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것
- 작성일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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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이 세상의 것
박선우
한때 인생이 시트콤 같다고 생각한 적 있어. 직접 떠올린 생각은 아니고 내가 겪었던 일을 하소연하듯 몇 차례 들려주었더니 친구가 네 인생은 꼭 시트콤 같네, 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가 경험했다는 일들,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경우도 더러 있는데 솔직히 좀 재밌고 기막혀. 전반적으로 기구한 느낌? 그리고 왠지 끝맛이 씁쓸해. 뭔가를 영영 잃어버리거나 망한 것 같은 엔딩이라서.
내가 한 이야기들이 그렇다고?
응, 그리고 듣다 보니 네가 상황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 상황을 그렇게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때만 해도 친구가 내 이야기를, 그러니까 내가 겪은 불운이랄지 사고를 꽤 낙관적으로 해석하는구나 싶었다. 시트콤이라니. 남의 일이라고 속 편한 소리 하네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그게 영 싫지 않았어. 현실의 비극이 이야기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점차 희극적 양상을 띤다는 것이, 그래서 누군가에게 씁쓸하나마 웃음을 자아낸다는 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겪은 시련들을 그럭저럭 견딜 만한 에피소드로 바꿔 주는 듯했으니까. 심지어 긍정할 만한 사례로 간주하도록 이끌기도 했지.
이후로 나는 억울하거나 원통한 처지에 놓일 때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짜고짜 우는소리를 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어. 그러면 친구는 킥킥 웃거나 아이고, 어쩜 좋니, 하는 탄식을 번갈아 내뱉으며 귀 기울여 주었다. 순전히 듣기만 한 것은 아니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거나 쪼그려 앉아 발톱을 깎거나 어쨌든 자기 할일을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었어. 기나긴 넋두리 끝에 내가 시무룩하게 가라앉으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제 좀 후련해? 하고 물었고 내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면 그래, 다 지나갈 거야, 그런 게 인생이야, 하고 말했다.
그런 게 인생이야?
그런 게 인생이야.
그렇게 말해 주던 친구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서울이 아닌 이국의 도시로 멀리 떠났다거나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니고 어느 날부터인가 내 전화는 물론이고 메시지에도 일절 응답을 하지 않았지.
처음에 나는 친구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중에 틈틈이 통화를 시도했고 열흘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남겼다. 별일 없지? 많이 바쁜 거야? 어디 아프거나 다친 건 아니지? 편할 때 답장 좀. 친구는 메시지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보름이 지날 무렵 채팅방을 열어 보았는데 그동안 내가 보낸 메시지들에 달린 1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뭐야. 왜 읽고도 답을 안 해. 손가락이 부러진 게 아니면 용서 못 해. 가만 안 둬. 그렇게 농담 반 진담 반의 뉘앙스로 으름장을 놓은 메시지들에 달린 1은 서너 시간 후에 사라졌어. 답장은 없었다.
야, 이럴 거야?
답장은 없었다.
뭐 하는 거야, 진짜.
답장은 없었다.
사흘간 숙고한 끝에 나는 다시 채팅방에 들어갔다. 알았어. 나도 그만할게. 거기까지 쓰고는 얼마간 망설였어. 잘살아. 그러고 나서 휴대전화 화면을 계속 클릭하며 들여다보았지. 5분도 지나지 않아 1은 모두 사라졌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어. 친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냉담하게 벌주려는 사람처럼 메시지를 읽기만 했어. 어쩌면 읽지도 않고 채팅방 목록에서 ‘읽음’ 처리 버튼만 눌렀는지도 몰랐다.
너무하잖아.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최후의 메시지를 보냈어. 너 그렇게 살지 마라. 벌 받는다. 그 메시지들에 달린 1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지도 않고 채팅방을 나왔다. 메신저 앱은 물론이고 전화번호 목록에서도 친구를 삭제했어.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이고 혹여 기별이 오더라도 똑같이 응수해 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주말이어서 늦잠을 자다가 깨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어. 눈을 뜨기 직전까지 꾸었던 꿈 탓이었는데 내용은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친구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울음을 삼키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로 눕자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베갯잇을 적셨다. 이럴 일인가 싶어 입술을 꾹 깨문 채 흐느낌을 멈추려 했으나 소용없었지. 나는 코가 막혀서 몇 번이나 숨을 킁킁 몰아쉬어야 했어. 왜. 눈물이 잦아들 즈음 생각했다. 왜 그러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만약 친구를 눈앞에 앉혀 놓고 따져 물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그러면 친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되물을 것 같았어. 이제 좀 후련해? 그럴 리가 없잖아, 라고 대꾸하면 어깨만 으쓱할 것 같았다. 그런 게 인생이야.
*
수형은 거기까지 말한 뒤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상체를 틀어 카페 창 너머를 건너다보았다. “비가 오려나 봐.” 어느새 전면 유리에 빗방울이 하나둘 맺혀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테라스 풍경이 서서히 잿빛으로 물들어 갔다. “소나기인가.”
“그러네.” 나는 짐짓 심상한 투로 말했다. “우산 없는데.” 머그잔을 들어 얼마 남지 않은 바닐라라테를 한 모금 삼켰다. 3년 만에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따뜻하고 그윽한 향이 입안을 천천히 맴돌다가 사라졌다. 나는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수형도 어색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괜한 이야기를 했나 봐.”
나는 아니라고, 말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고마울 것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뒤미쳤으나 기왕 말하고 나니 좀 고마운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친구가 내 연락만 무시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됐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수형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그랬다.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어.”
수형은 아래턱을 문지르더니 말했다. “그럴 수 있지.”
“그럼 내 연락은 왜 피한 거야?”
3년 전 나는 수형과 친구에게 거의 동시에 절교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사람이 아주 가까워졌고, 내게 거리를 두기로 어떤 협약 같은 걸 맺었으리라 여겼다. 망할 놈들.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래서 수형이 자다가 깨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일화를 들려주었을 때, 나는 오래전에 버스 맨 뒷자리에서 혼자 소리 죽여 흐느꼈던 일을 떠올렸다. 헤드폰으로 아이돌 댄스곡을 듣던 중 별안간 눈물을 쏟기 시작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훌쩍거렸던…….
“원래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수형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너희 둘이 더 친하니까. 훨씬 오래된 사이고. 나한테 나쁜 감정이 생겼다면 당연히 둘이 공유하고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네 연락에 응할 엄두가 안 났지.”
“아닌데.” 나는 티스푼으로 머그잔 바닥에 남은 우유 거품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친한 사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수형은 아랫입술을 핥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좀 그랬어.”
“이제는 괜찮고?” 나는 수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늘 이 이야기 하려고 나 부른 거야?”
수형은 잠시간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모르겠어. 그냥 잘 지내는지 안부 인사나 하고 싶었는데.” 집게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미안, 이상한 소리만 늘어놔서.”
“괜찮아. 재밌었어.”
“재밌었어?”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좀 후련해?”
수형은 멈칫하더니 맥없이 웃었다. “그럴 리가.” 괜히 손목을 매만지며 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카페 직원이 어디선가 철제 우산꽂이를 가져와 현관에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어쩌지.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전면 유리 너머에서 솨아 하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물비린내 같은 것이 풍겼다. 그러고 있으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장면들이 안개처럼 슬며시 피어오르는 듯했다.
수형을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 겨울, 모 출판사의 송년회 자리에서였다. 당시에 나는 해당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초짜였다. 대학 신입생 때 이후로 술자리가 오랜만이어서 호프집의 왁자한 분위기에 좀체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수형은 그런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갑내기 시인이었다. 그해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운 좋게 출판사와 단행본 계약까지 맺었으나 그 자리에 아는 문인이라곤 한 명도 없는, 그래서 나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게 된 남자.
그 밤 의지할 데라곤 서로밖에 없었으므로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보면 송년회가 아니라 소개팅에 나온 거냐고 놀릴 수도 있을 만큼 딱 붙어 앉아서 집은 어디인지, 학과 전공은 무엇인지, 글을 쓰게 된 계기며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따위를 묻고 또 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불판 위에서 익어 가는 고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삼겹살은 딱 한 번만 뒤집어야 한다느니 목살은 주물럭이 맛있다느니 마늘은 구우면 알리신이란 항암 성분이 파괴된다느니 같은 객쩍은 소리만 늘어놓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에 대한 문답이 끊겨 어색해지는 상황을 감내하느니 약간 도를 넘어선 질문 — 부모님과 사이는 괜찮은 편인지, 돈은 얼마나 모아 두었고 사귀는 사람은 있는지 같은 — 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서로를 취조하다시피 알아 가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레 수형이 나와 데뷔 연도뿐 아니라 성 정체성까지 같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마치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 한복판에서 불현듯 아는 얼굴을 발견할 때처럼. 수형 역시 그러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경계심이랄 것을 아주 내버린 사람처럼 — 좀 취한 듯했다 — 별의별 이야기를 다 꺼내 놓았다.
아까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는데요—저도 마찬가지예요—사실 저는 작가 중에서 미시마 유키오를 제일 좋아해요—네? 그 사람은 할복자살했잖아요—E. M. 포스터도 좋아하고요—그 사람은 비운의 클로짓이었죠—티아라랑 카라가 최고예요. 「넘버 나인」이랑 「숙녀가 못 돼」를 무슨 수로 이겨요?—그걸 왜 이겨야 하는데요—손담비의 「미쳤어」 클럽 힙합 리믹스 버전은 아세요?—나 말고 그걸 듣는 사람이 있다니—역시, 우리는 통하는 구석이 많네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채연처럼 흔들려요…….
그 후로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도서 행사나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마주치면 든든한 아군이라도 얻은 듯 서로의 옆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떠들었고, 계절이 바뀔 즈음 광화문이나 을지로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한 뒤 청계천변을 걸었다. 긴 산책로를 돌며 우리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창작에 관한 고민을 나누곤 했다. 대화중에는 서로의 팔을 쥐고 흔들거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 한번은 삼일교 근처 바위에 나란히 앉아 쉴 때였다. 그날 내가 반년 넘게 붙들고 있던 장편소설을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며 울먹이자 수형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문지르기도 했지. 그렇게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둘이서 일렁이는 물결만 건너다보던 날들. 그러다가 나는 이따금 수형이 친구라고 언급하는 이가 내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와, 세상 좁네.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수형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와 형제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나가라는 한마디에 독립생활을 시작했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불합리한 제도에 맞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그러던 중 교육팀이 주관하는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가 친구와 연을 맺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랑 비슷해. 말이 잘 통하니까 나중에 따로 만나서 놀기도 하고, 속이야기도 털어놓고, 그렇게 가까워진 거지.
뭐가 비슷해. 두 사람은 서로 식되서 만난 거 아냐?
거의 농담으로, 떠보듯이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날 수형은 아니라고 세 번이나 말했다. 같은 대답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 거짓말처럼 들린다고 내가 지적하자 양쪽 귀가 빨개져서는 진짜 아니라고 한 번 더 말했다. 그러니 눈치 챌 수밖에 없었지. 넌지시 운을 떼어 보니 친구 역시 수형에게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 듯했다. 맞아, 그렇게 알게 됐지. 당시에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둘의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빠르게 내 마음을 숨길 수 있었다.
언제 날 잡아서 셋이 보자. 재밌을 것 같아.
좋아.
하지만 셋이 같이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거리의 수목이 나날이 무성해지던 초여름, 나는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다투었으려니 짐작했고 딱히 중재를 나서지는 않았다. 어쩌면 기회라고 여겼는지도. 그러다가 친구와 수형에게 연락두절이라는 방식으로 절교를 당했는데…… 그때 나는 두 사람이 싸우기는커녕 정식으로 사귀게 되어 나를 따돌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수형에 대한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 후였으니까.
그런 상태로 3년이나 흐른 지금, 둘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을 들었을 때 나는 내심 당황했다. 대체 친구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끊어냈던 것일까. 곰곰이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수형에게도 말했다시피 친구와 나의 우정은 알고 지낸 세월에 비해 그리 깊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고등학생 시절 내내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으나 — 거의 성소수자 동아리 같은 모임이었다 — 가장 교류가 적은 축에 속했다. 내게 친구는 언제나 친한 친구의 친구일 뿐이었고 친구에게도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서울 내 대학으로 진학한 사람이 우리 둘뿐인 데다 — 나는 문예창작학과, 친구는 영화학과 — 예술을 공부한다는 공통분모까지 생겨 적당히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 딱 그 정도로 발전한 것이지.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가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에도 응답하지 않았을 때 그냥 올 것이 왔나 보다 생각했다. 친구가 그런 식으로 잠수를 탄 것이 처음도 아니었으니까. 두세 해에 한 번씩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 연락이 닿아 물어 보면 그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영화과 친구들과 단편을 찍느라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한번은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 집에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그리 심각한 일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적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면서 깊은 우울감에 허덕여 보지 않은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정신증이나 불안장애에 조금이라도 시달려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을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괜찮아지면 소식이 오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기다려 보자, 하고 나는 마음 편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수형마저 나를 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두 놈이 붙어먹느라 나를 내팽개쳤으리란 생각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분노를 느꼈다. 친구보다는 수형을 향한 원망에 사무쳤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상실감에 빠져 지냈다.
그런데 둘이 작당한 것이 아니었다니.
내가 그동안 두 사람을 향해 — 거의 수형에게 — 응어리처럼 품어 온 감정이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혼자만의 망상이었다니. 이토록 한심한 경우가 있나. 그런데 이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 수형은 나를 찾아온 것인가. 말이야 뭐 안부 인사나 하러 왔다지만…… 그럴 리가. 수형은 여전히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여전히 친구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딱 보면 알 수 있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형은 그렇게 당하고도 친구와의 재회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둘 사이에서 화해의 메신저랄지 오작교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수형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아, 이걸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친구는 재작년 여름에 프랑스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크립터 겸 조감독으로 참여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였다. 폭우가 심하게 쏟아지던 밤, 친구는 다른 스태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나갔다가 발을 헛디뎌 에트르타의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비가 갠 뒤 해양경찰대가 몇 날 며칠을 수색했으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고. 빈 관의 덮개를 어루만지며 친구의 어머니는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고 한다. 가까운 친인척들만 참석한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고. 나는 이런 소식을 장례가 끝나고 반년이 지나서야 듣게 되었다.
이걸 말해야 할까.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나만 입 다물면 수형이 친구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오래전에 절연한 이의 죽음을 굳이 내가 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2년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나는 이제 친구에 대해 거의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수형이 만나자고 연락해 오기 전까지는 아예 잊고 살다시피 했지. 죽음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런 망각의 가속화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여길 때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여길 때 훨씬 잘 잊는다. 그러니 재회의 가능성이 제로로 확정된 상태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다는 여지라도 손에 쥔 채 살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만 입 다물면 수형은 언젠가 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여기며 살 것이다. 어쩌다 닮은 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친구를 봤다고 믿을 것이다. 잘 지내고 있구나. 여전하네. 그 편이 친구에게도 흡족한 일 아닐까. 자신을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으로 기억해 주는 이가 세상에 한 명쯤 있다면 나름 흐뭇할 듯한데…… 아니, 다 필요 없고 사실 나는 그냥 말해 주기 싫었던 것 같다. 둘이 작정하고 나를 배척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동안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한순간에 풀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나는 수형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왜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차라리 모르고 사는 편이 나았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도, 둘이 사귄 게 아니라는 사실도 전부 다. 이제는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게 되었잖아. 내게는 여전히 너희를 향한 애증이 드글드글 남아 있는데 이제는 이걸 너희한테 쏟아 부을 수도 없게 되었잖아. 전부 내가 삭여야 할 몫이 되었잖아. 그러니까 더 밉다. 더 원망스러워. 이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는 걸까.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수형아. 모르는 게 약이야…… 그러니까 나는 너한테 약을 줄게.
“금방 안 그칠 것 같네.”
수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습기 때문에 에어컨을 켰는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살갗을 스쳤다. 창 너머로 장대비가 한바탕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바깥이 초저녁처럼 어둑어둑했다.
“그래도 지나가는 비 같아.” 나는 한쪽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좀 기다려 보자.” 그러면서 전면 유리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입구 쪽 붉은색 차양 아래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를 피하러 온 그들은 젖은 머리를 털면서 간혹 카페 안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쪽 어깨가 검게 젖은, 푸른색 셔츠 차림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남자는 좀처럼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는데,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왜 저래.” 나는 약간 오싹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뭐가.”
“저 사람,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어.”
수형은 내가 가리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남자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픽 웃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모르는구나.” 수형은 왼손을 펼치더니 오른손의 검지로 그걸 찌르는 시늉을 했다. “저 유리, 코팅되어 있어. 밖에서는 안쪽이 안 보여.”
그런 게 있어? 나는 시선을 들어 다시금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분명한데. 오싹한데. 하지만 내가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이자 그는 내 어깨 너머를, 벽의 한 점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형은 남자가 자기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고 했다. 코팅된 바깥 면은 거울처럼 빛을 반사한다고.
“그건 너무…….”
내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남자는 뒤돌아서 우산을 들고 온 여자를 맞이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와 함께 빗속으로 사라졌다. 애초에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이.
“너희는 지금도 연락하지?”
수형의 질문에 나는 얼결에 대꾸했다.
“응, 가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하나의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그에 몇 배 혹은 몇 십 배가 되는 거짓을 꾸며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 일단 거짓말을 시작하면 언제 멈춰야 할지를 가늠하기보다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일에 훨씬 열중하게 된다는 것도.
“그 애는 잘 지내?”
“음.” 나는 잠깐 생각하는 척했다. “그 정도면 잘 지내는 편이지.”
“아픈 데는 없고?”
“내가 알기로는 없어. 건강해.”
“다행이네.” 수형은 머뭇거리더니 또 물었다. “요즘 무슨 일 하는데?”
그래, 네가 나한테 궁금한 것은 친구의 근황뿐이겠지. 일순 나는 수형의 태도에 — 친구의 소식을 물을 때만 묘하게 생기를 띠는 그의 얼굴에 — 괘씸한 기분이 들었고, 이런 심정이라면 암만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죄책감이 쌓이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프랑스에 가 있을걸. 촬영 때문에.”
나는 그렇게 답하며 친구가 에트르타 절벽 근처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전해 들었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게. 맑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부드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초원 위를 거니는 친구의 모습을. 그러다가 허리를 숙여 깎아지른 듯한 벼랑 아래로 찬란하게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자기 카메라를 꺼내 눈앞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촬영하는 모습도.
“아, 드디어 그 영화 팀에 합류한 건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마치 친구가 그 팀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었다는 듯이.
“프랑스 하니까 생각난다. 나중에 거기 가면 카뮈의 묘소를 꼭 둘러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갔으려나.”
“알베르 카뮈? 왜?”
순간 검은색 묘비 앞에 홀로 서 있는 친구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그 애가 그런 말을 했었거든…… 굉장했는데 그때.”
수형은 미소를 띤 채 얼마간 상념에 잠겼다. 그러더니 자신이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가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고 와서 다 같이 담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날 네모난 테이블의 모서리 자리에 앉았던 친구는 사람들의 대동소이한 감상이랄지 해석을 듣는 내내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공허하고 부조리한 세계에서 반항하듯 최대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웃음을 참듯이 입술을 실룩이거나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도 했다고. 그래서 자꾸만 수형의 시선을 끌었다고.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어디 불편한가? 그러다가 친구는 자신의 발언 차례가 되었을 때 카뮈가 실은 자살옹호자일 거라고 말했다.
그렇잖아요. 책으로 출판할 건데,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인데, 자신을 아는 많은 사람이 — 낳아 주신 어머니는 물론이고 형제와 친척, 친구들, 정겨운 이웃들도 — 모두 읽게 될 텐데, 거기다 대고 고통스러운 삶에 구태여 온 힘을 다해 맞설 필요는 없다, 당신이 끝내고 싶을 때 끝내라, 자기 생에 대한 권리는 자신한테 있다, 라고 대체 누가 솔직하게 쓸 수 있겠어요. 작가로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선이란 게 있었겠죠. 그리고 자살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한 사람이 내린 결론이 고작 ‘자살에 반대한다’인 것도 좀 웃겨요. 누가 자살에 찬성한 적이나 있어요? 진지하게 그걸 부추긴 사람이 있기나 했냐고요. 제가 식견이 좁기는 하지만, 카뮈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자살’이라는 개념을 애용한 사람이에요. 이걸로 책 한 권을 쓸 정도니까…… 아무리 봐도 디나이얼 자살옹호자가 아닐 수 없달까. 카뮈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언급한 반항이란 개념도 실은 자살의 실천에 더 어울려요. 나 같으면 산 밑의 바위를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 속에서 영원토록 사느니 바위를 도랑에 처박아버리고 벼랑에 몸을 던지겠어요. 참담함을 삭이며 구질구질하게 연명하는 것이 대체 무슨 반항이라는 거예요? 생각할수록 자살방지윤리위원회 같은 데서 청탁받아 쓴 글 같네.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는 우스개가 죽음충동을 느끼는 이들에게 한결 인상적이고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뭐야,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날 독서 모임 사람들은 점잖게 웃으며 카뮈가 그런 식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사유를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거라고 말했다. 책을 끝까지 정독했으면 알겠지만 — 아주 잠깐이지만 친구가 책을 완독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분위기가 돌았다 — 자살은 삶을 직시하지 않고 도망치듯 회피하는 처사일 뿐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명료한 의식으로 생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카뮈의 믿음은 이후의 저작인 『페스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친구는 잠자코 듣기만 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죠. 하지만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해도 좋은 말.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말. 삶에 맞서라. 고통을 받아들여라. 끝까지 살아남아라. 그런데 조금 딴소리지만 저희 아버지가 지난겨울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애초에 생존율이 13퍼센트라고 했어요. 복부 통증에 구역질이 너무 심해서 입원해 계신 내내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하셨죠. 황달 증세로 오른쪽 눈동자까지 노랗게 변했고요. 절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항암 치료를 위한 케모포트 삽입술만 받으셨어요. 그 후로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병상에 누워만 계셨죠. 진통제 없이는 30분도 못 버티셨어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구경하러 왔죠. 정말 많이도 왔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의식을 잃은 아버지를 향해서 한껏 웃는 얼굴로 힘내시라고,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기적을 믿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거예요. 저한테도 포기하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힘을 북돋아 드리라고, 새로운 치료법이 곧 나올 수도 있다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말라고 했죠. 그러곤 모두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버지는 새벽마다 복통을 견디지 못해 발작하듯 깨어나셨어요. 그때마다 침대 난간을 쥐고 흔들며 새된 소리로 울부짖으셨죠. 뭐라고 하시는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아버지가 더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진통제가 들어가면 천천히 가라앉으셨어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스르르 누워 잠드셨죠. 임종하시기 직전에는 제가 손을 잡아드렸는데요. 아버지가 막바지에 이르러 제 손을 한 번 꽉 쥐셨던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꽉, 이라고는 했지만 정말이지 갓난아기가 반사적으로 제 손가락을 움켜쥐는 정도였답니다. 그 감촉. 저는 그때 제 안의 무엇인가 바스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서, 그것을 다시는 이어 붙이거나 원래대로 복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게 인생이라는, 한낱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 죄송합니다.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놨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수형의 눈에 친구는 일말의 송구함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자기가 늘어놓은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이해나 위로를 구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고. 완고한 표정에 눈빛만 유독 형형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애틋하고 이상하게 마음을 사로잡아서 수형은 그날 모임을 마치자마자 친구를 쫓아가 말을 붙였다. 친구는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아 했고…… 둘은 인근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람들이 했던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안 쓰는데요.
그러시구나……. 그런데 카뮈가 정말 자살옹호자라고 생각하세요?
수형의 물음에 친구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럼 왜…….
친구는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냥요. 테이블에 머그잔을 내려놓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책 한 권을 읽고 와서 다들 비슷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잖아요. 물론 카뮈가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건 맞겠지만 정말 그 의도대로만 읽고 이해하고 느낄 거라면 대체 독서 모임이라는 걸 왜 하나 싶더라고요. 뭔가 다른 관점이나 예기치 못한 해석도 듣고 싶어서 모이는 것 아닌가요. 종이에 글자로 적힌 것 말고 차마 적히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요. 그런데 책이 무슨 수학 문제도 아니고 다 같이 모여서 답안지를 확인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싫었어요. 내내 싫었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참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깽판을 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깽판을…….
네, 깽판이요.
그러면서 친구는 훗날 프랑스에 가게 되면 카뮈의 묘소를 둘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왜요?
그렇게 삶에 맞서니 뭐니 하던 사람도 결국에는 땅에 묻혔구나, 그걸 보고 싶어서요.
두 사람은 책 외에도 흥미롭게 본 영화와 드라마,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유명 전시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가 문화 예술에서 사회로, 정치 영역으로 물 흐르듯 넘어갔을 즈음에는 서로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확신을 — 수형의 생각이다 — 갖게 되었다. 자리를 파하며 수형은 친구가 더 이상 모임에 나올 의향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도 더는 모임에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독서 모임과는 끝이 났지만 친구와의 인연은 새로이 시작되었다고.
또 시작이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생각했다. 눈을 반짝이며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수형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형은 예전부터 자신이 친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내게 이런 식으로 털어놓곤 했다. 열렬히 고백하다시피 했지. 누가 물어보기나 했어?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너도 참 한결같구나…… 그러면서 나는 수형에게 친구의 죽음을 털어놓기가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말해 줄 작정도 아니었는데 그것이 자의가 아니라 타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기분에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친구에 대한 수형의 애정이 변함없다는 것을 — 혹은 더 깊어졌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 알게 된 지금, 내가 친구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그저 수형을 난데없이 상처 입히는 일, 충격과 비탄에 빠뜨리는 일, 울부짖게 만드는 일, 그 외에 어떤 의미도 아닌 듯했으니까.
내가 그것을 바라는가. 수형의 눈물을 원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수형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밉기는 해도 — 진짜 미웠다 — 그가 진심으로 괴로워하거나 비통해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수형은 이미 친구를 잃고서 울지 않았던가. 애도하지 않았던가. 그 과정을 기어코 한 번 더, 극렬하게 한 번 더 겪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모르는 게 약이야, 수형아.
속뜻은 달라졌지만 나는 친구의 죽음을 함구하기로 다시 한 번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수형이 들려준 이야기 중 친구가 시지프에 관해 한 말을 떠올렸다. ‘형벌 속에서 영원토록 사느니 벼랑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 폭우 속에서 에트르타의 절벽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친구의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혹시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친구가 자살을 할 만한 결정적 이유를 나는 알지 못했다. 친구의 아버지가 그리 고통스레 돌아가신 줄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수형이라면 짚이는 바가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둘만의 일화 속에 어떤 힌트가 잠재되어 있을지도. 그러려면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 수형의 애정 고백을 — 좀 더 들어 봐야 할 텐데 솔직히 나는 그렇게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가 자살할 만한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볼 수도 없었고…….
대신에 이런 걸 물어 볼 수는 있겠지.
“둘이 그렇게 처음 만난 거구나.” 나는 어깨를 쭉 펴고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애답긴 하네. 깽판이라니.”
“그렇지?”
“그런데 그 깽판……” 나는 주저하는 척하다가 덧붙였다. “너한테도 친 거잖아.”
수형은 무슨 뜻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너는 그 애가 왜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고 생각해?”
나는 오랫동안 내가 궁금해 하며 들여다보았으나 그 어떤 실마리조차 건져 올릴 수 없었던 심연 같은 질문을 수형에게 내밀었다. 너는 이것에 대해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겠지. 견뎠겠지. 그리하여 뭔가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하게 되었을지도. 그것을 말해 줘. 내가 모르는 것을 너는 말해 줘.
“글쎄.” 수형은 의외로 담담한 얼굴이었다. “나는 네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긴 우리가 이렇게 된 줄도 너는 몰랐으니까.” 수형은 시선을 늘어뜨리더니 잠시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긴 했어. 오만 가지 경우를 떠올려 봤던 것 같아. 내가 뭘 잘못했나. 우는소리를 너무 많이 했나. 그래서 질려버렸나. 괜한 자책감도 느꼈고. 그러던 중에 그 애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 아까 한 이야기에도 있는데, 책을 읽을 때 다른 관점이나 예기치 못한 해석도 듣고 싶다고 한 거 말이야. 차마 적히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그 애가 나한테 그런 걸 준 게 아닐까 싶었어. 나한테 한마디도 적어서 보내질 않았잖아. 이를테면 공란을 준 거지. 내 안에 결코 채워지지 않을 빈칸 같은 걸 남기려고…… 그냥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
나는 수형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 무슨 소리지.” 수형은 멋쩍게 웃었다. 귀 뒤를 긁적이며 고개를 젖히더니 어, 하고 말했다. “이제 그치려나 봐.”
나는 수형을 따라 점차 여리게 변해 가는 빗발을 건너다보았다. 어느 틈엔가 짙은 먹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거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서서히 밝아지는 정경 속에서 문득 오래전에 읽은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웹 서핑을 하다가 본 것으로, 507살 조개가 발견되었다는 해외 뉴스였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기후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해저를 탐사하던 중 바로 이 조개를 찾아냈다고 한다. 발견 당시 조개는 살아 있는 상태였고, 겉껍데기의 생장선을 통해 405살 정도로 추정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연구팀은 정확한 분석을 위해 조개의 입을 열기로 결정했고, 예상보다 100년을 더 오래 산 507살임을 밝혀냈다. 그렇지만 연구팀이 입을 열자마자 조개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뭐, 그런 내용. 기사 하단에는 참으로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둥, 조개는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라는 둥, 정확한 분석이고 나발이고 조개를 내버려두었어야 한다는 둥, 다양한 댓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게. 연구팀이 나서서 입을 열지만 않았어도 조개는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텐데. 어쩌면 600살, 아니 700살까지 살아남았을지도. 그러자 수형이 바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친구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나는 아닌데.
“수형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 보기로 했다.
“네가 오늘 나 보자고 한 거, 정말 인사나 하고 싶어서야?”
너는 내가 잘 지내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여태 묻지도 않았잖아. 솔직히 나한테 별 관심도 없잖아. 늘 그랬듯 친구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잖아. 이 나쁜 놈아.
일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수형은 입을 떼려다가 멈칫했다. 나와 눈을 맞춘 채 얼마 동안 우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수형은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줄곧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렇게 살지 말라느니, 벌 받는다느니…… 자기도 모르게 친구에게 저주 같은 걸 내린 기분이었는데, 그걸 친구가 읽었든 아니든 이미 쏘아버린 화살이요 엎질러진 물이어서 마냥 후회하고 걱정하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 빨리도 났구나 — 나와는 아직 제대로 끝을 맺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자신은 친구와 다르게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나와의 마지막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잘살라는 축복의 인사를 직접 건네고 싶었다고.
“……진심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수형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방금 지어낸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게 영 싫지만은 않았고,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수형이 싫지 않다는 게 정말이지 너무 싫으면서도 별수 없이 입 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응, 좀 이상해?”
“아니…….”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눈만 깜박거리다가 되물었다. “너는 그게 안 이상해?”
“이상하긴 해.”
“완전 이상해.”
내 말에 수형은 쿡 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런 수형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억누르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큭큭거렸다. 그러다가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는 바람에 나는 티슈를 꺼내 눈가를 꾹 닦아냈다.
창을 투과한 빛이 테이블 한 귀퉁이에 머물러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이 우산을 접어 바닥에 물기를 탁탁 털어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구름 밖으로 나오자 물에 젖은 경치가 한층 선명한 색감으로 떠올랐다. 오래지 않아 수형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와서는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었다. 내가 괜찮다고 했는데 수형이 한사코 바래다주겠다고 한 것이다. 최후의 에스코트인가 싶어서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비가 갠 뒤의 깨끗한 풍경 속을, 뭉근한 햇살 속을 천천히 가로질렀다. 도처에서 빗물이 말라 가는 냄새가 났고 나무 위의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올랐다. 우리는 물웅덩이를 피해 이리저리 걷다가 넘어질 뻔한 서로를 붙들어 주기도 했다. 역 근처에 다다랐을 때 수형은 담배 한 개비만 태우고 싶다며 도로변에 내려섰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허공에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와 멘톨 향이 오래 남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며 걸었고 수형도 그리했으리라 여겼다. 헤어지기 직전에 우리는 손을 흔들면서 잘 가라고, 건강하라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런 말만 했다.
*
끝내 친구의 죽음을 비밀에 부친 탓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하루도 거를 수 없게 되었다. 짧게는 10초, 길게는 2분에서 8분 남짓 매일같이 떠올렸다.
왜 이러는 거지? 무슨 벌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물론 그 시간 동안 친구 생각만 한 것은 아니고 그리 복잡하지 않은 회사 업무를 처리한다든지 마트에서 장을 본다든지 샤워를 한다든지 어쨌든 내 할일을 하면서 떠올렸다.
그래서였을까.
날이 지날수록 친구는 점점 더 선명한 형상을 갖추었고 생생한 기운을 띤 존재로 변해 갔다. 해가 바뀔 즈음에는 더 이상 내 머릿속에서만 소환되고 감응하는 대상이 아니라 제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에 출현하고 활동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거의 유령처럼. 혹은 천사처럼.
그리하여 나는 이따금 친구에게 말을 건네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친구가 곁에서 듣고 있기에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부연하느라 그랬다. 그러다가 출퇴근길에 심심풀이로 또는 내가 아쉬워서 말을 붙이는 횟수가 차츰 늘어났고, 나중에는 아예 날을 잡아서 하소연을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로 공원을 걷다가 인적 드문 곳의 벤치에 앉아 그랬지.
나는 바로 옆의 빈자리를 — 친구를 — 흘끗거리며 어디 가서 함부로 꺼내 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말했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어릴 적 치부뿐 아니라 근래 내 안에 강렬하게 일었던 음습한 욕망까지 모조리 털어놓았지. 그러면 친구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긁적이거나 턱을 괸 채 수풀을 응시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전부 듣고 나서는 후련하냐고 묻거나 그런 게 인생이니 뭐니 같은 충고는 하지 않았고, 대체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럴 때 친구의 미소는 꼭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했는데 그래, 이 세상 것은 아니지, 아니고말고,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어째서 내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 느낄 수 있는데, 나를 위로하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 것이 아닌가, 이 세상 것이지, 하게 되었다. 갈수록 그리 믿게 되었다. 그러자 수형에게도 친구는 이와 비슷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존재가 비단 우리에게만 주어진 은총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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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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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8-01
이상한 고리 김덕희 * 나.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불빛, 등불, 전기, 스위치, 조명··· 단어들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천장 중앙에서 쨍한 빛을 내고 있는 저것의 이름은 등이다. 천장을 비롯해 네 벽과 바닥은 같은 색이다. 빛의 모든 파장이 모여 있는 색, 색이라는 것까진 알겠는데 아직 그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색이다. 공기 중에는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맴돌고 있다. 역시 냄새라는 것만 알고 냄새의 이름은 모른다. 감각을 조금 더 예민하게 세워 본다. 벽을 뚫고 들어와 지나가는 전파들이 복잡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구성의 파동들인데 파장과 진폭이 뒤섞여 있으니 복잡해 보인다. 삼원색, 사이언, 마젠타, 옐로우, 흰색, 백색, 화이트, 소독, 클로드헥시딘, 에틸알코올, 포르말린, 차아염소산나트륨, 초저주파, 초장파, 초단파, 극초단파···. 분출하듯 솟아나는 정보들이 모두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수많은 이름과 개념들 속에 아직 나에 관한 정보는 없다. 나는 바닥에 고정된 침상 위에 반바지만 입은 채 누워 있고 내 몸 이곳저곳에는 유선 센서들이 붙어 있다. 나에게서 어떤 정보들을 빼내려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다. 나는 일어나 앉은 다음 내 이마와 관자놀이, 목과 가슴에 붙어 있는 것들을 떼어 연결된 선과 함께 침상 빈 곳에 아무렇게나 치워 놓는다. 캡슐. 눈앞에 환영 하나가 머문다. 금속성 재질의 커다란 알이다. 환영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떠올리려 애써 봐도 은빛 달걀 모양의 잔상만 허공에 떠돌 뿐이다. 갑자기 왼쪽 벽 전체가 투명해지는 바람에 캡슐은 잠시 잊기로 한다. 나와 아주 닮은 존재들이 벽 저편에서 나를 향해 앉아 있다. 세 줄짜리 계단식 공간에 다섯 명씩 배치되어 있고 저마다 자기 앞의 기판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입력하거나 확인하는 중이다. 저 멀리 뒤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누구랄 것 없이 입고 있는 흰색 가운이 키 큰 여자에게는 맵시 있게 보인다. 여자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긴 머리카락 안쪽으로 넣어 귀에 가져다 댄다. 통신장치로 짐작되어 재빨리 신호를 가로챈다. 예상한 대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직 나는 저들의 언어를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학습, 강화학습. 나의 내부에 있는 무엇이 나를 조종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이 껍데기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것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조차 그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을 테고··&mi
- 관리자
- 2025-08-01
목소리들 조시현 언제나 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 열렸다. 막무가내로 파고들어 오는 목소리처럼. 무방비하게 책을 읽던 주하는 일순 얼어붙었다. 어디에도 남지 않을 목소리를 마음껏 낭비하는 그 감각에 한껏 빠져들어 있던 차였다. 신발장 옆 화장실, 왼쪽에 침대, 오른쪽에 주방이 전부인 한 뼘짜리 원룸은 현관에 서면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계약 내용은 27일 하루를 온전히 비워 주는 것. 지금껏 한 번도 어긴 적 없었기에 주하는 대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섞인 질책의 의미를 읽은 남자가 검지로 뺨을 긁었다. “어,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남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려고 온 건 아니고. 매달 27일마다 뭘 하는 거냐고, 여자 혼자 종일 웃었다 울었다 별짓을 다 한다고 하도 그래서. 여기 방음 잘 안되거든요. 방 빌려드리는 거야 돈도 받고 어렵진 않은데 혹시나 불법적인 일은 안 되니까 확인차 온 거예요. 그래도 뭘 하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쫓겨나면 곤란하거든요. 미리 말씀 안 드린 건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연락처도 모르고.” 하지만 남자의 눈은 안쪽을 꼼꼼하게 살폈다. 미처 감추지 못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주하가 가져온 거라곤 책 두 권과 머그컵, 도라지청이 전부였다. 남자가 거기서 뭔가를 알아챌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야 불법적인 일이 맞았으니까. 주하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남자가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구재정. 인공지능융합대학원. 학번까지. 주하는 사진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덥수룩한 갈색 곱슬머리. 멀끔한 얼굴. 무엇보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같은 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는 사람. “다른 뜻 있는 거 아니고요. 저 정말 여기 살거든요. 이 이름으로 입금 주셨잖아요.” 이름은 맞지만 학생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을 못 했다기보단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더 맞겠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인공지능융합대학원이었다니. 침묵이 이어지자 눈을 굴리던 남자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음, 일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저는 갈게요. 계약 파기하는 거 아니죠?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정말 조심해야 하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또 할 수는 없어서요.” 횡설수설하던 구재정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약속을 어긴 건 맞지만 그걸 보니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위아래층 목소리가 간혹 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방음이 안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다. 한 층에 세 개여야 할 집에 가벽을 세워 열한 개로 늘려 놨으니 당연한 사실인지도 몰랐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한 번 깨어진 감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하는 다시 차를 끓였다. 굳이 도라지차. 이렇게 된 와중에도 목을 관리하고 있다니. 멍청하기는. 이제 연극을 보
- 관리자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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