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하거나 사라졌거나 영원한 – 역사와 사물의 큐레이터
- 작성일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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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비평]
2020년 진행되었던 〈본격! 비평〉 코너를 정비하여, 2021년 4월호부터 〈현장 비평〉을 선보인다.
2021년 〈현장 비평〉은 신진 문학평론가 9명이 각자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매월 1편씩 발표된다.
부재하거나 사라졌거나 영원한
– 역사와 사물의 큐레이터
이 소
1.
몇 해 전이었던가. 한 설문조사에서 고등학생 중 대부분이 6·25전쟁의 원인을 ‘북침’이라고 대답했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 이야기를 내게 농담처럼 전해 주던 사람에게 “왜요? 북침 맞잖아요?”라고 반문하여 그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실은 앞선 세대와 달리, 반공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에게 ‘남침’이라는 단어는 뇌리에 새겨져 있지 않다. 더구나 ‘북한 침략=북침’ 쪽이 지금으로서는 더 직관적인 축약법이기 때문에 아마도 나 같은 반응은 드물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믿는다). 어쩌면 남침이라는 단어는 이 경우 외에 딱히 쓸모가 없는 단어라서 반공교육의 수혜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 단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가 정반대의 뜻으로 여겨질 만큼 6·25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감각은 몇 십 년 만에 급격한 형질 변화를 겪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이 당대가 아닌 아득한 옛날의 일로 여겨지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서는 작년에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낯선 전쟁〉이라는 기획전을 선보였다.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미 많은 이들에게 ‘낯설어진’ 이 전쟁을 동시대의 시선으로 되짚어 보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국내 미술관의 수장인 국현에서 주최하는 전시인 만큼 규모도 상당했고 참여 작가의 면면도 다양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동시대-역사’라는 언캐니(Uncanny)함을 보여준 두 전시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한국전쟁 피난민 기록사진 및 비디오〉. 이 자료는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촬영되어 그 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하고 있던 영상이다. 디지털 변환을 거친 이 영상은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몇 개의 태블릿으로 재생 중이었다. 영상 속 사람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남루한 짐을 꾸리고 피난을 떠나는 중이거나 궁색한 차림으로 동냥을 하고 밥을 먹는 중이었지만, 영상 자체는 눈부시게 선명했고 태블릿의 액정은 요철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이 완벽하게 디지털화된 이미지는 지금 막 촬영한 것처럼 또렷하고 생생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지만, 누구도 배우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상이 우리에게 익숙한 다큐멘터리 문법처럼 흐릿하고 흔들렸다면 나는 화면 속 이미지를 오래된 미디어로 촬영된 흔적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영상의 해상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반대로 만약 이 영상이 영화의 문법처럼 카메라의 시선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었다면 나는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키며 ‘실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 속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해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거나 혹은 인위적일 정도로 웃고 있었다. 바로 앞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기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불멸의 이미지였다.
두 번째, 한석경(1982~ ) 작가의 〈시언:시대의 언어〉(2019). 이 작품은 실향민이었던 작가의 할아버지가 생전 거주하던 방과 거실을 복원해 둔 조형물이다. 신발을 벗어 두고 들어가 보니 이곳에는 할아버지가 평생 수집해 온 자료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가지런히 스크랩된 신문과 자료, 일일이 손글씨로 제목을 달아 둔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 등은 대부분 북한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어 보니 노이즈와 함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강박증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정리된 자료들은 외롭고 기이하고 쓸쓸했다. 두고 온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으로 평생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했던 한 사람의 인생이 완벽히 하나의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역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엄청난 규모의 아카이브로서 발굴되거나 혹은 개인화되고 신체화된 기억으로서 저장되거나. 그리고 이 두 가지 방식은 언뜻 상반돼 보이지만 실은 유사한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 먼저, 기록 영상의 피난민들은 한때 존재했고 지금은 사라진 역사 속 인물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생경하게 윤색된 디지털 영상은 흡사 홀로그램이나 유령처럼 역설적이고 언캐니한 불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과거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디테일이 강박적으로 구현된 이 조형물은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주체의 형상을 보여준다기보다 유령의 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트라우마적 기억의 아카이브’를 제공한다. 20세기 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역사 서술 방식이 역사적 ‘의미’를 기획하고 그에 걸맞은 ‘주체’를 구축하는 방식이었다면,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방식은 ‘트라우마로서의 과거’와 ‘신체화된 기억’을 기록과 사물의 형태로 제시하는 방식일 것이다. 기억의 아카이브를 떠도는 존재들은 역사적 주체가 아닌 유령적 이미지로 돌아오고, 그들은 의미와 이념의 형태가 아닌 고통을 증언하는 신체의 형태로만 주목받을 수 있다.
실은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지닌 두 가지 질문이었다. 첫째, 진보나 혁명 같은 거대서사가 소멸한 후 한때 그것을 가졌노라 추억하는 일조차 한물가 버린 이 세계에서 어떻게 역사는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할까. 둘째, 미세한 시간적·공간적 지연이나 단절도 없이 늘 무한한 자료를 검색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된 이 세계에서 어떻게 역사는 가능하며 또 유효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까. 입출력과 저장이 가능한 아날로그 매체(축음기, 카메라, 타자기)의 발명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일이지만, 입출력과 저장뿐 아니라 실시간 전송과 휴대가 가능한 매체를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디지털 매체의 시대가 도래한 지는 불과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았다. 과거에는, 역사적 사건이 밟아야 하는 정해진 수순이 있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졌고, 그렇게 기억의 생생함이 퇴색되면 중요한 기억은 전문 인력의 관리를 받아 ‘역사’로서 문서고에 보관되었으며, 그것을 검색하거나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문서고에 접근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세계에는 엄청난 양의 사진과 영상, 음성과 문서 들이 우주의 먼지처럼 떠돌아다닌다. 약간의 검색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는 수많은 이미지는 존더코만도들(Sonderkommando)이 목숨을 걸고 찍었던 아우슈비츠의 네 장의 사진이나 외신 기자들이 몰래 반출했던 5·18 당시의 보도 사진이 지녔던 무게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급기야 ‘사실’의 미세한 조각들을 재료로 삼아 기묘하게 브리콜라주(Bricolage)한 싸구려 ‘대안 역사’마저도 동등한 무게를 주장하는 형국에 이르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타자의 기억’이나 ‘신체의 기억’이라는 말로 역사 대신 기억을 존중하는 경향이나 전문가나 학자의 담론보다 생존자의 증언을 절대시하는 경향의 배경에는 이런 매체 환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윤리적 토대에서 숙고 중인 문제들, 예컨대 ‘위안부’ 문제나 5·18, 4·3 같은 사건들도 시간이 흐르면 별수 없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속으로 휩쓸려가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이 디지털화된 데이터베이스는 언제까지고 생생할 것이다. 과거의 자료들은 쓰레기 더미처럼 자꾸자꾸 불어 가지만 공인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시대.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동시대’라는 기묘한 명칭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시대. 우리는 이제 전례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방대한 아카이브가 우리가 역사를 상대할 때 맞닥뜨려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2.
아즈마 히로키는 90년대 일본 오타쿠 문화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원리를 설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오타쿠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기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표층의 기호적인 것들을 리좀(Rhizome)의 형태로 동등하게 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분리된 두 층위’를 통과하며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포스트모던에 들어서자 심층의 거대서사에서 표층의 작은 서사들이 퍼져나가는 근대의 ‘트리형 세계상’은 무너졌지만, 그것은 두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 자체가 붕괴한 것이 아니라 단지 층위의 내용이 변한 것에 불과했다. 이제 심층에는 큰 이야기 대신 ‘정보의 집적’이, 표층에는 심층의 정보를 ‘유저의 시선’대로 조합하여 만들어낸 작은 이야기들이 자리하게 된다. 이상과 이념이라 부르든 진보와 발전이라 부르든 모던의 세계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 거대서사라면, 포스트모던의 세계는 ‘데이터베이스형 세계’로 운영되고 있다.1) 심층에 거대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심층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문자 역사를 담보할 수 있는 이야기 대신 파편화된 데이터베이스가 들어앉았을 뿐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작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아카이브 작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를 진리와 정의의 서사에 따라 역사화 하는 대신 한 공간에 죽 늘어놓는 방식으로 ‘박물관화’한다. 이 ‘아카이브화된 과거’는 흡사 ‘자료의 무덤’처럼 다층적 시간을 같은 공간 안에 모아둔다. 최근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흔히 마주하는 ‘레트로’ 역시 아카이브화된 시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가까운 과거의 디테일을 페티시즘에 가까운 수준으로 정교하게 복원해 낸 〈응답하라〉 같은 시리즈나 이삼십 년 전 유행가를 재해석하는, 과거로의 복고를 끊임없이 재생하고 독려하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은 가장 레트로한 것이야말로 가장 힙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프로그램의 유행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 ‘레트로 감수성’이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결코 ‘과거가 지금보다 좋았다’라는 식의 과거 숭배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판하려는 저항적 시도가 아니다. ‘레트로 마니아’의 마음에는 오직 ‘현재화된 과거’만이 유효하다. 그에게 과거란 “재활용과 재조합을 통해 (……) 힙한 스타일을 추출할 자료실”2)에 불과할 따름이다.
우리의 삶의 무대인 도시 역시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아카이빙하여 ‘지금’ 원하는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중이다. 한때 “치욕스러운 수탈의 흔적으로나 가시화되던 1920~1940년대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은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 문화적 자원으로서의 옛것”으로 승급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의 상징으로 선전되던 1960~1980년대 고도성장기 건축물들”은 “해체하고 재개발해야 하는 폐기물로서의 옛것”으로 강등되었다. 물론 이 변덕스러운 기준은 무엇이 더 옳은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소비되기에 매력적인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과거는 늘 현재에 의해 탈바꿈된다. 서울이라는 역사적·사회적 시공,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자신의 과거를 〈응답하라〉의 골목처럼 아카이브화된 시간 속에 재배치 중이다. 과거는 우후죽순 등장하지만 빠르게 현재화되어 하나의 스타일로 안착한다. 적산가옥을 고쳐 카페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힙한 것이 되고, 이는 마치 건물에 새겨진 고유한 역사성을 기억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떠한 구체적 시간과 의미도 담지 않은 무해한 공간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과거는 끊임없이 발굴되고 애호되지만, 세운상가처럼 향수와 복고를 자극할 수 없는 건물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철거되고야 만다.
상품을 마케팅하거나 소비하는 방식도, 문화생활을 하거나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도 이처럼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작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 된 지 오래다. BTS나 마블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다양한 매체와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작은 이야기들을 편집하고 배치하여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그것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잘 구현된 스토리텔링을 소비하는 것에도 또 생산하여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것에도 능숙해졌다. 우리가 무언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형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1)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역,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17, pp. 69~70.
2) 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역, 『레트로 마니아』, 워크룸프레스, 2020, p.31.
3.
나는 평론가라고 불리는 나 자신 역시 일종의 ‘문학 큐레이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념과 그에 따른 진영이 존재했고 민중문학, 민족문학, 노동자문학, 순수문학, 참여문학 등 온갖 ‘–주의’가 서로를 비판하고 견제했던 시기를 지나, 동시대 모든 예술이 그렇듯 문학 역시 공간적으로 보기 좋게 배치되었다. 이 문학의 전당에는 온갖 상반된 내용과 형식의 작품들이 같은 가치와 위계를 할당받아 사이좋게 빙 둘러서 있다. 사람들은 그 무더기 속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기 위해 비평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럴 때 비평가는 ‘지식인-비평가’도 ‘작가-비평가’3)도 아닌 ‘큐레이터-비평가’이고, 그 도움은 비평의 형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미술계의 큐레이터에게 전시 기획이나 미술관 운영을 둘러싼 다양한 활동들, 예컨대 작가를 섭외하고 인맥을 유지하고 경영 전반을 파악하는 행정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문학 비평가에게도 이와 같은 큐레이터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문학’에는 이론적이고 전통적인 ‘문학적인 것’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영역들, 그러니까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 사업을 따내는 방법이나 실적을 계산하고 가시적으로 관리하는 등의 일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이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역할로 큐레이터라는 명명은 꽤 적절해 보인다. 물론 이런 요구는 1998년 시작된 ‘학진 체제’(지금의 한국연구재단)나 각종 재단과 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인문학의 ‘생태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지금 젊은 비평가들에게 이 생태계는 ‘자연’ 같은 것이 되었다. 그가 만약 주류 문예지의 편집위원이라면 국공립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그러하듯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기 담론을 개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일종의 콜라보 작업을 기획해야만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는 보다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현상이다. 최근 큐레이터라는 용어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넘어 온갖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음악계에 큐레이터라는 말이 들어온 것이 2000년대 초반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그 무렵, 큐레이터를 자임하는 음악인들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라는 말을 원래 사용하던 미술계에서도 큐레이터의 위상이 급격히 부상한 것은 이 무렵이다. 그리고 이제, 다수의 세계적인 작가들은 작업 자체가 큐레토리얼(Curatorial) 작업인 동시에 직접 큐레이터를 겸직하기도 하고, 몇몇 저명한 미술 이론가들은 큐레이션과 비평을 동시에 선보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스타 큐레이터의 경우 아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모두가 큐레이터가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문학 쪽에서도 비평가뿐 아니라 ‘북텐더booktender’(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바텐더와 책book을 조합한 말), ‘북 소믈리에’ 같은 말을 사용하는 작은 서점이 유행하는 것, 그 공간을 매개로 낭독회나 라이브 방송처럼 출판사의 홍보 기획이 다양해지는 것, 단독 저서가 아닌 특정한 테마를 중심으로 한 앤솔로지 출판이 증가하는 것 등 유사한 흐름이 형성되어 있다. 아마도 큐레이터, 편집자, 기획자, MD의 역할은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해진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맞물려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해 갈 것이다.
왜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큐레토리얼 접근이 중요해졌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의 시대는 ‘온라인’이나 ‘인터넷’, ‘디지털’ 같은 말이 이미 자연이 되어버린 ‘포스트-온라인’, ‘포스트-디지털’ 시대에 돌입했다.4) 우리는 이제 외부의 기계와 접속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신체 말단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에 항시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지연과 간격도 없이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담론의 형태를 갖춘 지식이 아닌 균질한 조각들로 이루어진 데이터베이스다. 만약 누군가 그것을 추려 배치하는 작업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흡사 쓰레기 더미에 가까운 정보의 무더기와 대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질릴 만큼 방대한 정보 더미는 값싼 정보를 유통하는 온라인상의 사이트부터 고급문화를 선보이는 미술관 같은 아트센터까지 모든 곳에 산재해 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는 다수의 직업이 큐레이팅 능력을 요구받고 있고, 스스로 자신을 ‘크리에이티브’나 ‘에듀케이터’, ‘지식 큐레이터’, ‘지식 소매상’ 등으로 부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인 학자나 전문가보다 더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창작자는 아니지만 다종다양한 것들을 매개하고 배치하는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경영자는 아니지만, 경영과 무관하지 않게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 이것은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고 기획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에게 지금의 플랫폼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능력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비평의 중요한 의의였던 비판의 기능은 그저 ‘선택과 배치’의 문제로 또는 ‘태도와 윤리’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될 수밖에 없다.
3) 소영현, 「지식인-비평(가)에서 작가-비평(가)로」, 『올빼미의 숲』. 문학과지성사, 2017.
소영현은 비평의 전사를 살펴보는 이 글에서 1960년대부터 유지되었던 백낙청과 김현으로 대표되는 ‘지식인-비평가’ 시대가 90년대를 통과하며 의문시되기 시작하다가 2000년대 초반 이광호와 김형중으로 대표되는 ‘작가-비평가’에 의해 내파되었다고 설명한다.
4) 이광석, 『데이터 사회 미학』, 미디어버스, 2017, p.26.
4.
그러므로 ‘기억과 경험의 아카이브’가 되어버린 역사를 향해 고작해야 역사의 상실 이후 “시간 자체가 심미화되어 가는”5) 과정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 비판에서조차 이제 우리가 시간보다 공간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은 전제되어 있다. 이미 존재하는 감각을 마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듯 ‘외부적 지점’을 가설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당위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이지만 실천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무력할 수 있다. 어쩌면 늘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 발본적이고 급진적인 비판이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다음 행로를 개척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 같은 곤경 앞에서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길 원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똑똑한 인간은 자신의 시대를 증오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래도 자신이 자신의 시대에 돌이킬 수 없이 속하며, 자신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6)
모든 시대의 주류적 형식이 다 그렇듯이, 데이터베이스를 재배치하고 재발명하는 지금의 형식도 동시대를 향한 봉합인 동시에 대응이고 수용인 동시에 모색이라는 양가성을 지니게 된다. 아카이브를 상대한다는 것, 그 자체는 지극히 동시대적인 반응에 불과하고 정치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에 비평적 개입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아카이브를 대상으로 큐레토리얼 접근을 하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엄청난 정보와 자본을 토대로 한 정교한 알고리즘에 따라 (이 또한 큐레이션이다) 우리의 입맛에 맞게 제공된 ‘재생목록’을 끊임없이 재생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혹은 우리 자신의 큐레토리얼 작업을 통해 비판과 개입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아카이브’, 더 나아가 ‘우리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러니 유효한 실천을 위해 조금 옆으로 비켜 서보자. 최근 동시대 미술 전시를 진지하게 관람한 관객이라면 불가피하게 스스로 큐레이터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규모가 큰 대부분의 전시는 몇 시간 내에 돌아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전시된 영상들의 재생 시간을 모두 합쳐 보면 며칠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애초 이 아카이브 앞에서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하는 것은 아카이브 자체가 아닌 ‘아카이브 하기’였던 셈이다. 전시된 공간은 일종의 큐레토리얼 작업의 잠정적 결과물일 따름이고, 여기서 우리 역시 큐레이터로서 자신의 아카이브를 구성해야만 전시의 의미나 서사를 재구성해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의미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아카이브 하기’를 보면서 ‘아카이브 하기’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앞서 언급한 알고리즘적 방식의 큐레이션이다. 알고리즘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각종 SNS가 세계를 균질화하는 가장 강력한 메커니즘 중 하나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한히 갱신되는 실시간의 ‘타임라인’과 ‘자동재생’에 아늑하게 갇히게 된다. 언제든 새로운 것이 출현하지만 그것은 모두 내 취향에 맞춰 준비되어 있다. 그렇게 무한히 옆으로 확장하는 동일성의 세계는 무시간성의 세계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낯설고 울퉁불퉁한 시간성을 부활시키는 시도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벤야민의 적절한 비유인 ‘성좌’라는 말을 빌려도 좋을 것이다. 성좌를 그리는 것은 타당한 담론을 바탕으로 과거를 정치적으로 다시 사유하는 큐레토리얼 접근이다. 동시대의 꼬리표를 단 온갖 기호들이 미끈하게 전 세계의 시장을 넘나들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다른 맥락에서 인용하고 시대착오적으로 배치하며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데 사용한다. 그렇게 예술과 사유는 시대 내부에 있어도 완전히 내부화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문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시도되는 큐레이팅에는 ‘어떻게’의 문제보다 ‘왜’의 문제, 다시 말해 ‘목적과 의도’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본래 “큐레토리얼 역할의 커진 존재감은 디스플레이된 예술작품의 미학적 자율성을 희생시키며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큐레토리얼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는 “동일 강도의 비평 조사가 길항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의무가 있다.7)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이 글이 나의 방법론을 되짚어 보려는 의도로 쓰였으며 나는 이에 대한 보충과 비판을 기다린다.
우리가 과거를 통해 ‘응답하라’의 골목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정치적인 지평에서 다수의 시간성을 탐색”해야 한다. 우리가 아카이브를 다루고 재배치하는 ‘현재화’의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무한한 현재를 긍정하는 ‘현재주의’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양식과 신념이 똑같이 유효하다고 간주하는 현재 이 순간의 상대주의적 다원주의를 교란”하고 “세계를 재사유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8) 과거가 데이터의 형태로 공간화·현재화된 지금, 큐레토리얼 작업이 과거에 접근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 된 지금, 우리는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또 사용해야 한다. 사라져 버린 역사 대신 데이터베이스화된 기억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그 속을 헤집어 아카이브를 재발명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비판의 기획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수집의 대상이 다시금 역사 행위자가 되게”9) 해야만 그 큐레이팅은 의미를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동시대인은 늘 아슬아슬하게 기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5) 서동진, 『동시대 이후: 시간-경험-이미지』, 현실문화연구, 2018, p.16.
6) 조르조 아감벤, 양창렬 역, 『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 난장, 2010, p.71.
7) 폴 오닐, 변현주 역,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팅의 문화, 문화의 큐레이팅』, 더플로어플랜, 2019, p.34.
8) 클레어 비숍, 구정연 외 역, 『래디컬 뮤지엄』, 현실문화연구, 2018, pp,35~37.
9) 같은 책, p.93.
5.
인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시간의 서사’란 “언제나 시간의 정의에 관한 허구”였다, 우리가 시간을 재현하는 모든 방식은 “사건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사고되고 연결될 수 있는 틀을 구축하는” 일종의 기본 설정값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10) 아카이브적 기억술 역시 우리 시대가 시간을 다루는 조건이자 형식이 되었다. 우리가 만약 동시대성에 저항하기 위해 그것과 무관한 형식으로 비판을 수행한다면 그 목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지금의 감각을 포함한 채 이것을 초과해야 한다. 바로 이렇게 내부에 존재하되 그곳의 핵심적인 모순을 정면으로 내파(內破)하는 이들이 문학에 늘 존재했다.
나는 2020년 네 명의 작가에게서 이와 같은 것을 발견했다. 박민정, 신종원, 정지돈, 한정현,11) 이들은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상대하며 과거와 역사에 절합(articulation)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소설은 나에게 ‘무한하고 정치적인 텍스트의 목록’을 상대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의 깊이는 단발적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초과하지만, 나는 마치 위키피디아에서 정보를 읽을 때 링크를 클릭해 가며 끝없이 이동하는 모습처럼 무수한 텍스트를 경유하며 새로운 맥락을 연결해 갔다. 소설들은 모두 하이퍼텍스트처럼 작동했고 그 때문에 나의 독서 시간은 급격히 늘어났다. 나는 텍스트와 함께 쓰인 소설들을 텍스트와 함께 읽어 나갔다. 그러나 이것은 취향의 알고리즘처럼 동질적인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자동화의 과정이 아니다. 이것은 알고리즘과 매체적 토대를 공유하지만, 알고리즘의 자동성과는 달리 우발성과 운동성을 지닌 큐레토리얼 결과물이다. 나는 그 결과물을 공유하며 그것을 재맥락화하고 확장해 갈 수 있었다. 이렇게 유효한 예술적 실천은 동시대의 문법을 공유하는 동시에 그 자동성을 반박하고 탈피하며 자신의 문법을 정립해 간다.
물론, 이미 2000년대 초반에 과거를 성좌처럼 그리며 선형적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했던 김연수의 소설도, 민족 서사나 민중 서사 같은 거대서사로부터 거침없이 탈주했던 김영하의 소설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이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모던에 대한 것이었다. 시대착오적인 결합을 시도하는 자가 동시대인이라면, 김연수와 김영하는 결코 모두가 ‘포스트’모던하지 않았던 시대에 포스트모던한 동시대인으로 등장하여 모던에 반박했다고 할 수 있다. 실은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더 이상 비평의 영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힘주어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대가 완벽히 포스트모던해진 후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힘을 잃었다. 형식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자연화되었고 더구나 인터넷의 확산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기존의 것을 탈맥락화하여 재맥락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전략은 그렇게 맥락에서 탈취되어 온갖 곳을 떠돌아다니는, 다시 말해 “그 단계를 이미 거친 자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무의미해져 버렸다.12)
내가 네 명의 작가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큐레이터나 아키비스트(Archivist)로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전 세대가 지녔던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의 이주’의 감각이 부재하는 포스트모던의 정주민들이고 그렇기에 이들이 포스트모던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해서 그것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2000년대 전후에 등장했던 포스트모던 역사 서사가 주체에 대한 비판과 재현 불가능성에 관한 윤리의 문제를 도입했다면, 지금 이 네 명의 작가들은 더 이상 그런 논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앞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을 ‘왜’ 말할 것인지에 대한 큐레토리얼 비전이다. 다시 말해 동시대 예술은 형식상 포스트모던할지라도 시대정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는 벗어났다는 말이다. 이는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모더니즘의 성취를 십분 활용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의 형식을 구사하여 모더니즘이 지닌 ‘예술의 자율성 논리’를 비판했듯이 동시대 작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숙지하여 포스트모던한 세계에 비판을 가하고 주석을 달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대문자 역사를 뒤틀기 위해 역사적 사료의 임의성을 드러내는 포스트모던한 반항 대신 오히려 아카이브를 사려 깊게 살피고 거기서 선별한 정보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세계는 해체되지 않고 계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무렵 시도되었던 포스트모던 역사 서사의 전략은 ‘동시대-역사 서사’에서 변형되고 반박되며 계승된다. 포스트모던 역사 서사가 대타자에 대항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민족·민중 같은 대문자 주체의 거대서사를 해체하는 데 경주했기 때문에 동시대-역사 서사는 그 이후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었다.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저자의 죽음이나 재현 불가능성에 대해 성찰하고 집중했기 때문에 동시대 예술과 문학은 강한 자의식을 지닌 주체를 노출하는 것에 반성적 주석을 달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네 작가의 소설에는 정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정보의 이음새가 노출되어 있으며, 정보를 채굴하고 연결한 ‘큐레이터-서술자’의 존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앞서 아즈마 히로키가 포스트모던의 논리에 대해 오타쿠를 통해 설명한 것처럼 나 역시 이들이 일종의 ‘덕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덕후가 설정에 집착하는 것처럼 아키비스트 겸 큐레이터는 자료의 정밀함과 방대함에 집착한다. 그래서 이 소설들은 감정이입을 주된 목적으로 삼지 않고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며 자료의 공백을 보충하기 위해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정지돈의 소설에 관한 가장 정확한 해설과 참고문헌이 정지돈의 소설 내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이들은 필연적으로 메타적이고 담론적이며 지적이다. 예술의 문법이 추상과 구상을 상호 전환하는 것이고 문학의 운동이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라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누비고 연결하여 그것을 문학적 텍스트로 변환하는 작업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반영’이나 ‘재현’이라는 말 대신 ‘변환’이라는 말을 애용하는 자체가 동시대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들의 작업이 동시대인이 의도적으로 써 내려간 ‘동시대에도 역사는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을 위해 네 명의 작가들은 모자이크처럼 파열하는 동시에 중첩되는 우리의 세계를 미메시스 한다. 그리고 아카이브화된 과거, 공간화된 시간 속에서도 ‘미래의 전망’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전망이라는 것은 실체화된 과거를 반성하고 선형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방식이 아닌, 가능성으로서의 과거를 상상하고 기대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완벽히 미래적인 것’을 잊지 않는 방식에 가까울 것이다. “가장 근대적이고 최근의 것들 속에서 의고성의 지표나 서명을 지각하는 자만이 동시대인”13)인 것처럼, 다른 세계를 향한 모색은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상상력은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14)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거대한 현재에 짓눌려 ‘시간’을 내팽개치지 않으려면 과거와 현재가 유동하는 그물망으로서의 동시대성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납작하게 평면화해 버리지 않도록 시간성이 넘실대고 운동하는 세계, 미래가 다시 의미를 찾는 세계를 상상하고 지향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소설이라는 아주 오래된 매체는 시간성의 함수를 갱신하고 설계하는 데 가장 동시대적인 형식일지도 모른다.
10) 자크 랑시에르, 양창렬 역, 『모던 타임스-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 현실문화연구, 2020, p.14.
11) 2020년 발간된 작품으로만 논의를 한정한다. 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문학과지성사, 한정현, 『소녀 연예인 이보나』, 민음사, 박민정, 『바비의 분위기』, 문학과지성사. 2020년 등단한 신종원의 경우 아직 출판 준비 중이지만, 발표된 소설의 분량은 소설집 한 권에 해당한다.
12) 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역, 『레트로 마니아』, 2020, p.393.
13) 조르조 아감벤, 양창렬 역, 『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 난장, 2010, p.83
14) 발터 벤야민, 최성만 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도서출판 길, 2015, p.336.
6.
이제 도록을 작성할 시간이다. 이 글의 마무리로 전시의 도록을 첨부한다.
〈역사와 사물의 큐레이터展 : 박민정, 신종원, 정지돈, 한정현〉
(……중략……)
정지돈과 한정현은 둘 다 해방 전후 시기를 다루고 있고 문서화 된 자료를 선별하고 배치하는 데 탁월한 감각이 있지만, 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은 다소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다수의 시간성을 탐구하기 위해 문서고를 뒤지지만 정지돈이 우발성과 불능의 감각에 집중하는 잠정적-산책자의 모습을 보인다면, 한정현은 필연성과 가능성을 발굴하는 항구적-연구자의 모습을 보인다.
박민정과 한정현은 여성과 퀴어를 비롯한 소수자들이 처한 폭력의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역사적 사료를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지만, 한정현이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대안적 서사를 그리는 데 골몰한다면 박민정은 비관과 절망으로까지 보일 정도의 강력한 화력을 비판의 기획에 집중하는 냉철한 운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종원과 정지돈은 둘 다 소설이라는 매체와 소설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이 두드러지지만, 정지돈의 숨길 수 없는 멜랑콜리한 뒷모습에 비해 신종원은 디렉터 혹은 지휘자로서의 권능을 보여준다. 또한 정지돈이 텍스트 간의 연결과 접속에 섬세한 재능을 보인다면 신종원은 다종다양한 매체 간의 전방위적 변환에 흥미를 느낀다.
한정현과 신종원은 마치 구술하는 듯한 목소리를 지닌 서술자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한정현의 목소리가 마치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쌍방향을 전제하고 들려온다면 신종원의 목소리는 다채널 영상처럼 부유하는 카메라의 음향으로 감지된다. 그래서 한정현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신종원의 목소리는 유령적이다.
정지돈과 신종원의 시간성이 흘러가고 흩어지는 편에 가깝다면 박민정과 한정현의 시간성은 역사적·구조적 상동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개방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박민정이 특정한 사건을 중심에 두고 종적·횡적 인과관계를 규명하여 사회학적 큐브를 완성하는 쪽이라면, 한정현은 견고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다른 역사가 가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계보를 구성하는 쪽에 가깝다. 또한 이렇게 새로운 계보를 완성하려는 의지가 한정현과 신종원에게 공통되지만, 한정현이 계보의 구심력을 사람들 간의 온기와 연대에서 찾아 지금 우리의 현실과 연결하고자 한다면, 신종원은 특정한 사물이나 건물을 중심축으로 삼아 ‘사물의 전기(The Biography of the Object)’를 직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소설을 하나의 오브제처럼 구현하고자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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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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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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