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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로舊遊路

  • 작성일 2022-08-01

[단편소설]



구유로

舊遊路



함윤이





1. 적산가옥



눈 감으면 떠올릴 수 있다.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선명하게. 지하철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대로 옆 골목길이 보인다. 길 안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에 흰 글씨로 길 이름이 적혀 있다. 구유로. 의역하면 오래된 친구의 길이란 뜻.
표지판 아래를 지난다. 한 번도 문 연 적 없는 문방구와 낡은 모텔의 사잇길로 들어선다. 시멘트로 덮인 경사 양쪽으로 낮은 지붕의 집들이 이어진다. 그 길에 있는 모든 것이 내 몸처럼 익숙하다. 장소마다 깃든 기억도 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 초입에 있는 24시간 마트에서는 플라스틱 의자를 훔쳐왔었지. 동네에 온 지 반년째 되는 날이었다. 나와 여자들 모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다가 마트 옆 골목에 차곡차곡 쌓아 둔 파란색 의자들을 발견했다. 사라 아니면 내 제안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끌어안고 달렸다.
그 길을 올랐던 마지막 날 역시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여름의 한복판이었다. 태양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듯 노골적인 열기가 살을 뒤덮었다. 오존층 같은 것은 이미 파괴되지 않았나, 이제 모든 게 곧 녹아내리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비탈길을 올랐다. 그쯤부터 나타나는 집에 사는 이들은 대개 노인이었다. 그들 중 에어컨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으므로, 모두 초여름부터 창을 활짝 열어 두었다. 그중 한 창가에 놓인 라디오에서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개기일식까지 몇 달 남지 않았죠. 무려 백십팔 년 만의 개기일식이라고 하는데요. 기후위기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게 인류가 맞는 마지막 일식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죠. 인류란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걸음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평소에도 가파른 길이 무더위 속에서는 암벽처럼 느껴졌다. 오르막 중턱에는 이 길에서 가장 잘 사는 양옥집의 대문이 있었다. 한때 이 대문 앞에 매일 작고 흰 개가 앉아서 졸았지. 개가 죽은 후 집주인은 흰 종이를 검은 대문에 붙여 두었다. 거기 적힌 문구도 외웠다. 모두 이 개를 한 번씩은 매만져 주셨죠. 개 대신에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개가 살던 집을 지나서 시멘트 층계 두세 단을 오르면 집이 나온다. 숨을 몇 차례 고른 뒤 모퉁이를 돌았다. 여자들이 마당에 있었다. 훔쳐온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대문을 열면서 말했다. 나 왔어.
문을 도로 닫는 내내 등을 훑는 눈길들이 느껴졌다. 한 번 더 심호흡하고 돌아서니 바로 앞에 위리가 서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 뺨과 이마에 철썩 달라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됐어?
나는 옆구리에 끼고 온 봉투를 보여주었다. 봉투 가장자리에는 내 땀과 대표의 붉은 인감이 함께 찍혀 있었다. 위리의 눈길은 한동안 붉은색 주위를 맴돌다가 내게 닿았다. 소원성취했네. 위리가 말했다. 꺼져라, 이제. 그는 돌아서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 앞에 앉아 있던 공희가 벌떡 일어났다. 위리가 들어선 현관까지 달려갔다가 흘끗 나를 돌아보았다. 그 애의 얼굴도 땀투성이로, 우는지 웃는지조차 알 수 없으리만치 젖어 있었다. 언니 축하해. 공희는 얼굴만큼이나 축축한 목소리로 말하고 문 뒤로 사라졌다.
이제 마당에 남은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사라는 마당 끝에 앉아 있었다. 우리 집과 바로 맞닿은 옆집 벽에 기댄 채였다. 상아색 벽에 그려진 까맣고 진한 동그라미는 우리가 두 해간 담배를 비벼 끈 자국. 사라는 그 원을 한참 쳐다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튼살 자국이 가득한 다리에는 노랗거나 푸른 멍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위리나 공희, 내 다리와 마찬가지였다.
사라가 다가오는 동안 나는 눈을 내리깔거나 입술을 깨물지 않으려 애썼다. 대표와 독대하는 것보다 사라를 마주하는 게 몇 배는 더 어렵고 무서웠다. 사라는 내 손등을 툭 치고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리 계속 너 기다렸잖아. 나는 한참 후에야 물었다. 왜? 사라는 정확히 그 질문을 기대한 사람처럼 웃었다. 입매가 긴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크고 근사한 미소였다. 그냥…… 네가 아무 말 없이 도망갈까 봐.


현관을 열면 곧바로 복도가 이어진다. 그 끝에 나무 계단이 있다. 층계를 오르면 나타나는 이층 문은 일층과 마찬가지로 유리창이 달린 미닫이다. 부엌과 거실, 방을 가르는 유리창들은 우리가 여기 산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절반 넘게 박살이 났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일층에는 위리와 공희가, 이층에는 나와 사라가 살았다. 첫날부터 그렇게 정했다. 나이가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사는 게 더 편하지 않겠냐는 판단에서였다. 그날 방에 짐을 풀던 우리 얼굴이 얼마나 새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는지 기억한다. 12월의 구유로는 억장이 무너지게 추웠다. 이삿짐센터 쪽에서 눈 쌓인 오르막길을 올라올 수 없겠노라고 을러메서, 다들 평지에서부터 상자를 들고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희고 둥그스름한 입김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짐을 풀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건 내가 아닌 엄마의 표현이었다. 엄마는 이 집을 보고 몇 번이나 말했다. 억장이 무너진다. 억장이 무너져. 너 이런 집을 뭐라 부르는지 아니. 적산가옥이야. 일본인들이 조선에 눌어붙었을 때 지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도망가면서 남겨 둔 집이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집에 살아, 곧 쓰러질 것 같은 집에.
적산가옥이란 이름은 우리 안에 꽤 깊숙이 남았다. 우리는 일층 안쪽 거실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때 이곳에 살았을 적들을 생각했다. 미닫이문이나 나무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키코가 저기를 오르내렸을 거야. 안쪽 방에는 사쿠라코. 그 맞은편에는 하루코. 지금 이 자리에는 쇼코가 앉아서 사과를 깎고. 아니, 그런데 왜 다 코로 끝나? 그리고 왜 여자밖에 없어? 왜냐, 남자가 살았으면 이 집의 음기가 설명이 안 돼. 여긴 분명 여자들 집이다.
어쨌거나 지금 이 집의 주인은 한국인 남자였고, 우리 대표였다. 그는 자신의 호의 덕에 우리 모두가 서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가격으로 이 집에 살 수 있는 것이라 했다. 그 대신 견뎌야 하는 건 다음과 같았다. 매해 얼어붙는 보일러와 틈만 나면 터지는 수도, 비 오는 날이면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 뒷마당에서 풍기는 똥 냄새. 우리는 차차 그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가끔은 그것을 상쇄하리만치 아름다운 순간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층 통유리창 너머로 환하게 몰아치던 눈보라나 한여름이면 안쪽 방에서 풍기던 나무 냄새, 볕 좋은 날에 현관문의 창유리를 넘어와 복도에 네모지게 고이던 햇빛 같은 것. 악취와 눈부신 것이 한 자리에 고여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찌나 선명하고 또 자주 떠오르는지, 당황스러울 정도다.


구유로를 떠나던 날, 나는 일층 복도에 몇 분간 서 있었다. 사각형으로 고인 햇빛 위에 멈춰 서서 쏟아지는 볕에 얼굴을 적셨다. 눈을 감자 오렌지빛이 섞인 어둠이 어른거렸다. 일층 미닫이문 안쪽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공희의 것이었다. 이 집에서 소리를 내어 울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이제 어떡해. 공희는 말했다. 우린 너무 늙었어. 벌써 스물일곱 살이야. 이어 위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늙긴 뭐가 늙어. 일 년만 버티면 돼. 그럼 다 끝이야.
나는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 몰래 이층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방향을 틀자마자 바닥이 큰 소리로 울렸고, 안쪽의 울음소리는 뚝 그쳤다.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위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눈과 뺨 모두 새빨갰다. 나는 그가 캐묻기 전에 얼른 말했다. 이삿짐 트럭을 기다리는 중이며 짐은 위층에 모두 싸놓았다고. 오늘 저녁 중에 최대한 조용히 떠나겠노라는 말도 덧붙였다. 위리는 한 번 웃고서 말했다.
좋겠네, 해약금에다가 이사비까지 내줄 가족도 있고.
그가 느릿느릿 내 앞으로 다가왔다. 땀 냄새가 훅 풍겼다. 내 말 잘 들어. 위리가 내 턱 끝에 손가락을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 얘기 아무데도 하지 마. 아니, 기억하지도 마. 우리를 무슨 어릴 때 추억처럼, 한때 그런 일이 있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죽여 버릴 거야. 평생 용서도 안 할 거야.
나는 한참 후에나 입을 열었다. 언니한테 너가 뭐야……. 위리가 또 웃었다. 조금 겁이 났다. 위리가 저렇게 빨간 얼굴로 웃을 때면 꼭 무슨 일이 벌어졌다. 대표에게 처음 싸움을 건 사람도 위리였다. 이 집에 온 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나, 그는 맥줏집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온 차림 그대로 대표의 사무실로 향했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그날 위리는 주방문의 창유리 서너 개를 깨트렸다.
할 수 없어.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때리면 맞아버려야지.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위리가 내 뺨을 힘차게 날려 준다면, 혹은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어 준다면, 모든 게 한층 개운해질 것만 같았다. 더욱 단순하게 세상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위리는 무엇도 하지 않았다. 나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을 뿐이다. 또다시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 전체가 덜컹거렸다.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공희였다. 미닫이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채 멋쩍게 웃고 있었다. 나 커피 내릴 건데 마실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공희는 부엌으로 향했고, 곧 커피메이커와 사과 두 알을 가지고 나왔다. 지난달 사과 축제에서 기념품으로 받아온 것이었다. 우리는 부엌과 주방 사이 탁자에 마주 앉았다. 공희가 내린 커피는 지나치게 연했다. 사과는 칼질할 때마다 점점 작아지더니 급기야는 초등학생이 깎은 지우개 조각처럼 변했다. 공희는 울퉁불퉁한 사과들을 내놓고서 또 머쓱하게 웃었다.
언니가 매번 깎아 주는 데 익숙해졌나 봐. 사과 깎는 걸 잊어버렸네.
나는 사과를 베어 물고 커피를 마셨다. 둘 다 미지근했다. 삼키자마자 목 아래 어딘가에 걸린 듯 가슴께가 답답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이런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토록 미지근하고 애매하여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온도로부터.
그때 공희가 말했다. 미안해, 언니.
나는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도 큰 공희의 눈동자가 바깥의 빛을 모두 빨아들인 양 이글거렸다. 대체 뭐가 미안하단 거야, 물으려 했지만 목이 꽉 막혀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공희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언니가 힘든지도 몰랐어. 만날 불평하는 건 나랑 위리였으니까. 몰라줘서 미안해.
괜찮아.
안 괜찮아. 말을 안 한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닌데. 언니, 우리가 너무 어려서…….
아냐, 알겠어. 공희야. 정말이야. 이제 그만해.
공희가 말을 멈췄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지독하게 맛이 없었다. 공희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커피를 더 따랐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 짐 좀 쌀게. 공희는 내 등에 대고 소리쳤다. 언니, 우리 다음 달에 공연 있는 거 알지? 그때 놀러 와. 그날 개기일식이랑 겹친대. 잘하면 같이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알겠지, 꼭 와야 해.
나는 가능한 한 빠르게 계단을 올라 미닫이문을 열어젖혔다. 방을 두 개로 갈라놓은 푸른 커튼이 펄럭였다. 사라가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이층을 커튼으로 분리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사라였다. 그가 창문이 있는 바깥쪽에, 내가 문이 있는 안쪽에 살기로 했다. 사라는 동대문에서 직접 커튼 천을 떼왔다. 벽 안쪽에 걸어 둔 작은 풍경 역시 사라의 것이었다. 풍경에 매달린 금속 물고기는 커튼을 열 때마다 차랑차랑 울렸다. 그 소리는 첫 일 년까지는 아름답게 들리다가, 일 년 반이 지나고서부터 거슬리기 시작했고, 이 년째에는 지긋지긋해졌다. 사라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 애가 매주 쇠 물고기를 닦는 모습을 봐왔으니까.
짐 다시 안 풀어도 돼서 다행이네.
사라가 턱짓으로 한구석에 쌓인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옆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버릴 물건은 봉지에 넣기로 결심했더니 가진 것 중 3분의 2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모서리에 쌓아 둔 공책들을 버릴 때는 잠시 머뭇거렸다. 너덜너덜한 앞표지를 펼치자 그간 적어 둔 일정들이 벌레 떼처럼 몰려 나왔다. 글자들은 모두 축제의 이름이었다. 쌀 축제, 사과 축제, 동동주 축제…… 음식 이름을 매단 축제에서부터 철쭉제나 솔개제 등 동식물 이름을 따온 축제, 춘향제나 논개제처럼 여자들의 이름을 가져온 축제도 더러 있었다. 그 이름들 속에 지난 두 해가 모조리 스며 있었다. 구유로에 산 뒤로 한국에 얼마나 많은 축제가 있는가 몸소 알게 되었지. 전국 팔도 각종 지역에서는 계절을 불문하고 매주 축제를 벌였고 우리는 그런 얼렁뚱땅 행사들이 세워 둔 가설무대에 오르내렸다. 환갑잔치나 동네 운동회에 불려간 기록도 겹겹으로 쌓여 있었다. 반면 대표가 우리에게 약속했던 데뷔 날짜라거나, 반년 안에는 무조건 성사시키겠다던 앨범 계약일은 공책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오전에 만난 대표는 계약서 맨 아래에 해지 도장을 찍어 주며 말했다. 이왕 그만둔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여기는 말끔히 정리하고, 알겠지? 내 손을 잡고 흔드는 대표의 손은 붉고 딱딱했다. 평생 부러지거나 휘어질 일이 없을 듯한 손이었다.
나는 공책을 비닐봉지에 넣었다. 열린 상자는 꾹 눌러서 닫고 테이프를 붙였다. 등 뒤에서 사라가 물었다. 앞으로 뭐 할 거야? 나는 대답했다. 나도 몰라. 사라는 또 물었다. 이제 노래는 안 해? 춤도 안 출 거야?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춤도 노래도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다. 무대에 서는 일도 없을 거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사라가 다리를 풀고 일어섰다. 나는 그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손가방에 계약서를 넣었다. 사라는 내게로 몸을 굽히더니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바다를 건너온 조각처럼 길고 가느다란 손이었다. 바로 곁에 다가온 얼굴 역시 희고 매끈했다. 그런데도 어째선지 사라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인가, 사라도 늙었나? 나이조차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사라를 리더로 여겼다. 그가 어느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엉덩방아를 찧거나 취객들이 우리 손목을 붙잡고 끌어내려도, 사라는 여러 번 이 삶을 살아온 양 의연한 얼굴로 대처했다. 내가 이 모든 걸 그만두겠다고,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말해 낸 날도 마찬가지였다. 사라는 잠시 눈만 내리깔았다. 그러고서는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네 인생이니까.
사라가 내 무릎을 누르며 속삭였다. 줄 게 있어. 그가 등 뒤로 손을 뻗어 파랗고 납작한 책을 꺼냈다. 책이 선물이야? 나는 짜증을 내는 척 물었다. 사라는 한 차례 웃어젖히고는 내 다리에 책을 올려 두었다. 그 얘기야. 독일 남자 이야기. 내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라고? 사라가 대답했다. 전에 말했잖아. 독일에서 프랑스까지 걸은 남자 이야기. 알고 보니 이 책에 적힌 얘기더라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배낭 속에 책을 넣었다. 사라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말했다.
사실 하나 더 줄 게 있는데…… 이건 선물이라기엔 좀 뭐해.
이번에 사라는 내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서서 커튼을 쳤다. 쇠 물고기가 높은 소리로 울었다. 통창을 넘어온 햇볕이 천을 지나오며 푸르게 일렁였다. 나는 사라를 올려다보았다. 수족관에 들어선 듯 푸른빛에 잠겨 일렁이는 얼굴. 눈썹은 한가운데로 모여 있고 입술은 앙다문 채였다. 사라도 긴장하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뭐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서 옷을 벗었다. 나는 꼼짝하지 않은 채, 그가 티셔츠와 바지를 차례차례 벗고 무척이나 느리게 속옷을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윽고 내 앞에 서 있는 파랗고 긴 알몸을 보았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라는 한 차례 긴 숨을 내쉬더니 다시 옷을 입었다.
나는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응.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거야?
엄마 배 속에서부터 이랬지.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또다시 물었다. 아프지는 않아? 사라는 큰 소리로 웃고서는 말했다. 전혀. 사실 한쪽은 기능도 안 해. 그냥 달려 있는 거야. 신생아일 때 제거하려 했는데 잘 안 됐나 봐. 다른 한쪽만 잘 작동해. 생리도 하고……. 그가 말하는 내내, 나는 지난 두 해 동안 사라가 어떤 식으로 제 몸을 감춰 왔는지를 떠올렸다. 무대든 집이든 사라는 천 혹은 벽으로 막힌 곳에서만 옷을 갈아입었다. 화상을 입었거나 수술 자국이라도 남았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대표도 알아. 사라가 말했다. 대표가? 나는 소리쳤다.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계약금으로 수술할 생각이었어. 그 정도 금액이면 충분히 수술할 수 있고,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서. 그런데…… 왠지 싫더라고. 그렇게 하는 게. 사라가 다시 내 옆에 앉았다.
너무 끔찍했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이유는 묻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대신에 다른 질문을 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웅얼거림에 더 가까운 말이었지만.
근데 왜 지금 나한테…… 갑자기.
사라는 다시 크게 웃었다. 내가 익히 아는 바로 그 미소였다. 딱히 이유는 없는데. 사라가 말했다. 그냥 날 기억해 주면 좋을 것 같았어. 지금 모습 그대로 말이야. 곧 그는 나를 세차게 끌어안았고, 금방 놓아 주었다.


그 집을 떠나던 날을 기억하듯이 ― 그 집을 떠나고자 마음먹은 날 역시 기억한다. 나는 마당에 서 있었다. 바지랑대 사이에 매어 둔 빨랫줄에 이불을 거는 중이었다. 꽃무늬 천 한가운데 피가 둥글게 묻어 있었다. 월경 이틀째였다. 배 속은 금이 가는 땅처럼 아팠다. 삼십 분 후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다. 연습실 비용을 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사라는 맞은편에 서 있었다. 이불 반대쪽을 잡고 팽팽히 당겨서 빨랫줄에 거는 중이었다. 손을 바삐 놀리면서도 입으로는 재잘재잘 떠들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봤노라고 했다. 사라는 평소에도 인터넷이나 오래된 책에서 묘한 이야기들을 읽고서 내게 말해 주곤 했다.
그것은 한 독일 남자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그는 프랑스에 사는 친구가 병에 걸려 목숨이 위중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친구를 만나러 프랑스에 가기로 했다. 단 걸어서, 반드시 걸어서 가야 했다. 그래야만 친구가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정말로 독일에서 프랑스로 걸어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건강해졌고, 모두의 기대보다 더 오래 살았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이런 일이 더러 있는 모양이라고, 사라는 핏자국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그 순간 배 속이 무너졌다.
나는 주저앉았다. 사라가 달려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나는 생리통, 하고 중얼거렸다. 곧 눈물이 샘솟았다. 아냐 생리통이 아냐. 나는 중얼거렸다. 사라야, 나 이제 정말 아무것도 놀랍지가 않아. 누구를 위해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못 하겠어. 난 그만둘래. 우리는 실패했어, 사라. 실패했다니까. 계속했다간 남들만 베끼며 살겠지. 우린 절대 우리 노래는 못 가질 거야.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것만으로 무언가 나아질 거라 믿는 사람 같았다. 나는 계속 울었다. 배가 아픈 것도 몸에서 올라오는 피 냄새도 싫었다. 통증과 냄새는 모두 내가 살아 있음을, 매일 춤추고 노래하거나 술에 취하고 넘어지는 내 몸이 꾸준히 들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 사실은 또 다른 사실을 의미했다. 내 안에서 이 시절이 이미 끝났다는 것.
더는 내 어린 날들이 어떠했고, 거기에 무슨 마음을 품었는지 말할 기운이 없다. 그 일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고통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 머물던 장소, 얼굴, 주고받은 말을 떠올리는 일뿐이다. 그들을 기억에 남은 그대로 ― 동시에 분명히 왜곡된 방식으로 ― 주워 담아 선반 위에 두는 수밖에 없다. 이걸 보세요, 이런 걸 겪었어요. 이걸 겪어낸 마음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보이는 것들을 여기 올려 둔 거예요.
그날 이삿짐 트럭은 약속 시각에 정확히 맞춰 왔다. 사라와 위리, 공희는 말없이 내 상자들을 날랐다. 우리는 인사도 주고받지 않았다. 상자를 옮길 때 손끝이 잠깐 스쳤을 뿐이다. 나는 올라탄 트럭이 출발한 후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들은 여전히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과 너머의 집이 차차 멀어졌다. 곧 차창 너머로 구유로의 장소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가던 식당 카페 술집 대로 골목 역 정류장, 그러니까 우리가 겪은 모든 것이.
나는 창에 이마를 댔다. 이마에 닿은 유리는 여름답지 않게 차가웠다. 이제는 모든 게 나빠질 테며 더는 어떤 온기도 누리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몸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왔다.



2. 개기일식



개기일식에 대한 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또는 인터넷 창을 켜면 일식에 대한 말들만 쏟아졌다. 사람들은 어디에 가야 개기일식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또 어떡해야 그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했다. 교외의 논밭이나 강변이 자주 추천됐다. 서울을 벗어날 수 없다면 대교나 건물 위에 올라가라는 말도 나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도권 일식 감상 핫스폿’ 목록에는 여자들이 공연한다는 축제 구역도 들어 있었다.
집 안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가족들은 매일 일하러 나갔다. 나는 텅 빈 거실에 누워서 사라가 준 책을 읽었다. 가족의 집은 깨끗하고 밝아서 어디에 누워 있건 흰 볕을 쬘 수 있었다.
책 속 이야기는 사라가 말해 준 그대로였다. 주인공은 뮌헨에 사는 남자. 평소에는 영화를 만든다. 그의 친구들은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다. 파리에 사는 여자도 그중 하나였다. 남자는 여자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서 말한다. 아니,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걸 허락할 수 없다. 그녀는 죽어선 안 된다. 그는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하면 친구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햇빛과 비 무엇보다도 얼음과 바람으로 가득한 길들을 지나간다. 누구도 근거를 알지 못하는 믿음에 굳은 확신을 품고서 걷는다.1)
가족들이 돌아오면 방으로 갔다. 누구도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 두 해간의 공백은 우리를 서로 낯선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느 밤에는 아버지가 내 공연 영상을 보다가 우는 걸 보았다. 창피해서 우는 것 같았다. 내 치마가 너무 짧고, 스타킹이 지나치게 반짝여서. 그건 사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의상이었는데.
개기일식 전날에는 동생이 갑작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내가 컴퓨터로 여자들의 공연 정보를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동생은 문틈 사이로 말했다. 우리 내일 대교 가서 일식 볼 건데, 누나도 같이 갈래? 엄마 아빠가 전해 달래. 동생은 말하는 내내 다른 곳을 보았다. 나도 그의 어깨 너머를 보며 말했다. 아 고마워. 그렇지만 선약이 있어. 동생은 더 묻지 않고 문을 닫았다. 곧 거실 쪽에서 약속이라니, 누구래? 묻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다가 잠잠해졌다.
나는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축제 웹사이트에 여자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한 줄로 서서 옆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린 모습이었다. 내가 있던 자리는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사진을 새로 찍고 보정하느니 대충 수정하는 게 낫겠다 싶었겠지. 나는 사라의 어깨에는 남은 내 손을 발견하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중간에서 잘린 손가락은 유령의 것처럼 보였다. 분홍색 꽃무늬를 그린 손톱이 요란하여 더 우스웠다.
웃음은 공연 시간을 확인한 순간 뚝 멈췄다. 여자들이 무대에 나오는 시간은 오후 세 시로 적혀 있었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말에 의하면 일식은 세 시 반쯤 시작하여 오 분 정도 진행된다고 했다. 보통 공연 시간은 이십 분 정도니, 여자들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일식이 시작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대부분 공연, 특히 축제에서의 공연 시간은 지연되기 마련이었다. 만약 저 날 여자들의 공연이 늦춰지거나 밀리면 어떡하지. 일식 속에서도 그들의 공연이 계속될 수 있을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구유로에서 가져온 짐이 쌓여 있었다. 그만큼 많이 버렸는데도 짐 사이사이로 과거의 흔적이 보였다. 짐 더미 맨 위에 놓인 배낭 같은 게 그랬다. 공연마다 메고 다닌 배낭이었다. 하얗게 닳은 어깨끈에는 보풀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무수한 햇빛과 비, 얼음과 바람을 통과한 흔적이었다.
어쩌면 동생한테 한 거짓말이 사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람은 오전 다섯 시에 울렸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헉 소리치며 일어났다. 머리맡의 창문을 열자 달조차 사라지지 않은 어둠이 자욱하게 펼쳐졌다.
발뒤꿈치를 세우고 집 안을 돌아다녔다. 세수하고 옷을 입은 뒤, 냉장고에서 샌드위치를 챙겨 배낭에 넣었다. 모든 걸 조용하게 진행해야 했다. 가족들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문을 열자 초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입술을 적셨다. 강으로 가는 거리에는 술 취한 사람들 몇몇이 굴러다녔다. 벽에 기대앉은 사람, 드러누운 사람, 비척거리는 사람들. 취객 한 명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야, 이 개 같은 년아. 그를 지나쳐 굴다리를 통과하자 강이 나왔다. 강 위로 밝은 장미색 태양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것이 내뿜는 빛을 보았다.
그러니까, 오늘 저 빛이 잠깐 사라지는 것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나는 핸드폰을 켰다. 지도 화면 속의 파란 선이 가야 할 길을 그렸다. 지금부터 모두 여덟 개의 대교 아래를 지나가야 했다. 총 38.1킬로미터. 도보로 8시간 11분. 나는 침을 삼켰다. 위리가 외치던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다시 만나면 나를 죽인다고 했나? 기억하기만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던가? 반대편 귀에서는 내가 보고 싶을 거라던 공희의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빠르게 교차하는 생각 한가운데에서는 ― 물론이라 해야 할지 역시라고 해야 할지, 사라의 몸이 어른거렸다. 단 몇 초간 세상에 드러났던 파랗고 기이한 몸이.
걷는 내내 한강은 하얗게 밝아졌다. 길 양쪽에서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다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그들은 뜀박질하거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내 옆을 지나갔다. 대교 아래를 통과할 때마다 길가에 심긴 나무들은 무성해졌다. 대부분 버드나무였고, 녹색이나 금색 갈대도 있었다. 물풀 너머에서 자유로를 달리는 차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여자들과도 종종 자유로를 오갔다. 경기도 쪽 행사를 갈 때 그랬다. 대표의 오래된 스타렉스를 빌려서 돌아가며 운전했다. 차 안에서는 죽은 곤충들 냄새가 났다. 그 속에서 기절한 듯 잤다. 허리가 아파 눈을 뜨면 창밖으로 텅 빈 풍경들이 내다보였다. 곤포 사일리지가 구르는 논밭, 간판만 남은 가게들, 누구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소도시. 우리는 중얼거렸다. 유배 가는 기분이지 않니. 무인도로 가는 것 같아.
그러나 축제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사람이 많은 만큼 싫은 것도 늘어났다. 치마 속을 찍던 카메라,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발목을 더듬던 남자들, 우리를 안쓰럽게 보던 몇 개의 눈길을 기억한다. 그들 중 우리의 본명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팬이라면서 다가온 이들은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집에 돈이 많나 보네, 그 나이에도 이런 거 하게 해주고. 그렇게 말하던 이들의 얼굴은 억지로 기억 속에 새겨 넣었다. 다시 보면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하겠다 생각하면서.
무엇보다 싫은 건 무대에서 실수하는 일이었다. 가설무대는 울퉁불퉁하거나 미끄러울 때가 많았다. 너무 높은 힐을 신은 날이면 발목이 꺾였다. 몸 전체로 넘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넘어진 이의 옆 또는 뒷사람이 달려와야 했다. 팔을 붙들고서 괜찮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각자 다른 말투와 표정으로 말했지. 그렇게 추하지 않았으니, 중심을 잃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라고.
나는 발을 멈췄다. 기억을 곱씹을 때가 아니었다. 길이 끊어져 있었다. 한강에서 갈라져 나온 물길이 방향을 꺾어 도로 쪽으로 흘러들면서 길을 막았다. 물은 진흙색이었고, 축 늘어진 풀들이 물결 속에서 흔들렸다. 아마도 이 물길이 도심으로 흘러들면서 하천을 이루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상류 쪽은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
첫 번째 물길을 건너가자 땅은 본격적으로 축축해졌다. 젖은 풀숲이 발목을 자꾸만 삼켰다. 설상가상으로, 두 번째 나타난 물길은 더 깊고 더러웠다. 누군가 놓아준 돌다리 덕에 어찌어찌 건너갔으나 막판에 한 발을 헛디디면서 종아리까지 흙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젖은 다리를 모래톱에 늘어뜨리고 앉은 채 샌드위치를 먹었다. 빵은 얼음 같았다. 강 건너에 줄지어 선 아파트들이 보였다. 오전의 빛에 잠긴 직사각형 건물들이 천국처럼 번쩍였다. 고개를 돌리자 물풀 사이로 선 표지판이 보였다. 한때 여기가 늪이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나는 절반 남은 샌드위치를 물속에 던졌다.
다시 일어섰을 때부터 발바닥은 가시를 머금은 듯 욱신거렸다. 걷기 시작하자, 가시들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이미 모기들에게 내어준 종아리 곳곳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기분만큼은 썩 괜찮았다. 고통이 선명할수록 머리는 맑아지는구나. 개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구유로를 나온 이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당장은 눈앞에 펼쳐진 늪지대를 지나가는 일에만 몰두해야 했다. 이 땅은 정말이지 물컹거리네. 어쩌면 책 속의 남자가 바로 이런 맘으로 걸었는지 몰라. 그도 이렇게나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는, 혹은 내던지는 느낌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물길은 정오쯤에 나타났다. 지금껏 마주한 물길 중 가장 폭이 넓었다. 나는 지도를 확인했다. 좋아, 제대로 왔다. 이 물길의 방향을 좇아 도심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류에 다다라 강둑을 올라가면 축제가 열리는 땅으로 갈 수 있었다. 나는 물가를 따라 도로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 도로 아래로 뚫어 놓은 터널이 보였다. 사람이 다니리라 생각하며 뚫어 둔 길은 아니어서, 안쪽은 거미줄과 구정물 그리고 누군가 흘려보낸 끈적하고 거뭇한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그들을 지나가면서, 또 그 냄새와 질감을 묻혀 가면서, 내가 무언가 해내고 있노라 생각했다. 이토록 형편없는 길을 지나가고 있으니 이제는 좀 더 당당한 마음으로 여자들을 만나도 될 것이라고.
축제가 열리는 땅으로 가기 위해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천변을 따라 걷다가 강둑 위로 올라갔다. 텅 빈 거리를 지나 논밭을 가로지르자 축제로 가는 차들의 행렬이 보였다. 행렬은 모래 먼지가 휘날리는 텅 빈 땅에서 멈췄다. 임시 주차장이었다. 차들이 들어오는 방향 반대쪽에 축제 입구를 대신한 풍선 아치들이 서 있었다. 번쩍거리는 글자로 ‘개기일식 핫스폿’이라 적힌 현수막이 아치 사이에 걸려 흔들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푸드 트럭들과 못생긴 마스코트 인형, 그 곁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들. 그들을 촬영하는 어미 아비가 외치는 예뻐, 예뻐, 예뻐, 소리.
해는 하늘 한복판에서 가파르게 빛나고 있었다. 볕은 뜨겁고 묵직한 천처럼 살갗을 감쌌다. 눈앞으로 희거나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는 여전히 축축한 바짓단을 말고 몇 차례 발을 굴러 신발에 엉긴 진흙들을 떼어냈다. 저 멀찍이서, 풍선 아치 너머 어디에선가 시끌벅적한 음악이 들려왔다. 희미하긴 했으나 음악인 것만은 분명했다.
다시 걸음을 내딛자 발끝에서 솟구친 고통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척추를 뒤흔들었다. 나는 느릿느릿 풍선 아치를 지나갔다. 축제와 사람들 사이로 들어선 순간부터, 걷는 내내 곱씹던 목적들은 희미해졌다. 이 모든 게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살려내야 할 친구도 살릴 수 있는 친구도 없다. 소원을 빌 자격이 생길 정도로 먼 길을 지나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되돌아갈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만큼 엉망진창인 몰골을 태워다 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계속 가야 한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대는 축제 구역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비계에 씌운 덧마루에 기둥을 올린 구조였다. 기둥 사이로 흰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스크린과 똑같은 색의 정장을 입은 사회자가 그 앞에서 무어라 떠드는 중이었다. 관객들은 예상보다 많았으며, 하나같이 손에 선글라스 혹은 셀로판지를 덧댄 안경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아갔다. 밀쳐진 이들이 짜증내는 소리가 들렸다. 냄새나, 란 말도 섞여 있었다. 나도 알아, 하고 생각만 했다. 내가 기쁜 마음으로 지나가던 그 터널, 강에서 도로로 나가는 통로 곳곳에 쌓인 거무스름하고 끈끈한 물체들. 그것들은 모두 비리거나 독한 냄새를 풍겼다. 나는 그 악취를 두르고 왔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저희 축제도 개기일식을 보기 좋은 핫스폿 중 하나로 선정됐는데요.
이제 사회자의 목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렸다. 나는 무대 스크린에 뜬 시간을 확인했다. 웹사이트 정보가 맞는다면 슬슬 여자들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도 사회자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일식 오 분 전에는 잠시 공연을 멈추고 카운트다운을 할 예정인데요. 일식은 맨눈으로 보면 위험하니 미리 선글라스 등의 보조 도구를 준비하셔야 해요…… 그 후에야 사회자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음 팀을 소개할까요. 이분들은 정말 축제의 프로인데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두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들이죠.
소개하는 말 모두가 하나같이 귀에 익은 표현들이었다. 대표가 우리를 저렇게 표현해 달라 부탁한 건지, 축제 사회자들의 언변이 죄다 비슷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여자들이 나오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눈길이 저절로 바닥을 향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웠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여자들이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마음이 졸아들었다. 발이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트러스 기둥에 걸어 둔 조명과 함께 음악이 켜졌다. 여자들이 걸어 나왔다. 반짝이는 은색 섀도를 바른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치마는 짧고 나풀거렸다. 그들은 무대의 가장자리마다 자리를 잡고 섰다. 내가 기억하던 대형대로였다. 사이에 빈자리 하나가 있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나는 프로필에 남겨진 손가락을 생각했다. 몸뚱이도 얼굴도 없이 여자들의 몸 위에 남겨진 손가락들.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인지 여자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 그들이 다리를 찢거나 양손으로 허리를 훑을 때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움켜쥐었다. 여자들의 팬티가 보일까 봐, 여기 모인 수많은 눈이 그걸 볼까 봐 두려웠다. 땅을 구르거나 뛰어오르는 순간을 촬영한 뒤 그걸 보고서 웃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건 허락할 수 없어.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무엇이든 방법을 취하겠다. 악취와 핏발 선 눈으로 위협해서라도 막을 테다.
그러나 여자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비틀거리거나 헛디디지도 않았다. 사실 그들은 아주 제대로 춤췄다. 노래하는 목소리도 꼿꼿했다. 그들은 높이 뛰고 빠르게 돌았다. 가성을 낼 때는 잠시 멈추고 기다렸다. 그들은 좋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보였다. 놀랍게도 그랬다.
언제 쥐었는지 모를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카락 속에서 땀이 흘렀다.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자리를 잡으면서 여자들의 다리를 계속 찍던 남자의 어깨를 밀치기도 했다. 남자는 나를 홱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미친년이 다 있어. 그는 코를 쥐며 중얼거렸다.
이제 무대에서는 두 번째 곡의 전주가 흐르고 있었다. 여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다른 대형으로 섰다. 사회자가 그들 앞으로 걸어오지만 않았으면, 계속해서 춤췄을 터였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잠깐, 잠깐, 잠깐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래가 멎었다. 여자들은 약이 떨어진 시계처럼 멈췄다. 사람들이 소리 내서 웃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들을 노려보았다.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다들 들뜬 얼굴이었다. 사회자조차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중이었다. 관객석에서 좀 더 여유를 갖고 일식을 기다리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다. 관련 퀴즈나 주고받으며 카운트다운을 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스크린에 떠오른 시계가 세 시 십 분을 가리켰다. 일식까지 적어도 이십여 분은 남아 있었다. 여자들의 공연이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저기요. 내가 소리쳤다. 사방의 인간들은 새된 목소리로 떠들어댔고, 하늘을 가리키거나 선글라스를 썼다. 사회자가 퀴즈 종이를 꺼내들었다. 저기요! 나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밀쳤던 남자가 나를 흘끗거렸다. 나는 무대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여자들 발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숨을 한 번 참은 뒤 소리치며 뱉어냈다.
공연 끊지 마세요. 저는 계속 보고 싶어요.
여자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조명 아래에서 고르게 번쩍이는 얼굴들이 보기 좋았다. 나는 무대를 향해 발끝을 세웠다. 사회자가 나를 곁눈질하더니 마이크를 내리고서 말했다. 거기 여성분, 뒤로 물러나세요. 나는 거의 악을 썼다. 공연을 계속하라니까요. 시간이 남았는데 대체 왜…… 무대 앞에 서 있던 노란 조끼 차림의 남자 둘이 다가와서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여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
그냥 계속하래도. 안 들려?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란 조끼의 남자 둘이 내 팔을 붙잡고 뒤로 끌어냈다. 나는 발버둥을 쳤다. 마른 흙먼지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몸까지 틀어 가며 나를 보았다.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내 진창이나 바닥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내가 저들이 분명히 겪어 왔을 진창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것처럼.
그러니까 앞을 봐. 나는 소리쳤다. 쟤네를 보라고. 저기서 저렇게 말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나를 무대 뒤 언덕에 데려다 놓았다. 똑바로 서자 발바닥에서 멈춘 고통이 다시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왔다. 허리가 두 동강 날 듯 아팠다.
남자 하나가 모자를 벗고 땀을 훔치며 말했다. 술 마셨어요? 무슨 짓입니까. 나는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가, 저 사람들 오래된 팬이거든요. 그래서 그랬어요. 말들은 물이 새듯 흘러나왔다. 목소리도 제멋대로 떨렸다. 남자들은 눈길을 주고받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말하고서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느리게 주저앉았다.
언덕에서 무대는 조그맣게 보였다. 무대에 걸어 둔 스크린과 거기서 돌아가는 초읽기 시계만큼은 선명했다. 나와 같은 언덕에 선 사람 몇몇이 그 시계를 가리켰다. 그들도 선글라스나 보호 필름 따위를 갖고 있었다. 역시나 하늘을 가리키며 외치기도 했다. 저기 그림자 보여? 오고 있어. 나는 양손으로 귀를 눌렀다. 세상이 물속에 잠긴 듯 차차 고요해졌다. 누가 내 손목을 당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보배야.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라가 앉아 있었다. 양손으로 내 손목을 잡아 내린 채, 나를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뒤쪽에 선 위리와 공희도 보였다. 얼굴들은 무대에서와 똑같이 번쩍거렸다. 위리가 먼저 물었다.
너 왜 이렇게 지저분해? 냄새도 장난 아니다.
나는 그들을 정신없이 훑어보았다. 마주한 얼굴과 목소리 모두가 몇 해 만에 본 듯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 걸어서 왔어. 나는 웅얼거렸다. 뭐라고? 여자들이 되물었다. 나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나 걸어서 왔다고. 새벽에 출발해서 지금 도착한 거야.
나는 재빨리 사라를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내가 집 안 거실의 텅 빈 빛에 앉아 거듭 떠올리던 그 웃음, 앞니가 환히 드러나고 눈은 가늘게 기우는 미소였다. 그래, 고생 많았다. 그가 속삭였다. 뒤쪽에서 위리와 공희가 눈길을 주고받았다. 사라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이제 빨리 가자, 늦겠어.
어디에 가는 거고 또 늦겠다는 건지 물어 볼 틈도 없었다. 위리와 공희가 내 양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웠다. 사라가 방아쇠를 당기듯 외쳤다. 뛰어. 그 말과 함께, 우리는 정말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잘 뛰었다. 무대에서보다 더 높게 겅중겅중 달렸다. 내가 넘어지려 하면 휙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나는 거듭 소리쳤다. 발이 너무 아파. 제발 천천히 가줘. 난 여덟 시간을 걸었어. 여자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내가 소리쳐도 웃기만 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언덕을 넘고 푸드 트럭들을 지나 아치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 스타렉스는 주차장 구석에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모양새 그대로였다. 사라가 운전석에 탔다. 위리와 공희는 나를 던지듯 차 안에 넣고 그 옆에 앉았다.
사라는 먼저 등받이를 당기고 시동을 걸었다. 그 후에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까지 걸어왔으면 잘 알겠네. 여기까지 올 때 제일 사람 없는 곳이 어디였어? 나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가 대답했다. 습지, 거기에는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고.


여자들은 도로변에 차를 세운다. 가드레일을 넘어 도로 아래로 내려가 터널을 지난다. 쿰쿰한 어둠 속을 지날 때 공희가 속삭인다. 언니 몸에서 나는 냄새랑 똑같아. 그러고서는 내 팔짱을 낀다.
습지는 텅 비어 있다. 강 부근에서 발을 멈춘다. 사람이라고는 우리뿐이다. 사방을 메운 갈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매번 다른 금빛으로 흔들린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은 새의 뼈처럼 가늘고 또렷하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주 멀리서 개가 짖는다. 흰 개일 것만 같다.
위리는 내게 셀로판지로 만든 안경 하나를 빌려준다. 집에서 여러 개 만들었는데, 공희가 하도 졸라서 여분을 챙겨왔노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눈앞에 대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셀로판지 너머로 가늘고 둥그스름한 그림자가 보인다. 저게 달이야? 공희가 속삭이자 저게 달이야, 사라가 대답한다.
나는 입술을 깨문다. 귓속에서 심장소리가 난다. 발이 서서히 젖은 땅에 잠긴다. 달의 그림자는 서서히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태양으로 다가온다. 달은 아, 하고 말하는 입술처럼 둥그런 모양으로 굴러와 태양 위에 포개진다. 어둠의 가장자리로 얇게 저민 빛이 스며 나온다. 누군가 아, 소리를 낸다. 하늘은 깊은 물속처럼 어둑해진다.
나는 구유로를 생각한다. 그 집을 떠나온 날 이후로 매일 그래 왔듯이, 그 마당과 복도 그리고 방들을 떠올린다. 푸른빛으로 일렁이던 방 한가운데 서 있던 몸이 그려진다. 어깨와 배 등 가슴 그리고 무릎 사이까지 모두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라의 몸은 항성과 위성이 겹치는 순간처럼 아주 잠시 드러났으며, 다시는 잊히지 않는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별들이 뜬다. 사라의 손이 내 손을 잡는다. 나는 그를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어떻게 웃고 있을지 안다. 그 미소는 위리의 뾰족한 눈매나 공희의 여린 목소리가 그렇듯 처음부터 내게 속한 것처럼, 내 몸처럼 익숙하다. 사라가 미지근한 숨을 내쉰다. 보배야, 부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마치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여기까지 걸어온 덕에 우리가 이걸 볼 수 있는 것만 같아.
달은 손을 놓듯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별 대신 흰 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우리는 다시 한낮 속에 서 있다. 아이섀도와 립스틱으로 반짝이는 얼굴의 여자들이 나를 본다. 나는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웃는다.


개기일식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그 땅에 서 있었다. 우리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습지가 우리를 붙들었기 때문이다. 발목까지 잠긴 진흙은 우리 발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았다. 몇 차례 빠져나오길 시도하다가 정강이까지 잠긴 뒤에야 소방서에 전화를 걸었다.
소방차는 금방 도착했다. 붉고 푸른 조명을 번쩍이면서 도로변에 멈췄다. 소방관 한 명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플라스틱 썰매를 타고 왔다. 그는 고리들이 달린 밧줄을 던지며 소리쳤다. 각자 올가미에 몸을 끼우세요. 밧줄은 충분히 길어서 우리 넷의 몸을 감고도 남았다. 다른 소방관들이 차에 묶어둔 밧줄 반대쪽을 잡아당겼다. 나는 맨 앞에 서서, 썰매를 탄 소방관과 눈을 마주하며 끌려 나왔다.
소방관은 내 또래 여자였다. 어깨는 널찍하고 팔뚝도 단단했다. 아예 다른 세상에서 온 몸처럼 보였다. 그는 썰매를 슬슬 뒤로 끌어내면서 물었다. 개기일식 보러 온 거예요? 나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방관이 픽 웃었다. 우리를 한심하게 보는 게 분명했다. 어쨌든 그가 우리를 구해 주고 있었기에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여기 원래 늪이었던 거 알아요? 소방관이 말했다. 지금도 날이 흐릴 때면 안개로 뒤덮이는 땅이라 몹시 위험하다고도 했다. 마침내 물가에 다다른 내 손을 붙잡고 끌어내더니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어쨌든 여기서 보면 장관이긴 했겠네요.
위리와 공희, 사라가 내 뒤를 따라 올라왔다. 소방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흙이 잔뜩 엉겨 붙은 튀튀와 스팽글 나시, 무엇보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걸친 몸들을 살폈다.
소방관은 맨 뒤에 있는 사라까지 끌어낸 뒤에 말했다. 실례지만 뭐 하는 분들이세요?
사라는 강둑에 발을 디디며 말했다. 연예인이에요.
우리는 소방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게 우리의 본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늪에 빠진 이를 구하듯, 연예인은 누군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줘야 한다.
그러나 차가 사라지자마자 여자들은 강둑에 주저앉아 온갖 불평을 쏟아냈다. 주로 위리가 말했지만, 사라와 공희도 거들었다. 이게 무슨 창피냐, 누가 습지에 오자고 했느냐, 튀튀가 아주 걸레짝처럼 변했다…… 여자들은 진흙투성이였고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나는 그들 곁에 앉아 있었다. 사라가 준 책의 결말을 거듭 생각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파리에 도착한 남자가 친구의 병상에 앉아 어떤 말을 했더라. 그들은 분명 미래의 계획을 세웠지. 두 사람이 실제로 그 일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여자의 병이 나았음을, 그리하여 모두가 바라던 대로 더 오래 삶을 누렸다는 사실만을 안다.
나는 다시 풀쩍풀쩍 뛰어 진흙 덩어리를 털어냈다. 축축하던 다리가 마르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탓인지, 혹은 가을이라서인지 몸도 으슬으슬 떨렸다. 그만 불평해. 나는 가장 큰 진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따뜻한 거나 먹으러 가자.


1) 『얼음 속을 걷다』, 베르너 헤어조크 지음, 안상원 옮김, 밤의책, 2021.












함윤이
작가소개 / 함윤이

1992년생.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되돌아오는 곰」이 당선되었다. 다원예술 프로젝트 『서울집』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문장웹진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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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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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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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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