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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울어

  • 작성일 2022-01-01
  • 조회수 4,200

[단편소설]



누가 울어



하성란




1.


지난밤 꿈속에서 나는 1992년식 자주색 르망을 몰고 S시로 퇴근했다.
꿈인데도 S시 방향의 도로는 정체가 시작되어 교차로 한참 너머까지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삼십 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운전석에 앉은 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상습 정체 구역인데 앞지르기를 해 끼어드는 얌체족들을 단속하지 않는 건 여전한 모양이라고. 이럴 거면 대체 법이란 건 왜 있는 거냐고. 정체만 없다면 반으로 시간이 줄 거리였지만 단 하루도 그런 날은 없었다. 출퇴근 시간으로 세 시간 이상을 길에다 버리고 있자면 얌체족에서 시작되어 공무원에게로 옮겨간 나의 화는 구체적이지 않은 무언가로까지 뻗어 있었다. 그렇게 실체 없는 무언가를 미워하다 보면 S시에 도착할 무렵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젠 그곳에 갈 필요 없다고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건 꿈이라고 이제나저제나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가 앞차가 간격을 벌리는 걸 놓치고 말았다. 득달같이 뒤차가 경적을 울렸고 당황한 나머지 핸들을 꺾는다는 것이 그만 액셀을 밟아 앞차에 따라붙고 말았다. 그 바람에 꼼짝없이 S시로 가고 만 것이었다. 중간에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꿈이니 반쯤 포기한 것도 있었다.
S시에 접어들 무렵 날이 저물었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가로등 불빛에 서서히 드러나는 동네의 윤곽을 올려다보았다. 배수 파이프에서 흘러나온 오수로 물 얼룩이 밴 낡고 지저분한 축대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고 대신 불을 밝힌 아파트의 수많은 창들로 동네는 듬성듬성 알들이 빠진 ‘쓰부 다이아’ 브로치처럼 빛나고 있었다. 낮은 담장을 끼고 모퉁이를 돌자 초등학교 정문이 나타났다. 쇠창살 너머의 넓은 운동장에도 어둠이 깔렸다. 이 학교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을 거였다. 해마다 학생 수가 급감해서 지금 내가 맡고 있는 6학년 4반은 남학생 열둘, 여학생 열하나였다. 그러고도 빈 교실이 남아돌아, 지금의 학교로 부임한 그해 학교 건물 한 동의 일층에 병설 유치원이 들어섰다. 바로 그 느티관 건물 지붕에 석면을 덧댄 사실이 재작년 감사에서 드러났고 그 제거 작업으로 학교와 유치원이 장장 50일간의 긴 여름방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비탈길 중간쯤에 그 아파트가 있었다. 그 당시에도 아파트는 재건축 이야기로 뒤숭숭했다. 진작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점차 무언가가 떠오르고 그것이 그 아파트의 벽면에 그려진 비둘기 모양의 로고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고추를 조리는 매운 내가 저녁 공기에 뒤섞였다. 잠투정을 하듯 아이가 징징대고 젊은 엄마가 빽 소리를 질렀다. 녹이 슬고 페인트칠이 바랜 아파트는 삼십 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차장은 따로 없고 공용 현관 앞의 축대와 면한 공터에 일자로 길게 흰 줄을 긋고 칸을 나누었다. 꿈이니 한 번에 주차되면 좋으련만 여전히 꿈속에서도 일렬주차는 내게 무리다. 간신히 주차 칸 안에 차를 넣었지만, 왼쪽 보닛이 주차선을 살짝 벗어났다. 차를 돌려 나올 데가 없어 아침이면 후진을 해 나와야 했다. 낡은 아파트라 CCTV는 없었고 매일 아침 누군가의 차가 긁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렇게 나도 당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나도 남의 차를 긁은 적이 있으니 피장파장이었다.
계단 난간에 묶어 둔 자전거 핸들이 휙 틀어지면서 호되게 옆구리를 찍혔다. 계단참도 쌓아 둔 물건들로 어지러웠다. 겨우겨우 맨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5층까지 걸어올라왔는데도 꿈이라 하나도 숨이 차지 않았다. 504호 문은 빠끔 열려 있었다. 보자기만 한 작은 현관에 뒤엉킨 남자들의 커다란 신발들이 보였다. 누구의 신발인가 확인하려는데 닫힌 안방 문 안에서 젊은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와 움찔 놀랐다. 젊은 남자들의 웃음소리는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슬리퍼와 운동화는 모두 네 켤레, 그나저나 어디에 두어야 할까. 남자들의 커다란 신발로 꽉 찬 현관을 내려다보면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내 구두를 벗어 둘 데가 없다는 것. 성인 여자 발치고 작은 편인 내 구두 하나 벗어 둘 공간이 없다. 어디에 벗어 놓아야 성미 급한 저 남자들이 밟고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닫힌 문 안에서 남자들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문 안 저쪽에서 웅얼대는 작은 소리가 났고 그 소리만으로도 나는 그것이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캐스터의 목소리임을 알아챘다. 그렇다면 그 남자들일까. 설마 그 남자들일까. 나는 조심조심 현관 안쪽에 구두를 벗어 두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도드라졌다.
“자자, 이제들 일어나라. 심상희 선생님 오실 시간이다.”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어느 부분에 이르르자 뒤집히듯 쉰 소리로 이어졌다. 심상희 선생님. 학교 밖에서 나를 그렇게 부르던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최였다. 504호에 최가 있었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 최가 퇴근해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


여덟 시 정각에 교무회의를 시작하겠다고 공지해 놓고 정작 당사자인 교무주임은 십 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5년 후배인 그를 잘 알았고 내가 아는 그는 약속에 있어 철저한 사람이었다. 늦잠을 잤거나 버스를 놓쳤을 것이다. 뭔가 큰일이라면 그나 그의 가족을 통해 벌써 연락이 오고도 남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오고 있으리라. 그러자 교무주임이 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는데 휘날리고 있는 건 그의 눈썹이 아니라 숱이 적어 이마에 달싹 달라붙은 그의 머리카락이었다. 작년엔 코로나로 아예 운동회가 없었고 그럼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담임과 학생 간 계주 경기에 그가 주자로 나왔다. 땀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그의 앞머리는 오후 그 시간에 해를 가리는 가림막 모양으로 들뜬 채 굳어 있었고 그가 사력을 다해 달리는 동안 가림막도 그의 보폭에 따라 팔락거렸다. 길어 봤자 5분 안에 저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게 빤했고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휴대폰의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메모장을 열었다. 그동안 끼적였던 메모들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맨 위 최근에 적어 둔 메모가 보였다. ‘누가 울어’. 앞뒤 없이 달랑 그 문장 하나였다. 누가 울어? 물음표를 달고 중얼거려 보았다. 누가 울어! 이번엔 느낌표를 붙여 보았다. 대체 왜 이런 메모를 해둔 건지 알쏭달쏭했다. 대부분의 메모는 반주로 시작한 술이 내 주량을 넘어섰을 때 씌었고 술이 깨고 나면 대부분 그 뜻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얼굴 인식이나 비밀번호로 열리는 휴대폰이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몰래 메모해 두었다는 의심은 아예 할 수도 없는데 어떨 땐 정말 다른 누군가가 써둔 것만 같았다.
꿈이 깨고 나서 알게 된 건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면서 내 구두를 밟았다는 거였다. 속이 상했지만 온전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가 더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뭘까. 커다란 신발들로 뒤엉킨 작은 현관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꾸움? 열흐을바암?”
어깨 너머에서 들리는 하이 톤의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진심으로 놀라는 바람에 그쪽이 나보다 더 놀랐다. 교무실에 앉아 있던 선생들 몇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김희정 선생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마스크 쓴 얼굴들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한 번에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번 반 박자 늦게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문제는 그때마다 “어? 아!”라는 군말로 꼭 표시를 낸다는 점이었다. 김 선생이 품에 안고 있던 아이들의 시험지 뭉치를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그제야 나도 모르는 새 메모장에 ‘꿈 열흘밤’이라고 써둔 걸 알아챘다. 이런 것 하나도 내 상상력이 아니라 일본 소설가의 소설 제목이나 베끼고 있다는 씁쓸함이 따라붙었다.
“쌤, 그렇게 비밀스러운 거면 글자를 좀 작게 하시든가요, 어찌나 글자가 큰지 교무실 문에서도 다 보여요. 그건 그렇고 쌤은 꿈도 글로 남겨 두시는구나, 역시 작가는…….”
매번 돋보기를 챙기는 것이 귀찮아 핸드폰의 글자 크기를 200퍼센트로 키워 둔 게 떠올랐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지하철에서도 병원에서도 식당에서도 틈만 나면 이런저런 검색들을 마구 해댔으니. 누가 봤으면 또라이에 변태라고 생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런데 우리 심쌤 어젯밤 꿈에 어디 좋은 데라도 다녀오셨나?”
뭔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김 선생에게 꿈속에서 차를 몰고 간 곳이 삼십 년 전 최와 신혼을 시작한 낡고 작은 아파트였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모른 척 해주면 좋으련만, 김 선생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 우리 심쌤. 얼굴 빨개진다. 오, 얼굴 빨개진다.”
김 선생의 실없는 장난에 앞자리에 앉은 선생 둘이 고개를 빼고 뭐, 재미난 일 있어요? 거 좀 같이 웃읍시다, 라고 말하는데 교무실 문이 열렸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교장을 앞세우고 교무주임이 들어섰다. 지각한 게 아니라 진작 학교에 도착해 놓고 교장실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을 어긴 것이다. 근무평점을 주는 것은 교장이고 좋은 평점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교감이 되기 위해 착실하게 마일리지를 쌓고 있을 뿐이다. 교무실 안쪽에 앉아 있을 교감의 표정이 대충 예상되었지만 부러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전 행정실장이 교감을 패싱하고 바로 교장에게 결재를 받은 일로 그는 가뜩이나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올해 학년 계획표가 학생들 편에 학부모에게 배포되고 작년 2학기 때부터 이미 공지가 된 상황이었지만, 길게 이어질 여름방학에 학교는 물론이고 학부모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이런 시국에 아이들을 학원으로만 돌릴 수 없는 부모들은 애가 탔다.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이중삼중의 잡무에 정작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없다는 불평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무회의도 교사들에게는 고충이었다.
김 선생은 회의 내용은 듣는 둥 마는 둥 자리에 앉은 뒤부터 아이들의 수학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다른 학교의 석면 지도에서 문제점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는데 우리 학교는 문제가 없는 거냐, 부실한 제거 공사로 아직 개학도 못 한 학교가 있다는데 우리 학교도 그러는 건 아니냐?”
마스크를 쓴 탓에 웅얼대는 듯한 교감의 목소리는 마치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말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수시로 마스크를 단속하는 동작도 부산스럽게 보였다. 수업으로 교사들이 모두 교실로 올라가고 나면 교감 혼자 교무실을 지켰다. 학부모들로부터 걸려오는 문의와 항의 전화는 거의 그의 몫이었다.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우리 학교는 아니라는데 절대 아니라는데 도무지 믿어 주시지를 않는 겁니다.”
느티관의 지붕뿐이라는 학교의 발표를 나도 전적으로 다 믿는 건 아니었다. 석면의 폐해가 알려진 뒤에 건축된 학교 실내체육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느티관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어진 진달래관에서 석면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그 당시 내열성, 내화성이 뛰어나 앞 다퉈 시공했던 석면을 일절 쓰지 않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된 느티관만 해도 2014년 조사에서는 석면이 없다고 발표되지 않았던가.
교장이 교감의 이야기를 이어 받았다. 내년이면 정년이었다. 정년을 일 년 앞두고 석면과 역병이라는 위중한 상황과 맞닥뜨릴 줄은 몰랐을 것이다. 교장은 대면 수업과 아이들의 건강, 개인위생 교육에서부터 7월초부터 시작될 대대적인 석면 제거 공사까지 각별한 주의를 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그러더니 “지금 제 심정이 꼭 산속 외딴집 문설주에 귀 기울이고 선 눈 먼 처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웬 ‘윤사월’? 나는 재빨리 김 선생의 안색부터 살폈다. 자리에 앉은 선생들로부터 별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교무실 안을 둘러보던 교장이 갑자기 “그렇지 심 선생 어디 계시나? 우리 심상희 선생.” 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김희정 선생이 빨간 펜을 던지듯 툭 내려놓았다. 얼마나 눈을 부릅떴는지 옆에서 봐도 꼭 하카춤을 추는 마오리족의 남자 같았다. 이러다 “이의 있습니다!” 의자를 밀치며 분연히 일어서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나는 참으라는 뜻으로 김 선생보다 더 눈을 부릅떴다.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눈에 감정을 담으려 애를 썼다. 다행히 김 선생은 내 눈빛을 읽었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펜을 다시 집어 들었다.
4년 전 같은 해 부임했다는 이유로 교장과 ‘우리’로 묶인 뒤 툭하면 교장은 소환하듯 나를 부르곤 했다. 오래전 내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것을 어떻게 알고는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학교 행사의 연설문을 맡기는 것으로 모자라 이렇듯 아무 때나 자신이 인용한 시나 글귀의 출처를 묻고 동조를 구하는 통에 나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생들 틈에서 나를 발견하지 못한 교장이 못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글을 쓰시는 우리 심 선생님이라면 단번에 제 심정을 아시고도 남을 텐데 말입니다.”
옆에 서서 회의를 진행하던 교무주임이 “모쪼록 교장 선생님이 무사히 정년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파이팅”이라고 외쳤고 선생들 몇이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쌤, 어디다 방점을 찍고 읽으면 그 시가 그렇게 읽혀요?”
뒤따라 계단을 올라오며 구시렁대는 김 선생의 얼굴에서 8년 전 “안건 있습니다!”라며 손을 들던 새내기 교사의 얼굴이 겹쳤다.
한 달 내내 매주 월요일마다 교무회의가 열렸고 토론이라는 말과는 무색하게 일방적인 협조 사항만 전달되던 시절이었다. 20년차가 넘은 나는 그러려니 반은 흘려들으면서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고 있었다. “안건 있습니다!” 목소리에서 아직 어린 티가 났다. 얼마나 힘차게 일어났는지 바퀴 달린 의자가 저만큼 뒤로 밀려나 등을 지고 앉은 선생의 의자에 가 부딪혔다. 영문을 모르는 교장과 교감을 향해 김 선생은 “회의가 너무 많고 너무 깁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은 한 번도 당해 본 적 없고 예상해 본 적 없는 교장과 교감은 얼떨결에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했다.
당돌해 보인다기보다 저 선생 승진에는 통 관심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드러내놓고 찬성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젊은 선생들이 도장 찍듯 김 선생과 눈길을 교환하고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저멀리 가 있는 김 선생의 의자를 밀면서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얼떨떨하게 서 있는 김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정말 잘하셨어요.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갔어요.” 그 말을 건넨 게 인연이 되었다. 근무지가 바뀐 뒤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휴일에 만나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 그러다 2년 전 김 선생이 같은 학교로 부임해 오면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자기도 성격 많이 죽었다.”
김 선생이 “왜요, 쌤? 응? 뭐?”라고 묻더니 눈을 다시 부릅떴다.
“아무튼 교장 쌤은 남은 일 년, 윤사월 처녀 코스프레를 할 거고요, 죽어나는 건 평교사인 우릴 거고요.”
김 선생이 생각난 듯 물었다.
“쌤, 병원은요?”
몇 년 전부터 나는 여기저기가 아팠고 그때마다 김 선생에게 투정을 부렸다. 김 선생은 한 번도 듣기 싫어하는 표정 없이 내 투정을 다 받아 주는 것은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나보다 몇 살 위인 자기 엄마와 엄마 친구들에게 들은 이런저런 정보들을 내게 물어다 주었다. 나는 김 선생 이야기를 듣고 에어 프라이어를 샀고 무거운 청소기를 버리고 줄이 없고 가벼운 청소기로 바꾸었다. 팔을 못 들어 올리겠다고 했었나, 아니면 아이들과 줄넘기를 하다 오줌이 찔끔 샜었다고 했었나, 병원에 가서 진찰 꼭 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것만 기억났다. 내가 대답을 뭉개고 급히 자리를 뜨려 하자 김 선생이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애들한테 뭐라고 할 것도 없어. 쌤도 애들하고 똑같아. 너무너무 말을 안 들어.”
선생님의 잔소리를 피하고 보는 아이처럼 부리나케 4반 교실로 줄행랑을 치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계속 신경 쓰였던 건 현관이었다. 안방에 모인 남자들이 그들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그 남자들이라면, 엉클어진 신발들 속에 뒤꿈치가 구겨진 신발은 없었다. 홍은 늘 신발 뒤꿈치를 구겨 신었고 그렇다면 지난밤 홍은 504호에 오지 않았다.



3.


그들은 S시에 신설된 고등학교의 1기 졸업생들로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키가 커서 교실 맨 뒷줄에 나란히 앉게 되면서 친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버스로 한두 정거장 거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부모님의 직업이 교사나 공무원으로 가정형편도 엇비슷했다. 다섯 중 유일하게 최만 결혼해 독립했고 낮이면 텅 비는 최의 집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중 최가 제일 작아 57번, 키가 제일 큰 홍이 63번이었다. 그 사이에 작은이와 조, 큰이가 있었다. 빠진 번호는 둘이었는데, 한 명은 공부밖에 모르는 우등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한 학기에 두어 번 얼굴을 비칠까 말까한 운동부 선수였다.
왜 홍은 오지 않은 걸까. 나는 한 발 물러선 채로 게시판에 걸린 아이들의 그림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게시판에 걸린 그림은 모두 스물넉 장.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다시 세어 볼 필요도 없었다. 가로 여섯 장 세로 네 장, 딱 맞아떨어졌다.
우리 반은 여학생 열한 명 남학생 열두 명. 그럼 아이들의 자화상도 스물 석 장이어야 했다. 23. 수학자들이 좋아한다는 소수. 하지만 뭐든 딱 맞아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학급 환경미화 때나 짝지어 하는 체육 시간마다 나를 곤란하게 하는 숫자였다. 아이들의 그림을 걸기 전부터 그림 배치로 고민했는데 그런 내 고민을 비웃듯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우당탕탕 걸상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찌익 책상이 끌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청소 당번이냐고 남자애들이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게 뻔했다. 미술 시간에는 물풀에 물감을 풀어 자화상을 그렸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바닥에 아이들이 제 손과 책상을 닦고 버린 휴지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풀기가 묻은 휴지 뭉치는 바닥에 들어붙어 잘 쓸리지도 않았다. 문을 열어 두었지만 교실에는 미술 시간에 쓴 물풀과 물감 냄새가 고여 있었다.
오늘은 자화상을 그려 봅니다, 라고 말했더니 “자화상요?”라고 반문한 아이들이 반, 그런 애들이 한심하다는 듯 “초상화도 모르냐?”라고 한 아이들이 반이었다. 그때 한 아이가 “아, 고흐?”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몇 년 사이에 강가 쪽에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학교 분위기도 바뀌었다. 학부모의 교육 수준이나 직업 등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아파트나 빌라의 평수를 대놓고 묻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부모가 퇴근해 돌아올 때까지 학교의 돌봄 교실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고가의 학원들을 도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 시간 안에 자화상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실기까지 모두 마쳐야 했다. 오십 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스무 명 안팎은 일도 아니었지만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들은 낙오시킨 채로 진도를 빼야 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신의 책임 중 많은 부분을 사교육으로 전가시키는 거랄까. 고흐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역시나 귀를 자른 부분에서 아이들이 흥미를 보였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한 채로 아이들의 자화상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마침 휴지 뭉치 하나를 두고 하키하듯 빗자루로 몰고 가는 남자애들 중에 한 명을 불러 세웠다. 명진, 우명진이었다. 삼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였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좋은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금방 외우고 잘 잊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명진아, 우리 반 애들이 모두 몇 명이냐?”
담임이 그것도 모르는 게 말이 되냐는 듯 아이의 눈동자에 책망하는 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남자 열둘, 여자 열하나, 스물셋요.”
“그렇지, 스물셋. 근데 명진아, 여기 좀 봐라. 어디서 한 명이 갑툭튀했다.”
“예에?”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변성기에 접어든 아이의 목소리 끝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열세 살이었다. 키에 비해 어깨가 벌어졌다. 바른 말 고운 말 쓰라고 귀에 못이 박이게 잔소리하면서 정작 선생님은 그런 말 써도 되냐고 따지고 싶은 것이다.
“명진아, 우리 반에 우리가 모르는 애가 한 명 더 있다.”
또 예에? 하고 되물을 줄 알았는데 웬걸 내 기대와는 달리 아, 그거요, 했다.
“건우요, 김건우.”
“아니 뭐? 우리 반에 김건우가 또 있어?”
아이의 두 눈에 대체 저 선생이 왜 저러는가 하는 듯한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나는데 나로서는 웃음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김건우는 한 명이죠. 그 김건우가 잘난 체하려고 뚝딱 두 장 그리고 두 장 다 말린다고 사물함에 올려 뒀는데요, 그걸 모르고…….”
“몰라? 누가?”
누구긴 누구이겠느냐고 아이가 내 얼굴을 힐끗 치켜보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그런데 명진아. 넌 선생님이 잘 모르고 김건우 그림을 두 장 다 붙이는 걸 보고 있었으면서도 왜 선생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던 거냐?”
“예에?”
괜한 불똥이 자신에게 튀자 아이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선생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걸 못 알아차리고 있는 거다. 아직은 어린애다. 됐다, 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명진이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뛰어갔다. 반 아이들이 다 알면서도 선생의 실수를 눈감아 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 속지 마라?
“애들 천진한 얼굴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월요일 학년 모임에서 6학년 남자 주임이 말했다. 5학년 초부터 한 아이를 대상으로 한 따돌림이 교묘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담임은 물론이고 반 아이들도 대부분 눈치 채지 못했다. 학폭위를 열어야 할 사안인지 아닌지 아이들을 모이게 해 반성문을 쓰게 했는데 선생을 앞에 두고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애들 중 둘은 4학년 때 내가 담임까지 한 아이들이었다. “정말 걔들이 그랬대요?”라는 내 말에 나보다 10년 후배인 주임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심 선생님은 마음이 너무 여리셔서……. 반에서 하면 금방 들통 날 테니까 방과 후 수업에서 그랬답니다. 농구나 축구 같은 데서 게임하는 척하면서 여럿이 한 아이를.” 주임이 토를 달았다. “이 일은 특히나 교장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그런 넌 그렇게 똑똑해서 보이스피싱이나 당했니? 라고 받아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명진이의 말처럼 건우라고 사인 된 그림이 두 장이었다. 건우라면 아, 고흐, 했던 아이다. 그런데 두 그림은 한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도 달랐다. 화풍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채색과 원색을 쓴 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도화지 가득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갈수록 하관이 빨아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두 눈만 치켜뜨고 누군가를 몰래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커다란 흰자위에 비해 눈동자는 송곳 끝으로 찌른 듯 흔적만 남아 있는데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는 듯도 하고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듯도 했다. 활짝 웃고 있는 다른 그림과 대비가 된 탓일까, 보는 이의 마음도 무겁고 불편해지는 그림이었다. 건우라는데 건우가 아니었다.
“명진아, 네가 모른다. 우리 반에 건우가 한 명 더 있다”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잠시 사이를 두고 “예에?” 하는 끝이 갈라지는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이 웃고 떠들던 복도도 텅 비었다.
열다섯 평의 그 작은 아파트에는 신혼을 시작해 아기를 낳아 기르는 젊은 부부와 성장한 아이들은 출가시키고 살림을 줄여 이사 온 노부부들이 살았다. 일렬 주차에도 늘 서툴렀지만 아침마다 차를 빼는 일도 고역이었다. 아파트 어디에도 차를 돌려 나갈 공간이 없었고 아파트 입구까지 후진으로 나가야 했는데 주차된 차들을 긁지 않으려다 반대편 화단을 그대로 쓸고 나가곤 했다. 일 년도 되지 않아 내 차는 흠집투성이가 되었다. 힘들게 후진하면서 어렵게 차를 빼는 내 모습을 최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간신히 후진해 아파트를 벗어난 차가 비탈길을 내려가 도로로 합류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최는 5층 아파트 창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림 속 낯선 건우의 모습처럼. 팔짱을 낀 그 포즈로.
“심상희 선생님?”
수년 전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건 상대방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확인했다. 심상희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묻는 부분에서 변성기 소년처럼 목소리가 뒤집혔다. 더 이상 밝지 않고 경쾌함도 사라졌지만 최였다. 나는 최가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지 너무 놀라 최가 내게 전한 소식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이 최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최가 내게 전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홍이 죽었다.
나는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홍이 죽은 걸까. 홍이 죽었다는 소식을 최가 내게 전해 준 것이 맞나.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최의 전화번호는 저장도 해두지 않았으니 최의 연락처를 알 수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다. 최는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나. 왜 내게 전화해 홍의 죽음을 알린 것일까. 그렇다면 최, 혹시 내가 사는 빌라의 골목에 와 서 있었니? 전봇대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았니?



4.


‘산지기 외딴집/눈 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나는 504호 현관문 앞에 서서 조용히 안의 동정을 살폈다. 이런 내 모습이 딱 ‘윤사월’의 눈 먼 처녀 같다고 생각했다.
방점을 어디에 찍으면 그렇게 읽을 수 있냐고? 교장은 ‘산지기 외딴집’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깊은 산속의 고립된 생활. 그것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가끔 평교사로 이 나이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해볼 테고 그때마다 고립될 뻔한 상황에서 벗어난 걸 안도하곤 했을 테니까.
나는 또 S시에 왔다. S시에 접어들 무렵 날은 저물었고 이번에도 내 차는 비뚜름하게 주차되었다. 그 바람에 흰색 왼쪽 사이드미러가 주차 칸 밖으로 빠져나왔다.
누군가 후진으로 차를 빼면서 왼쪽 백미러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부러진 백미러는 온데간데없고 급한 대로 동네의 자동차정비센터에 들렀다. 자주색은 흔치 않은 별색이라 따로 주문을 넣어야 하는데 주문해도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다고 했다. 센터에 상비된 같은 차종의 백미러는 검정과 흰색뿐이었고 일단 흰색 백미러를 달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길이었다.
현관은 남자들의 커다란 신발들로 가득차서 내 구두를 벗어 둘 곳은 없었다. 무슨 모의라도 하는 듯 닫힌 안방문 안은 조용하고 대신 현관 우측의 화장실 문은 활짝 열려 남자들의 소변 자국으로 얼룩진 변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뒤축이 구겨진 나이키 운동화 한 짝이 뒤집혀 있었다. 운동화의 짝을 맞춰 가지런히 놓았다. 신발 뒤꿈치를 구겨 신는 사람은 홍밖에 없고 홍까지 왔으니 다섯이 다 모였다. 보름 전인가 미야자와 리에 *의 세미누드집이 한국에서 정식 출간된다는 소식에 최가 시내의 중앙서점에 예약을 해두었다. 그 화보집이 도착하자마자 최가 넷에게 그 소식을 알렸을 것이다.
안방의 저 남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좀 더 나은 곳을 물색 중인 이와 이력서를 내는 족족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이와 구직과는 상관없이 대학원에 다니는 이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다고 위안하며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웬만한 직장쯤은 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아직 부모의 그늘 아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홍에게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는 말수가 적고 몸에 수줍음이 밴 사람이었다. 친구의 부름에 오긴 했지만 어쩌면 부끄러워서 여배우의 가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못한 채 조금 떨어져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현관 가장 안쪽에 구두를 벗어 두고 안으로 들어왔다. 발소리를 죽여 작은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홍이 조금만 더 놀다가도록 그냥 두자, 홍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건 이때뿐이었을지 모르니까.
“자자 이제들 일어나자. 심상희 선생님 오실 시간이다.” 최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당할 수 없는 음역대의 음에서 삑사리가 나듯 이번에도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릴 적 손상된 성대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고 목소리는 변성기에 머물러 있었다. 문이 열리고 신을 찾아 신는 듯 현관 쪽이 소란스럽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방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홍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나는 홍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 그러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 울어요?"
당황한 듯하면서 자신감 없는 소심한 목소리가 물었다. 홍이었다. 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주저하면서 홍이 다시 물었다.
“사, 상희 씨, 왜 우, 울어요?”
“울긴요, 누가 울어…….”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려 나는 황급히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홍 때문에 울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사, 상희 씨, 울지 말아요.”
“형수님이라고 불러요.”
최는 늘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당황해하는 홍의 얼굴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백팔십이 훌쩍 넘고 백 킬로그램에 가까운 덩치였지만 그는 딸 없는 집의 막내였다. 그의 부모는 모두 공무원이었고 그는 늘 어머니의 가시거리 안에 있었다. 그들 다섯은 전부 달랐지만 특히나 홍은 다른 넷과 성향이나 기질이 달랐다. 함께 어울리려 그들을 따라 하려다가도 홍은 결정적일 때 주춤거렸다. 뒤에서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일층에서 남자들이 홍의 별명을 불렀고 홍이 힐끗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먼저 내려간 애들이 상희 씨 차를 봤다고, 밴댕이무침 먹는데 상희 씨 빠지면 안 된다고, 빨리 데리고 오라고요.”
할 말을 한 번에 쏟아내고는 홍이 휙 뒤돌아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둔중한 그의 몸이 실릴 때마다 계단실이 쿵쿵 울렸다. 눈물을 닦고 눈가와 뺨에 분을 덧칠한 뒤 코트를 걸쳤다. 일층에 가까워질수록 차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면서 농담을 주고받는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밖은 시야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남자들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어두워도 새로 단 흰색 백미러만큼은 희끗 빛이 날 텐데, 꿈속에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고 어둠 속에 떠 있을 흰색 백미러를 찾아 헤매다 깼다.



5.


50일 긴 여름방학 동안 김 선생은 평생 꿈이던 산토리니에 갈 예정이었다. 학생 시절 이온 음료 광고의 배경이 된 그곳을 본 뒤로 언젠가 꼭 한 번 가보리라 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금지되었고 김 선생이 찾아낸 곳은 제주도에 있는 산토리니라는 이름의 펜션이었다. 김 선생이 그곳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는데 정말 산토리니의 건물처럼 흰색과 파란색의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관광단지는 물론 바다와도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귤밭밖에 보이지 않을 듯했다.
“음, 이제 드디어 벽지 가산점을 챙기려는가? 어떤 곳인가 미리 답사 차원에서 가보는 거고?”
대답 대신 김 선생이 깔깔 웃었다. 교포족이 되지 말아라, 평점 챙기고 젊을 때 산간벽지에 지원해 점수를 챙겨놔라, 이야기해도 김 선생은 교장을 목표로 하는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중년 평교사의 애로에 대해 말할 때마다 김 선생은 “그럼 쌤은요? 그렇게 좋은 걸 쌤은 왜 안 하고요?”라고 당돌하게 물어 나를 곤란하게 했다.
꿈과는 달리 나는 내 차에 남자 다섯을 태우고 밴댕이회를 자주 먹으러 다녔다. 차는 덩치 큰 남자들로 포화 상태가 되었다. 돌아올 때는 나를 제외한 남자들이 모두 취해 있었다. 음악을 크게 틀었고 흥에 겨운 남자들은 비좁은 차 안에서 어깨춤만 출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차가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조였나, 작은이였나. 누군가 심상희 선생님 이대로 교장까지 가즈아! 라고 외쳤고 남자들이 응원하듯 가즈아, 가즈아, 후렴구를 넣었다. 나는 운전하느라 웃느라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걸 최는 내 목표가 교장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차례차례 남자들을 다 내려 주고 최와 단 둘만 남았다. 비탈길을 올라오는 길에 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심상희 선생님, 야심도 크십니다.”
나는 내 속에 그렇게 큰 분노가 있을 줄 몰랐다. 퇴근길에 다 쏟아 부었다고 생각한 분노가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벌린 입 사이로 치솟아 나왔다. 여느 때와 달리 대상을 찾은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는 3, 4호 현관 앞에 최를 내려 주자마자 그대로 차를 몰아 축대로 돌진했다. 보닛이 우그러지고 차에서 떨어진 흰색 백미러가 저 멀리 날아가는 걸 보았다. 그날 내 분노의 대상은 바로 나였다. 에어백도 없는 차에서 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건 천운이었다.
“쌤은 뭐 하실 거예요? 저랑 가요, 산토리니.”
하얀 회벽과 푸른 지붕.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제주도에 살면서 산토리니를 그리워하는 산토리니 펜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하기는 했다. 내년이면 전근을 가야 했고 이렇게 붙어 있는 것도 올해가 끝이었다. 하지만 김 선생에게는 사귀는 사람이 있고 내가 가 있으면 그 사람이 마음 편히 놀러오기 힘들 것이다. 혹 같은 존재가 되긴 싫었다.
“방학 동안 글 쓸 거야.”
“산토리니에서 써요. 쌤이 글 쓰시면 제가 커피도 타고 쌤 농땡이 치시면 제가 혼도 내고.”
“난 누가 있음 글이 안 써져.”
“그럼 왜 여태까지 안 쓰고 계셨을까? 맨날 혼자시면서?”
기어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6.


간호사가 금식 팻말을 걸어 두고 갔다. 소설을 쓸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그 계획은 진작 물 건너갔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자궁에 꽤 큰 혹이 발견되었다. 산부인과 여의사는 옷을 추스르면서 의자에 앉는 내게 “아이고 꽤 키우셨네요.”라고 말했다. 크기도 크기지만 위치가 좋지 않다는 말끝에 “쓸모도 없는 거 그냥 떼어버리시든가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나는 조금 놀랐다. 그녀는 내 또래로 보였다. 화장기 없는 뺨 전체에 흐리게 기미가 번져 있었다. 막연하게 나는 어쩌면 그녀도 자궁을 떼어낸 모양이라고 쓸모없어 그냥 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삼십 년 동안 옮겨 가면서 근무한 학교들 대부분이 단열재로 석면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몸 어딘가에 혹이 자란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50일 동안의 긴 방학이라니, 순전히 병 주고 약 주는 식이 아닌가. 방학이 시작되는 두 번째 주 화요일에 수술 날짜를 잡았고 그날 아침 나는 트렁크에 간단한 짐을 챙겨 병원으로 왔다. 사물함에 수건과 양말을 챙겨넣다가 무언가 물큰한 것을 밟았다. 옆 환자의 피 주머니가 내 침대 쪽으로 넘어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발끝으로 슬쩍 밀어 옆 침대 쪽으로 넣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는 전면 금지되었다. 어느 정도의 간병도 간호사들 선에서 다 해결되어 간병인을 구할 일도 없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천장의 형광등들이 휙휙 지나갔다. 침대를 옮겨 누운 것만 기억난다. 그 뒤로는 암전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입원실 내 자리였고 내 배에는 피 주머니와 소변 주머니로 가는 두 개의 플라스틱 대롱이 달려 있었다. 잠이 몰려왔고 잠을 뚫고 통증이 몰려오면 나는 신음소리를 냈다. 간호사가 달려와서 링거 줄에 진통제가 든 주사기를 꽂는 게 보였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얕은 잠에서 깼을 때 꿈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누군가 내 구두를 밟고 갔다는 것만 또렷해서 또 S시로 가는 꿈을 꾼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나는 최와 최의 조부모 이장식을 보고 있었다. 최의 조부모는 해로했고 죽은 뒤에도 함께 묻혔다. 속에서 드러난 흙은 붉었고 붉은 흙 사이로 썩은 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눈을 돌렸다. 절차가 끝나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최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는 먼저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내게 다가와 슬쩍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알아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웅얼거릴 때만큼은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고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눈을 떠보고 알았다. 입원실 안에 걸린 텔레비전은 내 침대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프로야구 중계가 한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S시의 야구장은 최의 조부모 무덤이 있던 선산이 개발되고 나중에 들어섰다. 흥분한 듯한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 점 차로 지고 있는 팀이 9회 말 공격 찬스를 맞이했다. 주자가 이, 삼루에 나가 있었고 투 아웃 상황에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누가 이길까, 나는 조바심이 났고 그 극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 자꾸 감기는 눈을 뜨려 했지만 결국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누군가 침대 발치에 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인가, 아닌가. 너무 마르고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지만, 아니 나는 그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트레이닝 차림으로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느냐고 빨리 쓰라고 얼른 쓰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온 것일까. 병문안을 온 건 아닐 것이다. 눈은 자꾸 감기는데 아무래도 나는 최가 그날의 약속을 지키라고 다그치러 온 것만 같았다.
선산에서 내려온 뒤 나의 손을 잡은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도 나중에 같이 무덤에 묻히자. 나는 손을 휘적거리면서 간호사를 불렀다. 한참 만에 간호사가 다가왔고 링거 병을 확인한 뒤 내 이름을 불렀다.
“심상희 씨?”
심상희 선생님이 아닌 심상희 씨라고 불리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심상희 씨, 왜 울어요. 그렇게 아파요?”
울긴 누가 울어요. 누가 울어…… 이번에도 입은 떼어지지 않았다.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방점은 울어요에도 아파요에도 없다. 나는 늘 두려웠다. 두려워서 뒤를 돌아보았고 두려워서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남자의 그림자에도 가슴이 철렁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전봇대 아래에 떨어진 담배꽁초의 수를 세었다.
김희정 선생한테는 말할 수 있을까. 문득문득 공포스러웠다고, 날카롭고 차디찬 무언가가 배로 쑥 들어오는 듯한 섬쩍지근한 느낌에 종종 몸을 떨었다고. 김 선생은 이해할 수 있을까. 김 선생 나는 종종 S시로 가는 꿈을 꿔요. 아무리 잘 놓아도 내 구두는 누군가 밟고 가고 매일 저녁 내 차는 삐뚜름하게 주차가 되지요. 이게 사랑이에요? 이게 사랑이에요?
“선생님이요? 선생님 같은 분이요? 우리에게 당당하라고 말하던 선생님이요?” 믿기지 않는다고 너무 화가 난다고 김 선생이 마스크 위의 두 눈을 부릅뜰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을 더듬어 사물함에 놓아 둔 휴대폰을 찾아 얼굴에 갖다 대었다. 누워 있어서인지 얼굴 인식으로는 잠금 장치가 풀리지 않아 비밀번호를 쳐 넣었다. 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술을 마신 기분이었다. 내 주량을 벗어난 듯 몽롱해졌다. 나는 떠오른 무언가를 메모장에 적어 가기 시작했다. 분명 내일이면 왜 적었는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메모일 테지만.




* 미야자와 리에 : 일본의 여배우. 〈종이달〉, 〈행복 목욕탕〉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유응오
작가소개 / 하성란
사진 : ⓒ최모레

1996년 《서울신춘》 신춘문예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 『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크리스마스캐럴』, 산문집 『소망, 그 아름다운 힘』(최민식 공저), 『왈왈』,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등을 썼다.


《문장웹진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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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5-01
뉴 잭 스윙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 관리자
  • 2025-05-01
미시적 동물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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