 위해 그 깡마른 어깨에 손을 얹으면 누구나 할몽의 전신을 관통하는 전율의 번개에 감전되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내장까지 낙뢰가 다녀가고 온몸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잿더미로 변한다. 황금기에 이른 작가는 하느님도 말리지 못한다. 할몽이 그렇다. 하느님이 할몽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고 해도 전혀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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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양손을 휘젓고 주먹을 쥐었다 펼치며 그것이 자신의 손임을 확인했다. 마음대로 손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모호했다. 그는 박수를 쳤다. 허공에서 나부끼는 자신의 손을 응시하고 있으면 서커스를 관람하듯 신기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밑창에 비계가 달라붙은 슬리퍼를 신고 걸을 때처럼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서 짝짝 소리가 났다. 석양 속으로 그의 그림자가 오솔길 너머까지 번졌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꺼냈다. 날붙이에 노을의 광채가 스미도록 했다. 그의 곁에는 나이프를 갈고 또 갈았던 얼룩무늬 몽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표면으로 십자 모양의 홈이 패어 있었다. 녹슨 부분을 몽돌에 문지른 시간만큼 나이프의 도신이 가늘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한 바 없었지만 결국 그는 이 나이프로 빚더미의 심장을 찔러 제 운명을 구제할 예정이었다. 붉은 칼날이 예리하게 번쩍거렸다. 석양은 묻히지 않은 피 대신이었다.
그가 거주하던 저택의 뒤뜰에는 가슴팍에 허풍쟁이 악마라고 적힌 스티커를 부착한 허수아비 인형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우렁찬 기합과 함께 나이프를 마구 휘두르며 허수아비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른바 허풍쟁이 악마를 향한 암살 연습이기도 했는데, 목덜미와 가슴과 사타구니, 급소가 될 만한 부위로 칼날을 전진시키면 인조 솜으로 채워진 허수아비들이 찢어져 하얀 속을 내비쳤다. 충전재가 상처 바깥으로 비어져 뒤뜰에 펼쳐졌다. 그는 자신이 허풍쟁이 악마를 단칼에 해치우리라 자신했다. 도륙되어 널브러진 더미 인형들이 뒤뜰에 음산한 분위기를 덧입혔다. 내리쬐는 태양에 의해 노랗게 변색된 인조 솜들은 곧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지고 굳어져 잔디며 잡초, 다채로운 풀꽃들이 물먹은 섬유질 너머로 번식하는 모종판이 되었다. 그는 하인들을 시켜 뒤뜰의 솜이며 더미 인형들을 모두 치우도록 명령했다. 청소가 끝난 뒤 그는 새로운 허수아비를 들였다. 이때 허수아비는 열기구처럼 커다랗게 부푼 스크루지 인형이었다.
나이프로 스크루지 인형의 배를 가를 때마다 수백 장의 신사임당이 뒤뜰에 나뒹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마치 축복 같았다. 그는 기마 자세를 취한 채 단 한 차례의 칼질로 인형의 속을 채운 지폐를 전부 들어낼 방법을 모색했다. 가끔은 인형을 난도질하며 분풀이를 했는데, 하인들은 진지한 그의 검술 연습을 구경하며 턱이 빠져라 하품을 하거나 심드렁하게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실력이 하찮군. 검도에는 재능이 없는 게 분명해. 밤이 되어 그의 연습이 종료되면 뒤뜰로 바느질에 능한 재단사들이 방문했다. 하인들이 이미 빗자루로 쓸어 마대에 보관한 지폐들을 상처 부위에 쑤셔 넣고 숙련된 손놀림으로 봉합을 시도했다. 굵기가 황소의 넓적다리에 필적하는 바늘을 휘둘러 거대한 스크루지 인형을 수선하는 재단사들의 재봉 기술은 그가 연마한 검술보다 화려하고 섬세했으며, 동작마다 밝은 달빛, 그리고 적막한 밤에 어울리는 호젓하고 우아한 풍모를 환기하고 있었다. 마치 무협 영화 속의 고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무공을 겨루고 있는 듯했다. 재단사와 하인이 많은 양의 지폐를 의도적으로 횡령하고 있었음에도 스크루지 인형은 아침마다 같은 규모로 팽창해 그의 칼날을 맞이했다. 가슴팍에 꿰매진 무수한 재봉선이 진짜 지폐들, 그리고 하인들과 재단사들의 음모에 의해 정교하게 모사된 위폐들을 뒤섞어 억류하고 있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재단사들과 하인들을 찾아가 부채를 조금씩만 나누어 달라고 애걸했을 것이었다. 지금 폐허가 된 뒤뜰에 버려진 스크루지 인형은 그 모습이 마른 콩꼬투리처럼 홀쭉해졌다. 위폐를 포함한 지폐 전부가 허풍쟁이 악마에게 인계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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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배 천사와의 만남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일단 그가 베레모를 도둑맞고 말았다는 사실에 대해 먼저 서술하도록 하자.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했듯 그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베레모를 비스듬히 눌러쓰고 있었다. 이 베레모는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했을 때부터 그가 평생 애지중지했던 물건이었다. 배상금에 관한 최후의 통보가 있던 날 그는 자신이 가진 진귀한 소장품 대부분을 경매에 내놓았다. 그때에도 베레모는 그의 영광스러운 소지품으로서 버젓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거울 앞에 서면 스스로를 존중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너 좀 멀쩡하네? 거울 속의 베레모가 말했다. 베레모는 그의 이마에서 배출된 땀과 체액으로 곯아 심한 악취를 풍겼다. 더럽고 누추했지만 함부로 취급될 물건이 아니었다. 그가 베레모를 자존감 버섯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내 머리 위에 자존감 버섯이 피어 있는 한 누구도 나를 망가뜨릴 수 없지. 자존감 버섯은 그의 초라한 행색에 화룡점정을 찍는 비루함의 휘장, 누구에게도 빼앗겨선 안 될 누더기 왕관이기도 했다.
어느 날 가짜 푸아그라 마을로 향하는 오솔길로 산책을 나온 사악한 어린아이는 베레모 속에 감춰진 그의 기름진 머리카락이 궁금하다. 대개 인간은 그런 충동 내지는 호기심을 갖는 법이다. 대체 어떤 모양의 까치집일까. 혹시 대머리는 아닐까. 진짜 재밌겠다. 사악한 어린아이의 속내를 간파한 그는 베레모를 수호하기 위해 마치 아르마딜로를 연상시키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대개 어린아이들의 영리함은, 특히 사악한 어린아이들이 보유한 짓궂은 총기는 어른의 수비 범위를 훌쩍 추월하기 마련이어서 여러모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사악한 어린아이가 그의 면전에 우두커니 서서 볶은 땅콩 두 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노숙자 선생님, 땅콩이 아주 고소해요. 이 얼마만의 애정 어린 관심이자 긍휼한 적선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땅콩을 건네받기 위해 손을 뻗는다면 자세가 허물어질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사악한 어린아이가 머리에 올라앉은 자존감 버섯을 가로채 냅다 달아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가 땅콩을 거절해야 할까. 요새 부쩍 과민해진 그의 성격이 선량하고 무구한 땅콩을 음흉하고 엉큼한 땅콩으로 곡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볶은 땅콩의 고소함 속에는 어떤 불가해한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사악한 어린아이가 사악한 어린아이로 위장한 허풍쟁이 악마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질 예정이었다. 허풍쟁이 악마는 이렇듯 대담한 방법으로 오솔길에 매복한 그의 감시를 무력화했던 것이다. 여하간 사악한 어린아이는 팽팽하게 당겨진 기다림의 고무줄을 절단하고 가짜 푸아그라 농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허겁지겁 사악한 어린아이를 뒤쫓았다. 내 베레모 내놔 이 자식아……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냐…… 너 잡히면 불호령이 떨어질 거다! 그는 호통을 쳤다. 울분이 샘솟는 과정에서 혼잣말도 잠시 멎었다. 사악한 어린아이는 손가락에 골무처럼 끼운 자존감 버섯을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아득한 오솔길 저편으로 멀어졌다. 돌부리에 걸려 나동그라진 그는 베레모의 환영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순간의 방심으로 일평생 그를 호위했던 자존감 버섯을 빼앗기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허풍쟁이 악마를 향한 기다림마저 저버린 채로 베레모를 부르짖었다. 덤불이며 가시덩굴을 미친 듯이 손아귀로 잡아채며, 자존감 버섯을 그리워하는 가운데 오솔길의 끝과 끝을 표류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오랜만에 드러난 이마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상쾌했다.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항상 그를 피하던 청솔모 한 마리가 갑자기 친근감을 느끼며 다가와 그의 목덜미에 올라앉는 은총을 베풀었다. 그는 청솔모가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온몸을 경직시켜 최대한 움직임을 차단한 채 자존감 버섯에 대한 상실감을 목 놓아 토로했다.
한편 가짜 푸아그라 농장에서는 허풍쟁이 악마의 복귀를 환영하는 경축 만찬이 거행되는 중이었다. 첫 번째 희생자는 와병으로 사망한 할머니 거위였다. 다른 거위를 죽여 내놓을 수는 없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무력한 거위들은 비탄 속에서 기다란 모가지를 바닥에 늘어뜨리고 침통하게 우짖었다. 허풍쟁이 악마는 그릴에 구운 할머니 거위의 사체를 집게로 헤집었다. 쌀알 크기의 푸아그라를 이쑤시개로 찍어 혓바닥에 올려놓았다. 할머니 거위의 간은 암으로 조직이 괴사해 있었다. 씁쓸하고 역겨운 맛을 느낀 허풍쟁이 악마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불같이 화를 냈다. 농장의 식구들이 합심해 자신을 능멸한다고 생각했다. 허풍쟁이 악마는 붉은 목장갑을 끼고 친히 헛간으로 향해 애꿎은 거위 몇 마리를 손수 도살했다. 간을 적출했다. 허풍쟁이 악마는 자신이 농장을 방치한 사이 푸아그라의 품질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고 말했다. 주사기로 붉은색을 띠고 있는 미지의 용액을 푸아그라에 주입하자 접시 위의 간이 울룩불룩하게 부풀었다. 허풍쟁이 악마는 팽창하는 간을 움켜쥐고 입으로 가져가 그대로 우물거렸다. 쇠스랑에 거꾸로 매달린 거위 사체들 아래로 간을 제외한 다른 내장들이 녹진하게 미끄러졌다. 소인배 천사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했다. 서럽게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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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는 생각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제 자존감 지수를 의식하고 괜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가끔은 아무렇게나 휴식해도 괜찮을 마음의 텃밭을 종일 순찰하고 감독하는 피로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지 않냐. 자존감의 높낮이를 통해 내면에 자리한 비가시적인 영역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측량하고 어필해야 하는 속류 심리학에 중독되어 있지 않냐. 대낮에 자존감 버섯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이렇게 합리화하고 일축하다가도 밤이 되면 으레 그의 머릿속으로 모면할 수 없는 근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왕성해지는 생각의 그림자에 짓눌렸다. 인생이 끝장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밤의 새까만 칠판 위에 터무니없이 장황한 수식을 적어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대체 누구에게?
베레모는 그렇다고 치자. 그가 베레모 때문에 정신없이 오솔길을 방황하던 그때 허풍쟁이 악마가 유유히 오솔길을 지나 가짜 푸아그라 농장에 도착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동안의 기다림이 보람 없는 나날들이었던 걸까. 그가 되감고 되먹이던 혼잣말을 합치면 책 한 권을 능히 집필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 책의 제목은 마땅히 ‘자존감 버섯’이 아니라 ‘허풍쟁이 악마’가 되어야 할 텐데…… 베레모 때문에 기다림의 의무를 유기했다니 그야말로 치명적이지 않은가. 허풍쟁이 악마가 나타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슬그머니 종말을 고한다. 목적 없음, 집도 절도 없음이라는 광막한 무차별성이 그를 심문한다. 지금이라도 허풍쟁이 악마에 대한 기다림을 단념하는 게 좋지 않을까? 배상금의 일부를 지불할 방법에 골몰해 파산을 늦추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뒤척였다. 그러나 허풍쟁이 악마가 아직 오솔길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이렇게 체념하고 기다림의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 아닐까? 과거와 미래는 가위바위보 게임과 비슷하지 않은지…… 가위를 제시하면 주먹이 돌아오고 주먹을 증정하면 보자기가 돌아오는 악순환의 루프를 끊어내야 하고, 있는 힘껏 내팽개친 주사위에 편승해 승리하거나 패배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때 오솔길 너머가 밝아졌다. 도깨비불 같은 주황색 광채가 정면에서 그를 향해 가까워졌다. 가짜 푸아그라 농장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소인배 천사의 비서인 스미스 씨가 부리에 손전등을 문 채로 다가왔다. 스미스 씨는 물갈퀴를 잠방거리며 당차게 걸었다. 소인배 천사가 광주리를 품에 안고 앞장선 스미스 씨를 뒤따랐다. 스미스 씨는 꽥꽥 유난을 떨며 그의 얼굴로 불빛을 들이댔다. 시야가 불빛의 잔상으로 혼탁해졌다. 눈을 깜빡거리자 잠시 후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소인배 천사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스미스 씨가 손전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광채가 오솔길의 어두컴컴한 덤불 사이로 번졌다. 청솔모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미스 씨는 날개를 이용해 제 우울감에 질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뺨을 몇 차례 후려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저앉아 입을 벌리고 소인배 천사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행위가 예의가 아니라는 듯 부리로 목덜미를 콕콕 찌르기도 했다. 그는 황망하게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소인배 천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소인배 천사는 얼굴이 까칠했다. 눈두덩이 가무잡잡했다. 소인배 천사가 그의 인사에 화답했지만, 목이 쉬어 이전의 인자하고 다정한 느낌을 발견할 수 없었다. 소인배 천사의 광주리 안에는 그가 잃어버렸던 자존감 버섯이 담겨 있었다. 민달팽이가 점액질의 궤적을 남기며 모자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허풍쟁이 악마가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돌아오리라는 소식을 전해 준 이가 바로 소인배 천사였다. 그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소인배 천사는 원래는 하얀 빛깔이었을 얇은 튜닉을 걸쳤으며 붉은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다. 튜닉은 거위들의 똥과 오줌에 얼룩져 마치 색색의 물감을 뿌린 것처럼 알록달록했다. 소인배 천사는 항상 온몸에 거위들의 흔적과 체취를 듬뿍 묻히고 다녔으며 거위들과 생활하는 까닭에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소인배 천사는 오늘 아침 오솔길에서 그의 자존감 버섯을 빼앗아 도망친 이가 바로 변장술에 능한 허풍쟁이 악마였다고 말했다. 잘 들어요. 소인배 천사가 그를 나무랐다. 말에 위엄이 어려 있었고, 그를 단호하게 꾸짖다가도 말을 삼키는 어투에서 솟구치는 노기를 억제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오늘부터 혼잣말 금지예요. 그 혀를 잘라 거위들의 밥으로 주기 전에 입 닥치고 제 말 들어요. 말 좀 관둬. 그는 꿀 먹은 것처럼 입을 다물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생각이 너무 많은 거예요 머리가 나쁜 거예요? 그는 수줍어하는 사람처럼 발바닥으로 바닥을 긁었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행각을 보다 못한 스미스 씨가 부리를 세워 그의 항문에 분노의 일격을 날렸다. 그는 엉덩이를 감싼 채 소인배 천사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지켜야 하는 건 당신 통장만이 아니라 우리 거위 식구들이 있는 가짜 푸아그라 농장이기도 했어요. 거위들의 보고를 받으니 당신은 임무에 성실하지 못했고, 기척을 숨기지도 않은 채 몇 날 며칠이고 오솔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고 하더군요. 덤불 사이에 포복하지도,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 고요하게 숨을 죽이고 표적을 노리려 하지도 않았다고요. 꾀죄죄한 몰골로 오솔길 가장자리에 앉아 혼잣말을 일삼으며 소음 공해를 유발했다고요. 당신이 허풍쟁이 악마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 어귀에까지 파다하게 퍼졌어요. 당신이 딴청을 피우고 임무를 등한시하는 동안 우리 거위 식구들이 셋이나 죽었다는 거 아세요? 진작 침묵을 선택해야 했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강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죠. 엉거주춤 앉아 자신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겠죠. 그러나 당신이 낳은 건 황금알이 아니라 낙동강 오리알에 불과했어요. 낙동강 오리알은 공배이자 공란처럼 껍데기만 남아 가라앉지 않고 강물 아래로 떠내려가는 잘린 머리들에 불과해요. 두뇌가 없지요. 가격표가 없어요. 당신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오직 당신만이 배 속의 황금알을 입증하기 위해 천 개가 넘는 낙동강 오리알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천 개가 넘는 낙동강 오리알을 팔아도 한 개의 황금알을 손아귀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자인하면서, 비워진 마음이 그만큼이나 무수한 낙동강 오리알을 생산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때로는 은근히 즐거워하면서 말이죠. 자존감 버섯 위에 올라앉은 민달팽이가 뜨악한 그를 향해 찡긋 윙크를 했다. 곧 스미스 씨의 먹이가 될 녀석이었다.



푸아그라 포르노


베레모를 쓴 거위를 목격한 일이 있나. 여태 베레모 따위에 집착하고 있었다면 두 번째로 주어진 기회가 허망하게 무산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오솔길에 베레모를 내팽개쳤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 시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느낌이라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가롭게 자신을 칭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바글거리는 거위들 틈바구니에서 거위 분장을 하고 있었다. 스미스 씨가 안내한 가짜 푸아그라 농장의 헛간에는 거위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그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임무에 실패한 그를 용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분통이 터져 소란스럽게 날뛰는 호전적인 거위들 몇을 스미스 씨가 진정시켰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수군대며 으름장을 놓는 거위들 사이에서 괜스레 부리로 내벽을 두드리거나 머리를 짚단에 파묻기도 했다. 쳐다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눈을 마주치면 이성을 잃은 거위들이 단체로 그를 해코지할지도 몰랐다.
지금부터 새로운 작전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겠다. 그는 거위 흉내를 내며 가짜 푸아그라 농장의 헛간에 매복한다. 허풍쟁이 악마가 헛간을 방문한다. 곁에 있는 소인배 천사가 짐짓 시치미를 떼며 그를 지목한다. 저 녀석이 적당하거든요. 거위 친구들 사이에서도 간덩이가 커다란 놈으로 꽤 이름난 거위예요. 자신이 거위가 아니라 올빼미라고 착각하는 녀석이라니까요. 그는 해부실로 향한다. 그곳은 허풍쟁이 악마가 직접 거위를 해체해 푸아그라를 꺼내는 장소로, 그는 빈틈을 노려 허풍쟁이 악마를 응징할 기회를 거머쥐게 된다. 이 계획을 실현하는 일에 필요한 주된 역량이란 역시 그의 매복 능력이다. 어제까지 그의 은신처는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이었다. 오늘부터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거위의 풍성한 깃털 안쪽에 매복한다. 분장한 거위 바깥으로 제 인간성의 기척을 코빼기라도 내비치는 순간 정체가 까발려지고 만다. 그는 거위들 사이에 몸을 은신하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한 마리 잠룡으로 비유될 수 있다. 결정적인 타이밍이 다가오기까지 거위로서의 자신에 몰두하며 암약하는 일은 허풍쟁이 악마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가 치러야 하는 자명한 시련이자 고난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거위와 인간의 차이를 그다지 구분할 수 없는 이 소설의 우화적인 특성을 감안할 때 대체 어떻게 거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나누어 계열화할 수 있느냐의 난제가 생기지만, 여하간 그는 거위를 완벽히 연기하기 위해 황금알도 낙동강 오리알도 아닌 유정란 다섯 알을 꽁지 아래 품고 있었다. 만일 그의 매복이 유효하다면 내일 알이 부화해 다섯 마리의 아기 거위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코로 깃털이 들어가 자꾸만 재채기가 나왔다. 어미 거위들의 경우 알들 위에 차분하게 날개를 접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천사와 닮았긴 해도 굳이 천사를 시늉하지는 않는다. 그는 알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어미 거위들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알이 깨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워 몇 차례나 제 꽁지를 들춰 알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 바람에 잠들지도 못한다. 같은 온도의 품속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알 속에서는 아기 거위가 탄생하고, 어미 거위의 충분한 가호를 받지 못한 알들은 더 신속하게 부패한다. 알들이 폐사하리라는 걱정 때문에라도 포란에 집중하지 못하겠다. 아기 거위들을 위해 밤을 꼬박 새웠음에도 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들이친 아침 햇살이 문틈 사이로 찰랑거렸다. 그는 슬그머니 둥지에서 빠져나왔다. 거위처럼 엉덩이를 작위적으로 씰룩거리며 헛간을 배회했다. 새벽 내내 오리걸음 준비 자세로 버티고 있어야 해서 뻐근해진 무릎과 다리를 위로했다. 역시 무리였어. 그는 낙담했다. 아기 거위들의 입장에서도 나를 엄마라고 인정하기 싫을 거야. 나는 임무에 실패한 낙오자일 뿐인걸. 서늘했던 새벽 공기가 아침 햇살과 함께 데워졌다. 그는 알들 근처로 되돌아와 둥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말 미안해. 나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아. 새하얀 알들의 모습을 처연하게 응시했다. 천장의 환기구에서 햇볕이 둥글게 뻗어 들어왔다. 좁아진 빛의 접시가 알들 위로 어른거렸다. 알들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하느님의 우연한 돋보기 장난이 그러하듯 둥지를 중심으로 햇볕이 중첩되었다. 알들이 놓인 짚단이 불붙어 타오르지는 않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알들을 구출하기 위해 환한 빛의 접시 안쪽에 손을 넣었다. 움켜쥔 알들이 석탄처럼 뜨거웠다. 손바닥에 붉은 화상 자국이 남았다. 알들이 전구가 폭발할 때처럼 번쩍거렸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 양쪽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서 둥지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알 표면에 균열이 생겼다. 작은 구멍 속에서 아기 거위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아기 거위가 껍데기를 부수고 나오는 그 신성한 순간을 가만히 관찰했다. 화상으로 얼얼해진 손바닥을 혀로 핥으면서 말이다. 아기 거위는 자신이 태어나도록 힘을 북돋은 이가 실은 햇볕임을, 하느님의 돋보기 장난임을 알지 못한 채 그의 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떤 존재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부담스러운 당혹감, 감히 내가 이렇듯 큰 사랑의 포로가 되어 덩달아 납치되어도 괜찮은가 묻는 한없는 자격지심 속에서 그는 아기 거위를 포옹했다. 사족이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계기 또한 이런 존재들과 공유하는 사랑임이 분명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의 마음에서 발아하는 책임의 씨앗인 것이다. 그는 반드시 허풍쟁이 악마를 해치워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았겠는가. 나머지 알들에서도 뚜렷하게 탄생의 징후가 포착되었다. 아기 거위들과 함께 헛간 안의 여론이 반전되었다. 그를 고까워하며 계획의 성사 여부에 회의적이던 냉소주의자 거위들 또한 그런 태도를 소탈하게 내려놓고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스미스 씨가 날개를 들썩이며 그를 칭찬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웅변했지만 거위들은 그의 언어를 해독하지 못했다.
소인배 천사가 헛간으로 특식을 만들어 가져왔다. 제가 직접 봐서 알거든요. 천사의 날개는 사실 등짝이 아니라 발목 부근에 매달려 가늘게 파닥거리고 있거든요. 소인배 천사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천사는 이륙하지도 활강하지도 않아요. 다만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우리가 공중이라고 부르는, 천사에겐 고도와 깊이가 부재할 어떤 평평한 지대를 경쾌하고 의젓한 걸음걸이로 행진할 따름이죠. 그게 천사에게 어울리는 비행이에요. 공중을 가벼이 이동하는 천사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으면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죠. 지상에 묶여 있는 제 다리와 허공을 횡단하는 천사의 다리가 사실상 같은 동작으로 세계를 산책하고 있다는 게 정말 이상하고 아름답게 여겨지죠. 왼손에 받든 접시 위에는 소인배 천사가 상상한 영혼의 모델이 담겨 있었다. 너머가 비칠 정도로 얇게 부친 크레이프 낱장들을 겹겹이 포개 플레이팅한 살구색 튤립이었다. 크레이프 사이에 잼과 두유 크림을 듬뿍 얹어 두었어요. 영혼에 형태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형태가 있었다면 저는 이 크레이프 튤립을 영혼의 모델이라고 부르지 못했을 테니까요. 튤립은 아주 맛있었다. 믿기지 않는 솜씨라 덩달아 허겁지겁 먹게 되었다. 그게 아쉬웠다. 튤립의 달콤함이 뇌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인배 천사에겐 영혼의 모델에 관한 신비로운 레시피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조리법이 적힌 공책들이 부엌의 책꽂이를 간격 없이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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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쟁이 악마가 실종된 이후 소인배 천사는 농장의 임시 경영주로서 사업을 도맡아 운영했다. 거위들을 푸아그라가 담긴 쌈지 정도로 취급하던 진짜 푸아그라 농장은 소인배 천사의 활약으로 점차 거위들의 낙원으로 변모했다. 소인배 천사는 강낭콩과 당밀과 올리브유를 적절한 비율로 혼합한 가짜 푸아그라를 개발했다. 가짜 푸아그라는 푸아그라와 이름과 형태만 유사할 뿐 식감이 전혀 다른, 생소하며 희한한 음식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식품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미식가들의 환호와 호들갑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농장은 연일 가짜 푸아그라를 먹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푸아그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가짜 푸아그라를 한번 맛보면 혀에서 짜릿하고 관능적인 무도회가 벌어져 제 식탐을 제어하지 못하고 맑은 침을 주룩주룩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강낭콩과 당밀, 올리브유를 제외하고도 소량 첨가된 양귀비가 가짜 푸아그라의 폭발적인 인기를 견인하는 주된 악마의 재료라는 식의 의혹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이런 괴담은 이내 근거 없는 음해로 판명되었다.
소인배 천사의 요리 실력은 환상적이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자취를 감추기 전 허풍쟁이 악마는 종종 접시 위의 푸아그라를 나이프로 가리키며 그것을 거위 한 마리의 영혼이라고 말하곤 했다. 즉 거위의 알짜배기. 영혼이 머랭처럼 혓바닥 위에서 살살 녹는구나. 영혼이라는 게 이렇게 기름지고 부드럽다. 소인배 천사는 이런 비유를 끔찍하게 생각했다. 애초에 영혼이란 육체 안쪽에서 발굴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육체와 정신과도 무관한 가상적인 누빔점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영혼이란 어딘가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발생하는 어떤 순간을 지칭하는 낱말인지도 모르겠다. 육체를 파헤치면 육체만 있을 뿐이지. 정신을 파헤치면 심연이 있을 뿐이고. 영혼이란 가짜 푸아그라 같은 거야.
가짜 푸아그라를 통해 농장은 전례 없는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소인배 천사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거위들의 생계와 복지를 위해 지출했다. 거위들은 이제 협소하고 열악한 헛간 안쪽에서 태어나 목을 틀어쥐는 암실로 인계되어 제 간덩이를 살찌워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좋았다. 자유롭게 농장 안팎을 드나들었다. 마당을 질주하고, 채마밭을 어지럽히고,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초원으로 피크닉을 나갔으며, 강낭콩 반죽을 치대고 있는 소인배 천사의 일손을 보조하며 한껏 생색을 내기도 했다. 친절한 거위들은 식당에서 웨이터로 근무했다. 근엄한 거위들은 종일 마당에서 동상처럼 멋진 자세로 서 있었다. 다정한 거위들은 마주한 거위들을 빼놓지 않고 안아 주었다. 사교성이라곤 태생적으로 갖지 못해 괴팍한 거위들 또한 면벽할 권리, 홀로 사색할 권리, 마음껏 토라질 수 있는 권리를 얼마든지 갖고 있었다. 아무 곳에나 오줌을 갈기고 울며 버둥거려도 이 모습 자체를 흐뭇하게 바라보면 그뿐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거위들은 똥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깃털을 뽑아 공중에 글을 썼다. 거위들의 세계에서 윤리는 자발성에 기초한 비폭력적인 공감대 속에서 당위성이 아닌 개별 거위들의 정직성을 통해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소인배 천사는 단연 농장에서 권위를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이때 권위란 상대를 향한 동반자로서의 믿음, 공손하게 경청하거나 비판하고 물음을 제기하며 답을 기다릴 때 마음속에 우러나는 신뢰와 겸양의 감정을 가리킬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불행했던 시절의 기억이 응축된 농장 내의 장소들은 억울함이 북받칠 때 들어가 몇 날 며칠이고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제 슬픔을 애도할 수 있는 개방된 전당으로 변신했다. 죽음은 더는 조급하게 거위들을 뒤쫓지 않았다. 거위들은 자연사할 수 있었다. 돌연사할 수도, 병사할 수도, 자살할 수도 있었다. 푸아그라의 유통기한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얼마든지 죽음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초할 여지가 있었다. 거위들은 더는 빨래처럼 거꾸로 널려 죽음 이후의 생피를 게워내지 않아도 되었다. 가짜 푸아그라 농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입구에서 그들을 낚아채는 거위 군단의 질풍노도 같은 흐름에 떠밀려 농장의 이곳저곳을 견학했다. 혼비백산한 상태에서 먹는 가짜 푸아그라는 최상의 진미였다. 자신들이 방금 연못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거위들의 영구적인 행복에 공헌하고 있다는 인식이 가짜 푸아그라의 맛을 돋우는 향신료로 작용했던 것이다. 인간이란 으레 이런 도취된 기분 속에서 인류세니 종말이니 생태주의적 실천이니 하는 말들을 전개하며 거들먹거릴 때 동물적인 고양감을 느끼기 마련이고, 거위들 또한 인간의 이런 습속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았지만. 인간의 고양감이 농장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구촌을 방랑하는 모험가 거위들이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찾아와 이곳까지 오며 겪었던 험난한 여정들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거위들은 겁을 내기는커녕 용감하게 모험가를 자처하며 농장 밖으로 나섰고, 잔뼈가 굵은 모험가 거위가 되어 돌아와 원래 있었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접속시켰다.
소인배 천사는 가짜 푸아그라가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열광 속에서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매양 다채로운 조리법을 연구했다. 소인배 천사의 꿈은 가짜 푸아그라가 진짜 푸아그라의 대체 식품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두부나 낫또처럼 음식으로서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소인배 천사는 푸아그라라는 이름을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가짜 푸아그라와 진짜 푸아그라가 독립되어 별개의 음식으로 공존하는 상황을 원치 않았던 까닭이었다. 소인배 천사가 지향하는 전망의 핵심이란 가짜 푸아그라를 통해 진짜 푸아그라를 잊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해 가짜 푸아그라를 이용해 진짜 푸아그라가 보유한 진짜로서의 지위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소인배 천사의 꿈이 이뤄진다면 훗날 사람들은 가짜 푸아그라를 진짜 푸아그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현재의 진짜 푸아그라는 따분한 인간 백과사전들이 음식 앞에서 줄줄이 낭독하기 시작하는 신변잡기 지식으로, 문헌에서만 존재하는 외면당한 음식의 자리로 물러나 차츰 퇴장하게 될 것이며 가짜 푸아그라만이 유구한 시간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된 조리법을 통해 계승되고 발전하는 식으로 인간의 식탁에 올라가게 될 것이었다. 그때 푸아그라는 그 이름의 속뜻처럼 적출된 거위의 간을 지시하지 않고 그저 거위의 간덩이와 상사적인 관계를 가질 따름인 강낭콩과 당밀 반죽을 일컫는 단어가 될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일에는 여러 어려움이 산적해 있었다. 소인배 천사가 가짜 푸아그라의 레시피를 다른 이들에게 아무리 전파하고 가르쳐도 다른 이들에 의해 제조된 가짜 푸아그라는 농장에서 제조한 가짜 푸아그라만 못했기 때문이다. 진짜 푸아그라 성애자들은 이 점에 착안해 가짜 푸아그라에는 쉬이 넘어가지 못할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농장의 위생 상태가 처참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동안 인간이 휘두른 착취적인 행태에 악의를 품고 복수의 화신으로 성장한 거위들이 늦은 새벽마다 가짜 푸아그라에 배설물을 살포해 반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 유언비어는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농장에서 거위들은 어느 곳에나 똥과 오줌을 투척할 전적인 자유를 구가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진짜 푸아그라 성애자들은 가짜 푸아그라의 신묘한 맛이 실은 거위의 배설물로 야기된 환각 효과이며, 가짜 푸아그라에 미식 취향을 갖는 일은 현대성의 보루인 위생 관념을 스스로 폐기하는 야만적인 퇴행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야만적인 퇴행 좀 하면 어때? 소인배 천사의 공로로 진짜 푸아그라 성애자들만큼의 가짜 푸아그라 성애자들 또한 생겨났다. 그들에게 가짜 푸아그라를 불필요한 오해와 문제적인 소동에서 구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일은 일단 가짜 푸아그라가 제공하는 황홀경과 뒤따라 나오는 탐미적인 트림을 향유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거한 거위의 배설물을 가짜 푸아그라 반죽에 붓고 뒤섞었다. 이를 통해 집에서도 직접 가짜 푸아그라의 맛을 복제할 수 있으리라 소망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푸아그라는 음해자들의 말처럼 환각 효과를 일으켰지만 진짜 가짜 푸아그라는 아니었다. 그것은 예컨대, 배설물 푸아그라였다. 배설물 푸아그라는 가짜 푸아그라와는 달리 엑스터시 수준의 유해한 의존성과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진짜 푸아그라 성애자든 가짜 푸아그라 성애자든 배설물 푸아그라를 한번 맛보면 종일 거위들의 종종거리는 꽁무니를 쫓아 배설물을 구걸하며 그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향해 눈물겨운 애원의 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신선한 자연산 배설물을 주세요, 거위 나으리. 저희가 나으리의 배설물을 강력하게 욕망합니다.
소인배 천사의 탁월한 요리 실력과 사업 수완이 결합한 결과인 가짜 푸아그라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임시 경영주로서의 업적이었다. 그래서 불안정했다. 농장으로 돌아온 허풍쟁이 악마는 폭압적인 손길로 거위들을 잡아 가두고 헛간에 자물쇠를 채웠다. 소인배 천사는 거위들을 농장 바깥으로 대피시키려고 했다. 뭉게구름 같은 거위 무리가 피난민이 되어 마을로 내려갔다. 그러나 거위들을 전부 구출하지는 못했다. 가짜 푸아그라 반죽들이 비축된 농장의 창고를 순찰한 허풍쟁이 악마는 이 반죽들이 모두 거위의 먹이는 아니냐고 되물었다. 얼마든지 거위들의 간을 살찌울 수 있겠구나. 가짜 푸아그라는 거위들을 사육하기 위한 먹이로 공여되기 시작했다. 소인배 천사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만든 가짜 푸아그라가 거위들의 지방간을 부풀리는 용도로 사용되리라는 사실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위들은 가짜 푸아그라를 삼키며 점점 뚱뚱해졌다. 가짜 푸아그라는 이제 음식이 아니라 비닐 팩 안에서 거위의 모가지를 향해 투입되는 걸쭉하고 질펀한 덩어리에 가까워졌다. 거위들은 자신의 위장으로 쉬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 그 눅눅한 덩어리들 때문에 점점 미쳐 갔다.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종량제 봉투처럼 거위의 몸뚱이가 붓고, 폭식 노동을 견디지 못해 죽은 거위는 다른 거위들의 사체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종량제 봉투 안으로 들어갔다. 모가지를 틀어쥔 허풍쟁이 악마의 손아귀에 의해 검고 으슥한 플라스틱 구덩이 속으로 버려졌다. 살아남은 거위들은 제 몸뚱이의 절반 크기나 되는 황금알을 배 속에 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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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그는 어엿한 거위 한 마리를 훌륭하게 연기할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며칠 전 허풍쟁이 악마가 그를 지목했다. 오더를 내렸다. 때가 왔나. 그는 날개로 혁명의 돌풍을 일으키듯 분주하게 겨드랑이를 펄럭거리며 헛간을 떠났다. 이내 그는 겨우 엉덩이를 붙이는 일이 고작인 비좁은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의자가 안쪽으로 꺼지는 것처럼 우묵하게 낮아졌다. 철제 커버가 몸뚱이 위로 씌워졌다. 그는 어둠 속에 감금되었다. 기울어진 좌석에 의해 사선으로 눕혀진 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였다. 몸뚱이 전체가 박동하는 심장인 양 쿵쿵거렸다. 공간에 의해 결박된 관절이 좌우로 비틀렸다. 그는 이 구속 장치의 목적이 거위 한 마리의 열량 소모를 극단적으로 저지하는 것, 지방을 연소하지 못하도록 행동과 동선의 반경을 축소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은 실제로 겪게 되는 이러한 체험의 실상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허풍쟁이 악마를 완전히 기만하기 위해서는 이 장치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는 깔때기 모양의 합판에 의해 강제로 모가지를 쳐들린 상태였다. 목구멍에 삽관된 노즐 안으로 액화되어 곤죽이 된 탄수화물 덩어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공간이 협소해 공황 발작이 거듭되었다. 거부할 도리 없이 사출구를 물고 있어야만 했으며, 개구기를 착용한 것처럼 씹고 뱉거나 비명을 지르고, 구토하거나 물어뜯을 능력이 봉쇄된 입은 폭식 장치의 케이블에 단단하게 결속된 채로 요지부동이었다. 사출구 끄트머리에 달린 집게발이 목구멍을 파고들어 후두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위장으로 젖은 펄프 같은 질감을 가진 흥건한 탄수화물 덩어리들이 그의 의지가 아닌 주입하는 기계의 압력에 의해 거침없이 퍼부어졌다. 노즐이 덜렁거렸다. 온몸에 힘이 풀리고 지금껏 경험한 적 없었던 어마어마한 쇠약감이 엄습했다. 그는 유출되는 덩어리들과 함께 실신 직전의 감각을 부조리하게 루핑하고 있는 것만 같은 궤멸적인 무력감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위장은 뒤집힌 채로 튀어 오르며 질척한 음용액을 위로 토하려 했고, 아래로는 역류하는 토사물을 가라앉혀 억누르는 장치의 가혹한 운동성이 그를 통제했다. 토사물이 비강으로 넘쳤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폭식 장치의 센서가 식도 끝까지 차오른 덩어리들을 감지해 치사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먹이의 양을 조절했다. 시끄러운 전자음이 귀청을 때렸다. 속에서 부대끼는 위장이 다른 장기들을 압박했다. 마치 누군가 갈빗대를 매섭게 구타하고 있는 듯했다. 질식할 것처럼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지만 노즐을 관류하는 덩어리들의 넘실거리는 느낌이 그를 괴롭혀 지속적인 각성 상태를 촉발했다. 그는 얼마간 기절해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먹이의 투입이 그치지 않았다. 시야가 점멸했다. 위장은 늘어나 헐렁해진 만큼 보다 많은 양의 먹이를 수용했다. 벌어진 항문으로는 배설물이 둔감하게, 끈적끈적하고 미끄덩한 시럽처럼 낙하해 수챗구멍으로 흘러갔다. 역겨운 체기와 함께 괄약근을 지나는 배설물의 감각만이 그의 육체가 길고 구불구불한 튜브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했다. 위장이 죽창에 꿰뚫린 것처럼 욱신거렸다. 그는 살아갔다. 단순하게 진동하는 육체의 아우성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할 어느 가없는 어둠 속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만을 의식했다. 그는 육체가 아닌 다른 어떤 차원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비되고 최면에 걸려 있었다. 요동쳤고 얼크러졌으며 분출되었고 다시금 속박되었다. 으스러졌고 격발되었고 추락했으며 꼬챙이에 꿰여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는 장치에 연루된 밥줄이었고 소화 기관이었으며 장치가 퍼붓는 물큰한 덩어리에 매달려 실재하는 즉물적인 감각들 자체, 탄수화물 덩어리들을 비축하거나 배출하는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이 모든 불수의적인 타성과 탄력과 탈진의 연쇄, 육체 안쪽에 밀폐된 소용돌이들의 과격하고 난잡하며 고통스러운 작용점이자 극복할 수 없이 충만하게 들끓는 몸뚱이의 실효성이었다. 그는 꼴깍거리고 할짝거리며 꿀꺽거리고 헐떡거리는 무정형으로서의 시간들 속에서 적나라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의식은 몸의 반응들 사이에서 조각난 채 발작적으로 되살아났다. 그것은 목구멍에 꽂힌 사출기를 뱉어내려는 무용한 몸부림이자 음식물의 투입이 잠시 정지되었을 때 잠시 경험되는 기진맥진한 절망감을 의미할 따름이었다. 인간성의 잔해들이 신체를 저주하고 부정하는 말의 파편이 되어 그를 찔렀다.
폭식 장치는 거위와 인간이 본성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거위에게도 인간에게도 특별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과 거위는 폭식 장치적인 보편성 속에서 호환될 수 있는 주둥이,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주머니로서 평등하고 균질한, 특성 없는 두 몸뚱이가 되어 나란히 병렬된다. 인간과 거위는 장치와의 결합을 통해 황금알을 출력하는 매체이자 공장으로서 무차별하게 작동한다. 거위가 되기 위해서 함부로 어깻죽지에 날개를 달고 뒤뚱거리기 전에 인간은 먼저 스스로를 고사시킬 퇴행적인 단계에 진입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장치의 명령이기도 하다. 인간과 거위의 생물학적인 차이는 폭식 장치의 입장에서 발가락의 길이나 점의 위치처럼 사소해 접촉 불량이나 기계의 오류를 일으키는 요소로 격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과 거위를 향해 공평한 노동이, 공평한 고행의 과정이 할당된다. 그는 점차 고분고분하며 양순해진다. 먹이에 불응하던 신체는 자신이 장치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가운데 제 비자발성에 순응하기 시작한다. 덜렁거리는 노즐의 운동에 귀속된다. 그는 너그러워진다. 너그러움이 목구멍에서 항문에 이르는 오솔길을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무중력이나 가사 상태와도 같은 몽롱하고 아득한 심신상실이 그가 속한 세계다. 그는 꿈을 꾼다. 그는 꿈속에서 자신을 영원히 실현한다. 가짜 푸아그라 농장에 거주하는 꼬마 거위 한 마리를 향해 영원히 날갯짓한다.


*


그는 낡은 도마 위에 방치된 고깃덩어리를 내려다본다. 고깃덩어리가 바로 그이다. 더는 고깃덩어리가 아닐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아닐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일 이유도 없어지고 말았지만.
고깃덩어리는 피가 빠져 창백한 빛깔을 띠고 있다. 웅크린 자세가 학대를 당한 당사자로서의 추억을 연상시킨다. 등장한 누군가가 고깃덩어리를 뭉툭한 식칼로 내리친다. 여덟 조각으로 토막이 난 부위들이 노란 플라스틱 상자 속으로 던져진다. 도마 위에는 다른 거위의 몸뚱이가 올라온다. 절단된 부위들이 플라스틱 상자 안으로 쌓인다. 상자 속의 수많은 거위 토막은 곧 거위 한 마리의 조건을 충족하는 신체 부위들의 조합으로 나뉘어 분류될 예정이다. 어떤 거위 토막과 어떤 거위 토막이 합쳐져 거위 한 마리를 구성한다. 그러나 뒤섞인 토막들로 신체의 추상적인 퍼즐을 완성한다고 하더라도 그 육체 조각보가 곧 거위의 몸뚱이가 되지는 않는다. 퍼즐을 맞추는 건 아주 간단하다. 거위들은 같은 공정에서 길러지며 같은 무게와 크기를 채운 뒤 도살되기 때문이다. 어떤 거위의 정상적인 팔과 다리는 어떤 거위의 정상적인 팔과 다리와 교환될 수 있다. 심지어는 팔과 다리가 없는 거위들조차 팔과 다리가 있는 거위로 둔갑할 수 있다. 신체 조각들은 죽은 거위의 머릿수만큼 무한하며 얼마든지 번복된다. 그러나 사지가 멀쩡한 거위 한 마리를 판매하기 위해 잘린 거위 토막들을 접붙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 의해 조립된 흉측하고 외설적인 모빌에 불과할 뿐 몸뚱이와의 간극은 해소되지 않는다. 거기엔 훼손된 신체로 멀쩡한 신체를 산출하거나 멀쩡한 신체로 훼손된 신체를 은폐하는 끔찍한 인지적 순환이 일어나고 있을 따름이다.
철제 커버가 비대해지는 몸뚱이를 억류했다. 늘어져야 했을 살점은 폐쇄된 공간에 의해 짓이겨졌다. 파묻힌 이목구비 또한 형체가 와해되었다. 얼마 전까진 꼼지락거리기라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움직임이 없었다. 사후경직이 시작되어 혈색이 부박했다. 혈관 조직이 파열해 생긴 울혈이 몸뚱이 전체에 퍼져 있었다. 장치의 커버가 개방되고 난 뒤에도 몸뚱이는 그렇게 구겨진 채 망가진 찰흙 인형처럼 굳어 있었다. 시신을 일으키고 모가지에 삽입된 노즐을 분리한 이후에도 시신은 시종일관 같은 모습이었다. 다리와 배가 맞붙었으며 비뚤어진 발목이나 굽어진 모가지를 대충 구별할 수는 있었지만 지방에 함몰된 까닭에 유골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죽음의 순간 몸뚱이의 자세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육안으로 추측할 수는 없었다. 똑똑한 거위이자 소인배 천사의 유능한 비서였던 스미스 씨는 그렇게 털이 벗겨진 채로 폭식 장치 안에서 숨을 거뒀다. 폭식 장치에서 나온 그는 다행히 목숨이 붙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시간 전부터 해부실의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고무장갑을 끼고 푸아그라를 꺼낼 준비를 마친 허풍쟁이 악마가 그를 들여다보았다. 내내 고대하던 만남이었지만 만남에 대처할 기력이 생기지 않았다. 허풍쟁이 악마는 이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한 그대로 장광설에 능한 인물이다. 그는 귀를 막을 방법 없이 허풍쟁이 악마의 말들을 청취해야 했다. 그저 신음을 누설하며 가만히.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육체에 의해 매몰된 채 인간이었던 시절의 척추가 끊어져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 거위 한 마리처럼.



깃털과 악마


어린 시절의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떠올리면 적막한 원룸에 둘러앉아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에도 불시에 난폭한 광기가 들이닥쳐 이 모든 평온함을 산산이 갈아엎으리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예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이 과도하고 위험천만한 혼란의 밑바탕 위에 건립된 것만 같고, 수저를 들고 젓가락을 내려놓는 단조로운 동작들이 곧 밥상을 뒤엎을 무시무시하고 불온하며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암시하는 징후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몇 차례 그런 순간이 있었으며, 그때마다 식칼을 삼키듯 방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베개 끄트머리를 악물고 있어야만 했다.


*


해부실은 종종 허풍쟁이 악마의 식당으로 이용된다. 소인배 천사가 공업용 수세미로 그의 몸뚱이를 닦는다. 이따 기회를 봐서 나이프를 넘겨 드릴 거예요. 귀에 대고 가늘게 속삭인다. 지금은 나약해져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 기회가 오면 당신이 나이프를 받아 허풍쟁이 악마를 찌르리라는 사실을 알아요. 스스로를 살해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자신을 살해하는 일이 아니라 살해되기 직전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금 삶을 향해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잊지 마세요. 해부실은 싸늘하다. 천장에서 내려온 쇠스랑에 헐벗은 거위들이 걸려 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그의 배를 가를 도구를 선별하고 있는 듯하다. 내벽에 화폭 두 점이 걸려 있다. 지구의 정수리에 꽂혀 있는 과도의 수직선. 악마가 지구를 깎아 여덟 조각으로 쪼갠다. 그중 한 조각을 냉큼 집어삼킨다.
눈앞이 흐릿하다. 허풍쟁이 악마가 그의 복부에 매직으로 점선을 긋는다. 개복하기 전 모가지를 비틀어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목소리들이 둔감한 몸뚱이 아래로 익사한다. 팔을 내뻗을 수조차 없을 피로가 그를 제압한다. 의식의 어두운 서랍을 닫는다. 허풍쟁이 악마와 소인배 천사가 수술대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그의 몸뚱이가 천장의 홍등 때문에 붉게 흐느적거린다. 앞서 언급했듯 허풍쟁이 악마는 오랫동안 실종된 상태였다. 최근에야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복귀했다. 지금껏 방임해 두었던 재산 목록을 무자비하게 환수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가짜 푸아그라 농장이 다시 진짜 푸아그라 농장이 되었고, 수술대 위의 그가 절제라곤 없이 지출했던 착수금 또한 빚더미가 되어 고스란히 그의 몸뚱이 안으로 누적되고 말았다. 소설의 처지도 이와 유사하다. 낭비했다고 생각한 언어들이 그만큼의 체기로 육박해 속이 더부룩하다. 명치에 복숭아 씨앗이 박힌 듯 호흡이 답답해 어서 이 소설을 끝내고 메타적인 레벨로 피신하고 싶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닐까? 비명을 지르지도 뒤척이지도 않는 그의 용태가 의심스럽다. 허풍쟁이 악마가 그의 생식기에 줄칼을 휘감는다. 얇은 줄칼이 생식기를 나팔꽃 모양으로 도려낸다. 누더기로 포개진 거즈들이 사타구니를 지혈한다. 소인배 천사가 말한다. 어떻게 이룩한 거위들의 낙원인데 이토록 잔인하게 내 식구들을 학살할 수 있죠? 당신은 악마예요! 부들거리며 고함을 지른다. 허풍쟁이 악마가 소인배 천사를 무심히 곁눈질한다. 딸기 먹을래? 스트리퍼가 벌어진 구강에서 혓바닥 안쪽의 꼭지를 틀어쥔다. 딸기 맛있거든. 천연덕스럽게 식전 유희에 공을 들이는 허풍쟁이 악마를 도발하기 위해선 이 정도의 시시한 외침이나 항변으로는 부족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간에 기별조차 가지 않는다. 허점을 노출할 때까지 허풍쟁이 악마를 모욕하기, 저주할 말들을 설계하고 자존심을 공략하기, 상황을 교란시켜 변수가 생성될 빈칸들을 착실하게 저축하기. 빈틈을, 나이프를 전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 급진적인 욕설이, 허풍쟁이 악마의 정신적인 난공불락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보다 과격하며 참신한 망언이 어디 없을까? 일단 힘닿는 대로 말들을 잇대 말들 사이에 우연히 허풍쟁이 악마가 동요할 어떤 지점이 생기기를 기대할 수밖에. 소인배 천사는 다짐한다.
지금은 당신이 농장의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저는 당신의 미래를 훤히 예언할 수 있어요. 당신은 죽음과 동시에 수만 마리 거위들에게 포위되겠죠. 안 그러나 한번 봐요. 당신 이미 망했거든요? 광폭한 거위들의 쓰나미가 당신을 수몰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수만 마리 거위의 텅 빈 내부를 채운 공백이 꼭두각시 장갑을 착용한 복화술사의 손바닥처럼 죽은 거위들을 움직이고 있거든요. 울부짖음을 난사하고 달아올라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살벌하게 웅성거리며 오로지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형벌을 부과하기 위해 투지를 기르고 있거든요?
보통 거위들은 착해서 사과하면 용서 말고는 할 줄 모르는 녀석들인데, 더는 용서 따위 하지 않기 위해 당하고만 살지 않기 위해 본성을 초월하는 극기와 단련을 거듭하며 포악한 귀신으로 진화하고 있거든요. 당신은 거위들의 쓰나미에서 도주하기 위해 막 뛰지만 사방이 온통 거위거든요? 앞에도 거위, 뒤에도 거위, 전후좌우 거위, 멧돼지를 다루는 능숙한 사냥꾼들처럼 당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거위들은 돌에 갈아댄 부리 하나씩이 날카로운 창끝처럼 뾰족하거든요? 싹싹 손발이 닳도록 비는 당신이 징징거리며 하는 말. 거위 친구들, 내가 정말 미안해. 그래도 너희들이 진정으로 원한을 품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자본주의야. 미워할 대상을 잘못 찾아온 거지. 땡땡. 너희들은 틀렸습니다. 그러게 내가 예전부터 계속 주장했다고. 이런 바보 같은 촌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이 필요하단 말이야. 한 사람을 사적으로 처벌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공동으로 속해 있는 사회적인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손을 맞잡자. 날개나 닭발이라도 괜찮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저마다의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불우한 희생양에 가깝다는 말이야. 어때? 나도 너희와 다르지 않은 불쌍한 거위 한 마리처럼 보이지? 너희 거위들도 사회적인 구조를 꿰뚫어보는 매의 눈을 갖기 위해 나와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어때?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매의 눈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도 노여움에 물든 거위들의 눈은 당신의 뻔뻔함을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


*


허풍쟁이 악마가 그의 왼쪽 눈알을 파낸다. 껄떡거리는 눈알을 손바닥에 올리고 골똘하게 쳐다본다. 배고파 죽겠네. 너 내 애인 안 할래? 약이 오른 소인배 천사가 발을 구른다. 대체 왜 농장으로 돌아오신 거죠? 소인배 천사가 묻자 허풍쟁이 악마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다 이 녀석 때문이지. 그의 오른쪽 발목을 톱질한다. 녀석에게 나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녀석이 나를 이용했던 거야. 내 황금이 어떤 약속 때문에 지불되었는지는 까맣게 잊은 주제에.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갖은 노력을 다해 녀석에게서 도망쳤단 말이야. 이 세상에서 증발하려고 했지. 허풍쟁이 악마의 목소리가 격양된다. 내가 녀석에 의해 죽었다면 가짜 푸아그라 농장도 가짜 푸아그라 농장 그대로였을 텐데. 아쉽게 되었어. 녀석을 탓하라고. 나는 모가지를 내놓은 사형수처럼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봐. 나는 여전히 건재하단 말이야. 붙잡히지 않았다고. 허풍쟁이 악마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제 장광설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게 다 녀석이 계약에 소홀했기 때문이야. 녀석에게 내 생사를 맡겼을 때 나는 내 굶주림이 내가 가진 황금 따위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나는 더 본질적인 부분들을 사치하고 싶었어. 이를테면 내가 소유한 것들이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이 몸뚱이를 예로 들면. 허풍쟁이 악마가 그의 왼쪽 손목을 절단한다. 이렇게 몸뚱이를 구성하는 기관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거야. 소거법이라고 할까. 나를 삭제하다 더는 아무것도 허비할 수 없는 순간에 도달하면 그것을 내 영혼이라고 부를 작정이었지. 영혼은 간단해. 충일한 것, 절대로 손상될 수 없는 것이지. 절대로 손상될 수 없는 뭔가를 발굴하려면 나머지 손상되는 부분들은 철저하게 발라내야지. 그렇지 안 그래? 허기에 열화되어 존재론적인 빈털터리가 되는 일을 두려워해선 안 돼. 일단 이렇게 선언해야지. 나는 헐값이다. 나는 길거리에 버려져 짓밟히는 꽁초 한 개비보다 싸다. 나중엔 두뇌가 이런 암시에 굴복하고, 바닥의 귀여운 꽁초 한 개비를 향해서도 반갑게 인사를 건넬 만큼이 되지. 그럼 일단 영혼을 찾아 떠나기 위한 최초의 마음가짐이 갖춰진 거야.
절망이 자신을 깨물고 놓아 주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이 절망에서 헤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마라. 이것이 굶주림의 일반 원칙이지. 외려 나는 절망에 스스로를 제공한 다음 절망에 잠식된 자로서 느낄 수 있는 망연자실한 관능을 환대하는 사람이었지. 그 관능이 절망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대화라면 나는 절망과 친교하는 가운데 내 활기를 사치하는 방법들에만 관심이 있었어. 친애하는 굶주림 씨, 나를 잡아 잡수시게. 내 내면이 변변찮아 차린 건 많이 없네만. 이렇게 말해야지. 내 정말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나씩 허기의 먹이로 투입하는 거지. 처음엔 손발을 잘라 넣고 다음에는 사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거기 넣어. 아꼈던 것들이 모두 갈증으로 환원된 자리로 널름거리는 허풍이 헬륨 풍선처럼 내 목소리를 변조하기 시작하지. 공허는 언어를 중지시키지 않고 다만 증폭시키지. 공허 속에서 언어는 현실과 교접하거나 그것에 의해 보증되지 않고도 자율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부여받게 되지. 현실이 이 생명력에 의해 폐지되거나, 아니면 언어 자체가 어떤 비밀스러운 음지에서 현실에 포함되지 않는 광대한 생태계를 남몰래 영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여하간 이 생명력이 산출하는 것들은 꽁초 한 개비나 깃털 하나보다 값싸야 해. 꽁초 한 개비나 깃털 하나보다 값싸지 않다면 그 생명력이란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사멸할 테니까 말이야.
헛소리 말고 닥치세요. 소인배 천사가 허풍쟁이 악마의 말을 분질러 바닥에 팽개친다. 박수를 치듯 손바닥을 털고 있다. 거위들이 당신에게 달려들 겁니다. 몸뚱이를 뒤덮은 거위들이 당신을 쓰러뜨릴 거예요. 부리에 찍힌 당신의 온몸은 살갗이며 내장을 찢어 포식하는 거위들의 카니발에 헌정될 겁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재차 죽지도 못하겠죠. 그러나 상상 이상의 통증이 당신의 명줄을 쥐락펴락할 거예요. 거위들 또한 이미 죽었기에 당신은 소화되지 않고 거위들의 갈라진 뱃가죽 아래로 걸쭉하게 흘러내릴 겁니다. 소멸하지도 썩지도 않는 당신은 계속해서 당신의 통각에 얽매여 있을 거예요. 발기발기 찢은 당신을 발기발기 찢어 미분하는 반복된 고통 속에서 당신의 해체된 몸뚱이는 무화되거나 사라지거나 순환하지도 못하는 치욕적인 유기물로 변신해 있을 거라고요!
나는 녀석에게서 맹렬하게 달아났지.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어. 배후로 추적자가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여권을 위조하고 얼굴을 고쳤지. 누가 나에 관해 물어오면 거짓말을 일삼았어. 거짓말에 자아를 의탁하기 위해 기억을 세탁하길 서슴지 않았지. 나는 되는 대로 내가 되었어. 정체성의 상투적인 지표들을 열거하고 갈아치우며 아무도 나를 적시하지 못할 때까지 스스로를 은폐했지. 분열하려고 했어. 반성하지 않았지. 희롱하려고 했어. 나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 관해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방법을 연습했지. 나는 나의 빗금이고자 했어. 나를 매설했으며, 지뢰의 뇌관이 폭발하는 순간은 녀석에게 발각될 바로 그때라고 여겼지. 내 잠행은 실로 완벽했어. 누락된 시간 속의 서투른 어릿광대처럼 세상에서 등 돌려 거울을 관람했으며, 나조차도 신기해하지 않는 재주를 선보이기 위해 위태로운 외줄 위에 오르는 아슬아슬한 놀이에 심취해 있었지. 이렇게 잘 도망치고 은신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다 녀석 때문이었어. 만일 녀석이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더라면 실종되기 위해서 이토록 절박하게 이동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녀석은 내 픽션 속의 주요한 인물이었고, 내 공포의 원인이자 나의 덫이었으며, 나는 시시각각 숨통을 조이며 나를 뒤쫓는 녀석을 따돌리기 위해 수만 갈래로 갈라진 골목을 질주했지.
까불지 말고 제발 입 좀 다물어요. 소인배 천사가 일갈한다. 제가 당신을 어떻게 침묵시키는지 보세요. 당신은 거위 한 마리와 함께 노란 장판이 깔린 골방에 투옥될 겁니다. 당신은 어찌나 심심했던지 키득거리며 거위의 몸통을 움켜쥐겠죠. 거위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순간 당신은 거위의 모가지를 거칠게 비틀어 꺾습니다. 목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손바닥으로 전해지겠죠? 당신은 실성한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겠지요. 거위도 실성한 거위처럼 비실비실 웃고 있네요. 당신은 놀라 죽은 거위를 응시합니다. 목이 돌아간 거위가 살아남아 아가리를 벌리고 거무튀튀한 혓바닥을 까딱거리고 있네요. 당신은 특유의 잔학함을 발휘해 거위의 모가지를 낚아채곤 그것을 부러뜨립니다. 모가지가 원래대로 되돌아간 거위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허공으로 도약하고요. 당신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기 위해서예요. 퉤퉤. 네가 내 숨통을 멎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멍청하긴.
이 숨바꼭질에 내 일생을 걸었던 거지. 나는 내 자아를 녀석에게 전적으로 빚지고 있었어. 모든 실마리가 지워지고 나에 관한 온갖 단서들이 줄 끊어진 시간의 낱장이 되어 부재 속으로 곤두박질한 뒤에도 녀석이 정성스레 내 흔적을 관측하고 복기해 나를 추적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픽션이란 으레 그런 거잖아. 만일 녀석의 수사가 내 바람처럼 성공적이라면, 뒷덜미를 붙잡고 내 이름을 호명하며 ‘찾았다!’고 소리친다면, 나는 그때 기꺼이 이 실종과 사치의 유희를 중단한 뒤 백일하에 드러난 나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장렬하게 죽음을 택할 작정이었지. 굶주림이 살해하지 못하는 내 영혼의 핵심이 밝혀지는 유일무이한 순간이 아닐까. 심장에 박힌 녀석의 칼 한 자루 때문에 내가 한없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동안 나는 허기가 삼키지 못했던 나의 본질과 대면할 것이요, 나는 역전하며 승리할 것, 항복을 선언하며 지금까지 삼켰던 것을 전부 게워내는 허기의 예봉을 꺾고 진정한 나를 정립할 수 있겠지. 그 어떤 허기도 침입하지 못하는 나만의 고유한 영토를 녀석이 개척했기 때문이겠지. 가짜들 사이에서 녀석이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야. 녀석이 나를 세상에 드러냈기 때문이지. 녀석의 목소리에 포획되어 더는 부인하거나 면피할 수 없는 나를 되찾았기 때문이겠지. 나는 단지 녀석에게 적발되기 위해 숨죽여 잠복하며 내 영혼이 녀석의 목소리와 일치하는 순간을 희구하고 있었다는 말이야. 이 정도로 말했으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이해하고 싶지 않거든요? 당신은 거위 한 마리와 일생을 건 난투극을 벌이고 있습니다. 거위가 죽지 않거든요. 당신이 노란 장판에 누워 잠들려고 하면 거위가 당신을 귀찮게 건드리죠. 씩씩거리는 당신이 거위의 목뼈를 재차 비틀겠죠? 그러나 거위는 싱글벙글, 꽥꽥, 곤니찌와, 저랑 같이 놀아요, 꽥꽥, 함께 춤춰요, 이죽거리고 덩실거리듯 당신에게 속이 빤히 보이는 아양을 떨고 있지요. 부리로 당신의 이마를 쪼아대겠죠? 당신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 때문에 길길이 날뛰는데, 거위는 긴 모가지를 물음표 모양으로 구부리며 희희낙락이겠죠. 널 못살게 구는 일이 내 축생의 낙이야. 주먹을 갈겨 거위를 넘어뜨리면 벌떡 일어나 헤헤, 주먹이 참 맛있군요? 코브라를 걸면 아이고, 관절의 유연성이 확장되고 있네요? 탈진한 채 천장을 올려다보면 보송보송한 거위의 궁둥이가 당신의 발바닥을 간질이기 시작합니다. 히히, 이왕이면 웃고 삽시다! 당신의 가슴팍을 깔아뭉갠 거위가 제 날갯죽지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요. 당신은 온갖 신경질을 부리지만 그것도 한때, 나중엔 제발 죽여만 주세요, 차라리 안식을 얻고 싶어요, 호소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거위에겐 당신을 향해 죽음을 선물할 도구가 깃털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당신이 소망하는 죽음이 지연되고 있는 거겠죠. 사망에 이를 때까지 깃털로 가해하는 거위와 이 까다로운 폭력의 희생양이 된 당신의 공허한 투쟁이 불멸하는 메아리처럼 철없이 반복되리라는 거예요.
나는 궁지에 몰린 범인을 지독하게 연기했지. 오늘은 내가 검거되는 하루이리라, 감격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어. 녀석이 오솔길에 매복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지. 설마 나를 까먹진 않았겠지? 오솔길을 걸어갈 때마다 맥박이 빨라졌어. 드디어, 드디어, 아무렴, 아무렴! 그래도 나는 은둔자나 도망자의 자세를 항상 견지해야 했지. 사방을 경계했어. 눈을 치뜬 채로 주변을 샅샅이 주시하며, 금방이라도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날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행세했단 말이야. 녀석이 등장하리라는 공포와 설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산만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침을 꿀꺽 삼킨 뒤 떨리는 다리를 끈질기게 내어 옮기며, 변장을 해서 녀석이 나를 색출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러나, 이 초조와 불안의 유희는 녀석과의 숨바꼭질 게임을 성립시키기 위한 내 역할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는 녀석이 내 앞에 돌연 모습을 드러내 나를 살해하기만을 간곡하게 바라고 있었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야. 녀석만을 머릿속에 그리며 팽창하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굶주림의 무저갱 속에 파묻고 있었다는 말이야…… 발각될 가망 따윈 없어진 술래잡기 게임 속의 퇴락한 유령처럼 녀석이 나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며 후미진 어둠 속으로 물러나 있었다고…… 내가 무척이나 고독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녀석이 알아주기만을 바랐어. 그러나 녀석은 나를 발견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지. 나는 이런 부질없는 게임을 그만두기로 했어.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나를 살해해야 했을 녀석이 병자처럼 드러누워 내 먹이가 되려 하고 있지.


*


할몽이 도서관 열람실에서 집필한 세기의 걸작은 예상대로 대중과 평단의 무관심 속에서 할몽을 사랑하는 그에게만 아주 각별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는 할몽의 소설을 읽고 또 읽는다. 어느 순간 그에게 문학이란 할몽의 소설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할몽의 소설을 통해 세계에 다가가는 순간 환멸이나 권태의 암초에 걸려 일상을 허비할 개연성이 희미해진다. 여러 차례 다시 읽어도 소모되지 않는 풍부한 지혜, 대상을 극진하게 위하는 따스한 연민이 부채꼴 모양의 프릴을 연상시키는 소설 속 레이어들에 켜켜이 묻혀 있다. 근사하고 신비로운 낱말들이 길가의 돌멩이나 이름 모를 잡풀처럼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한 단락만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시간을 소일해도 친밀한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레 기도할 때처럼 마음이 밝아진다. 할몽의 책으로 얼굴을 덮고 눈감는 순간이 좋다. 난데없는 긍지 때문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무의식의 먹구름이 걷히고, 내면의 저지대를 탐험하는 일이 괴괴하지도 황량하지도 스산하지도 않다.
할몽의 소설을 독해하는 일이란 할몽이 세계 곳곳의 갈피에 끼워 놓은 엽서들을 수집하는 일과도 같다. 평범한 산책로를 거니는 동안에도 말풍선 같은 할몽의 텍스트가 허공에, 마치 크롬 탭처럼, 각자의 장소에 놓인 사물들 위로 선명하게 부유하고 있어 할몽의 사유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다. 텍스트 바깥이 텍스트의 화분인 양 언젠가 할몽의 분신이었을 어떤 익명적인 시선이 생동하는 풍경들 쪽으로 만개하며 무성해진다. 그는 허풍쟁이 악마에게 받은 황금으로 독서가들을 후원하기 시작한다. 매달 충분한 만큼의 급여를 지급한다. 평생 책을 읽으며 몽롱하고 관념적인 문제들만을 궁리해도 생계가 해결될 것이다. 책들이 그들의 집에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이면 그게 애물단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책을 위해 집을 교체할 수 있도록 두둑한 보너스를 선사한다. 넓은 평수로 이사한 독서가들은 에밀 졸라의 작업실에 비치되어 있을 법한 광활한 마호가니 탁자 앞에 앉아 독서를 한다. 탁자에 발을 걸치거나 누워서 읽어도 좋다. 읽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괜찮고, 가족을 만들어도 좋고 독신이어도 상관없다. 반려묘를 키워도 되고 반려견을 키워도 되며 유니콘을 길러도 허용,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의 뒤를 경건하게 따라 걷다 그 깜찍한 짱구를 쓰다듬거나 입에 물고 있는 호박씨를 대문호의 뒤통수를 향해 발사해도 괜찮다.
그의 헌신적인 자선 행위의 수혜자로서 은혜로운 나날을 구가하는 독서가들에게도 반드시 치러야 할 과업이 존재한다. 일 년에 한 번 할몽의 책을 읽은 다음 하루 동안 그 소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생활고에서 탈출해 마음이 넉넉해진 독서가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할몽의 소설을 읽는다. 독서가들은 이어 각성하게 된다. 할몽의 소설이 얼마나 척박한 공간까지 제 사유를 파종하기 위해 고투했는지가 분명하게 보인다. 사람들과 사물들이 동위선상에 놓여 해방된 상태로 교호한다. 배치된 언어들의 침착하게 정돈된 품격이 보인다. 기민하며 진솔한 욕망의 야성이 보인다. 정밀하지만 즉흥성을 마중할 여분의 자리를 위해 부드럽게 휘어지는 문체가 보인다. 쉬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문학적 역설들, 그 수수께끼나 불가사의 같았던 난수의 그물코를 능란한 손놀림으로 되짚어 풀어내는 기교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봉건적인 은유와 플롯이 해산된, 무너진 폐허의 돌무더기 위로 자라나는 역동적인 활력과 이채로운 징조들을 무한히 장려하는 서술적 포용력이나 담대한 상상력 또한 소설 속의 담화들을 넘쳐흐르도록 하는 요인이자 물이 오른 작가적 자신감의 발로처럼 여겨진다.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과거의 오브제들을 구조하고 낚아채 재활하는 힘찬 비약의 솜씨 또한 빼놓으면 곤란하다. 단어들 하나하나가 우주 저편의 원시적인 행성을 향해 천진하게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느껴진다.
갑작스러운 단절이 이야기의 리듬을 단호하게 저지한다. 그것은 작가적 자의식이 범람하는 일을 방지하고 의미를 온당한 방식으로 순환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전략이다. 탈주하는 힘들이 폭우처럼 거세다. 그렇기에 더더욱 격렬하게 굽이치는 언어의 급류와 와류를 곳곳으로 분산하고 굴절시키기 위한 영리한 물길들을 설치해야 한다. 할몽이 견지하는 비타협적이며 고집스러운 윤리적 쐐기들이 매끈한 텍스트 표면에 물질적인 양감을 부여한다. 위반은 억눌린 실존적 파토스로부터 견인되지 않는다. 어느 유년 시절 공책에 낙서를 갈겨쓰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하늘을 지나는 심상한 구름의 궤적이 어떤 제한 없는 형상들을 창발하고 있었는지, 그 모양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며 연필 꽁지를 깨물고 있던 그때,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은 어둑한 그림자가 노트 위로 드리워진다. 노트에 기입된 삐뚤빼뚤한 낙서들이 투명한 화병 속의 마리모처럼 동그랗게 뭉쳐져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들은 이 미미하고 눈을 비비면 감쪽같이 사라질 소박한 환상이 앞으로 살아갈 실제 삶에 돌이킬 수 없는 흠집으로 영속하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할몽의 위반이란 그 모기 물린 자국 같은 작은 흠집의 잠재성을 텍스트적 공간에서 극대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독서가들은 굳이 하루 동안 고민하지 않고도 할몽의 소설이 일군 탁월한 성취를 마음 깊이 수긍하며 공감할 것이다.
독서가들은 가슴에 차오른 문학적 환희로 정신없이 히죽거린다. 그중 몇몇은 내성적이며 음울한 성격을 극복하고 독서 호사가의 길을 선택한다. 이 소설이 걸작임을 세상에 전파하고 말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해야만 한다.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그런 사명감 때문에 온몸이 바르게 펴지고 근거 없는 의욕이 용솟음친다. 산삼을 통째로 삼킨 듯 내면의 열기가 진정되지 않는다. 할몽이 한 사람씩의 유사 막스 브로트로서 꾸준하게 활동하는 독서 호사가들의 난분분한 입소문에 의해 프란츠 카프카 같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의 금고엔 아직 소진되지 않은 황금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이 소설에 합당한 결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는 할몽을 기념하기 위한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그가 건립할 도서관은 관광 자원이나 테마파크, 복합문화공간이 아니라 할몽의 죽음을 진심으로 위무하며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기획된다. 그렇기에 출입 절차와 보안이 엄격해야 한다. 아무나 통행하지 못한다. 이곳은 애도의 성역이자 할몽을 위한 금자탑, 할몽이 이룩한 고귀한 문학적 업적을 숭앙하기 위한 겟세마네이기 때문에 보편 인간들 사이의 리버럴한 합의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허풍쟁이 악마처럼 괜히 그러고 싶어 허풍을 떨었지만 실은 출입 카드를 발급받기 위한 독특한 조건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방문한 열람객들마다 그들 낱낱의 편의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객실이 배정될 것이다. 열람객들은 매일 도서관에서 개최되는 유익한 워크숍이나 성대한 행사, 웬만한 오성급 호텔에 상응하는 시설, 호화로운 식사와 테라피 프로그램, 서고에 보관된 수만 권의 장서를 객실 안에서 온라인 서비스나 원격 서비스를 통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출입 조건만 충족한다면 누구나 이 도서관이 제공하는 혜택을 아낌없이 만끽할 자격이 주어진다. 도서관의 상냥하고 슬기로운 사서들인 거위 로봇들이 책을 객실로 운반한다. 굳이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수험 공부, 소설 창작, 취업 준비, 엎드려 하품하기, 자격증 취득하기, 공상하기, 고뇌하기, 더 발전적인 내일을 위한 청사진 구축하기, 콧방귀로 문학하기, 크레용으로 그림책 색칠하기, 논문 집필 등등에 수반되어야 할 자질구레한 난점들을 보조하기 위해 개별적인 열람객과 매칭된 거위 로봇들이 사방으로 출동한다. 열람객들은 자연스레 거위 로봇에게 우정을 느끼게 된다.
이 도서관은 비염과 축농증을 앓는 자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비염과 축농증으로 고생하는 자들만이 제 누추한 병력을 이 도서관의 출입 카드로 교환할 수 있다. 인간의 코맹맹이 소리는 억만금을 들여도 구입하지 못하는 이 도서관의 출입 카드를 취득할 특권이자 지복으로 작용한다. 비염과 축농증을 앓는 자들은 이제 의기소침하게 허리를 수그린 채로 훌쩍거리지 않는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훌쩍거린다. 코를 너무 풀어서 생긴 딸기코가 아주 탐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는 걸작을 집필하는 동안 비염과 축농증으로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할몽을 위해 질환자들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도서관 내부에 조성했다. 막힌 비강과 부자유하게 흐르는 콧물, 여러 차례 수술했는데도 악화 일로를 걸었던 이 궁상맞은 질병에게도 남부럽지 않을 장점이 생긴 것이다. 열람객들은 할몽에게 감사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난 경의를 바친다. 콧물을 닦은 휴지가 객실마다 무수하게 불어난다. 열람객들은 점심과 저녁에 객실을 찾아 날개를 파닥거리는, 밥을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거위 로봇에게 이 코 묻은 휴지들을 먹이로 증여해야 한다. 거위 로봇들이 부리를 벌리고 구겨진 휴지들을 받아먹는다. 거위 로봇의 기분을 상징하는 전자 패널에서 물거품 하나씩이 하트 모양인 홀로그램 분수가 찬란하게 솟아난다.
그는 화로 앞에 앉아 있다. 소복하게 내려앉은 잿더미 위로 여남은 불씨들이 깜빡거린다. 그는 화로 안에 땔감으로 사용할 휴지들을 올린다. 땔감 끄트머리가 오그라든다. 불이 번진다. 그는 몸을 건들거린다. 땔감의 형체가 작열하는 불꽃에 가려진다. 눈으로 불꽃을 응시하고 있다기보다는 넘실거리는 불꽃 속에 그의 눈이 들어 있는 것만 같다. 불꽃에서 시선을 돌려도 불꽃이 위치했던 시야의 어느 지점이 푸르스름한 암점으로 이글거린다. 연금술에서는 납을 황금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불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불꽃이 지혜를 연소하는 가운데 용광로 속의 마그마를 황금으로 승격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빳빳한 지혜들 대신 휴지 조각이 된 지폐들만이 곳간이며 창고에 가득 쌓여 있었고, 만일 그것이 정말 지폐였다면 화로에 던져 넣어 불꽃을 되살릴 수 없었겠으나, 그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으니 타오르는 불꽃의 온기가 그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는 낭비한 지폐들만큼 많은 시간을 사위어 가는 불꽃 앞에서 보냈다. 실내는 고요하며 안온하다. 불꽃 속에서 할몽에 관한 기억들이 신기루처럼 무궁무진하게 상연되었다. 그는 휴식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신기루를 응시하는 사람을 향해 있는 너무 혹독한 야유와 비난 속에서, 야유와 비난을 송출하는 자아의 망상 속에서, 화로 옆으로 흘러내린 짙은 그림자가 지금 강렬하게 존재하는 그의 잔상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긍정하기 위해 잠시 이 그림자의 윤곽을 빌려도 좋을까. 그는 생각했다. 꺼내지 못한 말들을 꺼트리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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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물감 딱지가 부풀고 덩어리져 형상의 얼개가 무너진 유화 한 폭처럼 보인다. 복부에는 구덩이가 패어 있었다. 검붉은 구덩이 바깥으로 창자들이 삐져나왔다. 얼굴이 폭파된 콘크리트처럼 파괴되었고, 바닥에 깔린 신체 부산물은 뒤섞여 곤죽이 되었다. 거기 허풍쟁이 악마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황금알을 채취할 때 불가피하게 나오는 이런 잉여적인 폐기물은 일종의 산업 쓰레기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창자들을 비우고 솜을 쑤셔 넣어 그를 박제한다고 하더라도 그 박제품은 그를 모사하지 못한다. 물이 채워진 고무대야 안으로 그에게서 끄집어낸 푸아그라가 담겨 있었다. 새끼 돌고래 크기로 살집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이었다. 그는 죽었다. 하느님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에야 이 장면이 이 소설의 최종적인 끝, 끝의 끝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고무대야 안으로 얼음들이 끼얹어졌다. 냉기가 펄펄 피어났다. 대야 앞에 땅딸막한 스툴을 놓고 쪼그려 앉은 허풍쟁이 악마가 주머니칼을 꺼내 푸아그라의 끄트머리를 잘랐다. 말랑거리는 조각을 입속에 넣었다. 연한 지방질을 씹지는 않고, 눈앞의 거울을 바라보며, 마치 자신에게 푸아그라를 먹는 방법을 해설하려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조각을 혓바닥으로 짜부라트려 입천장에 발랐다. 이렇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거야. 알고 있지? 소인배 천사는 수술대 옆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참담한 느낌으로 서 있었다. 무릎 위에 접시를 놓은 허풍쟁이 악마는 지금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당장 수술대 위의 그에게 단검을 전달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의 몸뚱이에는 나이프를 건네받을 손이 없었다. 눈알, 생식기, 오른쪽 넓적다리, 갈빗대, 혓바닥이 부재했다. 그는 황금알이 절제된 자리를 표시하는 일인분의 구덩이에 불과했다. 매장된 자원을 소진해 어둠과 탄갱만이 자욱한 갱도처럼. 자아의 원환은 폐쇄되었다. 무대의 커튼이 내려갔으며 계약은 만료, 게임은 종결되었다.
소인배 천사는 제 눈을 가린 손가락의 틈새를 열고는 그의 복부에 뚫린 징그러운 허방을 응시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걸려 글썽거리는 소인배 천사의 눈으로 실핏줄이 깨어질 듯한 균열로 촘촘하게 얽혔다. 소인배 천사에겐 차선책이 있었다. 차선책을 실행하기 직전, 소인배 천사는 금방이라도 미끄덩하게 흘러내릴 것만 같은 얼굴에서 손을 뗐다. 역삼각형 모양으로 모은 손가락들을 비벼 구덩이 안쪽을 향해 마치 설탕을 놓아 흩뿌리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트릭을 쓰는 마술사의 손놀림처럼 민첩한 동작이었다.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지 않았다면 그 동작의 비밀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구덩이 안쪽으로 무언가가 가벼이 낙하했다. 허풍쟁이 악마가 접시의 둘레를 혓바닥으로 핥고 있었다. 소인배 천사는 재빨리 나이프를 겨눈 채 허풍쟁이 악마의 뒤쪽으로 접근했다. 허풍쟁이 악마는 앞선 언급이 무색하게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며 게걸스레 푸아그라를 섭취했다. 포크나 나이프 없이 입술만으로, 손으로 떠받친 접시에 코를 박은 채, 무아지경에 사로잡혀, 눈앞에서 물컹하게 으스러지는 살굿빛 덩어리와 광란의 키스를 나누듯 음란하고 격정적으로 몸부림쳤다. 목덜미에 불거진 근육이 새끼줄처럼 섬뜩하게 비틀려 있었다. 소인배 천사는 허풍쟁이 악마의 목덜미를 향해 나이프를 들어올렸다.
한편 구덩이 아래에서는 소인배 천사가 남몰래 심은 눈물 강낭콩 몇 방울이 미약한 시그널을 방출하고 있었다. 그 눈물 강낭콩들은 소인배 천사의 손끝에서 연약한 물방울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구덩이 밑으로 낙하해 응고된 뒤 씨앗처럼 자리를 잡고는 제 표면장력에 얇은 배리어를 둘러쳤다. 자기장을 내보냈다. 눈물 강낭콩들은 뿌리를 뻗기에 열악하며 척박한 환경이 아닐 수 없는 그곳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었고, 꼼지락거리고 꿈틀거렸으며, 제 에너지를 방류할 지점을 찾아 계속해서 공회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림없는 환상을 지속시켰다. 무모한 언어들이 거기에 고여 진동하고 있었다. 순간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은 천 가지의 불능 속에 에워싸이는 일과 같고, 소설은 언제나 천 가지의 불능을 주파해 순간의 가능성을 보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형식이다. 발아한 눈물 강낭콩이 손톱만큼 작은 잎맥을 틔워 올리며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삶을 구덩이 아래에 이식할 것이었다. 그것이 무람하게 자라나 가짜 푸아그라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겠지만 그 날조된 가능성이 그를 재건할 것이었다. 눈물 강낭콩 안에 그런 미래를 향한 밑천이자 굴성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프가 허풍쟁이 악마의 등을 갈랐을 때 벌어진 틈새에서 무수한 양의 깃털이 뿜어져 나왔다. 아직 아니야…… 아직은! 허풍쟁이 악마가 단말마를 뱉어냈다. 접시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출된 깃털들이 마치 날개가 돋아나듯 방사형으로 흩날리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깃털들이 허물을 벗고 있었다. 허풍쟁이 악마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허풍쟁이 악마의 살갗이었던 검은 천이 비산하는 깃털들 틈바구니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무하게 내려앉았다. 허풍쟁이 악마가 거위의 깃털로 속을 채운 봉제인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이상했던 것은 깃털의 규모였는데,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팽창하는,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궐기하는 깃털들이 허풍쟁이 악마의 내부에 과밀하게 압축되어 있었던 양 한꺼번에 나부끼며 시야를 뒤덮었던 것이다. 허풍쟁이 악마의 비만한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몇 마리의 거위가 희생되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깃털들이 가닥마다 가늘게 떨렸다. 공중을 서성거렸다. 소인배 천사가 날리는 깃털들을 팔꿈치로 걷어내며 해부실 문을 개방했다. 거위들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갑작스레 들이친 돌풍과 함께 깃털들이 문 밖으로 몰려갔다. 관현악단 거위들은 이미 마당에 운집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중하고 근사해 보이는 줄무늬 보타이를 목에 맸다. 소인배 천사가 바퀴 달린 수술대를 밀며 마당으로 등장했다. 관현악단 거위들이 날개를 들썩였다. 수백 마리의 거위가 동시에 날개를 펄럭이자 재차 거센 바람이 일었다. 깃털들은 바닥에 착지하지 못했다. 바람에 휘말린 깃털들이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며 떠올랐다. 소인배 천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수기를 하며 거위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거위들은 소인배 천사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장자리의 거위들은 군무를 추듯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까뒤집으며 명랑하게 스텝을 밟았다. 안쪽에 위치한 거위들은 대류의 운행을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교묘하고 섬세한 날갯짓으로 바람의 세기와 각도를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기 포지션이 달랐기 때문에 거위들은 자신이 담당한 대기의 진동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동시에 공동의 지평과 화음을 창출해야 하는 양가적인 흐름 속에 있었다. 하늘에서 한데 교차하며 합쳐지는 깃털들이 관현악단 거위들의 지휘에 반응해 점차 구체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처음에 깃털들은 달팽이집처럼 소용돌이를 형성하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늘여 펼쳐졌다. 이윽고 그것은 꽁무니가 퉁퉁해지고 모가지가 구부러지며 아래로 물갈퀴가 나왔고, 장엄한 크기로 하늘을 부유하는, 그렇게 농장을 굽어 살피는 거위 하느님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악단의 연주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람을 제어하는 숙달된 기교와 거기 호응하는 깃털들이 구축하는 한없이 가벼운 하느님의 환영이었지만, 동시에 농장의 모든 식구가 환영할 진짜 하느님일 수 있는 위엄과 영광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구덩이 안쪽에서 돋아난 새싹이 거위 하느님을 향해 떡잎 두 장을 맞붙이며 합장했다. 고마워, 하느님! 하느님이 뒤뚱거리며 농장의 하늘을 선회했다. 소인배 천사가 공연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하느님을 영사하기 위해 날개를 푸드덕거리던 거위들이 일순간 바람을 내려놓았다. 하늘을 반주하느라 가빠진 호흡을 추슬렀다. 공중에 떠오른 하느님이 서서히 해산되기 시작했다. 깃털들이 느리게 팔랑거리며 농장으로 쏟아졌다. 거위들은 농장을 커다란 날개로 보듬어 품듯 하해와 같이 밀려오는 새하얀 깃털들을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자신들이 일으킨 기적을 왁자지껄하게 축원했다. 재와 흙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온몸을 수북하게 덮은 깃털들 사이에서 깨어났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더 서술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은 무엇이든 지금껏 보냈던 나날보다 더 값진 것,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눈부신 오늘의 연속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임성용
작가소개 / 양선형

1990년 광주 출생. 소설집 『감상 소설』.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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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 관리자
  • 2025-06-01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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